치유로서의 연극: 연극놀이 프로그램 〈마음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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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로서의 연극연극놀이 프로그램 <마음조각>

조원석(마음조각 프로그램 작가)

코로나19는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고, 그 변화 중 대표적인 것은 비대면, 비접촉이다. 사회는 신속하게 ‘비대면의 생태’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온라인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소통하고, 업무를 보고, 교육을 받았다. 코로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변한 새로운 일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우울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비대면 생태’라는 새로운 일상 속에서 찾았다. 하지만 모두가 ‘비대면 생태’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교육과 업무의 효율성을 얘기하고, ‘비대면 생태’의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이전에도 ‘비대면 생태’의 영역이 늘어나고 있었으며,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로 인해 이미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와 우울은 ‘비대면 생태’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각종 스트레스의 원인은 ‘비대면 생태’가 온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코로나는 닥친 일이고, ‘비대면 생태’도 닥친 일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발적인 일이 코로나 이후에는 강제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이가 놀이인 이유는 스스로 원해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지시로 하는 거라면 그것을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생태’는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온라인’이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스위치를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면 그것은 곧 고통이 된다. 코로나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빼앗았고, ‘자유 의지’의 주체인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전에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군대 훈련소 마지막 날, 수료식에서 열병(閱兵)을 하는 중이었다. 친인척과 가족들이 와서 참관을 하고 있었는데, 짧게 깎은 머리와 똑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쉽게 나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만 한눈에 나를 찾아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한다.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찾아서 친인척 모두 놀랐다고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일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뒷모습만으로도 자신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마주 앉아 가는 사람들처럼)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서, 자신의 죽음으로도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가슴 저미는 아픔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망통계 속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어서, 고정된 의미를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형성되며, 이것은 ‘관계’에 따라 언제나 변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아무도 아닌 사람’이면서 ‘너무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도 ‘타자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동료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이고, 누군가에게는 연인이다. 친구가 첫 만남부터 친구가 아니었듯이, ‘관계’란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그 ‘관계’에 의해서 의미가 부여되는 ‘나’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삶이라면, 코로나는 이런 삶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타자와의 관계’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고, ‘거리두기’는 ‘관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관계’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드러냈던 ‘나’ 역시 희미해졌다. 코로나 시대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손상 입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 내린 진단은 ‘자율’과 ‘관계’의 손상이다.

걱정 많은 철학자와의 만남-걱정을 날리는 비법 퍼포먼스
2018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차오름 프로그램 <너의 마음이 보여>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연극놀이 프로그램 <마음조각>은 코로나 이전인 ‘2018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차오름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부평문화사랑방에서 ‘너의 마음이 보여’라는 이름으로 진행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 2021년 6월 강동아트센터로 시작해서, 현재는 부평구문화재단 어린이 연극학교에서 ‘마음조각’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극놀이는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라고 해서 새롭게 조명할 필요에 대한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놀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예술은 코로나로 인해 가장 먼저 멈춰버린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먹고 사는 일로 힘겨운 삶에서 예술은 사치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코로나 시대에 손상 입은 ‘자율’과 ‘관계’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데 있어서 연극놀이는 꽤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로나 시대의 약자인 어린이에게는 말이다. ‘연극놀이’에서 ‘연극’은 ‘관계’를 통해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놀이’는 ‘자율’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2021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알록달록 마음 조각>
(사진: 강동구청-좌, 이현수-우)

<마음조각>은 차시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읽어내는 활동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감정을 많이 표현하는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소극적인 아이도, 타인의 감정을 읽을 때는 서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든 의문이 ‘언어를 배울 때 먼저 듣기가 필요하듯, 감정표현도 먼저 감정읽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였다. 차시마다 상실, 걱정, 기억, 관심을 상대방에게서 읽어내고, 그것을 키워드로 아이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비슷한 감정을 찾고 공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극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감정’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 슬프고 혼자 기쁘고 혼자 화나는 일은 없다. 항상 대상이 있으며, 그것이 ‘관계’이다. ‘관계 맺기’는 ‘마음조각’을 찾아 함께 떠나는 탐험대, 또는 수사대(아이들이 직접 이름을 짓는다)가 되는 과정에도 일어나며, 이러한 과정은 ‘놀이’의 성격을 띤 ‘자율’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타자’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러한 배움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무의식의 영역이라는 것은 ‘배움’이라는 의식 없이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배움’은 예술교육의 특징이다.

아이들의 작업-걱정을 날리는 방법(좌), 기억조각(우)
2021 하반기 어린이연극학교 <마음조각>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코로나 이전에도 예술은 있었고, 코로나 이후에도 예술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예술은 코로나와 상관없는 것일 수 있다. 예술은 코로나를 적으로 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예술은 코로나조차 삶의 일부로 품을지 모른다. 코로나와 인류의 ‘관계’ 역시 예술은 ‘승화’라는 무기로 긍정의 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

조원석(趙原奭, Jo Wonseok)

인하대학교 철학과 졸업(1998). 인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차오름 프로그램 <너의 마음이 보여> 작가(부평구문화재단, 2018). 서울시 연희 창작 역량 강화 프로그램 <현대철학으로 동시대 예술 들여다보기> 강의(서울문화재단, 2020). 인천형 학교문화예술교육 <운동장 거리두기 프로그램 ‘리본’> 작가·기획(2020~2021). 현대탈춤 <노페이스> 작가/연출. 천하제일탈공작소(서울남산국악당,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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