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연 담당자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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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연 담당자의 단상

성채은(부평구문화재단)

내 탓이오, 내 일이오
어떠한 문제나 갈등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 탓이오’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답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지구온난화도, 바다거북의 멸종 위기도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일도 그렇다. 내 일 네 일 가리지 말고 다 ‘내 일이오’ 하다 보면 잘되겠지. 그리고 그것이 답이겠지 생각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지방공연을 내려가 식당 반찬을 알아보는 것도 내 일이고, 카페가 문을 열지 않은 시간 눈이 덜 뜨인 출연자에게 커피를 만들어 주는 것도 내 일이다. ‘공연 담당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공연과 관련한 A부터 Z까지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나름 분야별로 업무가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업무 칸막이들 사이에서 어디에 넣어야 할지 애매한 일들은 모두 ‘담당자’에게 귀결된다. 업무 진행 구조가 불합리해서가 아니라, 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공연이 끝난 밤, 회사에 남아 배우들의 옷을 빨다가, 대기실에 남겨진 도시락의 잔반을 치우다가, 가끔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혼자 머릿속으로 알고리즘을 돌려볼 때가 있다.
지금 이 일이 내가 생각한 업무의 범위 안에 있는 일인가 → 아니다 → 그렇다면 이 일은 다른 누군가의 업무에 속한 일인가 → 아니다 → 누구의 업무에도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인가 → 그렇다 → 그럼 나구나… 다음주에는 관객 제공용 선물 450개를 포장해야 한다.

Office Worker
나는 사무직이다. 언젠가 무려 외국으로 여행을 편히 갈 수 있었던 시절, 입국신고서를 작성할 때 직업을 묻는 란에도 그렇게 적었다. ‘Office Worker’ 비록 온종일 사무실 책상에 한 번을 못 앉는 날도, 무대에 올릴 소품을 찾느라 발품을 팔고, 홍보물을 옆구리에 끼고 근처 카페와 공연장들을 돌아다니는 날들이 수두룩하지만 내 직업의 기본 설정값을 정의한다면 ‘사무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도 아니고 특수기술을 가진 전문직도 아닌, 공연 관련 일을 하는 사무직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가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정도는 그들의 예술적 언어를 이해해야 하며 “소리가 너무 드라이하지 않나요?”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질문에 “객석에서 들을 때는 잔향이 나쁘지 않습니다.” 같은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대답은 음향감독님이 해주시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어…”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공연장을 보유한 재단의 예술기획팀에서 일하게 되다 보니 알아야 하고 해야 하는 것은 더욱 많아졌다. 오랜 시간 클래식 관련 공연만 해봤었던 나는 지금의 재단에서 일하게 된 후 너무나 많은 무대 용어, 공연 용어들을 눈치껏 배우고 습득해야 했다. 지난해, 자체 제작 뮤지컬을 맡으면서는 배우 오디션부터 테크 리허설, 드레스 리허설 등 많은 인원이 촘촘하게 운영되는 과정을 0에서부터 처음 겪고 배웠다.

<2021 서현진과 함께하는 브런치 콘서트: 춤출까요?> 10월 “광기, 무섭도록 아름다운” ⓒ부평구문화재단

올해 새롭게 담당하게 된 ‘브런치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을 기본으로 하는 구성이라 조금은 익숙하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과 무용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연으로 기획하여 음악감독과 무용감독을 섭외하고 대본작가도 구했다. 공연의 회차별 주제도 정하고 사회자와 출연진도 섭외하고 홍보물도 만들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싶었는데 아뿔싸, 텅 빈 무대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사회자는 무대에 계속 앉아있을 거야? 무용 공간은 어디까지로 잡을 거야? 첫 번째 주제가 바로크라며, 그럼 바로크 느낌을 무대에 어떻게 표현할 거야?” 무대 연출자가 따로 있다면 단박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에겐 늘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로크 이미지의 작화막을 달아야 하나? 그러기엔 딱 떨어지는 이미지적 정의가 있는 건 아니잖아. 10월 공연 주제 ‘광기’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지? 무용을 위한 무대 공간은 어느 정도로 확보를 해야 할까? 연주자들 공간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잘 안 보이겠지?’ 일을 하면서 숱하게 찾아오는 이런 막막함이 무한히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때에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나의 취미생활을 해본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오해 마시라.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찰스 부코스키, 민음사)는 책 제목이다. ‘책 사기’는 나의 오랜 취미생활이다. 주로 명민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나의 두뇌 때문에 괴로워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때에 행해진다. (끝까지 다 읽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다.) 책을 사는 것으로라도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같은 말을 뱉어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내가 아직 어리숙한 담당자, 기획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늘 어렵다. 일의 범위는 너무 넓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 조금이고, 나는 늘 서투르다. 예술가가 본인의 예술을 펼쳐낼 때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그의 세계를 존중해 주어야 하고, 그 세계가 관객석과 너무 멀어질 때는 그 세계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그 간극을 좁혀줄 제안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가용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최대의 효율을 취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운영을 구상하고 실행해내야 하며, 그 실행은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와 관람하는 관객, 그리고 이 기관까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무직’이지만 그 ‘사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사무실 안에도, 밖에도 산적해 있다.

2020 부평구문화재단 제작공연 창작뮤지컬 <헛스윙밴드> ⓒ부평구문화재단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까지 하다 보면, 내 손이 닿은 영역이 많아질수록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는 것을. 지방공연을 내려가 로드뷰를 훑어가며 찾아낸 국밥집이 맛이 좋으면 그 또한 내가 뿌듯한 일이고, 내가 포장한 증정품을 들고 돌아가는 관객의 즐거운 뒷모습도 감사한 일이 된다.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기획한 공연의 객석이 채워져 나가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사실 툴툴거리는 볼멘소리들은 내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하나 더 하게 하는 노동요 같은 화력이다.
눈앞에 세 개의 공연이 연달아 줄지어 있다. 분명 수많은 상황에서 고민에 빠지고 뛰어다녀야겠지만 고민의 시간과 뛰어다닌 걸음만큼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일이고 나의 업무이다.

성채은(成采垠, Chae-eun Sung)

부평구문화재단 예술기획팀 대리. 교향악단, 클래식 공연 기획사에서 근무하다 부평구문화재단에 입사하여 마케팅팀, 기획조정팀을 거쳐 예술기획팀(당시 공연사업팀)에 근무중이다. 2020년은 코로나로 공연 계획과 취소를 반복했지만, 부평구문화재단 자체 제작공연 <헛스윙밴드>를 맡아 무사히 전 회차 공연을 마쳤다. 2021년 <헛스윙밴드>의 지방공연과 <함께하는 브런치 콘서트: 춤출까요?>를 비롯한 공연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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