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미술관 ‘부재(不在)’의 현실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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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는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운영 적자 현황과 인천광역시의 관련 채무 및 어려운 재정여건이 보도된 바 있다. 인천 출향 미술인으로서 나는 그동안 인천시가 아시안 게임을 우선순위 사업으로 진행하면서 예산상의 이유로 미술관 건립사업을 수차례 지연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문화예술진흥이 정부라든가 지자체의 정치, 경제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인천시의 시립미술관 건립향방이 향후 어떻게 될지 궁금하던 차에 문화재단으로부터 원고 요청을 받게 됐다.

타자의 시선으로 볼 때 미술관이나 문화 인프라를 통한 인천의 도시마케팅이나 브랜딩 전략은 심각한 위기적 상황이다. 10개 군·구를 가진 인구 300만의 도시로서, 국내 광역시, 특별시 가운데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다는 오명을 언제까지 부지매입의 어려움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돌릴 것인가? 그것은 오히려 문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역이나 인구의 규모뿐만 아니라 인천지역의 초중고교, 대학 수 을 감안하면 교육적인 환경에서도 너무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국내의 많은 도시들이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삶의 질의 개선과 도시마케팅으로서 미술관 건립과 국제 비엔날레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잠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인천시가 지난 십수년 동안 예산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시립미술관 건립을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전국적으로는 적지 않은 국공립미술관들이 새롭게 탄생했다. 최근 개관한 미술관만 살펴보더라도 제주도립미술관(2009)을 비롯하여 대구시립미술관(201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2013),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2013),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2014),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2015), 청주시립미술관(2016)등이 새롭게 공립미술관 대열에 합류하였다. 전남도립미술관과 울산시립미술관은 건립지를 이미 확보하고 설계 단계에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 광주,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들은 기존의 시립미술관의 운영과 더불어 차별화된 국제비엔날레를 도시마케팅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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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를 흡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시는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비엔날레를, 광주시는 시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를, 대구시는 시립미술관과 대구사진비엔날레를 특화된 문화인프라로 구축하였다. 60만의 작은 도시 경기도 안양시의 경우에는 지난 10여 년간 차별화된 격년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로 주목을 받아왔다. 미술, 조각, 건축, 디자인,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이 안양예술공원과 도심 일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축제로서 자리매김했다. 얼마 전 이필운 안양시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당장이 아니지만 미래세대의 자산이 될 것”이라며 APAP를 트리엔날레(3년제)로 바꾸는 등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시,도 단위의 많은 지자체들이 시립미술관이나 도립미술관 건립과 운영을 넘어서 국제비엔날레까지 개최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이익 보다는 도시 홍보와 문화마케팅 그리고 인적 교류와 삶의 질의 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도시들의 문화지원과 투자가 지역사회에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광주를 비롯하여, 부산, 대구, 창원 등의 국제비엔날레 역시 매칭펀드 형식으로 일정 부분 국고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화 인프라의 구축이 문화의 시대에 도시마케팅의 유용한 수단이자 지역 사회의 삶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천시를 비롯하여 지역사회에서는 민관이 협동하여 미술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라든가 건립추진위원회의 구성, 지역인사들과의 소통을 위한 토론회 등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미술관 건립이 지연되면서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들이나 시민들은 인천시에 대한 불신과 냉담함을 넘어서 체념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인구 122만의 수원시가 2015년 시립미술관을 개관한 지 8개월 만에 누적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이웃 도시 인천에 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술문화를 통한 꿈과 희망을 누가 어떻게 심어줄 것인가에 대해서 과연 지역사회가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인천은 국제적인 플랫폼으로서 인천국제공항을 배후로 두고 있으며 황해의 수많은 섬들을 연결하는 항구도시로서 지리정치학적으로 지역과 세계를 향해 열린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인천문화재단과 인천학연구원 등을 통하여 수많은 지역적 담론들이 생산되었고, 계간 <황해문화>같이 민간부분에서도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슬로건 아래 인천관련 역사와 인물에 대한 다양한 조명을 해왔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시립미술관의 건립부지 선정도 중요하지만 추후 건립될 미술관이 어떻게 차별화된 컨텐츠로 경쟁력을 확보할지, 또한 기존에 구축된 문화 인프라를 활용하여 인천아트플랫폼이나 송암미술관, 인천시립박물관 등과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 고민이 필요할 때이다.

이 준 /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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