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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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최지은(미추홀학산문화원)

몇 년 전 친구는 궁금해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 거라고?”

내가 뭐라고 답했을까. 집에 가는 내내 그 질문을 곱씹었던 것만 생각난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도 스스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공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연히 ‘공연’의 길만 걸어온 나에게 미추홀학산문화원은 ‘문화’라는 넓은 길을 안내해준 길잡이였다. 공연만이 아닌 문화의 길에 발을 내딛는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인천광역시 2021년 유휴시설 생활문화공간 지원사업 <학산시민문화마당>은 나의 첫 디딤돌이다.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 동네’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학산문화원의 공간에서 판화, 인형, 필름카메라, 그림 등 시각특화예술 수업을 진행한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 이웃과 관계 맺으며 사라져가는 우리 동네를 기록하는 이 시간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는 게 참 좋았다.

2021년 유휴시설 생활문화공간 지원사업 <학산시민문화마당>

일상에서 쉽게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를 통해 나와 이웃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다. 평소 같으면 쉽게 지나쳤을 대문이 예쁜 집, 잎이 큰 나무, 가파른 언덕, 좁지만 매력 있는 골목길 등 우리 동네를 관심의 눈으로 보니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멈춰 바라보게 된다.

그다음 디딤돌은 2021 미추홀구온마을학교 사업인 <으라차차! 수봉산탐험대>이다. 미추홀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미추홀구의 중심인 수봉산의 역사, 문화, 자연을 체험시켜주며 이 경험을 통해 우리 동네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만들어 주게끔 도와준다.

2021 미추홀구온마을학교 <으라차차! 수봉산탐험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수업을 준비하는 6명의 시민강사, 운영하는 문화원, 지원해주는 미추홀구까지 참여하는 아이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은 곳에서 힘쓰고 있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바라보자면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올라온다. 이 수업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기를,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았을 때 기억의 조각 중, 이 수업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이 디딤돌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디디고 오르내릴 수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걸음들이 헛되지 않다고 장담한다. 나 홀로 오르내리는 것이 아닌 내 앞에 걸어가고 있는 선배와 옆에서 함께 동행하는 동료와 그 뒤를 따라올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음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에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다.

어느 순간 ‘공연’에 빠져들어 이 길을 선택했고 깊은 생각 없이 걸어가니 ‘문화’에 도착했다. 나는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공연문화팀에서 지역문화팀으로 옮기게 됐다. 지역문화에 더 힘쓰라는 신의 뜻이라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미추홀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토박이로서 미추홀구를 향한 애정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는 말처럼 내 안에 피어나는 애정으로 미추홀구를 위해 일하려 한다. 물론 나의 노력이 큰 영향을 불러오긴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내다 보면 조금 늦더라도 어딘가에서는 새싹이 돋아날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몇 년 전 친구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사진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최지은(崔智恩, Choi Ji Eun)

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팀 사원
전) 한국연극협회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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