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민간 생활문화공간의 역할과 협력방안인천시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조성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임승관(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생활문화 공동체가 활성화하고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거점인 생활문화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생활문화공간은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며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낯선 사람으로 만났지만 같은 취미를 즐기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밀감을 느낀다. 반복해서 만나고 함께 경험하는 활동은 공유하는 기억이 많아지면서 상대방을 더 깊게 이해하는 근거가 되어 쌓인다.
직장인, 상인, 주부 등 다양한 개인이 선택한 이 작은 모험은 공간을 매개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든다. 구성원들에게 받는 환대와 지지, 소소한 공감과 교감은 심리적 안정감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활문화공간은 자생적인 많은 공동체가 안정적인 성장을 하는데 중요한 물적 조건이자 상징이다.
2019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 우공책방의 <우공의 시 읽기와 나무공예>(사진: 우공책방) |
인천시가 시행하는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조성 지원사업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생활문화공간이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돕는 사업이다. 지원 대상이 사적인 공간이지만 생활권 안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며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긍정적인 효과를 공적인 역할로 보는 것이다. 다른 지원사업과의 차이점은 사업 기간 중 운영 컨설팅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공간 지원을 위해 매니저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매니저는 동네 곳곳에 자생하는 꽃들로 날아가 수정을 돕는 벌처럼 개별 공간 운영자들과 만나고 애로사항 해결을 돕는다. 매년 신규 공간과 누적 공간이 늘면서 공간들 사이의 정보교류나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위한 매니저의 양적 증가와 질적 향상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자발적인 생활문화공간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만 한 가지의 제도 변화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위원들의 심사로 지원공간을 결정하는 기존 선정 방식의 변화이다. 지금까지 시 정부가 지원공고를 발표하면 지역에 많은 생활문화공간들은 개별적으로 지원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그리고 전문 심사 위원들이 모여 지원서를 근거로 지원 선정과 탈락을 정하고 예산도 조정해서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난다. 여기서 공유지는 지원 예산이다. 서로 자율적으로 협력할 수 없는 조건에서 공유지가 필요한 공간들이 갖는 합리적인 이기심이 비극의 발단이다. 한정된 예산에 대한 혜택이 제로-섬(zero_sum) 게임이라면 공간들은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나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다른 공간과 공유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공간들 사이의 정보교류나 협력 동기는 사라진다.
2020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 카페 아비앙또에서 진행한 공연 <인디 아지트>(사진: 부평구문화재단 시민기자단 5기 유영호) |
행동 경제학에서는 타자에 대한 이타적인 협력 동기를 일으키는 환경이 있다고 한다. 먼저 장기간 반복적으로 만나는 관계여야 한다. 한 번 보고 안 볼 사이라면 굳이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자주 보는 관계라도 나에게 이익이나 불이익과 같은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면 굳이 내가 손해를 감수하는 이타적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기존 공모제도의 선정 방식으로는 공간 사이의 정보교류나 협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참여형이나 협력 방식으로 바꾸면 환경은 달라진다. 새로운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심사위원 제도는 유지하되 비율을 줄여가고 공모 신청자 즉, 공유지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이 그 나머지 평가에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공정성과 담합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투표 기법들이 있어 깊이 우려할 필요는 없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이타적인 협력 동기가 생긴다. 지역사회에서 장기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참여형 지원공모 제도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올해 인천시 생활문화공간 지원은 오아시스를 포함해 유휴공간사업 등으로 관계망을 확장한다. ‘권역별 대표자회의’를 격월로 진행해 정기적인 만남을 진행한다. 개별 공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 신뢰가 깊어질 것이다. 서로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비, 프로그램을 교류하여 각 공간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지출 예산을 외부 업체가 아닌 지역 내부로 순환할 수 있다.
두 개나 세 개 구로 묶은 ‘권역별 대표자회’의 소통과 공유는 매니저들의 회의를 통해 연결되고 의견을 공유할 것이다. 또 1차 대표자 회의에서 나온 의제들은 각 공간 구성원들과 다시 공유하여 그 결과를 다음 대표자회의에 전달한다. 각 공간의 최대한 많은 구성원이 협동과 연대라는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틀이다. 눈에 보이는 꽃과 열매는 사실은 흙 속에서 박테리아로 서로 연결된 거대하고 촘촘한 네트워크의 결과인 것과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다. 특히 생활문화공간 운영자나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많은 동아리가 그랬다. 잘 나가던 공간들도 위기를 맞이하며 그동안 무관심했던 연대와 협력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정부 공간 지원금을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우리의 ‘공유지’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떠올랐다. 모든 공간이 성공해야 나에게도 이익이라는 생각과 지속할 수 있는 교류와 협동에 대한 각성은 교육이나 호소로 실현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로 형성된 비대면 시기는 새롭게 제도를 바꾸고 그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임승관(林承寬, SoungKwan Lim)
1998년부터 젊은 문화 활동가들과 인천에서 시민문화활동을 시작하였다. 2005년 회원 중심 시민문화운동인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운영 경험으로 다양한 생활문화공동체 컨설턴트와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