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보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 담당자의 회고
박유리(인천서구문화재단)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을 때 제일 처음 머리에 스친 생각은 일 년 남짓 사업을 담당한 짧은 경력으로 이런 글을 써도 될까 하는 우려였다. 풍부한 지식이나 연륜은 없지만 초보 사업담당자 시점에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는 사업 이야기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서의 청년의 참여 확대 및 권익증진을 목적으로 인천시 서구가 2018년 10월 제정한 「인천광역시 서구 청년 기본 조례」를 기반으로 삼는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재단 출범 이듬해인 2019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3년 차 사업이다. 장르 별로 특화된 타 지원사업과 다르게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수립 초기부터 장르의 구분 없이 10건 내외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어떤 범위를 청년으로 볼 것인가에 관해서는 변동이 있었다. ‘신진’ 예술가를 지원하고자 하는 기관에서는 예술활동의 건수를 척도로 삼기도 하나, 서구문화재단은 일반적 기준을 준용하여 ‘나이’를 고려한다. 2020년까지는 만 34세까지를 청년으로 인정했으나, 2021년부터 중진 예술가 지원 분야를 만들면서 청년예술가 지원범위를 확대하고자 만 39세까지로 나이 기준의 폭을 넓혔다. 각 지자체에서도 아직까지 청년의 나이는 유연한 영역이다. 나이 기준 변경으로 인해 작년까지 중진이었으나 올해는 청년으로 참여하시는 몇몇 예술가들의 내심 기뻐했던 반응이 문득 떠오른다.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청년예술가들이 새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연말까지 발표하는 데 소요되는 순수한 작품활동 및 발표 비용을 지원한다. 2020년부터 작품활동에 대한 ‘주제’를 새롭게 두었다. 사람, 장소, 자원 등 유형적 자원 및 가치, 문화, 환경, 전통 등 무형적 자원과 같은 인천 서구에 대한 주제와 도시, 여성, 다문화, 생태와 같은 지역과 연관되는 연계 키워드를 주제로 공모를 받았다. ‘주제’ 설정은 기초문화재단에서 하는 지원사업이 광역문화재단이나 정부 기관에서 하는 지원사업과 어떤 차별점을 둘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로컬리티를 재료로 하는 예술작품이 탄생하고 주 관람객인 지역의 주민들이 공감하고 그에 따른 부가적 가치 창출까지 전망하는 지역의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인 점을 고려했다. 그리고 아직은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도 꺼리지 않을 청년예술가라면 이러한 느슨한 주제 부여도 실보다는 득이 되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물적, 인적, 장소적 자원을 말할 때 존재감이 흐릿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인천 서구이기에 과연 어떤 청년예술가들이 공모에 지원할지 궁금했으나, 놀랍게도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예술적 소재를 착안했다. 선정된 청년예술가들은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10건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서구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박찬양의 단편 다큐멘터리 <대한외국인>, 불로리에 대한 설화를 재미있게 푼 이건우의 인형극 <늙지 않는 마을 불로리 이야기>, 천마산의 아기장수 설화를 각색한 지은이의 낭독극 <아기장수 백일잔치>, 서구 석남동 일대에서 사라질 오래된 보도블록에 핀 잡초에 주목한 강보라의 작업 <난초연구> 등 10건의 예술작품 모두가 인천 서구라는 로컬리티와 직간접적 연관을 통해 새롭게 창작된 작품들이다.
박가인(작가명: 동일한 오렌지), <새벽의 바람 – 합리화와 기동성> (영상, 00:07)ⓒ박가인, 인천서구문화재단 |
시각미술 작가 박가인은 1988년 인천 주안공단에 위치했던 세창물산이라는 도자기 인형을 만드는 회사에서 있었던 한 여공의 추락 사고와 이 사건을 소재로 쓴 방현석의 소설 「새벽 출정」을 미디어 작품으로 해석했다. 애초 서부여성회관에서 당시 여공들의 인터뷰, 직접 빚은 도자기 인형, 아카이브 등을 전시하려 했던 계획이 섭외와 대관부터 난항을 겪었다. 결국 기획의 방향을 수정하여 영상으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박가인 작가는 이 과정에서 최초 계획은 바뀌었지만, 오히려 영상 작업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앞으로도 지속하고 싶은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극단 배우들, <어서 와요, 이곳으로…> (코스모40, 2020.11.14.~15.)ⓒ극단 배우들, 인천서구문화재단 |
처음 지원서가 접수되었을 때에는 <아라뱃길 살인사건>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연극이었던 극단 배우들의 <어서 와요, 이곳으로…>는 지역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 생성을 우려하는 의견을 관대히 수용하여 우회적인 작품명으로 바꾸었지만, 내용의 참신함은 잃지 않았다. 배우들이 일인다역으로 여러 주민들로 시시각각 분하고 건물 전체를 활용하여 스테이지 곳곳을 마술처럼 누비면서 관람객들이 순수한 연극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끔 했다. 일회성 공연에서 끝나기에는 아까웠기에 필자도 인천 내에서 다른 공연기회를 만들어내려 노력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안타깝게도 잘 풀리지는 못했다. 10건의 예술활동에 얽힌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작품의 유통 문제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예술가들은 적절한 도움을 얻었는가, 성장했는가, 예술적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는가. 이에 대한 판단은 사업에 대한 결과로 매겨진다.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계산기를 끼고서 수혜자 수, 보도 건수 등 수치를 계산하여 그들의 일 년을 숫자로 가늠해보려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이 과연 숫자로 답해지는 종류의 것들일까. 나는 무대에서의 그들의 준비된 눈빛이 먼저 떠오른다. 전시장에서 작품 디스플레이에 뜨겁게 고민하던 열기가 더 기억이 난다. 완성된 작품에 대해 내년의 계획에 대해 소신껏 이야기하던 진심 어린 목소리가 생생하다. 청년예술가들이 작업하는 현장과 무대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직접 본 젊은 예술가들의 에너지는 숫자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제 막 시작하는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은 성패와 상관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2021년 재단은 다시 한번 예술가의 시점에 서서 고민하려 한다. 사업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으며 공익성을 검증해야 하는 재단의 담당자로 지원사업 신청과 정산의 복잡함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전부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불필요한 절차는 간소화하려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시시각각 변하던 2020년, 많은 참여 예술인들이 예술발표에 대한 준비과정과 실행 자체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하고 교육프로그램, 컨설팅 및 피드백, 통합 예술발표 축제 <서로예술페스타 SEORO ART FESTA> 등을 통해 청년예술가들을 면밀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예술가의 눈으로 서구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이점이 무엇일지 다시금 들여다보려 한다.
초보도, 청년도 언제까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예술가가 청년이라는 사회적 범주에 속해 있을 시절에 참여할 수 있는 어찌 보면 한시적 사업이다. 언젠가 한때 청년이었던 이는 충분히 성숙해지고 초보도 능숙한 경력자가 된다. 초보 사업담당자로서 함께 걸어가는 경로에서 만나는 모든 청년예술가들의 삶에 공감과 동지애를 표한다.
박유리(朴婑悧, Yuri Bak)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동대학원 예술학 석사를 졸업했다. 여러 미술관과 기관을 거쳐 현재는 인천서구문화재단에서 시각미술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브람스의 말처럼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