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알.못’ 신입 직원의 문화재단에서 살아남기
김지수(연수문화재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입사하고 처음 경험한 주간회의에서 대표이사님, 국장님, 팀장님들이 나누시는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회의 자료는 한글로 쓰여 있고,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시는데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과연 여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화예술을 알지 못하는’ 신입직원에게 입사의 기쁨은 딱 일주일이었다.
사실 문화예술 쪽에서 일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문화재단이 어떤 기관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또한 입사 전엔 그 존재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재단’에서 일한다고 하면 안정적인 근무 환경과 적은 업무량을 상상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사실 전문성을 이렇게까지 요구할 줄 몰랐다.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 행정 실무 능력. 이렇게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연수구는 내가 살아온 동네니까, 행정실무는 인근 기초재단이나 구청에 물어보며 어떻게 비벼볼 수는 있을 거 같은데, 문화예술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나에게 문화예술은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연수문화재단 기획경영팀에서 급여, 복리후생, 근태관리, 서무 등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문화재단의 경우 대부분 문화예술 관련 전공/경력자가 경영지원 업무에 보직되어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 같은 경우엔 경영학을 전공했고,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던 취준생이었다. 문화예술분야와 우리 지역에 대해 무관심해도 내가 부여받은 업무는 잘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 들어온 문화재단인데 벌써부터 고여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경영지원 업무를 하고 있지만 길게 보면 순환보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료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외딴섬은 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문화예술을 잘 몰라서 헛소리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진 않아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사실 입사를 준비하면서 지역문화재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논문과 언론, 홍보자료 등을 통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실무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특히 이쪽 업계에서만 쓰는 용어들이 분명히 있었다. 팀장님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말씀하시는 ‘전지연’을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사람 이름이 나오지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당시에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를 몰랐던 게 아니라, 업계 용어가 익숙하지 못했다. 먼저 타 문화재단을 경험한 동기들에게 업계 용어를 하나둘씩 물어가며 익히고 공부해 나가야 했다. 동기들의 도움 덕분에 요즘은 그래도 겨우 대화가 좀 통하는 거 같다.
With 연수! 자동차극장(옥련동 석산, 2020.4.25.~27.) | 2020 #플레잉연수 토요문화마당(문화공원, 2020.8.8.) |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30년 동안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해결 방법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 재단에서 하는 사업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최대한 모든 행사와 세미나, 포럼 등에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With연수! 자동차극장>, <#플레잉연수 토요문화마당> 등 평일에는 업무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서 업무 지원을 나갔고, 주말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현장을 찾아 내가 도울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보다 나의 문화예술 역량은 현저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지역 예술인들이 재단을 방문하면 누가 누구인지 두리번거리고, 어떤 축제? 어느 기관? 무슨 작품? 끊임없이 검색하고 공부해야 했다. 그래서 아르코 챔프아카데미 기초과정을 수강하기도 하고,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에서 지원하는 문화예술 관련 교육도 정말 열심히 들었다. 인천문화재단 하늬바람 프로그램도 지역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무국장님과 팀장님께서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흔쾌히 다녀오라고 허락해주셨고, 재단 직원분이 사내 게시판에 매주 업로드해준 양질의 자료를 보며 지역문화와 예술에 대한 저변을 조금씩 천천히 넓혀갔다.
여전히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올해는 큰 맘 먹고 대학원도 진학했지만, 첫술에 배부르진 못하다. 문화재단은 일 할수록 어려운 곳이다. 사실 행정업무는 연차가 쌓일수록 익숙해지는데 반해 문화예술은 해마다 트렌드가 달라지고, 유행도 쉽게 타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신생 재단답게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기획경영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도 두렵지만, 자칫 기획경영팀이라서 문화예술에 대해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두렵다. 아직 신입의 패기가 남아 있어서 의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날에는 ‘문.잘.알’(문화예술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지역에서 정말 멋지게 사업하는 사람이 되어있길 꿈꿔본다. 먼 훗날 내가 이 글을 보며 ‘이불킥’하지 않도록, 그리고 ‘문.알.못’ 신입 직원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래 다닐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글을 마친다.
글/사진 김지수(金志水, Kim Jisu)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재학
(전) 재단법인 청년재단
(현) 재단법인 연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