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덜 마른, 예술가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작품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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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덜 마른, 예술가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작품 사이에서
– 인천아트플랫폼 2016 플랫폼 오픈스튜디오 연계전시 <웻 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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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는 9월 25일(일)까지 오픈스튜디오 연계전시《웻 페인트 Wet Paint》가 진행되고 있다. 《웻 페인트 Wet Paint》는 9월 23일(금) 부터 25일(일)까지 진행될 오픈스튜디오 확장된 전시형태로 2016년 입주 작가들의 작품과정을 볼 수 있는 자리이다. 본 전시는 각 분야별 6개국 34팀(50명) 작가들이 전시, 공연, 아카이브 전시 등을 통해 소개되며, 평면, 입체, 설치, 영상 작품 40여점과 입주작가 포트폴리오가 함께 전시된다.

《웻 페인트 Wet Paint》는 일련의 창작과정 안에 발생하는 다양한 이면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전시장에는 최종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창작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창작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시도, 예술가로서의 창작의 고민들이 새로운 작품들로 재편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들은 동시대적 상황과 정치 사회적 이슈, 시대문화의 여러 편린 속에서 포착되는 발상과 영감들을 각자의 독창적인 형식과 매체들로 비춰낸다. 다양한 작품에 담긴 개별 작업의 특수성을 유지하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예술가가 각자 스스로 소화해야 하는 창작의 고통들을 한자리에 모아보는 전시’가 기획의 출발이 된다. 평소에 쉽게 공개하기 어려웠던 작품의 레퍼런스, 과정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작품을 해독하는 여러 단초들을 전시장에 배치함으로써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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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전시장으로

전시장은 하나의 작업실이 되기도 한다. 최현석 작가는 전시기간 동안 출퇴근 기록기를 설치해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작가가 직접 전시장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공개한다. 최현석은 그 동안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지필묵이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빌려 현대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작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현실에서 마주한 부조리한 사회 현상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을 묘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는 그 시점을 전환해 ‘기록화를 그리고자 하는 나’, ‘밖에서부터 바라본 관찰하고 있는 나’를 기록했다. 즉, 평소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작가 자신의 수집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작가는 스튜디오에 거주하며 먹고 자고, 생활하며 느끼고 고민하는 것들을 작업으로 그려냈다. 이런 시점의 전환은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새로운 시도임과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는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마술과 같은 하나의 장치를 마련해 두었는데, 전시장 한쪽 벽에 걸린 드라이기를 작품에 쏘여야만 숨겨진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번 작품에는 작가 일상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조 섞인 한탄,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초라한 이면을 드러내지만 자신의 민낯을 공개하는 듯한 불편함도 함께 역설하고 있다.

전시장 맞은편으로 가보자. 매주 주말 오후 1시~5시까지 서해영 작가가 <Would you be my model? in Incheon>을 진행한다. 이 작업은 2015년 호주 시드니에서부터 시작한 작업으로 거리에서 사람들의 두상조각을 만들어 주며 그들과 ‘소통’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는 다른 문화,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시간이나 기억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로 불특정 다수에 가까운 개인과 느슨한 ‘관계 맺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본인이 마주한 특정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작업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우연처럼 불거지는 화학작용을 만들어 낸다. 작업의 규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리 조각과는 조금 다른데 돈을 받지도, 만들어진 두상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도,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정해두지도 않는다. 참여하는 사람이 허락한 시간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완성된 작업은 전시장 벽에 일정기간 전시되지만, 작품은 결국 폐기되고 만다. 그리고 그들과 나눈 대화와 시간들은 영상이나 사진과 같은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 결국 작가는 인간관계의 가치 속에서 전시장 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관계 맺기’의 방법을 실험해 보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는 계속 변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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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영상작업도 있다. 보이치에흐 길비츠는 뉴욕과 바르샤바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로 환영과 실재와의 차이, 그것의 예술적 재현에 대해 탐구해 왔다. <작가의 페인팅>은 문화적 고정관념과 지역의 언어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과 장소에 작가 본인을 배치함으로써 예술의 저항의식을 실험한다.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이젤 앞에 서서 그림을 그리는 고전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재현하는 그의 작품은 예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정치, 문화적 흐름을 반영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쫓아야 하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질적인 시공간 속에 마치 환영과도 같이 자리 잡은 작가의 모습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환기시킨다. <작가의 페인팅>은 2015년도부터 진행하고 있는 작품으로 아직도 계속 작업 중이다.

김춘재의 완성된 유화작품 옆에는 사진 꼴라주가 함께 설치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 작가는 수집한 사진 자료들을 콜라주하며 화면을 재구성하는 사전 작업 방식을 공개한다.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했거나, 부분적으로만 사용된 사진들을 원래의 이미지로 출력해 있는 그대로의 풍경들을 선보이고, 그것이 콜라주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김춘재의 작품은 꿈과 상상, 현실의 파편들이 직조되면서 이상과 현실의 풍경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자연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삭막한 현실의 충돌에서 오는 불안, 의심, 호기심과 같은 내면으로의 몰입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낯선 공간을 재현하게 만든다. 마치 시간의 순서가 중첩되고 공간의 분할이 교차하는 상상의 풍경과 같은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서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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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설치 방법을 시도한 작가도 있다. 양유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그리기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본다. 두꺼운 장지가 아닌 얇은 순지를 두 장으로 겹쳐 채색한 뒤 그 뒷면과 앞면을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 작가는 직접 붓질이 닿지 않고 배어 나온 마치 상흔과 같은 그림을 통해 새로운 그리기 방법을 실험하고자 한다. 양유연은 사회 구조 안의 피동적 존재들, 소외되어 가는 소수자의 모습들에 초점을 맞춰왔다.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어둠과 상처의 키워드들은 현대인들의 감정 기저에 깔려있는 내밀한 심리적 상흔들을 상기시킨다. 이런 응축된 정서를 표현하듯 작가는 옅은 채도의 물감을 여러 겹 칠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전시장에서 다시 작업실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완성되지 않은 작업, 작품으로 실현되지 못한 작업, 작업의 과정을 드러내 보이거나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사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작업실에서 온전히 홀로 감내해야 했던 창작의 고통들이자 그 시간의 기록들이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시간과 공간을 마주할 때 우리의 기억은 특별해진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때 기존의 사유체계는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모인 예술가들 또한 낯선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며 예술로 소통하는 느슨한 예술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저마다 다르게 경험하는 시간의 다양성, 개별 작업의 입체성, 특수성 등은 다양한 예술적 층위를 이루며 서로간 창의적 시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시장에 작품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 마치 예술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처럼,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끝없이 예술을 실험하고 탐구해 나간다.

글 / 오혜미(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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