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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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공연장을 짓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면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다. 초기에는 지역주민들이 일상에서 접하지 못했던 예술 장르를 경험하고, 결혼식이나 환갑잔치처럼 생활에 필요한 문화적인 행사들을 소화할 수 있는 가변형 중극장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곧 이왕 짓는 거 천석 대극장은 되어야 않겠냐는 의견이 등장하고, 어느새 프로그램의 수준도 ‘LG아트센터’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를 따른다. 그리고 나면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지역의 오페라단이 등장해서 측무대와 플라잉타워를 갖춘 본격적인 오페라 공연장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한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오페라를 일 년에 한 편도 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불과 한 시간 거리에 훌륭한 오페라 극장이 대도시에 있는데도 ‘우리 지역 주민들도 집 앞에서 고급 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따라 이상한 큰 극장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이용하지 않는다.

공연장뿐만 아니다. 지역의 축제도, 관광 콘텐츠도, 교육 프로그램도 지역의 필요에서 논의가 시작되는 듯하지만, 곧 ‘킬러콘텐츠’를 찾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 킬러콘텐츠는 지역의 남녀노소와 다른 지역의 관광객은 물론이고 외국인 여행자까지 단칼에 베일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고 한다.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는 ‘차별성’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이러한 기획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국 서울과 유사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조금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뒤따른다.

우리는 삼선짜장이란 단어를 들으면 그냥 짜장면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보다 머릿속에 더 구체적인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지역문화기획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은 그냥 문화기획보다도 구체적이지 않다. 우리 머릿속에 지역은 너무 크고, 희미하며, 많은 욕망이 담겨있다. 삼선짜장의 시원함도, 사천짜장의 개운함도, 유니짜장의 고소함도 포기할 수 없어서, 지역문화가 ‘춘장짜장’처럼 의미 없는 단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문화기획은 그러한 짜장들의 장점을 모두 갖춘 ‘절대짜장’을 개발해서 모두가 즐겨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화기획은 왜 사람들이 이연복의 짜장보다 자신이 초등학교 때부터 먹어온 동네 짜장면을 더 맛있어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와이프의 분노게이지를 걱정하면서 먹는 당구장 짜장면을 더 즐기는지 관찰하고, 그들이 항상 먹는 짜장면을 다르게 생각해보거나,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은 사건을 디자인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문화기획은 사실 지역문화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유되며 사람은 시간과 공간상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항상 특정 지역에 존재한다. 따라서 지역문화가 아닌 문화는 존재하지 않고, 지역문화기획이 아닌 문화기획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지역’이라는 단어를 더한 ‘지역문화기획’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되려면, 머릿속의 지역이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머릿속의 지역문화기획을 인천 문화기획으로, 인천 문화기획을 동구 문화기획으로, 동구 문화기획을 금곡동 문화기획으로, 금곡동 문화기획을 배다리마을의 골목 하나, 서점 하나의 문화기획으로 좁혀나가야 한다. 동시에 300만 인천시민이 아닌 그 하나의 서점을 찾은 한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 만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생각이 이렇게 흐르다 보면 자연히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기획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다른 이의 문화를 기획한다는 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다다른다. 문화는 기획될 수 없다. 문화를 이루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기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화와 기획 사이에 생략된 단어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음과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문화(적인 문제해결 방법)기획
문화(적인 서비스) 기획
문화(예술 프로그램) 기획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지역의 구체적인 한 사람을 위해 문화적인 문제해결 방법을 기획하거나 문화적인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 지역문화기획인가?’하는 고민이다.

나는 감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300만에서 시작하는 기획보다, 한 명에서 시작하는 기획이 지역의 (차별성이 아닌) 고유성을, 고유한 가치를 더 잘 담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 오페라단의 일원으로 대극장의 건립을 주장했던 단원분도 한 명의 사람으로 만났었다면, 일곱 살 난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극장이나 다리가 불편한 노모가 자신이 부르는 가곡을 가까이 들을 수 있는 소극장을 원하지 않았을까?

 

글/ 주성진

주성진 SungJin Choo 朱成振
(주)메타기획컨설팅에서 8년간 배우고 일하며 조직을 덜 고상하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음. 이후 6년간 독립하여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스스로의 명칭을 고민하다가, 용역으로 가득한 프로필을 보며 <문화용역 주성진>으로 사업자를 등록함.

안산/ 시흥/ 익산 등 지자체의 문화전략 컨설팅, 아시아예술극장/ 부산영화의전당/ 통영국제음악당 등 공연장 운영전략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예술인파견지원사업/ 문화파출소운영지원사업 등 문화예술관련 지원사업의 프로젝트 관리를 수행하였음. 최근에는 다수의 문화기획 교육과정에 관여하며 멘토를 사칭하고 청년들에게 문화기획을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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