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그 역사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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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역 록 페스티벌의 역사는 1999년 음악 매니아들에겐 ‘슬픈 전설’로 회자되는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Triport Rock Festival)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디지, 딥 퍼플,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드림 시어터, 애쉬 등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국제 규모의 록 페스티벌이 송도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많은 음악 팬들은 인천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관측 사상 유래 없는 집중 폭우 탓에 수해 경보가 내려졌다. 결국 딥 퍼플과 드림 시어터는 전설의 ‘수중 공연’을 보여주었고, 관객들의 안전 때문에 다음날 공연은 중단되었다. 그렇게 대형 록 페스티벌에 대한 음악 팬들의 꿈은 몇 년을 더 미뤄져야 했다. 그 후 7년 만에 인천시의 행사 지원 속에서 이 페스티벌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라는 새 이름으로 송도 유원지 근방의 부지를 활용해 부활했다. 당시 같은 시기에 진행되던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과의 라인업 공유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아직 한국 팬들에게는 낯설었던 일본 록 밴드들이나 영-미, 유럽의 신진 인디 록 밴드들까지 빠르게 국내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로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비록 항상 비를 동반하는 기간이라 송도의 행사장은 진흙탕이 되기 십상이었지만, 어느덧 장화와 우비는 이 곳의 고유한 패션이 될 정도로 페스티벌 매니아들은 ‘펜타포트’라는 새로운 축제의 장에 적응해갔다. 2009년에 섭외 파트를 담당하던 기획사가 펜타포트를 떠나 새로운 록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잠시 어려움을 맞기도 했지만, 주최 측은 슬기롭게 운영 재정비에 성공했다.

2010년부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기존 구 송도 부지를 떠나 서울 지역과 더 가까워지고 잔디밭이 훨씬 많은 서구 드림파크로 장소를 옮겼다. 라인업 면에서도 헤드라이너급에서는 지명도 있는 밴드를 배치하고 가급적 국내 밴드와 아시아 밴드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더 주는 방향을 택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티켓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다. 특히 2012년에는 우천시의 불편함을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경인 아라뱃길의 터미널이 위치한 정서진 근방 쪽 부지로 옮겨 보다 쾌적한 진행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여전히 폭우가 내리는 시간은 존재했지만, 이제 펜타포트에 찾아오는 음악 팬들은 그에 대비한 모든 장비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록의 열기에 동참했다. 2013년부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했다. 2000년대 후반 송도 신도시에 새로 구축한 ‘송도달빛 축제공원’에 마련된 부지에 이 페스티벌을 진행할 수 있는 상설 대형 무대를 건설하는 등 인천시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인천 지하철과의 연계로 외곽 지역이면서도 접근성은 용이해졌고, 한국 록의 대표 아티스트를 헤드라이너로 전격 배치하는 등 날짜별 라인업에 차별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5년에는 드디어 1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올해도 착실하게 11번째 행사를 준비해가고 있다.

펜타포트가 이와 같이 1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인천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록 페스티벌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공연과 관련된 여러 문화 주체들의 적극적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여러 난관 속에서도 회를 거듭할수록 보다 깔끔한 운영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주최 측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고, 인천광역시 차원에서도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서 행사의 지속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행사가 지금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또 하나의 축은 바로 ‘관객들’이었다. 이후 생긴 다른 록 페스티벌과 달리 펜타포트는 라인업과 크게 상관없이 축제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좋아하며 즐기는 충성스런 관객들이 꽤 많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객들이 라인업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해마다 편하게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이 페스티벌이 잘 구축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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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매니아이면서 동시에 인천이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입장에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인천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행사로서 자리를 잡아 온 것에 대해 항상 뿌듯한 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인천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답게 보다 인천의 대중문화 수용자들과 더 친밀해진 행사로 폭을 넓혀가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도 펜타포트 기간을 주변으로 하여 ‘펜타포트 음악축제’라는 이름 아래 인천 시내 여러 곳에서 공연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고, 올해도 ‘사운드 바운드’ 행사의 일환으로서의 펜타포트 라이브 클럽 파티, 그리고 인천의 여러 야외 공간에서 펼쳐지는 펜타포트 딜리버리 행사가 진행되었다. 앞으로 시 문화 정책적 차원에서도 ‘펜타포트’의 이름을 좀 더 잘 활용하면서 연중 내내 대중음악과 관련된 소소한 문화 행사들이 꾸준히 진행될 수 있는 흐름을 형성하는 것은 어떨까. 인천 지역의 대표 축제가 되려면 (외지에서 참가하는 매니아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천 시민들에게 항상 곁에 있는 음악 축제로서 그 기능을 더욱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페스티벌 운영 자체도 (인천 시민들을 위한 할인도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현재의 이 안정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더욱 다양한 음악 팬들의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채로운 구성을 행사장 내․외 공간에서 펼쳐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인천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좋은 로컬 뮤지션들을 발굴해 이 기회를 통해 보다 넓은 대중에게 소개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발전하며 오랜 세월 인천과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그 위치를 지켜가기를 기원한다.

글 / 김성환(음악 저널리스트, 매거진 B.Goode/Paranoid 필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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