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속 근대 음악사를 따라가며, 합창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인천합창의 궤적>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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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개관기념 기획전 <인천합창의 궤적>은 합창음악을 공연이 아닌 역사적 관점으로 풀어낸 최초의 전시이다. 인천은 개항기 근대 문물이 유입되며, 서양음악도 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5음계의 우리 고유 전통음악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8음계의 서양음악을 접했을 때 그 충격과 새로움은 어땠을까? 선교사 아펜젤러의 찬송가 연주가 최초로 인천에 울려 퍼졌을 때를 한번 상상해 보라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인 ‘영화여학당’은 바깥출입도 어려웠던 당시 여성들에게 김영의, 김활란 같은 한국의 1세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다. 영화학당을 다녔던 여성들이 선교사의 추천으로 서울에 있는 중학과정의 이화학당에 입학하기도 하였으니 인천의 교육이 얼마나 앞섰는지 짐작이 된다. 아울러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단체인 엡웟(Epworth)청년회도 민족의식과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교육, 강연회, 음악회 등을 열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최영섭은 인천 출신이다. 그는 내리교회에서 한국 최초로 오케스트라 반주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연주한다. 이 당시 등사원지에 철필로 직접 그려 등사기로 인쇄한 악보를 사용하였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 실물자료를 볼 수 있다. 작곡가 최영섭은 인천구국학생합창단, 인천해군경비부정훈합창대의 지휘도 하면서 1963년까지 인천에서 활동한다

오늘날 인천이 ‘합창음악의 도시’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50년대부터 활동하였던 다양한 합창단에 기반한다. 1958년 창단된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졌던 ‘호산나 합창단’을 필두로 인천남성합창단, 인천여성합창단, YWCA합창단, YMCA합창단 등 합창단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남녀칠세부동석이었던 우리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 남성으로 나누어져 있던 합창단은 1968년 샤론합창단을 시작으로 로고스합창단, 인천합창단 등의 혼성합창단이 창단된다. 합창제와 음악제를 통해서 합창단들의 교류와 활동이 많아지면서 1970~1980년대에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 합창단도 합창제와 합창대회에 참여한다.

1981년 인천시립합창단이 생기고 1995년 윤학원 예술감독이 오면서 합창단의 활동범위와 레퍼토리가 다양해진다. 인천시립합창단이 재창단되며 가장 주목할 점은 전속 작곡가를 두어 창작 합창곡을 무대에 올린 점이다. 이후 합창의 “세계적, 한국적, 창의적” 목표를 둔 인천시립합창단의 행보는 한국 합창음악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ACDA (American Choral Directors Association, 미국합창이사회)에서 세계 4대 합창단으로 초청되어 연주한 것은 그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김종현 예술감독 부임 이후 합창 지휘세미나, 합창대축제 등을 통해 지역 합창단과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고 있는 인천시립합창단의 활동이 기대된다.

이번 ‘인천합창의 궤적’ 기획 전시를 통해 인천의 역사적, 음악적 가치를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인천은 서양음악에 대한 노출이 빠르고 교육과 근대화에 앞장선 도시로 신여성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개항기 때 음악가들이 유독 인천 출신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교회에서 시작된 성가대의 합창음악은 1950년대부터 일반 합창단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오늘날 인천이 합창음악의 도시로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뿌리이다.

유구한 역사를 기반한 인천합창이 앞으로 어떻게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을지 인천시립합창단을 중심으로 한 사립, 구립 합창단의 활동이 기대된다. 이번 전시가 “근대 음악의 도시”, 인천을 “현대 음악의 도시”, 인천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비와 계획의 준비로 기억되길 바란다.

 

글/ 이지영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교 학사, 동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미국 위스콘신대학 음악대학 음악학 박사( D.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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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지영 음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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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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