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소환소 스페이스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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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지인이 술 빚는 법을 배운다며 봄에는 이화주를 가을엔 연엽주를 마셔보라며 선물했다. 탁한 막걸리를 정수기를 통해 맑게 만든 듯한 이화주의 부드러움에 반했다면, 연엽주의 은은한 향과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당장이라도 술 빚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들게 했다. 배다리 전통주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알게 된 곳이 스페이스 빔이다. 2018년 사단법인 인천마을넷의 정기총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총회를 진행하는 사람이 능숙하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고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때가 민운기 이사장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해가 진 5월의 마지막 날 네비양의 안내에 따라 낯선 동구의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술을 빚는 학교, 마을공동체가 아닌 문화예술공간으로 스페이스빔에 찾아갔다. 도착했을 때 도로 양쪽으로 빼곡히 주차된 차에 가려서 유명한 ‘고뇌하는 깡통 로봇’이 보이지 않아 잘못 찾아왔나 싶어 당황했다. 밝게 비춰주는 조명도 없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반대쪽 벽이 보일 정도로 빈 공간과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듯 물건이 널려 있는 1층의 어둡고 은은한 불빛이 오히려 공간에 대한 불편함보다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서, 오히려 굳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은 나른해진 저녁의 몸이 쉴 곳을 찾은 안도감을 준 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랐다. 계단 중간쯤 나풀거리는 커튼 사이의 ‘쿵’ 글씨는 절대로 부딪히지 않을 높이의 키를 가진 사람도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들어 인사성을 발휘하게끔 했다. 키 큰 이들이 머리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걸어갈 수 없게 한 ‘쿵’ 글씨에 웃었다.

도착 후 들어서기 바빴던 1층에 비해 2층에서는 일행들이 모이길 기다리는 동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고두밥실, 주모실, 발효실, 시음실, 숙성실의 방에 붙여진 이름을 보고 ‘아 이곳이 옛날에는 양조장이었지’를 상기시켜 줬다. 인천의 길고 긴 시간을 품었던 건물들이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허물어져야 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간의 흔적들로 채워진 방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나와의 관련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91년~92년에 잠깐 머물던 인천과 2000년부터 정착해 살아온 인천살이에서는 관련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시음실에서 아주 희미하게 맡은 어떤 냄새 한 조각은 어린 시절에 우리 마을 양조장으로 데려갔다. 국민학교 때 막걸리를 받기 위해 양조장 문턱 위로 피어오른 시큰한 막걸리 냄새를 맡아가며 양은주전자를 들고 기다렸었다. 이 시큼한 냄새가 주는 익숙함과 해가 길에 늘어진 시골길을 터덜거리며 걸어가다 주전자 입구에 입을 대고 홀짝 거리는 내가 보였다. ‘아~! 우리 동네에도 양조장이 있었는데…’ 하는 기억이 갑자기 소환됐다. 좋았다. 잊고 있었는데. 더운 여름날에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한 잔씩 드리면 고맙다며 칭찬해주시던 반가운 얼굴들이 순간 휙 지나갔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동네 분들의 모습과 술을 못 드셔서 미숫가루 한 사발을 들이키시던 엄마까지. 벽에 걸린 9시 45분에 멈춰버린 시계처럼 내 마음속 깊이에서 우리 동네의 산과 밭, 또랑, 서낭당 느티나무까지 순간 내 주위에 잠깐 머물다 간 고향의 모습에 울컥해졌다.

일행과 함께 민운기 대표님께 스페이스 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묻고 이야기를 들었다. 생산형 도시를 지향하는 인천, 그중에서도 유별난 동구에서 생활형 도시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스페이스 빔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문득 철커덕 거리며 일정하게 들리는 전철의 바퀴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시계가 없던 어린 시절에 지나가는 충북선의 느린 화물 기차는 우리들의 시계였다. 기관사를 향해 우리 손목을 치면 기관사는 손가락으로 시간을 알려줬다. 기찻길은 놀이터였고 먼 학교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긴 못을 철길에 놓아뒀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납작해져서 칼 대용으로 쓰기도 하였고 기차 바퀴에 눌러 넓어지게 만든 십 원짜리 동전을 기찻길 주변에 살지 않던 옆 동네 친구에게 백 원에 팔기도 했다. 그렇게 기찻길을 우리들의 장난감을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이 스페이스 빔을 이야기할 때 대안지역문화공간이라고 하지만 내게 다가온 스페이스 빔은 잊고 있었던 기억의 소환장소가 됐다. 키 작은 어린 시절의 열등감을 유머코드로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주는 곳이 됐고, 잠깐이나마 고향마을을 다녀올 기회를 줬다. 그래서 또 가고 싶은 곳이 됐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스페이스 빔은 어떤 공간으로 다가올지를 생각했다. 어떤 특별한 기억을 심을 수 있는 곳이면 또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 전래놀이를 하는데 스페이스 빔에서 숨박꼭질이나 런닝맨 놀이로 공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 참 재밌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한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날에는 고뇌하는 깡통로봇의 배꼽을 꾸욱 누르면 사이다가 섞인 달달한 막걸리 한 잔이 나와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스페이스 빔은 어떨까 싶다.

 

김영남(金永男, Kim Young Nam), 노리데기
현)창의인성공감연구소장
현)나눔이있는교육협동조합 사무국장
나눔놀이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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