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인천을 발견하는, ‘인천의 소리’ Archive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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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자유공원에 나던 소리가 아닐까?”
“밤 10시가 되면 확성기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어. 그리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부모님이 기다리는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런 방송이 나왔던 것 같아.”

60세가 넘은 어르신(남성)들은 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셨다. 밤 10시에 자유공원 꼭대기에 있던 확성기에서 귀가를 알리던 소리. 밤새워 놀고 싶었던 청춘들을 집으로 돌이켜 세우던 이 소리를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이들을 바르게 살라며 계도하던 이 소리가, 기억 속 인천의 소리가 될 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인천 하면 떠오르는 소리가 뭘까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이런 질문을 건넨다. 지금의 소리도 좋고, 기억 속의 소리도 좋으니 인천이란 도시 공간을 가만히 생각하면, 떠오르면 바로 그 ‘소리’가 뭘까.

인천항과 연안부두의 뱃고동 소리, 1호선 열차 소리, 야구장에서 부르는 연안부두 응원 소리, 백령도의 콩돌 해변 소리, 공장의 소음, 자장면 먹는 소리 등등. 인천의 대표적인 장소 또는 이미지와 연관된 소리가 자주 나오는 대답이다. 아파트 공사현장의 ‘삽질하는 소리’. 바닷모래 채취하는 소리, 네 아버지 ‘뻘소리’, 취업 걱정 ‘한숨 소리’ 등등 현실을 비꼬는 재미있는 대답도 많았다.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인천의 소리’를 녹음해서 라디오 방송으로 들려주려 하기 때문이다. 인천이란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리와 이야기들. 이름하여 ‘인천의 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들려주려는 기획이다. 인천에 있는 자연의 소리, 문화(재), 시설물 등 의미 있는 소리를 그 스토리와 함께 들려주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MBC 최상일 PD께서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발로 만든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유사한 프로그램이다. 다만 ‘인천의 소리’는 그 소재가 ‘민요’가 아니라 ‘공간’, 즉 도시와 그 도시가 품은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인천역 뒤편, 월미도로 가는 길 만석고가 밑에서 녹음을 했다. 화물 ‘디젤’ 열차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대부분 사라진 철도 건널목의 풍경과 소리가 이곳에는 아직 남아 있다. 인천항으로 수입한 유연탄과 철강들이 이곳 축항선 선로를 통해 제천 등 지역으로 실려 나간다. 호루라기 소리와 차단기 내려가는 소리. ‘덜컹덜컹’ 낡은 디젤 기차 소리가 선명하게 살아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인천 원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리이다.

인천과 노량진. 우리나라 최초의 기차선로가 놓인 도시, 인천. 인천역 앞에는 이를 기념한 석축 기념물이 ‘소리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지금은 사라진 증기기관차와 석탄 열차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윗세대들이 이야기하던 일명 ‘꽥꽥이’ 수인선 증기기관차 소리도 그 쓸모와 함께 모두 사라졌다. 인천항 축항선 화물 열차가 아니라면 이젠 디젤 열차 소리도 여간해선 듣기가 어려워졌다.

사라진 건 소리만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기억하는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이다. 송도 조개 고개 언덕에서 수인선 꼬마열차에 뛰어오르던 무임승차의 기억. 열차 가득했던 비릿한 생선 냄새. 기차선로에 귀를 대고 언제 열차가 오나 알아맞히던 꼬마들. 선로에 올려놓던 쇠못과 짱돌. 덜컹거리는 기차에 매달려 있던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을, 모두 말줄임표 같은 밤 기차의 불빛과 함께 떠나보냈다. 이제 우리는 무소음의 조용한 세상에 진입하고 있다.

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무소음의 공간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 광고가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미 텁텁하고 숨 막히는 용각산 분말 같은 ‘무소음 도시’에 우리는 사는 것이다. 아파트에서의 삶을 생각해보자. 타인의 소리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물의 소리를 제거한다. 반려동물의 소리도 제거한다. 함께 쓰는 공간은 무소음 진공상태로 만들어 서로를 고립시킨다. 소음은 살인의 동기가 된다.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싸구려 향수와 감흥 없는 음악으로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채워 넣는 것이 이 도시의 현대적 삶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없앤 그 소리를 저급한 음질로 재연하는 세계. 이웃과는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사물인터넷, AI 기계와 이야기하는 세계. 외로운 개인의 세계.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사는 도시의 현대적 삶이다.

‘인천의 소리’ Archive Project는 사라진 소리, 사라지는 소리, 사라진 소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리 등 다양한 우리 주변의 ‘소리’를 통해 인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장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잃어버린 것은 단지 소리만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다. 경인방송 라디오(FM 90.7 MHz) <백영규의 가고싶은 마을>(오후 4시~6시) 목요일 코너 ‘인천의 소리’에서 이를 들을 수 있다. 라디오를 통해 시민들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인천의 소리를 묻고, 이를 녹음해서 퀴즈 형태로 들려주는 1시간 분량의 코너이다. 인천광역시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굿모닝 인천>의 유동현 편집장이 출연해서 소리를 통해 시시콜콜한 인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천의 골목 구석구석을 이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방송 첫 회 만에 ‘인천 골목대장’ 이란 별명이 붙었다. 첫 회(5월 3일)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디젤 화물열차 소리’에 청취자들은 뜨거웠다. 반응이 좋은 ‘소리’는 스토리를 갖추어 6월부터 연말까지 3분짜리 라디오 캠페인으로 따로 방송될 예정이다. 라디오를 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팟캐스트, Youtube 보이는 라디오 등 온라인에서 다양한 콘텐츠 방식으로 찾아갈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경인방송과 인천문화재단의 매체협력 사업으로 진행된다. 아이템 선정부터 진행까지 재단의 후원과 도움이 힘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재단을 통해 이 작업이 계속 소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UHD, 4K 등 화려한 영상 시대에 왜 하필 ‘소리’일까. 30년 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뒷북을 치는 것도 아니고, 4차 산업혁명을 코앞에 둔 이 시대에 이 아날로그적인 발상은 대체 뭘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는 이야기이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매개물은 ‘소리’이다. 인간과 기계는 자판과 스크린 터치를 넘어 이제 ‘소리’로 소통한다. 개별 음성을 인식하고 음성으로 답해주는 AI 음성비서, 사물인터넷이 익숙한 전자제품으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당연히 ‘소리’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듯 요즘 <숲속의 작은집>(tvN), <우주를 줄게>(채널A) 등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ASMR 콘텐츠가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은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하여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주변의 소소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유튜브 등에서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에 ‘온기’가 있듯이, 소리에는 따뜻함이 있다. 이것이 올드 매체 라디오의 여전한 매력이자, 소리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소리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이 같은 체온과 온기이다.

기술적으로는 우리가 채집한 소리 가운에 공간감이 필요한 사운드는 입체음향으로 녹음-믹싱하여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할 계획이다. 입체음향은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세계적으로 돌비의 Dolby Atmos와DTX의 Headphone X 등이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기업 소닉티어(Sonicteer)가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이영애처럼 나와 나의 동료 ‘유지방’ 그리고 ‘이담에’ 작가는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작정이다. 물론 우리는 ‘이영애’가 아니며 ‘유지태’도 아니고 게다가 라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으로 인천 시내 어딘가에서 통통하거나 뚱뚱한 ‘유지방’ 가득한 두 사람이 녹음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만난다면, ‘내가 생각하는 인천의 소리는 이것이다’라고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 프로젝트에 ‘아카이브’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2차, 3차 콘텐츠를 위해 소리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려 하기 때문이다. ‘소리’와 결합한 도시 공간 전시, 음반 작업, 다큐멘터리 등으로 이어가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이 지면을 통해 뜻있는 곳의 후원과 협찬을 기대한다.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한다. 우리는 시끄럽게 태어나 침묵으로 생을 마감한다. 소리가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인천이란 도시의 소리. 함께 듣고 싶은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이 ‘인천의 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이다.

 

글/사진 안병진(安柄鎭, Ahn Byung Jin)

1976년 인천 출생.
경인방송 PD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항구,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2013), [다시 부르는 인천의 노래](2013)
[아시아의 음악을 찾아서](2014), [소리로 떠나는 인천 섬 여행](2017),
[행복한10시, 이용입니다](2017), [백영규의 가고싶은 마을](2018) 등 연출.
[Sound of Incheon](2017), [기타킹](2012) 등 앨범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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