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서울시는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을 발표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서울시 문화도시기본조례에 근거한 법정계획이며, 기존 <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에 이어 향후 서울시 문화정책의 핵심적인 방향과 사업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시민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문화도시’라는 슬로건과 함께 ‘개인(문화주권), 공동체(문화공생), 지역(문화재생), 도시(문화창조)’의 4개 영역과 ‘행정’(문화협치)을 횡단하는 문화의제 통합형 계획구조를 통해 10대 추진과제와 25개 세부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13년 문화연대를 비롯하여 시민사회, 문화예술생태계의 “문화적 가치에 기반하여, 문화권의 관점에서, 시민 주도로 서울의 중장기 문화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는 비판과 제안에서 시작된 이번 계획은, 3년이 넘는 시간과 46명의 전문가 계획위원 그리고 수많은 의견수렴 및 토론 과정을 거쳐 수립되었다. 물론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서울시라는 제도와 행정의 구조 안에서 합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이어야 한다는 점, 계획 수립 과정의 시간과 참여 범위가 수용할 수 있는 물리적 제약 등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는 계획이다. 하지만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서울시를 비롯하여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해 온 지난 관성들에 대한 성찰,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이후 새롭게 요구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새로운 문화도시기본계획 수립 과정에 있어 참고할 만한 계획이다.
먼저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의 미덕은 도시 기반 문화계획 수립 과정에 있어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번 계획 수립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서울의 중장기 계획 수립의 원칙으로 ‘문화적 시민권에 기초한 시민문화계획’, ‘문화의 사회적 가치 확대를 위한 통섭적 문화계획’, ‘문화행정 혁신을 위한 문화거버넌스계획’을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는 첫 번째 추진과제를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선언적 권리에서 실질적인 권리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시간과 과정 그리고 협치(거버넌스)가 있는 계획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서울시와 민간 전문가들은 이번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 ‘계획수립 준비 TFT’ 구성 및 운영에서 시작하여 ‘정책숙의’, ‘서울문화계획위원회’, ‘전문가 및 현장 라운드테이블’, ‘시민의견 수렴 프로세스’, ‘분야별, 의제별 계획 검토 회의’ 등의 협치 과정을 경유했다. 사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지나치게 다양한 의견수렴이 진행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발표를 마친 지금 이 순간에도 계획 수립 과정에 대한 현장의 의견수렴과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다. 물론 시간이 많다고 충분한 준비 과정과 깊이 있는 협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 도시의 문화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가와 현장 그리고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아무리 적극적이어도 절대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기존의 행정 및 분야별 칸막이를 횡단하는 문화의제 통합형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담았다.
이를 위해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개인, 공동체, 지역, 도시’라는 도시 생태계의 층위별로 계획 구조를 설계하였고, 그 구조 내에 ‘문화주권, 문화공생, 문화재생, 문화창조’라는 가치 체계를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서울시를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기존 문화계획들이 도시의 삶에 기반한 협력체계를 설계하기보다는 중앙정부 문화행정의 전달체계를 기계적으로 반복해왔던 것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앞으로 기획될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기획들은 기존처럼 중앙정부 문화행정의 지원사업과 예산집행 전달체계 내에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해당 도시의 객관적 특성과 지역화(지역분권) 전략의 토대 위에서 도시의 문화가치와 시민의 문화권리 확대를 위한 과정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등이 시행되면서, 문화정책을 둘러싼 제도 정비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이 합리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성숙해졌다는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시민사회와 문화예술 현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노력했던 법제도들이 형식적으로 제도화되고 무기력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도시계획 수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사업들은 비대해졌으나 정작 대부분의 문화계획들은 아이디어 중심의 이벤트 사업에 집착하거나 문화의 옷을 입은 개발 계획을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의 행정 관료들과 전문가들의 손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들은 대부분 집행은 고사하고 세부 실행계획조차 수립해보지도 못한 채 비명횡사하기 일쑤다.
이제는 새로운 사회변화에 맞게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계획 수립 목표와 과정 역시 변화해야 한다. 아니, 계획 수립의 과정 자체가 문화행정 혁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아무런 변화를 원하지 않는 행정 관료들과 연구용역 프로젝트에 포획된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한 계획 수립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더 많은 현장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협치로서의 계획, 실질적으로 실현되어 도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계획, 문화행정을 넘어 도시 전체로 문화의 가치와 권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문화적 계획들이 필요한 때다.
이원재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서울시 문화계획수립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