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황미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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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 문화전도사 황미혜씨

대개 인천을 문화 불모지로 평가하는 이들은 제대로 된 국립 문화시설이 없다거나 국보나 보물, 유적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곤 한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인천에는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인 강화도가 있고, 개항장 근대거리도 있다. 백령도·대청도의 기암괴석은 10억 년 세월의 힘이 만들어 놓은 천연의 문화재다. 우리 주변 곳곳이 그야말로 ‘문화투성이’였던 셈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답사여행의 격언처럼 인천의 역사문화를 알려고 노력하고, 아는 만큼 찾아다니며 인천을 소개하는 문화 전도사 역시 우리 주변에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문해교실 강사이기도 한 인천시민 황미혜(55)씨의 이야기다.

황미혜씨는 인천문화통신 3.0 인터뷰에서 “자유공원을 한번 가더라도 그 장소에 담긴 역사를 알고 가면 남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어요”라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1965년 인천에서 태어난 황미혜씨는 결혼과 출산 이후 마흔이 되기까지 그저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소위 말하는 ‘문화생활’이라곤 백화점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다.

이런 황씨가 15년 전 무언가 해보자며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인천시립박물관이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평소 관심이 있던 박물관 해설사에 도전하기로 하고, 옥련동에 있는 인천시립박물관의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박물관의 유물을 관람객에게 설명하고, 인천의 역사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진 않지만, 박물관 몇 층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눈감고도 알아맞힐 정도로 박물관의 삶의 일부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할 때는 그렇게 싫었는데 나이가 먹고 나니까 문득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화에 관심이 많아 박물관 해설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책도 더 찾아보고, 공부하다 보니 한발 깊숙이 들어가게 됐어요.”

박물관에서 해설사를 하면서 인천의 숨은 이야기들을 많이 알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던 장소들에 역사가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인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인천의 숨은 명소와 유적지, 문화시설들을 다니며 책으로 배운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보통 인천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인천국제공항을 떠올리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그냥 어디든 바다가 다 보이는 줄 알 정도로 인천을 몰라요. 절대로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인터넷에 소개된 송도국제도시나 영종도의 ‘핫플레이스’만 각인되는 게 싫었어요.”

황씨는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면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어디론가 떠났다. 사라져 가는 인천의 염전을 찾아다녔고, 각 군·구마다 있는 오래된 나무를 찾았다. 혼자 갈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딸이나 친구, 지인들을 꼭 함께 데려갔다. 사전에 파악해둔 이야깃거리를 퀴즈로 만들어 이벤트를 하면 재미도 있고, 교훈도 얻는 일석이조의 여행 프로그램을 직접 짰다.

“하나를 알게 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가보고 싶은 장소가 생기더라고요. 예전엔 누군가를 따라만 다녔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이끌고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하는 것처럼 신나게 다녔어요. 원인재의 인주 이씨 이야기, 경서동의 녹청자 이야기, 학익동의 학산서원, 부평의 미군기지 이야기, 인천항의 갑문 이야기를 쫓다 보면 인천 전체가 놀이터가 됐어요.”

황씨는 뭐니 뭐니 해도 인천의 자랑은 강화도라고 했다. 특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강화도 섬 둘레에 조성된 해양관방유적은 인천시민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유적지라고 소개했다. 고려 강도시기의 몽골의 침략에 맞섰던 유적부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방어 유적까지 둘러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통째로 만나는 듯 했다.

황씨가 추천하는 인천의 숨은 명소는 조계지 계단이다. 개항기 각국 외국인들은 인천항 근처에 구역을 나눠 거주했는데 이를 조계지라고 했다. 인천의 개항장 거리는 조계지 계단을 기준으로 중국과 일본 거주지로 나뉘었다. 지금의 차이나타운과 일본풍 건물이 즐비한 중구청 일대는 바로 조계지 계단을 중심으로 무 자르듯 구분된다.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조계지 계단 꼭대기에서 감상하는 낙조가 일품이란다. 이밖에 백령도, 이작도, 영흥도 등 인천 섬의 자연 풍광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라고 했다.

황씨는 평일에는 성인문해교실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어렵던 시절 한글도 제때 배우지 못했던 어르신들에게 뒤늦게 만학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는 보람된 일이다. 한국문해교육협회 소속으로 노인복지관이나 평생학습관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문해교실을 찾아 오는 70~80대 어르신들은 어렸을 때 육성회비나 등록금 문제로 학교를 못간 분들도 있고, 경제적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한 경우가 많았어요. 자녀들의 소개로 처음에 글만 배우러 찾아왔다가 나중에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신 분들도 있습니다.”

황씨는 문해교실이 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치유까지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배움의 한을 달래기 위한 공부 그 자체가 상처치유의 기능을 한다는 얘기다.

“요즘에는 아파트 이름도 영어가 많이 들어가서 주소를 알아도 찾아가기 힘들잖아요. 예를 들어 I-PARK라는 아파트를 찾아가려면 알파벳을 알아야 하는데 어르신들은 이런 생활 곳곳에서 못 배운 설움을 많이 느끼셨더라고요. 그래서 받아쓰기만 하고 맞춤법 배우는 게 다가 아니라 글을 배움으로써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의 교과서는 때론 광고지가 되기도 하고, 트로트 노래 가사가 되기도 한다. 신문과 잡지를 보면서 시사와 상식,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손주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수업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싶은데 맞춤법이 틀릴까 걱정하는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요즘 애들이 더 맞춤법, 띄어쓰기를 안 지킨다며 부담 갖지 말라고 격려해주기도 해요. 운전학원에 가서 면허증도 따고, 학력 인정 중고등학교에 진학해 꿈을 키워나가시는 것을 보면서 내가 오히려 힘이 되기도 합니다.”

생활형 문화인으로서 황씨는 인천문화재단을 비롯한 문화기관이 인천시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 정보를 홍보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또 지역별로 차이가 큰 문화 프로그램 정보력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문화재단이나 아트플랫폼, 근대문학관의 경우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있기는 한데 꼭 해당 시설 홈페이지에 들어가야지만 확인을 할 수 있어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문화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역별로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연수구 같은 경우는 박물관 등이 있어 길거리 현수막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구도심인 동구에 가보면 그런 문화 프로그램 홍보 배너는 찾기 어려웠어요. 모든 인천시민에게 문화 혜택이 골고루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씨는 문화는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즐기는 것도 좋지만, 서로 알려주고 관심이 있는 것을 공유하다 보면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고 했다.

황씨는 “활동영역을 일부러 넓히기 보다는 그냥 여건이 되는대로 즐겁게 찾아다니고, 보고, 만나면서 사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는 어디 좋은 대학, 무슨 과를 졸업해서 뭘 하면서 사는 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문화 생활을 잘 즐길 줄 알며 사는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민재(경인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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