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감염병 사이: 온택트 시대, 콘택트 미술관의 과제
공주형(한신대학교 교수/미술평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과 함께 국내외 미술관 또한 보건 위기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감염 확산 방지 차원에서 90%에 달하는 전 세계 미술관이 봉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몇몇 미술관은 발 빠르게 대처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 3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미술관에 서(書): 한국 근현대 서예(5.6~8.23)》를 전시 예정 기간 보다 미리 사전 온라인 오프닝과 무관객 전시를 진행했고, 지난 4월에는 미국 게티미술관도 구축된 온라인 사이트를 활용해 ‘명화 패러디 온라인 챌린지’를 실시하며 관객과의 대안적 소통을 시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유튜브 채널에 전시 주요 출품작과 기획의도가 담긴 90분 분량 오프닝 프로그램을 내보냈고, 게티미술관이 제안한 “가장 좋아하는 명화 한 점과 집에 있는 세 가지 아이템을 결합한 창의적 결과물”이 인스타그램 챌린지 해시태그를 달고 빠르게 공유되는 동안 위기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를 패러디한 게티미술관 온라인 챌린지 결과물/출처: 게티미술관 트위터 캡처 |
감염병 종식에 관한 조심스러운 기대가 깃들었던 ‘코로나 시대’라는 표현은 절망적 미래 전망이 담긴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수정되었고, 미술관의 앞날에 관한 암울한 예측도 쏟아져나왔다. “전 세계의 박물관과 미술관 13%가 휴관 이후 재개관이 아닌 영구 폐관될 수 있으며, 그 수치는 30%로 늘어날 수 있다.” 지난 5월 세계 박물관의 날에 맞추어 유네스코(UNESCO)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우울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지난 8월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직원 353명의 감원을 결정하면서 미술관의 재정 위기에 따른 부서 통폐합과 사업 축소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에 장기 휴관 중인 국내 미술관은 재개관 이후 운영 변수를 고려하며 대응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 문화원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전시 투어’ 프로그램 공유를 시작했고,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은 한네프켄 재단과의 협력 전시 《파도가 지나간 자리(9.3~11.1)》 온라인 관람 서비스 제공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미술관은 기획 전시 《새로운 연대(6.16~9.13)》에 참여한 지역 청년 미술가 12인의 영상을 제작해 온라인에 공유를 마쳤고, 부산시립미술관도 자체 전시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0-낯선 곳에 선(7.17~10.4)》과 연계한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했다. 이응노미술관은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 공간을 활용한 비대면 전시 개관을 앞두고 있고, 장욱진양주시립미술관은 오는 10월까지 언택트 웹툰 연재를 결정했다.
미술과 감염병 사이 미술관의 대응 방식은 콘텐츠의 디지털화, 언택트 뷰잉룸 마련, 전시와 교육을 포함해 랜선 프로그램의 확장, 홈메이드아트와 아트딜리버리 서비스 제공 등 온라인 미술관 구축과 운영을 위한 태세 전환에 들어간 듯 보인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에 따라 미술관 입장객 숫자가 홈페이지 접속률로 대체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과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찾아가는 미술관의 상상과 실천은 현실적이고,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련의 시도나 대응이 ‘현장성’과 ‘대면성‘을 근간으로 고도의 예술적 사유의 경험적 장소로 존재했던 미술관 본연의 역할을 대체할 지속 가능한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소위 “뮤제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마련되는 미술관의 자구책이 “여가와 오락을 위한 포퓰리즘의 사원”으로 전락했다고 클레어 비숍이 『래디컬 미술관』에서 지적했던 신자유주의 시대 미술관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도 염려스럽다.
QR코드를 이용한 전자출입명부방역 시스템으로 미술관 방문자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미술관은 미술과 마스크를 쓴 관객의 대면 가능성을 폭넓게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그간 숱하게 요청되었던 시대의 가치와 맥락에 부합하는 미술관의 역할이라는 해묵은 질문에 대한 고민을 유보해서도 안 된다. 감염병으로 인한 위기가 전면화된 미술계 일각에서는 물리적 활동의 제한과 함께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이 축소된 지금이야말로 빈약한 지역 미술사 연구와 기록물 정리 그리고 연계 전시에 집중할 적기라는 의견이 나온다. 세계화라는 환상에 밀려 충분하게 관심 두지 못했던 복수의 지역성을 새롭게 읽고, 쓰고, 공유할 값진 기회라는 목소리도 있다. 멀리서 찾아올 불특정 다수의 관광객이 아닌 미술관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미술관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을 위한 오디언스 스터디를 본격화할 단계라는 입장도 있다.
디지털로 전환된 미술관 콘텐츠와 모니터 너머 관객의 대면을 온라인을 통해 시도하는 온택트 시대, 자아와 타자 그리고 세계와 접촉하는 온전한 미학적 성찰의 장소이었던 미술관은 새로움의 모색과 더불어 재개관 후 재작동할 미술관 본연의 역할에 관한 전면 재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공주형(孔周馨, Gong Juhyung)
예술학을 공부했다.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미술평론)를 통해 등단해 글을 써왔고, 학고재 갤러리에서 10년 넘게 전시를 기획했다. 2009년 인천아트플랫폼에 연구자로 입주하면서 인천 문화 활성화의 거점으로서 문화기반 시설의 역할과 인천화단 형성기 미술의 상황에 새롭게 관심을 두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과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일상생활, 도시 공간, 문제적 사회에서 미술의 사용과 의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