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근 도시와 지방 정책의 여러 쟁점 중에서도 특히 ‘인구 감소’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실 겁니다. ‘이촌향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의 인구 유출은 ‘지방 소멸’을 염려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증가를 위해 아주 다양하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 감소 추세는 쉽게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방 중소도시의 풍경은 흔히 잘 변하지 않습니다. ‘시내’의 오래된 건물과 가게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터미널이나 역의 모습도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어디 한 군데에서 크게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이 벌어지는 일도 흔치 않습니다.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인천은 오히려 최근 들어 많은 곳이 변모했습니다. 예전 모습을 간직한 원도심도 있지만 지난 10년간의 인천은 다른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달라졌습니다. 서구와 남동구에 비해 비교적 덜 개발되었던 지역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경제자유구역 사업으로 바다는 인천을 대표하는 스카이라인의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은 꾸준히 확장되어 제2터미널이 문을 열었고, 영종도 곳곳은 공항 배후 도시로 변화하였습니다. 원도심은 80년대에 대규모로 지어졌던 주공아파트가 상당수 재건축되었고, 개화기의 오랜 역사가 있는 곳들은 그때 기억을 되살리는 공간들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패션이나 음식, 인테리어, TV 프로그램처럼 도시에도 어떤 트렌드가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가 지속적으로 변모하는 것, 다시 말하면 도시 개발이나 재개발의 결과는 과거나 지금이나 매번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계획 당시 도시 계획은 항상 더욱 나은 방향과 훨씬 좋은 미래를 위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면에서 인천은 도시계획의 백화점 같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70년대 택지개발 공간과 8-90년대 대규모 아파트 건설 공간,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민간 주도의 국제도시 공간, 최근 근대 유산 중심의 도시재생 공간을 한 도시 안에서 모두 찾을 수 있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기획되어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은 도시계획 트렌드의 변화 관점에서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에 이르러 우리는 도시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집이 지어지는지에 관심 두기보다 외국 기업의 투자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랜드마크 건축물이 언제쯤 지어지는지, 새로운 관광지 개발은 언제 이루어지는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 목표는 국가 내부에서 필요한 주택공급을 넘어서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와 사람들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1990년대, 국제도시와 경제자유구역 계획의 초석이 되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부합되는 도시를 만드는 송도정보화신도시계획은 국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인천이 바라는 도시는 세계 수준의 정치·경제적 네트워크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세계 도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외국인과 외국 기업이 인천에 머무르길 바랐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천은 공간적으로 다른 세계 도시와 유사한 모습이 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른바 ‘참조도시 전략’입니다.
송도국제도시 마스터플랜은 참조도시 전략 안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의 공간 구조를 도입하는 것부터 주요 대도시의 스카이라인, 건축물의 상징적 형태, 공간감 등을 유사하게 하기 위해 블록의 크기나 특징적인 공간들을 벤치마킹하기까지 많은 부분을 참조하였습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도시 공간들을 주로 참조하였습니다. 이를테면 공간구조에서는 비엔나의 방사상 구획과 파리의 주요 대로들과 런던의 도시 내 다양한 요소가 뒤섞인 것을 참조하고, 공간감에서는 필라델피아의 블록 사이즈와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베니스의 대운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마 몇몇 떠오르는 공간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센트럴파크 바로 옆의 상징적인 초고층 빌딩은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이지만 묘하게 새로 재건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연상시킵니다.
<위: 암스테르담의 운하(좌)와 송도 커넬워크(우). 아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프리덤타워)(좌)와 송도 동북아트레이드센터(우).> |
이러한 전략은 실제 외자 유치와 개발 계획에 이르러 더욱 심화 됩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참조한 도심 공원은 그대로 센트럴 파크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가 디자인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골프장도 그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작은 운하들을 낀 공간은 송도 한 부분의 쇼핑몰이 되었습니다. 개발이 진행되다가 안타깝게 무산된 여러 프로젝트들도 이름에서부터 다른 나라의 무언가를 이식해오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파라마운트 무비 테마파크’ ‘밀라노 디자인시티’ ‘영종 브로드웨이’. 지금은 미단시티로 이름이 변경된 영종도 운북복합레저단지 개발 사업에 최초로 당선된 컨소시엄이 제시한 네이밍은 신향(新香)이었습니다. 이름에서부터 홍콩(香港)을 벤치마킹하고, 홍콩과 같은 공간이 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계획들이 국제도시의 구석구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어떤 계획은 예정보다 느리고 달라지더라도 조금씩 진전되고 있지만, 많은 계획들이 무산되거나 기약을 잃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될 것 같았던 100층이 넘는 두 초고층 빌딩 계획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자리 잡았던 공간들은 도로로 블록만 조성된 채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운북 복합레저단지(현 미단시티) 2006년 우선협상대상 컨소시엄의 계획조감도>
세계적 트렌드에 부합하는 도시가 되기 위해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것은 데이비드 하비의 표현을 원용하면 ‘도시는 기업 자본과 개발업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적 중심 도시가 되기 위해 인천의 국제도시는 기업이 개발하고 기업이 투자해야 하며, 좋은 제안서와 뛰어난 추진력을 가진 디벨로퍼가 필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은 다른 세계도시와 비슷하게 금융산업과 생산자 서비스업처럼 당시에 가장 고부가가치 산업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넓은 땅에 ‘국제업무지역’의 이름을 붙여 두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이 오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중에 많은 땅은 여전히 비어있거나 오피스텔이 되었거나 대형 쇼핑몰이 될 예정입니다. 다국적 기업이 어떤 지역에 새로 자리를 잡기 위해 고려하는 많은 요소는 어쩌면 한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만족시키기엔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천의 국제도시는 해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시도했고 어렵지만 여전히 시도하고 있지요.
많은 계획이 부침을 겪는 것을 계획의 실패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모든 도시 계획은 많은 계획가와 학자와 행정가와 시민이 최선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애쓴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모든 변화의 요소와 가능성을 모조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계획은 계획이 길수록 더 많은 수정이 꾸준히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계획의 진행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 또한 의미 있고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심지어는 도시계획에서 마스터플랜의 불가능을 인정하고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며 전진하는 점진주의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여 오늘날 거의 모든 대규모 개발은 마스터플랜을 세우면서도 단계적 개발계획을 수립합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최종적인 마스터플랜을 달성하기 위해 목표들이 단계적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득 채워진 주거단지와 아직 더 적합한 사람과 기업을 기다리는 업무지역을 보며, 어쩌면 마스터플랜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가 아니라 정말 ‘어떤 땅의 쓰임새는 도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5년이나 10년 후에 결정하겠다’는 유보적인 태도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8년에 예측하는 2020년과 1995년에 예측하는 2020년의 간극은 너무나 넓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굴뚝 산업’으로 불리던 제조업이 오늘날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과 결합해서 ‘4차 산업’으로 부각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글,사진 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샤론 주킨(2015), 무방비 도시, 국토연구원
게오르그 짐멜(2005),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새 물결
데이비드 하비(2005),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문화과학사
SoA(2016), “송도신도시: New City for Non Place on the New Place”, 확장도시 인천. 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