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퀄 : 인사동, 홍대, 문래동 그리고 둔촌동
예술가에게 창작과 기획매개를 위한 공간과 장소는 예술 활동의 맥락과 확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필자 역시 15여년간 활동해오면서 지향하는 예술의 의미와 별개로 공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0년대 전후, 대안공간은 젊은 예술가들과 다양한 담론들이 활발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당시 일했던 대안공간 풀은 인사동1)에 있었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인상하면서 갑작스레 2004년 겨울, 구기동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접근성이 낮은 장소로 이전하자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미술계 관람객 역시 급감했다.
2007년부터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홍대 상수동 근처 반지하 작업실을 구했다. 다원예술매개공간, 쌈지스페이스, 프린지페스티벌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작업은 즐거웠지만 2년 후 문래동으로 옮겼고 그나마도 여러 사정으로 접어야 했다. 서울-경기-인천을 다니며 수도권 큐레이터로 활동하다 몇 년간 일했던 미술관 학예실장을 그만두고, 서울 강동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 낡은 상가 한 켠에 사무실을 마련, 거주 지역에서의 활동을 모색해보았다. 하지만 서울시 도시재생 시범사업과 사회적 경제의 지역공동체 문화사업에서 시각예술 기획자가 연대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디 오리지널 : 신생공간? 임시공간!
앞으로 시각예술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던 중 올해 3월 인천아트플랫폼에 비평 연구 분야로 입주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인천에서 살았으니 꽤 많은 추억이 있긴 하지만, 입주 기획자로서 다시 찾은 신포동은 나만큼이나 달라져 있었다. 하고 싶던 지역 시각예술 리서치와 함께 임장2)을 시작했다. 아침, 점심, 오후, 저녁, 평일 그리고 주말까지 가능한 시간 내내 동네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동네 분위기, 가게와 공간들, 사람들을 살피고 다녔다. 어차피 인천아트플랫폼 입주기간도 1년밖에 되지 않으니, 기획자로서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을 인천에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을 타진해보려는 생각이었다.
신포동 구역이 2010년 개항장 문화지구로 선정되고, 인천문화재단 이전과 인천아트플랫폼 설립 등으로 문화지구쪽이 활성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지난 시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것일 뿐 현장 활동을 하는 기획자에게 매력적이기까지 한 동네는 아니었다. 유동 인구가 너무 적고 한정적이었으며, 네트워크를 맺을 만한 작가들의 작업실이나 기획매개자들의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곳저곳 알아보다 15평 내외 1층 월세가 100만 원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 차라리 대출을 받아 2층 건물을 매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마다 매물을 공유하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았고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치로 매물이 들어가기 일쑤였다. 용케 나온 매물은 대지 22평 기준에 1억 7천만 원. 집주인은 협상을 전혀 허락하지 않아 불발되고 일주일 뒤 그 근처 집이 비슷한 평형에 2억에 나왔다. 매도인들은 급할 게 없다는 식이라 가격 협상은 어려웠다. 주민들은 건물을 매입해 문화시설로 리모델링할 경우, 구청에서 최대 3천만원까지 지원해준다는 사실3)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매매 호가에는 그 지원금까지 반영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출을 받는다 해도 비영리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수익률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마음이 급해지면서 임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분명 동네에 빈 공간이 넘쳐나는데, 나중에 매매를 위해 임대를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몇 건은 미술 관련 전시장과 사무실로 사용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게 인천을 너무 얕보았다고 농담을 했고, 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당하기 전에 들어오지도 못하겠다”며 쓰게 웃었다. 중국 관광객, 내항 개발, 수인선 등의 경제적 조건에 의한 거품과 가수요만 있을 뿐 과연 이 지역이 시각예술의 창작과 기획매개 활동에 적절한가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다.
스쿼팅이라도 해야 하나 싶던 어느 금요일 오전, 중개사에서 임대 매물이 나왔다고 하여 오후에 가 보았다. 4월에 있었던 지방선거 사무실로 쓰였던 공간엔 홍보명함이 바닥에 쌓여있었다. 이미 임대로 마음을 굳힌 상태라 다음 주 바로 계약을 하고 9월 1일 이사를 했다. 계약을 앞두고 중구청 문화시설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는 문화지구 내 문화시설 지도를 한 장 주면서, 아쉽게도 아직 임대인을 위한 지원은 3%의 대출밖엔 없다고 했다. 요즘 은행대출금리가 2% 후반이라는 걸 안다면, 형식적인 지원이었다. 건물주가 공공 지원을 받아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그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과연 예술가들이 작업실과 활동 공간을 위해 건물을 매입할 수 있을 정도면 굳이 이곳에서 해야 할 동기부여가 있을 만큼 매력적일까? 창작이나 활동 공간으로 활용할 때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관광지나 상업지구로서의 카페나 음식점만 가득한 문화지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단적으로 쫓겨날 예술가가 없는 상황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논의가 어쩌면 소상공인이나 일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스핀오프, 리부트 혹은 시퀄
임시공간은 2016년 9월 1일부터 2018년 8월 31일까지 계약했다. 시설 투자도 최소화했고 주변에는 딱 2년만 할 것이라 공언하고 다닌다. 시한부 삶 같지만, 실은 이 공간을 자본과 제도와 건강한 긴장 관계를 가진 시각예술의 상상과 실천을 위한 매개 변수로 위치지으려 한다. 임시공간의 아이디어가 프로그래밍 언어인 C++ 의 imsi [ ]에서 따온 이유도 비슷하다. 우리는 2년 동안 우리가 가능한 상상과 실천을 시도해 볼 것이고 그 이후 미술관, 갤러리, 회사, 사무소, 연구소, 도서관, 레지던시, 출판사 혹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과 변종할 수도 있다. 또 아니면 말고.
1)인사동은 2002년 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2)여기서 임장은 부동산 임장을 뜻하는데, 장소에 임한다는 의미로 현장 답사로 해석할 수 있다.
3)최근 중구청의 지원은 7000만원까지 상향되어 공고 중이다.
글/ 채은영(임시공간 디렉터, 기획자,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