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에 시작된 코로나가 이제 해를 넘기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 중이지만 공동체가 집단면역을 얻기에는 갈 길이 멀다. 인천문화통신은 올 첫 번째 기획으로 ‘코로나’를 내세웠다. 지루한 싸움이지만 절대 지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코로나와 관련한 예술현장의 목소리를 듣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기획은 작년 인천문화재단이 발간한 코로나19를 감각하는 사유들의 연속기획이기도 하다.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청년 시각예술가와 예술 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이후 인천시민들의 문화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보는 글도 실었다.
언택트 시대의 공연예술, 어떻게 살릴 것인가
팬데믹 아래 생활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공연예술계는 참담한 지경이었고, 지금도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이 충격이 시작되었을 때, 잠시만 참고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자던 이도 있었고, 발 빠르게 언택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도 있었지만, 어느새 지금의 일상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공연예술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이 계속된다.
공연예술계의 고민과 대책은 크게 두 가지의 갈래라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공연예술계의 특성상 현장성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인내하면서 공연예술 본연의 특질을 잃지 않도록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공연예술의 특질이자 그 생명은 현장성에 있다. 필자도 연극인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위의 주장에 격하게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공연이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계가 올라가면 공공극장들은 거의 문을 닫고, 단계가 내려가서 극장이 열린다 해도 좌석이 제한된다.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된 <무제>(공간기반 프로젝트 ‘2020 도화가압장’ 중) (출처: 인천문화재단 공연예술연습공간) |
이런 상황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우선, 관객이 없는 공연은 공연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또 제한된 좌석은 공연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제작의 한계에 부딪힌다. 가뜩이나 불황이었던 공연예술계에 가중되는 부담은 매우 가혹하다. 그럼에도 공연예술가들은 공연을 지속한다. 공연을 하지 않는 공연예술가라는 것은 이미 존재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공공극장이 문을 닫게 되면 공연은 민간극장으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민간공연장은 얼마 되지 않고, 연극의 경우 소멸 직전이라 할 만큼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특히 인천의 경우) 공연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이런 상황에서도 지원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공연의 수는 그리 줄지 않았지만, 장소의 부족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공공극장의 방침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공공극장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공공시설에서 감염이 발생할 경우 그에 뒤따르는 책임에 비추어 볼 때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음은 이해하지만, 극장 고유의 목적을 생각하면 공연이 없는 극장이란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가뜩이나 공연예술가에 비해 공공인프라와 문화매개자가 넘친다 할 수 있는 이 나라에서, 이런 위기에 공공극장이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런 관점에서만 생각한다면 모든 공공기관이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공연예술과 연극에 강세를 보이는 영국의 경우를 참고했으면 한다. 영국의 경우 셧-다운을 실시해 모든 가게가 일찍 문을 다는 과정에서도 극장은 그 예외로 두었다. 물론 방역지침을 준수한다는 전제에서이다. 그뿐만 아니라 단계가 내려가면 관객과 배우가 섞이는 대면 공연마저 허용하되, 단계가 올라가면 바로 다시 금지하는 정책을 반복한다. 물론 여러 부담이 따르는 정책이지만 극장의 고유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예술가들의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쇼-윈도우 공연이 화제가 되었다. 셧-다운의 영향으로 일찍 폐점하는 상점들의 쇼-윈도우를 무대로 바꾸어 공연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상점은 대부분 무료로 제공되었다. 관객들은 쇼-윈도우 밖에서 공연을 관람하므로 방역 면에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공연의 특성상 시간이나 관람 수가 제한되는 소규모 공연이었지만, 활동을 지속하려는 예술가와 지역사회의 노력이 돋보였다. 우리도 기존에 지속하던 방식의 지원을 유지하는 것 뿐 아니라 장소나 제반여건을 더욱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이번에는 언택트 공연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지금의 언택트 공연은 -특히 연극의 경우- 단순히 공연을 찍어 전송하는 수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 한 외국의 지인으로부터 ‘한국은 영화나 드라마의 수준이 매우 높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공연예술의 언택트 공연에는 거의 그 기술이 접목되지 않고 있어 의아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연예술계에는 공연의 특성상 그런 기술이 많이 축적되지 못했고 그런 전문가들과 연계하기에는 자본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언택트 공연을 통한 관객수익 창출 플랫폼 또한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인프라와 전문가, 그리고 공연예술계를 연결해주는 지원이 매우 시급하다 할 수 있다. 물론 공연예술의 근간은 현장성이지만 현장성을 살린 언택트 공연이라면 기존의 매체를 통한 장르와는 색다른 장르가 개척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성세를 자랑하고 있는 웹툰이라는 장르도 처음에는 종이만화 시대의 종막에 따른 자구책과 인터넷 시대가 개막하면서 좀 더 자유로운 주제를 그리고 싶어 했던 비주류작가들의 시도로 시작되었지 않은가?
물론 지원뿐 아니라 공연예술계 스스로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예로 일본의 지인 극단인 ‘Prayer’s Studio’의 활동을 들어볼까 한다. 이 극단은 기존의 공연 외에도 ‘드라마 트라이얼’이란 프로그램을 매월 진행해왔다. 배우들이 유명 작품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그 장면에 대한 분석을 같이 진행한 뒤, 관객들이 역할을 분담, 직접 낭독과 연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꽤나 인기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해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Zoom을 이용한 참여형식으로 바꾸었다. 공연을 보여주는 상황 역시 기본 카메라뿐 아니라 배우 각자의 모바일 폰을 활용해 다양한 각도의 영상을 보여줌으로 현장성을 높이고, 참여관객 역시 각자의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활용해 참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으며 참가비 역시 기존과 동일하게 받는 방식이다.
물론 위 극단의 경우 젊은 세대들이 많아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이 빨랐을 것이라는 짐작은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한참은 뒤처진 IT인프라를 생각하면(일본은 인터넷뿐 아니라 각 가정의 컴퓨터 보급률도 꽤나 뒤쳐져있다. 일본에서 온라인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개 민간극단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매우 놀라운 수준이다.
두서없는 글이었지만 정리를 해보자면, 기존의 공연예술방식을 지속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공공시설의 역할과 공연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 그리고 지역사회의 안배 등 다양한 노력들이 함께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택트 공연에 있어서는 현장과 매체전문가, 그리고 인프라가 결합될 수 있는 지원책이 절실하다. 아울러 현장의 노력 역시 다양하게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공연예술계의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늘 우리를 지지하며 기다려주는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재상(李哉尙,Rhee Jaesang)
1964년생, 극작가, 연출가. 현재 극단MIR레퍼토리 대표로 있으며 인천연극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