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굴곡진 역사의 개항지였던 바로 그 자리에 복합문화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우리의 척박한 문화환경을 감안하면 10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가 않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플랫폼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문화거버넌스, 즉 시민단체와 예술가들, 그리고 시 당국이 협치와 공조를 잘 이뤄 결실을 본 결과로 지금은 타지역에 롤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해마다 국내외 작가 약 30여 명이 입주하여 활동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와 전시실,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의 용도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의 차이나타운과 인접하여 문화관광 측면에서도 일정 부분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위탁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작품의 수집과 전시에 역점을 둔 전통적인 문화공간인 미술관과는 차별화된 대안적 시스템이다. 4차산업이 회자되기도 전에 이 이름을 선점한 혜안이 놀랍다.
국내외 문화예술 인적, 물적, 정보 및 프로그램 등의 교환과 교류의 아고라이자 정거장으로서, 기본적으로 개방성과 네트워크, 참여와 소통을 생명으로 여기는 문화발전소이다. 특히 옥내외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활용되어 시민들의 문화예술 축제가 끊이지 않는 역동적인 문화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원도심 재생사업으로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사례가 국내외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도심 재생사업만이 아니라 문화관광 차원에서나 문화예술 자체로만 보아도 얻은 것이 대단히 많다. 요컨대 인천 문화예술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주된 사업이 레지던시, 전시, 공연 및 교육으로 요약된다. 대한민국 제3의 도시 인천엔 아직 시립미술관이 없다. 1종 등록미술관으로서 공공미술관 역할을 대신 수행해야 하는 미션에 따라 시민들이 애호하는 전시를 기본적으로 꾸준히 펼쳐왔다. 메인전시장, 창고갤러리, 윈도갤러리 등이 있어서 자체 기획전시, 입주작가 창작 발표, 기타 지역작가 전시 등의 다양한 전시들이 연중 30회 이상 열린다. 또한 공연장에서도 음악,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기획, 무료대관 등의 형태로 매주 2~3회 열리는데, 특히 다양한 장르 간의 실험적인 협업 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레지던시 비중이 크다. 한 해 평균 30여 명 가량의 작가들이 입주 활동하는데, 10년 동안 무려 300인의 작가들이 거쳤고, 그들의 빛나는 커리어에는 ‘인천’이라는 기록이 선명히 남아 있다. 작가들에게 인천아트플랫폼이 유독 선호되고 있다. 그 이유는 도심 속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양하고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등으로 작업의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물론 인천아트플랫폼 10년의 과정을 반추할 때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인천아트플랫폼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주어진 미션이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창작지원, 전시 등을 통한 콘텐츠 창작, 교육, 국제교류, 문화관광…. 심지어 장터까지도 미션이 되기도 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현실은 무리한 업무수행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설립 초부터 지역예술인들은 지역예술인들대로 기대치가 높았다. 보편성과 지역성을 적절히 조율한다고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트플랫폼이 기획하여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것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본연의 사업이다 보니 지역예술가들에 대한 배려를 최대로 하고는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머지않아 시립미술관이 개관하게 되면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은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레지던시 사업 쪽으로 역점을 두면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그동안의 환희와 고통의 10년을 뒤로 하고 이제 새로운 비전과 방향성을 설정해야 할 때이다. 보다 정교한 진단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방향성은 그려볼 수 있다. 원대한 스케일의 계획보다는 디테일과 내실에 역점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활동 영역을 초공간적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점 등이다.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기 위해서 소박하게나마 폭넓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트플랫폼이 시민을 표방했지만 정작 시민은 없었다는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아트플랫폼을 방문했지만, 그들이 아트플랫폼을 함께 완성해가는 주역으로서의 자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제나 콘텐츠들에 수동적 향유자로서의 위치에만 머무르게 했던 점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지역 작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기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언제나 대외적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 무심코 찾아온 시민 한 사람이라도 아트플랫폼의 구성원이자 후원자로서의 친근감을 갖도록 하는 최선의 전략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플랫폼의 역할을 보다 국제적으로 확장하려는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도시답게, 그리고 문화예술 교류의 허브로서의 명성과 위상을 한 단계 더 올려야 한다. 현재도 국제교류 프로그램들이 많이 가동되고 있지만, 호주 멜버른의 아시아링크를 능가하는 채널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예술플랫폼으로 명과 실을 견고히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레지던시가 입주작가들의 창작 지원에는 적극적이지만,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입주 예술가들의 생활고 문제다. 입주만으로도 특혜일 수 있지만, 레지던시의 시스템이 향후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도 다각적인 프로모션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주로 홍보에 주력하였지만 다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작가들이 더욱 윤택한 경제적 여건을 가질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시장과 연결하기보다는 입주작가 커뮤니티 자체로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자체에서 매개역 전문가 양성이 함께 병행되어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을 시장과 연결해주는 것.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면 지역의 예술계에도 확대 시행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 과제들이야말로 문화재단과 아트플랫폼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정책적, 행정적 방안들을 도출, 폭넓게 시행해야 할 일이다. 현금 몇 푼을 손에 쥐여 주는 것보다는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간이라도 팔리도록 매개해주는 것, 그것이 작가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지원이자 복지이기 때문이다.
글 / Lee Jaeon, 李 在 彦 (인천아트플랫폼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