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문화예술예산 2%를 확보하자

실질적 문화예술예산 2%를 확보하자

김창길((사)인천민예총 정책위원장)

지난 9월 9일 오후 3시 인천광역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회의실에서 아주 이상한(?) <인천광역시 문화예술분야 예산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제목만으로는 여느 토론회와 전혀 다를 바 없을 것 없는, 그냥 식상한 토론회 같았지만 정말 이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 2명은 물론이고 토론자 4명, 토론회 진행을 맡은 좌장, 심지어는 토론에 참석한 소수(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의 인원까지도 모두 단 하나의 다른 의견이 없는 토론회였기 때문이다. 인천광역시의 문화예술예산이 다른 광역시에 비해 현저하게 낮고 절대적으로 문화예술예산을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 한목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이런 이상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는지 토론회를 보지 못한 분들에게 그 전말을 알리고자 한다.

인천광역시 문화예술분야 예산정책 토론회

이 토론회는 인천광역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와 (사)인천민예총이 공동 주관하였다. 발제자는 최영화(인천연구원 연구위원)과 필자가 맡았고, 토론자는 차성수(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도시문화분과위원장), 김재업(인천예총 부회장), 한상정(인천광역시 문화특보, 인천대 교수), 김락기(인천문화재단 경영본부장) 이상 4명이 참여하였고, 좌장은 김성준(인천광역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이 맡아 진행하였다. 그리고 시의원과 문화관광국장 등 시 관계 공무원이 참석하여 진행되었다.

첫 번째 발제는 「7개 특별‧광역시 문화예술예산 비교」라는 제목으로 최영화 연구위원이 진행하였다. 주요 발제 내용은 7개 특별, 광역시의 문화예술예산을 비교하여 총예산 대비 문화예술예산 비율과 인구 1명당 문화예술예산액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그 시사점을 지적해 주었고 나아가 문화예술 재원 확보 방안까지 제안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막연하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과 직면해야 했다.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6개 광역시 중 최하위의 총예산 대비 문화예술예산 비율 1.24% (6개 광역시 평균 2.25%), 그리고 1인당 문화예술예산액을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인천광역시 1인당 문화예술예산액이 고작 36,300원(6개 광역시 평균 73,300원)이라니! 인천시의 인구 1명당 문화예술예산액은 6개 광역시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참담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7개 특별·광역시(본청) 총예산 대비 문화예술예산

(단위: 명, 천 원)

구분 총예산 문화예술예산
금액 비중
서울 27,725,766,942 259,937,090 0.94%
부산 10,341,850,972 250,928,825 2.43%
인천 8,586,378,292 106,556,558 1.24%
대구 7,357,200,000 128,391,191 1.75%
광주 4,940,084,563 182,189,592 3.69%
대전 5,776,657,000 115,584,655 2.00%
울산 3,265,264,948 78,229,683 2.40%
평균 9,713,314,674 160,259,656 2.06%

출처: 「7개 특별‧광역시 문화예술예산 비교」(최영화 연구위원 발제 자료)

2021년 기준 7개 특별·광역시(본청) 인구 1명당 문화예술예산액

(단위: 명, 천 원)

구분 문화예술예산 인구 1명당 문화예술예산액
서울 259,937,090 9,558,153 27.2
부산 250,928,825 3,361,781 74.6
인천 106,556,558 2,937,440 36.3
대구 128,391,191 2,395,749 53.6
광주 182,189,592 1,442,482 126.3
대전 115,584,655 1,455,300 79.4
울산 78,229,683 1,125,727 69.5
평균 160,259,656 3,182,376 66.7

출처: 「7개 특별·광역시 문화예술예산 비교」(최영화 연구위원 발제 자료)

여기에 덧붙여 최영화 연구위원은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했다. “인천시의 문화예술예산 106,556,558천 원 중 문화기반시설 관련 예산(문화기반시설 조성, 정비, 운영 등)이 총 53,003,917천 원으로, 전체 문화예술예산의 49.7%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즉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의 절반이 문화기반시설 관련 예산이라는 것이다.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을 분석하면, “시설 운영 외에 인천시가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펼치거나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기획·운영하기 위한 사업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빈약한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에서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예산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예술 재원 확보방안으로 여러 대안을 제안했지만 그중에 핵심은 인천시가 문화예술예산을 확대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은 대부분 시비로 편성되어 있다.)

두 번째 발제는 필자가 진행하였는데, 10년간의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을 분석하여 문화예술예산을 실질적으로 늘릴 방안을 논의하는 것과 인천시 문화예술정책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10년간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을 검토하면서 필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문화예술예산 비율이 2012년에서 2017년까지 6년간 1%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발제자가 서로 사전 협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가 인천시 문화기반시설 예산을 별도로 분석하였다. 이는 인천시의 문화예술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화예술예산을 키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실제로 문화예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실질적 문화예술예산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10년간 인천광역시 본예산 중 문화예술예산 비율

(단위: 백만 원)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예산총액 7,544,795 6,796,847 7,837,281 7,654,571 8,190,258 8,316,641 6,509,348 7,177,427 8,069,051 8,586,378
문화예술
예산총액
54,809 52,353 57,098 54,482 63,203 82,054 84,865 87,687 102,614 106,556
총예산대비/
문화예산비율
0.73% 0.75% 0.73% 0.7% 0.77% 0.99% 1.3% 1.22% 1.27% 1.24%
문화기반시설
관련예산
33,480 31,819 32,905 31,016 37,728 40,733 44,933 43,650 53,752 53,003
문화예술예산대비/
문화기반시설
관련예산비율
61% 61% 58% 57% 60% 50% 53% 50% 52% 50%
실질적
문화예술예산
21,329 20,534 24,193 23,466 25,475 41,321 39,932 44,037 48,862 53,553
문화예술예산대비/
실질적
문화예술예산비율
39% 39% 42% 43% 40% 50% 47% 50% 48% 50%

※ 문화예술예산총액: 인천광역시 기능별 문화 및 관광 세출 중 체육, 문화재, 관광 제외
※ 문화기반시설 관련 예산: 문화기반시설 건설비용 및 유지비용(문화예술과, 문화콘텐츠과, 도서정책과, 종합문화예술회관)
※ 실질적 문화예술예산: 문화예술예산총액에서 문화기반시설 관련예산을 뺀 예산

발제 이후에 토론자의 토론도 이어졌는데 4명의 토론자 모두가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을 늘려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덧붙였다. 차성수 토론자는 시설 중심으로 문화예술 정책을 풀어가려는 기본 사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얘기하면서 민간주도의 정책 및 예산 수립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다양한 세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제안을 하였다. 김재업 토론자는 문화예술예산중에서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순수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지역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제안하였다. 한상정 토론자는 문화예술정책사업의 예산 문제 이전에 문화정책을 주관할 수 있는 문화정책과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김락기 토론자는 현재 인천시 문화예술예산 현황 속에서 인천문화재단의 사업과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지속적인 논의의 장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지만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토론자분들의 좋은 의견과 제안을 다 옮기지 못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 (자세한 내용은 토론회 영상을 참고 바란다.)

인천광역시 문화예술분야 예산정책 토론회 영상 (출처: (사)인천민예총 유튜브 계정)

인천시는 인구 증가와 함께 인구 300만 도시 대우를 받으며 행정조직을 확대 개편하면서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되겠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그것은 사상누각이었다. 도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도시 디자인의 혁신을 통해 창의문화가 형성되는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창의인재를 육성하고 자원을 유치하여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 다시 말해 도시의 문화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행정조직을 늘리고 총예산을 늘린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문화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는 관심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서 드러났듯이 인천시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도 미미하고 형편없는 수준이다.

반면 인천시와 인구가 비슷한 부산시는 ‘부산 문화 2030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며, 그 실현을 위해 문화예산을 2030년까지 3%까지 확대할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천시도 늦지 않았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3%의 예산을 확보하자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지만, 최소한 2%의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문화예술예산을 늘리되 문화기반시설 관련 예산의 비중을 줄여 실질적 문화예술예산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2,600억을 들여 개관한 아트센터인천이 2025년까지 2,200억 원을 들여 2단계로 대공연장과 뮤지엄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밝히고 있고 시립미술관을 새로 짓고 시립박물관을 확장 이전하는 인천뮤지엄파크 조성사업이 정부 중앙투자 심사를 통과하여 2,014억을 들여 2022년 착공하여 2024년 준공, 2025년 개관하는 일정을 인천시가 발표하였다. 시립미술관은 인천예술인과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었고 시립박물관 또한 광역시의 수준에 걸맞게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문화기반시설 건설로 인하여 부실한 인천의 문화예술예산 현황이 가려지고 호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실질적 문화예술예산 2% 확보’를 주장한다.

아무튼 토론회에 참석한 모두가 동감할 수밖에 없었던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천시 문화예술예산의 현실을 바로 보고 우리는 인천시민으로서 문화권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실질적 문화예술예산을 높일 것을 주장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겨우겨우 버티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따라 강이 만들어지고 숲이 생겨나듯이 자연스럽게 인천시의 문화예술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활성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창길(金昌吉, Kim Changkil)

(사)인천민예총 정책위원장




아트플랫폼 입주예술가: 윤제호, 이현민, 지박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소개
인천아트플랫폼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공모로 선발하여, 창작 공간을 지원하고 입주 예술가의 연구와 창작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 비평 및 연구 프로그램, 창·제작 프로젝트 발표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21년 인천아트플랫폼 12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 윤제호 YUN Jeho

윤제호는 컴퓨터로 디자인된 소리와 광학 장치의 빛으로 공간을 채워, 자신이 상상한 디지털 세계를 현실 공간에 구현한다. 작가는 소리, 빛과 공간 자체를 언어화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기존의 관람, 청취 방식을 지양하며 관객이 작품 안을 거닐고, 빛과 소리를 만지며 얻는 촉지적 감각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작가가 구축한 비물질적 세계의 이야기는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며,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소리와 빛으로 공간에 이야기를 만들어서 관람객에게 공감각적 경험과 함께 디지털 시대 속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악기와 전자음악, 전자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작업을 해왔으나, 2015년 유망예술지원을 통해 선보인 <SOUNDHUE>라는 단독 공연에서부터 소리, 빛,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관람객이 느끼는 감각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연과 전시의 경계에 대한 사유가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공연과 전시의 형태를 구분 짓지 않고, 공간에 형태에 작업 맞춰가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먼저 공간을 보고 빛과 오브제 형태를 생각한 후 소리의 위치를 고민한다. 그다음에는 소프트웨어로 전체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실제 공간에 프로토타입을 설치하여 전체적인 느낌을 본다. 마지막으로는 그 느낌과 어울리는 소리를 찾고 실험을 거쳐 음악을 만든다. 작품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제작된 음악의 타임라인과 소리에 맞춰 반응하며 변화하는 빛과 영상으로 구성된다.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또는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2019년에 선보인 개인전 《휴식동굴》(갤러리밈, 서울)을 꼽을 수 있겠다. 전시 형태로 선보인 첫 개인전으로, 많은 관람객과의 만남을 통해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공연보다 전시 활동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현대인들은 디지털 데이터가 떠다니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인식한다. 디지털 세계와 차단된 채로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다른 세계에 완벽한 휴식이 존재한다고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0과 1의 디지털 세계를 자연의 구성 요소로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디지털 기기로 묶여 디지털 세상을 정처 없이 부유하는 현대인에서 걸맞은 도시 속 휴식이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휴식동굴》 전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모호한 디지털 공간에서 데이터화되어 존재하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그와 함께 우리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갖는 전시였다.
나의 작업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모호함’, ‘혼재’일 것이다. 두 단어 모두 구분을 짓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나는 독특한 장소에서 해당 공간과 나의 작업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온전히 결합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 속에서 느낀 감각의 경험이 잊히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다.

작가정보: www.jehoyun.com

■ 이현민 LEE Hyunmin

이현민은 음악과 사진, 영상을 접목하여 일반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경험들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Macro Cosmos>시리즈의 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영상과 미디어를 접목하여 하나의 악기와 독주 연주자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복합 작품을 구상 중이며, 이를 인천아트플랫폼의 공간적 특성에 맞추어 선보일 예정이다. 이현민은 ArtLab MIIO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예술가들의 이미지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음악교육활동을 위해 해마다 네팔을 방문하고 있다.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사회적인 문제 또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경험을 작곡을 통해 음악으로 만든 후 영상, 미디어와 접목하여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감각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사물이나 소리와 같은 것들을 재해석, 확장하여 나만의 시선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니고 다양한 공연, 전시를 접하면서 청각적 소리가 시각적 이미지로, 이미지가 소리로 느껴지는 공감각적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한 공간에 감각적인 부분을 모아놓거나, 관객의 상상력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업에 관심이 생겼고, 영상과 소리를 함께 작업에 접목하게 되었다. 나의 창작과정은 먼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 이야기와 매우 밀접하거나 또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소리와 이미지를 선택한다. 이후 작곡과 영상 편집을 통해 재해석하여 제작하는 과정을 거친다.

《Infinity Resonance of Macro Cosmos》, Platform-L, 서울, 2020 《기록으로 잊혀지는 이야기의 소리들》, 토포하우스, 서울, 2021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또는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최근에는 <Macro Cosmos>라는 제목의 연작을 제작하고 있다. 한 명의 연주자와 홀로 연주되는 악기를 위한 영상과 미디어 설치를 접목한 음악 작업이다. 2020년에는 한 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징과 꽹과리 같은 국악의 금속 악기만을 이용하여 45분 동안 연주를 이어가는 <Infinity Resonance of Macro Cosmos>라는 제목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의 모습이 하나의 별과 닮아 보였고, 소리의 생성과정이 빅뱅이론의 일부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에 10개의 징을 설치하고 스스로 울리게 만들어 연주자와 협주하는 듯한 음악이 흐르는 동시에, 영상 이미지와 조명을 통해 별의 그림자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그동안 내가 상상해오던 새로운 작품 형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고, 이후의 방향성도 보다 선명해졌다. 내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아주 작은 것들의 거대한 이야기(우주)’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앞으로 나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공간’에 대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공간이 무엇으로 인지되고, 구성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기도 하고, 음악교육이나 예술교육을 작업의 일부로 삼아 다양한 지역에서 공유해보고 싶다. 마음과 생각이 닫히지 않은 예술가로 계속 성장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만남이 반가운 작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지박 Ji Park

지박은 특정한 장르에 국한되기보다는 정형화된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지박 컨템포러리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여 왔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의 사회적 상황 등 정치적 혼란기의 예술에 주목한다. 레지던시에 머물며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전쟁이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작곡과 머신지능을 이용하여 미디어아트와 증강현실(AR)로 구현하고자 한다.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기억하고 있는 어떤 사건 혹은 경험의 단상을 응축하여 작곡, 음악 작업으로 표현한다. 음악으로만 채워진 공연보다 비디오아트, 현대무용, 라이브 페인팅 등의 타 장르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흥미롭게 느껴져, 지난 8년 동안 19개의 다원예술 작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음악 작곡을 시작하기 전, 나는 머릿속에 곡 전체의 흐름과 구성에 대한 스케치를 그려둔다. 곡에 어떤 악기를 사용할 것인지 생각하다 보면 어떤 연주자를 섭외할 것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기에, 내가 원하는 연주자의 장점을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곡을 쓰려고 신경 쓰는 편이다. 비디오 아트 영상을 직접 만드는 경우에는, 테마 또는 패턴의 다양한 배열로 곡의 기승전결 변화를 가시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나의 작업은 ‘시계추 이론’이라는 함축적인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끝과 끝은 통하고 거식증인 사람이 비만이 될 확률이 높듯이 양극단이 오히려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나는 이 이론을 실생활에 대입하여 자주 생각하고 분석하고 있다. 올해는 현대음악과 AR(증강현실)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적으로도 양극단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지만, 결국 이 두 끝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이다.

《지박 컨템포러리 시리즈 Vol.19 – 백남준》, 플랫폼엘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서울, 2020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또는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나의 대표 작업으로는 <Ji Park Contemporary Series Vol.17 – DMZ>(2019)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작업은 2018년 해외투어 일정으로 독일에 방문했을 때, 베를린 장벽을 보고 느꼈던 큰 파도가 휘몰아치는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비무장지대(DMZ)에 직접 가보고,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시기에 우연히 영상작가 이지송이 “DMZ 무경계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했고, 수락하여 함께하게 되었다. 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50여 명의 국내외 시각 예술가들과 함께 종일 DMZ 일대를 탐색하며 리서치하고, 서로의 퍼포먼스를 보고 생각을 나누며 며칠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경험을 통해 DMZ를 다각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스트링퀄텟, 피아노, 모듈러신스, 사운드 디자인, 비디오아트 구성의 음악 공연을 선보이고, 음반 발매도 진행했다. 이 작업은 앞으로 더 발전시켜보고 싶은 프로젝트이기에 내게 좀 더 특별하다.
올해 역시 현대음악, 얼터너티브, 현대무용 음악,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멤버들과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작곡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반 작업을 많이 진행할 예정이지만, 나는 예술에 구분선을 두고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대 예술에 대한 공연이나 음악을 만들 때 관객과 나 사이에 어떤 선이 분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가끔 그 선으로 인해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 지점이 변화하는 시작점에 대한 고민과 기대가 되기도 한다. 국내외 관객이 동시대 음악이나 미술, 무용을 더 많이 향유하고 즐기는 시대를 꿈꾸며, 나도 작업을 통해 새로운 필터로 완성도를 높이는 작가, 작곡가, 공연 기획자로 기억되고 싶다.

* 작가에게 제공받은 인터뷰 글을 바탕으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녹청자 장인 정병석

이름: 정병석

분야: 전통 공예(도자기)

인천과의 관계: 인천에서 작품활동(인천 녹청자 무형문화재 최종 후보)

작가정보: jbs11105@hanmail.net

작가의 대표이력
원광대학교 도예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디자인학과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경인 미술대전, 인천미술대전, 대한민국 현대도예공모전, 경기 미술대전, 인천 지방 기능경기대회 운영위원 및 심사
현 인천 한국미술협회 회원
현 인천광역시서구문화예술인회 총회장
현 서인천도예연구소 운영
현 인천녹청자연구회 회장
녹청자 무형문화재 심사결과 대기중
주요활동내용
개인전 3회 단체전 400여회
인천 도자기축제 운영위원
인천 녹청자 축제 운영위원
인천서구 녹청자 박물관 장작가마 소성
국제대학교 산업디자인 학과 겸임조교수 역임
서인천도예연구소 및 인천 도자기축제 장작가마 워크샵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녹청자 죽문 주전자’입니다. 제작의 인고 과정을 떠나서 녹청자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전통과 현대적 모습이 서로 교감되는 듯한 작품의 느낌을 너무 소중히 생각합니다. 서민적으로 투박할 수도, 귀족적으로 고급스러울 수도,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리 보이는 본 작품은 제가 제작하고, 연구하고 있는 녹청자 도자기와 가장 닮아 있는 작품이기 때문일 겁니다.

녹청자 죽문 주전자

2.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오브제로서의 가치’와 ‘실용성’은 도자기의 특성상 작품을 제작 및 기획할 때 항상 고민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저뿐 아닌 모든 도예가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제가 연구하고, 제작하고 있는 녹청자는 우수하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도자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자 백자의 뒤에 가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수한 녹청자를 잘 알릴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려 합니다. 항상 아쉽기는 해도 조형성과 실용성이 잘 어우러진 그런 녹청자를 말입니다.
저의 선배님이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내 큰 그릇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훌륭하다’기 보다는 열정적으로, 나만의 고집이 있는 것이 아닌 항상 함께했었던, 가장 아름다운 녹청자 도자기를 제작하려 평생 애썼던, 그런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4. 앞으로의 작품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현재 인천에 우수한 녹청자 도요지 및 녹청자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증할 수 있는 전통 장작 가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녹청자 박물관에 1기가 있기는 하지만 주택 거주지에 있는 이유로 많은 민원이 들어와 제대로 된 소성(燒成,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 만드는 것) 운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녹청자의 고증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인천지역의 선배 작가로서 전통기법을 지키고,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막중한 채무의 부담을 감내하며 사적 211호의 녹청자 가마터 원형을 최대한 복원하여 지은 녹청자 전통가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욕이 아닌 전통을 함께 지키고 전승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의 가마로 발전시켜, 지역 작가들의 교류와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녹청자를 연구,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려 합니다.

5. 예술적 영감을 주는 인천의 장소 또는 공간은?

사적 211호 녹청자 가마터는 항상 저에게 영감과 열정을 주는 장소입니다.

사적 211호 녹청자 가마터(2011년경 촬영)
인천 서구 경서동에 있는 사적 211호 녹청자 가마는 철거되었고, 현재 비석만 남아있다.

글/사진 정병석




집에서 집으로: 영화 〈휴가〉(이란희 감독, 2021)

집에서 집으로영화 <휴가>(이란희 감독, 2021)

차한비(영화웹진 리버스 기자)

재복(이봉하)에게는 집이 둘이다. 20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해고를 통보받은 후, 재복은 동료와 함께 거리에 집을 지었다. 천막 앞에는 “부당해고 철회하라”라는 현수막과 농성 기간을 알려주는 날짜 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오늘로 1882일째,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며 재복은 천막생활에 익숙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전단을 건네고, 가위로 양파를 툭툭 잘라 넣어 찌개를 끓인다. 능숙하게 요리하는 재복 옆에서 만용(황정용)은 구멍 난 천막에 청테이프를 잘라 붙인다. 재복은 만용에게 뭘 그리 애쓰냐며 구시렁대다가 입을 다문다. 언젠가는 그만둘 투쟁이고, 이대로 천막에만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다만 언제쯤 떠날 수 있을지, 그 시점을 확신하지 못하기에 마음은 무거워져만 간다.

영화 <휴가>(이란희 감독, 러닝타임 81분, 개봉 2021.10.21.)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고, 여전히 하고 있다. 1인 시위, 집회, 문화제, 고공농성, 연대 행사, 그리고 소송. 헛되이 쓴 날은 하루도 없다. 온갖 일정으로 빼곡하게 채운 달력이 야속해 보이는 이유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아서다. 희망을 걸었던 재판에서 패소한 후 천막에는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애초 잘못 들어선 길이 아니었나 하는 불안과 누구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원망이 뒤엉키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홧김에 천막을 나온 재복은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결국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서 잠을 청한다. 그날 밤, 만용과 영석(서광택)은 휴가를 결정한다.

“우리라고 휴가 못 가나?” 만용은 덤덤히 묻는다. 노동자에게 휴가가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라면, 이들에게 휴가란 일상이 된 싸움에서 한 발짝 멀어지는 일이다. 노동자라는 신분을 되찾으려는 길고 막막한 투쟁, 거기서 잠시 빠져나온 재복은 또 다른 집을 찾아간다. 현희(김정연)와 현빈(이승주), 두 딸은 재복을 반기지 않는다. 재복이 천막에서 먹고 자는 동안, 현희와 현빈은 양육자 없이 살아가는 데에 적응해야 했다. 아빠가 집을 떠날 때 각각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딸들은 이제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과 중학생이 되었다. 울어도 달래주는 부모가 없어서,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돈을 벌어 사야 해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철이 들어버렸다.

영화 <휴가>의 한 장면

현희와 현빈은 재복을 피한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입 밖으로 원망을 쏟아낼까 봐, 그간 참아왔던 마음이 무너질까 봐 꾸역꾸역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돌봄이 모자란 흔적은 집안에도 가득하다. 재복은 막힌 싱크대를 뚫고 말없이 냉장고를 닦는다. 재복이 차려주는 밥상을 마다한 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현희가 수시 합격 소식을 전한다. 목소리에는 기쁨 대신 걱정과 의심이 묻어난다. 다음 주까지 대학교에 등록 예치금 30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는 말에 재복은 큰소리를 치지만, 이제 서울에 가지 말라는 현희의 요구에는 말끝을 흐린다.

일, 그것은 재복에게 무슨 의미일까. 일할 때 재복은 정직한 노동자였고, 떳떳한 아버지였다. 유능한 기술자였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자리가 분명한 시민이었다. 정리해고는 그토록 선명하고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휴가>는 재복이 투쟁을 결심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현재 그가 상실하고 또 감내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일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자 분투하는 동안, 가족이라는 공동체에는 서서히 금이 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투쟁해봤자 누가 알아주기나 하느냐며 농담 섞인 핀잔을 내뱉는다. 투쟁을 지속하는 이유와 투쟁을 관두어야 할 이유는 그렇게나 맞닿아서 재복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운다.

하지만 서럽고 막막할지언정 5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아서, 재복은 쉽게 좌절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제 재복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들과 달리, 재복에게 휴가란 잠시 일을 재개하는 기간이다. 현희에게 예치금을 마련해주고 현빈이 입을 겨울 점퍼를 사기 위해 재복은 동창 우진(신운섭)이 운영하는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때 재복은 강제 추방당한 외국인 노동자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그곳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두 노동자를 만난다. 목수로 일하는 청년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봐 산업재해 신청을 두려워하고, 한 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은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터를 배정받는다. 재복은 어느 날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두 노동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영화 <휴가>의 한 장면

이처럼 <휴가>는 노동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연결하며, 일과 일하는 사람에 관해 여러 질문을 던진다. 배우이자 감독인 이란희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 세 사람이 직접 출연하여 본인을 연기했던 단편 <천막>(2016)을 확장한 작품이다. 전작이 천막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세 인물을 통해 일상으로 자리 잡은 투쟁의 풍경을 담았다면, <휴가>는 천막을 벗어난 재복을 중심으로 일상과 투쟁의 경계를 묻는다.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는 한, 재복에게 천막은 또 하나의 집이다.

재복은 두 딸의 냉장고를 가득 채워 넣고, 두 동료가 먹을 도시락을 싼 다음에 문을 나선다. 집을 떠나고 집을 거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는 이러한 짤막한 여정에 동행하며, 싸우는 사람이 끝내 도착할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묵직한 필치로 그려낸다.

차한비(CHA Hanbi)

영화웹진 『REVERSE』 기자이며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발간 연구 저널 『ACT!』 편집위원이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차장을 지내고, 독립영화 매거진 『Motion』의 필진으로 활동하였다.




울림의 감각을 잃은 우리, 변화를 위한 시작은 무엇일까: 임시공간 기획전시 《( )는 모든 것의 고유한 울림을》

울림의 감각을 잃은 우리, 변화를 위한 시작은 무엇일까임시공간 기획전시 《( )는 모든 것의 고유한 울림을》

이정은(시각예술연구자)

인천 신포동의 시각예술문화 공간인 ‘임시공간’에서 ⟪( )는 모든 것의 고유한 울림을⟫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보고 왔다. 시적인 전시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획의 글에 의하면, 이 전시는 생태계의 다양한 종들을 주체로 다루며, 이들 주체들 사이에 발생하는 에너지의 울림과 공명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이 겨냥하는 것은 이 행성에서 인간 자신만을 보편적 주체로 상정해 온 인간의 독단적 여정이다. 지구의 수많은 생물종들이 형태적, 생태적, 유전적으로 다른 형질적 특성을 지니고 각기 다른 감각계와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인간은 고도로 발달된 두뇌와 자기중심적 사고로 다른 종들과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이다. 이 전시는 싱글채널 비디오 3점과 영화 3편을 상영하는 스크리닝 전시로 기획되었다. 이 6편의 작업은 호모 사피엔스(생물학에서 인간 종을 가리키는 학명)의 관점으로 구축된 세계를 보여주면서, 다른 종들(더 나아가 사물까지)을 새롭게 인식하고 서로의 에너지와 울림을 느낄 것을 제안한다.

《( )는 모든 것의 고유한 울림을》, 임시공간, 2021.9.1.~9.18. (출처: 임시공간)

엘사 크렘저와 레빈 페터(Elsa Kremser, Levin Peter)의 영화 <스페이스 독(Space Dogs)>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소련과 미국 간 우주를 향한 경쟁이 치열했던 냉전 시기, 소련이 쏘아 올린 최초의 우주 개 라이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 사회의 과열된 경쟁은 한 마리 개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카메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만난 개들을 따라가면서 길거리의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의 영혼을 쫓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지금의 길거리에서 만난 개들의 일상을 지루하게 쫓는 이 영상은 라이카에 대한 애도를 쉽사리 끝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영상은 내가 오래전에 보았던 스웨덴 영화 <개 같은 내 인생(My Life As A Dog)>을 떠올리게 했다. 소년 주인공이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의 처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좀 다른 맥락이지만 소년이 비교했던 것처럼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판단과 그에 의해 구축된 질서는 개뿐만 아니라 때로는 인간에게도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독>, 다큐멘터리_91분, 2019 (출처: EIDF)

라두 치오르니치우크(Radu Ciorniciuc)의 영화 <아카사, 마이홈(Acasa, My Home)>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사회 제도와 체계에 맞추는 것이 때로는 위협적인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도시 한 켠 야생의 자연이 남아 있는 미개발지 움막에 살고 있었던 한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일대가 생태공원 조성지로 지정되면서 이들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환경은 당국에 의해 관리 대상이 된다. 움막은 헐어야 하고 불을 피우고 돼지를 잡는 가족의 일상은 이제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 되었다. 이 공원의 나무 식재는 식물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물놀이를 하던 호수는 보호되어야 할 구역이 될 것이다. 이들 가족은 사회복지 제도의 방침에 따라 도시의 공동주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학습을 하고 자연의 놀이터 대신 이제 운동장에서 스포츠의 룰을 배워간다. 도시에서의 적응과정에서 가족 간에는 불화와 갈등이 붉어지고, 이들에게 도시의 질서와 체제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 한편으로 그 체계가 관할하는 일상에 이미 익숙해진 화면 밖 우리를 보면서 그러한 일상의 그물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아카사, 마이 홈>, 다큐멘터리_86분, 2020 (출처: EIDF)

지구상의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의 사고는 생물학이라는 학문분과로 체계화되었다. 생물학에서 각각 종의 개별성과 특이성을 보는 방식은 식물과 동물의 외형과 기관의 형태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계통분류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동물이 어떻게 주변을 지각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최희현의 작업 <버드세이버 보고서 제1장>은 새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상은 야생조류가 투명유리창에 충돌하는 사고의 발생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면서 새의 감각 기관과 보는 방식을 참조한다. 즉 새의 눈이 머리 양옆에 위치해 전방 거리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과, 인간과 달리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새의 시각 체계를 고려한 충돌 방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영상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은 영상 후반부에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병치시킨다는 점이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새를 보면서 인간이 최초의 영화를 보면서 가상과 현실을 감각적으로 구분하지 못했던 시기로 돌아가는 성찰적 환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 처했던 인간의 경험으로 소급해 돌아가 동등한 처지를 환기하는 방식에서 타 존재에 대한 도덕주의적 감정 이입을 넘어서는 윤리적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버드세이버 보고서 제 1장>, 필름_7분 40초, 2020 (출처: 최희현)

우리가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김새와 행동을 통해 유추해 보고 교감하기 위한 노력이 의미 없지 않다는 것을 또 다른 작업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에서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도시생활에 지친 한 인간이 대서양 바다로 들어가 문어와 함께 교감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문어 곁에 다가가고 문어가 자신을 인지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1년의 시간 동안 문어가 무엇을 먹는지, 물속 생태계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관찰한다. 그가 근본적 변화를 위해 대서양에 뛰어들어 야생의 환경에서 감각을 깨우고 뇌를 활성화시키면서 문어와 교감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이 지점에서 앞서 언급한 <아카사, 마이홈>과 교차되면서, 도시 시스템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야생의 감각을 상실케 하고 다른 생명체와의 교감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세계와 마주할 용기를 내는 것은 전시에서 말하는 공존과 공명을 위한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멘터리 90분, 2020 (출처: 넷플릭스)

이번 전시는 인간과 자연이 맺은 관계의 서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전시였다. 그리고 이 서사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한 성찰과 변화의 시작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기획의 글에서 ‘그가 뱉은 숨을 내가 들이마시듯’이라고 종들의 관계를 표현한 것처럼, 서로의 호흡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매우 현실적이고 물질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처절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이번 전시에서 내게 가장 먼저 전달된 메시지는 다른 생물종과의 울림과 공명의 기억과 감각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보다 깊고 낮은 위치에서, 보다 가깝고 동등한 처지에 있음을 뾰족하게 느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정은(李定恩, Lee, Jeongeun)

시각예술연구자 및 전시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달빛심포지엄》(2017), 《아워 피크닉_레퍼런스》(2019) 등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현재 2021 아트플러그 연수 입주작가이다.




예술가들의 어떤 ‘모순적’인 이야기: 『아티스트』(마영신, 송송책방)

만화 함께 읽기
만화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만화에는 이 시대가 생각해야 할 가치, 우리 사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만화 함께 읽기’에서는 ‘문화예술을 소재로 한 만화’나 ‘문화 현장의 쟁점을 다룬 만화’를 소개합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만화를 읽으며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술가들의 어떤 ‘모순적’인 이야기『아티스트』(마영신, 송송책방)

최기현(인천문화재단)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인기다. 삶의 막다른 지경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456억 원의 상금을 받기 위해 게임에 도전한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기에 반드시 상금을 차지하여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83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흥행 중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한다. 동료와 끝까지 함께 할 것만 같은 ‘정의로운’ 주인공들도 자신이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동료를 속이고 혼자만 살아남는다. 오징어게임의 주최자도 ‘정의롭고 공정한 기회’를 표방하지만, 참여자의 편법에 눈을 감거나 참여자가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그 기회를 박탈한다. 참여자나 주최자 할 것 없이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다. 사람은 원래부터 모순적인 존재였을까, 아니면 상황이 사람을 모순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마영신, 『아티스트』 총 2권(송송책방, 2019)

만화 『아티스트』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음악가 천종섭, 화가 곽경수, 소설가 신득녕은 무명의 가난한 예술가이다.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자신들의 상황을 한탄한다. 다른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예전에는 나보다 못했던 놈’이라고 폄하한다. 대중의 인기를 얻은 뮤지션은 어설픈 실력으로 유세 떤다고 판단하거나, 대중적으로 성공한 예술은 그 예술적 세계가 깊지 않다고 단정한다. “우리 셋은 누가 잘 되면 무시하지 말고 서로 진심으로 위하면서 살자”고 다짐하지만 셋 중에 누군가가 잘되면 배가 아프고 그 성공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유치하면서도 모순적이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와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음악가 종섭은 득녕의 도움으로 우연한 기회에 스타작가가 되지만 득녕에게 도움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잘 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가 경수는 꼰대 기질에다가 ‘내로남불’형의 인물이다. 대학교 시간강사인 그는 권력에 아부하고 질투심과 명예욕 끝판왕이다. 득녕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문학상 후보가 된 후에는 ‘문학상을 거부’하겠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하는 소리’였다고 말을 바꾸는 캐릭터다. 세 인물 모두 마음속으로는 예술을 통해 명예를 얻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예술적 성취도 이루고 싶은데 아닌 척 포장한다. 자신에게는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남 탓이나 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티스트』 중 한 장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구분했다. ‘이드’는 인간의 본성이나 리비도, 충동 등이다. 인간의 욕구는 이드에서 비롯된다. ‘초자아’는 양심과 이상적 열망, 도덕적 교훈과 사회적 금기 등이다. 일종의 마음속 재판관이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둘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드나 초자아 어느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밀고 당기기를 한다.

이드와 초자아의 대립은 원래 인간이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 맘 같아서는 명예와 권력, 돈을 전부 가지고 싶은데, 사회적 금기나 도덕적 교훈 등 이상을 지향하는 초자아 때문에 내 맘대로 갖지 못한다. 내면에서 이드와 초자아의 치열한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드에 휩싸이면 욕망이 밖으로 발현된다. 그 형태는 잠재되어 있지만 오징어게임처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의해 모순적인 행동이 나온다.

마영신 작가는 예술가들의 모순적인 면모를 볼 때마다 틈틈이 메모한 것을 토대로 『아티스트』를 그렸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티스트』에 등장하는 종섭, 경수, 득녕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예술가로서의 초자아 판타지를 꿈꾸면서 동시에 이드에 따라 행동한다. 우연한 기회에 명예나 권력이 주어졌을 때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한다. 이들이 특이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독자는『아티스트』를 읽으면서 어쩌면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모순적인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의 후속편으로, 찌질한 곽경수를 재조명한 『아티스트, 곽경수의 길』(송송책방, 2020)도 볼 만하다. 특히 주인공 곽경수가 만화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만화 출간과 함께 <곽경수 개인전>(파주 아트스페이스휴, 2020.5.22.~6.25.)으로 현실에서 개최된 바 있다. 곽경수가 만화 속에서 작업한 그림 10점 등이 전시되었고, 뮤지션 김오키의 공연, 소설가 박민규의 소개글도 현실에서 재현되었다. 만화 속 전시회가 현실에서 구현된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유치하고도 모순적인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마영신 작가의 『아티스트』를 한번 읽어보시길.

최기현(崔基鉉, Daniel Choi)

인천문화재단 전략기획팀 과장. 만화평론가. 문화예술과 만화에 담긴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웹툰이나 공연, 전시를 추천해주신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DANIEL7@ifac.or.kr




문화정책동향 2021-05호 〔2021년 8월 16일~10월 15일〕

문화활동

문화공간

문화공동체

문화산업·관광

문화유산

평화·남북

전국 종합

추천 자료




거리를 다시 열고 싶은 부평풍물대축제

거리를 다시 열고 싶은 부평풍물대축제

이찬영(2021 부평풍물대축제 기획단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동체를 이뤄 함께 어울려 서로를 보호하고, 노동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삶을 살면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예술로 대표되는 문화는 자연에 인간의 창의력이 더해 만들어지는 문명, 삶의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의 해결과 공동체 구성원의 결속을 위해 종교와 축제가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축제는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고 염원하는 축(祝)과 의식적 행위인 제(祭)의 결합이다.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행위인 축제가 인류의 문명이 발생된 이후, 2021년 현재와 같이 사회적인 지탄과 애물단지가 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라는 역병은 이전의 그 어떤 재앙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사람들이 함께 협업하는 노동과 어울려 사는 문화와 사람들과의 만남을 모두 죄악시하며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직접 대면하고 만나는 다양한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가상의 사이버공간에서 온라인(on-line)으로 이루어지는 네트워크 방식의 소통이 가장 안전한 문화가 되었다. 인류의 욕망으로 이루어진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한 자연 파괴로부터 시작된 재앙을 과학과 기술로 인류 스스로 소통하고 극복하려는 방식이 아이러니하다.

축제는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공동체와 사회의 공통의 즐거움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고 죽는 관혼상제, 노동 생산물에 대한 감사, 이웃 공동체와의 경쟁, 신에 대한 감사를 위해 예술을 즐기고 음식을 나누며 함께 어울려 즐기는 집단의 놀이(대동놀이) 등으로 이루어진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후 다양한 축제는 민간과 공공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졌다. 지방정부는 지역의 특산물과 자연환경, 역사자원과 문화예술 자원을 활용하여 다양한 특산물축제, 역사문화축제, 자연환경축제를 만들었다. 이 축제 가운데 어떤 것은 만들어진 후 금방 사라졌지만, 10년 이상 꾸준히 지속하는 축제도 있다.

2018년 부평풍물대축제 ‘대동놀이’

지방자치제 출범과 더불어 시작된 <부평풍물대축제>는 전통예술인 풍물을 모티브로 인천 부평에서 1997년 시작되어 올해로 25회를 맞이하는 축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축제에 6년, 문화관광축제에 2년간 선정되는 등 전국성을 획득한 인천의 대표적인 축제이다. 초기에는 지역의 공원 등 너른 마당에서, 2000년부터 2018년까지는 부평을 관통하는 1킬로의 거리에서 8차선 부평대로의 차량을 통제하며 축제를 진행했다. 축제는 봄에 단오를 전후해 진행하다가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 가을로 시기를 옮겨서 진행하고 있다.

<부평풍물대축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거리축제이다. 거리축제에 대해 차량이 다니는 ‘거리를 막는 것’으로 생각해 불편함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차가 다녔던 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움직이면서 문화적 상상을 펼치는 축제로 ‘거리를 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시민들은 매년 금요일 12시부터 월요일 새벽 4시 차량이 다니기 시작하는 시간까지 부평역부터 부평시장역까지의 거리가 활짝 열려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기는 해방감에 불편함은 사라진다. 거리가 열린 토요일, 일요일 2일간 <부평풍물대축제>에서 약 40만~50만의 시민이 축제를 즐긴다. 축제의 문화적, 경제적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리 인근의 지하상가, 부평 문화의 거리, 부평시장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축제에서는 부평, 인천지역의 문화예술기관,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예술성이 확보된 전통예술무대 개‧폐막 공연, 전통연희창작공연, 부평 만만세 퍼레이드, 전통농악공연,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기고 참여하는 시민풍물난장, 버스킹, 생활문화축제, 플래시몹, 거리난장, 게릴라공연, 국악공연, 학생풍물경연대회, 예술놀이터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시민들이 즐기는 ‘부평!만만세’ 퍼레이드

매년 부평대로에서 진행하던 <부평풍물대축제>는 2019년 가을 한국에 유행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축제 하루 전에 취소되었고, 2020년에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으로 축제는 규모를 축소하며 부평의 문화예술단체를 중심으로 비대면 온라인공연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발표하였다. 사람들이 모이는 행위가 중심인 축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지난 2년간 거리의 차량을 막고, 사람들에게 거리를 여는 문화적인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 사람들은 아쉬움을 말하지만, 서서히 거리에서 이루어진 축제가 잊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축제의 시기와 장소성은 매우 중요하다. 오랜 세월, 심지어 한국전쟁 시기에도 남대천에서 진행해 온 강릉단오제를 준비하는 위원회는 코로나19 시기 2년 동안 강릉 시민이 단오제 장소를 잊어버릴까봐 2021년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남대천에서 전시와 체험을 중심으로 <강릉단오제>를 진행했다는 사례는 축제의 장소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인천의 대표적인 축제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소래포구축제>, <연수능허대문화축제>, <화도진축제> 등은 비교적 안정적 장소에서 진행되어 왔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시민들이 모이지는 못해도 축제가 이루어진 장소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질 것이고, 시민들은 방역의 단계에 따라 아쉽게나마 축제를 대면과 비대면 온라인으로 만나고 즐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재난의 시기에 굳이 축제를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역사에서 자연재해나 국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원 의식을 하거나,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문화예술 활동을 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코로나19 재난 시대에 축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1년 <부평풍물대축제>도 이전처럼 교통을 통제하여 거리를 열지는 못하지만, 오는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70년 만에 반환된 부평 캠프마켓과 부평아트센터에서 ‘담을 넘어’라는 주제로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중심으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 같이 거리축제를 하지는 못해도 어떤 방식과 형태로든 축제는 진행되어야 한다. 심신이 지친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면서 위로를 받고,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의 활성화를 위해서이다. 문화예술은 예산을 써서 당장 큰 경제적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활성화와 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무형의 자산과 시민들의 창의력을 높여 무한대의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어렵게 진행되는 인천지역의 여러 축제와 더불어 <부평풍물대축제>에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리며 글을 마친다.

사진제공: 부평구축제위원회

이찬영(李贊榮, Chan Young Lee)

2021 부평풍물대축제 기획단장. 사회적 기업 ‘인천 자바르떼’ 대표.
인천에서 오랫동안 풍물단체 활동을 해왔고, 문화예술단체의 지속성을 위한 사회적 경제 활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주민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는 방법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주민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는 방법

공영지(인천서구문화재단)

지역 곳곳에 가지각색의 축제 현수막과 배너들이 가득해지기 시작하면, 비로소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 찾아옴을 느낄 수 있었다. 예년 같으면 드림파크에 국화꽃과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드림파크 국화꽃 축제>가, 청라호수공원에는 은은한 클래식 선율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축제>가 펼쳐졌을 것이다. 구도심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기획한 크고 작은 마을축제들로 9월이라는 시간은 축제와 함께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로 접어들며 ‘축제 연기’와 ‘연기 끝에 취소’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접하고 있다. 2020년은 코로나19를 처음 접했고, 곧 이 상황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준 해가 아니었을까. 2021년의 우리는 더는 축제를 멈추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찾아 축제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천시 서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주민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을지 주민들과 끊임없이 논의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토론하며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축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문화도시 상생협의체 <비대면 축제 전환 관련 주민회의>(2021.08.)

인천서구문화도시지원센터는 시민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문화도시 상생협의체’(이하 상생협의체)는 2021년 1월 7명의 시민이 모여 기업이 지역사회에서 상생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을 제안하고, 문화적 수혜를 넘어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관점에서 시민과 기업이 함께 공동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업에 제안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지난 6월, 상생협의체는 시민-기업 공동프로젝트의 첫걸음으로 SK인천석유화학과 함께 다문화가족과 지역주민을 위한 <아름다운 문화동행 축제>를 기획하고 개최하였다. 상생협의체는 지난 축제에 이어 10월에도 SK인천석유화학과 함께 <다문화가족을 위한 시민문화축제>를 기획하고 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기획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 따라, 기관에서는 공공의 목적으로 추진하는 회의 외에 모임과 공식적인 행사는 4인 이하의 인원이어도 지양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비대면 활동이라는 대안을 마련하여 축제와 각종 사업, 모임은 비대면(온라인)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실천하고 있다.

축제의 비대면 전환이 단순히 공공의 편의를 위한 것이거나, 차악의 선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대면 축제 전환에 대한 실제 참여자인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상생협의체 주민회의에서 비대면 축제 또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안전한 축제 개최를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 오고 있다.

1. IT기기 활용이 어려운 정보취약계층에게 비대면 행사는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소외계층(다문화가족) 실태를 조사하여, 비대면 프로그램 참여를 위한 교육 운영 현황을 파악해 본 결과, 한글교육 외 다른 교육은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이에, 비대면 프로그램 참여를 위한 교육키트를 제작·배포하되, 너무 어려운 교육용 키트보다는 문화예술체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대면 프로그램에 접속하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키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문화예술 체험키트를 활용한 비대면 프로그램 체험 <아라노리터-원데이클래스>(2020. 12.)

2. 안전한 방법으로 콘서트(공연)를 관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주민이 공연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일상 속에 축제의 요소를 심어준다면 안전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생활 속 작은 축제의 개최가 가능할 것이다.

2021 찾아가는 공연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야외상설공연

3. 전면 비대면 축제로 운영하기보다는, 인원을 제한한 대면 축제와 비대면 축제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지침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축제 참여 인원을 축소해서 진행하고, 축제의 주요 공연 등은 비대면으로 관람하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021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축제>의 대면과 비대면 병행 현장

4. 코로나19 상황에서 주민들과 함께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 자체가 축제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민들이 직접 축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 제공을 통해서 수동적 향유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 참여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더 역동적이고 주민 친화적인 축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화도시 상생협의체 축제 기획 워크숍(2021. 3.)

이처럼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한 문화도시 상생협의체는 이를 바탕으로 ‘서구배문(배달의 문화)’이라는 콘셉트로 10월 축제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정보에 취약한 다문화 가족을 위하여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키트를 제작해서 배포할 예정이다. 키트 제작 및 택배발송이라는 단순한 과정을 넘어, 얼굴을 마주하여 사용법을 안내함으로써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프로젝트를 만들 것이다. 주민들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축제,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없는 소외된 다른 주민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온라인이라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을 활용하지 못하는 주민과도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축제란 모두가 함께 즐기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주민들의 비대면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비대면만이 능사는 아니며, 어디선가 우리가 만든 온라인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는 주민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바로 모두가 그리는 설레는 축제가 아닐까.

사진제공: 인천서구문화재단

공영지(孔瑛智, Youngji Kong)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지원센터




도시 축제의 재구성: 연수 문화도시 축제 〈연수℃ 페스타〉

도시 축제의 재구성연수 문화도시 축제 <연수℃ 페스타>

윤성진(연수 문화도시 축제 총감독)

하이브리드형 축제의 도전연수구는 코로나19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10월(10.1.~10.17.)에 개최되는 문화도시 축제 기획에 한창이다. 오프라인으로 3일간(10.1.~10.3.) 예정했던 축제는 대면과 비대면이 혼합된 하이브리드형 프로그램과 일부 비대면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나눠 준비되고 있다. 연수 문화도시 축제는 시민과 행정, 전문가가 함께 ‘문화도시형 축제’의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출발했다. 올해는 무엇보다 1년 반이나 만나지 못했던 시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신도시와 원도심 시민 모두가 하나의 연수 도시공동체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축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2021 연수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활력과 열정을 축제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민, 예술인, 마을 활동가들과 연수구의 기관, 단체, 협회 등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화도시 축제기획 아카데미 개막식을 준비하는 시민기획단

문화도시, 축제의 재구성은 왜 필요한가?대부분의 축제는 ‘공공의 필요에 따른 계획과 공공예산의 지원, 시민의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얼핏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도시들이 ‘지자체장 등 행정의 일방적 의사결정으로 만드는 공급자 중심 행사’, ‘공공지원에 대한 전적인 의존에 따른 재원 다각화의 한계와 재원확보의 불안정성’, ‘시민의 단순 관람, 소극적 자원활동 수준의 참여를 넘어서지 못하는 자발적 시민참여의 한계’로 주인 없는 축제가 만들어졌다. 축제가 도시민들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보다는 일회성 이벤트에서 기대하는 소극적 효과와 불확실한 지역 마케팅 효과에 만족하며 활력 없는 축제가 양산되어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부터 각 도시의 축제들은 스스로 전환과 대응을 고민할 시간도 얻지 못한 채 정부와 지자체의 방역지침에 따라 전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축제는 코로나19 감염을 전파시킬지도 모르는 위험한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안한 마음 한편에는 현장성, 공동체성, 일탈성을 가진 축제에 대한 갈망이 공존하고 있다. 축제에 대한 이중적 관점이 존재하는 지금, 기존의 축제 추진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축제 전환과 기후위기 시대에 축제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시기가 오히려 도시의 축제를 재구성해볼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혼돈된 상황에서 오히려 문화도시들은 지역의 축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재구조화를 시도해볼 기회를 맞이했다.
기존에 도전해보지 못했던 도시축제 추진체계의 전면적인 전환을 통해 수십 년간 고착되어 관주도,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 온 지역축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문화도시 축제는 ‘시민중심의 의제설정, 민간과 공공의 협력, 시민과 지역 예술인들의 주도적 참여’를 전제로 ‘시민이 결정하는 축제장소’, ‘시민의 제안하는 프로그램’, ‘시민이 기획자가 되어 결정하는 축제전략과 테마’, ‘시민 추진위원회가 축적해가는 축제 노하우’, ‘시민의 기록으로 만들어지는 지역축제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축제여야 한다. 연수 문화도시 축제는 재단의 과감한 결정과 연수구의 적극적인 지지, 시민주체들의 관심과 협력으로 주민주도형 축제 전문가들의 코칭과 멘토링을 통해 시민기획자들이 축제의 주체로 성장하는 축제 생산을 주도하는 새로운 축제 실험의 첫발을 내디뎠다.

문화도시에서 축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문화도시에서 축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첫째, 문화도시의 축제는 밀도 높은 주민 거버넌스 구축 및 시민참여 확대의 계기가 되고 또, 문화도시 추진을 위한 참여 전문인력의 발굴과 육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민주체의 참여와 성장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두 번째로, 문화도시의 테마, 특징, 가치를 시민과 외부에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며 지역홍보와 축제 준비과정의 아카이빙을 통해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 확산과 공유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문화도시의 연차별 사업성과의 정리와 결산,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서, 문화도시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객관적 지표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핵심 리더그룹과 문화도시 추진 주최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축제의 플랫폼 기능을 통한 지역 문화기획, 문화단체들과 문화도시 사업의 협력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결국, 장기적으로 문화도시 사업에 있어서 지역축제는 큰 과제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개막식 퍼포먼스의 기획부터 참여까지 함께하는 시민기획단

연수 문화도시 축제의 출발이렇게 축제는 살아있는 문화유기체이자, 지역문화생태계를 지키는 숲이며,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면서 지역의 문화적 총체를 발견하게 하는 인류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적 제도이자 현대적 제의이다. 문화도시에는 바로 이런 축제 원형성을 현대화한 시민공동체 중심의 축제가 하나씩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미션을 가지고 출발한 연수 문화도시 축제는 기존에 연수구에서 개최되어오던 전통축제인 <연수능허대문화축제>의 스토리가 상징하고 있는 도전과 개척정신, 소통의 가치를 반영하고 연수구가 가진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시민들의 열정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연수의 시민들이 오랜 연대와 활동으로 축적한 연수의 다양한 기억들을 반영하고, 연수 시민들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의미에서 연수 문화도시 축제의 명칭은 <연수℃ 페스타(Festa)>(연수씨 페스타)로 정했다.

연수 문화도시 축제 <연수℃ 페스타> 포스터

문화도시축제는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가?과정중심의 축제를 지향하는 문화도시 축제는 어떤 기획 프로세스로 구성될 것인지 기존 주민주도형 축제의 기획과정을 토대로 문화도시에 맞는 프로세스를 실험 중이다. 이 과정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Field > Engagement > Story > Target > Action Plan’의 5단계(F.E.S.T.A)로 제시하였다.
현장중심의 기획으로 지역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주민, 지역의 공간, 지역의 역사와 커뮤니티에 대한 매핑을 완성시켜가는 F단계(Field)가 준비과정의 첫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주민들에 대한 참여형 교육, 워크숍을 통해 실질적인 지역 전문인력으로 육성시키는 단계로 E단계(Engagement)라고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축제의 소재를 정하고, 축제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인 S단계(Story)이다. 주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획과 지역 네트워크의 참여가 중요한 단계이다. 네 번째로는 축제의 수요자를 구체화하고 목표와 성과지표를 공유하는 T단계(Target)로 올해 축제의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설정하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준비해 온 계획과 콘텐츠를 실행계획과 매뉴얼로 구체화하고 문서화하여 실행을 준비하는 A단계(Action Plan)로 이 과정을 통해 실행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한다. 이 5단계의 기획 프로세스는 과정중심의 축제기획을 위해 제시한 것으로 연수 문화도시 축제의 준비와 실행, 평가 환류의 전 과정을 통해 다듬어지고 정교화될 것이다.

수많은 ‘연수씨’를 만나는 연수 문화도시 축제현재 연수 문화도시 축제는 축제기획단과 축제자문단, 시민기획단과, 문화재단, 문화도시 센터직원들, 동주민자치회, KT&G상상유니브, 함박마을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연수구립 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생활문화동아리, 연수예술인협회, 해양경찰청, 연수문화원 등 연수구를 구성하는 많은 주민공동체, 기관, 협회, 단체들이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기대했던 축제를 완성할 수는 없겠지만, 현장에서, 또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서 이미 많은 ‘연수씨’들은 즐거운 축제의 긴장과 설렘을 경험하고 있다. 과정이 즐거운 축제, 시민이 먼저 즐거운 축제가 진정한 축제이다. 뜨거운 열정의 온도를 지닌 ‘연수씨’들이 주인으로 성장하는 축제, 시민(Citizen)들이 만들어가는 문화도시(Cultural City)를 경험하는 연수씨들의 축제인 <연수℃ 페스타>의 행복한 여정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길 기대한다.

사진제공: 연수 예비문화도시 축제추진단

윤성진 (尹盛鎭, Paul Yun)

1996년부터 25년간 축제현장을 지켜온 축제전문가로, 축제감독, 축제연구, 축제교육, 평가와 컨설팅 등 건강한 축제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사)한국문화기획학교의 교장으로 기획교육과 워크숍, 멘토링을 통해 청년 문화기획자와 축제전문가를 양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오고 있다. 축제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최근까지 한강몽땅 축제 총감독, 서울밤도깨비야시장 총감독, 서울 남산골한옥마을 총감독을 맡아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를 만들어왔으며, 올해 5월부터 연수 문화도시 축제 총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tozio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