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경X이채은 ‘INVISIBLE.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의’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인 전보경, 이채은 전이 인천아트플랫폼 B동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비 오는 휴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 전경은 한산했지만, 전시장안은 여느 전시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얻어 갈 수 있는가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와 연결될 것이다.

전보경 이채은 <In-visible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의> 전시는 전시장을 들어서는 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이곳에서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라고.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보이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까? 무엇이 먼저인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하는 것이 먼저라고 답할 것이다.

전보경의 토템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위한 준비든지 아니면 어떤 일을 마무리한 다음 그 일에 대한 흔적이든지. 시작과 끝에 남겨진 채로 존재하는 사물들은 실제 그 본질적인 ‘일’,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시작과 끝에 남겨진 단편의 조각들을 근거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한다. 마술사의 준비물을 보면서 우리는 마술사가 앞으로 어떤 마술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상상한다. 보이는 준비물은 보이지 않는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된다.

그리고 도시에 흩어져 있는 갖가지 사물들을 수집한 작가는 현장의 사진과 함께 현장에 놓인 사물들을 가지고 와서 재배치하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이 사물들은 무엇인가요? 보여지는 사물들을 통해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보이시나요?

어쩌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은 마치 거대한 빙산이고 자신의 모든 몸뚱어리는 바닷 물 아래에 숨긴 채, 꼭대기의 일부분 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부분만을 바라보면서 실제 빙산의 크기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짐작할 수 있을까? 세상의 진실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을 수도 있음을, 보이는 것들의 일부를 가져와 우리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실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수도 있음을.

이채은 작가의 회화와 설치 작품들 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2층 천장에서부터 스커트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은, 바람에 흔들거리는 여자의 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텔레비전 두 개가 놓여 있다. 아래 받침대로 놓여있는 텔레비전은 작동하지 않으며, 위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익숙한 영상이 반복하여 재생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도 보이고, 눈에 익은 영상들이지만 왠지 낯설어 보이는 영상들이 지나간다. 익숙한 영상들을 익숙하지 않은 형태로 접하는 동안, 이 영상들 속에서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림들을 보게 된다. 실제로 존재했었지만, 보이지 않아,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았던 사실들 속에 실은 보이지 않는 진실이 숨어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채은의 회화작품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과 ‘트위스터’에서는 얼굴이 가려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림은 화려한 색채를 지니고 있지만, 그림 속의 사람들의 얼굴이 갈라지고 확인할 수 없다. 보여지는 얼굴이 없으니, 그림 속의 화자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대체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엇을 향하는가? 실제로는 보이는 것들을 작가는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게 처리함으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보이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매력이다.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청춘, 빛나는 무대로 나오다! <청춘마이크>

나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2월과 3월 사이에는 전국 곳곳에서 그해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 공고가 줄줄이 올라오는 시기다.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가가 굶어 죽을 일은 없다지만, 많은 예술가가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몰두하면서 그리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이나 공연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가격을 매겨서 한번 팔 때 마다 정해진 금액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예술가들에게 활동을 지원해주는 사업들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매달 마지막째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저렴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혜택을받는 사실을 흔히 알고 있는데, 이 또한 ‘문화가 있는날’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춘마이크>도 그런 사업에 해당한다. <청춘마이크>는 학력, 경력, 수상 실적과는 상관없이 실력과 열정을 갖춘 청년 문화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주고, 그에 맞는 지원을 제공해준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아마도 여러분이 꽤 좋은 공연을 길거리에서 봤다면 <청춘마이크>였을 가능성이 높다. 6월의 마지막째 주 수요일이었던 27일은 때마침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송도 트라이보울 야외 공연장은 탁 트여서 넓고 시원하다. 장마주간이었던 지난 주에 다행히도 수요일에만 비가 멎었다. 그날의 공연은 다양한 장르의 3팀으로 구성되었다. 수요일 오후 6시 트라이보울 앞에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색색의 티셔츠를 맞춰 입은 청년들이 야외공연장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트라이보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는 현대무용에 대중가요와 전래동화를 혼합하여 창작무용을 선보이는 ‘전래무용단’ 공연이었다. 친숙한 노래에 자신들만 고유한 색으로 각색한 전래동화를 연기와 춤으로 표현하였다. 익살맞은 표정이나,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현대무용 특유의 몸짓이 섞여 굉장히 새로운 시너지를 냈다. 각색한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 춤을 추듯 연기하는 장면은 짧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흰 천을 손에 쥐고 동작을 취하는 살풀이춤을 마지막으로 전래무용단의 화려했던 공연이 끝나고, 이번에는 귀여운 옷차림의 여성이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벤트시스터즈’는 복화술 공연을 하는 팀이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복화술 공연이 생소했기 때문에 굉장히 눈을 빛내면서 보았는데, 주변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리를 내서 던지는 예술이라는 복화술에 대한 짧은 설명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따릉이’라는 인형 친구가 ‘동글이’라는 인형 친구에게 고백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는 스토리로 진행되었다. 인형과 능청스럽게 대화하듯 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놓고 공연에 집중했다. 목소리 하나로만 진행되는 공연이었지만, 인형을 비롯해서 화이트보드나 가면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도구들과 재치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여성 두 분이 들어가자 이번엔 새까만 정장을 입은 남성 두 분이 이어서 등장했다. 마치 어떤 공연을 진행할지 예측하기가 점차 어려웠다. ‘전래무용단’과 ‘벤트시스터즈’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었지만 무슨 공연을 하는 팀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준비물은 많은데, 뭘까. 처음엔 요요였다. 그리고는 저글링이고. 곤봉도 돌리고. 아코디언 비슷한 악기도 연주하고. 웃기기도 하고. 근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정말 뭘까. 굉장히 재밌는데, 이걸 무슨 공연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와중에, 드디어 공연은 끝나고 팀을 소개했다. ‘서커스 코미디’를 하는 ‘팀 퍼니스트’의 공연이었다! 서커스 코미디 공연. 어쩜 이렇게도 본인들의 공연을 한마디로 잘 표현했는지. 

3팀 모두 공연을 잘하는 팀이었다. 또한, 특정 연령층에만 어필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 가족, 커플, 남녀노소 모두가 즐겁게 몰입하면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짧다는 점이 버스킹의 장점이다. 이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래무용단’은 공연 특성상 춤을 춰야 하므로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밖에 없지만, ‘벤트시스터즈’와 ‘팀 퍼니스트’는 계속해서 관객을 참여시키고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질 높은 공연을 발걸음 닿는 곳에서 시간만 내면 볼 수 있는데, 그게 마침 우리 집 앞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아닐까. 청년 예술가와 관객을 이어주고,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며,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 지원해준다. 예술가 또한 직업이다. 월급을 받지 않지만.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노력’에 정당한 대가를 주고 그들의 일에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지원사업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예술이니까!

 

글/ 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큐레이션 콕콕] 미세한 먼지들

지난 6·13 지방선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미세먼지’였습니다. 환경문제는 경제나 복지에 밀려 뒷전인 경우가 많았는데 미세먼지 유해성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면서 10대 공약에 미세먼지 이슈가 포함됐죠.

더불어민주당은 비산먼지 제거를 위한 청소차 보급 확대, 노후 건설기계 저감장치 부착 등으로 도로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친환경 선박 육성, 땅에서 전기를 배로 공급하는 육상전원공급설비(AMP) 설치 확대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고요. 바른미래당은 굴뚝원격감시체계(TMS)를 실시간 공개해 사업장 굴뚝의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지방자치단체에게 배출부과금을 넘기겠다고 발표했었네요.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미세먼지 수치(44㎍/㎥)는 프랑스 파리(21㎍/㎥), 미국 로스앤젤레스(33㎍/㎥) 등 해외 대도시보다 높았습니다. 2016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8㎍/㎥로, 도쿄와 런던의 17㎍/㎥, 20㎍/㎥의 두 배가 넘었죠.

미세먼지가 빅이슈가 된 건 한두 해 전 일이 아닙니다. 미세먼지나 황사가 우리나라를 덮을 때마다 정부는 ‘중국의 영향’ 운운하면서 어물쩍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로 말미암은 국내 발생 매연도 만만치 않죠. 미세먼지는 석탄·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태울 때나 자동차 배기가스, 건설현장의 날림먼지, 공장 내 분말 형태의 원자재, 부자재 취급공정에서의 가루 성분, 소각장 연기 등에서 대부분 발생합니다.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황산화물이나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대기 중의 수증기, 암모니아와 결합하면서 미세먼지가 생성되죠.

전 세계 미세먼지 오염지도를 보면 인구집중지역이나 산업화 지역에 미세먼지 발생량이 많습니다.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 중동 등이 이에 해당하죠. 현재 전 세계 인구는 70억 명 정도로, 중국 15억 명, 인도 11억 명, 동남아 6억 명, 중동 5억 명 등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중국과 인도, 중동 주변에 살고 있군요.

인구 15억 명의 중국은 사정이 어떨까요.
평소 마라톤을 즐기던 그린피스 베이징사무소의 모 직원은 초미세먼지 측정기를 부착하고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미세먼지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측정기 필터는 6시간여 만에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그해 겨울,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수치는 880㎍을 넘어섰고요. 그린피스 베이징사무소는 초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국 사회에 대기오염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이끌어내기 시작합니다.

2012년 베이징대학교와 함께 발간한 ‘위험한 호흡’에서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시안 등 중국 4개의 지역이 초미세먼지로 말미암은 조기 사망자가 8천5백여 명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대기오염과 건강 유해성에 관한 연구한 이 보고서는 중국 내 연구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국내외의 관심을 받았죠. 관련 연구는 이어졌고 3년 뒤인 2015년, 중국 주요 31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 두 번째 보고서에서는 25만 7천 명이 초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인구 10만 명 중 90명꼴입니다.

2013년 그린피스의 ‘대기오염방지 행동계획’에서는 2017년까지 초미세먼지 수치 대폭 낮추기, 석탄 소비량 통제 등의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와 학계, 시민들의 노력과 정책 변화로 실제 중국의 대기 질은 개선되고 있으며 지난해 4분기 베이징과 톈진 주변 도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전년도보다 33.1%가량 나아졌습니다. 그 배경에는 경제 시스템의 변화, 청정에너지 산업 성장, 철강 및 시멘트 생산량 제한, 550만 가구의 난방 연료 전환(석탄→가스 및 전기) 등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 감독과 엄격한 정부 규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초미세먼지가 최악인 날이 많습니다. 에너지 시스템을 태양광이나 풍력 등으로 전환하고, 청정한 경제 구조를 갖추면 머지않아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볼 수 있겠죠.

세계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입니다. 지난 5월 인도에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었고 한 달 만에 27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외출 자제 및 공사를 중지하고, 소방대를 배치해 도시 전역에 물을 뿌렸지만, 여전히 많은 인도인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2016년 초미세먼지 농도에서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칸푸르가 연평균 173㎍으로 대기 질이 가장 나쁘고 힌두교도들의 성지 바라나시가 151㎍, 수도 뉴델리도 143㎍의 수치였습니다. 인도 대기오염의 주원인은 화석 연료 연소로 보고 있는데,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인도가 공장, 화력발전소, 자동차의 도입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규제 미비, 오염방지 기술의 부족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네요. 인도 정부는 태양광 발전 설치, 전기차 등의 도입으로 정책 개선의 노력을 보입니다.

내년 하반기에 개장하는 인천항 신국제여객부두에 대기오염물질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육상전원공급장치(AMP)가 설치됩니다. AMP는 부두에 대기 중인 대형 선박이 시동을 끌 수 있도록 육지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입니다.

항만에 들어온 배는 정박 중에도 냉동·공조시스템을 가동해야 하므로 벙커C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미세먼지·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황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이 대량으로 발생하죠. 인천에서 야기되는 미세먼지의 13%가 선박 배출량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정부는 ‘범부처 미세먼지 연구개발 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난 5월 미세먼지 체감을 위한 아이디어를 접수, 심사했습니다. 대학생, 대학원생, 연구자, 시민들이 낸 아이디어 140여 건이 모였고 이 중 9건의 국민 제안을 선정했습니다.

-미세먼지 정화를 위한 토양 필터, 식물, 산화 티타늄 등 다양한 요소 기술들을 융합한 ‘미세먼지 바리케이드’를 도로변에 설치
-초등학교 유형별로 공기 질 현황과 미세먼지 노출량 등을 분석하고, 이산화탄소(CO2) 농도, 에너지 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기정화 장치 최적화 시스템 개발
-도로를 주행하면서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필터 개발
-공공 버스 등 대중교통에 부착해 시범 운용하는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
-버스 정류장에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미세먼지 알림 친환경 디스플레이를 설치, ‘미세먼지 청정 스마트 거리’ 조성
-안전한 농산물 생산을 위한 기술개발과 가축 분뇨 퇴비화 과정에서 미세먼지 저감 제안

도시 공사 현장 주변에 원예 작물을 활용한 그린링(Green-Ring)을 구축하거나 식물을 활용한 다양한 공기 정화 아이디어가 돋보였습니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국민의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하고 관계 부처와 협업해 국민이 참여하는 ‘현장 중심의 미세먼지 R&D 사업’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중국 미세먼지, 어디까지 들어봤니?
    허핑턴포스트, 2018.6.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미세먼지 해결방안 국민 아이디어 9건 선정
    세계일보, 2018.6.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토양·식물 활용 ‘미세먼지 저감’…국민제안 9개 사업 내년 실용화
    뉴시스, 2018.6.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죽음 부르는 미세먼지… 인도는 ‘대기오염’과 싸움 중
    그린포스트코리아, 2018.6.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서울 ‘미세먼지 농도’ 해외 대도시보다 배로 높다
    메디컬투데이, 2018.6.1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미세먼지 잡아야 표심 잡는다”…중국 대책에는 온도차
    노컷뉴스, 2018.5.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핫이슈 ‘미세먼지, 도시숲이 해결책이다’ 개념과 세계 각국 현황] 흡입되는 미세먼지 많아 인체 치명적
    월간 산, 2018.5.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이미지
이재은




이영욱 사진전 스케치

2018.6.18.(월)~6.30.(토), 오전 11시~오후 6시
관람료: 무료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주최/주관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




개경 흥왕사와 강도 흥왕사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태조 2년(919) 송악산 남쪽에 도읍을 정한 후 제일 먼저 행한 일이 궁궐을 짓고 관청을 설치하며 행정구역을 구분한 것이고, 두 번째로 한 일이 도읍에 10개의 절을 짓는 것이었다. 태조가 새 도읍 개경에 많은 절들을 한꺼번에 창건한 것은 ‘부처가 도와주는 나라’라는 것을 과시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성종 1년(982)에 최승로가 “부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닦는[修身] 근본이요, 유교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라 하여 유교이념에 따라 통치할 것을 건의했다. 태묘와 사직 등 유교적 문물제도 정비에 힘썼던 성종 때를 제외하면 태조 이래 개경과 경기에는 새로운 절들이 꾸준히 창건되었다.

광종은 재위 2년(951) 부왕과 모후를 위해 봉은사와 불일사를 각각 창건하여 원당(願堂)으로 삼았고, 현종은 재위 9년(1018)에 현화사를 창건하여 부모의 원당으로 삼았다. 역대 왕들이 부모의 원당 건립을 중시한 것은 원당을 통해 지지세력 결집과 불교계에서 왕의 영향력을 강화하려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종의 아들인 문종이 재위 10년(1056)에 개경 남쪽의 경기 군현인 덕수현의 치소를 옮기고 그 자리에 국력을 기울여 화엄종(華嚴宗)의 흥왕사를 창건한 것은, 한기문 교수에 따르면 국왕 자신의 원당으로 삼으려는 명분이었지만 현화사의 유가종단(瑜伽宗團)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기문, 1998 『고려사원의 구조와 기능』, 민족사)

흥왕사는 12년에 걸친 공사 끝에 문종 21년(1067)에 2,800칸 규모로 완공되었고 3년 뒤에는 절을 보호하는 성도 쌓았다. 공사 기간 중인 문종 16년(1062)에는 흥왕사 창건이나 능묘 조성과 같은 경기 군현에서 벌어지는 각종 국가적 역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개성현을 개성부로 승격시켜 경기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려고 하는 제도 개편도 수반되었다.

『고려도경』에 흥왕사는 “국성(國城) 동남쪽에 있으며, 장패문(長覇門)을 나서 2리 가량을 가면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만난다. 사찰의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하였다. 송나라 사람 서긍이 보기에도 흥왕사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개경 나성에서 흥왕사까지 실제 거리는 2리가 넘는다.)

김부식은 「흥왕사 홍교원에서 화엄회(華嚴會)를 열며 올린 기도문」에서 “흥왕사는 문종 인효대왕(仁孝大王)께서 발원하여 창건하시어 불사(佛事)를 장엄하게 했던 곳이며, 대각국사(大覺國師)께서 교리를 널리 베풀어 큰 이익을 이룬 곳”이라 했다. 상주하는 승려가 1,000명이 넘고 금탑과 이를 보호하는 석탑 등이 있었던 고려전기 흥왕사는 김부식의 언급처럼 무엇보다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이 고려와 송, 요, 일본의 당대 불교를 총결집하여 속장경을 간행한 곳으로 유명하였다.

흥왕사에는 이후 최충헌의 뒤를 이어 집권한 최이가 고종 10년(1223)에 황금 200근으로 13층탑과 화병(花甁)을 만들어 안치하기도 하였다.

고종 19년(1232) 몽골과의 항전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자 홍왕사도 강화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강도시기 덕수현의 흥왕사는 전란으로 완전히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개경 환도 이후 흥왕사는 충숙왕 17년(1330) 복구되어,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 때 안동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와 잠시 머무르기도 했다. 조선 초에는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개풍군 봉동면 흥왕리에 있는 흥왕사지는 194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간단한 발굴을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가람은 중심곽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두 개씩의 또 다른 가람을 갖는 형식의 사찰이었다. 중심곽은 동쪽과 서쪽에 평면 8각의 목조탑을 배치하고, 그 뒷쪽 중앙에 금당, 금당 뒤에 규모가 큰 강당을 배치하였으며, 탑 남쪽 중앙에 있는 중문에서 동서로 뻗은 회랑이 북으로 구부러져서 강당 좌우 앞쪽까지 확인되었다. 중심곽 좌우에는 역시 문과 법당이 배치된 별도의 가람이 있었으나, 그들 건물에 대한 상황은 조사가 충분치 못하여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다. … 흥왕사 탑의 형식은 고구려의 기본적인 탑 형식인 평면 8각의 탑이나, 가람은 통일신라에서 보편화된 쌍탑식 가람 배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 17, 252∼255쪽)

강도의 흥왕사는 『고려사』 등의 기록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김형우 교수는 “마니산 남쪽에 ‘흥왕리’라는 마을이 있고, 『속수증보강도지(續修增補江都誌)』에 그 마을의 흥왕사 터가 전해오고 있다. 화도면 흥왕리 구 흥왕초등학교의 동쪽 담장을 따라 동네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산을 향해 올라가면 왼쪽의 계곡 건너편에 절터가 있다. 절터의 동쪽과 서쪽의 양쪽에 계곡이 흐르는 완만한 언덕에 3단의 축대로 경계가 구획되어 있다. 높이가 2m 이상 되는 거대한 축대와 계단석, 건물 기단부의 장대석, 초석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중단과 하단 축대 사이에는 석탑의 옥개석과 갑석이 쓰러진 채 땅에 박혀 있어서 절터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고 한다. (김형우, 2005 「고려시대 강화의 사원 연구」 『국사관논총』106) 

흥왕사지에서 서쪽으로 500미터 거리에 향토유적 13호로 지정된 고려이궁지가 위치하고 있는 점도 이 절터가 강도시기에 창건된 흥왕사였을 개연성을 더해주고 있어 관련성이 주목된다. 고려시대 도읍 일대 절들은 단순히 기도·수행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군대 주둔지나 정치 모임의 장소, 별궁(이궁) 등 군사적 혹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박윤진, 1998 「고려시대 개경일대 사원의 군사적·정치적 성격」 『한국사학보』3·4 참조 바람)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39-1번지 일원에 있는 강도의 흥왕사지는 2009년과 2010년 인천광역시립박물관과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지표조사를 실시했을 뿐 더 이상의 학술조사나 유적 정비 없이 현재 방치되어 있다. 개경의 흥왕사지와 관련해서는 리창진·송광일의 「흥왕사 유적조사 보고」가 2012년 『조선고고연구』에 발표된 바 있다.

강도의 흥왕사지 구조가 개경의 흥왕사지 구조와 어떤 상관성이 발견된다면 이는 사찰구조 뿐만 아니라 개경과 강도의 도시구조의 상관성을 밝힐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조속한 시일 안에 이를 위한 남북공동의 연구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이미지
정학수(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축제
라트비아 ‘2018 BALTICA’ 축제에서 ‘아리랑’을 외치다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국제교류사업인 <인천아라리, 발티카로 떠나는 예술여행>에 참여한 작가의 소식을 싣습니다.’

 

발트3국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는 매년 돌아가면서 BALTICA 축제를 주최한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이 BALTICA 축제에 참가한 것은 2007년 에스토니아, 2017년 리투아니아에 이어 이번이 3번째이다. 3개의 나라에서 열리는 BALTICA 축제에 모두 참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인천문화재단의 국제교류 지원으로 6월 16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라트비아의 ‘2018 BALTICA’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라트비아는 발트해를 끼고 있는 발트3국 중의 하나이며 인구 190만의 아주 작은 나라이다. 인천이 인구 300만의 도시이니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이 축제는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열렸고 축제기간에 도시는 전통의상을 입은 지역사람들로 북적였다. 최근 한국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관광을 온 한국 사람도 간간이 마주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60명밖에 거주하고 있지 않고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도 불과 3개월 전에 문을 열어 이제 막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시작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 교류의 시작점에 축제 무대를 통해 우리나라의 그리고 인천의 음악을 전하고 왔다.

개관 3개월이 된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에서 전체 단원과 한성진 대사 대리님과의 간담회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축제가 열릴 때마다 모든 참가팀을 초청해 반겨주는 라트비아 대통령 부부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낮이 가장 긴 날, 남은 밤마저 낮으로 물들이다.
2018 BALTICA 축제의 가장 큰 테마는 바로 ‘하지(Summer Solstice)’이다.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시기를 말하며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백야’와 비슷하다. 밤 11시가 넘어야 어스름 해가 지기 시작하고 새벽 3시쯤 해가 다시 뜨기 시작한다. 생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신기한 자연현상이 마냥 신기하기도 하고 덕분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어리둥절 뜬 밤을 지새우는 경험도 해보았다. 이 축제는 이런 현상을 고스란히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이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시기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특별한 치즈와 맥주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이 축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Ligo’ 노래를 함께 어울려 화음을 맞추어 부른다. 축제 기간 중 어딜가나 사람들이 ‘Ligo’ 노래를 부르는 통에 우리는 가사의 의미를 물어보기도 전에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나중에 우리팀 가이드를 통해 물어보니 ‘Ligo’ 는 “함께하자”, “Let’s do it”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리랑을 부르면 마음으로 통하고 함께 부르듯이 라트비아의 ‘Ligo’도 같은 결을 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서 가장 쾌청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즐기고 있었고 같은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에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라트비아의 여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하지 기간에 만들어 먹는 특별한 치즈를 잔치마당 팀에도 나누어 주고 있는 라트비아 꼬마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하지 기간에 만들어 먹는 특별한 맥주를 축제 관람객과 함께 나누는 모습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축제에 참가하며 ‘Ligo’ 노래가 들리는 것 외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바로 꽃과 식물들이었다. 일 년의 계절 동안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이 시기를 라트비아 사람들은 너무도 좋아했다. 예로부터 이 시기에 여자들은 곳곳에 피어있는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다녔고 남자들은 나뭇잎을 엮어 머리에 쓰고 다녔다고 한다. 축제 중에도 전통의상을 입은 라트비아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었다. 축제 무대를 꾸미고 구역을 알리기 위한 장치들도 모두 꽃과 나뭇잎으로 장식했다. 거창하고 세련된 무대는 아니었지만, 자연과 어우러지며 풀 내음 나는 무대가 훨씬 정감이 갔다.

축제 메인 무대에서 Ligo 노래를 부르는 라트비아 지역 예술단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초록빛 가득한 축제 메인무대 주변의 시설물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어른들, 아이들 모두 머리 위에 싱그러운 꽃이 피어있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직접 만들어본 화관, 그리고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라트비아 지역예술단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로 다름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축제
이번 축제에는 총 10개국의 해외 초청팀(한국, 중국, 미국,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조지아, 폴란드, 벨라루스, 독일, 헝가리)과 200여 개의 라트비아 지역예술단이 참가했다. 그동안 많은 해외 초청공연을 다녀봤지만 200개가 넘는 지역예술단이 참가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라트비아 각 지역에서 모인 예술단들은 전통의상과 함께 화관을 쓰고 조금씩 다른 ‘Ligo’ 노래를 불렀다. 마치 아리랑을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과 같이 지역별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200여 개의 예술단이 축제 기간에 곳곳에서 공연했고 축제는 ‘Ligo’ 노래로 넘쳐났다. (이 축제를 통해 ‘Ligo’ 노래 하나는 확실히 배우고 왔다.) 대부분 노래를 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공연이 길어지면 지루할 법도 했지만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통의상을 입고 축제에 참가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친절히 인사하고 기꺼이 사진도 함께 찍어주면서 축제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또한 해외 초청팀의 공연들도 다른 나라의 문화와 예술적인 부분들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즐겨주었다. 축제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어느 누구의 잇속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 30주년을 맞은 BALTICA 축제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라트비아 지역 예술단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숲 속에 펼쳐진 라트비아 전통춤 워크숍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라트비아 문화부 장관의 초청 자리에서 한국 참가팀의 소감을 전하고
아리랑을 불러 소개하는 서광일 대표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가슴 벅찬 문화 국가대표의 무대
잔치마당 공연의 주제는 ‘인천아라리’로 인천의 소리를 전통예술로써 표현했다. 인천 바닷가에서 불리던 ‘배치기’, ‘술비타령’의 노래와 함께 만선 풍어를 기뻐하던 풍물굿과 춤을 선보였다. 사물 악기의 압도적인 사운드와 상모놀이의 퍼포먼스는 외국인들의 시선을 가히 사로잡았다. 악기를 잘 치기보다 잘 즐기는 공연이 되고자 말 한마디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모두가 손뼉 치며 참여하는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뒤로한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하는 공연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고유의 신명과 흥을 손짓과 발짓, 북채와 장구채 끝으로 전할 때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국가대표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숨이 턱으로 차오를 때까지 달리는 선수들의 마음은 무대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장구를 메고 뛰는 연희자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입장하는 축제 개막식의 참가팀 퍼레이드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전광판에 소개되는 한국의 잔치마당팀 소개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축제 메인무대 공연을 하고 있는 잔치마당팀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해외 초청팀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한국의 잔치마당 공연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가보지 않았던 나라에 가는 것,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 사람들과 음악으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렘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도 생경한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전하는 가슴 벅참은 이후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동력이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의 공연을 펼치므로 우리나라 음악의 우수성과 독창성 그리고 누구의 음악과도 어울릴 수 있는 포용성을 알리고 인정받는 것이 우리가 해외에서 공연하는 이유이다. 축구 국가대표가 국민의 응원으로 힘을 내어 골을 넣듯이 우리의 음악과 예술로 국가대표가 된 공연자들에게도 뜨거운 응원이 함께해주길 바라본다.

 

 

신희숙(申熙淑, Shin hee sook),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경영기획팀장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였고 동대학교 문화대학원 지역문화기획학과를 수료하였다. 인천문화재단 전문인력 양성사업으로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에서 기획․홍보 업무(2009~2011)를 시작했고 인천문화재단 문화교육팀 문화이용권사업을 담당(2012~2015)했었다. 현재는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에서 경영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 BALTICA’ 축제에 잔치마당팀의 통역으로 참가했다.




이채은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이채은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에서 순수회화를 전공했다. 회화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조형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인물과 사물, 공간과 시간의 비순차적 동시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혼재된 이미지의 이면적 의미를 추적하는 과정이다. 과거와 현재의 낯익은 풍경 옆에 그려진 비현실적이고 거짓말 같은 실시간 뉴스 속 이미지들의 접점은 작가가 의도한 질문의 시작점이다.

 

 

# 전시 소개
<In-visible(보이지 않는/보이는 것의)>은 인천아트플랫폼 9기 입주작가 이채은과 전보경의 협업전시로 6월 28일(목)부터 7월 22일(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진행된다.
이채은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낯익은 풍경들 옆에 그려진, 비현실적이고 거짓 같은 실시간 뉴스 속 이미지들의 접점에서 출발하여 회화와 오브제 작업, 그리고 대형 설치물과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전보경 작가는 인천과 유사한 배경을 가진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도시의 역사적 변천과 개인사의 관계에 대해 몸짓과 문학으로 재구성한 영상 작업을 펼치며 더불어 인천아트플랫폼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이미지를 전시한다.
두 작가는 전시를 통해 이질적인 것의 연결성, 보이는 것 그 너머의 비가시성, 기억과 현재,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복잡하고, 기이하면서 신비스럽고, 불안하고도 모순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함께 전시에 참여하는 ‘전보경’ 작가 소개 (바로가기 ▶)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사람들은 같은 뉴스 보도를 보고도 서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고, 해석도 각자 다르다. 나는 주로 작품을 제작하는 그 시점에 가장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 또는 아주 큰 사건 등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이야기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의 범람 속에 살면서 많은 장면을 마주한다. 그중 유독 우리를 매료시키는 이미지와 이야기가 존재한다. 특히 내가 읽은 소설이나 기사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글귀들은 내 작업의 실마리가 된다. 그 글귀들은 나에게 동서양의 고전 작품을 떠오르게 하거나,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들과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이 혼합하여 작업을 구성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 한 문장 또는 뉴스의 어떤 문구에서 문득 떠오른 동서양의 고전 작품들은 다시금 지금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 연속적이지 않은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의 영감(힌트)과 생각의 끝에 떠오른 이미지들은 논리적으로 연상할 수 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처음과 중간 그리고 그 결과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의 결합은 필연적인 과정이며 결과물이다.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나의 작업 중 ‘트위스터 놀이(Twister Game)’ 시리즈는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나 명화를 재해석하거나 뉴스 이미지를 혼합하여 제작하였다. 이는 관객에게 해석의 폭을 더욱 넓히고자 한 시도였다. 작품 속 등장인물과 사물들은 시공을 넘나들며 복합적인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거나 화제를 제시하고, 작품 속의 다양한 상황을 통해 현대에 짙게 깔린 불신과 불안의 정서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노출되는 수많은 의미의 필연적인 연결고리를 찾고 시각적 또는 비시각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연작의 제목인 ‘트위스터(Twister)’라는 단어는 게임판 위의 사람들이 얽혀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Twisted’ 즉, ‘뒤틀리고 왜곡된’이라는 의미에 더욱 주목한다. 그림 곳곳에는 다양한 시점으로 트위스터 놀이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군무를 추거나 집단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지럽게 표현되어 있다. 주요한 그림으로 사용된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502)’의 <마술사(Conjurer)>에서 빨간 망토를 입은 구경꾼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속고 속이는 관계’에서 희생양을 상징하며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트위스터 놀이를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이나 불특정 혹은 설정된 배경을 통해 가짜뉴스, 왜곡이 난무하는 현실의 조각들을 마주한다. 나는 관객들이 그 조각들을 쫓아가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진짜 실체의 단면을 마주하거나 전혀 새로운 각도, 익숙했던 이미지들을 떠올리고 또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잠들 때까지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방대한 정보를 미처 다 수용하지 못한 채 단편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다소 얕지만 많은 분야의 정보를 접한다. 나는 이러한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조합하고 비틀이며 작업을 시작한다. 시각정보의 홍수 속에서 뒤죽박죽 부유하던 어떤 생각은, 책 한 구절을 읽거나 스마트폰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작업은 사회적인 개인의 시선과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작업 구성 형태를 딱히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는다. 작업하는 중에도 언제든 바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나는 작품 속에 누구나 자신만의 연결고리를 지을 수 있을 만한 공간 또는 사물, 사건들의 스토리 전개에 따라 이미지를 배치한다. 관객들은 작품에 드러나는 리얼리티의 허구성, 주관성, 불연속성은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우연의 일치, 혹은 속임수, 또는 무대의 한 장치인 것처럼 인식할 수 있다. 나는 관객들이 작품에 그려진 세상을 공감하거나 자신을 투영시켜보길 바란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내가 연구했던 예술사의 배경 지식이나 상징물에 대해 모두 알기도 어렵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익숙하거나 낯선, 혹은 그 경계 어디쯤 있는 모호한 모습 속에서 감춰진 이면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시선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감상하고 해석하길 바란다. 나는 내 작품이 관객의 내면에 작게나마 동요를 일으키고, 새로운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나는 예술이란 텍스트가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스스로 갈 수 없는 영역까지 자신을 데려가는 것 혹은 그곳까지 생각을 미치게 만드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앞서 이야기했던 <트위스터 놀이> 시리즈에서와같이 친숙한 영화나 명화를 오마주(homage, 인용)하거나, 각종 대중문화 코드를 패러디(parody) 또는 가장 ‘핫’한 이슈를 담은 뉴스 이미지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 작업방식은 관객이 작업을 더 폭넓고 입체적으로 해석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보는 이의 내면을 건드리고 새로운 사고의 촉매제(Trigger) 역할을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내게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매체는 회화이다. 최근에 시도한 대형 조형물과 같은 설치 작업들은 평면회화가 가진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라기보다 오히려 회화 속 세상의 공감각적 확장의 가능성 때문에 제작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전통적인 회화와 영상작품들을 제작하고, 더불어 회화에 등장하는 일상적 또는 비일상적 사물을 설치로 구현하거나, 영상이나 텍스트 원형을 반복 교차하는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나는 다층적 해석과 음모론이 공존하는 지금,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작가적 상상은 서로 어떻게 얽히고 구분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거와 현재의 낯익은 풍경 옆에 그려진 비현실적이고 거짓말 같은 실시간 뉴스와 그 속 이미지들의 만남은 내가 의도한 질문의 시작점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다고 느끼는 진리는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작업이 우리의 현실을 다각도에서 반추해볼 수 있는 장치가 되길 바란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자세히 보기 ▶




소개합니다.

[소식 1] 음악플랫폼 개관 기획전 <인천 합창의 궤적>

인천문화재단 인천음악플랫폼(대표이사 : 최진용) 2018년 개관 기획전 <인천 합창의 궤적>이 6월 28일 인천음악플랫폼 음악홀에서 시작된다. 인천음악플랫폼은 지난 1월, 옛 조선상업은행 터인 (舊)동인천 등기소 건물에서 제막식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념하여 많은 음악인이 활동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쌓은 인천 합창의 역사와 합창단을 조명한다. 인천 음악의 현주소를 찾고, 합창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3개의 섹션에서 60여 점의 합창 관련 자료가 선보인다. 1부에서는 근대 음악의 시작을 확인할 수 있는 「찬미가」(1897, 내리교회 소장), 「초등창가 제6학년용」(1935, 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이, 2부에서는 전국 최초로 합창된 헨델의 「메시아」(1954, 내리교회 소장) 악보,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합창곡 악보(1962년곡, 1980년 재편곡, 최영섭 소장)가 전시되며, 3부에서는 인천시립합창단의 「창단 공연」 프로그램(1981, 인천시립합창단 소장), 인천시립합창단이 재창단 되며, 창작곡으로 발표되었던, 「인천 Mass(미사)」(1995, 인천시립합창단 소장) 음원과 악보가 주요 컬렉션으로 공개된다.

개항장플랫폼팀(032-455-7178)

 

[소식 2] 2018 한국근대문학관 작가와 만나는 토요일 <인천, 시인과 만나다 : 김민정 x 강경석>

○ <인천, 시인과 만나다> 프로그램 안내
    – 프로그램 : 작가와 만나는 토요일
     – 주 제 : 인천, 시인과 만나다
     – 일 시 : 7월 14일 17:00~18:30
     – 장 소 : 한국근대문학관 2층 로비
     – 신 청 : 재단 및 문학관 홈페이지(바로가기 ▶), 전화

한국근대문학관(032-773-3801)

 

[소식 3] 2018 만국시장 7월 <내가 그린(Green) 마켓>

매달 주제가 바뀌는 색다른 플리마켓, 만국시장이 7월 7일(토) 찾아온다. 만국시장은 월마다 바뀌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테마에 맞춰 예술창작, 나눔, 생활이 함께 어우러져 열리게 될 ‘별난 마켓’,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뮤지션을 만날 수 있는 ‘만국음악살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달에 한 번 특색 있는 테마를 정해 그에 맞게 ‘별난 마켓’의 셀러들을 모집하고, ‘만국음악살롱’의 음악을 선곡하는 알찬 구성으로 셀러, 손님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플리마켓이다. 올해도 5월부터 시작한 만국시장은 입소문을 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생활문화팀(032-760-1033)




지역문화공간 음악창고 Rock(樂) Camp

어렸을 때 내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는 늘 ‘가수’라고 대답했다. 합창단에서 만나 결혼하신 부모님의 영향인지 노래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노래를 좋아하는 감정만큼이나 잘 부르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을 공부하면서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타를 배우면서 만난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소소하게 밴드 활동을 했다. 우리는 음악을 함께했지만, 음악으로는 먹고살지 않았다. 함께 모여서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즉흥적으로 부르면서 기타를 치고 놀았다. 가끔은 거리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무대에 초청되어 음악을 향유했다. 그러면서 느꼈다. 뮤지션은 아니더라도 관련된 일을 하면 재밌겠다고.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시흥의 한 축제 사무국에서 우연히 일하게 되었다. 행사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물을 만들고, 직접 배포에 나섰다. 많은 인파로 북적거린 행사에서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 알았다. 비록 무대에 서지 않아도 음악을 가지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과 관련된 행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에서 근무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 사는 직원들과 함께 방을 구해야 했다. 집에서 시흥까지 출퇴근하는 길이 무척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영화관람이나 쇼핑 등 간단한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조차도 한참을 이동한 후에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인천에서 고민해본 적 없던 사소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크게 다가왔다. 인천이 그리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 내내 인천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잘되면 인천을 떠나야지’라는 마음으로 줄곧 지내었다. 인천은 수도 서울과 가깝고, 국제공항, 항구, 전철까지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최적의 교통조건을 가지고 있기에 내 주변 분들도 인천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기를 언제나 희망했다.

난생처음 시작된 타향살이가 인천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떠오르게 했다. 인천에 다양한 인프라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실 늘 서울과 비교해서 그렇지, 다른 지역에 비하면, 교육 및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저 너무 당연한 것들이기에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인천의 고유함과 독특함으로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지역문화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역과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이론 수업을 들으면서 기본적인 지식을 쌓았다. 5월부터는 현장과 연계하여 인천지역의 문화공간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음악과 관련된 공간에 관심이 있어 ‘락캠프’에 기대가 컸다. 사실 과거에는 ‘록’이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았고 ‘라이브 클럽’도 어떤 곳인지 몰라 섣불리 방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을 계기로 방문한 ‘락캠프’는 21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음악 공간이었다.

부평구청역 3번 출구에서 직진으로 20걸음 정도 걷다 보니, 길 건너에 커다란 ‘락캠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다양한 공연 포스터들이었다. 내려가는 계단 옆쪽 가득 붙어있는 낡은 포스터들이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정면에는 정유천 대표의 사진으로 만든 간판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액자에 담긴 공연 사진이 가득했고, 고개를 돌리자 수백 장의 음반들이 한쪽 벽을 감싸고 있었다. 공연하는 공간이라 어두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짝이는 조명들이 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대표님 내외분께서 한 분 한 분 커피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대표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락캠프’가 문을 연 곳은 인디씬이 생겨난 1997년 부평삼거리 인근이었으며, 2006년 강화도로 옮겼다. 그리고 현재의 공간에 정착한 지 어느새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어쩐지 지나온 시간에 비교해 공간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21년 동안 한 공간을 유지하기에는 음악 시장의 판도가 많이 변화하였다. 특히 클럽문화가 성행했던 97년은 록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록 밴드가 데뷔를 위해 공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락캠프’도 365일 중 360일 이상을 공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록’보다는 ‘팝’ 장르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음악 장르가 한쪽으로 편중되면서 시장에서 ‘락밴드’보다 ‘아이돌’을 꿈꾸는 이들이 늘었다. 공연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레 줄었고, 밴드 공연 중심으로 수익을 내던 대부분의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락캠프’ 또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평을 떠나 강화에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부평구청 쪽으로 돌아오면서 이름을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이름 속에 들어있는 오랜 추억을 져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토요일에만 정기공연이 있지만, 종종 금요일에 기획공연을 진행한다. 이제는 무대에 록 밴드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이 설 수 있도록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공간을 둘러보았다. 꽤 넓은 공간이었다. 보통은 100여 명 정도 앉아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나, 공연내용에 따라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스탠딩으로 즐기면 300여 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실제로 유명 인디 가수가 방문했을 때는 350여 명의 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무대에는 각종 앰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모두 쓰는 것인지 여쭤보니, 앰프별로 출력되는 소리가 다르고 뮤지션마다 선호하는 소리도 달라 많은 종류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분의 기타 및 신디사이저를 소장하고 계셨고, 여러 색의 조명, 스모그 효과까지 공연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무대에서 조명부터 장비의 각 위치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대표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는 경제적인 이윤보다는 뮤지션에게 내어줄 수 있는 무대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락캠프’의 취지에 동참한 몇몇 가게들이 모여 인천 대중음악 공연장 협회를 구성하는 동시에 상생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거리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나 또한 버스킹을 시작으로 밴드를 꾸렸지만,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본적인 장비만 준비되어 있으면 무대공연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공간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록이 갖는 고유한 문화적 정서를 인천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문화기획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고민을 했다.

<지역문화인력양성> 수업을 통해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보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하나둘 모여 더 나은 지역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앞으로의 만남이 더욱 기대된다.

앞서 말했듯이 어렸을 때 나의 꿈은 ‘가수’였다. 성인이 된 지금, 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음악을 소재로 한 문화기획자가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 답하고 싶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글/사진
김지연(지역문화인력양성 프로그램 수강생)




“무속음악 독주회를 여는 게 꿈이에요.”
연희단 <비류> 백승철 대표 인터뷰

6월 14일 부평역 근처 카페에서 연희단 <비류> 백승철 대표를 만났다. 아직은 대표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은 그로부터 ‘청년 백승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청년들이 한번은 겪듯이 그도 자신의 진로에 방황했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연희는 자신의 꿈을 선명하게 만든 안식처였다. 그래서일까. 연희 장르가 대중들에게 한발자국 멀어질 때, 그와 그의 단원들이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가려는 여정이 고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연희단 <비류>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연희단<비류> 인천 출신 연희 전공자로 구성된 팀이다. 타악을 중심으로 기악과 소리 단원들이 모인 전문단체로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한다.

연희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부탁드린다.
국악은 쉽게 생각하면 한국의 음악이다. 사물놀이, 풍물놀이, 판소리, 민요를 다 아우르는 게 국악이라고 보면 된다. 그 중에 연희를 저희는 쉽게 ‘논다’라고 표현하는데, ‘사자놀이’, ‘소고놀이’같이 끝에 ‘놀이’가 붙어있으면 연희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아기들이 무동 타고 연두발 상모 돌리고, 줄타기하는 활동 모두가 연희의 일환이다.

어떻게 풍물을 시작하였는가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하고 싶은 게 마땅히 있지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사물놀이 동아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현재 <비류> 예술 감독님이신 정돈연 선생님을 만나면서 사물놀이에 더욱 깊은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예술 감독님의 첫인상은 어땠나 
첫인상이 무척 강하셨다. 신체가 왜소하신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기에 동아리 멤버 5명 모두가 압도되었다. 지도를 부탁드리러 갔을 때 선생님 앞에서 말도 꺼내지 못해서 제자분에게 대신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지 않았나 
당연히 부모님께서 반대가 심하셨다. 다른 애들은 빠르면 초등학교, 늦어도 중학교부터 사물놀이를 시작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아버지와 말을 안 하다시피 지냈었다. 다행히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야 아버지께서 마음을 열어주기 시작하셨다.

연희단 <비류>를 창단하기로 한 이유가 있는가
대학교 졸업할 당시에 예술 감독님께서 먼저 팀을 꾸려 보도록 제안을 해주셨다. 그래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주변 후배들을 섭외했고, 현재 8명의 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연출 담당자가 대표를 맡는 경우가 많다. 현재 대표님과 연출 선생님과의 역할이 어떻게 구분되었는가
공연 운영이나 전반적인 사업을 제가 맡아서 한다면, 감독님께서는 공연 연출과 작품에 대한 조언을 주로 하신다.

처음 <비류>를 창단했을 때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다. 대부분 젊은 청년들로 단원이 구성되어 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나름대로 10, 15년이나 국악을 준비했던 친구들이라서 실력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작품을 하다 보면 인원이 필요할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외부 객원을 섭외해서 작업을 같이해야 하는데 그 친구들에게 줄 인건비가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면 친구들과 만나면서 지속해서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공연을 연출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는가
관객 반응에 따라서 공연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지를 항상 고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을 많이 조성하려고 노력한다.

연희라는 장르의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단체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통연희 기반으로 ‘극’이라는 요소를 결합해서 새로운 창작품을 만든다는 점이 차이점일 수 있다. 시나리오도 단원들과 함께 작성하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적절히 배치하기도 한다.

<염라대왕이 사자를 만나는 날> 공연에서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면, 이번 6월 말 <풍물유희 흥 플러스>에서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염라대왕 사자를 만나는 날>처럼 창작 연희극을 만들 때 사회 이슈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한다. 한편 <풍물유희 흥 플러스>의 작품은 레퍼토리 공연이다. 창작한 작품을 10~15분 동안 관객 앞에서 펼치고 평가를 받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했던 작품을 그대로 선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것들을 정리하며 새롭게 창작하고, 관객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면서 반응을 살피고 함께 발전시켜 나아간다.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균형을 맞춰가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님께서는 진정한 전통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대학교 졸업반을 앞두고 있었을 때 장래가 걱정돼서 전통이 무엇인지 곰곰이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현재 계승된 국악이 조선 시대에도 똑같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비록 40년 전에 사물놀이라는 장르가 나온 후에 국악의 흐름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이전에도 김덕수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을 지키는 명목하에 선생님께서 하셨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게 전통을 지키는 일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전통은 그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계속 진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전통을 지킬 수 있고, 대중들이 계속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지역마다 저마다 다른 풍물을 펼치는데 연희 <비류> 에서도 인천의 특색을 찾아볼 수 있는가 
팀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지역적 특색을 많이 살리려고 했다. 백제 비류 왕자가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팀 이름을 비류로 정했었다. 아직 작품으로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웃다리 농악밖에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연주 작품이든 극작품이든지 간에 지역특색을 고려해서 작품을 창작할 예정이다.

농업기반의 공동체 문화와 두레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다시 과거에 잊혀진 풍습이 새롭게 재해석되거나 다시 그 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연희단의 역할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서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역할은 딱 하나다.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더 많이 국악에 관심을 보일 거로 생각한다. 이 분야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정립하는 것은 40년 전 김덕수 선생님과 그 멤버들이 사물놀이라는 작품을 통해 이미 이루었다고 본다. 대신 앞으로의 국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는 우리가 고민을 많이 해볼 필요가 있다.

김덕수 선생님께서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사물놀이를 출범시켰듯이,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연희단 <비류>에게도 남다른 계획과 큰 포부가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솔직히 사물놀이 이후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물놀이 구성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이다. 우리 팀 내에서도 새로운 장르가 하나 나오면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많은 시도를 하고 여러 장르를 복합해서 새롭게 작품을 구성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창작하고 싶은 작품이나 계획이 있는가
무속음악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 독주회를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물놀이는 친숙한데 무속음악은 어렵게 느낀다. 대중들이 보기 편하게 작품을 재구성하고, 한 시간 프로그램으로 독주회를 펼쳐 보는 게 목표이자 꿈이다. 현재 그 생각으로 5년 동안 무속음악을 공부했는데 아마 5년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인터뷰. 최기현(예술지원), 이진솔(정책연구)
글/사진 이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