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귀르가즘

‘ASMR’을 아시나요. ‘귀르가즘(귀+오르가즘)’은 들어보셨나요.

‘자율감각 쾌락 반응’인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시각, 촉각, 청각 등으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과 감각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귀르가즘은 brain massage, head tingle, brain tingle, spine tingle, brain orgasm 등으로도 불리고요.

ASMR은 2010년 미국 스테디헬스닷컴(steadyhealth.com)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이트에 ‘OOO 할 때 기분 좋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고, 누군가 ‘그런 감각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라고 할 수 있겠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후 미국과 호주 등에서 ASMR 콘텐츠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무릎에 누워 엄마가 귀를 파줄 때의 편안함’,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줄 때의 상쾌함’, ‘친구가 손바닥에 글씨를 쓸 때의 기분 좋은 간지러움’ 등이 대표적인 ASMR이죠. 바람 소리, 낙엽 밟는 소리,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잡생각과 고민을 잊게 합니다.

‘ASMR’은 유튜브와 팟캐스트, 광고,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인에게 새로운 힐링 코드가 되고 있습니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ASMR을 치면 1,250여 개 이상의 관련 콘텐츠가 쏟아집니다.

키보드 소리와 귀 청소 등의 동영상을 업로드 하는 ‘ASMR PPOMO(뽀모)’는 115만 명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4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Miniyu ASMR’은 메이크업하는 소리와 치킨 먹는 소리 등을 실감나게 표현하죠. 김새해 작가는 ‘부정적인 생각 바꾸기 연습’과 ‘자존감 높이는 법’ 등 일상의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는 책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ASMR 영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콕콕 쑤시다’는 뜻의 영단어 팅글(tingle)은 ASMR에서 ‘기분 좋은 소름’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크리에이터가 상황을 설정한 뒤 연기하는 ‘롤플레잉’, 특정 물건을 톡톡 두드리는 ‘탭핑’, 음식 먹는 소리를 들려주는 ‘이팅’, 입을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귀를 먹는 듯한 ‘이어 이팅’, ‘사각거리는 연필소리’ ‘위스퍼링’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신비감을 제공하거나(유튜브 asmr soupe) 아들, 딸을 응원하는 따뜻한 아빠 콘셉트로 청년들을 위로하는(유튜브 ASMR 아빠) 색다른 ASMR도 등장했습니다.

2010년 2월에 개설된 페이스북 커뮤니티 ‘ASMR 그룹’은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의 경험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ASMR)을 규명하고자 하는 모임”이라고 밝힙니다. 채널 ‘젠틀위스퍼링’은 작은 목소리로 상황극을 하거나 가위로 사각거리는 미세한 소리를 극대화한 콘텐츠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요.

ASMR은 광고업계에서도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손꼽힙니다.

시선을 분산시킬만한 배경 없이 광고 모델의 목소리 위주로 제작된 진통제 광고가 있습니다. 아이유는 시청자들의 귀에 속삭이듯 “왜 아프고 그래”하면서 약을 뜯는데, 아플 때 먹는 진통제의 효과와 심신의 안정을 주는 ASMR의 특성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니스프리는 별도의 백뮤직 없이 제품의 뚜껑을 여는 소리와 화장품이 부드럽게 피부에 발리는 소리를 살렸습니다. 크래커 과자 ‘리츠’는 광고 모델이 리츠를 먹을 때 나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극대화했고요. 광고를 접한 누리꾼들은 “귀가 녹는다”, “귀르가즘 대박이다”, “이어폰 필수로 장착하고 들어야 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다니엘 헤니가 출연한 치즈 광고를 찍은 이채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터는 “청각을 극대화하면 대중이 광고를 보며 ‘내가 아는 그 맛이네’라는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며 “ASMR을 통해 맛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공감을 노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네요.

다큐멘터리 예능 ‘숲속의 작은 집’은 ASMR 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두 배우(소지섭, 박신혜)의 자급자족 라이프에서 돋보이는 것은 단연 ‘소리’입니다. 숲속 작은 집에서 홀로 생활하는 그들은 식사를 위해 재료 준비하는 소리와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에 특히 귀 기울입니다. 자연의 소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면서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심리적인 평안을 얻게 됩니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기존 먹방과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백종원 씨의 감칠맛 나는 설명과 하나의 요리가 어떤 히스토리와 과정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유별난 점은 “음식을 귀로 즐기게 하는” 연출입니다. 냠냠, 쩝쩝, 지글지글, 보글보글. 박희연 PD는 “음식을 조리할 때 나는 소리에 식욕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시각에 집중했던 기존 방식보다 청각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시청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tvN의 ‘SNL 코리아 시즌 8’에서는 ‘ASMR TV’라는 코너가 있었고,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는 가수 전효성이 ASMR 수면 유도 방송을 했습니다. 연예인들의 ASMR도 강세인데요, 피키픽쳐스의 ‘엄마가 잠든 후에’, smtown의 ‘내 귀에 인터뷰’, Mnet 디지털 채널 M2의 ‘lyric live’ 등이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출연 배우들이 에세이를 읽어주는 ASMR 버전을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ASMR이 최신 콘텐츠와 맞물리고 있지만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문화코드가 들어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디지털 문화가 발달할수록 대중은 역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ASMR 인기 이면에는 디지털 시대의 역행 혹은 반발이라는 심리가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SMR에 관한 학문적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2015년 영국 스완지 대학의 심리학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ASMR 콘텐츠를 접한 사람들 중 다수가 숙면이나 통증 완화에 도움을 얻었다고 발표했습니다. ASMR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머리가 쭈뼛 서거나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며 과학적 효과를 확신합니다. 반면 미국 셰넌도어 대학의 생물약제학 교수인 크레이그 리처드는 좀 더 신중한 입장입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ASMR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수집하는데 “ASMR의 원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추가적인 과학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인천의 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소리로 공간을 기억하고 의미를 찾는 기획입니다. 안병진 경인방송 PD는 인천에 있는 자연의 소리, 문화(재), 시설물의 소리를 스토리와 함께 들려줍니다.

“얼마 전 인천역 뒤편, 월미도 가는 길의 만석고가 밑에서 작업을 했어요. 화물 ‘디젤’ 열차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서였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철도 건널목의 풍경과 소리가 그곳에는 아직 남아 있었어요. 호루라기 소리와 차단기 내려가는 소리, ‘덜컹덜컹’ 낡은 디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살아있었죠. 20여 년 전만 해도 인천 원도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잖아요.”

지금은 사라진 증기기관차와 석탄 열차 소리는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윗세대들에게는 더없는 ASMR일지도 모릅니다.

“아파트에서의 삶을 생각해보세요. 타인의 소리는 소음에 지나지 않아요. 이웃에 피해주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물의 소리를 제거해요. 함께 쓰는 공간을 무소음 진공상태로 만들어서 서로를 고립시키죠.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그 소리를 저급한 음질로 재연하는 세계에 살고 있어요. 이웃과는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사물인터넷, AI 기계와 이야기하는 세계, 외로운 개인의 세계,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사는 도시의 현대적 삶인지도 몰라요.”

우리 주변의 소리를 통해 인천의 역사와 문화, 장소를 이야기하는 ‘인천의 소리’는 경인방송 라디오(FM 90.7 MHz) <백영규의 가고싶은 마을>(오후 4시~6시) 목요일 코너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반응이 좋은 소리는 6월부터 3분짜리 라디오 캠페인으로도 방송된다고 하네요. 이 프로젝트는 경인방송과 인천문화재단 매체협력 사업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는 시끄럽게 태어나 침묵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소리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에요.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고 싶은 소리가 있죠. 인천이라는 도시의 소리, 함께 듣고 싶은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이 ‘인천의 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입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냠냠, 쩝쩝 ‘귀르가즘’…문화콘텐츠에서 ASMR이 인기 끄는 이유는?
    동아일보, 2018.5.2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ASMR 열풍 ‘귀르가즘’ 신조어까지
    팝콘뉴스, 2018.4.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일반인부터 연예인까지··· ‘먹방’을 잇는 트렌드 콘텐츠 ‘ASMR’
    국민일보, 2017.9.2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소리로 인천을 발견하는, ‘인천의 소리’ Archive Project
    인천문화통신3.0, 2018.5.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이탤릭체로 표기한 안병진 씨의 글은 필자가 임의로 수정, 편집했음을 알립니다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