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학의 이론과 창작의 접목, 김진섭 『생활인의 철학』

1920년대 잡지 해외문학을 통해 외국문학을 본격 소개한 해외문학파의 한 사람인 청천 김진섭의 두 번째 수필집이다. 독문학을 전공한 김진섭은 번역과 평론을 중심으로 문필활동을 했지만, 수필의 개념과 특징, 의의 등 한국 근대 수필문학의 이론적 토대 구축은 물론 이를 실제 창작으로도 작품화한 수필문학가로서도 독보적이다.
이 책은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의 제재나 주제를 중후하고 사색적인, 호흡이 긴 문장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김진섭 수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저자에게 수필가로서 본격적인 지위를 얻게 하고 문명(文名)을 떨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이 수필집에는 총 32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중 21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신문과 잡지에 쓴 것을 재수록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글은 한국전쟁 후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린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표제작이 된 「생활인의 철학」이다. 장정과 앞뒤 표지 안쪽의 그림을 한 사람이 아닌 송병돈과 김영주 두 사람이 담당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우 독특한 점이다. 1949년 3월 1일 선문사에서 발행된 초판본으로 총 213쪽으로 되어 있다.

·사진 함태영(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친필을 만나다, 백범 김구 「백범일지」

백범 김구(1876~1949)는 일제강점 36년간의 식민지를 벗어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황해도 치하포 사건에서 시작된 백범의 항일 구국운동은 상해 임정을 거쳐 광복군 결성과 대일 선전포고 등 파란만장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백범일지」는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러한 저자의 삶을 스스로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 책은 맨 앞부분의 사진 화보와 상권 ․ 하권, 마지막 나의소원 등 크게 네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상권과 하권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데, 상권은 저자가 두 아들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하권은 임정이 중국 중경에 있을 무렵 쓴 글로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을 뒤돌아보는 내용이다.

광복 2년 뒤인 1947년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발행 1년 만에 3판을 찍었을 만큼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또한 백범은 광복 후 전국을 다니며 과거 독립운동을 같이 한 사람이나 지인에게 이 책에 친필 서명을 해서 증정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1949년 백범이 김기한(金基漢)이란 사람에게 준 친필서명본이다. 앞으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김기한이란 인물은 1919년 만주에서 결성된 대한독립단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백범일지」 친필 원고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친필 서명본 「백범일지」도 매우 드문 희귀본이다. 백범은 인천에서 두 번의 투옥 경험이 있어 인천과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인천에 있는 유일한 백범의 친필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배은망덕이 불러온 비극, 『탐정소설 청천벽력』

1841년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모르그가의 살인」 이후 본격화된 추리소설은 20세기 초 한국에 들어와 곧 크게 사랑받는 장르가 되었다. 한국 최초의 창작 추리소설인 이해조의 쌍옥적이 1908년으로 최초의 ‘신소설’인 혈의누가 1906년인 것을 생각하면 근대문학 초창기부터 추리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음을 알 수 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서양에서 온 것인 만큼 초창기 추리소설은 서양이나 일본 등 외국 것을 번역·번안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1920년대부터 외국 추리소설의 소개가 왕성해지는데, 에드거 앨런 포,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에밀 가보리오 등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청천벽력도 추리소설의 왕성한 소개와 커다란 인기를 보여주는 추리소설이다. 제목 위의 ‘탐정소설(探偵小說)’이라는 츠노카키(角書)는 이 작품에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임을 예고한다. 1921년 처음 발행된 이 작품은 1895년, 1896년 프랑스 파리를 각각 시간적·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1896년 9월 15일 자정 경찰서로 걸려온 살인사건 신고전화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돈에 눈이 멀어 자기 은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부인까지 죽게 만든다는 비극적인 줄거리를 갖고 있다. 총 75쪽밖에 안 되는 데다 사건 발생부터 해결까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프랑스 유명 귀족의 살인사건 자체도 흥미롭거니와 사건에 얽힌 은밀한 가정사, 완전범죄를 위한 범인의 다양한 트릭, 서술 시간의 역전과 빠른 장면 전환은 작품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제목의 탐정은 경찰이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서사 규모나 인물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장편을 축약해 옮긴 것으로 판단된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몇몇 지명이 현지 이름으로 나오지만, 김창열이나 안광필, 이상대 등 등장인물들은 우리 식으로 고친 ‘번안’소설이다. 아쉽게도 현재로선 원작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고, 옮긴이인 김천희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동명이인 여부를 확인해야겠지만, 김천희는 강능추월(1928), 유충렬전(1929) 등 몇몇 고전소설 발행에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필사본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확실하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책도 초판 발행 3년 후인 1924년에 나온 재판이다. 현재 총 3책이 확인되는데 두 책이 인쇄본(딱지본)이고 한 책은 필사본이다. 필사본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딱지본으로 인쇄된 두 책은 각각 한국근대문학관과 동덕여대가 소장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 연구사 함태영




소설에 대한 독특한 욕심, <동아일보> 연재 장편 『이순신』

일제강점기 소설은 대개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출판 풍습이었다. 신문이나 잡지는 출판 자본이 열악했던 당시 문단의 거의 유일한 작품 발표 지면이었는데, 신문사 · 잡지사가 문학 작품을 실었던 이유는 독자 획득/배가를 위함이었다. 신문잡지 연재를 거쳐 나온 문학 단행본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판매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소설)을 좋아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처음 발표된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애독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에 소개하는 문학관 소장품은 당시 독자들의 소설에 대한 독특한 애정과 욕심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광수가 1931년 6월 26일부터 1932년 4월 3일까지 총 178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 이순신이다. 작가 춘원은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군상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삼봉이네 집 연재를 마친 뒤였다. <동아일보>는 충무공의 묘지 문제 등 이순신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표명하는데, 1930년 5월 편집국장 이광수로 하여금 충무공 이순신 유적지 순례에 나서게 한다. 이순신은 이러한 취재 여행을 거쳐 탄생한 작품으로 발표 이후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것은 <동아일보> 연재를 스크랩한 이순신이다. 보통 신문연재소설 스크랩은 연재분이 가로로 긴 만큼 B4 정도 크기의 스케치북 등에 오려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문학관 소장본은 일반 단행본 크기이다. 가로로 긴 소설을 스크랩북에 맞춰 오려 붙인 것이다. 본문만 74장 144쪽으로 된 이 자료는 매 쪽 양면에 소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소설을 빈 스크랩북에 담기 위해 소설이 연재된 신문을 여러 조각으로 오려 붙였는데, 여러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질서정연하고 깔끔한 것은 독자의 정성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 연구사 함태영




한국 근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초호화판 시집 『춘원시가집』

한국 최초의 창작 장편소설의 작가 춘원 이광수는 흔히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흙』과 『사랑』, 『원효대사』 등 대표작 대부분이 소설이지만, 춘원의 문필활동은 소설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시인이자 수필가였으며, 비평가·평론가·번역가이면서 한국 최초의 근대 희곡으로 평가되는 「규한」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하면 이광수는 우리 근대문단의 ‘올라운드 플레이어(all round player)’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문학관 소장자료는 1940년 2월 박문서관에서 발행된 춘원시가집이다. 문학관이 소장한 방대한 희귀 근대문학 컬렉션 중에서도 특히 손꼽을 만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의 문단 생활 30년 기념으로 출판된 이 시집은, 장정이나 종이 재질, 케이스 등 ‘초호화판’이다. 또한 딱 500부만 찍은 한정판이며, 책 표지 안쪽에는 작가의 친필 서명과 작가 사진 원본이 붙어 있다. ‘호화판 오백부 한정’임을 명기한 판권면에는 이 책이 몇 번째인지가 붉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는데,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이 책은 ‘限定 五百部之 第 參○七 號’, 즉 307번째 책이다. 표지는 하드커버인데, 당시의 두꺼운 종이로 된 일반적 하드커버가 아닌 고급 천으로 감싼 ‘클로스 하드커버’이다. 또한 속지도 파란색인데 촉감이나 강도, 탄성 등 약 80년 전의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급이다. 이 책만을 위해 도쿄까지 가서 용지를 구해왔다고 하는데, 출판사에서도 각별히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중일전쟁과 그로 인한 용지난으로 인해 조선·동아가 폐간되었던 해에 이 책이 간행되었음을 생각하면, 이 책의 발행과 존재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책 앞쪽에 있는 작가의 친필 서명은 멋들어진 초서로 되어 있다. 탈초를 해보면 ‘朝令暮令佛’인데, ‘아침에도 저녁에도 오로지 부처님’이란 뜻이다. 일제 말기 불교-법화경에 심취해 있던 작가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298쪽의 이 시집에는 세 부에 걸쳐 총 149수의 시가 실려 있다. 1~2부 89편은 시조이고 3부 60편은 자유시이다. 이 중 두 편이 번역이다. 1부는 1937년 12월부터 8개월간 입원했을 때 그의 문하생 박정호가 받아쓴 시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1부의 서(序)는 박정호가 썼다. 작가는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애써준 노성석과 최영주, 박정호 3인을 특별히 기리고 있다. 노성석은 책이 발행된 박문서관의 2대 사장이며, 최영주는(본명 최신복)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전문 편집자로 수필잡지 『박문』의 편집인과 발행인을 지낸 인물이다.

책 맨 앞 ‘축원(祝願)’이란 제목의 일제 통치와 천황을 미화한 글은 이 시집의 뚜렷한 한계를 보여주지만, 책의 장정과 재질 등 여러 외적 형태는 당시 문단의 최고 권위를 가졌던 춘원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 연구사 함태영




소설을 간직하다, 신문소설 스크랩 단종애사

한국 최초의 창작 장편소설 무정을 쓴 춘원 이광수는 1920~1930년대 역사소설가로도 이름이 높다. 이광수는 마의태자, 단종애사, 이순신, 원효대사, 세조대왕 등 많은 역사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재판 이상을 찍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단종애사는 작가가 <동아일보>에 재직하면서 쓴 장편 역사소설로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총 217회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권을 찬탈당하는 어린 조카 단종의 이야기이다. ‘고명편’, ‘실국편’, ‘충의편’, ‘혈루편’의 총 4장이 기-승-전-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고, ‘단종의 슬픈 역사’라는 제목 그대로 단종의 억울한 퇴위와 죽음, 세조의 잔혹한 성격이 크게 강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연재된 1928년에는 <조선일보>에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벽초와 춘원은 육당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였던 만큼 두 작품의 연재는 동아·조선이라는 신문사 관계와 얽혀 묘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단행본은 <동아일보> 연재 직후인 1930년 회동서관에서 상하 두 권의 책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5년 후인 1935년에는 박문서관에서도 간행되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1928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을 오려 모은 스크랩본이다. 하루하루 연재된 것을 정성스럽게 오려 자기만의 단행본을 만든 것이다. 낱장으로 된 자연과학 교재 1장에 앞뒤 각각 2회씩 붙인 후 이것을 모아 하드커버로 앞뒤 표지를 붙여 만든 수제본이다. 총 55장(110쪽)이다. 작품의 신문 연재 횟수는 총 217회인데, 이 자료에는 126·149·151·194·197·198회 등 6회가 누락되어 있어 211회분이 묶여 있다. 현재로선 누가 이 자료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90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연재분을 오린 모양이나 위치 및 형태, 제본과 표지 등 매우 정성스럽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애호와 기호 등 도서문화까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하겠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봉건제의 학정(虐政)을 고발하다, 이인직의 『은세계』

조선 시대 소설과 이광수와 김동인, 현진건, 염상섭 등의 근대소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신소설’이다. 조선 후기와 근대소설을 잇는 과도기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인직과 이해조, 안국선 등이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1905년과 191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신소설’은 당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 있었던 시기인 만큼,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는 강력한 계몽성을 그 내용으로 했다. 이인직과 이해조, 안국선이 쓴 ‘신소설’들은 내용과 그 방향은 모두 달랐지만, 당시의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 계몽적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 중 상대적으로 가장 강력한 정치적 계몽성을 담은 작가가 이인직인데, 교과서에서 배웠던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가 대표작이다. 『은세계』는 그의 세 번째 ‘신소설’ 작품인데, 이인직의 작품은 물론 한국 ‘신소설’ 중 가장 강한 정치적 계몽성을 가진 소설로 2018년은 작품이 발표된 지 110년이 된다.

『은세계』는 강릉의 부자 최병도라는 인물이 돈과 재산을 노린 강원관찰사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음을 맞고, 그의 자식들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신교육을 받는다는 내용을 가진 소설이다. 따라서 부패 관료의 가렴주구와 학정 고발, 민중들의 저항의식, 신교육과 개화사상에 대한 강조가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몽성이 궁극적으로 조선의 멸망과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승인하는 쪽으로 향한다는 점은 이인직과 이 작품이 가진 결정적 한계이다. 이인직은 당시 조선의 부패는 일본 지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08년 11월에 단행본으로 발행된 이 작품은, 아래 자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표지 제목이 ‘新 · 演 · 劇’의 집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연극 상연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은세계』는 우리 근대소설 중 극장에서 연극으로 상연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 표지에 ‘상권’이라 표기되어 있어 중권이나 하권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는데, 현재로선 중권이나 하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총 141쪽의 중편소설 분량에 해당하는 이 자료는 현재 잔본 부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구(舊) 세대에 전쟁을 선포하라, 장편소설 『개척자』

『개척자』는 춘원 이광수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무정』의 성공이 바탕이 되어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춘원의 장편 중 유일하게 국한문으로 쓰인 작품이자, 발표 당시 폭발적인 인기와 격렬한 비판을 동시에 받은 소설이기도 하다.

일제의 강제병합 직후인 1910년대 춘원 이광수의 관심은 자유연애․결혼에 대한 주장에 있었으며, 그 핵심은 낡은 것, 즉 구세대와의 투쟁이었다. 이광수는 전작 『무정』에서 영채의 자살을 만류하는 병욱의 논리를 통해 신구세대의 갈등을 드러났다. 또한, 주인공 형식이 영채가 아닌 선형과의 결연을 선택하도록 해 당시 청년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러한 춘원의 입장은 『개척자』에서 한층 격렬해지고 대담해져, 결국 부모세대, 즉 구세대와 전쟁을 벌일 것을 노골적으로 선동한다. 이 작품은, 부모가 정해준 남자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의 연애와 사랑,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구세대와의 갈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에 맞서 자살을 선택하게 하지만, 그 비극적 죽음만큼이나 자유연애․결혼에 대한 신세대의 입장과 주장은 극적 효과와 함께 정당화된다.

하지만, 당시의 양반, 유림층은 조선총독부와 작품을 연재한 신문사에 연재 중지를 위한 압력을 넣는 등 춘원과 이 작품을 크게 비판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구도덕에 대한 반항과 자유연애․결혼에 대한 주장으로 당시 전 조선의 청년들을 열광시켰다. 이 같은 작품의 인기는 작품 연재 후 4년 만에 발행된 단행본 판매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판 발행 후 일주일 만에 재판이, 재판 발행 후 보름 만에 3판을 찍기 때문이다. 『개척자』 일제강점기 발행 단행본은 현재 잔존 부수가 많지 않은 희귀 자료인데, 이번에 소개하는 문학관 소장본은 1922년 발행된 초판으로, 국내 유일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함태영




돈이냐? 사랑이냐? – 삼각관계의 기원, 『장한몽』

장한몽 상
조중환 지음 / 회동서관 재판 / 1919

이수일과 심순애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일과 심순애는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며, 이들이 나오는 작품이 장한몽이라는 것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본 명치 시기의 가정소설 콘지키야샤(金色夜叉)(1897~1902)를 번안한 이 작품은 대동강변에서 이루어지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별 장면으로 특히 이름이 높다. “가거라, 이 더러운 계집아.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단 말이냐!”로 유명한 장면 말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이수일-심순애-김중배로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소설에 나타난 최초의 작품이며, 이른바 ‘부부강간’이 처음 등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보다는 돈을 선택한 심순애가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 김중배와 이혼하고 이수일과 결혼한다는 줄거리를 가진 이 작품은 한국 근대소설 최대의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다. 보통 연재 뒤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이 근대소설의 일반적 유통과정이었는데, 장한몽은 연재 도중 단행본(상)이 출간되었으며, 당시 극단에 의해 연극으로도 상연되어 극장이 인산인해가 되게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딱지본 형태로 상중하 3책으로 간행되었는데, 최대의 베스트셀러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제강점기 발행본은 정말 찾아보기 힘든 희귀본이 되어 있다. 상중하 3책, 1질을 소장한 곳은 현재 두 곳이 확인되는데, 한 곳은 일본 토야마대학이며, 다른 한 곳은 한국근대문학관이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함태영




한 세기 전 베스트셀러 『추월색』

지금부터 한 세기 전, 장안의 지가를 높인 소설들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제의 강제병합 뒤 ‘신소설’의 생명력이 다하면서, 흥미 위주의 통속소설들이 당시 대중들에게 크게 사랑받는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장한몽과 춘향전을 새롭게 해석한 옥중화 등이 1910년대 독자들에게 열광적으로 읽힌 작품들인데, 이들은 울긋불긋한 표지의 딱지본이라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추월색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딱지본 대중소설로, 1910년대 베스트셀러의 첫 테이프를 끊는 작품이다. 일본 토쿄의 우에노공원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국외 공간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어려서 정혼한 두 남녀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결연에 성공한다는 것을 큰 내용으로 한다. 정혼 남녀의 결연이라는 상투적 구조로 되어 있지만, ‘신식(新式)’ 결혼식, 양복 입고 떠나는 신혼여행 등 당시로선 매우 낯선 신문물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첫 장면의 공간인 일본 토쿄 우에노 공원의 불인지(不忍池) 연못을 표지로 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상징적이다. 한국근대문학관에는 이 작품이 1책 소장되어 있는데, 판수가 무려 18판(1923)이라는 점에서 당시 엄청나게 읽힌 작품임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함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