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지난 10월 18일 유정복 인천시장은 ‘문화성시(成市) 인천’을 통한 문화주권을 선포했다. 이를 위해 1.9%정도에 머문 금년도 문화관련 시 예산 비중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지원을 확대해 3.0% 수준으로 늘려갈 방침도 밝혔다. 이러한 ‘문화성시 인천’의 주요내용을 보면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아트플랫폼을 개항문화플랫폼으로 확대, 인천 고유 역사공간 확대, 청년문화창작소 건립, 생활문화센터 단계적 설립, 인천 대표 공연축제 발굴 및 지원사업 등이 주요 골자이다.
필자는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사업에서도 가장 핵심적이면서 그동안 인천시민과 미술인들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에만 국한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의해 등록된 국공립, 사립, 대학 미술관 수는 2015년 기준으로 202개이며 국공립미술관은 51개이다. 이 중에서도 제주도 공립미술관은 7개(2016년 기준)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인천은 송암미술관과 인천아트플랫폼이 공립미술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송암미술관은 엄격히 따져보면 인천제2시립박물관으로 형식적으로 존재 할뿐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시안을 보면 인천시립미술관 부지는 바다와 가까운 남구의 용현.학익 1블럭 상업문화용지인 5만809m2 에 건설 예정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인천시립미술관 부지로 얘기되어 왔던 자리이기도 하다. 여기에 인천시립미술관과 함께 옥련동의 시립박물관도 옮겨오고 작가들의 아틀리에 등 문화시설이 갖춰지면서 문화벨트가 형성될 계획이다. 그러나 총사업비 2,665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에 40%에 해당하는 국비 600억원의 지원가능성이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을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랜 동안 미루어오기만 했던 시립미술관 건립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실행해야 할 우선사업이 되었다. 이 사업이 이번에 꼭 추진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처음의 기획단계가 매우 중요하기에 미술관 건립에 대해 표본이 될 만한 사례를 들어 몇 마디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인천시립미술관과 박물관 건립에 따른 용현.학익 지역개발은 바다와 근접한 자연 환경과 함께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면서 지역 주민의 삶이 향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나오시마와 같이 친환경적, 문화적 개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설정되어야 한다. 나오시마는 통상 8개월 전에 예약이 완료되는 베네세하우스 리조트와, 일본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치추(地中)미술관이 있고, 이우환 미술관도 있다. 그리고 지역 마을에서 운영하는 아트하우스 등이 공존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주거 지역의 환경 파괴가 전무 한 곳이기도 하다.
둘째로 인천시립미술관은 국내외의 작품과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근대미술관과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성격과 역할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이 진행해온 아카이브, 레지던시, 창작활동 지원 프로그램의 성과를 적극 수용하고 연계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소장작품의 부재(不在)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소장품 구입예산을 증액 편성하고, 자발적인 작품기증문화를 활성화시켜 미술관 내에 기증 작품 상설특별전시실을 설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미술관이 건립되면 국공립미술관과의 전시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전시를 기획하여 협력망을 구축하면서 인적자원네트워크와 정책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일정기간에 한해서만 특색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유명미술관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미술관 재정수익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국공립미술관이 현재는 100%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되지만 정부지원 의존의 경영방식만으로는 자율성 있는 전시체제를 갖추기가 어렵다. 또한 정부나 자치단체 자체도 미술관에 많은 예산을 편성하기 힘든 문제점을 수시로 내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경기도미술관이나 인천문화재단의 작품구입비가 0%에 가까이 있었던 적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법인화하여 공공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일면에는 미술관의 자율성과 함께 경영에 대한 과제가 부각되고 있기에 인천시도 미술관 건립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점을 충분히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미술관의 시작단계에서는 100% 인천시의 예산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중장기 발전계획을 가지고 선진국 미술관 법인화 시스템을 연구하여 기부금과 수익사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자립도를 키워나가는 미술관체제에 대한 목표설정과 비전을 시작단계인 지금부터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표본이 되는 미술관으로는 건립 1년 만에 투자액 전부를 회수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구겐하임 빌바오 효과’를 자체적으로 시현하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연 50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테이트 모던미술관, 그리고 인구 40여만명의 소도시인데도 연간 140만명 관람객을 유치하는 가나자와(金澤)시의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을 들 수 있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록퐁기의 모리미술관과 함께 일본의 3대 미술관으로 쇠락해가던 소도시 가나자와를 일으켜 세운 비전을 보인 미술관이기에 이러한 미술관 사례들을 벤치마킹하여 ‘인천 버전’을 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최효준,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의 건립 개념 구현 사례 분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2009 )
셋째로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보다 내실 있는 소프트웨어, 즉 생각과 아이디어 그리고 자료와 운영이 중요한 시대이다.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활용과 주체는 전문미술인과 시민이 공유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도 주민참여형 프로그램 운영으로 인프라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료수집 및 관리, 보존, 조사연구의 기능을 강화하고 교육을 통한 시민들의 다양한 체험학습과 미술문화공간의 참여로 예술에 대한 시민 의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1935년에 도쿄미술학교 최초의 목판화 교수가 된 히라쯔카 운이치로(坪塚運一)는 1920년대에 창작판화 보급을 위해 조각도를 들고 일본 전국을 돌면서 목판화순회강습을 통해 아마추어 시민들에게 창작판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렇게 생활 속에 파고들며 시민과 함께한 일본의 시민판화운동은 1950대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문 판화가들이 세계적인 국제판화비엔날레에 수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일본판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여놓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판화가 생활문화 속에 오랫동안 안착되면서 지금도 교토나 다카야마(高山) 시에 가면 판화공방에서 목판화로 제작한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관광 상품화 되어 눈길을 끌게 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학습을 통한 사회교육적 기능의 효과는 1990년부터 대국민 문화서비스 차원으로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술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유발시키고 전국 각지의 문화소외 지역을 찾아다니며 국내 우수작품들을 전시하는 이동전시 프로그램이다. (<과천이전 10주년 기념 사료집 국립현대미술관 1969~1996>)
인천 또한 도서지역과 공장 등 문화소외 지역이 많아 이러한 곳에서 전시와 강의, 체험학습을 통해 시민의 문화 향유도 증가하게 되면 바로 삶의 질적 향상과 함께 문화복지로 가는 역할을 미술관이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인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의 시너지효과를 높이는 미술관 건축이 매우 중요하다. 설계단계에서부터 바다와 인접한 인천의 환경과 역사적 정체성을 고려하여 시민과 방문객이 머물고 싶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개방적이며 친근감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학익지구에 미술관과 함께 많은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작스튜디오 단지’ 건설도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사업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창작공간이 없어서 토지가 저렴한 시골 지역을 선택해 인천을 떠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기반시설을 갖춘 용현.학익지역의 창작공간에 작가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입주할 수 있게 한다면 굳이 창작활동을 위해 고향을 등질 이유가 없다. 이러한 면에서 최근 이천시가 약 12만평부지에 추진해 온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촌인 이천도자예술촌(이천도자산업단지)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곳에는 현재 220여개 공방이 입주해 있는데 90%가 도자기 공방이며 10%는 회화와 조각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어서 도자문화를 특성화하고 있는 이천시의 상징적 문화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선웅 / 화가, 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