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몇 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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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유정복 인천시장은 ‘문화성시(成市) 인천’을 통한 문화주권을 선포했다. 이를 위해 1.9%정도에 머문 금년도 문화관련 시 예산 비중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지원을 확대해 3.0% 수준으로 늘려갈 방침도 밝혔다. 이러한 ‘문화성시 인천’의 주요내용을 보면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아트플랫폼을 개항문화플랫폼으로 확대, 인천 고유 역사공간 확대, 청년문화창작소 건립, 생활문화센터 단계적 설립, 인천 대표 공연축제 발굴 및 지원사업 등이 주요 골자이다.

필자는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사업에서도 가장 핵심적이면서 그동안 인천시민과 미술인들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에만 국한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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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의해 등록된 국공립, 사립, 대학 미술관 수는 2015년 기준으로 202개이며 국공립미술관은 51개이다. 이 중에서도 제주도 공립미술관은 7개(2016년 기준)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인천은 송암미술관과 인천아트플랫폼이 공립미술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송암미술관은 엄격히 따져보면 인천제2시립박물관으로 형식적으로 존재 할뿐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시안을 보면 인천시립미술관 부지는 바다와 가까운 남구의 용현.학익 1블럭 상업문화용지인 5만809m2 에 건설 예정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인천시립미술관 부지로 얘기되어 왔던 자리이기도 하다. 여기에 인천시립미술관과 함께 옥련동의 시립박물관도 옮겨오고 작가들의 아틀리에 등 문화시설이 갖춰지면서 문화벨트가 형성될 계획이다. 그러나 총사업비 2,665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에 40%에 해당하는 국비 600억원의 지원가능성이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을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랜 동안 미루어오기만 했던 시립미술관 건립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실행해야 할 우선사업이 되었다. 이 사업이 이번에 꼭 추진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처음의 기획단계가 매우 중요하기에 미술관 건립에 대해 표본이 될 만한 사례를 들어 몇 마디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인천시립미술관과 박물관 건립에 따른 용현.학익 지역개발은 바다와 근접한 자연 환경과 함께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면서 지역 주민의 삶이 향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나오시마와 같이 친환경적, 문화적 개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설정되어야 한다. 나오시마는 통상 8개월 전에 예약이 완료되는 베네세하우스 리조트와, 일본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치추(地中)미술관이 있고, 이우환 미술관도 있다. 그리고 지역 마을에서 운영하는 아트하우스 등이 공존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주거 지역의 환경 파괴가 전무 한 곳이기도 하다.

둘째로 인천시립미술관은 국내외의 작품과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근대미술관과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성격과 역할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이 진행해온 아카이브, 레지던시, 창작활동 지원 프로그램의 성과를 적극 수용하고 연계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소장작품의 부재(不在)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소장품 구입예산을 증액 편성하고, 자발적인 작품기증문화를 활성화시켜 미술관 내에 기증 작품 상설특별전시실을 설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미술관이 건립되면 국공립미술관과의 전시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전시를 기획하여 협력망을 구축하면서 인적자원네트워크와 정책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일정기간에 한해서만 특색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유명미술관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미술관 재정수익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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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미술관이 현재는 100%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되지만 정부지원 의존의 경영방식만으로는 자율성 있는 전시체제를 갖추기가 어렵다. 또한 정부나 자치단체 자체도 미술관에 많은 예산을 편성하기 힘든 문제점을 수시로 내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경기도미술관이나 인천문화재단의 작품구입비가 0%에 가까이 있었던 적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법인화하여 공공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일면에는 미술관의 자율성과 함께 경영에 대한 과제가 부각되고 있기에 인천시도 미술관 건립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점을 충분히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미술관의 시작단계에서는 100% 인천시의 예산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중장기 발전계획을 가지고 선진국 미술관 법인화 시스템을 연구하여 기부금과 수익사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자립도를 키워나가는 미술관체제에 대한 목표설정과 비전을 시작단계인 지금부터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표본이 되는 미술관으로는 건립 1년 만에 투자액 전부를 회수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구겐하임 빌바오 효과’를 자체적으로 시현하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연 50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테이트 모던미술관, 그리고 인구 40여만명의 소도시인데도 연간 140만명 관람객을 유치하는 가나자와(金澤)시의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을 들 수 있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록퐁기의 모리미술관과 함께 일본의 3대 미술관으로 쇠락해가던 소도시 가나자와를 일으켜 세운 비전을 보인 미술관이기에 이러한 미술관 사례들을 벤치마킹하여 ‘인천 버전’을 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최효준,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의 건립 개념 구현 사례 분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2009 )

셋째로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보다 내실 있는 소프트웨어, 즉 생각과 아이디어 그리고 자료와 운영이 중요한 시대이다.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활용과 주체는 전문미술인과 시민이 공유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도 주민참여형 프로그램 운영으로 인프라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료수집 및 관리, 보존, 조사연구의 기능을 강화하고 교육을 통한 시민들의 다양한 체험학습과 미술문화공간의 참여로 예술에 대한 시민 의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1935년에 도쿄미술학교 최초의 목판화 교수가 된 히라쯔카 운이치로(坪塚運一)는 1920년대에 창작판화 보급을 위해 조각도를 들고 일본 전국을 돌면서 목판화순회강습을 통해 아마추어 시민들에게 창작판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렇게 생활 속에 파고들며 시민과 함께한 일본의 시민판화운동은 1950대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문 판화가들이 세계적인 국제판화비엔날레에 수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일본판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여놓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판화가 생활문화 속에 오랫동안 안착되면서 지금도 교토나 다카야마(高山) 시에 가면 판화공방에서 목판화로 제작한 다양한 생활도구들이 관광 상품화 되어 눈길을 끌게 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학습을 통한 사회교육적 기능의 효과는 1990년부터 대국민 문화서비스 차원으로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술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유발시키고 전국 각지의 문화소외 지역을 찾아다니며 국내 우수작품들을 전시하는 이동전시 프로그램이다. (<과천이전 10주년 기념 사료집 국립현대미술관 1969~1996>)

인천 또한 도서지역과 공장 등 문화소외 지역이 많아 이러한 곳에서 전시와 강의, 체험학습을 통해 시민의 문화 향유도 증가하게 되면 바로 삶의 질적 향상과 함께 문화복지로 가는 역할을 미술관이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인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의 시너지효과를 높이는 미술관 건축이 매우 중요하다. 설계단계에서부터 바다와 인접한 인천의 환경과 역사적 정체성을 고려하여 시민과 방문객이 머물고 싶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개방적이며 친근감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학익지구에 미술관과 함께 많은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작스튜디오 단지’ 건설도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사업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창작공간이 없어서 토지가 저렴한 시골 지역을 선택해 인천을 떠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기반시설을 갖춘 용현.학익지역의 창작공간에 작가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입주할 수 있게 한다면 굳이 창작활동을 위해 고향을 등질 이유가 없다. 이러한 면에서 최근 이천시가 약 12만평부지에 추진해 온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촌인 이천도자예술촌(이천도자산업단지)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곳에는 현재 220여개 공방이 입주해 있는데 90%가 도자기 공방이며 10%는 회화와 조각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어서 도자문화를 특성화하고 있는 이천시의 상징적 문화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선웅 / 화가, 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인천 문화, 그 문화 가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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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는 용어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하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다담론적 개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나오는 문화 정의의 서두이다. 이어 “문화란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인위적인 사물이나 현상이라면 어떤 것이든 문화라는 말을 붙여도 말이 되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이대로라면 원론적으로, ‘문화에는 인간의 손이 닿은 모든 산물이 포함되며, 인간 집단에 의해 공유되는 생활양식’이라고 정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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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할진대 문화 가치를 논하는 일이 과연 녹록할 것인가. 역시 그 대상이 그지없이 다양하고 광대한 범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천이라는 어떤 한 지역을 범위에 두고 그 문화와 문화 가치를 운위하는 경우에는 다소 안심이 될 듯하다. 인간 전반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인천적인 것들을 들추어 살피는 일로 축소되는 까닭이다. 그렇더라도 실제 무엇이 인천 문화이고, 그 가치는 대체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또 다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천 사람들이 생산한 모든 산물을 포함하여 인천 사람 집단에 의해 공유되는 생활양식을 찾아 내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일까. 인천의 정치나 경제 영역일까. 문학이나 미술 등 예술 분야 같은 좁은 의미의 전문 문화에서, 그도 아니라면 시민 대중이 즐기는 대중문화에서 찾아야 할까. 그러나 머릿속을 헤쳐 보아도 명료하게 딱히 이것이 인천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에 대해 그동안 여러 논자의 의견 피력이 있기는 하다. 그들이 꼽는 인천적인 것이라면 대체로 역사적 사실이나 과거 유산, 시가지, 음식, 지역의 문화 예술, 축제, 인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은 있다. 과연 인천 시민 다수가 그것들을 자신들의 삶으로써 널리 확실히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의문의 진원을 금세 알게 된다. 우선 인천이라는 도시 형성 특성을 꼽을 수 있다. 그에 대해 1934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가 이미 대답의 일단을 제시하고 있다. “장래 대경성의 문화도시로 30만 인구를 수용할 대공업도시를 꿈꾸는 인천”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일제가 인천 시가지 확장을 위해 현 신흥동 주변 해안 6만 평 매립 7개년 계획을 내놓으며 한 말이다. 바로 이 짧은 기사의 행간 속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읽을 수 있다. 그 무렵 인천 인구는 한국인, 일본인 합쳐 7만2천여 명이었다. 한국인만은 6만에 육박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7년 후인 1941년에는 인천의 인구가 무려 4배가 넘는 30만이 되는 것이다. 매우 급속한 인구 팽창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외지 유입 인구에 의한 것이다. 이 같은 인천의 도시 형성 특성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인천 시민 다수가 인천 문화(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를 자신들의 삶으로써 널리 공유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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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장래 대경성의 문화도시’라는 말이다. 저들이 무엇을 가지고 문화도시라고 말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 말 앞에 쓰인 ‘대경성의’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특히 종속이나 소유를 의미하는 조사 ‘의’의 쓰임에 눈이 간다. 한마디로 대경성에 종속된 문화도시! 이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그대로 오늘에 답습되고 있다. 곁들여 저들의 인천은 ‘문화도시와 대공업도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문화도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인천을 군수기지화 해서 한반도와 나아가 대륙까지 침탈을 노리던 일제의 기만 술책일지 모른다. 어쨌든 공업도시(산업도시) 모습 역시 300만 인구 오늘의 인천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인천의 특성이 이렇게 존속되어 오는 한, 인천은, 인천 문화는 이 두 가지 문제 위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 문제에 조급할 것도, 지나치게 알레르기를 보일 것도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인위적으로 나설 일도 필경 아니다. 문화는 인간 집단이 살아오면서 집적한 생활양식 그 자체다. 인천 문화는 그 집적 속에서 찾고 자연스럽게 그것의 가치를 느끼면 되는 것이다.

김윤식 /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사람으로부터 발산되는 다양성, 자생성, 역동성의 문화적 가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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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의 문화환경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양식, 사고방식과 관습, 가치관 등 공동체의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며 발산하는 에너지(문화 색)로 저마다 다르게 형성된다. 인구 300만 시대로 접어든 인천은 그 어느 때보다 문화적 가치 재창조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 10월 인천시정이 발표한 ‘문화주권’ 정책은 문화활동의 주체로서 ‘시민’을 정책의 중심에 두면서 인천시민의 문화적 권리 즉, 창조적 문화활동과 참여, 문화향유권 보장을 지향하는 추진방향과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문화적 관점에서 외부의 시각으로 보는 인천의 이미지를 살펴보자. 인천은 한국 최초(最初)·최고(最古) 상징성을 지닌 풍부한 역사문화자산, 개항장 문화와 관문도시로서의 개방성과 다양성, 섬과 해양,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10개 자치구별 특색 있는 자연환경과 지역문화, 경제자유구역으로 형성된 신도시 문화권의 잠재력 등 인천만의 고유하고 차별화된 문화역량을 보유한 도시이다. 반면, 문화기반의 지역적 편차, 여전히 강한 공업도시의 이미지, 수도권과의 비교에서 오는 문화적 박탈감, 유동성에서 기인하는 도시정체성 등의 문제들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에서 인천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어디에서부터 찾아나갈 것인가. 그전에 ‘문화적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화적 가치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적 가치는 다양한 시각에 의해 다양한 영역과 범주를 포함하는 확장된 의미로 사용된다. 문화적 가치의 개념 정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영국학자 Holen의 문화적 가치 개념 접근1)을 살펴보면, 문화적 가치를 도구적 가치, 공적 가치, 본질적 가치로 구분하고 있다. 세 가지 가치는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으로 문화적 가치의 전체 개념을 설명하는데, 도구적 가치는 사회, 경제적 목적을 위해 문화가 활용될 때 발생하는 가치를 말하며, 공적 가치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서 시민들과 연계하면서 창출해내는 시민들 간의 상호존중, 사회적 네트워크를 위한 환경 조성 및 경험의 공유를 말하며, 본질적 가치는 문화영역에 대한 지적, 감성적, 정신적 경험 가치를 말한다. 그 중 본질적 가치는 문화영역에서만 존재하는 가치로, 미적 우수성과 개별적 문화향유와 관련된 개인 영역의 활동과 경험치에 중점을 두며,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 자산으로서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경험에 근거해 창출되는 문화적 가치를 의미한다. 필자는 본질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 인천시민의 삶과 일상으로부터 발산되는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읽어내고자 한다.

인천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어느 도시보다 역동적인 환경과 시대를 살아 내온 사람들, 시민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이뤄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시간을 관통해오면서 축적된 역사문화 유산, 자산 등 내재된 문화가치를 넘어 현재 삶의 유동성, 다변화, 상이함, 문화적 다양성 등 작은 생활단위에서 사람들이 발산해내는 역동적인 문화현상과 이미지들이 인천의 개성과 장점으로 인식되는 과정에 놓여있다.
지속적인 개발과 성장으로 인한 도시의 물리적 외연의 확장과 인구증가, 빠른 환경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한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보다 본질적으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밀착된 곳에서 발현되는 자생적인 문화와 다양한 문화현상들로부터 발견해내는 시각이필요하다.
1) Holen, J.(2004), 「Capturing Cultural Value: How culture has become a tool of government policy」London, Demos ; Holen, J.(2006), 「Cutural Value and the crisis of legitimacy」, London, De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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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박물관, 미술관 등의 관람률은 수도권 대비2) 2015 지역민의 의식변화상(2015), 통계청.낮지만, 인천시민의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 문화예술동호회 활동과 문화예술교육의 많은 경험, 생활권 문화활동에 대한 활발한 수요3) ‘인천광역시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의 일환인 ‘2016 인천 문화지표조사’의 1차 도출결과. 수개월의 조사 설계 과정을 거쳐 현재 진행 중인 조사는 12월 중순경 종합결과가 도출될 예정이다. 가 일상생활권 문화 활성화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주체들(예술가, 청년, 시민 등)에 의해 작은 단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문화활동과 문화공동체의 상호교류와 소통에 대한 높은 수요가 인천의 크고 작은 일상 공간에서 문화체감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민들이 그들의 일상에서 공유하는 문화적 감성과 축적된 경험치로부터 표출되는 긍정적인 문화적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인천이 가진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입지환경, 권역별/자치구별 상이한 문화특성, 새로운 도시환경 변화가 인천이 가진 풍부한 지역문화역량이자 인천만의 문화적 가치 창조(재창조)의 동력으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와 계층, 소수집단 등 다양한 층위의 시민들이 저마다의 일상생활권에서 발산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인천만의 고유한 문화 색으로 해석해내고 공동체의 가치로 모아내는 것이 현재시점에서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는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차곡차곡 모여진다면 인천시정이 표명한 진정한 인천 문화주권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조아영 / 문화다움 기획연구실장 ‧ 인천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 공동연구

[사진 출처]
1. 2016 펜타포트 음악축제(펜타포트 락 홈페이지)
2. 2016 청소년어울림마당_부평 문화의 거리(인천시 인터넷신문 홈페이지)
3. 해안동 아틀리에_심지프로젝트
4. 플랫폼 펀치(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




인천 탈출 실패기(失敗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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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인천문화통신 3.0 취재를 위해 방문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관람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스무 살 다섯 친구가 정처 없이 떠돌다 인천을 떠나 흩어지는 이야기다. 개봉한 지 15년이나 지났다는 영화 속 친구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에 겪은 일들을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스물네 살에 겪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십대 초반 반짝이는 네 해와 수천만 원의 학자금을 날렸다는 것. 15년 전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는 모두 ‘인턴 탈출’과 ‘인천 탈출’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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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반기문 키즈라 불렸고, 유엔사무총장과 외교관이 되겠다며 국제고에 입학했다. ‘인천에서 배워서 세계에 펼치자‘는 슬로건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인천에서 배웠지만 인천을 배우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인천은 그저 떠나야할 곳, 머물러서는 안 될 곳이었다. 모의고사 배치표에 줄을 그어 나온 대학 이름에 ‘ㅇ’자만 보여도 기함을 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로,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열아홉의 나는 수능을 망쳤고, 인천 탈출에 실패했다.

스무 살, 인천이 창피했다. 서울 사는 친척언니는 매주 보러 간다던 음악캠프를 수년에 한 번 공개방송 때나 볼 수 있었고, 지방 순회를 다니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연극과 뮤지컬 공연, 대형 전시도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인천에는 오지 않았다. 서울과 가깝다는 말은 그 사람들 생각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두 시간씩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대학로를 찾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인천에는 예술이, 문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천 사람들은 모두 그저 인천 탈출에 실패했을 뿐, 서울로 가려다 삐끗해서 잠시 인천에 머물 뿐, 인천을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물하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사범대학을 다니다 한눈을 판 곳은 인천의 문화예술판이었다. 이 바닥에서 처음 만난 프로그램은 ‘인천왈츠’. 인천에 살고, 인천에서 공부하고, 인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 우리 집 앞 소래포구, 놀러 다니던 차이나타운, 우리의 이야기가 한 편의 뮤지컬이 되었다. 바삐 살며 흘려보냈던 생각들, 일상을 함께 모여 나누니 이야기가 되고 작품이 되었다. 그곳에 인천 사람들이 있었다. 인천의 이야기가 있었고, 인천의 문화가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인천에 마음을 열었고, 인천을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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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신포동의 임시공간에 인턴으로 출근한 지 세 달. 늦잠을 잤고, 택시를 탔다. 개항장 대표거리로, 경리단길, 가로수길처럼 만들어진다던 ‘신포로 27번길’을 기사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홍예문에서 내려오는 길이요.”하니, 아저씨는 그제야 “아, 거기. 내가 잘 알지. 송학동이 내 고향이거든.”하며 핸들을 꼭 붙든다. 그리고 옛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근대건축전시관이 된 일본 제18은행에 근무하던 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개항장 일대를 누비던 아저씨의 유년기. 올해 인천왈츠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개항장 일대의 역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는 송학동 말고 선학동이 고향이에요.”하자 또 다른 이야기가 졸졸졸 흘러나온다. 선학동이 버스 종점이었다는 이야기, 송도 신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동막, 동춘, 연수동까지도 모두 바다였다는 이야기. 출근길 우연히 잡아 탄 택시에서, 우리 세대에 넘어오지 못하고 묻혀버릴 뻔 했던 인천의 이야기들을 주웠다.

인천의 문화와 미래는 인천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인천에 정주하는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이 사는 모습이 바로 인천의 문화이고 역사이다. 흘러가고 사라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 담고 이어가는 것은 앞으로 인천을 살아갈 이들, 바로 청년들의 몫이다. 청년들에게 인천 탈출을 종용할 것이 아니라, 인천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인천에 살며 인천을 느끼고 인천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 나라 청년들에게 미래가 없다지만 문화예술계의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인천 문화예술계의 청년은 더더욱 그렇다. 인천을 떠나는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청년들은 어쩌면 인턴 탈출을 위해 인천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 마지막 학기, 인천에서 먹고 살고 활동하면서 졸업은 해보겠다고 취업계를 내기 위해 방문한 교수님 사무실에서, 4대 보험 가입을 안 했으면 취업자로 인정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며 하고 싶던 말을 반쯤 삼켰다. 이 바닥에 정규직이 얼마나 있다구요. 4대 보험비 까고 나면 우리는 뭐 먹고 살아요? 거기 쓰여 있는 임금 250만원, 한 달이 아니라 네 달치예요.

인천의 문화예술판에 기웃거린 지 3년, 임용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이 바닥에 주저앉겠다며 집을 뛰쳐나온 지도 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바닥의 선배들은 내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인천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이해한다. 그들이 겪어온 과거도 순탄치 않았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그보다도 더 암담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탈출해야 하는 건 인천이 아니라 인턴이다. 스물넷. 나는 여전히 인턴 탈출을 꿈꿀지는 몰라도 더 이상 인천 탈출을 꿈꾸지는 않는다. 다만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을 오가는, 인천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이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인천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천의 이야기를 듣고 남기고 싶다. 함께 인천을 이야기 할 청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인천의 청년들이 모여 떠들 시간과 공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인천 탈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인천을 살고 있다고.

김진아 / 대학생,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인천은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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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근대다.” 이 땅의 근대와 연관해서, 가장 중심도시가 인천이다. 그렇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여기서 또 반복하고 있다. 왜냐고? 정작 이런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이 바보다.” ‘인천 = 근대’라는 등식을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인천이 근대와 관련해서, 국내와 해외에 내놓을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일까? 인천이 과연 근대와 관련된 ‘콘텐츠’를 잘 보유하거나 계발하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같은 항구도시로서의 군산과 목포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근대문화의 복원과 향유에 관심을 두고 있는, 대구와 부산과도 비교하게 된다. 근대와 관련된 인천은 ‘서 말의 구슬’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아직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지금 내 눈에 비친 인천은, 구슬은 있으나, 목걸이를 아직 만들지 못한 형상이다. 그간 인천의 근대와 관련된 저간의 노력과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빛이 바랬거나 묻혀있는 구슬을 찾아내고 정갈하게 닦아낸 그들이 고맙다. 그렇다면, 이제 목걸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인천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관(官)이 하기보다, 민(民)이 해야 할 일이다. 관의 뒷받침으로, 민이 해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이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인천사람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 글은 결국 자신에게 쓰는 반성문이자, 함께 일궈내자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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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바보라 함은, 내가 바보라는 자각이다. 바보라는 강력한 단어를 등장시켜서, 제발 말로만 떠들지 말자는 얘기다. 바보의 한 예로, 근대성(近代性)을 ‘과거’와 ‘건물’에만 두지 말자는 얘기다. 인천을 찾는 사람들이 개항장 거리에서 근대문화유산이라는 건물을 바라보고, 짜장면을 먹는 것이 과연 ‘근대’를 경험하는 것일까? 이게 인천의 근대를 경험하는 일일까? 이런 한나절 투어로 ‘인천 = 근대’가 끝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 곧 인천의 ‘근대적’ 가치를 콘텐츠화 시키는 게 급선무다. 인천에 ‘근대문학관’이 있어서 반갑다. 인천에 ‘근대음악관’이 생겼으면 더욱 좋겠다. 신민요와 재즈를 모두 즐기고, 일찍이 살풀이와 사교춤을 모두 수용한 게 인천이었다. 일찍이 근대음악과 서구문화를 수용했던 인천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근대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통의 가치를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야한다. 서로 다른 둘이 부딪히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면서 만들어냈던 그 ‘문화적’ 가치는, 곧 인천이 선도적 역할을 해서 이룩해낸 ‘근대적’ 가치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귀중한’ 가치다.

인천인이여!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일본제1은행인천지점(현, 인천개항박물관)은 건물이 남아있어서 의미가 있고, ‘애관극장’은 예전의 건물도 아니고 위치가 바뀌었다고 가치가 덜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인천의 근대를 연구하는 지역학자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아연실색했다. 당시 조선사람 혹은 인천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 더욱더 큰 의미가 있었을까? 번스타인이 피아노연주회가 있었고, 최승희가 신무용공연을 했고, 당시 대중들이 가장 좋아했던 ‘창극’의 공연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공간이 애관(愛觀)이었다. 인천이 진정한 ‘근대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용동권번(龍洞券番)의 기생이야기를 콘텐츠(이야기, 공연)로 만들어서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다.

인천의 근대를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가치는, 앞으로 이런 장소와 연관된 ‘근거있는 상상력’을 통해서 콘텐츠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콘텐츠가 된다. 그런 콘텐츠는 공연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소통하게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와 뮤지컬에서 만들어지는, 근대와 관련된 콘텐츠는 앞으로 ‘인천만의 가치창조’와 연관해서 좋은 예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 우리가 더 이상 바보일 순 없다. 그러기 위해선, 인천의 ‘근대적’ 가치를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을 실천해야 한다. 근대를 상상하라! 거기에 바로 인천의 ‘미래가 될 과거’가 있다.

윤중강(평론가, 연출가. ‘만요컴퍼니’ 예술감독)




인천만의 ‘숨’과 ‘가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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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인천의 문화적 가치, 혹은 재창조라는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듣고 있다. 이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증대되고 있는 것,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한 사람(1)으로서 반가운 소식이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 주제가 상당히 추상적이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문화공작소 세움’에서 수행했던 ‘인천의 토속음악 수집 프로젝트’의 경험을 토대로 인천 ‘흔적 읽기’로서 토속음악 수집이 갖는 의미와 발전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인천의 토속음악 수집 프로젝트’는 인천의 시대상이나 생활사가 나타난 토속음악이 있을까? 인천의 지리적 특성 및 이를 반영한 인천 특유의 어요, 농요, 노동요는 무엇일까? 타 지역과 차별화된 인천의 전통음악이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풀기 위한 작업으로, ‘문화공작소 세움’이 2013년부터 수행해 온 프로젝트이다. 또 지역의 토속음악은 전통음악이라는 보존 당위성 이외에 지역의 도시사와 시대사, 지역적 문화예술이 망라된 중요 유산이라는 점에서 연구․전승되어야 하고 이러한 점에서 인천의 토속음악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이를 발전시켜 현대적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사명감(?)으로 진행한 사업이기도 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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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선행 연구를 위해 관련 서적을 찾고 인터뷰를 다녔다. 인천과 서울의 헌책골목을 뒤지고 보존서고와 관련 단체에 잠자고 있는 자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책으로는 인천의 토속음악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특히 관계자들의 인터뷰 결과와 고증이 쉽지 않은 구술 채록의 특징으로 ‘인천의’라고 붙일 만한 토속음악이 존재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수행한 선배님들의 작업과 조언을 기반으로 우리는 ‘연구’보다 ‘콘텐츠’의 관점에서 어떤 소리든 채집을 이어왔다. 많은 보존회와 굿판을 따라 다녔고, 연수구, 서구, 강화 등 내륙 지역은 물론이고 백령도, 연평도, 덕적도, 대청도, 소청도 등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한편 어르신들을 수소문했다. 그렇게 약 40여곡이 넘는 음악들을 수집했고, 이중 10곡을 추려 현대적으로 음악을 구성하고 재창작하는 작업을 하였다.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서적 『인천의 예술가, 인천의 소리를 보다』와 음반 <인천, Rewind & Rebirth>가 나왔다. 사실 이 콘텐츠적 창작 활동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라디오와 방송에도 소개가 되기도 했었으나, 여러가지 여건상 작업을 확장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타 지역과 전혀 다른, 인천만의 토속음악인가? 어르신들의 구전이 신뢰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통해 특정한 지역, 시기, 활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음원, 구전을 채집함으로써 인천의 시대상과 음악적 특성을 해석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작하는 성과를 거뒀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인천의 문화적 가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흔적 읽기’와 그것의 확장방안에 대한 노력(고민)을 ‘인천의 문화적 가치 찾기(재창조)의 의미와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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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아마 ‘살아있는 생생한 형식’들을 수집하는 것으로, 이러한 흔적의 수집과 해석을 통해 인천을 기억(記憶)하고 재구성(再構成)함으로써 인천이 어떠한 도시인가에 접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을 비롯한 문학, 조형물, 사진 등 인천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문화적 흔적을 발견하고 해석하며 이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인천의 가치, 인천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3)
흔적 읽기로서 토속음악 프로젝트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화적 가치 확장의 가능성을 갖는다. 첫째는 지역연구로의 확장 가능성, 둘째는 콘텐츠의 현대적 작업을 통해 대중과의 공유 및 경제적 파급효과 창출 가능성이다. 전자는 좀 더 많은 채집과 다양한 접근을 통해 학문적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다. 토속음악 보유자들을 찾아내고 이들의 구술과 노래에 대한 채록, 녹음, 채보를 진행함으로써 ‘인천 토속음악사’를 발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의 배경이 되는 향토사와 문화사 등 학제 간 연구를 확대함으로써 지역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후자는 지역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더 파급력 있게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타 지역들의 경우, 지역 문화자원의 보존과 이의 현대적 창작 활동 그리고 그 효과를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공업도시였던 울산은 ‘처용(무)’를 중심으로 ‘처용 문화제’를 50여 년간 진행해 왔고, 최근에는 국제적 페스티벌(울산 월드뮤직 페스티벌)로 영역을 확대하여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또한 전통문화를 베이스로 한 현대음악 영역으로 확장, 매년 관련 시장의 해외 관계자 방문이 증가하고 있다. 축제를 통해 지역 문화자원을 공유․확산하고, 기회를 전문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비즈니스 영역으로 효과를 확대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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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천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 재창조 사업들도 위와 같은 의미와 효과(인천의 정체성 형성, 확산, 경제적 파급효과 창출)를 위해 기획, 추진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주변을 살펴보면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공유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에서 찾거나, 이미 알려진 ‘최초(最初), 최고(最古)’를 재활용하거나, 고증되지 않은 설을 역사로 활용하는 사업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사업들이 ‘연출된 흔적’을 만드는 가벼운 접근이 아닐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는 항상 존재해오고 있었고 그것들은 알게 모르게 새로운 방식으로 형성․발전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활성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인천의 가치 재창조가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주변에 있는 의미 있는 문화적 흔적들을 면밀히 발견하고 해석하고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1)필자는 인천에서 15년 정도 예술 활동을 해왔으며, 2011년 ‘문화공작소 세움’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대표로 재직 중이다. 단체 운영과 공연 제작,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2)물론 주대소리를 비롯하여 인천 각 지역의 도당굿, 갯가노래 등이 인천 토속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몇몇 토속음악에 대해서는 ‘인천의’를 붙일 수 있는가에 대해 논쟁적이었으며, 보존회 등을 통해 전승되지 않는 토속음악이 있을 수 있기에 발굴․보존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특히 인천의 토속음악을 현대적 콘텐츠로 재창작하는 작업은 없었기에 ‘인천 토속음악 프로젝트’는 필요했다.
(3)새로운 지향점을 설정함으로써 지역정체성을 형성할수도 있으나, 최근 인천시에서 추진하는 인천의 문화적 가치 발굴, 가치 재창조 사업을 이미 인천에 있는 가치를 발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 /유세움(문화공작소 세움 대표)




유럽연합의 가치재창조 사례 – UPPs와 URBACT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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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항상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성공적이라는 도시들도 그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에게 생애 주기가 있듯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 이후 청년기처럼 왕성하게 성장하던 유럽의 도시들은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도시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들의 도시 미래의 비전을 ‘문화도시’로 설정하고 있음을 종종 접하게 된다. 유럽의 도시들이 지향하는 ‘문화도시’란 기존 성장 중심 도시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천도 현재 문화도시를 위한 ‘문화도시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토론이 있지만 문화도시 인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문화’에 대한 개념적 범주에 대한 혼란으로 인해 논점이 흐려지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문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우리는 문화도시를 꿈꾸는가? 어떻게 문화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문화’에 대한 이론적 정의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문화 Culture’는 ‘자연 Nature’의 의미대립쌍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문화’는 ‘인간에 의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고, 반대로 ‘자연’은 ‘있는 그대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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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이 닿은 것은 문화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자연이라고 볼 때, 수많은 문화는 모두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화가 무엇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문화들 중에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해진다. 모두가 자신의 문화가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주장할 수 있으나, ‘가치’란 상대적 개념이다. 장기판의 장기 알은 모두 그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으나, 장기 알의 가치는 그 위치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고자 한다. 이 당면한 과제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치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도시 인천을 향한 가치재창조의 우선 순위는 어떤 기준을 근거로 삼을 수 있을까? 이 해답은 유사한 고민을 했던 유럽 도시들의 시도들 속에서 시사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유럽은 EU공동체로 통합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 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슬로건을 문화도시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채택했다. 유럽연합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주도하고 있는 ‘시범도시사업(Urban Pilot Projects: 이하 UPPs)’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UPPs 1차 사업은 1996년까지 진행된 도시재생사업으로, 14개 회원국의 503개 도시들이 경쟁하여 33개 도시가 선정되어 진행된 사업이고, 그 성과를 토대로 2차 사업에서 26개 도시가 선정되어 1999년까지 진행되었다. 이 사업의 선정기준으로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발전 계획을 척도로 삼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현재 3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URBACT란 이름으로 UPPs의 성과를 공유하여 다른 도시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UPPs와 URBACT 사업전략의 일환인 ‘생태성’, ‘사회성’, ‘경제성’이란 세 가지 원칙은 그저 세 요소가 충족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곧 ‘생태적인+사회적인+경제적인’ 요소들이 상호의존적인 교집합 형태로 작동할 때 가능하며, 또한 이 3가지 요소들 역시 우선순위 원칙에 따라 ‘생태성’, ‘사회성’ 그리고 ‘경제성’ 순으로 위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UPPs와 URBACT 사업은 유럽의 쇠락한 도시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사회적 활동’, ‘치유’, ‘예방’, ‘교육’을 통해 ‘자립적’이고 ‘생산적’인 속성을 도시에 부여하기 위한 사업이다.

우리는 인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책의 우선 순위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 문화도시 인천을 위한 ‘가치재창조’는 매우 의미있는 정책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원 / 인하대학교 문화경영학과 교수




300만 시대, 인천의 위상에 걸맞는 국제교류를 위해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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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적 가치란 무엇일까? 이 어려운 질문을 받고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난 인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인천의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 지리적으로 인천만이 갖고 있는 보편타당한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강화, 개항, 섬, 문학산성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로부터 인천은 바다와 한강을 끼고 있어 동·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교통의 요충지로, 말 그대로 국제교류의 장이였다. 지금도 인천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인천국제공항과 수많은 유커들을 맞이하는 항구를 갖고 있다. 인천이 인구 300만 도시라는 수식어가 넘쳐나지만 정작 시민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국의 세 번째 도시로서의 위상은 어떠한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인천프랑스문화원에서 일한 지난 10년간 프랑스와 인천이 문화적으로 교류하는 크고 작은 문화행사와 축제에 관여해왔다. 그러면서 만난 많은 프랑스의 예술가, 문화기획자, 관계자들은 인천에서 잠시 머무를 뿐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다른 지방 도시에서 일정을 보낸다. 인천의 강화도, 차이나타운, 섬을 추천해보지만, 외국인들이 스스로 찾아가기에 너무나 복잡한 대중교통과 정보 찾기의 어려움으로 다들 포기하고 접근성이 쉬운 서울로 향하는 것이다. 요즘 핫하다는 송도신도시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만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덕적도, 차이나타운, 월미도 등에 대해 미리 알고 찾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찾고 있는 인천만의 문화적 가치는 자신들만의 소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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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맺은 지 130년이 된 해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를, 올 3월부터 12월까지 한국에 프랑스 문화를 소개하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파리뿐만 아니라 낭뜨, 뚤루즈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크고 작은 도시에서 많은 한국의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진행됐고, 프랑스 여러 도시에서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올해 한국에서 이뤄진 대부분의 한·불 수교기념 문화행사는 서울에서 열렸고, 부산만 해도 각종 영화제, 무용제, 전시 등 국제적인 규모와 다양한 장르의 다채로운 행사들이 개최됐다. 하지만 인천은 어떤가? 프랑스 오페레타 공연(송도 트라이볼), 피아노 공연 및 전시, 시네마 프랑스 인천, 재즈공연(버텀라인), 재즈샹송공연(신세계 백화점), 한불수교 기념 문화행사(인천대학교),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의 전시 등이 전부다. 대부분 인천프랑스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한 행사다. 물론 이 행사들도 좋은 문화교류라 할 수 있겠지만 모두 소규모 행사들이기에 인구 300만의 도시 인천의 위상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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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제문화도시를 꿈꾸는 인천, 인천에서 도시간의 지속가능한 국제교류를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도시간의 문화교류 방법과 접근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도시간의 국제문화교류는 축제와 축제 혹은 예술가들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민간이 아니라 관이 먼저다. 프랑스에서는 더 이상 관이 주도하는 문화교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관이 주도해서 하는 도시문화교류는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도시간의 문화교류를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선행해야 할 것은 그들의 문화교류 방식을 이해하고 우리의 문화를 ‘무엇’으로 ‘누구’와 교류를 하게 할 것인가를 제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행정은 전통적으로 관에서는 정책과 행정을 지원하되 모든 실행은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이 대부분으로, 대부분 관이 주도하는 한국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이 주도하는 국제문화교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관은 행정을 지원하고, 모든 결정과 권한은 민간이 갖는 민·관협력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며 그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지역의 예술가들로 하여금 지역의 전통과 새로운 창작활동을 용이하게 하고 문화기획자에게는 지역문화특성에 맞는 교류시스템을 구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젊은 예술가들과 기획‧배급 인력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천만의 문화인력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열정적이고 실력 있는 젊은 예술가들과 문화기획자들은 인천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 1년 혹은 2년 정도 일하다가 서울로의 이직을 꿈꾼다. 하지만 서울에서 일하는 주변의 많은 문화기획자들의 실상을 살펴보면 그렇게 화려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들이 문화기획자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을 뿐이다. 젊은 예술가들과 문화기획자들이 인천에 와서 일할 수 있는 터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현재 인천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래의 예술가들과 문화기획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역문화인프라육성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인천의 문화가치를 세울 사람도 이끌어갈 사람도 결국 그들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있어야 도시의 미래가 있다.
또한 젊은 세대들에게 세계의 문화를 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매년 7월에 개최되는 프랑스의 아비뇽축제와 샬롱 축제는 세계의 공연예술가들과 문화기획자들이 모이는 프랑스의 대표 공연예술축제다. 자국의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우수한 타 국가의 예술작품들을 초청하는 국제문화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매년 100명 이상의 문화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이 이 축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인천의 문화기획자과 예술가들은 몇 명이나 참여했을까 궁금하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고 국제 문화교류의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 인천을 위해서라면 시 차원에서 국제문화교류 시스템 구축은 물론 지역의 젊은 세대들을 위한 문화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종서 / 인천대학교 불문과 겸임교수·인천알리앙스프랑세즈-인천프랑스문화원장




시네마천국이었던 동인천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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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학창시절 수많은 영화를 봤던 애관극장,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인 애관에 대한 다큐 영상이 왜 한 편도 없을까. (애관은 1895년 협률사로 출발해 1911년 축항사, 1924년 애관으로 개칭된 121년 된 극장이다.) 인천영상위에 계신 아는 분께 연락을 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애관에 관심을 갖고 촬영하려고 했던 감독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 왜 영상물이 없을까?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관 측에서 촬영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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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애관극장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전화통화도 안 되었고 소개서를 들고 찾아도 갔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거의 포기할 뻔 했지만, 인천에 내려갈 때마다 한 번씩 찾아갔다. (아버님이 신흥동에 사신다.) 6개월쯤 찾아갔을 때 극장 운영을 맡고 계신 이사님께서 내 정성이 갸륵(?)했는지 촬영 허락을 해주셨다. 그날은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이미 영화의 반은 완성한 느낌이었다. 그 후 어느덧 1년 가까이 촬영을 하고 있다.

“분명 한때 인천의 최고 스타플레이어였던 극장들은 은퇴경기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무대 뒤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굿모닝인천 유동현 편집장님의 말씀 중 몇 단어를 바꾼 말이다. 인천의 중심지였던 동인천 지역에는 애관을 비롯해 미림극장, 키네마, 동방극장, 인영극장, 인천극장, 문화극장, 인형극장, 오성극장, 현대극장, 자유극장, 장안극장, 도원극장, 시민관, 세계극장, 용사회관, 동인천극장, 항도극장, 아카데미 등등 한때 19개의 극장이 있었다. 당시 인천의 인구 수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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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익동에서 태어났고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송현동에서 오래 살았다. 가장 많이 간 극장은 현대극장이었다. 동시개봉관이라 두 편을 싼 값에 볼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 붙이는 아저씨를 기다리면 재수 좋게 할인권을 얻을 수도 있었다. 내가 다닌 광성고 밑에는 자유극장이 있었고, 이곳 역시 삼류 동시개봉관이었는데 항상 성인물 한 편과 다른 영화 한 편을 틀었다.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 극장이었다. 오성극장은 특이하게도 양키시장 위에 세워진 극장이었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분수대 같은 게 있었고 사람 말을 따라하는 구관조가 인상적이었다. 자료를 찾다가 인천시청 기록관에서 오성극장 내부 사진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금 오성극장은 텅 비어있고 재난위험시설 D등급을 받고 언제 헐릴지 모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형극장은 나중에 UIP직배 영화관이 되었는데 영화인들이 UIP 직배에 반대하여 서울 직배극장에 뱀을 풀어놓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애관은 당시 최고의 극장이었다. 1980년대에 인천 최초의 70mm 영사기와 THX 음향시스템을 갖춘 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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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007 시리즈, ‘터미네이터’ 등등 영화를 보고나면 친구들과 한참동안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곤 했다. 동인천 지역 극장들은 내게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분명 시네마천국이었다. 그때 본 영화들이 나를 감독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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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뵈었다. 최불암 선생님 선친인 최철은 인천 최초의 영화제작자로서 ‘수우(愁雨)’ (1948년작. 감독 안종화. 주연 김소영, 전택이)를 인천에서 제작하셨는데 ‘수우’ 시사회를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8살 최불암은 최철의 영정사진을 들고 가족과 함께 동방극장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 후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는 동방극장 지하에서 ‘등대’라는 음악다방을 운영하셨다. 이 모든 이야기를 최불암 선생님 인터뷰를 하면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림극장에서 폐관 때까지 35년간 영사기사를 하신 조점용 선생님, 인천에서 촬영한 ‘사랑’ (1957년작. 감독 이강천. 주연 김진규, 허장강)의 촬영조수였던 정의배 선생님, 39년간 극장 간판을 그린 김정길 선생님 등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말씀을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 분을 만나면 그분이 다른 분을 소개해 주셔서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극장은 단지 외형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06다큐 작업은 끝을 모른 채 출항하는 위태로운 항해와도 같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내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1년 후면 영화를 완성하여 출연했던 모든 분들을 모시고 애관극장에서 시사회를 갖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윤기형 / CF 및 다큐 감독




문화 없이 성장이 가능한 도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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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 시장의 심장 월스트리트, 예술의 중심지 브로드웨이를 동시에 품고 있으면서 세계 최첨단의 유행이 펼쳐지는 쇼핑가가 밀집한 맨하튼은 명실공히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불린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지금도 세계의 많은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러브 스토리를 위시하여 많은 명작의 배경이었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인천의 송도국제도시 혹은 경제자유구역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에 맨하튼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인프라를 배후로 약 40조원의 민간 자본 조달로 지어지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도시 개발구역인 이 도시의 마스터플랜은 콘 페더슨 폭스(KPF)의 뉴욕 사무소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맨하튼이 태생부터 지역시민들의 역이탈을 막기 위해 문화적 공간에 대한 치밀한 설계를 병행했듯 송도 역시 다양한 문화적 아이템들이 생기고 있으며 일부는 성공리에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쯤에서 뉴욕에서 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있는 공간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필자와 같은 몇몇 영화광의 열정으로 시작된 시네마테크인 뉴욕의 시네마테크, <필름 포럼,Film For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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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독립영화를 상영할 공간을 찾아 카렌 쿠퍼를 대표로 50개의 간이 의자로 시작했던 뉴욕의 <필름 포럼>은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시네마테크가 되었다. <필름 포럼>의 발전과정은 DRFA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의 신뢰성에서부터 시작됐다. 보석같은 작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 프로그래머들의 안목과 그 열정이 지금의 필름포럼을 만든 셈이다.

이 극장에서 <쉘 위 댄스>를 보기 위해 줄을 서던 젊은 날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물론 이 극장에서는 한국영화 <워낭소리>도 개봉한 바 있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단골 레퍼토리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의 고전>, <작가주의 특선>, <세계 영화는 지금>이라는 3개의 섹션이 3개의 관을 채우고 1년 365일 다채롭게 극장은 돌아간다. 뉴욕의 관객들은 밤이 되면 그리니치빌리지로 속속 모여든다. 그리고 전세계의 영화 동지들이 지금 어떤 화두로 영화를 만드는지 진지하게 토론하며 영화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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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포럼 40주년 프로그램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관객들, DRFA 365 예술극장도 40주년엔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물론 프로그램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극장이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한 후 <필름포럼>은 55명의 정규 직원과 수십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끊임없이 극장을 꾸며나갔다. 영사기를 HD로 바꾸어 어떤 매체의 소스도 디지털로 상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자 시트를 벨벳으로 바꾸었다가 가죽으로 바꾸었다가, 조명을 바꿔본다거나 하는 등 전직원이 극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 극장의 연간예산은 800만 달러로 대부분 시와 기업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2013년의 개인 기부금은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필름 포럼의 수석 프로그래머인 캐런 쿠퍼는 작품 선정의 기준을 묻는 기자에게 “관객들의 사고에 도전의식을 던지는 개성적인 작품이 최우선”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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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동검도에 35석의 예술극장을 지을 때만 해도 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나간 이상주의자로 낙인찍혀야 했다. 30년이 넘은 필름 콜렉션의 긴 여정 끝에 내가 모은 이 필름들을 이제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기로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나눠야 할 공간의 지리적 요건의 1순위는 산과 바다가 보이는 자연친화적인 곳이어야 했다. 수도 없이 고민했고 많은 시간을 들여 찾아낸 곳이 바로 동검도였다. 동검도가 초지대교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것도 필자를 끌어당기는 중요 요소였다.

2014년 11월 15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여배우 <실바나 망가노 특집>을 시작으로 지난 3년간 수많은 희귀작들이 관객들과 만났다. 관객층은 김포에서 인천으로, 그리고 인천과 서울까지 저변을 넓혀나가 이제는 1달에 2,500여 명의 관객이 작가주의 영화를 보기 위해 동검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누군가 DRFA 365 예술극장의 작품 선정 기준을 묻는다면 필자 역시도 캐런과 비슷한 대답을 할 것 같다. 영화는 세상을 선도하는 선각자 같은 시선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놓친 진짜 걸작들을 찾아내서 관객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3주년을 앞둔 DRFA의 숙제는 ‘2관 설립’이다. 그동안 수많은 분들로부터 2관 설립에 관한 제의를 받아왔지만 현재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송도다. 송도는 전국의 8대 경제자유구역 중 10년 동안 단연 외투 실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도시로 특히 8대 경제자유구역의 외자 유치금을 모두 합산했을 때 약 95%이상이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이 홀로 일궈낸 투자 성과로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송도에서 온 관객 분들이 그 먼 길을 거쳐 동검도의 DRFA에 들어서면서 한결같이 ‘송도에도 이런 예술극장이 하나 있었으면’하는 탄식을 하는 것을 봐 왔다. 이 분들의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과연 문화 없이 뉴욕이 세계의 중심부가 될 수 있었을까? 혈관이 비어 있는 백짓장 같은 도시에 문화는 생명을 공급하는 행위다. 유독 한국에서만 R&D, 바이오, 패션, 첨단 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문화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등한시하는지 영원한 미스터리다. 앞으로 송도에도 필자와 같은 문화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거대한 콘크리트 도심 속에 문화를 정착해나가기를 바래본다. 

유상욱 / 동검도 DRFA 365예술극장 대표,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