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문화적 가치 창조를 위한 제언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여성들은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또 하나 여성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축구 이야기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의 결정판은?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다. 이 정도면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아재 개그’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당연히 지금은 아니다. 군대는 몰라도 축구라면, 위의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해묵은 유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여성들 중에서 열성 축구팬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여성들의 응원이 더 열성적일 때도 있고, 심지어 아줌마들도 축구단을 구성해 슛을 날린다.
문화를 논하기 위한 지면에서 뜬금없는 축구 이야기는 사실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인천이 품고 있는 축구의 문화적 가치를 엿보기 위함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축구를 문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더 나아가 「축구자본주의」 같은 책에서는 경제적 관점에서 축구를 해부하고 있다. 경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자는 축구와 문화 사이에는 분명 교집합의 빗금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인천을 들여다본다. 인천은 축구와 문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최고의 여건을 갖춘 도시다. 스포츠는 스토리텔링이 접목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축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유로2016’에서 8강의 기적을 일군 아이슬란드나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레스터시티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스포츠 관련 보도 또한 단순한 스코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경기 이면에 감추어진 이야기에 주목하곤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축구 도시’로서 인천의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인천에는 축구에 얽힌 기막힌 스토리텔링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텔링은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19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성공회 소속 선교사로 추정되는 ‘시드니 J 파커’라는 한 영국인이 1901년 겨울에 강화를 방문했다. 그는 강화에서 어떤 축구클럽을 접하게 된다. 바로 강화학당 축구팀이다. 한복 유니폼(?)을 차려입은 이 축구팀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그해 3월 21일 영국 성공회 발행잡지인 ‘모닝컴(Morning Calm)’의 편집자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는 ‘편집자에게 지면에 반영될 만한 흥미로운 사진을 보낸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DEAR Mr. EDITOR, I here with send you a few more photographs which you may find interesting enough for the pages of Morning Calm.)
편지는 이어 “강화학당 축구팀이 G. A.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훈련을 받았다(Kang Hoa School fooball team, which has been carefully trained for some years by Rev. G. A. Bridle. )”며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고, 좀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하다.(The boys play a very good game, and after a little more training would be quite capable of taking part in some of the league matches in England )”는 내용을 담았다.
안타깝게도 이 편지는 한 세기 넘는 세월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봉인돼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한국 근대 해군 창설과 관련한 옛 자료를 조사하던 인천 강화문화원이 서울 성공회대학교에 보관중인 옛 마이크로필름을 확보, 필름의 내용물을 분석하다가 바로 이 내용을 담은 8줄 가량의 영문 문서와 사진 1장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경인일보(2007년 7월20일자)에 ‘1901년 강화에 축구팀 있었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338740)라는 제목으로 최초 보도돼 체육계와 역사학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무려 115년 전에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한 축구팀이 우리나라에 존재했었다니… ‘유로2016’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바로 호날두의 소속팀인 레알마드리드(1902년 창단)보다 앞선 시기, 조선의 강화에 축구팀에 존재했다는 것 아닌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때의 흥분을 필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소중한 역사를 담은 문헌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헌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한민국의 축구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근대 축구의 보급 연도(1904년)는 물론 국내 최초 공개 축구 경기 연도(1905년) 등 대한민국 근대 축구사를 수년 앞당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체육회는 물론 인천시 등 그 어떤 공공기관도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필자는 이 강화 축구팀의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파생상품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고, 요즘 유행하는 웹툰도 좋다. 야구에서는 이미 ‘YMCA 야구단’ 같은 영화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 바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 깊은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사와 연구를 토대로 학술대회 등을 통해 한국의 근대축구사를 재정립한다면 인천은 ‘대한민국 축구의 발상지라’는 새 타이틀을 갖게 된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인천 가치재창조 사업’의 내용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던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같은 재미없고 진부한 스토리텔링은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강화의 축구 이야기’ 처럼 인천의 위상을 드높이고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소재라면 마땅히 새로운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성훈 /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