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 되기, 인천사람 만들기 – 인천SK행복드림구장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월이 되자 다시 포털의 스포츠 페이지에 프로야구의 각 팀의 올해 전망이나 선수의 각오가 담긴 인터뷰, 스프링캠프에서의 연습경기 결과와 같은 기사들로 메워지고 있습니다. 2018년의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조금 가볍게, 야구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는 급격하게 팬이 늘어났습니다. 2006년 300만 명을 간신히 넘긴 관중 수는 2011년에는 680만 명에 도달했고, 최근 2년간은 800만 명이 넘는 관중이 매년 야구장을 찾으면서, 국민 스포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6년 야구장을 찾은 관객이 331,143명이었던 것에 반해, 2007년엔 곧바로 두 배에 가까운 656,426명이 이른바 ‘직관’을 했습니다. 2012년에는 인천의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한 해 관중이 100만 명을 넘기도(1,069,929명) 했습니다. 인천은 꾸준히 80만 명을 상회하는 관중을 동원하는, 나름 ‘빅마켓’이 된 것입니다.

프로야구는 탄생한 이후 꾸준히 사랑을 받았지만 2010년대의 인기가 유례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천 야구도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의 자부심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구단의 역사가 다사다난하기도 하였고 전통적으로 스몰마켓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10년간 급상승한 프로야구의 인기를 보며, 과거와 달라진 도시와 야구, 더 나아가 도시와 프로스포츠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1982년 프로야구의 탄생, 1983년 프로축구와 프로씨름의 시작이 당시 독재정권에 의한 3S 정책의 일환이며, 정치적 목적이 있었음을 다시금 부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한 것은 국가가 직접 지역과 운영 기업을 선정하고, 구단의 운영까지 개입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여가의 시간과 공간을 국가가 원하는 한 지점에 몰아넣음으로써, ‘야구를 보는 즐거움’을 ‘정권에 대한 만족감’으로 치환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이유로 누적되어 온 지역감정이 각 지역에 하나씩 배분된 야구에 투영된 것은 어쩌면 당시 독재정권의 목적이 성공적으로 달성되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지역감정을 간혹 벌어지는 선거에 드러내기보다, 매일 벌어지는 역동적인 야구에 투영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짐작하다시피, 인천야구의 역사는 이러한 틀로 읽어내기 조금은 애매하지요. 인천 야구는 오랜 역사와 우수한 고교팀의 인기를 갖고도 프로 구단을 운영할 기업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어야 했고, 그래서 오랜 시간 여러 기업으로 팔려야 했으며, 한때는 구단이 도시를 두고 떠나고 그 빈자리는 어제까지 다른 도시의 구단에서 뛰던 선수들이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인천을 대표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천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대부분 시간은 영광보다는 아쉬움과 빈약함으로 기억되고는 했습니다.

게다가 인천에서 프로야구를 소비할 계층의 사람들은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요. ‘외지인의 도시’ 인천에는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만큼이나 충청에서, 호남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영호남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지역감정과 맞물려, 인천의 야구팀은 인천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인천시민들은 고향의 팀을, 부모님의 고향의 팀을 선택했습니다. 숭의야구장의 청보 핀토스나 태평양 돌핀스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3루를 채운 홈 팬만큼이나 1루를 메운 빙그레 이글스나 해태 타이거즈의 팬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옛 숭의야구장의 경기 모습.
인천시민들은 세대에 걸쳐 야구의 문화와 기억을 공유하기 어려운 역사와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출처: KBSn스포츠 “인천 야구의 기억” 중.  동영상 바로가기▶ )

그래서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을 거듭하던 90년대 후반에도 연간 관중 50만 명을 넘지 못하던 스몰마켓 인천에서의 2012년 100만 관중 동원은 단순히 한 야구단을 운영하는 그룹의 성공으로 보기엔 더 많은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레이더스의 선수들을 잔뜩 데려다가 갑자기 인천 야구팀이 되었던 SK 와이번스는 어느덧 인천에 있던 그 어느 야구단보다도 오래 인천에 자리 잡은 야구팀이 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야구 관중의 계층이 다양화되고 젊은 층과 여성 관중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천에 옮겨와 산 외지인들의 인천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나의 팀’으로 인천의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인천은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25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도시인들 다수의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83년과 다른 것은 지역사회에 프로야구단이 주입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프로야구의 문화 속에서 도시의 사람들이 자신의 팀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SK 와이번스는 프로야구계의 조정에 의해서 인천에 이식된 팀이었기에,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도시에 융화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것은 실은 마케팅의 결과물이지만, 인천의 대중문화의 한 켜를 두텁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들입니다. 지역 연고 선수를 영입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 다양한 기부를 하는 등이 있겠지만,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도 이런 융화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홈런이 나오면 울리는 뱃고동 소리나, 초대형 전광판 위에 장식된 인천의 랜드마크들이 인천의 이미지를 환기시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응원 문화가 자리 잡았음에도 꾸준히 불리는 응원가 ‘연안부두’는 기성세대와 젊은 야구팬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응원 구호인데, 10개 구단 중에 8개 구단이 ‘최강 OO’를 사용하고, LG 트윈스가 ‘무적 LG’를 사용할 때 SK 와이번스는 ‘인천 SK’를 외치지요. 이렇게 함께 ‘인천’을 외치면서, 우리는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을 느낄 때, 이것을 한 스포츠의, 혹은 한 기업의 성공과 실패뿐만 아니라, 일정 부분 우리 도시의 성공과 실패로 인식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됩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의 빅보드. 전광판 위에 인천의 랜드마크와 상징적 이미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출처 :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

「주어진 인천의 풍경들」(인천문화통신3.0 34호)에서 인천의 지방정부는 공통으로 어떤 인천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인천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정체성을 갖기를 바라는 것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도시가 야구만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 스포츠의 연고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 모든 지방정부는 프로 스포츠를 지원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통해 관람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동일시, 함께 관람하는 지역민들과의 유대감 형성과 같은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환호하거나, 파도타기를 할 때, 경기 후 돌아가면서 응원가를 부를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할 때와 같이 소소하고 흔한 순간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가를 즐기다가,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인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김은식, 2003,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 한겨례출판사.
심은정, 2014, 「제5공화국 시기 프로야구 정책과 국민여가」, 역사연구 26.
유관호,박두용, 2009, 「프로야구·축구 관람객의 연고지 사회인식 요인 분석」, 한국체육정책학회지 13.
임수원,이근모, 2003, 「영·호남팀 프로야구경기가 지역감정에 미치는 영향,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16(1).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 바로가기▶




[큐레이션 콕콕] 키워드로 보는 ‘2018 코리아’

매년 대한민국의 소비 흐름을 전망해온 ‘트렌드 코리아’가 2018년 10대 트렌드를 발표했습니다. 

1.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2. 불안한 사회에서 나만의 휴식공간을 찾아나서는 ‘케렌시아 현상’ 3. 대면 접촉이 필요 없는 ‘언택트 기술’ 4. 새로운 부가가치와 수요를 창출하는 ‘만물의 서비스화’ 5.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 세대 6. 자신의 취향과 정치사회적 신념을 커밍아웃하는 ‘미닝아웃’ 7. 기능적 관계나 반려동물이 대체하는 ‘대안 관계’ 8. 가성비를 넘은 만족을 주는 ‘플라시보 소비’ 9. 같은 성능, 같은 가격이라면? ‘매력 자본’ 10.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는 노력’이 그것입니다. 

Wag the dog는 일종의 정치 속어로, 권력자가 불미스런 행동이나 부정행위 등으로 지탄 받을 때 그 비난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 치는 행위를 뜻합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은 일상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1인 방송이 주류매체보다, SNS가 대중매체보다, 사은품이 본 상품보다, 거리의 푸드트럭이 백화점의 푸드코트보다 각광 받는 현상이 그 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언더독underdog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18년 대한민국을 지배할 트렌드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소확행에는 작은, 사소한, 일상, 보통, 평범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한 삶을 즐기는 프랑스의 ‘오캄’, 소박하게 자신의 공간을 채워나가는 스웨덴의 ‘라곰’, 따듯한 스웨터와 장작불 옆 핫초콜릿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편안함을 상징하는 덴마크의 ‘휘게’처럼 찰나의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이죠.

소확행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0년대에 만든 신조어입니다. 그는 한 수필집에서 행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행복은 멀리 있지도, 거창하지도 않으니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대만에서 동명의 책과 영화가 관심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공부, 취직, 결혼, 연애 등 어느 것도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나서는 거죠.

성공, 꿈, 재력, 사치보다 커피, 인디음악, 반려 동물, 맥주, 요리 등에 주목하고 드물게 멀리 가는 여행보다 자주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꿈꿉니다. 집을 최고의 휴식처로 삼는 ‘홈루덴스(집home+유희ludens)’, 집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호캉스(호텔+바캉스)’ 등도 인기라고 하네요.

불안한 사회에서 나만의 휴식처를 찾아나서는 케렌시아 현상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입니다. 현대인들에게도 혼자만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케렌시아 공간이 절실하죠. 단순한 쉼을 넘어 취미와 창조 활동을 위한 영역. 수면힐링 카페의 산소캡슐에 들어가거나 만화카페에서 어릴 적 만화방의 추억을 소환합니다. 한방 카페에서 안마와 찜질을 하고, 책맥 카페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죠. 도심의 케렌시아는 창조적 예술 활동과 결합하기도 합니다. 휴대폰 케이스를 직접 만들고, 팔찌를 제작하고 미니어처를 만들며 자신을 표현하죠.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생산과 소비의 결과로 가정과 직장은 제1, 제2의 공간으로 분리됐습니다. 그리고 현대인을 위한 ‘제3의 공간’이 등장했죠. 제3의 공간은 여가와 자유의 장이며 일터와 가정에서 쌓인 근심을 더는 곳입니다. 격식과 서열은 없지만 수다와 음식은 있는 곳입니다. 홀로 고독하지만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카페, 버스 맨 뒷자리, 혼술하는 이자카야, 동네 책방, 코인 노래방 등이 나만의 케렌시아가 될 수 있죠. 제3의 공간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인간은 더 많은 행복을 느낀다고 하네요. 

– “직장이 나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워라밸(Work-life-balance)’ 세대
워라밸은 ‘Work and Life Balance’에서 온 영어로 1970년대 말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고 미국에서는 1986년부터 사용했습니다. 정부의 인구정책 대안, 기업의 경쟁우위 정책, 개인의 삶의 질 제고방안으로 국가-기업-개인이 상생할 수 있는 전략으로 인식됐죠. 우리나라에서 워라밸은 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희망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뜻합니다. 

워라밸 세대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생 이후부터 이제 갓 사회에 진입한 1994년생까지의 세대를 직장생활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명칭입니다. 개인의 생활보다 직장을 우선시했던 과거세대와 달리 워라밸 세대는 일 때문에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긍정 마인드로 자존감을 높이며 돈보다 스트레스가 적은 삶을 바랍니다. 연봉보다는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죠. 

워라밸 세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퇴근 후 본업과 무관한 취미활동을 합니다. 그림, 피아노, 태권도 등을 다시 배우는 성인도 늘어, 성인층을 겨냥한 맞춤형 수업도 늘고 있다고 하네요. 교육부는 성인 대상의 예능(미술, 음악, 무용 등) 학원 수강자가 2013년 4만 2,462명에서 2016년 10만 3,258명으로 매년 급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구몬학습의 성인 회원 수는 2013년 1만 8천여명에서 2017년에는 5만 여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공부=시험이었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사회인이 된 뒤에 공부의 즐거움을 발견한 거죠.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는 플라시보 소비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뜻합니다. 가심비는 가성비에 주관적, 심리적 특성을 반영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가성비가 상품의 가격과 성능을 중시한다면 가심비는 그 상품에서 소비자가 무엇을 얻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기주관적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수치로 객관적 기준을 정할 수 없죠. 플라시보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위약이지만 환자가 믿음을 갖고 약을 복용하면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 플라시보 소비는 플라시보 효과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의 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가 담긴 물건이나 이미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굿즈 열풍은 아이돌, 게임, 영화, 대통령 굿즈로 확장됐죠. 굿즈는 상품보다 의미에 대한 투자 성격이 강하며 이는 가심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재미를 찾을 때도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따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탕진잼(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써버리는 탕진+재미), 시발비용(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 같은 신조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플라시보 소비는 삶을 위로하는 방편이자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 과정에서 위안비용과 시발비용이 필요하죠. 가심비 중심의 소비는 물질적인 결핍 충족을 넘어 주체의 만족을 요구합니다.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택한 길이죠.

– 매력, 자본이 되다
매력(魅力)의 매魅는 ‘도깨비 매’입니다. 단지 예쁜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점이 있어도 도깨비에 홀린 듯, 마법에 빠진 듯, 비이성적인 힘에 의해 사람을 끄는 힘이 바로 매력입니다. 단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것. 매력은 단 하나의 특별한 장점, 친근한 귀여움, 반전, 능숙한 밀당 등에서 발생합니다.

오래된 스테디셀러가 표지를 바꿔 입고 베스트셀러로 부활합니다. 여성 패션 브랜드 키이스KEITH가 디자인한 표지를 입힌 민음사의 ‘키이스 콜라보레이션 에디션’은 ‘내용이 바뀐 것도 아니고, 드라마에 나온 것도 아니고, 특별한 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개성만 있으면 못생겨도 오케이. ‘못난이 스니커즈’는 예쁘지 않아서 더 눈이 가는 운동화입니다. 사람들은 친근하고 귀여운 캐릭터에 무장해제되고, 근육질 배우의 귀여운 반전에 마력을 느낍니다. 특이성을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전망한 올해의 10대 트렌드는 1. 지금 이 순간 ‘욜로 라이프’ 2. 새로운 ‘B+ 프리미엄’ 3. 나는 ‘픽미세대’ 4. 보이지 않는 배려 기술 ‘캄테크’ 5. 영업의 시대가 온다 6. 내 멋대로 ‘1코노미’ 7. 버려야 산다, 바이바이 센세이션 8. 소비자가 만드는 수요중심시장 9. 경험 is 뭔들 10. 각자도생의 시대이었습니다. 얼마나 빠져드셨나요? 세상의 흐름을 느끼셨나요?

 

* 위 글은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로 작성했습니다.
1. 『트렌드 코리아 2018』 김난도 외, 미래의 창, 2017.
2.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2018년도 소비트렌드 ‘웩더독(WAG THE DOGS)’
   rbs농어촌방송. 2017.10.2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2018 트렌드) 일·삶의 균형 중요시 여기는 젊은 직장인 ‘워라밸’ 세대
   조선Pub 2017.12.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나홀로 즐기는 휴식’…케렌시아(Querencia) 열풍
   KBS NEWS 2017.11.2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주어진 인천의 풍경들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동네’ 혹은 ‘인천’라는 말에 첫 번째로 떠오르는 풍경은 무엇인가요. ‘우리 동네’는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살고 계시는 각자의 공간들이 생각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공간은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어쩌면 두 단어에서 같은 공간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른 공간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오늘은 인천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풍경’이라는 단어에서 생각나는 이미지는 보통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거대하고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자연, 이를테면 깎아지른 듯한 바위 산이나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깊은 숲 속에서 쏟아지는 폭포, 끝을 알 수 없는 산의 이어짐이나 초원, 또는 운해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큰 검색사이트에서 ‘풍경’ 혹은 ‘landscape’로 검색을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풍경’이 어떤 느낌의 이미지인지 조금은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겪지 못하는, 때로는 상상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 같은, 거대하고 신비로워 압도되는 공간들을 ‘풍경’ 이라는 말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무수한 자연 중에 어떤 것이 ‘풍경’이 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중요한 단서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개념을 구분했습니다. ‘아름다움’은 “즉각적으로 감각에 쾌미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숭고함은 “절대적으로 거대한 것”, “모든 비교를 넘어서서 거대한 것”, “그것과 비교하면 나머지는 모두 작은 것”, “감각을 초월하여 있는 것” 등으로 정의합니다. 이것에 덧붙여 숭고는 “자연의 사물에서는 찾아질 수 없는 것이며, 단지 우리의 관념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해 줍니다. “자연 자체가 숭고한 것이 아니라, …(중략)… 주체의 세계 구성적 차원과 결합하여 인간화 될 때 숭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략)… 풍경은 문화에 의해 번역된 자연, 인간에 의해 재현된 숭고한 자연이라는 위상을 획득한다.” 이로써 ‘풍경’은 어떤 놀라운 형태의 자연이라면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토대 속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자연의 어떤 부분에서 숭고함을 끌어냈을 때, 그 장면은 비로소 풍경으로 주어집니다.

20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 마르틴 바른케는 ‘정치적 풍경’ 이라는 책을 통해서 고전적인 풍경의 개념을 더 넓혀냅니다. 바른케는 자연이 풍경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거대한 기념물과 건축물, 성채, 정원과 같이 인간이, 권력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제시하고, 태양과 같은 자연물을 권력의 상징으로 치환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는 풍경이 정치적인 선택의 결과물임을 보여줍니다. 이제 어떤 사회가 공유하는 풍경은 그 사회의 권력이 선택해서 보여주는 풍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도시 공간이 급격히 피폐해지면서, 대조적인 농촌의 전원을 이상적인 영국의 모습으로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부 잉글랜드의 농촌으로 표상되는 영국적인 전원은 단순히 농촌 공간을 넘어서 ‘영원한 지속의 공간, 계급 없는 사회, 공동체, 조화로움’ 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러한 목가적 전원을 그려온 컨스터블과 같은 화가는 런던의 미술계를 통해서 국민 화가로 치켜세워집니다. 20세기 전반기를 휩쓴 두 번의 세계대전 속에서 농촌 풍경은 영국의 이상향이자, 지켜야 하는 조국의 이미지가 됩니다. 1차 대전에서 많은 영국의 군인들은 그들이 지킨 조국을 “시냇물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드리운 녹색 초원”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이 리버풀의 공장지대에서 자랐건, 스코틀랜드의 거친 산악지대가 고향이던, 그들이 지키는 영국은 목가적인 농촌 풍경으로 이해된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공업국가가 된 영국이 스스로의 풍경을 이렇게 정의하고 받아들인 것은 영국 사회가 스스로 어떤 한 자연을 풍경으로 선택해서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비슷한 시기의 미국에서도 ‘미국의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미국은 19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기나긴 서부 개척의 시기를 걸치면서 그들의 모체였던 유럽과 다른 아이덴티티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프런티어’입니다. 아직 개척하지 못한 경계지역을 뜻했던 이 단어는 서부의 황량한 땅을 지속적으로 프런티어로 바꾸고, 다시 앞으로 전진하며 정착지로 바꾸어 온 미국인들의 진보와 변화, 그것에 대한 적응의 역사를 상징하는 단어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바다를 건너온 모두 다른 배경의 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프런티어는 유럽과 다른 미국의 특성을 만들었고 미국인에게는 영국 출신, 이탈리아 출신, 아일랜드 출신 대신에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미국인들도 프런티어를 이미지로 재현하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정착지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할 황량한 미개척의 땅입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자연의 이미지는 미국이, 미국인이 더 나아가야할 지평이 남아있음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요세미티, 그랜드 캐년과 같은 자연이 사진작품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의 작품은 컨스터블의 그림과는 달리 생명이 없는 불모지를 압도적으로 보여줍니다. 비어있는 불모지가 여전히 남아있고, 미국인의 프런티어 정신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죠. 이러한 풍경의 이미지 속에서 서부에 존재하던 인디언의 존재, 인디언을 핍박한 미국인의 역사는 철저히 외면됩니다. 사진 속 프런티어의 풍경은 장엄하고 성스러운, 미국인들이 다함께 나아가야 하는 지향점이 됩니다.

오늘의 사회는 앞에서의 영국과 미국의 과거보다 훨씬 다원적이고, 국가나 도시적 차원에서 공유되는 풍경을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천이 우리에게 꾸준히 보여주고, 내면화 시키고 싶은 인천의 풍경은 분명히 어느정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 마케팅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 모든 도시들이 저마다 각자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인천도 “All ways Incheon”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올해부터 사용하고 있죠. 이 슬로건을 이용한 영상 홍보물들을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천의 여러 곳들을 담아서 홍보를 하는 듯 하지만, 대부분의 동영상에서 많은 시간을 송도국제도시의 모습을 강조하는데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을 집중적으로 제시합니다. 다양한 공간을 비교적 균형있게 보여주는 영상에서도 마지막 슬로건과 함께 제시되는 풍경은 송도국제도시입니다.

인천의 위상은 오랫동안 서울과 연결되어 정의되어 왔습니다. 세계최고의 공항이라는 인천국제공항마저도 수도권의 관문, 나아가 대한민국의 관문이라는 상징성이 워낙 커서, 온전히 인천의 정체성으로 소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송도국제도시는 인천이 서울에 종속된 정체성, 수도권의 일부분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세계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천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풍경이 송도국제도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각적으로 독특한 센트럴파크 주변에 집중함으로써 우리에게 인천에서의 삶이나 여행의 경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래적이고, 그래서 독특하고 새로울 것이라고, 그래서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비견될 만한 도시라고 강조합니다. 인천의 미래지향적 풍경에 대한 집착은 한때 인천의 브랜드 로고에 페이퍼 플랜에 불과했던 송도 인천타워를 사용할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인천타워는 끝내 삽 한 번 뜨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말입니다.

인천의 도시계획은 최근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에 매진하면서도, 과거에는 철저히 재개발의 대상이었던 구도심을 역사문화지구 등을 비롯해서 기존의 도심의 작은 공간들을 재발견하고, 도시재생을 통해서 도시공간을 유지·보수하는 국가적인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전세계로 열린 도시, 가장 미래적인 도시로서의 인천의 풍경이 조금은 바뀌거나 다양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천이 보여주는 풍경들을 통해서, 인천이 갖고 싶은 정체성은 무엇인지, 인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길 바라는 정체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박지향(2006).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도서출판 기파랑
마르틴 바른케. 노성두 역(1997). 정치적 풍경. 일빛
김홍중(2005). 문화사회학과 풍경의 문제. 사회와 이론. 6
주은우(2003). 19~20세기 전환기 자연 풍경과 미국의 국가 정체성. 사회와 역사. 63
Youtube ‘라이브소셜방송온통인천’(바로가기▶)




3. 자전거로 사쿠라기초에서 신바시까지 달리기 2편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다마강(多摩川)은 가나가와현(神奈川県), 도쿄도(東京都)의 경계를 가르며 흐르는 강이다. 주말이면 도쿄 쪽 강변에서 골프연습을 한다. 사진ⓒ노기훈

시장을 빠져나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 맞는 이가 있다면 자리를 깔고 앉아 나마비루(生ビール)라도 한 잔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아있는 일정 따위는 아무렇게나 되어버리자 하는 식이라 신바시(しんばし)까지 가지는 못할 일임을 알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 일본을 체감하기에는 이곳에서 살아온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깊이와 넓이만큼 알찬 과외도 없을 것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그러한 이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의 경험으로 이끌어 보건대 구하던 일은 예상치 못한 연으로 닿게 되어 평생의 기억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덥고도 습하기까지 하더니 저녁 무렵부터 여름비가 내렸던 날이었습니다. 나는 우산도 없이 초저녁부터 요코하마 이세자키초 어디에선가 알코올에 조금씩 젖어 들었습니다. 일본어 틈에서 태풍이라는 말을 찾기 쉬웠던 야키도리집의 텔레비전은 연신 히로시마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곧이어 도쿄로 향해 닥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태풍이 오기를 기다리면서2차로 고가네초에 있는 스탠딩바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한 일본인을 만났습니다. 자세히 코를 기울이면 미소된장보다 오래 묵은 곰팡이향이 나는 한국식 된장의 냄새가 호두나무에 배어, 닦아도 닦아도 닦아 낼 수 없던, 테이블을 힘주어 닦을 때의 인상이 표정으로 굳어버린 한국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무뚝뚝한 바였습니다. 노래의 절정에서 굵고 단단해지는 복성을 가진 이미자의 보이스를 그대로 닮은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일단락을 지나 숨을 고르는 틈을 타서 그 일본인은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칸코쿠진?”
“하이, 와따시와 칸코쿠진”

취기가 오른 우리에게 현해탄을 가르는 국적도, 아버지뻘이라는 나이차도 별반 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서로 건배하고 또 건배하고, 술기운에 입에서 나온 서로 다른 말들은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 열악함을 극복하고 어딘가의 다른 세계에서 만나 무난히 수긍되고 있었습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허례허식처럼 하는 말로 그는 나에게 물어왔습니다.

“어떤 일본 음식을 제일 좋아하냐”

‘스시(すし)’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며 두어 시간을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했다는 대대적인 뉴스가 끝나고 볼품없는 연예인이 케이크를 먹으며 품평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견디고 나서 그는 회전초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고 저는 흔쾌히 따랐습니다. 

스시가 아무리 한국에서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꽤나 비싸게 마음먹어야 시도하게 되는 음식입니다. 소문을 듣고 일본에서는 현지음식으로 싸게 맛보겠다는 기대와는 달리 일본에서도 역시나 스시는 ‘김밥천국’에서 맛볼 수 있는 가벼운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들어간 스시 집은 일본의 물가를 폭탄처럼 투하했습니다. 그 안 좋은 경험 때문에(혀는 덕분에 호강했습니다) 모르는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기 전 메뉴판을 보고 꼭 가격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이보다 더 쓸모 있는 요령은 바깥에서 노렌(暖簾)이 처진 틈 사이로 손님들의 옷매무새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이 이국에 놓인 혼자라는 전제를 떼버리고 마음껏 스시를 시켜 먹었습니다. 원하는 종류의 스시를 소리쳐 주문하는 일은 발음이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에게 늘 곤혹이었는데 이곳 사장님은 한국어 기초반 수준의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셨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사장님은 서울에 사는 50대 여성을 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옆에 일본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은 성대 끝에 걸린 빗장을 소리나게 꽝하고 열어젖혔습니다. 우리는 술에 좀 취해 있다고 생각이 들어 나마비루 대신 손이 닿기 좋게 초밥레일 위에 배치된 녹차티백과 찻잔을 집었습니다. 다음 스텝을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던 나의 컵을 가로챈 노구치 상은 컵을 버튼에 가져다 대어 압력을 주면 자동으로 뜨거운 물이 나오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차를 우렸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소변기에서나 보던 꺼림칙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취기가 올라 있었지만 상온에서 적당히 숙성된 마구로(まぐろ)의 질감을 입은 메마른 혀에 닿던, 그 진한 녹차의 씁쓰름한 감촉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자전거는 일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통수단이다. 한국과 다르게 방범등록이 의무화되어 있어 도난당했을 때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대중교통수단이 매우 비싸 자전거 이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사진ⓒ노기훈

한국에서 일본에 도착한 지 열흘 밖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탄 자전거는 요코하마에서 출발하여 츠키지(築地) 시장을 지났습니다. 자전거의 주인은 시장을 빠져나오며 얼마 전 우연히 합석한 일본사람을 생각했고, 그러는 동안 도쿄와 요코하마의 중간지대인 가마타역(蒲田駅)에 도착했습니다. 생각을 했기 때문에 풍경은 생각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마타역에 왔다는 것은 오늘 왕복할 구간의 4분의 1정도를 오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역 인근에는 맛깔스러운 음식점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뭔가 먹어야 한다면 이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 그런지 한참을 비어있던 위는 괜찮은 식당을 찾아 먹을 여유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세워 놓고 근처 소바 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슬쩍 보고 A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운 좋게도 가츠동과 차가운 소바였습니다.

밥을 먹으며 두리번거렸습니다. 창가 자리를 골라 앉아 역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와사키역(川崎駅)에서도 생각한 것이지만 가마타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어디 가서 자신을 도쿄 사람이라고 소개할지 아니면 요코하마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어필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국토가 큰 나라의 선술집에 가면 다른 지방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흔히 처음에 나누는 대화는 ‘너는 어디 출신이냐’ 혹은 ‘다른 어느 지방을 가봤냐’를 서로 공유해 가면서 진행되고는 합니다. 가령 중국에서는‘저는 내몽고에서 왔습니다’라고 운을 떼는 북방사람이 멀리 광저우 출신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만나 청도 맥주를 들이켜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저는 훗카이도 하코다테에서 시덴을 타고 1시간 정도 남쪽으로 가면 있는 야치가시라라는 곳에 삽니다. 간혹 바이어를 만날 때면 JR을 타고 삿포로에 가서 단골 칭기스칸 집의 양고기 안심과 삿포로 맥주를 즐깁니다’라고 말하는 일본식 낭만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일본 사람이라면 요코하마를 비롯한 도쿄일대를 간토(関東)라고 엮어서 부릅니다.

그럼 시야각을 좁혀보자면, 가와사키에사는 사람은 요코하마와 도쿄의 자기장 안에서 휘둘리며 유행처럼 요코도쿄라고 불러야 하는 정체성이 입혀질 수도 있겠습니다. 대개는 도쿄에 빨려 들어가고 싶은 기분일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부천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깊게 생각할수록 이런 경계라는 것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 제가 도시를 볼 수 있는 것은 빌딩의 높이가 달라지는 추이를 바라보는 것이 다 일지도 모릅니다.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부천(富川)과 가와사키(川崎市)가 바다를 두고 강물을 불러일으키고 요코하마(橫濱)와 인천(仁川)은 바다를 마주보는 관문이 되며 도쿄(東京)와 서울(京城)은 육지와 바다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오랜 세월을 한 나라의 수도로 번성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과 도쿄는 같은 표준시를 쓰지만 경도가 12.8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출과 일몰이 한 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사진ⓒ노기훈

그런 이치로, 도쿄로 가까워질수록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피해서 달려야만 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대로 접어들수록 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탈 것을 이용하여 이동했습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자세가 아직도 불안했지만 슬쩍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들의 속도감에 맞춰 천천히 달렸습니다. 저는 일본사람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강한 나라의 일원으로도 손색이 없는 것 같아 비로소 근대시민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여름, 파리 중심가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프랑스인의 일본사람이냐는 물음에 한국사람이라고 답하자 실망하던 그의 미간의 주름들이 떠오르며, 국제무대에서 일본과 한국과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작 자전거를 타면서 질서와 법칙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서로의 편의를 돕는 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각기 다른 신분에 살고 있다는 중세의 유물이 조금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인간적이고 실리적인 듯했습니다. 어설프게 민주적이지 않아 오히려 편리했습니다. 집에서 벗어나면 누군가로 인해 기분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한국의 거리는 민감한 이가 아니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고는 사는 일이 인내가 돼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여성들은 매일같이 마그마가 튈지 모르는 지옥 언저리에서 근근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태까지 지켜본 바로 일본에서 그런 일을 겪는 일은 ‘정말 네가 오늘 더럽게도 재수가 없었구나’하는 상황으로 재난을 당했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도쿄의 놀이터는 대부분 검은 흙으로 땅이 이루어져 있다. 놀이터마다 기구의 생김새가 달라 구별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사진ⓒ노기훈

가츠동을 먹고 다리는 힘을 얻었습니다. 잘 정돈된 보도블록을 따라 자전거 무리들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도록 왼쪽 방향으로 자전거를 탔습니다. 다리에 힘에 빠지면 도쿄 쪽으로 고개를 들어 힘을 얻었습니다. 열차들은 동서남북으로 빠르게 스쳐지나 갔습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가면서 주인 몰래 헤드라이트를 켠 부지런한 자전거들도 보았습니다. 하늘은 아직도 맑았습니다. 조도만 옅어져 빌딩 숲 안을 조금 어둡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하늘을 대고 스포이드툴로 찍으면 하늘색 표본으로도 삼아도 손색없었던 하늘이 점점 분홍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흙으로 땅을 삼은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도 피곤한 눈으로 벤치에 걸터앉아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빌딩 속에 은신해 있던 신사(神社)들이 조금씩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르는 신사 앞에서 손뼉을 쳤습니다. 일본 곳곳에 있는 8만여 개의 신사 중 저와 부합하는 하나의 신을 떠올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이곳이 그곳이기를 바라는 예의도 잊지 않았습니다.

신사(神社)의 입구에는 경내와 속계의 경계를 나타내는 도리이(鳥居)가 있어 신전까지 참배 길이 통한다. 사진ⓒ노기훈

기도를 떠올리며 신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둠도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안으로만 돌아가자는 일념으로 도쿄를 헤쳐나갔습니다. 지형지물이 많아 인도로는 도저히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자동차가 다니는 옆으로 신세를 좀 졌습니다. 자동차 보다 빠른 사이클이 신경질적으로 저의 옆을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차들이 저를 비호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시나가와역(品川駅)으로 가는 고가도로 위에서 멀리 소실점이 보이는 요코하마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좀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을 했습니다. 녹슬어 보이는 철로의 쇳가루들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부식되지 않는 강인함을 보았습니다. 경인선을 만든 똑같은 재료일까도 잠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열차들은 레일을 따라 아주 세밀한 간격으로 번갈아 지나갔습니다. 멀리 도쿄 쪽을 보니 오다이바(お台場)의 풍경이 보일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곳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며 한껏 즐기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이르자 자전거에 올라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고통에 다르면 생각은 멈추게 됩니다. 이윽고 건물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고 호텔이 비일비재한 시나가와역에 도착했습니다. 시나가와역에서 신바시로 가는 길은 일본식 아파트쯤으로 되어 보이는 연립주택이 많았습니다. 시나가와구가 일본에서 인구가 제일 많다더니 그 영역이 오타구인시나가와역까지 미치고 있나 봅니다. 베란다 크기로 집의 크기가 손쉽게 예측되는 일본식 연립주택을 지나 더욱 어두워진 도쿄의 중심부로 들어왔습니다. 구글맵을 켜 지도를 봤습니다. 30분만 더 달리면 신바시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열차를 기점으로 거의 5시간을 도로를 따라 달렸지만, 가래는커녕 기침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코막힘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전자제품이 발달한 이유가 먼지가 없고 공기가 좋아서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큰 구름처럼 확연히 보이는 미세먼지가 서서히 사람을 죽이고 있는 한국 보다 차라리 방사능의 위험이 있어도 지금의 일본이 더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 같았습니다. 어릴 적 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나오던 장면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타국에 머무른 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이 아닌 어떤 곳이라도 지옥에서 벗어난 쾌감만이 있는 환상의 공간처럼, 순진하게도 그리 보였습니다.

시나가와역(品川駅)은 1872년 도카이도 본선(東海道本線) 첫 개통 당시 개업한 역이다. 신바시역(新橋駅)이 기점이지만 지금의 JR신바시역은 구신바시역의 역사를 이어받지 못한 관계로, 시나가와역은 일본 최초의 철도역 중에서 가장 기점에 가까운 역이다. 사진ⓒ노기훈

도쿄의 빌딩 숲에 있으니 그저 달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 미명만이 남아있는 도쿄의 하늘을 대신해 새로운 불빛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 불빛은 이미 나타나 있었습니다. 거대한 해가 떨어져야만 보였던 것입니다. 빛들의 시간이 점차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의 표면을 밝히는 조명들이 빛의 속도로 어딘가에 맞붙이치고 다시 어디론가 가서 부딪치고 해서 끝까지 사그라지지 않고 엉키고 엉켰습니다. 자전거를 몰아 도쿄의 중심지로 들어갈수록 나는 빛에 이끌려 더 어두운 곳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완연한 어둠이 된 도쿄의 중심을 따라가면서 이쯤이면 거의 다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오래된 건물이 멀리 보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멀리서도 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호가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곳을 향해 단번에 달려갔습니다. 도착하여 건물의 주변을 돌았습니다. 건물의 뒤편에서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철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글,사진/ 노기훈 작가

 

노기훈은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뱅크아트 스튜디오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에 체류한다.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 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사쿠라키초역에서 신바시역까지 걷고 있다. 




[큐레이션 콕콕] 인천에도, 인천시립미술관!

2022년, 인천시립미술관이 개관합니다. 인천 최초의 시립미술관입니다. ‘인천뮤지엄파크(가칭)’는 시립미술관 건립과 기존 시립박물관 확장 이전, 콘텐츠 체험관, 갤러리와 예술영화관 등이 있는 복합문화시설로 조성할 예정입니다.

인천뮤지엄파크 건립에는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의 덩어리에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산업시설이 모여 있는 사업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과 콘텐츠 빌리지 등을 합쳐 5만809㎡의 부지가 설정돼 있고, 총사업비는 2천853억원 내외입니다.

아직 미술관 소장품이나 박물관 유물구입 등의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술관의 성격과 박물관의 역사성에 대한 준비가 생략된 뮤지엄파크 구상안을 염려합니다. 시민들은 어떤 정신과 소장품으로 채워진 문화공간을 맞이하게 될까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운명은 작품과 작가의 위대성에 달려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仁川市立美術館)은 5년 후에야 만나볼 수 있지만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은 존재합니다. 한자어 ‘人千始湁美述觀’은 ‘천 명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미술을 보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시각 예술이 공공 자본, 제도 등과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천(仁川)을 너머 또 다른 로컬리티 및 정치성과 만나길 바라는 지향성이 담겨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은 보통의 미술관과 다른 상상의 미술관입니다. 건물, 관장, MI(미션)이 없는 대신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시민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미술 영역을 제공합니다. 지난 11월 22일에 오픈했으며, inma.or.kr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관에 이어 송도국제도시, 신포동 임시공간, 서울 문래동을 잇는 미술 전시회도 열렸습니다. <두 번째 도시, 세 번째 공동체>가 그것인데요, 원도심과 신도시를 잇고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자는 취지를 품고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프로젝트는 독립큐레이터이자 임시공간 대표인 채은영(44) 작가가 기획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 건립 이전까지 일시적이지만 가능한 모든 시도들을 한다고 하네요. 그는 개항기부터 인천 미술과 연관된 자료, 문헌, 사진 등을 모아 인천지역 미술사를 정리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습니다. 내년에 ‘인천 오픈 유니버시티(Incheon Open University)’를 개교해 지역 문화 매개자들에게 매체기획, 방법 등도 교육할 계획입니다. 문화매개자들의 역량이 강화돼야 지역의 문화가 강해지기 때문이죠.

지난 11월 9일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예정지는 남구 용현·학익 도시개발사업구역 내 OCI(옛 동양화학제철) 인천공장입니다. 1968년에 건립했고, 1950년대 근대건축물인 극동방송 옛 사옥과 사택이 남아있습니다. 갯벌 위에 지은 OCI 인천공장은 우리나라 경제개발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장소로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인천시는 ‘인천뮤지엄파크’ 사업현장에 전문가와 대학생, 일반시민을 초대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에 앞선 의견수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신축 시립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 넓이 1만4천㎡ 규모로 세울 예정입니다. 뮤지엄파크 내에 함께 들어설 시립박물관도 규모는 비슷합니다. 1946년 개관한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은 1990년 중구 송학동에서 옥련동으로 이전한 지 약 30년 만에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다른 지역의 시립미술관은 언제 문을 열었고, 어떤 특징을 내세우며 운영하고 있을까요.

서울시립미술관(SeMA, Seoul Museum of Art)은 1988년 서울고등학교 옛 건물에서 문을 열었고 2002년 서울 중구 서소문 (구)대법원 자리로 이전, 개관했습니다. SeMA는 서울시 전 지역의 미술관화라는 방향에 맞춰 다수의 분관 및 산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서소문 대법원 건물을 본관으로, 2004년 관악구 남현동 사당역 근처에 남서울 분관, 2013년에 노원구 중계동에 북서울 분관을 설립했죠.

광주시립미술관은 1992년 개관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자취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7년 본관 신축을 시작으로 2008년 상록전시관, 2009년 중국북경창작센터, 2012년 갤러리 GMA(서울 사간동), 2016년 광주시립사진전시관, G&J광주전남갤러리, 청년예술인지원센터를 개관함으로써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며 시민들에게 문화가 있는 행복한 삶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문화회관, 시립박물관, 시민회관 등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입니다. 1994년 12월 공사를 착공해 1998년 3월 20일 개관했습니다.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을 모토로 지역 미술 활성화 및 시민의 감성문화 배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현대미술 및 부산과 영남권 미술을 중점 수용하는 종합문화공간을 지향합니다. 부산 미술계에 혁신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내 집 같은 분위기에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강조하는 대전시립미술관은 1998년 4월 개관했습니다.
‘여유의 미학’을 표방하는 대구시립미술관은 2011년 5월에 문을 열었고요.
강릉시립미술관은 2006년 강릉미술관으로 출발해 2013년 4월 강원도 유일의 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했습니다.
정읍시립미술관은 전라북도 최초의 시립미술관입니다. 시립도서관을 리모델링해 2015년 10월 오픈했죠.
청주는 2004년 청원군립대청호미술관으로 시작해, 2014년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으로 명칭 변경, 2016년 청주시 사직동에 청주시립미술관을 신설해 분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2020년 개관 예정입니다.

 

* 위 글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인천시립미술관 부지 용현·학익구역으로 결정
     인천in. 2016.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월요논단]뮤지엄 파크와 보르게세 미술관
   경인일보 2017.11.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채은영 큐레이터
    온통인천. 2017.5.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3개 공간서 전시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 2017.11.2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인천 뮤지엄파크 조성 ‘의견 청취’
    경인일보 2017.1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원색동화 속 낡은 손톱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자이푸르(Jaipur, 인도 라자스탄 주의 수도) 근처의 성곽 도시 아메르(Amer)의 길거리에서 휘황찬란한 색상의 종교화 복사본을 여러 장 구매했다. 종교화를 판매하는 젊은 청년은 수북이 쌓인 프린트를 뒤적여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권하는 그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장을 골랐다. 믿는 종교가 없는 내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종교화를 구매하게 된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풍요의 여신인 락슈미(Lakshmi)와 그녀가 뿌리고 있는 금화를 보자 왠지 이 그림을 집에 걸어두면 행운을 불러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종교화들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신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그들의 모습을 표현한 스타일이나 구상은 끝이 없다. 현대미술을 공부해 온 나에게 이 그림들은 상당히 키치적 이다. 종교화를 보면서 성스러움을 느낀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신들의 모습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이 종교화들은 상당히 실용적이며 대중적이다. 원색 복사본의 저렴한 가격도 이러한 실용성에 한몫했다. 그러나 여러 힌두교 사원들과 신상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러한 미적 감수성을 단순히 키치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힌두교의 변천사와 이 종교 특유의 유연성, 그리고 이러한 미적 감수성이 인도의 미술품과 사원들에 나타나는 양상 때문이다.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섬기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다르게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그리고 이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는 라마야나(Ramayana)나 마하바라타(Mahabharata) 신화를 통해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편집과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원조로 여겨지는 ‘하누만(Hanuman, 원숭이 신)’은 처음 라마야나가 씌여진 시기에서 1000년이나 지난 후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인도는 다양한 부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과정에서 각 부족이 섬기는 지역의 신들을 같이 포용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와 같은 종교 서사시에 더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그 규모가 크다고 하는 악샤르담(Akshardam) 사원은 이렇듯 새로 추가된 신생 종교 신화를 경험 할 수 있는 장소 중에 하나이다. 이 사원은 힌두교의 새로운 종파에 의해 지어졌는데, 이 종파는 스와미나라얀(Swaminarayan)이라는 7살에 모든 힌두 종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11살에 인도 전역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요가수행자(yogi)를 섬긴다.

그는 1781년에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종교적 가르침을 얻고 요가를 수행하기 위해 순례를 떠났다. 그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 이 종파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으며, 인도 외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와 뉴저지 지역에도 비슷한 모양의 사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방문했던 사원은 델리(Delhi)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인도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이유로, 혹은 관광의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이 종파는 기존 힌두교의 전통과 인도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보다 인간적인 도덕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하려고 한다. 기독교의 예수와 비슷하게 스와미나라얀 또한 소외된 계층과 여성,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멸시를 비판한다.

이 사원과 내가 구매한 원색의 종교화 프린트의 유사점은 이 두 가지의 대중성과 상품성에 있다. 악샤르담 사원은 거의 놀이공원의 규모로 입장하기 전에 모든 소지품을 입구에 맡겨야 한다 (심지어 핸드폰도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 또 이 사원 단지(complex) 내에는 전시관이 있는데, 고대 브라만교(Brahman敎) 경전인 리그베다(Rig-Veda)의 내용이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과 같이 배를 타고 따라가면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디오라마 로 이루어진 이 보트 투어는 이 곳이 사원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전시관 옆에는 상영관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스와미나라얀의 일생을 영화화한 2시간짜리 영화의 일부분이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여느 볼리우드 영화에 못지않게 휘황찬란하다. 아쉽게도 저녁의 분수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이 공연은 리그베다의 중요 내용을 레이져와 영상 프로젝션, 음악을 통해 보여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온 가족이 같이 나들이 나와도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사원 단지의 건축물들은 2005년에 지어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단지 옛 사원들에 비해서 붉은 사암으로 조각된 외부가 깨끗하다는 점이 이 사원의 나이를 추측하게 한다. 내부도 외부에 못지 않게 정교하고 화려하다.

특히 스와미나라얀 조각상을 모신 사원의 중앙은 온갖 보석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장소는 외국인인 나에겐 총천연색 종교화 프린트를 봤을 때처럼 특별히 성스럽다기 보단 다소 어색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아름다운 동화세계에서 스와미나라얀이 신던 신발, 실제 손톱과 머리카락이 보관되어있는 진열장은 동화세계의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현실의 조각과 같이 충격적이었다. 이것들이 실제로 스와미나라얀 수도사 몸의 일부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오래된 인간 신체의 일부분이 줄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과 이를 에워싸고 이상세계의 결합은 내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출구 쪽엔 스와미나라얀과 사원 건축에 관련된 책들, 전생과 카르마(karma, 업)에 관한 책들 그리고 이 종파에서 만들어내는 건강식품 및 미용제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 사원에서 나오면서 나는 아주 특별한 놀이동산, 혹은 광고를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많은 현대인들에게 사원은 신성한 장소라기 보다는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긴 비행 끝에 집에 돌아와 돌돌 말린 종교화 프린트들을 다시 펼쳐보니 인도의 느낌이 다시 확 밀려온다. 컬라풀함과 신비로움, 그러나 역시나 키치적인 이미지들,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인도 문화와 종교의 특이함을 그리고 왠지 행운을 불러올 것 같은 여신의 그림을 내 방 벽에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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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치(Kitsch): 예술작품과는 달리 실용적인 용도를 가지고 있는 대상으로, 그 대상과 대상을 관찰하는 자 사이에 비판적인 거리가 없는 경우
– 디오라마(Diorama): 3차원의 실물 또는 축소 모형

 

글, 사진 / 이영주

 

이영주는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산스크리티 레지던시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인도의 델리와 자이푸르에서 한달 반 간 체류했다. 인도 전통미술에서 묘사되는 종교적 상징과 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한 이 여정은 30미터 가량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영주는 신화와 꿈의 서사구조를 이용하여 개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와 퍼포먼스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




[큐레이션 콕콕] 혼(잣)말의 유혹

채널A 예능 프로그램 <거인의 어깨>는 인문학적 테마를 중심으로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 강연을 펼칩니다. 지난 10월에 방영한 ‘혼말의 시대, 너와 나의 대화법’에서 조승연 작가는 혼잣말과 혼말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남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 혼잣말,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는 기대를 갖고 SNS 등에 올리는 말이 혼말이랍니다. 즉, 혼잣말은 자기 자신에게만 하는 말, 혼말은 불특정한 대상에게 하는 말이라네요. ‘혼말’은 사전에 없고 사실 혼잣말이 곧 혼말이죠.

혼자 카메라 앞에 노출된 배우의 혼잣말이 ‘새로운 캐릭터 창조’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기사 제목이 ‘관찰예능 新캐릭터 혼잣말 배우 박신양’이네요. 그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방 바꾸기 체험에서 중후한 목소리로 끊임없는 혼잣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모습을 누군가는 ‘진지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허당한 매력’으로 표현합니다.

혼밥, 혼술, 혼영에 이어 혼(잣)말이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 됐습니다.

개념미술가로 알려진 안규철 씨는 지난봄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물을 변주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이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작품 제목이자 전시 타이틀인 ‘당신만을 위한 말’은 진회색 펠트를 씌운 방음 스펀지 덩어리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이런 메모를 적어놓았습니다. ‘세상의 말들이 사라지는 소실점이고, 우리의 비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진실과 거짓 너머의 영원한 침묵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아무도 알 필요 없는, 오직 당신의 한 마디 말을 위해 비어 있는 독백의 공간이다.’ 작품에 몸과 마음을 묻고 마음껏 ‘혼말’을 하라고 유혹하네요.


다리가 배를 젓는 노로 변형된 ‘노/의자’(왼쪽)와 펠트 천으로 덮인 스펀지 작품 ‘당신만을 위한 말’. 의자는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가구이지만 다리 대신 달린 노에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현대인처럼. ‘당신만을 위한 말’에 입을 대고 어떤 얘길 해도 다 듣고 묻어줄 것 같다. 

시인 채상우는 자신이 ‘약간 심하게’ 혼잣말 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길을 가다가 신호등에게 “안녕” 인사하기도 하고, 금연 팻말을 향해 “싫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난 뒤 아파트 화단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구절초에게 “너희 정말 하얗구나.”라고 말을 걸었는데 놀랍게도 꽃들이 “그래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눙칩니다. 가끔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그래도 좋다. 나는 사실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니까”라고 자신의 습관을 뽐냅니다. 당장 거기 있는 사람은 혼자뿐이지만 자신은 혼잣말 한 게 아니라 ‘대화’를 했다는 거겠죠. 채상우 시인이 소개한 함성호의 ‘혼잣말, 그 다음’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시죠.

혼잣말 그 다음―이 도시는
거대한 레코드판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쥐똥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말하듯 노래하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혼잣말로 들린 것도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잣말이 사라진 자리를 단풍나무와 사철나무가
실망으로 우거져 내리어 메운 것도 그 다음이었다

새벽의 골목에서는 혼잣말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포위해 오며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혼잣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 같기도 했다

이 도시에 누가 혼잣말을 기록하고 다녔는지
혼잣말은 지하철로에도, 계단에도, 복도에도
유리문의 경첩에서도 투명하게 울려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홀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키는
내가 미친 것은
혼잣말,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은 종종 고독의 증명으로 나타납니다. 나쁜 습벽이고, 고쳐야 할 병증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혼잣말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에 몰입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충고하기도 하죠. 바빠지면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멈출 거라고요. 하지만 혼잣말에도 강약과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1 혼잣말이 자기 목소리인지 확인하기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심각한 정신적 문제일 수 있다.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 혼잣말 내용 확인하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쭉 나열하는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계획하는가?
최근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설명하는가?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는가?

자기 대화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분명히 표현하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힘든 결정(대학을 고를 때, 선물을 고를 때)을 내려야 할 때 신중히 사물과 사건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3 혼잣말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확인하기
긍정적인 자기 대화는 의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반복하는 것은 기분도 좋게 만들어줄 뿐더러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를 증진시켜준다. 이런 식의 자기대화(혼잣말)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혼잣말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난 너무 바보 같지?” 또는 “왜 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지?”처럼 비판적이고 자신을 꾸짖는 식의 혼잣말을 반복한다면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4 혼잣말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 확인하기
누구나 약간 정상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그것까지 인간의 정상적인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습관이 아주 가끔씩만 나타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부정적인 사고의 언어를 내뱉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혼잣말을 하는 빈도에 불안 또는 죄책감이 드는가?
혼잣말이 분노, 슬픔, 초조함을 안겨주는가?
공공장소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워서 외부 활동을 피하는가?
위의 질문 중 어느 하나에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상담사 또는 정신 보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5 다른 사람들의 반응 살피기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특정 반응을 보였다면, 당신의 혼잣말이 불편함을 야기했거나 주변 사람이 당신의 사회적 기능 및 정신 건강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걸어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가?
사람들이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종종 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내가 혼잣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가?
학교 선생님이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가?

자주 쓰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쇼핑하러 갔는데 필요한 물건이 눈에 띄지 않을 때, 물건의 이름을 중얼거리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의 게리 루피안 교수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다니엘 스윙글리 교수는 성인들에게 서로 다른 물건이 찍힌 20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중 한 가지를 찾는 실험을 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땅콩버터 단지를 찾거나 냉장고에서 버터를 찾는 식이었죠.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눈으로만 상품을 찾았고, 두 번째에는 물건 이름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는데 후자의 경우에 물건을 더 쉽게 찾았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혼잣말하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연구에서 착안해 이런 실험을 했는데 혼잣말과 같은 ‘자기-지향적 말(self-directed speech)’은 원하는 물건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1. [오후 한 詩]혼잣말, 그 다음/함성호
     아시아경제 2017.10.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혼술-혼밥에 지친 이들아 ‘혼말’을 나눠봐
   동아일보 2017.3.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혼잣말 멈추는 법
    위키하우 wikiHow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물건 찾을 때는 혼잣말하며 찾아라
    코메디닷컴뉴스 2012.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58회’ 혼자녀의 혼잣말
    네이버포스트, 서툰, 밥숟갈 하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관찰예능 新캐릭터 ‘혼잣말 배우’ 박신양
    세계일보 2017.10.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작아지는 도시를 준비하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6년 인천의 인구가 300만을 돌파했을 때, 다양한 언론 매체들은 이 사실을 매우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또 인천광역시는 대대적으로 여러 자축 행사들을 진행했습니다. 300만 인구의 인천을 홍보하는 광고도 이곳저곳에 많이 게재되어서, TV에서 광고를 보기도 하고, 서울 지하철에서도 역내, 혹은 차내 광고를 꽤 자주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광역자치단체의 인구가 300만 명에 도달하는 것이 분명 처음인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옆에 천만 인구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가 있고,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인구 또한 300만 명을 상회합니다. 경기도와 경상남도의 경우는 하나의 도시로 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인구 300만의 도시가 매우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천은 유독 300만 명 돌파를 크게 기념했을까요.

모든 분들이 아시겠지만, 인천의 인구 300만 명 돌파는 고도 성장 시대의 종말과 출산율 감소로 인해, 많은 지방 도시들이 인구의 감소로 인해 때로는 도시의 소멸을 걱정하고, 대도시는 지속적인 교외 확장으로 도심의 쇠퇴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의 인구 5만 이상의 도시 84개 중에 31개의 도시가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이 중 비수도권의 도시는 56개인데, 절반이 넘는 29개의 도시가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역시 출범 당시 약 230만 명의 인구가 살던 인천광역시가 오히려 인구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도시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역동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임을 증명하는 지표인 것이고, 인천의 자축은 단순히 어떤 숫자에 대한 자축이 아닌, 그 안에 담겨진 성장의 잠재력에 대한 축하인 것입니다. 오래 전, 르 코르뷔제가 거대도시를 계획하면서 사용했던 상징적인 숫자였던 300만 명은 이렇게 인천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인천은 또 다른 미래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2015년 11월 발표된 『2030년 도시기본계획 보고서』에는 지금까지 익숙하지 않던 낯선 단어가 하나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축소도시(Shrinking city)’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도시 개발 전략을 도시재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배경으로 도시확산에서 축소도시로의 전환을 꼽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해오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도시에서 ‘축소도시’는 무척 역설적인 단어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서구의 오래된 산업도시들에서 인구 감소는 익숙한 일입니다. 제가 지난 여름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에서 말씀드렸었던 도시재생이나, 창조도시와 같은 전략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의 자구책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축소도시’는 인구 감소를 억제하고 다시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다른 전략들과는 달리, 인구 감소를 받아들이면서 도시의 새로운 적정 규모를 찾으려는 또다른 대응 전략입니다. 인천의 지방정부는 인구 300만 명 돌파를 기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구 감소를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천 또한, 다른 여느 국내·외 대도시들처럼 오랜 시간 동안 점차 내륙으로 도시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원도심과 농촌지역의 쇠퇴를 겪어왔습니다. <그림 1>은 인천이 광역시가 된 1995년의 인구를 기준으로, 각 구·군의 인구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 동안 인천의 인구는 약 25% 증가하였습니다. 구 별로 볼 때 인구가 크게 늘어난 곳은 중구, 서구, 연수구, 남동구 등인데, 영종, 청라, 검단, 송도, 논현 등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진 곳들입니다. 반면 큰 개발 계획이 적었던 농촌지역과 구 도심 지역인 강화군, 남구, 동구의 경우 인구가 감소하였습니다. 인천의 인구 증가 과정에서 어떤 공간들은 새롭게 형성된 다른 공간에 인구를 내어주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인천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들이 이렇게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비슷한 전략을 취해 왔습니다. 바로 ‘재개발’과 ‘재건축’이죠. 2000년대 이후로 많은 오래된 주택지, 주공아파트 단지 등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구가 감소하며 쇠퇴하는 지역의 또다른 양상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빈 집입니다.

<그림 2>는 2016년 인천의 각 구·군의 주택 중 빈 집의 숫자입니다. 상주 인구가 많은 곳에 빈 집도 많습니다. 빈 집 숫자에 계산되는 집 중에는 정말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집도 있지만, 이사로 인해서 잠시 빈 집도 있고, 완공되었지만 아직 입주가 시작되지 않은 아파트도 있고, 수리 중이라서 비어 있기도 하고, 별장처럼 종종 쓰거나, 아니면 주택이지만 영업용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집이 많으면 빈 집도 많을 것이고, 쇠퇴하는 지역이 아니고 왕성하게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데 입주 중이라서 빈 집이 많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 3>은 조금 다릅니다. 이 그래프는 각 구·군의 주택 중에서 비어있는 집의 비율을 보여줍니다. <그림 1>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었던 동구, 남구, 강화군 등의 공가율은 인천 전체의 평균보다도 높고, 연수구, 남동구, 서구 등 인구가 증가한 곳들에 비해서 공가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2015년 전국 평균 공가율이 6.5%인데, 이 지역들은 수도권의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평균보다도 상회하는 높은 공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 지역은 주택 숫자에 비해서,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중구의 경우도, 대규모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는 영종 지역으로 인한 착시를 피하기 위해서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들의 공가 비율을 보면 동구나 강화도 못지 않게 높은 비율이 드러납니다. 구시가지 지역, 도서 지역의 오래된 지역이 쇠퇴하고 있다는 추정을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전반적으로 모든 곳에서 아파트 공가율에 비해서 비 아파트 주택의 공가율이 높게 관찰된다는 것입니다.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을 통한 아파트 단지가 인천의 인구를 흡수하는 동안 도시의 다른 공간들은 비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심증을 조금 더 강하게 믿게 하는 근거는 하나 더 있습니다. <그림 4>는 각 구·군의 공가들이 얼마나 오래된 주택들인지 비율을 살펴본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택지개발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5년 이내에 지어진 집들의 비율이 높습니다. 송도가 있는 연수구나 영종 지역에 아파트가 많이 건설되고 있는 중구와 같은 경우가 특히 두드러집니다. 반면 쇠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동구, 강화군 등은 30년 이상 된 주택들의 비율이 두드러집니다. 오랫동안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쇠퇴하다가 비어가고 있다는 가설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출산율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대 초반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소멸’과 같은 책이 한국에서도 많이 읽히기 시작하고, 지방의 농촌 소도시 또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을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비하면 아직 인천의 일부 지역의 쇠퇴는 조금은 이른 걱정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처럼 꾸준히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기반으로 하는 주택 공급과 도시 확장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천의 택지 개발에서도 미분양과 수익성 악화로 인한 개발 지연의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이로 인한 많은 부채는 오랫동안 인천의 지방정부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림 4에서 붉게 표현된 지어진 지 몇 년 안된 빈 집들이 곧 다 사람들로 채워져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더 보수적인 성장관리 전략과, 몇몇 지역에서는 축소도시 전략이 필요해 질 것입니다.

축소도시는 말 그대로 지금까지 확장해오던 도시를 다시 줄여서, 인구가 감소한 지역을 다시 적정한 규모의 도시로 공간을 재배치 합니다. 넓게 퍼져있는 주거지를 모으고, 빈 공간을 공공 녹지나 농지로 돌려놓습니다. 시가지 면적을 줄임으로써, 지방정부는 도시 공공서비스를 더욱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대도시 중심지의 작은 동들이 주민센터를 공유하는 것도 이런 효율적인 공공서비스 공급의 일환입니다. 아시안게임 주경기장과 같이 도시가 일상적인 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 공급을 하지 않으려는 전략입니다.

공간 재배치를 통해서 생겨나는 빈 땅은 공공 녹지나 농경지로 재탄생 됩니다. 구도심의 밀집된 주택지에 부족한 공원과 녹지를 늘려서,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각광받는 도시 농업과 연계해서, 지역사회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 안에서 소비하는, 친환경적 순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푸드 마일리지’라고 하는, 식재료가 생산되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의 탄소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는 친환경적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도시의 모든 공간이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빽빽한 공간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축소도시는 쇠퇴하고 있는 도시의 어떤 공간들의 미래가 재개발을 통해 가득 메워진 다른 도시를 따라가는 것만 것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낮은 밀도에서 더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도 도시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일 것입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이희연, 한수경. 2014. 길 잃은 축소도시 어디로 가야하나. 국토연구원
구형수 외. 2017. 지방 인구절벽 시대의 ‘축소도시’문제, 도시 다이어트로 극복하자. 국토정책Brief. 616.
임형백. 2017. 인구감소시대에 축소도시를 활용한 도시계획. 도시행정학보. 30(2)
형시영. 2006. 인구저성장 시대의 도심쇠퇴에 대응한 도시관리정책에 관한 연구. 한국지방자치연구. 8(2)
인천광역시 행정자료실(바로가기▶)
국가통계포털(바로가기▶)




2. 자전거로 사쿠라기초에서 신바시까지 달리기 1편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일본에서 전차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도만큼 조밀하게 짜여져 있는 전철의 총연장은 2만 7천km정도로 세계 15위권에 지나지 않지만, 수송량은 연간 80억명, 수송분담률 29%로 단연 세계 1위의 철도 국가이다. 1872년 일본 최초로 개통된 요코하마 사쿠라키초역(桜木町駅)에서 도쿄의 신바시역(新橋駅)까지 철도길은 아직도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노기훈

오늘은 일본 최초의 철도라는 사쿠라키초역(桜木町駅)에서 신바시(新橋駅)까지 왕복 6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렸습니다. 갈 때는 신나게 달렸는데 올 때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갈 때는 밝았는데 올 때는 어두웠거든요.

갈 때부터의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일본의 낮은 한국보다 훨씬 맑습니다. 하늘도 파랗고 대기오염이 없어 태양이 눈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 빛을 좀 더 빨리 맞받아 나가는 기분인데, 그럼에도 선글라스를 굳이 챙기지 않는 이유는 운전을 해야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 탈색된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는 여러 아쉬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이 아프기도 한 빛을 맞으면서도 계속 자전거를 몰아 나가기로 했습니다.

요코하마 사쿠라기초역은 제가 살고 있는 간나이역 인근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단지 한 정거장 거리입니다. 뱅크아트NYK 스튜디오에서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인천역과 인접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사쿠라키초역에 도착해서 구글맵을 체크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필코 도쿄에 다녀 오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걸어가면서 보는 모습이 아니면 자전거를 타니 사진을 찍기 더욱 어려웠습니다. 괜찮은 풍경이 보이면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는데 걸어가면서 연속적으로 보는 풍경과는 멀어지게 되어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거리에 차가 함부로 주차되어 있지 않은 미나토미라이 일대를 관망하면서 같은 기획으로 탄생했지만 처지가 다른 송도와 청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도 어서 빨리 불법주차 단속이 엄격하게 시행되어 비상정지 깜빡이가 면죄부가 되는 상황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에 있는 대규모 테마파크가 있다. 그곳에는 높이 112.5m에 48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세계 최대급인 관람차 코스모클록21이 있다. 정상에서 도쿄를 바라보면 도쿄타워가 보인다. 사진ⓒ노기훈

거리는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평일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표정 없는 직장인들만 간혹 보이던 곳인데 주말만 되면 도시 구성원에 대한 대대적인 일제검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평상복 차림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신도시 일대를 빽빽이 메우는 곳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자전거 횡단보도에서 살짝 삐그덕하며 자전거에 오르는 바람에  옆에 지나가던 아이에게 부딪힐 뻔해서 “어디 주변도 살피지 않고 올라? 뭐야 정말?”이라며 아이 어머니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화난 일본사람의 표정을 본 첫경험이었습니다.

계획된 도심구역이라 그런지 미나토미라이의 보도는 직선에 가깝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옆 쪽으로 휑하니 잡초만 돋아나 있는 공터도 여럿 보였습니다. 빌딩숲 속 개발의 틈에서 비켜나간 자리에는 땅이 살아나고 풀을 키웠습니다. 인간이 가꾼 빌딩이 올라간 만큼 사람마저 시스템에 집어넣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속을 층층이 꿰차는 것처럼 규율과 법칙으로만 가득 차 보이는 일본에서도 흙이라는 빈틈이 자라나고 있는가 봅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후달리는 허벅지를 한번 보고 그리고 옆으로 지나가는 전차를 확인하고 멀리서 날아오는 요코하마만의 바다 냄새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킁킁거리며 앞으로 달렸습니다. 해를 보니 북쪽으로 가던 방향이 동쪽으로 우회하는가 싶더니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요코하마역을 장면의 밖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빌딩과 수로로 큼지막하게 구획을 나눈 몸통 위로 아무렇게나 꼬아놓은 듯 보이지만 정확한 계획에 따라 날실과 씨실로 나뉜 옷가지를 덮은 식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요코하마의 심장은 요코하마역이었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요코하마역이 에반게리온처럼 천천히 일어나 휴일을 즐기는 일본사람들에게 일제히 환호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요코하마역 일대는 종합쇼핑몰, 먹거리타운, 레저시설이 밀집해 있는 요코하마 최대의 중심지이다. 사진ⓒ노기훈

실제로 요코하마역은 JR 5개 노선, 사철 4개 노선, 시영지하철, 각종 버스 등이 있는 대규모 터미널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요코하마에 오자면 NEX티켓으로 요코하마역에 오는 것이 가장 싸고 편리하고, 하네다 공항에서도 새벽 2시 20분까지 있는 직항버스를 타면 바로 도착하는 곳도 요코하마역입니다. 위에서 밑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기차로 버스로 가로질러 다른 곳으로의 절차가 이곳이 요코하마라면 필히 요코하마역이 대장입니다. 일본 제2의 도시로써 도쿄의 명을 받아 요코하마는 작동합니다.

역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밖으로 드러난 위용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자전거를 타며 인파로 인해 속력을 내지 못하고 가끔은 놀래 서있기도 하면서 요코하마역을 빠져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미래 도시와 같은 모습들이 차츰 시들해졌습니다. 건물이 점차 낮아지며 사람들도 뭔가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어깨가 구부정한 노인들이 넓은 도로에서 작은 도로로 빠져나오는 차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이런 느낌이 일본의 교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골목길에는 불법주차된 차들이 거의 없다.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될만큼 철도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 때문에 굳이 중심지에 살지 않아도 되기에 부동산 투기 현상도 한국보다 덜하다. 사진ⓒ노기훈

사진과 자전거를 동시에 다루는 일은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는 지나 있었습니다. 벌써부터 안장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내심을 발휘해서 조금 지나면 자전거가 맞추든 내가 맞추든 누구든 서로에게 맞추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도쿄로 흡수되어 가는 요코하마 쪽은 짱구의 집같은 일반적인 주택이 많았습니다. 문득 인천 도화동의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보았던 모란이 생각났습니다. 모란꽃은 뭔가 사진을 찍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피사체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주택은 담이 거의 없고 현관문이 바로 골목길과 연결된 형태가 많은데, 집주인에게 허용된 그 작은 틈 사이에도 예쁘게 가꾼 작은 화분이나 취향에 따라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닮은 도자공예품을 가져다 놓습니다. 과한 집은 집에 물건들이 차고 넘쳐 현관에 이른 듯 현관을 애써 찾아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풀과 장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일본의 마니아틱한 영화들을 보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할머니가 사는 그런 집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 집의 현관을 살피면 그 집의 도로의 차선을 넘겨서 집 앞을 사유재산화한 불편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나 하나 뿐이라는 생각은 공공이 마련한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고라는 점을 몸소 습관화하고 있습니다.

더욱 조심스럽게 교통 안내선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동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횟수에 비례해서 배는 텅텅 비게 되어 역 근처로 가서 뭔가 먹을까 하다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어느 하나 뒤떨어져 보이지 않는 이 많은 일본 음식들 속에서 괜히 주변부만 서성이며 가격만 확인하다가 다시 자전거에 타게 되었습니다. 무리해서라도 가와사키까지 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들을 가려나가기로 했습니다.

수로와 철도가 만나는 풍경. 철도가 집을 가르고 수로가 마을을 양분하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사진ⓒ노기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요코하마와 도쿄 일대의 특색으로 느껴졌습니다. 잔잔히 흐르는 수로들 위로 오래되어 보이는 철제 보강제를 밟고 전철들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쉴 새없이 다녀서 아주 긴 열차 한대가 시간을 들여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2층짜리 좁은 집들이 차 하나가 지나갈 듯한 길을 마주보고 서로 이웃하며 있었습니다. 골목 사이로 간혹 너풀거리는 빨래만 차선을 넘어 허공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람들과 빨리 달리지 않는 차들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 요코하마 관계자로부터 들은 내용이 기억났습니다. 요코하마시가 2003년 ‘창조도시 요코하마’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소음 규제와 관련한 전문가가 도심재개발 사업에 투입되어 간나이 쪽 도심을 설계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소음을 공해 차원에서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 저는 한낱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 도시를 다루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했다면 어디쯤 왔을까? 지금 보이는 일본의 모습을 인천의 어딘가와 견준다면 어디가 괜찮을까? 사진을 찍기로 마음먹고 다니는 길이라 주변의 정황들이 사진 속에서 인천과 도쿄의 관계로 맺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 반대로 인천과 요코하마의 중간지대에 있는 풍경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도 보고 싶었습니다. 인천도 분명 아닌데 일본은 더더욱 아닌 그런 풍경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감지되게 될지 궁금해져 왔습니다. 점점 요코하마와 도쿄의 중간이라는 가와사키시에 가까워져 가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마침 운이 좋게 조시키라는 곳에 큰 시장이 있어 그곳을 횡단해 가면서 눈요깃거리가 많아져 눈을 믿고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가면서 본 풍경 중에서는 가장 소리를 크고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장은 어딜 가나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음식의 가격은 간나이의 절반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아케이드가 눈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자전거에 내려 천천히 구경하면서 일본어 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단어들이 나와서 내용을 안다 싶으면 그새 또 다른 단어가 나와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도 그 미묘한 억양과 표정으로 신포시장에서 봤던 상인들의 얼굴을 기억해 내게 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파져서 신포닭강정을 닮은 일본식 닭 튀김 가라아게를 시키려고 했는데 뒤에서 먼저 외친 고등학생 때문에 밀려나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뒤돌아 다시 가던 길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대고 근처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서 바로 다 들이켰습니다. 아직 도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글,사진/ 노기훈 작가

 

노기훈은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뱅크아트 스튜디오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에 체류한다.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 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사쿠라키초역에서 신바시역까지 걷고 있다. 




[큐레이션 콕콕] 오, 나의 굿즈(goods)!

굿즈(goods)는 상품입니다. 그냥 상품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특별한’ 제품이죠. 아이돌·영화·책․스포츠․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작품, 브랜드의 정체성이 ‘굿즈’를 통해 나타납니다. 셔츠, 가방, 배지, 책갈피, 담요, 머그컵, 인형, 식품, 가전제품 등 갖가지 형태로 제작되는 굿즈가 취향과 관심사 등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소비문화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별 헤는 밤 텀블러’. 윤동주 시 별 헤는 밤의 구절을 각각 단어로 세분화해 별자리 모양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굿즈는 팬덤을 기반으로 한 ‘덕후 문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표기 ‘오덕후’에서 온 ‘덕후’는 ‘광팬’ 또는 ‘마니아’라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광팬을 가리켰던 ‘덕후’가 시간이 지나면서 개성 있고 가치 있는 소비를 즐기는 젊은 세대라는 의미로 확장됐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을 수집하면서 소비 트렌드를 이끌어왔는데 그 예가 바로 ‘굿즈’입니다.

시작은 아이돌 ‘팬덤(fandom)’입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혹은 무리)들은 가요계의 음원 시장과 공연 매출뿐만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한 모든 상품을 사들입니다. 아이돌 굿즈 시장은 연간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음원 수익이 턱없이 부족한 가요계에 굿즈가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매력 있는 굿즈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쁜 디자인과 높은 퀄리티 때문에 ‘굿즈를 사니, 책이 왔네.’라는 주객전도된 상황도 발생합니다. 독자들의(?) 성원에 알라딘은 홈페이지에 굿즈 항목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일정 금액 이상 도서를 구매하거나 이벤트 도서를 사면 받을 수 있었던 굿즈를 원하는 순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게 된 거죠.

“굿즈로 주는 유리잔이 너무 예뻐서 제 책을 산 적이 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두고도 자신의 책을 직접 구매한 이유도 굿즈 때문이었습니다.

출판계의 굿즈 열풍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티연구소장은 책값보다 더 비싼 사은품을 끼워 팔아야했던 여성잡지 시장의 포화와 몰락을 지금의 굿즈 팬덤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굿즈의 팬덤은 알라딘의 팬덤이지, 책의 팬덤이 아님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중략) 출판은 오로지 콘텐츠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지금 출판시장의 굿즈는 한때 잡지의 사은품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합니다.

정치권에서도 굿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표지에 등장한 아시아판 타임지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분당 16.6권씩 팔리며 일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문재인 타임지’에 이어 ‘문재인 넥타이’, ‘문재인 등산복’ 등 이른바 ‘문재인 굿즈’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문재인 굿즈는 ‘문템(문재인 대통령 아이템)’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야당 원내대표와 회동할 때 착용한 일명 ‘강치넥타이’는 ‘이응크레이션스’가 112주년 독도 주권 선포의 날을 기념해 만들었고,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 때 입었던 오렌지색 등산복도 찾는 이가 많아 블랙야크는 단종 됐던 점퍼를 재출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후보의 굿즈를 활용하는 일이 흔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등은 모자와 티셔츠 등을 제작해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거 기간 내 굿즈 제작을 법적으로 금지합니다. 지금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문재인 굿즈’는 모두 문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물건들이 굿즈 역할을 한 거죠.

예전에는 팬덤 문화가 인기 가수나 운동선수 등에 국한됐다면 요즘은 범위가 한층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여자대학에서는 학교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굿즈로 제작하는 ‘굿즈 열풍’이 한창입니다. 덕성여대는 교화인 무궁화를 마스코트화한 ‘듀롱이’를 제작했습니다. 학교 측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듈립’의 학생들이 공개했다고 하네요. 동덕여대는 목화를 마스코트화한 ‘솜솜이’ 굿즈가 인기입니다. 솜솜이도 커뮤니티 ‘동감’에서 만들었네요.

이화여대는 배꽃과 곰돌이를 활용한 굿즈를 판매합니다. 배지부터 스노우볼, 찻잔세트까지 그 수가 많아 ‘다이소를 방불케 한다’는 말도 있네요. 숙명여대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학교 슬로건에 맞춰 ‘눈송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늘 깨어있는 학생들을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자태로 상징화했다고 합니다.

2015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작가미술장터 ‘굿-즈’가 열렸습니다. 미술이 여전히 ‘고급 예술’에 머물러있다는 반성과 한계에서 출발한 행사는 ‘아트페어’가 아닌 ‘굿-즈’를 표방해 생산물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자신들 역시 서브컬처 굿즈의 소비자이기도 한 젊은 작가들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작업을 상품화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굿즈’를 끌어 왔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굿즈의 방식’은 스스로 서로의 소비자가 되고, 예술문화 생산자들과 예술과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여러 계층 사람들을 구매층으로 상정해 그들이 ‘굿즈를 소비하듯 현대미술을 소비하길’ 기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굿-즈’는 페어, 전시, 프로젝트, 이벤트 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실천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열린 ‘캐비넷 아트 페어’ 역시 ‘현대미술의 굿즈’ 양식을 기대어 안았습니다. 회화와 드로잉, 사진, 조각, 공예 등의 ‘작가 작품’ 외에 제작 과정 전후의 참고자료, 도구, 재료, 오브제 및 프로덕션 등을 선보이면서 기존의 화이트큐브형 아트페어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캐비넷 아트 페어’가 추구한 공간은 조용하고 따듯한 빈티지 샵 모델이었습니다. 작가는 완성품(혹은 그와 동일시되는 작품) 뒤에 가려져 있던 과정품(작업의 파생물)을 관객(소비자)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소통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또 다른 ‘굿즈’를 창발해낸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 이 시대에 굿즈 열풍이 부는 이유가 뭘까요.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가치에 대한 투자’와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참’을 이야기합니다. “잊힐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그 기억에 대한 투자로 ‘굿즈’를 사는 것”이라고요. 또 굿즈는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이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동감의 표시이자 참여의 중요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1. 유통가 휩쓰는 ‘문재인 굿즈’ 문블렌딩(커피)·이니티콘(이모티콘)·강치 넥타이 판매 불티
    매일경제 2017.6.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한경비즈니스 2017.6.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나는 굿즈 때문에 책 산다?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 2017년 09월호, 한기호
4. 18일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서 ‘캐비넷 아트 페어’ 개막
     인천일보 2017.10.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굿-즈] 지속가능한 구조를 위한 작은 움직임, 그리고…
    <월간 미술> 2015년 11월호, 신혜영
6. 여자대학은 ‘굿즈시대’…인형 등 관련 아이템 입소문
     조선일보, 2017.8.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여대들의 독특한 굿즈문화
     다음 카페 ‘쭉빵카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