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몰래카메라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CCTV:은밀한 시선’은 몰래카메라를 소재로 합니다. 숙박 앱으로 예약한 저택에 놀러 간 커플을 누군가 CCTV로 지켜봅니다. 예고편 카피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에서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로 바뀌면서 몰카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아찔한 충격을 줍니다.

1990년대 후반, 경기도 인근 모텔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브라운관TV의 화면조절 스위치를 뜯어 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손님들의 사적인 행위를 녹화했습니다. 손님 대부분은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내놓았지만, 협박을 받은 노부부가 경찰에 신고했고, 범죄가 들통났죠. 범인들은 ‘촬영’ 때문이 아닌 ‘돈을 뜯어낸 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비밀촬영이 죄가 되지 않았거든요.

1997년, 신촌의 한 백화점은 여자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여성 고객을 잠재적 절도자로 상정하고 비밀리에 촬영해 범인을 잡으려고 한 겁니다. 이 일은 언론에 알려졌고 불매운동이 벌어져 백화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몰카 처벌죄가 도입됐죠.

 
콘센트와 전자기기에 부착된 초소형카메라
출처:그린포스트코리아

모텔 객실 등에 카메라를 설치, 투숙객 천6백여 명의 사생활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일당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영남, 충청의 10개 도시 30개 숙박업소를 돌며 셋톱박스, 콘센트, 헤어드라이어 거치대 등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촬영 영상을 유료사이트에 실시간 중계하는 방법으로 약 7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는데요, 경찰은 숙박업소의 TV셋톱박스, 콘센트, 스피커 등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거나 불필요하게 전원 플러그가 꽂혀 있지는 않은지 살피라고 조언합니다.

클럽 버닝썬 사건이 화제입니다. 몰래카메라, 그중에서도 ‘리벤지 포르노’가 이슈인데,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를 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그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몰카가 문제인데도 처벌과 대응 수준은 미미합니다. 유포된 사진과 영상을 삭제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디지털 장의사’, ‘인터넷 장의사’ 등 생소한 직업까지 생겼습니다.

인터넷에서 판매 중인 위장형 카메라들
출처:대학내일

흔히 데이터를 삭제하면 촬영 증거를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디지털 포렌식을 거치면 압수된 저장장치의 데이터를 대부분 복구할 수 있습니다. 입증이 쉬워진 카메라등이용촬영죄에 대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을 들어보시죠.

Q.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어떤 경우에 해당하나요?
A.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나 그 밖의 유사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신체를 촬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카메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Q. 몰래 촬영을 한 뒤 저장하지 않고 바로 종료해도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성립하나요?
A. 카메라 등 기계장치로 동영상 촬영을 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영상정보가 기계장치 내 주기억장치 등에 입력됩니다. 파일 저장 전이라도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누르면 임시저장장치에 영상정보가 입력되므로 범죄가 성립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Q. 휴대전화에 저장된 것을 지우거나 휴대전화를 부순다면 카메라등이용촬영죄를 입증하기 어렵지 않나요?
A. 검찰은 2008년 10월부터 ‘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증거물 감정과 감식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포렌식을 거치면 데이터가 대부분 복구됩니다.

Q. 남이 찍은 촬영물을 유포하기만 해도 처벌을 받나요?
A. 불법촬영 범죄는 촬영에 의한 피해뿐 아니라 이를 유포한 데서 생기는 고통도 큽니다. 촬영물을 유포하기만 해도 죄책이나 비난 가능성은 촬영 행위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죠. 대법원도 단순 유포자와 촬영자가 동일하게 처벌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Q. ‘동의’하에 촬영했으나, 마음대로 ‘유포’한 경우는요?
A. 연인 사이의 경우 합의하에 성관계 영상을 촬영했지만 헤어진 뒤 유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유포자는 ‘동의하에 찍은 영상을 유포한 것이므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촬영 당시 합의가 있었더라도 사후에 마음대로 촬영물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출처:대학내일

‘몰카포비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더욱 심각한 공포로 다가오는데요, 여전히 불법 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이 온라인 공간에 유포돼 남성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몰카로 말미암아 사생활이 노출되고 위협받는 것은 인격을 침해당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잠깐. 몰래카메라와 불법촬영은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예능프로그램 등에서의 몰래카메라(몰카)를 선의의 특수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비범죄 행위로 표현합니다. 사전에는 ‘촬영을 당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촬영하는 카메라’로 정의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범죄 행위 여부를 구별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사건’으로 표현되는 요즘의 촬영은 엄연한 범죄 행위입니다. ‘몰카’보다 ‘불법촬영’에 가까운 것이죠.

노인일자리와 연계한 ‘몰카단속반’
출처: 한국시민기자협회

공공화장실 몰카에 대한 여성들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어르신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구를 비롯해 부산 중구, 광주 서구 등에서 ‘몰카단속반’을 운영하는데요, 노인 일자리와 연계해 1석2조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구는 지난 3월 노인 50명을 선발해 ‘몰카제로사업단’을 꾸렸고, 이들은 지하철 역사와 공공기관 건물 등을 돌며 몰래카메라 유무를 점검합니다.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환기구, 화장실 문, 비데, 화재경보기, 스위치 주변 등에 전파탐지형·램프탐지형 첨단장비를 활용하고 징후가 발견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합니다. 전파탐지형 장비로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해도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렌즈 탐지형 장비로 이곳저곳을 점검합니다.

인천 남동구는 지난달 구월동 길병원 내 공중화장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몰카 단속’을 펼쳤습니다. 구는 길병원 방문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본관과 응급센터, 여성센터 건물에 있는 공중화장실 50여 곳을 확인했습니다. 구는 지난해부터 지역 내 공중화장실 몰카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차후에는 범위를 민간화장실로 확대해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힘쓸 계획입니다.

인천 부평구 몰카제로사업단이 여성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를 단속하는 모습
출처 : 백세시대

글·이미지/ 이재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설왕설래] 몰래카메라
세계일보, 2019.3.24 (자세한 내용 보기▶)
2. 끊임없는 ‘몰래카메라’ 논란, 이대로 괜찮은가
시빅뉴스, 2019.3.27. (자세한 내용 보기▶)
3. 불법촬영과 몰래카메라의 차이… 김제동 “몰카 아냐, 엄연한 불법”
국민일보, 2019.3.14. (자세한 내용 보기▶)
4. 실시간 중계까지… ‘모텔 몰래카메라’의 섬뜩한 진화
그린포스트코리아, 2019.3.20. (자세한 내용 보기▶)
5. [형사전문변호사의 이야기] 몰래카메라, 디지털포렌식으로 범죄 혐의 입증될까
농업경제신문, 2019.3.12. (자세한 내용 보기▶)
6. [이동성 법률칼럼] 내가 허락하지 않은 또 다른 시선, 몰래카메라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경남연합일보, 2019.3.14. (자세한 내용 보기▶)
7. 인천 부평구, 부산 중구 등 노인 단속반 “화장실 몰래카메라 꼼짝마!”… 어르신들, 단속 나섰다
백세시대, 2019.2.21. (자세한 내용 보기▶)
8. ‘몰카공화국’이 되었는가?
경북매일, 2019.3.25. (자세한 내용 보기▶)




[큐레이션 콕콕] 반려동물 천만시대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반려동물 가정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8 반려동물 의식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가구 비율은 전체의 약 24%로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른다고 합니다. 통계청은 2016년에 이미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네요.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물을 총칭합니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되었죠. 이전에는 애완동물이라고도 했지만 이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애완은 사랑 ‘애(愛)’, 희롱할 ‘완(玩)’으로, 완은 장난감을 일컫는 ‘완구’의 완과 같은 글자입니다. 장난감처럼 ‘사랑하고 가지고 노는 동물’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죠. 반려는 짝 ‘반(伴)’, 짝 ‘려(侶)’로 더불어 살아가는 벗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체온은 사람보다 1~2도가량 높습니다. 따뜻함, 그리고 포근한 털 덕분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을 줍니다. 반려동물은 사람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병원은 심장병 환자 76명을 대상으로 도우미견과 같이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습니다. 도우미견과 생활한 그룹이 불안감, 스트레스, 맥박, 혈압 등에서 개선된 효과를 보였네요.

출처:이데일리

펫팸족(Pet+Family+族)은 콘텐츠 및 문화 활동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펫코노미(Pet+Economy)’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면서 관련 시장을 움직입니다. 반려동물 전용 호텔, 스파, 액티비티, 반려동물 얼굴 인식에 특화된 카메라 앱도 있습니다. 빙그레는 반려동물을 위한 생유산균을 출시했고, 농촌진흥청은 ‘반려동물 집밥 만들기’ 동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영상에는 집밥 만들기 프로그램 소개와 활용 방법, 오류 상황 대응, 배합비를 활용한 집밥 만들기 등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반려동물이 항공기 기내에 반입된 경우는 2017년에 4만1343건으로, 2015년에 비해 46.7%, 2016년보다는 23.6%가 늘었습니다.
이마트의 반려동물 전문점 몰리스펫샵은 EBS 애견교육 플랫폼 펫에듀(Pet edu)에 기초 애견훈련 패키지, 새 가족맞이 패키지 등의 강의를 개설했습니다. 롯데백화점 서울 강남점은 27평 규모의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매장 ‘집사’를 개장했습니다. 전문 펫 컨설턴트 4명이 상주해 반려동물의 종류와 생애 주기에 맞는 상품을 추천합니다. 반려동물 산책 대행, 펫푸드 정기배달, 홈 파티 방문 케이터링 서비스 등도 진행합니다.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성스레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았네요

동물을 직접 키우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영상과 게임 등을 통해 반려동물 문화를 즐기는 ‘뷰니멀족’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 동물 알레르기, 책임감에 대한 걱정 없이 반려동물 양육 욕구를 대리만족하는 건데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LAN선(인터넷)과 ‘집사’가 결합한 ‘랜선 집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랜선 집사는 고양이 관련 채널이나 사진 등을 즐겨보는 사람들을 말함

 
출처 : 아시아엔   출처 : 스포츠경향

장례문화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전문 장례업체 ‘펫로스엔젤’은 불(火)을 사용하지 않는 신개념 친환경 건조장(乾燥葬)을 운영합니다. 바람으로 자연스럽게 사체를 건조하는 장례법으로 반려동물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장례식장의 필요에 따른 친환경적인 방식입니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식 등록된 동물 장례업체는 약 22곳입니다. 경기 시흥에 있는 한 업체의 반려견 장례상품은 180만 원으로, 금사수의(金絲壽衣)를 입혀 오동나무 관에 넣고 생화로 관을 꾸며준다고 합니다.

펫로스 증후군은 가족처럼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반려인이 슬픔이나 정신적 장애를 겪는 현상입니다. 애견추모는 이러한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요, 종교계에서도 반려동물 장례나 추모의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반려동물이 영혼도 없고, 교인도 아니기 때문에 추모 예배나 미사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신자가 늘면서 일부 목사들은 “반려동물이 아니라 키우던 사람을 위로하는 예배를 드린다”라거나 “반려동물을 신학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냅니다. 불교계에서는 봉은사나 비로자나국제선원 등에서 반려동물 장례 요청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애완동물 공양처’가 있고 사람의 위패보다 반려견의 위패가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관악구는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행복한 관악 만들기 조성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동물복지 향상과 올바른 문화정착을 위한 10가지 주요 정책을 마련했는데요, ‘찾아가는 동물병원’ 및 ‘반려동물 한마당’을 개최하고 ‘동물보호명예감시원 사업(공공장소에서 반려견 외출 시 준수사항 홍보)’과 ‘반려견 행동교정 사업’을 통해 반려견 민원발생 가구 등을 대상으로 행동교정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그밖에 ‘길고양이 중성화’사업과 ‘길고양이 급식소 및 화장실’ 등으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경기도 용인시는 ‘반려동물 문화센터 및 공설동물장묘시설’ 부지를 공모합니다.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확산하고, 주민들이 반대하는 민간 동물 장묘 시설의 난립을 막으려는 조치입니다. 인천문화재단은 지난해 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프로그램으로 ‘반려동물과 문화예술’ 강좌를 개설, 진행했습니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열리는 <만국 시장>의 6월 주제는 ‘안녕? 동물친구들’이었네요. 시민들은 반려동물과 나란히 산책하면서 문화행사를 즐겼습니다.

반려동물 관련 직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반려동물 사랑한다면… 이런 일자리 어때요(자세한 내용 보러 가기▶)

반려동물 천만 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동물 학대와 유기 이슈가 자주 보도됩니다. 국내 유기동물 발생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18년에 10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이환희 수의사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를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동물 관련법을 꼽습니다. 자신이 키우던 개를 칼로 찌르고, 배설물을 먹는다며 환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사람을 향해 강아지를 던진 뉴스 보도를 기억하실 겁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한 데 사람들은 경악했죠. 하지만 현행법상 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입니다. 피학대 동물을 긴급 격리할 수는 있어도 주인에게 소유권을 영구 박탈하고 제한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동물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마음을 뺏겨 충동적으로 반려동물을 집에 데려옵니다. 이환희 수의사는 한 생명을 보호하고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정서적, 물질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반려동물이란 단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진정한 의미의 반려동물 시대는 아직 멀어 보인다. 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이라는, 최소한의 법적 명시가 필요하다.”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준비와 마음가짐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출처:파이낸셜뉴스

글 · 이미지 이재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관악구, 반려동물과 공존 앞장선 까닭?
아시아경제, 2019.3.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용인시 ‘반려동물 문화센터’ 부지 공모
아시아경제, 2019.3.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서울 반려동물 100만 마리…9월 보호·입양·교육센터 운영
아시아경제, 2019.3.14
뉴시스, 2019.3.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1인 가구 증가로 반려 동물 시장 급증… “육아랑 똑같다”
투데이 코리아, 2019.3.1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반려동물 천도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엔, 2019.3.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펫팸, 육아를 뛰어넘다]나보다 반려동물… 지갑 여는 펫팸족
이데일리, 2019.3.1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7. 농진청, 반려동물 ‘집밥 만들기’ 동영상 소개
프레시안, 2019.3.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8. ‘반려동물’ 시대, 유기와 학대 증가하는 모순
시사저널, 2019.3.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작아지는 가족, 작아지는 집 <1인 가구와 작은 주택들>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Valérie Gelézeau)는 한국 사회와 아파트를 분석한 책을 쓰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의 존재감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의 아파트는 건설산업을 지탱하며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의 구조를 바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파트는 주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습니다. 아파트는 좋은 주거를 판단하는 기준이자 토지와 건물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이며 자산 증식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파트는 삶의 과정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목표가 됐습니다.

아파트의 시대가 50년 이상 지속되면서 아파트의 모습도 다양하게 나뉘었습니다. 한때는 브랜드 아파트 순위에 따라 사람들을 계층화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반면 어떤 아파트는 사람들에게 낙인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속칭 “휴거”는 우리 사회가 임대아파트와 그곳에 사는 거주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말해주는 슬픈 신조어입니다.

이제 아파트는 한국인의 삶에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최근 수년간 주거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내 집 마련’이라는 표현에서 ‘내 집’은 ‘아파트’를 내포합니다. 아파트가 주거의 대표 표상이 되어서, 사람들은 집을 선택하고 평가할 때 아파트를 기준으로 둡니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거나 그렇지 않던 간에도 아파트의 존재를 인지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주거 문화를 ‘아파트’가 잠식하는 동안, 실제로 아파트는 우리나라 주택의 약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9%의 가구가 아파트에 산다고 합니다. 도시 지역은 이런 경향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로 인천광역시는 전체 가구의 약 52.9%가 아파트에 거주합니다. 꾸준한 택지 공급과 주택지의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의 수가 증가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가구 절반이 아파트가 아닌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천 전체 가구의 약 40% 가까이 단독주택(통계상에서 단독주택에는 다가구 주택을 포함합니다.)과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최초로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가구도 약 5%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다세대 주택의 숫자와 주택 이외의 장소에 사는 가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것은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서 단순해진 세대구성에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저출산으로 인해 가족원의 숫자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천 초등학교 한 학급당 학생 수는 이미 2012년에 25명이 채 되지 않았고, 작년 2018에는 23명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과거보다 한 자녀 가구는 큰 변화가 없지만, 세 자녀 가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한 지붕 아래에 함께 살지 않기도 합니다. 학교와 직장을 따라 한 가족이 여러 가구로 나누어졌습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기획 의도에서 “1인 가구가 대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족마저도 물리적 공동체에서 정서적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흐름은 인천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기준 한 가구를 구성하는 평균 가구원 수는 2.6명(전국 평균 2.5명)에 불과합니다. 반면, 인천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2017년에는 무려 266,434가구에 이릅니다.

1인 가구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보통은 결혼 전의 청년층이나 사별한 노년층이 많을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50대가 1인 가구의 20%에 육박합니다. 그리고 20대부터 50대까지는 남성이 여성보다 1인 가구 수가 더 많습니다. 인천의 1인 가구는 일자리를 위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표 1. 인천의 연령별 1인 가구 수 (2017년. 출처: 인구총조사)

이 1인 가구들이 차지하는 주거 형태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주거형태 비율과 아주 다릅니다. 인천의 가구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2017년 1인 가구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1/3에 미치지 못합니다. 절반 이상이 단독주택(역시 다가구주택을 포함합니다.)이나 다세대 주택에 살며,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가구도 12%를 넘어섰습니다.

표 2. 인천 1인 가구의 주거 형태 (2017년. 출처: 인구총조사)

인천에 지속해서 늘어나는 1인 가구가 아파트 이외에 다른 주거 형태에 훨씬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은 여러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1인 가구에 대한 주거 복지 정책이 청년층에 대한 임대 주택 건설과 노인 복지의 일환으로 치중되어 이루어지나, 인천의 1인 가구는 다양한 연령대로 분산되어 있습니다. 특히 경제활동인구가 많은 연령대에서 남성이 다수의 양상을 보입니다. 이는 인천의 ‘1인 가구’가 혼인을 하기 전 단계인 청년층의 임시적 가구나, 사별 혹은 황혼 이혼으로 인해 혼자 사는 노년층이라는 일반적 인식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1/3이상이 사는 단독주택(실제로는 대다수가 다가구 주택)의 상당수는 6~8평 수준의 원룸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인천의 1인 가구는 생애주기의 상당 기간 동안 절대적인 주거면적의 부족을 겪고 있으며, 대단지 아파트가 갖추고 있는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의 결핍과 같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측면에서 더욱 불리한 조건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림 1> 한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등록된 인천의 원룸(상)과 그 중 한 사례(하).
어느 도시가 그렇듯 인천의 1인 가구의 터전은 6평 원룸이며 이는 주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사회에 진출하여 평생직장을 구하고, 결혼과 함께 저축과 청약으로 아파트를 얻는 일종의 한국판 ‘주택주사위’(住宅双六. 일본의 생애주기에 따른 주거의 변화를 말판놀이로 구성한 것)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1인 가구에 대한 주거 복지가 특정 연령층에 집중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사각지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여전히 대단지 아파트 중심의 도시계획에서 빗겨나 있는 주택들의 주거의 질에 대한 제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소형 주택이 밀집한 원도심 지역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의 길과 공공시설, 커뮤니티와 지역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의 질 향상은 길 양 옆에 있는 오래된 주택들과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수많은 다가구 주택들의 건축적 향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글 · 이미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박인석(2017). 건축이 바꾼다. 마티
발레리 줄레조(2007). 아파트 공화국. 후마니타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자세히 내용 보러가기▶)




[큐레이션 콕콕] 또 하나의 기적

수학에서 1 더하기 1은 2입니다. 사회, 경제적 현상에서는 어떨까요? 하나 더하기 하나가 숫자 2로 딱 떨어질 수 있을까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는 1+1=2가 아닌 1+1>2의 혁신과 변화를 설명합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요소들이 결합할 때 각 요소의 에너지 합보다 더 큰 에너지를 분출하게 되는 경우를 이르죠.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수학자, 고전학자, 언어학자, 과학자 등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독일 해군의 암호 이니그마(Enimga)를 해독할 수 있는 콜로서스(Colossus)를 제작합니다. 이를 통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죠.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문학과 이공학의 교차점에서 소설을 집필해 본인만의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개미』, 『나무』, 『인간』, 『파피용』 등에는 작가의 과학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ierce)는 전기가 부족한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에어컨 없는 시원한 쇼핑센터’를 지었습니다. 흰개미 집 환기 구조를 건축에 적용하여 섭씨 40도가 넘는 아프리카에서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는 건물을 완공한 겁니다.
흰개미 집은 바닥에 있는 구멍에서 산뜻한 공기가 들어오고, 더운 공기는 위로 빠져나가는 시스템입니다. 하라레의 쇼핑센터는 실내온도 24도를 유지하는데 크기가 비슷한 다른 건물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은 적습니다. 전기는 85%, 가스는 87%, 물 사용은 28%나 감소시킨 겁니다. 아프리카 흰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와 환경주의 건축가가 그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에너지 절약 체계를 만들어낸 거죠.

 
흰개이집(좌)과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구조(우)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다양성이 핵심이자 주요 키워드가 된 현대사회에서 융합과 혁신은 필수입니다. 이미 ‘메디치 효과’를 적용했거나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죠. 디즈니와 나이키 등의 글로벌 기업에서는 서로 다른 부서의 팀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일합니다. 디자이너와 수학자가 뒤섞여 앉는 경우도 있고요.  프라다폰은 LG전자와 프라다가, 아르마니폰은 삼성전자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만나 혁신을 이룬 사례입니다. 전자 회사와 명품 디자인 회사가 손잡은 거죠.
슈베르트가 1815년에 작곡한 ‘마왕’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이전의 가곡에서 피아노는 단순 반주 역할에 불과했으나 ‘마왕’에서는 말발굽 소리, 천둥소리 등으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합니다. 시와 노래, 반주의 섬세하고 긴밀한 연결을 추구한 거죠.

메디치 효과는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에서 유래했습니다. 메디치가(家)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350년 동안 피렌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는데요, 세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혼인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미술, 음악, 건축, 문학, 철학 등 여러 방면에서 학문과 예술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켈란젤로를 양자로 받아들여 세계 최고의 예술가로 길러냈으며,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후원해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메디치가에 모인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은 자기 분야의 벽을 허물고 저마다의 재능을 융합했습니다. 창조적 역량이 커지면서 르네상스라는 역사적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고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의 저자 프란스 요한슨은 효과적인 창조와 통섭을 위한 7가지 실천을 제안합니다. 내 안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배우며, 기존의 가설을 뒤집어보고,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바라봅니다. 일부러 불편한 환경을 조성해 해결책을 찾도록 노력하고, 그 선에서 뜻밖의 통찰력을 발견하거나 기발한 생각을 만납니다.
저자는 다수의 아이디어를 쏟아내라고 제안합니다. 베토벤은 650곡을, 피카소는 천8백여 점의 유화, 천2백여 점의 조각, 1만2천 점의 드로잉을 완성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248편의 논문을 썼고, 에디슨은 천 건 이상의 특허를 신청했고요.

한상형 칼럼니스트는 메디치 효과와 같은 창의성을 생각하는 방법중 하나로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소개합니다. ‘역설계 과정’이라고도 하는데 훌륭한 프로그램이나 신제품이 나오면 완성품을 해체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석하는 일을 뜻합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 이야기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목장 풍경을 그려보라고 한 뒤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의 그림을 칭찬합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스케치북은 백지상태 그대로네요.
“넌 어떤 그림을 그린 거니?”
“풀을 뜯는 소의 그림이요.”
“그런데 풀은 어디 있니?”
“소가 다 먹었어요.”
“그럼 소는?”
“선생님도 참! 소가 풀을 다 먹었는데 거기 있겠어요?”

한 씨는 아이의 ‘백지 그림’을 소가 풀을 뜯어 먹은 후 사라진 완성된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역설계, 즉 거꾸로 되짚는 과정에서 새것의 실현과 가능성을 꿈꿀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인문학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됩니다. 한때의 유행이 아닌, 필요로서의 공부가 된 겁니다. 기존의 학문과 서로 다른 분야의 조합이 가져다줄 신선한 결과에 대한 기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겠죠. 진정한 혁신을 원한다면 특정 분야만 키울 게 아니라 다양한 학문과 문화 사회적 요소들이 함께 성장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사회경제, 문화 예술, 그리고 교육에서도 메디치 효과는 삶을 자극하고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최고의 결과물을 탄생시킵니다.

2019 뉴스 큐레이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글·이미지 이재은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서로 다른 것이 만나 만드는 융합과 혁신 ‘메디치 효과’
기획재정부 블로그, 2018.1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카드뉴스] 전혀 다른 두 개가 만나 이룬 하나의 기적 ‘메디치 효과’
브릿지경제, 2017.3.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음악이 보인다! 보이는 클래식!
우버人사이트, 2018.10.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칼럼] 연결과 융합, 해체와 분석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라
한국강사신문, 2018.4.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서로 다른 존재들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메디치 효과’
시선뉴스, 2016.6.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선(線)의 환상

움직이는 산, 이슬람 여인들

아이고, 리아드(Riad)에서 나온 지 열 걸음도 못가서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매일 아침 머무는 모로코 전통가옥인 리야드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는 풍경이다. 

“차이나? 자포네? 코레?” (‘한국사람입니다’)
“어디로 가세요?” ( ‘가는 길 알아요. 물어보지 마시라고요’)
“광장은 저쪽이에요. 저쪽” (‘난 광장에 안 간다니깐요’)

신발은 먼지와 흙으로 뒤범벅이 됐다. 말과 당나귀, 오토바이와 자전거, 마차와 자동차, 그리고 사람이 함께 뒤섞인다. 수천 개의 좁디좁은 골목이 뒤엉켜 있는 마라케시(Marrakech) 메디나 구시가지에서 구글맵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민트가 꾹꾹 눌러 담긴 알라딘에 나올법한 주전자에서 차를 따른다. 내 몸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디좁은 골목도 이리저리 걷는다. 거리엔 온갖 쓰레기로 넘쳐났고 지릿내가 진동하지만 낯선 이국적인 풍경속을 걷는 게 그저 신난다. 게다가 모로코 전통복장인 젤라바(Jellaba)를 입고 전통신발을 신은 채 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거리를 걸어 다닌다. 마치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하다. 특히 내 눈길을 사로 잡는 건 모로코의 이슬람 여인들이다. 길을 걷는 여성의 대부분이 머리를 감추고 있다. 젊은 여자 대부분은 히잡으로 머리만 가리고, 아이가 있는 엄마나 할머니들은 망토 같은 차도르나 눈만 빼고 얼굴을 다 가린 부르카나 니캅을 쓰고 다닌다. 종종 아이 손을 잡고 가는 니캅을 쓴 여인들을 보는데,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리면 다들 똑같아 보여 어떻게 찾을까 싶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젤라바에서 부르카까지 온몸을 감싸고 다니는 모습이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이렇게 다니니 왠지 나도 이들처럼 히잡을 멋스럽게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로코 거리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메디나 골목   길에서 마주친 이슬람 여인들

 

이들의 모습은 꼭 움직이는 산처럼 느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단색으로 뒤덮은 천이 스멀스멀 움직인다. 머리와 몸을 모두 분홍색으로 휘감은 화사한 산과 온몸을 검은색으로 휘감은 어둠의 산도 보인다. 뒷모습만 보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영락없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산이다. 이슬람 여인은 얼굴을 숨기니 수줍음이 많을 것 같다고 상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들은 니캅으로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가린 채 아이를 업으면서 장사를 한다. 길가에서 외국인의 손목을 잡아끌며 헤나를 강제로 해주고 돈을 요구한다. 제마 엘프나(Jemaa El Fnaa) 광장에 있는 모자 가게 여인은 우악스럽게 내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반면 우아하게 30분에 120디르함(만 이천 원)인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들도 있으며 단 돈 5디르함(오백 원) 하는 먹다 만 빵을 달라며 테이블 앞에 찾아온 작은 여자아이도 만난다.

문득 처음 아프리카 대륙에 왔다는 설레임과 함께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긴 시간을 처음 보낸다는 두려움에 이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얼굴만 가렸을 뿐이지 사실 내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나? 그들이 부르카에 자신을 감추듯, 우리 역시 자기 안에 갇혀 있지 않은가? 미래의 이슬람 여인들을 상상한다. 내가 상상한 이슬람 여인들은 온갖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 부르카를 입는다. 꽃이 만발한 동산 같다. 이슬람 여인의 모습을 통해 누에 꼬치 안에 갇힌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그려본다.

움직이는 산, 이슬람의 여인들

순진한 바람

이국적인 모로코 모습에 설레던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서 지겹도록 말을 건네는 모로코인들에 의해 지쳐 마음껏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싶어졌다. 제발 힘들게 흥정하지 않고 물건을 사며 깨끗한 곳에서 조용하게 식사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처음엔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가난하지만 집마다 모두 다른 창문과 문을 보며 화려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했다. 돌로 장식된 왕궁의 모습에 감동하며 길에서 우연히 사 먹은 양꼬치에 행복해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는 햇빛을 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엔 고급스러운 리야드를 지내러 오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모로코 전통 방식으로 가죽을 다듬는 테너리(tannery)에선 구경 갈 때마다 여행객들에게 강제로 나눠주는 민트를 받아야 했다. 테너리에선 지독한 냄새가 나니 민트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테너리엔 맨발로 비둘기 똥을 밟아가며 가죽을 만드는 모로코인들과 이를 강제로 보여주고 설명하며 돈을 받는 또 다른 모로코인, 다른 한 쪽엔 민트를 코에 대고 얼굴을 찌푸린 채 이들을 바라보는 관광객이 있다. 고작 대여섯 살 밖에 안되는 어린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크리넥스 몇 개, 쿠키 몇 개를 들고 종일 앉아 있는 모습은 흔하디흔한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가난해야만 하고 왜 그렇게 처절한지. 왜 그렇게 절박해야 하며 또 왜 그렇게 질리도록 호객행위를 해야만 하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사하라 하실라비드 마을에선 비가 내릴 때마다 진흙으로 짓는 전통 방식의 집이 쉽게 무너졌다. 과연 이렇게 적은 비에도 무너져버리는 집에 사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도 하루에 다섯 번 이슬람 아잔이 울릴 때마다 기도하는 모로코인을 보며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과연 내 순진한 바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 왕궁의 화려한 돌장식

전통방식으로 가죽을 만드는 모로코 테너리

사하라 하실라비드 마을의 아이들

한달 여간 지낸 모로코는 가난하지만 화려했고, 화려하지만 또 단조로웠다. 10년 후, 더 나아가서 100년 후에 모로코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움직이는 산처럼 보이던 이슬람 여인들은 여전히 같은 모습일까? 몇 백년 전 질라바와 전통 신발을 아직도 신고 다니는 모로코인들처럼 100년후에도 이 모습은 계속 지켜질까?

모던 이슬람 국가라고요?

작년 겨울 모로코에 이어 이번 겨울엔 말레이시아에 두 달여간 머물렀다. 우연히도 두 나라 모두 이슬람 국가였기에 어떻게 다를지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인도인과 중국인, 말레이인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가 아닌가. 심지어 모던 이슬람 국가로 불린다고 하니 어떤 나라일지 무척 궁금했다.
말레이시아는 한 거리에 힌두사원과 모스코, 그리고 절이 공존한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개방적인 국가다. 말레이시아에서 난 신들이 만찬을 한다면 이곳에 올 거라고 상상할 만큼 다양한 음식에 흠뻑 빠져들었다. 중국, 말레이, 인도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모두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적어도 영국처럼 다민족 국가에서 보이는 문화의 다양성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말레이시아의 중국 사원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음식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사람이 운영하는 빵집

이들은 서로 섞이지 않으며 사는 지역도 다르다. 심지어 학교마저도 중국인과 말레이인, 인도인으로 구분해서 다닌다. 한 국가에 세 가지 교육 시스템이 있다는 게 나로선 미스테리하다. 중국인은 돼지고기를 좋아하지만, 이슬람인 말레이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힌두계인 인도인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돼지고기는 먹는다. 한편 이런 다양성을 이용해 여러 음식이 발달했을 법하지만, 서로 배려할 뿐 융화하지는 않는다. 내가 바라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J는 자기 나라임에도 소수민족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꼭 말레이시아 땅을 조심히 빌려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레이시아의 인구에서 60%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겉으로는 주류로써 말레이시아의 주인처럼 보인다. 심지어 나라 이름조차 말레이(말레이 족)와 시아(그리스 어로 땅)가 합쳐진 말레이의 땅 아닌가. 정부는 편파적으로 말레이인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편다. 이들은 나라의 지원을 받아 집을 쉽게 살 수 있고 모든 대학시험은 이슬람어로 치러진다. 그런데도 말레이인은 경제권을 중국인에게 빼앗겨 무기력해 보인다. 정부에서 ‘깨어나라  말레이인이여’ 외친다지만 과연 이들이 쉽게 변화할까?

문명과 문명화

두 달여의 시간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지만, 여전히 뭔가 허전하다. 조호바루에선 신시가지를 만들어서 그곳에 아파트를 짓고 외국인에게 팔아 경제를 살리려고 한다지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도시가 과연 아파트와 쇼핑몰, 국제학교만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조호바로의 신시가지에는 여전히 횡단보도와 인도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 관한 배려는 당연히 없다. 로컬 카페 혹은 작은 서점, 갤러리 혹은 작은 상점 등 흥미로운 어떠한 장소도 찾기 힘들다. 모든 건 거대한 체인점 혹은 호커센터 뿐이다. 물론 호커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건 즐겁다. 그런데 과연 이게 전부인가? 음식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지 않고 먹을 수는 없을까? 음악을 밤늦게까지 크게 틀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왜 항상 냅킨을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테이블은 더러워야만 하는 걸까? 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인상을 찌푸려야만 할까? 식당 한가운데 거대한 음식 쓰레기통이 있는 건 비위생적이라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또 그 옆에 앉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가? 과연 이런 의문들이 문화 차이일 뿐인 건가 아니면 문명,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단어인 ‘문명화’의 차이인 걸까?

수많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조호바루 거리

조호바루 길거리 음식점

말레이시아에선 사람들이 계속 싱가포르에 다녀오라고 했다. 왜? 말레이시아엔 없는 게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옆나라라서? 내가 만난 말레이시아인들은 다들 싱가포르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싱가포르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이들에게 싱가포르는 물가가 비싼 나라, 깨끗한 나라, 수많은 룰이 있는 답답한 나라로 느껴지는 듯하다. 싱가포르에서 본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풍요로움이 이곳 사람들에겐 필요 없을 수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명’, 유럽인들이 타국을 여행하며 가끔 이곳은 아직 ‘문명화(civilization)’ 되지 않아 순수하다, 또는 이곳은 꽤 문명화가 되었다고 말하는,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농담으로나마 이런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난 버럭 화를 냈었다. 그런데 내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며 문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토록 경계한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문명’을 결국 나도 똑같이 바라보고 있는 걸까? 작년 모로코와 사하라 여행을 통해 느낀 이슬람 문화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번 겨울 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바라본 또 다른 모던 이슬람 문화, 아울러 이런 고민 속에서도 내 안에서 슬며시 쌓아가기 시작한 또 다른 편견들, 과연 타문화를 이해하는 건 가능한 걸까?

경계에 서서

난 아이러니하게도 모던 이슬람 국가라고 알려진 말레이시아에서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를 느꼈다. 오히려 니캅을 쓴 채 아이를 업고 쿠키를 파는 모로코 이슬람 여인들의 삶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적어도 가난하지만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로코인들이 좋았다. 그들을 따라 재래시장에서 젤라바를 사 입었고 얼굴을 가린 아주머니들 틈에서 젤라바를 꺼내며 어떤 크기가 맞는 거냐고 물었다. 사하라 사막을 걸으며 이곳에선 젤라바가 역시 최고의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젤라바 패션에도 관심이 생겼고 머리에 두르는 다양한 방식의 히잡도 멋스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페즈(Fez)에서 머물던 숙소 옥상에서 아잔 소리를 듣는 순간엔 마치 내가 이슬람 신자가 된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분지 지형인 페스에선 저 멀리서 시작된 아잔 소리가 이어지고 이어져 웅장하게 메아리쳤기 때문이다. 천상의 콘서트를 보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페즈 전체가 엄청난 울림을 가진 하나의 콘서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웅장한 아잔 소리를 들었던 페즈에서

매일 젤라바를 입고 다녔던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오히려 동남아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말레이시아에선 많은 부분이 불편했다. 전통이라곤 찾기 힘든 거리풍경, 조호바로에서 수없이 본 높게 솟은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 말라카(Melaka)에서 관광 상품화가 되어버린 식민시대의 유적들, 동시에 개성 있다고 느낀 건물 모두가 식민시대의 흔적이란 게 씁쓸했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로 알려졌지만 적어도 나에겐 다민족 국가에서 보이는 문화의 다양성은 찾기 힘들었다. 겉으론 개방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굉장히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로 느껴진다. 말레이시아에선 인종끼리 섞이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슬람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슬람인은 이슬람인과 혼인해야 한다. 타 종교인이 이슬람인과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이슬람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영국 식민지시절에 생긴 바바뇨냐 문화를 홍보하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아이러니하다. 현재 이슬람인들이 이슬람이기를 포기한 뇨냐여성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다고 내가 모로코를 더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내가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아틀란스 산맥에서 북유럽 여인 두 명이 급진 모로코 이슬람인들에게 살해당했다. 끔찍한 일이다.

말라카의 포르투갈 유적지

결국 문명, 문명화(Civilization)란 과연 뭘까? 난생처음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그리고 또다시 모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두 달여의 시간을 보내며 이런 의문은 점점 더 깊어진다. 결국 문명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의 순진한 바램과 달리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작가로서 내가 보고 느낀 환상을 작품에 담을 뿐이다. 

이승연, ‘세가지 경계’, 150x150cm, 타피스트리 가변설치, 2018, SeMa 창고
모로코 자립형 레지던시(?)여행을 마치고 만든 타피스트리 작품

글 이승연
사진 이승연, 저기요 스투디오

이승연(Seung youn LEE)
고대사와 신화, 또는 상상의 극한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에는 물리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드로잉을 기반으로 철과 나무, 패브릭,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영국인 알렉산더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했다. 당시의 신화적·종교적·사회적 관심은 개인작업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국 서머싯 하우스, 국립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역서울 284, 영은 미술관, 켄 파운데이션, 베를린 ZK/U, 등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처럼 영원히 남을 작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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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콕콕] 키워드로 보는 ‘2019 코리아’

2007년부터 해마다 국내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김난도 교수는 2019년을 “원자화·세분화하는 소비자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요약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펴낸 <2019 대한민국 트렌드>는 2019년을 ‘완벽하게 혼자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해로 정의했네요. 2016년 ‘집에서 다양한 욕구를 해결하다’, 2017년 ‘新 개인의 탄생, 연결됐지만 비사회적이다’, 2018년 ‘1인 체제, 일상이 되어가다’에 이어 1인 중심 사회가 더욱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가 내놓은 올해 대한민국 트렌드는 1.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2. 불안한 사회에서 나만의 휴식공간을 찾아 나서는 ‘케렌시아 현상’ 3. 대면 접촉이 필요 없는 ‘언택트 기술’ 4. 새로운 부가가치와 수요를 창출하는 ‘만물의 서비스화’ 5.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 세대 6. 자신의 취향과 정치사회적 신념을 커밍아웃하는 ‘미닝아웃’ 7. 기능적 관계나 반려동물이 대체하는 ‘대안 관계’ 8. 가성비를 넘은 만족을 주는 ‘플라시보 소비’ 9. 같은 성능, 같은 가격이라면? ‘매력 자본’ 10.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는 노력’이었습니다.

2019년은 어떨까요?

출처:매일경제

1. 콘셉트를 연출하라-Play the Concept

가성비나 품질보다 콘셉트가 중요해집니다. 그냥 좋아하기보다 콘셉트가 있는 취향을 선호하는 겁니다. 이미지에 열광하고 변화에 능동적인 젊은 층은 기능이 아니라 콘셉트를 소비합니다. 희귀하거나 재미있는 ‘갬성’ 콘셉트에 열광하는 거죠.

특정한 콘셉트를 부각한 ‘갬성’ 미용실이 고객에게 선택받고 있습니다. 에이바이봄은 매달 아트 전시회를 개최하고 신진 작가들에게 대관 및 홍보를 지원합니다. 헤어 살롱 투티는 통유리 안에 그림을 전시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1년에 작가 한 명을 후원해 매달 후원금을 전달하며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등 갤러리 살롱의 콘셉트를 결합했습니다.

갤러리 살롱 투티에 전시된 작품
출처:그라피매거진

2. 세포마켓-Invite to the ‘Cell Market’ 혹은 1인 1마켓

소비시장이 극도로 세분화 됩니다. 셀러(seller, 판매자)와 컨슈머(consumer, 소비자)의 합성어로 누리장터꾼, 혹은 셀슈머라고도 하죠. 2012년 영국의 유명 기조연설자 헨리 메이슨은 개인이 SNS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직접 판매에 나서는 것을 셀슈머(Sell-sumer)라고 지칭했는데, ‘세포마켓’은 이들의 활동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세포(Cell)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파생됐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SNS를 기반으로 문화적 감성에 재능을 더해 유통의 새 장을 만듭니다.

‘증멍사진’은 증명사진과 강아지가 짖는 소리인 ‘멍멍’을 합성한 신조어입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을 피사체로 그들의 ‘증명사진’을 만드는 거죠. 반려동물의 ‘증멍사진’을 제작해주는 <○○사진관>은 대학생 박 아무개 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오픈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한 반려동물의 사진에 맘에 드는 배경색과 패턴을 입혀 결과물을 만드는 거죠.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반려동물 외에도 고슴도치, 코아티, 뱀 등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의 반려동물 종류도 다양하다고 하네요.

출처:MBN뉴스

나만의 작은 바다를 파는 곳도 있습니다. 코발트 빛깔의 정육면체 안에 해초, 소라 등 바다에서 공수한 재료를 넣습니다. 이 ‘바다조각’이 미니 수족관이나 스노우볼과 다른 점은 개인의 ‘최애품’을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갓난아이의 탯줄, 처음 빠진 아이의 유치, 신혼여행지에서 주워온 돌 등이 그 안에 담기죠. 제품의 기능을 소비하기보다 제품에서 얻는 색다른 체험과 즐거움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흐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3. 밀레니얼 가족-Emerging ‘Millennial Family’

“엄마가 가족을 위한 밥상을 10분 만에 뚝딱 차려낸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즉석밥, 에어프라이어에서 조리한 냉동 돈가스, 온라인으로 주문한 호텔주방장표 특제 소스, 야쿠르트 아줌마가 배달해준 따끈한 미역국이 주메뉴다. 자녀는 엄마에게 ‘이건 요리가 아니고 조립이네’라고 말한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묘사한 ‘21세기형 밀레니얼 가족’의 모습입니다. 밀레니얼 가족은 20․30세대가 꾸린 가정을 일컫는 말로, 그들에게 가사는 신속히 처리해야 할 노동입니다. 가족만큼이나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죠. 가족의 변화는 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각종 ‘도우미 경제’가 발달하고, 가정식과 신종 가전기기의 인기가 높아질 전망입니다.

4. 뉴트로-Going New-tro

옛날 것이 뜨고 있습니다. 뉴트로는 10․20세대를 공략하는 새로운 복고입니다. 레트로가 장년층의 향수에 기댄다면, 뉴트로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옛 것의 신선함을 어필합니다. 중년 세대가 유년 시절에 신던 운동화, 촌스러워 보이는 Big로고 티셔츠가 10대들에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출시된 지 30년이 넘은 음료가 불티나게 팔리고, 고급 시계 브랜드는 50년도 더 된 구모델을 다시 선보이고 있습니다. 뉴트로는 과거의 단순 재현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꿈꿉니다. 과거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재해석을 통해 현대화시키는 전략이죠.

출처:머니S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친숙한 젊은 세대는 쉽게 ‘디지털 피로감’을 느낍니다. 이들에게 뉴트로는 일시적인 해방감을 줍니다. 고도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10․20세대에게 불완전함은 새로운 매력 포인트입니다. 젊은 세대는 새것, 화려한 것, 튀는 것,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낡은 것, 보잘것없는 것, 흠집 난 것, 손때 묻은 것에서 정신적인 충족을 얻습니다. 매끈하고 완벽한 것보다 낡고 오래된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죠.

5. 필(必) 환경시대-Green Survival

친환경이 아니라 필환경입니다. 환경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친환경 제품이 단순히 좋은 것이었다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환경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스타벅스는 지난달 26일부터 국내 1200여 매장 전체에 친환경 종이빨대를 도입했고, 파리바게트는 올해 말까지 플라스틱백 사용량을 90% 이상 줄이기로 했습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유통매장에서 물건을 산 뒤 플라스틱과 포장 비닐을 매장에 버리고 오는 활동인데요, “품질 보존과 무관한 과잉 포장이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하고,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모두에게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담은 행동이라고 하네요.

6. 나나랜드-As Being Myself 또는 젠더 뉴트럴(gender-neutral)

보편적인 규범과 관습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는 이를 ‘나나랜드’로, <라이프 트렌드>는 ‘젠더 뉴트럴’로 설명하고 있네요. 남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는 나만의 절대적인 시선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성 역할의 금기를 깨고, 기성세대가 의미 있다고 여겼던 삶에 반기를 들며 자기만의 무민(無mean) 생활양식을 지향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며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출처:더피알

나나랜더들의 첫 번째 행보는 미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예쁜 것과 못난 것의 구분이 없고, 뚱뚱하거나 신체 일부가 불편해도 상관없다고 말하죠. 패션쇼에 모델이 안경이 쓰고 워킹하거나, 안경 쓴 여성앵커가 뉴스 진행을 맡습니다. 나이키는 플러스 치수(77~88사이즈 이상) 여성 모델을 광고에 등장시켰고 타미힐피거는 장애인이 입을 수 있는 청바지를 출시했습니다. 프랑스의 한 화장품 업체가 내놓은 다양한 피부 색조의 파운데이션도 나나랜드 트렌드에 속하죠.

7. 카멜레존, 공간의 재탄생-Rebirth of Space

“엄밀히 말하면 오프라인 매장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방식의 매장이 망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들이 신기술을 입거나 융합을 시도하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등 체험 공간으로 변모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설 자리는 있다. (중략) 오늘날 소비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사 결정자라기보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다. 온라인 쇼핑이 주는 편리함뿐만 아니라 직접 상품을 만지고 사용해보는 시각적·감각적 경험까지 기대한다.” 김난도 교수의 언급입니다.

공간이 다시 태어납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코엑스몰이 스타필드로 이름을 바꾼 뒤 가장 먼저 선보인 별마당 도서관이 죽어가던 공간을 살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유통 공간이 카페, 책방, 도서관, 강연장으로 변신합니다. 은행과 카페, 호텔과 도서관, 자동차 전시장과 레스토랑 등 공간의 협업이 즐거움을 주죠. 주변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현대의 소비 공간도 상황에 따라 카멜레존(Chamelezone)이 됩니다.

출처:더피알

글·이미지 이재은

*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1. BOOK ‘트렌드 코리아 2019’
팝콘뉴스, 2018.12.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특별함을 팝니다”…뜨고 있는 ‘세포마켓’
MBN뉴스, 2018.12.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2019 반드시 주목해야 할 5가지 트렌드
더피알뉴스, 2018.12.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트렌드 코리아 2019’ 무엇을 사겠습니까 어떻게 살겠습니까
부산일보, 2018.12.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2019년 이끌 10대 키워드 미리 보기
사건in, 2018.11.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2019 트렌드 코리아’로 알아본 내년 미용업계 트렌드는?
그라피매거진, 2018.11.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더 넓어지는 도시, 더 어려워지는 계획 ‘수도권 매립지’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2011년 가을, 송영길 전 인천시장은 청라국제도시로 관사를 옮겨 2개월 동안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청라국제도시와 검단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악취와 관련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수도권 대부분 폐기물을 처리하는 수도권매립지를 지목하였습니다..

수도권매립지는 1992년 서울특별시가 사용해 온 난지도 매립장(지금의 마포구 월드컵공원)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농경지 목적으로 매립된 김포매립지 중 약 600만 평을 수도권 시·군이 사용하는 폐기물을 매립하기 위해 조성하였습니다. 단일 매립지가 이정도 규모인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미 25년 이상 된 이 매립지는 현재 제3매립장을 조성하여 이용 중이고, 매립이 종료된 제1매립장과 그 주변은 난지도의 경험을 살려 골프장, 야생화단지 등으로 꾸며졌습니다. 지난 10월 매립이 종료된 제2매립장 또한 공원과 체육시설 등으로 변화할 예정입니다.

본래 이 매립지는 2016년까지 사용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에 이르러 서울특별시와 환경부를 중심으로 폐기물 매립 기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었습니다. 대체 매립용지가 마련되지 않았고, 쓰레기 종량제 이후로 폐기물량이 줄어들어 매립 가능한 용량에 여유가 생긴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습니다. 이전부터 악취 등의 피해를 겪어온 인천시와 지역사회의 반발이 매우 컸고, 2015년 인천광역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환경부는 4자 협의체를 구성하여 오랜 논의 끝에 몇 가지 단서를 붙여 2025년까지 수도권매립지 사용을 연장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도시 문제를 행정기관이 해결하려 할 때, 대부분 그곳의 관할 행정기관이 어디인지를 우선 확인할 것입니다. 만수동에 생긴 민원을 구월동에 넣지 않고, 주안동 도시정비사업을 부평구청에서 관할하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논의는 어떤 도시라도 해당 행정구역의 공간적 범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림 1> 수도권매립지의 위치.
1992년 이래 바다 쪽으로 계속 늘어난 매립장이 2025년 이후에도 확장된다면 인천의 경계를 넘어 경기도 김포시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였습니다. 수도권매립지 폐기물 반입량의 약 2/3를 차지하는 서울특별시는 지자체 내에 대체 부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반입 연장에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택지를 꾸준히 개발중인 인천광역시는 처음에는 연장에 반대했지만, 여러 협상안을 통해서 연장에 합의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습니다.이 협상안은 최초에 공유수면 간척지를 폐기물 매립지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환경부의 토지소유권을 인천광역시가 갖고, 반입수수료를 인상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인천시는 현실적으로 대체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당시 부채로 인한 재정난을 고려해서 기한 연장을 결정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협의의 과정입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게 명령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위계가 같은 두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협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천의 공간 활용 방안을 주변 지방자치단체의 합의를 통해 결정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최종적으로 합의가 되고 나서 끝까지 연장 반대를 주장한 지역 주민들은 환경단체 등과 연계하여 지역 경계를 넘어선 연대와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이렇듯 도시 공간의 문제는 단순히 그 공간내의 문제만이 아닌, 공간외 사람들과 함께 엮습니다.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한 지 20년이 넘었고, 민선 자치단체장이 7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행정부는 지방자치를 더욱 강화하여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지방정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얼핏 “우리 지역의 일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도시 공간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데 더 많은 협의와 협력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에서는 인구 증가를 위한 전략적 투자 및 외부 자원의 유치를 위해서, 또는 인프라 중복투자로 인한 경쟁력 감소를 피하고자 지자체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수도권과 같은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교통, 폐기물, 하수 등과 같은 도시기반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택지 개발, 산업단지 유치 등을 위해 다양한 협조와 양보, 지원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국토부의 수도권 택지 공급 계획과 서울시 내 그린벨트 해제 여부를 놓고 국토부와 서울시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협의한 것도 이러한 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약 10여 년 간 수도권의 많은 지자체가 내놓았던 무수히 명멸한 각종 계획에는 비슷한 단어들을 지속해서 접해왔습니다. ‘국제업무’, ‘바이오’, ‘IT’, ‘R&D’, ‘MICE 산업’, ‘한류’, ‘K-Pop’, ‘관광’, 그리고 최근에 화두인 ‘4차 산업’입니다. 수도권의 많은 지구단위계획은 크게 다르지 않은 지향점을 두고 달려왔습니다. 이 계획 중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느린 걸음으로 걷거나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일부는 종이 위에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유사한 기능과 목표를 가진 여러 도시들-역시 어딘가는 성공하고, 어딘가는 실패한- 을 주변 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상하이의 푸동과 린강, 텐진의 유지아푸, 선전, 광저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림 2> 무산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계획 조감도(좌)와 최근 진행 중인 잠실 국제교류복합지구 마스터플랜(우).
인천경제자유규역(IFEZ)의 경쟁상대가 푸동과 홍콩, 싱가포르이기 전에 위에 나타난 서울의 지구단위계획일지도 모릅니다.

중앙정부의 계획을 통해 추진된 경제특구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계획한 신도시는 기능과 목표의 중복과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래서 계획 단계에서 적절한 투자를 얻지 못해 무산되기도 하고, 기반시설이 잘 조성된 도시가 적절한 입주기업을 찾지 못해 비어있거나, 목표만큼 인구가 증가하지 않아 고민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허브를 꿈꾸며 계획된 공간이 불과 4~50km 떨어진 다른 지자체의 유사한 공간과 경쟁해야 합니다. 도시가 지닌 역사성과 강점이 그 도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도시의 ‘테루아’가 오늘날의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기도 하고, 미래에 주목 받는 산업과 멀어질 때 지자체와 계획가는 우리 도시 안에 세계적인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어 침체와 답보의 상황을 돌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 계획은 정부와 공공의 추진으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 투자와 경제의 영역에서 완성됩니다. 또한, 세계화 이후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힘으로 세계 단위의 경제적,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를 만들기는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도시와 주변 지역들이 협력하여 산업을 육성하고 도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세계 도시지역(Global City-Region)’이라 합니다. 한 도시를 계획하는데 주변 도시의 생각과 이해가 점차 필수적으로 되고 있습니다.

공공은 시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시공간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공공의 계획가도 먼 훗날에 사람들이 편리하게 머물고 이동하도록 적합한 도시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도시는 발전할수록 국가와 대륙의 경계를 넘어, 더욱 더 넓은 세계와 연결 됩니다. 이에 따라 계획가가 생각해야 하는 고민의 영역도 방대해지고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글·이미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사스키아 사센(2016). 세계경제와 도시. 푸른길
서형준(2017). 옹호연합모형을 활용한 수도권매립지 사용연장 정책과정에 대한 사례분석. GRI 연구논총, 19(2)
신상준(2017). 정책네트워크와 공공갈등 –수도권매립지에 관한 정책형성과정을 중심으로. 한국정책학회보, 26(3)
정원욱,김숙진(2016). 수도권매립지 입지갈등의 전개: 네트워크 효과로서의 영역 개념을 중심으로. 대한지리학회지, 51(4).




Yaloo Castle Site at Fukuoka 5

얄루 성터 전시 기간 동안에 종종 이뤄진 로컬 예술인들과 만남이 계속 이어졌고 내년 초에 전통 텍스타일 마을로 유명한 히로카와 타운과 항구도시 모지코에서 전시와 레지던시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연재에서는 가까운 미래를 한 번 더 기약하게 된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지난 회에서 언급한 노미짱은 뮤지션 친구가 많다. 전시 준비 기간에 노미짱의 친구들이 참여하는 콘서트를 따라갈 기회가 있었다. 한 층에는 음악 카페가 있고, 다른 층에는 방음 장치가 설치된 작은 합주실이 여러 개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방을 옮겨가며 라이브 음악을 듣는 구조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밴드 Narukorepusinn는 노미짱의 친한 친구이자 이 콘서트를 주관하였다. 내가 듣고 자란 한국식 펑크에 즉흥 연주적 요소가 조금 가미된 친숙한 발칙함이 느껴졌다. 전문적인 음악 지식은 전혀 없지만, 펑크나 즉흥 연주의 에너지에 의존하는 음악을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한 뮤지션에게 묻어 나오는 특유의 정제된 카오스를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기 때문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전시에 온 Narukorepusinn 밴드의 맴버 사카타와 큐레이터 마사에와 함께

Narukorepusinn 멤버들은 궂은 날씨에도 전시에 찾아와 선물로 밴드의 시디를 전했다. 한국의 음악씬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한국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언젠가 한국에서도 꼭 공연하고 싶단다. 곧 한국에도 그들의 음악이 알려질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잠깐 주어진 휴식시간에 옆 방의 팝업샵을 갔다. 제과류와 참여 밴드의 굿즈 셀러들이 있었고 패션디자이너 야마시타 히카루도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하나인 야마시타 히카루는 콘서트나 플리마켓에 가끔 셀러로 참여하는데 플리마켓 공지가 뜨면 전국 각지에서 그의 팬들이 찾아온다고 노미짱이 말했다. 인디밴드들이 거대 자본에 저항하여 존재하듯 이곳 패션 팬들은 아이돌 상품이나 예술 작품을 수집하듯이 작가주의 패션을 소비한다. 일본 사람들의 응용 미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한 번 더 경험할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서 일본 현대 미술 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작다는 비판을 종종 들었는데, 아마 이런 패션 문화도 예술을 대하는 태도나 예술품에 투자에 대한 관점이 아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작은 일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분의 옷은 작가주의 옷 치고 매우 저렴했는데,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헌 옷을 수선하거나 원단 생산지역에 직접 가서 원단을 구하기도 한다. 홍보나 판매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여 다양한 이벤트에 직접 셀러로 참여하면서 중간 비용을 줄인다고 했다. 거칠게 패칭되어 가정에서 만든 느낌이 물씬 나는 그의 옷은 Narukorepusinn 의 음악처럼 장난기가 가득했다. 가장 맘에 드는 원피스를 집어 들고 혹시 얄루캐슬 전시에서 사용한 원단 이미지를 이용해서 옷 수선이 가능한지 여쭤봤더니 흔쾌히 자신의 어시스턴트 미호 히노가 잘 아는 분야라며 연락처를 줬다.

후쿠오카에서 활동하는 패션디자이너 미호 히노와 미팅 중

미호 히노는 나가사키 출신으로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도쿄에서 컬렉션으로 정식 데뷔를 했고, 파코 백화점에 월이라는 멀티샵에서 그녀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었다. 미호에게 듣고 나름 이해한 바를 정리하자면 프렌차이즈 백화점 파코에 속한 월(WALL)은 하이 패션 멀티샵으로 일본 신인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라 한다. 각 지점의 패션머천다이저들은 시즌마다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컬렉션을 샵에 소개한다. 후쿠오카의 월은 후쿠오카의 디자이너 소개에도 더 신경 쓴다고 한다. 머천다이저와 디자이너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시즌마다 다음 컬렉션에 대해 함께 회의도 하는데, 전국 각지 컬렉션 현장이나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직접 얻은 피드백을 전해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미호는 말했다. 갤러리 시스템과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호의 작품은 내가 선뜻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지만, 절대 비싸다 여겨지진 않았다. 그녀의 옷엔 콘셉트부터 텍스타일 디자인, 원단 제작, 제봉 등 모든 과정에 세심한 손재주와 작가정신이 뚜렷하다. 게다가 인건비, 와 재료비, 유통비까지 더하면 이해가 안 가는 가격이 아니었다.

미호 콜렉션 사진

나와 나이가 같은 미호는 생각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얄루 캐슬 이미지의 원단 인쇄 가능 여부에 대해 의논하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패션 학교 동기가 후쿠오카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서 패션 연구소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녀도 그곳에 운영자로서 참여하는 데 그곳의 시설을 이용해보겠냐는 제안을 했다. 마이즈루 공원에 철수 기간을 쪼개서 방문하기로 했다.

히로카와 타운 패션랩 ‘키비루’의 일부 모습

히로카와 타운은 후쿠오카에서 두 시간 거리의 산골 마을로 녹차, 딸기 농사로 유명하며 얼마 전까지는 일본 아주머니의 몸빼바지 원단을 제작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몸빼바지 수요의 급속한 감소와 꾸준한 인구 감소로 몸살을 겪었는데, 몇 년 전부터 도쿄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 그룹이 죽어가는 전통 텍스타일을 살리고자 장인과의 협업을 진행하다가 히로카와 타운의 투자를 받고 패션제작 관련 시설을 갖춘 실험실과 아티스트 레지던시로도 이용될 호스텔을 짓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공식적인 오프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호와 유코

미호와 유코는 기차역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코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아하는 공간 몇 군데를 보여줬다. 그녀의 따뜻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낡고 버려진 큰 공간들이 아티스트들에겐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곳이었다.

80년대에 개별 관개사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용된 대중목욕탕

녹차밭

도착한 실험실과 호스텔은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곳으로 전통과 새로운 감각의 은은한 조화가 훌륭했다. 밤새 미호가 얄루캐슬 전시 이미지 일부를 CNC 자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변환했다. 기계가 새로운 파일을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만 실험을 했다. 히로카와산 딸기를 먹으며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손짓 발 짓 더해가며 서로 좋아하는 패션디자이너와 작가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들었다.

실험 결과물 중 하나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 속에서 함께 이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한 우리는 함께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이후에 간간이 대화를 나누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2019년 3월에는 예술과 패션이 함께하는 패션쇼를 기획하려고 한다.

글·사진 임지연

임지연(얄루)
얄루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다. 미국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비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비디오 아트 계에서 권위 있는 프로그램인 비디오 데이타 뱅크에서 린블루멘탈 장학금을 수상하였으며2016년 뉴욕한인예술재단이 주최하는 비쥬얼 아트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벨기에 리지 비엔날레, 퀘벡 비엔날레 등 전세계 크고 작은 도시에서 다수의 전시 경험이 있다.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해드랜드 아트센터, 퀘백 라반데 비디오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면서 역량을 쌓는 중이다




[큐레이션 콕콕] 2018 버킷리스트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은 ‘외국인이 1년간 한국에서 하고 싶어 하는 일(Bucket list)’을 주제로 ‘2019년 해외 홍보 달력’을 제작했습니다. 외국인들은 ‘K팝 콘서트 가기’, ‘제주도 여행’, ‘템플스테이 체험’, ‘비무장지대(DMZ) 관광’, ‘길거리 음식 맛보기’, ‘한국의 밤 문화 체험’ 등을 해보고 싶은 일로 꼽았네요.

2019년 해외홍보달력
출처: 한국뉴스통신

올해 초 알바천국이 실시한 ‘알바생 버킷리스트’ 조사에서 ‘여행(68.2%)’과 ‘자기계발(59.6%)’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르바이트(45.6%)와, 푸드_먹킷리스트(18.9%)가 그 뒤를 이었고요. 버킷리스트에 포함된 여행유형은 ‘쉼이 있는 휴양지 여행’이 1위였고, 그 외에 ‘나홀로 여행’,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관광지여행’, ‘뛰어난 자연경관을 즐기는 여행’,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 뒤를 이었네요.

자기계발 분야 버킷리스트는 ‘꾸준히 운동하기(56.8%)’, ‘자격증 따기(49.4%)’ ‘어학능력 키우기(41.3%)’ ‘책 많이 읽기(34.9%)’, ‘봉사활동 하기(17.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이 계획한 아르바이트는 카페, 레스토랑, 빵집 등과 같은 ‘식 음료 서비스 아르바이트’가 47.3%로 가장 높았습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계획했던 이들 중 절반은 계획했던 것을 거의 실현하지 못했다고 답했는데 36.2%가 ‘돈이 없어서’라는 이유를 댔네요.

출처: 국제 신문

티웨이항공은 2019년도 달력을 ‘버킷리스트’로 정하고 대표 취항 도시에서 꼭 하고 싶은 소망으로 달력을 채웠는데요 1월은 ‘블라디보스토크 인생 킹크랩 영접하기’, 7월은 ‘다낭의 리조트에서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기’, 10월은 ‘타이중에서 야시장 먹킷 리스트 뿌시기’ 등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항공사는 지난 2016년부터 기내에서 판매한 달력의 수익금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 사는 레베카 다니제러스는 50년간 근무했던 호텔에서 갑자기 해고됐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에게 아들 레지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하죠. 다니제러스는 미혼모로, 혼자 자식들을 양육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고 매일 호텔에서 일한 겁니다. 아들은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찍어 ‘Duty Free’라는 제목으로 단편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75세 다니제러스의 ‘버킷리스트’입니다.

  • 뮤지컬 ‘해밀턴’ 춤, 힙합 춤 배우기
  • 스카이다이빙 하기
  • 버몬트에서 소 젖 짜기
  • 인스타그램 시작하기
  • 디트로이트에서 연 날리기
  • 보스턴 마라톤 코스 걷기
  • 런던 브리지에서 1센트 동전 떨어뜨리기
  • 10년 이상 만나지 못한 손녀와 케이크 굽기
  • 영국에 있는 언니의 무덤 방문하기
  • 보스턴 빅 베이 지역을 그려 명화 완성하기
  • 행선지 모를 ‘즉흥 여행’ 떠나기
  • 글쓰기

출처: 허프포스트

영국의 한 보험회사가 50대 이상 인구 2천 명을 대상으로 50대가 되기 전에 해봐야 하는 것 40가지를 정리했습니다. 마케팅팀장 이안 앳킨슨은 “많은 사람이 50살을 기준으로 삶을 돌아보게 된다.”며 “50대에 진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게 도움을 주고자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 집 사기
  • 아이 낳기
  • 결혼하기
  • 사랑하기
  • 헌혈해보기
  • 100권의 책 읽기
  • 콘서트에 가서 라이브 공연 보기
  • 외국어 배우기
  • 음악 페스티벌 가기
  • 개 키우기
  • 부모님 말만 듣지 않기
  • 밤새 파티하면서 놀기
  • 오로라 보러 가기
  • 혼자 여행 떠나기
  • 유성우 보러 가기
  • 빗속에서 춤추기
  • 한 분야의 전문가 되기
  • 사표 내기
  • 화산 보러 가기
  • 7대륙 다 가보기
  • 헬리콥터 타보기
  • 해변에서 섹스하기
  • 돌고래와 수영하기
  • 누드 해변 가보기
  • 눈밭에 누워 천사 모양 만들어 보기
  • 시위에 참여해보기
  • 사업 해보기
  • 열기구 타보기
  • 코끼리 타보기
  • 옷 벗지 말고 수영장에서 수영해보기
  • 유럽으로 백팩 여행가기
  • 제일 잘할 수 있는 요리 만들기
  • 마라톤 참여해보기
  • 문신하기
  • 오토바이 타보기
  • 소설 써보기
  • 매일 일기 쓰기
  • 최신 기기 없이 한 달간 살아보기
  • 마약 해보기
  • 공항에 가서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사고 여행 떠나보기

출처: CBM press

버킷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기 위한 일상의 실행목록으로 이해됩니다. 2007년,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 상영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죠. 영화는 죽음을 앞둔 두 주인공이 같은 병실에서 만나 자신에게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실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정말 장엄한 광경 보기(Witness something truly majestic)
  • 낯선 사람 도와주기(Help a complete stranger for a common good)
  • 눈물이 날 정도로 실컷 웃어보기(Laugh till I cry)
  • 쉘비 머스탱 운전하기(Drive a Shelby Mustang)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Kiss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
  • 문신하기(Get a tattoo)
  • 스카이다이빙 하기(Skydiving)
  • 영국 스톤헨지 방문하기(Visit Stonehenge)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주일 보내기(Spend a week at Louvre)
  • 이탈리아 로마 둘러보기(See Rome)
  • 이집트 피라미드 둘러보기(See the pyramids)
  •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Hunt the big cat)
  • 잊고 있던 또는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연락하기(Get back in touch)

출처: 구글 이미지

마지막으로 버킷리스트 작성방법을 소개합니다.

  1. 작은 것부터 쓰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적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세요. 
  1. 기간을 정하자
    ‘이때까지는 꼭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달성기한을 정해보세요. 혹은 1년, 5년, 10년 버킷리스트로 구분해서 작성하는 것도 좋습니다. 
  1. 구체적으로 설정하자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수록 실현 가능성이 커집니다. ‘유럽여행’보다는 ‘유럽여행(프랑스-독일-체코-오스트리아-이탈리아, 2달, 나 홀로)’이 낫습니다.

글·이미지 이재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외국인이 한국서 하고픈 ‘버킷리스트’ 달력에 담는다
이데일리, 2018.11.2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올 초 알바생이 가장 많이 계획한 버킷리스트는 여행과 자기계발
국제신문, 2018.11.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티웨이항공, ‘버킷리스트’ 담은 내년 달력 촬영
광남일보, 2018.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75세 할머니가 ‘버킷리스트’ 12개에 도전한 뭉클한 이유
허프포스트, 2017.5.23 (https://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50세가 되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버킷리스트’ 40가지
조선닷컴, 2017.3.2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왜 사나요? 버킷리스트 만들기, 내 인생의 의미 찾기
뉴트리라이트, 2013.4.14 (https://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 
“난 사하라(Sahara)에서 왔어.” 

새파란 젤라바를 입은 그가 민트티를 홀짝이며 말한다. 

‘사하라 마을에서 왔다고? 그곳에 사람이 살아? 사하라가 어디쯤이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하라에 갈 수 있다고, 아니 사하라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 

머릿속에서 그의 말이 내내 맴돈다.

모로코 민트티

여긴 모로코(Morocco) 마라케시(Marrakech)다. 어쩌다 보니,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싼 비행기 표를 우연히 발견한 탓(?)이다. 갑작스럽게 영국에서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단돈 30유로에 유럽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셈이다. 처음으로 이슬람 국가에 왔다는 호기심과 아프리카 대륙에 왔다는 설렘도 잠시, 마라케시에서 3일 밤을 정신없이 보냈다. 오늘 낮 메디나 시장에서 본 모로코 가죽필통 가격은 10디르함(MAD)에서 180디르함 사이를 오갔다. 아마 떠나는 날까지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신발은 3일 만에 먼지와 흙으로 뒤범벅이 됐다. 말과 당나귀, 오토바이와 자전거,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사람이 함께 뒤섞였다. 열 걸음을 채 못 가서 ‘어디에서 왔니? (Where are you from?)’라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차이나? 자포네? 코레?”
“웰컴! 웰컴 투 모로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웰컴 웰컴” 하며 외쳤다. 그나저나 난 웰컴이고 뭐고 모로코에 사하라사막이 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로코에 사하라사막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무턱대고 이곳에 도착한 내 모습이 사실 좀 우습다.

‘그래, 사막에 가는 거야.’

모로코 전통의상인 젤라바를 입고,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새하얀 낙타를 탄 채 사막을 유유히 거니는 상상을 한다.

‘그래, 사하라사막에 가는 거야.’

마라케시 거리

분홍 눈과 아틀라스 신
마라케시에서 사하라사막을 가려면 아틀라스(Atlas)산맥을 넘어야 한다. 아틀라스산맥? 뭔가 익숙한 이름인데…. 아, 하늘을 떠받들어야 하는 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그 아틀라스 신! 그럼 이곳의 아틀라스 신은 아프리카 대륙을 지고 있어야만 하는 벌을 받은 건가? 지도를 살펴보니 아틀라스산맥은 모로코뿐만 아니라 알제리와 튀니지에 걸쳐 우뚝 솟은 거대한 산맥이다. 아프리카를 길게 가로지른다. 세계 테마기행이나 신화 속에서 봤던 아틀라스와 사하라라는 이름이 무척 낯설다. 이유야 어떻든 곧 이곳에 간다니 가슴이 뛰었다. 며칠 후 새벽에 일찍 버스를 타고 드디어 사하라로 출발했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까지는 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

아틀라스산맥

“산맥을 넘을 때 멀미를 할지도 모르니 비닐봉투를 준비하세요.”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게 난다는 이야기와 멀미가 너무 심해서 버스를 멈춰야 했다는 이야기, 기상이 악화되면 버스를 중간에 멈추고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별의별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산맥을 서서히 올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버스는 어느새 높은 고개에 올라섰다. 그러자 장관이 펼쳐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하고 광활한 광경이었다. 난 산맥이라 해서 단순히 거대한 산을 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산맥이라기보다 거대한 대륙처럼 느껴졌다. 아틀라스산맥은 상상한 산맥이 아니었다. 아틀라스산맥을 넘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게 거대한 대륙을 넘고, 지구의 한 부분을 넘는 것이었다.

문득 창밖으로 눈발이 휘날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맞는 눈이라니….
그런데 뭔가 낯설다. 주변이 온통 연한 분홍빛이다. 하얀 눈이 아닌 고운 연분홍색 눈이 온 땅을 뒤덮는다. 아틀라스 신이 짊어진 아프리카 대륙의 기운이 강하디강해 눈이 붉게 물든 것일까? 서울에서는 종종 새하얀 눈이 내린 뒤 회색으로 변해 버린 도로의 눈을 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곱디고운 연분홍색으로 뒤덮인 눈을 보니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것 같다. 난 어디로 가는 걸까? 분홍빛 눈이 쌓인 신화 속 세상을 넘어가는 상상을 하는 사이 버스는 산맥의 한가운데에 잠시 멈췄다. 아틀라스산맥에서 파는 양고기 바비큐를 사 먹었다. 짭조름한 것이 참 맛있다. 분홍빛 눈과 아틀라스, 양고기, 사하라, 모로코, 이슬람 등 낯선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분홍빛 눈이 쌓인 아틀라스산맥

8시간을 넘어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감지 않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피곤했는지 졸음이 밀려왔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버스는 캄캄한 길을 계속 달렸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도 졸음은 쏟아졌다. 분홍빛 눈이 쌓인 아틀라스산맥을 넘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에줄(안녕하세요) 사하라
버스는 밤새 내달려 무사히 사하라의 하실라비드 마을에 도착했다. 사막에도 마을이 있었다. 간밤에는 깜깜해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나갔다. 거대한 모래 산이 눈앞에 서 있다. 저 거대한 산이 사막의 일부라고? 사막은 금이 쩍쩍 갈라진 보잘것없는 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모래 산은 붉은빛을 뽐내며 당당하게 서 있다. 정말 이곳이 사막인가? 빵과 치즈, 토마토, 오렌지 주스, 달걀 등 모로칸식 아침을 먹으며 거대한 모래 산을 보고 또 본다. 사막을 거니는 사람들이 개미만하다. 저 수많은 모래알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다니 정말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나에겐 비장한 첫걸음이지만, 사실 이곳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에겐 동네 산책하듯 걷는 사하라 사막 산책이다.  사하라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특권이다. 사하라 산책.

하실라비드 사하라사막에서 보이는 거대한 모래산

사하라사막 마을

사막을 걷는다. 발가락뿐만이 아니다. 손, 머리, 눈, 코, 입 … 구석구석 모래가 숨어든다. 처음 본 사막은 출렁출렁 붉은 빛이 넘실댄다. 땅의 여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붉은 사막이 숨 쉬고 춤춘다. 사막은 바다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파도처럼 바스러진다. 난생처음 바다를 걷듯 거대한 모래산에 오른다. 모래 속으로 발이 쑥쑥 빠진다. 파도를 걷고, 바다를 걷고, 구름을 걷고, 하늘을 걷는다.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며 모래산에 꼭대기에 오르니 온몸에 지구를 머금는다.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애줄 사하라(Azul Sahara)!’ (애줄은 모로칸 아닌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족(Berber) 인사말이다)

거대한 모래 산에 오르는 나

파도 같은 물결이 새겨진 사하라사막

그 흔한 낙타도 타지 않은 채 하실라비드 사하라사막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그저 매일매일 숙소 앞 사막에 맨발로 올라가 뛰어놀았다. 시시각각 물결치는 모래 언덕을 바라봤다. 척박한 땅일 줄 알았던 사막은 아이러니하게 너무나 풍요로웠다. 오늘은 사막에서 수백만 년 전 물고기를 만났다. 베르베르 아이들이 내민 목걸이 속 생명이다. 수백만 년 전 사하라에 살던 물고기는 이제 화석이 된 채 목걸이 안에서 나를 만났다. 물고기가 지나온 영겁의 시간이 아이들과 나를 감싸고 흘렀다. 그들의 운명은 기나긴 시간을 지나왔다. 수백만 년 후 나는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목걸이 속 물고기만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수백만 년 시간이다. 사하라는 척박하기는커녕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하라 마을의 낙타와 아이들

사막을 걸었다. 매일 걸었다. 여기가 정말 사막인가? 아니면 내가 사막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여기 온 걸까.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얻으러 여기 온 걸까.

나는 사막의 이마지겐
난 사하라 사막에서 돌아온 후 사람들에게 사하라사막, 자립형 레지던스를 다녀왔다고 말하곤 한다. 그곳에 머물며 느낀 것을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레지던스를 간다고, 작업을 하러 간다고, 비장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하라사막은 대자연과 나의 경계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매일 사막을 걸으며 모래알처럼 작아진 나를 발견했다. 사막이 우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를 보며 기나긴 우주를 품은 시간을 상상했다. 

우주 같은 사막

사막에서

그저 우연하게 홀연히 간 사하라사막에서 난 3개월 레지던스에 못지않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내 작업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올해 7월, 세마창고(SeMA)에서 전시한 영상 작업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베르베르인을 만났다.
‘고귀한 사람’, 이마지겐(imazighen)이란 불린 이들은
사막과 함께 태어나고 사막과 함께 죽는다.
이들은 말한다. ‘나는 사막이에요. 내 몸에 사막이 흘러요.’
베르베르인의 핏줄 속을 걷듯 이들을 따라 사막을 걷는다.

사막에서 붉은 바다를 보고 맹렬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의 숲을 보고 지구의 탄생과 소멸을 느낀다.
매일 사막을 걷자 이마지겐처럼 내 몸에도 사막이 흐른다.
나는 사막을 걸은 게 아니었다.
그곳은 지구 또는 우주,
나는 그 어딘가에 있다.

슈크란(고마워요), 사하라

SeMA 전시 전경

영상 작품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중 일부

·사진 이승연

 

이승연(Seung youn LEE)
고대사와 신화, 또는 상상의 극한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에는 물리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드로잉을 기반으로 철과 나무, 패브릭,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영국인 알렉산더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했다. 당시의 신화적·종교적·사회적 관심은 개인작업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국 서머싯 하우스, 국립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역 서울 284, 영은 미술관,
켄 파운데이션, 베를린 ZK/U, 등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처럼 영원히 남을 작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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