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인천에도, 인천시립미술관!

2022년, 인천시립미술관이 개관합니다. 인천 최초의 시립미술관입니다. ‘인천뮤지엄파크(가칭)’는 시립미술관 건립과 기존 시립박물관 확장 이전, 콘텐츠 체험관, 갤러리와 예술영화관 등이 있는 복합문화시설로 조성할 예정입니다.

인천뮤지엄파크 건립에는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하나의 덩어리에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산업시설이 모여 있는 사업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과 콘텐츠 빌리지 등을 합쳐 5만809㎡의 부지가 설정돼 있고, 총사업비는 2천853억원 내외입니다.

아직 미술관 소장품이나 박물관 유물구입 등의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술관의 성격과 박물관의 역사성에 대한 준비가 생략된 뮤지엄파크 구상안을 염려합니다. 시민들은 어떤 정신과 소장품으로 채워진 문화공간을 맞이하게 될까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운명은 작품과 작가의 위대성에 달려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仁川市立美術館)은 5년 후에야 만나볼 수 있지만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은 존재합니다. 한자어 ‘人千始湁美述觀’은 ‘천 명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미술을 보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시각 예술이 공공 자본, 제도 등과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천(仁川)을 너머 또 다른 로컬리티 및 정치성과 만나길 바라는 지향성이 담겨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은 보통의 미술관과 다른 상상의 미술관입니다. 건물, 관장, MI(미션)이 없는 대신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시민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미술 영역을 제공합니다. 지난 11월 22일에 오픈했으며, inma.or.kr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관에 이어 송도국제도시, 신포동 임시공간, 서울 문래동을 잇는 미술 전시회도 열렸습니다. <두 번째 도시, 세 번째 공동체>가 그것인데요, 원도심과 신도시를 잇고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자는 취지를 품고 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프로젝트는 독립큐레이터이자 임시공간 대표인 채은영(44) 작가가 기획했습니다. 인천시립미술관 건립 이전까지 일시적이지만 가능한 모든 시도들을 한다고 하네요. 그는 개항기부터 인천 미술과 연관된 자료, 문헌, 사진 등을 모아 인천지역 미술사를 정리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습니다. 내년에 ‘인천 오픈 유니버시티(Incheon Open University)’를 개교해 지역 문화 매개자들에게 매체기획, 방법 등도 교육할 계획입니다. 문화매개자들의 역량이 강화돼야 지역의 문화가 강해지기 때문이죠.

지난 11월 9일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예정지는 남구 용현·학익 도시개발사업구역 내 OCI(옛 동양화학제철) 인천공장입니다. 1968년에 건립했고, 1950년대 근대건축물인 극동방송 옛 사옥과 사택이 남아있습니다. 갯벌 위에 지은 OCI 인천공장은 우리나라 경제개발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장소로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인천시는 ‘인천뮤지엄파크’ 사업현장에 전문가와 대학생, 일반시민을 초대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에 앞선 의견수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신축 시립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 넓이 1만4천㎡ 규모로 세울 예정입니다. 뮤지엄파크 내에 함께 들어설 시립박물관도 규모는 비슷합니다. 1946년 개관한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은 1990년 중구 송학동에서 옥련동으로 이전한 지 약 30년 만에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다른 지역의 시립미술관은 언제 문을 열었고, 어떤 특징을 내세우며 운영하고 있을까요.

서울시립미술관(SeMA, Seoul Museum of Art)은 1988년 서울고등학교 옛 건물에서 문을 열었고 2002년 서울 중구 서소문 (구)대법원 자리로 이전, 개관했습니다. SeMA는 서울시 전 지역의 미술관화라는 방향에 맞춰 다수의 분관 및 산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서소문 대법원 건물을 본관으로, 2004년 관악구 남현동 사당역 근처에 남서울 분관, 2013년에 노원구 중계동에 북서울 분관을 설립했죠.

광주시립미술관은 1992년 개관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자취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7년 본관 신축을 시작으로 2008년 상록전시관, 2009년 중국북경창작센터, 2012년 갤러리 GMA(서울 사간동), 2016년 광주시립사진전시관, G&J광주전남갤러리, 청년예술인지원센터를 개관함으로써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며 시민들에게 문화가 있는 행복한 삶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문화회관, 시립박물관, 시민회관 등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입니다. 1994년 12월 공사를 착공해 1998년 3월 20일 개관했습니다.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을 모토로 지역 미술 활성화 및 시민의 감성문화 배양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현대미술 및 부산과 영남권 미술을 중점 수용하는 종합문화공간을 지향합니다. 부산 미술계에 혁신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내 집 같은 분위기에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강조하는 대전시립미술관은 1998년 4월 개관했습니다.
‘여유의 미학’을 표방하는 대구시립미술관은 2011년 5월에 문을 열었고요.
강릉시립미술관은 2006년 강릉미술관으로 출발해 2013년 4월 강원도 유일의 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했습니다.
정읍시립미술관은 전라북도 최초의 시립미술관입니다. 시립도서관을 리모델링해 2015년 10월 오픈했죠.
청주는 2004년 청원군립대청호미술관으로 시작해, 2014년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으로 명칭 변경, 2016년 청주시 사직동에 청주시립미술관을 신설해 분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2020년 개관 예정입니다.

 

* 위 글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인천시립미술관 부지 용현·학익구역으로 결정
     인천in. 2016.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월요논단]뮤지엄 파크와 보르게세 미술관
   경인일보 2017.11.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채은영 큐레이터
    온통인천. 2017.5.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3개 공간서 전시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 2017.11.2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인천 뮤지엄파크 조성 ‘의견 청취’
    경인일보 2017.1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혼(잣)말의 유혹

채널A 예능 프로그램 <거인의 어깨>는 인문학적 테마를 중심으로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 강연을 펼칩니다. 지난 10월에 방영한 ‘혼말의 시대, 너와 나의 대화법’에서 조승연 작가는 혼잣말과 혼말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남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 혼잣말,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는 기대를 갖고 SNS 등에 올리는 말이 혼말이랍니다. 즉, 혼잣말은 자기 자신에게만 하는 말, 혼말은 불특정한 대상에게 하는 말이라네요. ‘혼말’은 사전에 없고 사실 혼잣말이 곧 혼말이죠.

혼자 카메라 앞에 노출된 배우의 혼잣말이 ‘새로운 캐릭터 창조’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기사 제목이 ‘관찰예능 新캐릭터 혼잣말 배우 박신양’이네요. 그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방 바꾸기 체험에서 중후한 목소리로 끊임없는 혼잣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모습을 누군가는 ‘진지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허당한 매력’으로 표현합니다.

혼밥, 혼술, 혼영에 이어 혼(잣)말이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 됐습니다.

개념미술가로 알려진 안규철 씨는 지난봄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물을 변주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이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작품 제목이자 전시 타이틀인 ‘당신만을 위한 말’은 진회색 펠트를 씌운 방음 스펀지 덩어리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이런 메모를 적어놓았습니다. ‘세상의 말들이 사라지는 소실점이고, 우리의 비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진실과 거짓 너머의 영원한 침묵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아무도 알 필요 없는, 오직 당신의 한 마디 말을 위해 비어 있는 독백의 공간이다.’ 작품에 몸과 마음을 묻고 마음껏 ‘혼말’을 하라고 유혹하네요.


다리가 배를 젓는 노로 변형된 ‘노/의자’(왼쪽)와 펠트 천으로 덮인 스펀지 작품 ‘당신만을 위한 말’. 의자는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가구이지만 다리 대신 달린 노에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현대인처럼. ‘당신만을 위한 말’에 입을 대고 어떤 얘길 해도 다 듣고 묻어줄 것 같다. 

시인 채상우는 자신이 ‘약간 심하게’ 혼잣말 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길을 가다가 신호등에게 “안녕” 인사하기도 하고, 금연 팻말을 향해 “싫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난 뒤 아파트 화단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구절초에게 “너희 정말 하얗구나.”라고 말을 걸었는데 놀랍게도 꽃들이 “그래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눙칩니다. 가끔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그래도 좋다. 나는 사실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니까”라고 자신의 습관을 뽐냅니다. 당장 거기 있는 사람은 혼자뿐이지만 자신은 혼잣말 한 게 아니라 ‘대화’를 했다는 거겠죠. 채상우 시인이 소개한 함성호의 ‘혼잣말, 그 다음’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시죠.

혼잣말 그 다음―이 도시는
거대한 레코드판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쥐똥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말하듯 노래하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혼잣말로 들린 것도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잣말이 사라진 자리를 단풍나무와 사철나무가
실망으로 우거져 내리어 메운 것도 그 다음이었다

새벽의 골목에서는 혼잣말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포위해 오며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혼잣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 같기도 했다

이 도시에 누가 혼잣말을 기록하고 다녔는지
혼잣말은 지하철로에도, 계단에도, 복도에도
유리문의 경첩에서도 투명하게 울려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홀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키는
내가 미친 것은
혼잣말,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은 종종 고독의 증명으로 나타납니다. 나쁜 습벽이고, 고쳐야 할 병증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혼잣말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에 몰입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충고하기도 하죠. 바빠지면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멈출 거라고요. 하지만 혼잣말에도 강약과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1 혼잣말이 자기 목소리인지 확인하기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심각한 정신적 문제일 수 있다.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 혼잣말 내용 확인하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쭉 나열하는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계획하는가?
최근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설명하는가?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는가?

자기 대화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분명히 표현하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힘든 결정(대학을 고를 때, 선물을 고를 때)을 내려야 할 때 신중히 사물과 사건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3 혼잣말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확인하기
긍정적인 자기 대화는 의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반복하는 것은 기분도 좋게 만들어줄 뿐더러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를 증진시켜준다. 이런 식의 자기대화(혼잣말)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혼잣말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난 너무 바보 같지?” 또는 “왜 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지?”처럼 비판적이고 자신을 꾸짖는 식의 혼잣말을 반복한다면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4 혼잣말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 확인하기
누구나 약간 정상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그것까지 인간의 정상적인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습관이 아주 가끔씩만 나타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부정적인 사고의 언어를 내뱉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혼잣말을 하는 빈도에 불안 또는 죄책감이 드는가?
혼잣말이 분노, 슬픔, 초조함을 안겨주는가?
공공장소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워서 외부 활동을 피하는가?
위의 질문 중 어느 하나에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상담사 또는 정신 보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5 다른 사람들의 반응 살피기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특정 반응을 보였다면, 당신의 혼잣말이 불편함을 야기했거나 주변 사람이 당신의 사회적 기능 및 정신 건강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걸어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가?
사람들이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종종 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내가 혼잣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가?
학교 선생님이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가?

자주 쓰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쇼핑하러 갔는데 필요한 물건이 눈에 띄지 않을 때, 물건의 이름을 중얼거리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의 게리 루피안 교수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다니엘 스윙글리 교수는 성인들에게 서로 다른 물건이 찍힌 20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중 한 가지를 찾는 실험을 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땅콩버터 단지를 찾거나 냉장고에서 버터를 찾는 식이었죠.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눈으로만 상품을 찾았고, 두 번째에는 물건 이름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는데 후자의 경우에 물건을 더 쉽게 찾았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혼잣말하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연구에서 착안해 이런 실험을 했는데 혼잣말과 같은 ‘자기-지향적 말(self-directed speech)’은 원하는 물건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1. [오후 한 詩]혼잣말, 그 다음/함성호
     아시아경제 2017.10.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혼술-혼밥에 지친 이들아 ‘혼말’을 나눠봐
   동아일보 2017.3.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혼잣말 멈추는 법
    위키하우 wikiHow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물건 찾을 때는 혼잣말하며 찾아라
    코메디닷컴뉴스 2012.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58회’ 혼자녀의 혼잣말
    네이버포스트, 서툰, 밥숟갈 하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관찰예능 新캐릭터 ‘혼잣말 배우’ 박신양
    세계일보 2017.10.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오, 나의 굿즈(goods)!

굿즈(goods)는 상품입니다. 그냥 상품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특별한’ 제품이죠. 아이돌·영화·책․스포츠․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작품, 브랜드의 정체성이 ‘굿즈’를 통해 나타납니다. 셔츠, 가방, 배지, 책갈피, 담요, 머그컵, 인형, 식품, 가전제품 등 갖가지 형태로 제작되는 굿즈가 취향과 관심사 등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소비문화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별 헤는 밤 텀블러’. 윤동주 시 별 헤는 밤의 구절을 각각 단어로 세분화해 별자리 모양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굿즈는 팬덤을 기반으로 한 ‘덕후 문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표기 ‘오덕후’에서 온 ‘덕후’는 ‘광팬’ 또는 ‘마니아’라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광팬을 가리켰던 ‘덕후’가 시간이 지나면서 개성 있고 가치 있는 소비를 즐기는 젊은 세대라는 의미로 확장됐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을 수집하면서 소비 트렌드를 이끌어왔는데 그 예가 바로 ‘굿즈’입니다.

시작은 아이돌 ‘팬덤(fandom)’입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혹은 무리)들은 가요계의 음원 시장과 공연 매출뿐만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한 모든 상품을 사들입니다. 아이돌 굿즈 시장은 연간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음원 수익이 턱없이 부족한 가요계에 굿즈가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매력 있는 굿즈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쁜 디자인과 높은 퀄리티 때문에 ‘굿즈를 사니, 책이 왔네.’라는 주객전도된 상황도 발생합니다. 독자들의(?) 성원에 알라딘은 홈페이지에 굿즈 항목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일정 금액 이상 도서를 구매하거나 이벤트 도서를 사면 받을 수 있었던 굿즈를 원하는 순간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게 된 거죠.

“굿즈로 주는 유리잔이 너무 예뻐서 제 책을 산 적이 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두고도 자신의 책을 직접 구매한 이유도 굿즈 때문이었습니다.

출판계의 굿즈 열풍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티연구소장은 책값보다 더 비싼 사은품을 끼워 팔아야했던 여성잡지 시장의 포화와 몰락을 지금의 굿즈 팬덤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굿즈의 팬덤은 알라딘의 팬덤이지, 책의 팬덤이 아님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중략) 출판은 오로지 콘텐츠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지금 출판시장의 굿즈는 한때 잡지의 사은품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합니다.

정치권에서도 굿즈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표지에 등장한 아시아판 타임지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분당 16.6권씩 팔리며 일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문재인 타임지’에 이어 ‘문재인 넥타이’, ‘문재인 등산복’ 등 이른바 ‘문재인 굿즈’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문재인 굿즈는 ‘문템(문재인 대통령 아이템)’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야당 원내대표와 회동할 때 착용한 일명 ‘강치넥타이’는 ‘이응크레이션스’가 112주년 독도 주권 선포의 날을 기념해 만들었고,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 때 입었던 오렌지색 등산복도 찾는 이가 많아 블랙야크는 단종 됐던 점퍼를 재출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후보의 굿즈를 활용하는 일이 흔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등은 모자와 티셔츠 등을 제작해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거 기간 내 굿즈 제작을 법적으로 금지합니다. 지금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문재인 굿즈’는 모두 문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물건들이 굿즈 역할을 한 거죠.

예전에는 팬덤 문화가 인기 가수나 운동선수 등에 국한됐다면 요즘은 범위가 한층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여자대학에서는 학교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굿즈로 제작하는 ‘굿즈 열풍’이 한창입니다. 덕성여대는 교화인 무궁화를 마스코트화한 ‘듀롱이’를 제작했습니다. 학교 측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듈립’의 학생들이 공개했다고 하네요. 동덕여대는 목화를 마스코트화한 ‘솜솜이’ 굿즈가 인기입니다. 솜솜이도 커뮤니티 ‘동감’에서 만들었네요.

이화여대는 배꽃과 곰돌이를 활용한 굿즈를 판매합니다. 배지부터 스노우볼, 찻잔세트까지 그 수가 많아 ‘다이소를 방불케 한다’는 말도 있네요. 숙명여대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학교 슬로건에 맞춰 ‘눈송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늘 깨어있는 학생들을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자태로 상징화했다고 합니다.

2015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작가미술장터 ‘굿-즈’가 열렸습니다. 미술이 여전히 ‘고급 예술’에 머물러있다는 반성과 한계에서 출발한 행사는 ‘아트페어’가 아닌 ‘굿-즈’를 표방해 생산물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자신들 역시 서브컬처 굿즈의 소비자이기도 한 젊은 작가들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작업을 상품화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굿즈’를 끌어 왔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굿즈의 방식’은 스스로 서로의 소비자가 되고, 예술문화 생산자들과 예술과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여러 계층 사람들을 구매층으로 상정해 그들이 ‘굿즈를 소비하듯 현대미술을 소비하길’ 기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굿-즈’는 페어, 전시, 프로젝트, 이벤트 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실천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열린 ‘캐비넷 아트 페어’ 역시 ‘현대미술의 굿즈’ 양식을 기대어 안았습니다. 회화와 드로잉, 사진, 조각, 공예 등의 ‘작가 작품’ 외에 제작 과정 전후의 참고자료, 도구, 재료, 오브제 및 프로덕션 등을 선보이면서 기존의 화이트큐브형 아트페어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캐비넷 아트 페어’가 추구한 공간은 조용하고 따듯한 빈티지 샵 모델이었습니다. 작가는 완성품(혹은 그와 동일시되는 작품) 뒤에 가려져 있던 과정품(작업의 파생물)을 관객(소비자)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소통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또 다른 ‘굿즈’를 창발해낸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 이 시대에 굿즈 열풍이 부는 이유가 뭘까요.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가치에 대한 투자’와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참’을 이야기합니다. “잊힐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에 그 기억에 대한 투자로 ‘굿즈’를 사는 것”이라고요. 또 굿즈는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이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동감의 표시이자 참여의 중요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1. 유통가 휩쓰는 ‘문재인 굿즈’ 문블렌딩(커피)·이니티콘(이모티콘)·강치 넥타이 판매 불티
    매일경제 2017.6.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소비자 ‘덕심’ 자극하는 굿즈의 세계
    한경비즈니스 2017.6.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나는 굿즈 때문에 책 산다?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 2017년 09월호, 한기호
4. 18일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서 ‘캐비넷 아트 페어’ 개막
     인천일보 2017.10.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굿-즈] 지속가능한 구조를 위한 작은 움직임, 그리고…
    <월간 미술> 2015년 11월호, 신혜영
6. 여자대학은 ‘굿즈시대’…인형 등 관련 아이템 입소문
     조선일보, 2017.8.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여대들의 독특한 굿즈문화
     다음 카페 ‘쭉빵카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욜로(YOLO)’ 권하는 사회

인생은 한 번뿐이다, 지금을 즐겨라, 아득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인내하지 말라,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라!

2017년 대한민국은 ‘욜로(YOLO) 권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욜로는 2004년 미국의 리얼리티 쇼 출연자인 애덤 메시가 처음 썼고, 2011년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가 가사에 욜로를 사용하며 널리 퍼졌습니다. ‘좌우명(The Motto)’이란 곡에서 그는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nigga YOLO’라고 노래했죠.

국내에서는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을 통해서 알려졌습니다. 배우 류준열이 캠핑카로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하는 여성에게 놀라움을 표하자 그녀는 ‘YOLO’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 영상이 전파를 타고 번지면서 욜로는 ‘여행’과 더불어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향유하는 욕망의 아이콘으로 소비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인내의 요구에 갑갑함을 느꼈던 청년들은 현재를 즐기라는 욜로의 부추김(?)을 희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줄지 않는 청년 실업률, 경기 침체 등에서 탈피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던 거죠. 안락함에서 만족을 찾는 덴마크의 ‘휘게’, 느긋한 삶을 누리는 프랑스의 ‘오캄 라이프’처럼 욜로도 ‘일상과는 다른’ 달콤한 행복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취업전문사이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2-30대 남녀의 84.1%가 욜로족, 혹은 욜로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즐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네요.

TV도 이런 흐름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MBC ‘무한도전’은 욜로 라이프 특집을 방송했고, 올리브 TV의 ‘어느 날 갑자기 100만원’은 출연진이 백만 원으로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낭만적인 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윤식당’, 한가로운 시골에서 세 끼 밥을 해먹는 반복되는 삶을 그린 ‘삼시세끼’ 등에도 욜로 라이프가 반영됐네요.

영미권에서는 욜로가 ‘중2병스럽게’ 쓰이는 속어라고 합니다. 미숙한 이들이 무모한 짓을 저지르기 전에 핑계처럼 대는 말, 자신의 치기 어린 행동을 꾸미는 포장 언어라는 인식이 있답니다. 배우이자 뮤지션인 잭 블랙은 SNS에 “YOLO는 라틴어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카르페 디엠’ 대신 쓰는 말이 분명하다”고 올리기도 했네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현재의 행복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며, 욜로족과 욜로 라이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은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쉬운, ‘선동적인 멘트’라는 겁니다. ‘지르자!’, ‘하고 싶은 건 하자!’는 구호를 현재의 자기만족에 대입하기 시작하면 먹고 싶은 건 먹고, 가고 싶은 데는 가고, 갖고 싶은 건 다 갖자는 식으로 얼마든지 가지를 뻗을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의 욜로 특집은 멤버들이 방송국에서 준 진행비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스쿠터를 사고, 한 끼에 20만원 하는 고급 호텔요리를 먹고, 드론을 띄우고, 부모님께 꽃배달을 합니다. (남의 돈으로) 마음껏 지르는 거죠. 예능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의 소비는 크게 무리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꽃보다 청춘’의 좌충우돌 여행은 제작진의 진행과 염려 안에서 안전하고, ‘윤식당’ 출연자들은 사업 실패에 대한 리스크 없이 일하면서(촬영하면서) 돈을 법니다. 시청자들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탕진하는지, 낯선 외국에서 어떻게 식당을 꾸려나가는지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행위에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나의 욜로’는 없고 ‘당신의 욜로’는 저기 있네요.

매년 발행되는 소비 트렌드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 2017>은 혼밥, 혼술, 1인 경제, 미니멀리즘, 욜로 라이프 등을 현재 지향적 사고가 반영된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지만 20대들은 욜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이상’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에서 홧김에 돈을 쓰는 ‘시발비용(비속어 시발과 비용이 결합)’, 재물과 재산을 허투루 써서 몽땅 없앤다는 뜻의 탕진과 재미가 결합된 합성어 ‘탕진잼’ 같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죠.

최근 욜로적 소비보다 절약하는 습관을 일컫는 짠돌이 문화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김생민은 의뢰자가 보낸 한 달 치의 영수증을 분석한 뒤 재무 설계를 해줍니다. 충동적인 지출에는 ‘스튜핏(Stupid·멍청이)’, 아껴 쓴 사례에는 ‘그뤠잇(Great·훌륭해)’이라고 외치죠. 그 영어 단어는 금세 유행어가 됐고, ‘생민하다’, ‘생민스럽다’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 ‘저축은 공기와 같은 것’, ‘커피 마시지 말고 면수(국수 삶은 물)를 마셔라’, ‘샴푸 값이 많이 드는 긴 머리는 잘라라’, ‘껌과 커피는 누가 사줄 때 먹는 것’ 등은 모두 ‘생민하다’는 신조어에 담긴 뜻이라네요.

경제관념을 정립해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2017년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커피 몇 잔 덜 마시면 OOO를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은행 정기예금 이자가 25% 안팎이었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욜로 신드롬은 다 이 광고 속 노랫말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그때 사람들은 그 노래를 이렇게 패러디해서 불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망하셨지, 인생을 즐기다…”

“정말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구호가 필요하지 않다.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이야기만큼이나 마땅하고도 중요한 사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산다는 거다. 걱정 없이 지금만 즐기는 듯 보이거나 앞날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듯 보이거나, 결국 하나뿐인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다.” -황선우, ‘욜로의 50가지 그림자’ 중에서

 

*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욜로 라이프, 현재에 충실하라!’
   이미선, 에이비로드, 2017년 2월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YOLO(욜로)’, 영미권 속어인데 한국서는…
   매일경제, 2017.7.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20代 해외여행 11년새 고작 0.7%P ↑… ‘젊은 욜로族’은 허상
    문화일보, 2017.10.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욜로에 반기 든 짠돌이 청년들
    아시아경제, 2017.10.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욜로의 50가지 그림자
    두산매거진, 2017.9.1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욜로’의 의미를 되짚어봐야 할 때
    한국금융신문, 2017.9.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욜로 대신 짠돌이 갈아탄 2030 ‘김생민 신드롬’
    스카이데일리, 2017.10.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숫자3의 비밀

동화 속 주인공은 왜 첫째나 둘째가 아닌 셋째일까요? 왜 그림책에는 삼 형제나 세 자매가 많을까요?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대개 첫째와 둘째는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로, 셋째는 바보, 몽상가, 잠꾸러기, 게으름뱅이로 등장합니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첫째와 둘째는 지나치게 평범해지지만 셋째는 정이 많고, 동물과의 교감 능력이 뛰어나고, 베풀기도 잘하는 매력덩어리로 변신하죠. 영웅은 자신의 영웅다움을 세 번에 걸쳐 증명하고, 주인공은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며,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법 도구가 필요합니다.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문이 열리고, 피 세 방울이 있어야 자식을 살릴 수 있고….

신호등은 왜 빨강, 노랑, 초록 세 개일까요?
메달은 왜 금, 은, 동만 있을까요?
우리는 승부를 결정할 때 가위, 바위, 보를 합니다. 가위바위보는 왜 삼세판을 하는 걸까요?
한국인의 이름은 대부분 세 음절이고요,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를 먹습니다.
크기는 대, 중, 소로, 등급은 상, 중, 하로 나누죠.
계급은 크게 세 층위인 귀족, 평민, 천민으로 분류했고, 더위를 물리치는 초복, 중복, 말복도 더하거나 빼기 없이 딱 3으로 명명됩니다.
물체의 상태를 나타내는 고체, 액체, 기체도 3의 법칙을 따르고 있죠.

우주는 하늘, 땅, 물, 세 부분으로 이해되고, 인간은 육체, 영혼, 정신으로 나뉩니다. 인생의 주요단계는 유년 시절, 성인 시절, 노년 시절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삶은 탄생, 현존, 죽음으로 정리되죠. 생성, 존재, 소멸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기독교적인 우주론은 세상을 하늘, 땅, 지옥으로 표현하고, 믿음, 소망, 사랑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미덕으로 간주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부처님의 제자(僧寶)를 가장 귀한 세 가지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숫자 3’은 생명 탄생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자란 뜻의 1과 여자란 뜻의 2가 결혼해 3이란 아이를 낳죠. 아버지, 어머니, 아이는 가족을 구성하는 원천적인 세 요소로 인류의 지속적인 삶을 보장합니다. 3은 생명과 결실의 표현이며, 그래서 안정된 숫자고, 자신만의 고유한 역동성을 갖고 있죠. 이 밖에 369게임, 삼진아웃, 삼신할머니, 스리쿠션, 삼족오(전설 속의 새. 황금빛의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숫자 3’을 접할 수 있습니다.

원시 부족들은 수 인식의 ‘제로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수의 크기를 표현하는 방법은 ‘하나, 둘, 그리고…… 많다’ 뿐이었죠. 하나와 둘 이상을 넘어서면 이내 혼란에 빠지고 ‘여럿’, ‘무더기’, ‘다수’라는 식의 단어를 썼습니다. 그들에게 수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어서 냄새나 색깔, 소음 등 어떤 사물을 지각하듯이 받아들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숫자 3은 복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죠.

3은 사물의 의미를 설명하는 숫자입니다. 노자는 “도는 하나를 창조했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그리고 셋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말했습니다. 1은 점, 2는 선이지만 3은 면을 만들어 공간을 획득합니다. 삼각형은 어느 꼭짓점을 향해도 그 정점으로 말미암아 운동성이 느껴지죠. 왈츠의 3박자, 삼각관계 등 ‘3’만큼 우리 삶 곳곳에 깔린 수학적 정서는 많지 않습니다.

“3은 최초의 홀수로 완전한 숫자이다. 숫자 3 속에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숫자 3이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반드시 바보 한 명이 끼어 있다’, ‘뜰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세 번째 사람은 놀림감이 된다’는 속담이 그것입니다. 두 사람이 모이면 파트너십이 형성되지만 한 사람이 더 끼면 방해가 될 뿐이라는 의미겠죠. 이와 유사하게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제3자는 할 말이 없다’는 관용구도 있네요.

숫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가격, 전화번호, 시간, 버스 번호, 거리, 속도, 무게, 집주소, 나이 등등 우리는 날마다 숫자와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의미망이 다양한 언어와 달리 숫자는 시간을 확인할 때나 지폐를 셀 때, 휴대전화 번호 등을 확인할 때만 필요한 평범한 도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숫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7을 행운의 숫자라고 하는 걸까요? 왜 4층, 혹은 13번째 집에서 사는 걸 꺼려할까요? 숫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예술이나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미신이나 소문이 우리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다가 비성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숫자는 디테일하고 세심한 언어로 여러 층위를 품고 있는 문자(소리)언어와는 기능이 다르지만 때때로 자신만의 고유한 무게와 생명력으로 보이지 않는 마력을 품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나 어떤 날을 쓸모 있게 정리하고 싶을 때 숫자를 사용합니다.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숫자 ‘100’을 생각보세요. 100일 휴가, 100일째 만남, 100세 장수마을, 100대 국정과제, 100일 기자회견 등등. 이날은 어제나 그제와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등장한, 단순히 달력에서 숫자가 바뀐 결과일 뿐일까요? ‘100’은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완성의 숫자입니다. 불완전함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완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고, 완전수인 100을 맞이하여 새로운 의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 거죠.

숫자는 대상을 섬세하게 세분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숫자에는 마법의 작용이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죠. 세상의 관계와 사건을 이해하는 데 숫자는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중요성을 부여하고,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숫자들과 더불어 말이죠.

9월이 지나면 2017년도 세 달밖에 남지 않겠네요.
아직 세 달이나 남았습니다.

 

*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1. 우리가 몰랐던 숫자3의 친숙함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숫자3을 말하다(경희대학교 소리방송국)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EBS 교양-세상의 모든 법칙 ‘숫자 3의 비밀은?’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EBS 지식프라임-‘3’의 비밀: 주인공은 왜 셋째일까?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밀물 썰물] 숫자 3(부산일보 2011.2.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숫자의 감춰진 비밀』, 오토 베츠 지음, 푸른영토, 2009.
7. 『숫자의 탄생』, 조르주 이프라 지음, 부키, 2011.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新’ 문화공간&동네방네 아지트

근대 유흥공간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했던 다방과 카페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다방은 커피를 파는 곳이었고, 카페는 여급의 시중을 받으면서 술을 마시는 술집이었죠. 요즘은 대개 나이 든 분들이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다방, 카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음악을 듣거나 작업을 하고, 또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 여겨집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더러 변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것에 환호하기도 하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죠.

‘다방’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다사(茶事)와 주과(酒果) 등의 나랏일을 주관하는 국가 관사가 다방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외국 사신을 접대했던 곳을 다방이라고 했죠. 하지만 우리가 아는 본격적인 의미의 다방은 커피의 보급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다방의 역사는 커피의 역사와 출발을 같이 합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에 돌아와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짓고 서양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죠. 개항 후, 최초로 커피를 팔았던 곳은 인천의 대불호텔이었습니다. 경인선 개통 전까지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이 인천에서 하루씩 묵는 일이 잦아 숙박업이 성행했는데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짓고, 아펜젤러 목사도 묵은 것으로 알려진 대불호텔은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서양식 호텔이었습니다.

서울에는 러시아인이 지은 ‘손탁호텔’, 일본인 주인의 ‘청목당’이 있었는데 1914년 ‘조선호텔’이 생기기 전까지 최고급 식당이자 찻집, 장안의 명물이었다고 합니다. 소공동에 있는 조선호텔은 호텔식 다방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호텔 1층이나 지하에 자리 잡은 커피숍의 기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창업한 다방은 1927년 봄 영화감독 이경손이 묘령의 여인과 함께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입니다. 하지만 장사가 안 돼 금방 문을 닫았죠. 근대 문물을 경험한 해외 유학파 출신과 이른바 문화예술인들은 지식을 나누고 토론도 하는 유럽식 살롱 문화를 다방을 통해 실현하고 싶어했습니다. 일본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영화배우를 하던 김인규가 종로에 ‘멕시코’를 열었고, 역시 일본에서 유학한 이순석은 1930년대 소공동에서 ‘낙랑파라’를 운영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수필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이상도 1933년에 기생 금홍과 ‘제비’라는 다방을 개업했죠. 돈이 없어서 차를 구비해 놓지 못할 정도였는데 어느 날 금봉마저 봇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립니다. 이상과 금홍, 다방 ‘제비’의 사연은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상이 이후 인사동에 카페 ‘쯔루(鶴)’를 내고 종로 광교 다리 근처에 다방 ‘식스나인(69)’ 개업을 시도하고, 명동에 ‘무기(麥)’를 냈다가 실패해 문을 닫았다는 건 잘 몰랐을 거예요.

다방은 끽다점, 찻집, 티룸으로 불렸고, 외래 문물의 표상이었습니다. ‘멕시코’, ‘에리제’ ‘프라타나(플라타너스)’, ‘비너스’ 같은 이름에서 보듯, 다방은 이국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당시의 다방은 ‘이국적인 정취’와 더불어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모던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었죠.

193851일자 삼천리엑 실린 기사에 새로 생기는 나전구도 이 새 봄을 기다려 남창을 열것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의 다방은 ‘차만 파는 곳’이 아닌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북촌에 그런 다방이 많았는데,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은 귀족적이고 폐쇄적이고 고답적이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의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대신 찻값은 비쌌습니다. ‘차를 마시는 다방’에는 상인, 관리, 회사원 등이 출입했고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에는 주로 예술가, 거리의 철학자, 실업자, 유한마담, 여급, 대학생들이 드나들었죠.

영화배우 김연실이 운영했던 ‘낙랑’은 예술인들의 안식처이자 창작의 산실이었는데 문인들은 이곳에 모여 시상을 닦거나 소설을 구상하다가 돌아갔습니다. 영화인들은 외국 영화나 외국 배우를 비평했고, 화가의 개인전이나 시집 출판기념회도 열렸죠. ‘낙랑’은 차를 파는 곳 이상을 지향했고 전시회나 연주회를 열며 문화와 예술의 산실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했습니다.

제비다방에 갑바머리박태원과 이상이 마주앉아 담소하고 있다.

20세기에는 (여급을 두고 술을 마시는) 카페보다 다방이 ‘조금 더 건전한 곳’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의 카페는 그때의 다방만큼이나 건전합니다(?). 책방 같은 카페, 도서관 같은 카페, 갤러리 카페, 음악 카페 등의 명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죠. 그 카페들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누군가의 아지트가 돼가고 있습니다.

아지트는 비합법적 활동이나 혁명 운동의 선동 지령 본부(활동가나 혁명가의 은신처), 혹은 사적 모임의 집회 장소라는 두 가지를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비밀기지, 지하본부, 선동본부 등의 의미가 더 익숙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어두운 기색이 탈색되고 알 수 없는 무게감도 덜어졌네요.

아지트는 곧 비밀장소인데,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없는 나만의 장소라기보다 마음에 드는 장소, 계속 찾고 싶은 장소, 다시 가고 싶은 장소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책방과 도서관, 카페나 쉼터 같은 문화공간들이 긍정적인 의미의 비밀스럽고 좋은 ‘아지트’를 표방하며 변신하는 거겠죠.

인천문화재단이 진행한 ‘동네방네 아지트’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동네 카페와 서점, 갤러리, 목공소 등을 아지트처럼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 재단은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인천지역 4개 권역에 20곳의 동네 아지트를 선정하고 유명 시인과 뮤지션을 초대해 공연을 펼쳤습니다.

도시가 갖고 있는 높은 문화성, 다양성과 익명성은 현대의 젊은이에게 둘도 없는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타인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운 ‘익명성’이 그대로 타인 배제, 인간소외로 이어지면 안 되겠죠. 혼자 작업을 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의 카페도 분명 마음을 끌지만 그곳에서 때때로 타인과 눈빛을 마주치게 되면 그곳은 가정과 직장의 공간을 초월한 신비의 ‘제3의 공간’이 됩니다.

제3의 공간은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erg)가 자신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언급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가정은 제1의 공간이고, 직장이나 일터는 제2의 공간이었습니다. 제3의 공간은 이에 속하지 않는 별도의 곳이죠. 여가나 취미를 위한 곳일 수도 있고, 자기발전이나 배움, 친목을 위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초 경성에서 다방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21세기인 지금은 카페와 광장, 공원과 단골 술집, 책방과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서열과 격식이 없는 곳, 좋은 음악과 책이 있는 곳, 맛있는 차와 음식이 있는 곳, 그 모든 걸 혼자만 갖거나 아는 것이 아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제3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자유의 공간. 제3의 공간이야말로 도시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생활환경에서 가장 자유롭게 주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누구의 아랫사람, 누구의 남편, 누구의 엄마라는 삶의 무게를 덜고, 오로지 ‘나’, ‘자기’의 행복을 발견합니다. 익명성이 도시화의 특징이라지만 face-to-face가 인간의 본능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서울시는 가리봉의 역사문화 가치를 재생하고자 근로자 숙소였던 벌집을 매입,
앵커시설 조성공사 착수 전까지 전시회 등 주민 공간으로 임시 사용 중이다.”

 

 

*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1. 행복을 만드는 제3의 공간, 아지트
    브런치 블로그(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인천문화재단 ‘동네방네 아지트 위크, 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카페·서점·갤러리·목공소… 마을곳곳 동시다발 문화난장
    경인일보. 2017.8.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동네방네 아지트 ‘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 성황
    인천in 2017.8.28.(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인천광역시 발전과 제 3공간’, 신무호, 『현대사회와 행정』, 2002.
5.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장유정, 살림, 2008.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생활문화 시대, 함께하는 생활문화 축제

지난달 청와대가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와 향후 추진 계획이 담겼습니다. 그 중에는 생활문화 정책을 통한 문화적 권리 확보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을 강화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정부는 ‘생활문화 시대’를 위해 저소득층의 통합문화이용권 연차별 확대, 국민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분야별 문화도시 지정, 읍면동 단위 중심의 문화마을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정기획위는 지난해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78.3%에서 2022년에는 85%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고, 2016년 2595개인 문화기반시설을 2022년까지 3080개로 늘려 지역문화 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지역문화진흥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생활문화란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뜻합니다.

각 지역의 문화시설을 활용해 개인이 하고자 하는 활동, 또는 개인과 개인이 만나 공동체를 꾸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인과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생활 속 문화를 사회로 확산시키는 것을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생활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예술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지만 생활문화는 나 혹은 우리가 주체가 되어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입니다.

지난 2014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생활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전국생활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았네요.

‘2017 전국생활문화축제’는 ‘두근두근, 내 안의 예술!’을 주제로 오는 9월 6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열립니다. 이번 축제에서는 17개 권역별 생활문화단체와 122개 생활문화동호회가 협력해 동호회 전시 및 체험, 생활문화영상제, 청년 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

지역에서도 매해 개성 있는 생활문화 축제가 소개됩니다.

부천시는 지난 2015년부터 ‘예술이 일상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생활문화 동호인 축제 ‘다락(多樂)’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열리는 축제에는 시민 1,400여 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뮤지컬 ‘흐르는 강물처럼’을 선보일 예정인데요, 8월 26일 폐막공연에 참여하는 생활문화동호회는 모두 124팀 1,400여 명으로 지난해 콜라보레이션에 참가했던 400여 명보다 무려 1천여 명이 증가했습니다. 뮤지컬에 참여하는 배우가 많은 만큼 송내 무지개 광장에 수변무대를 활용한 가로 70M, 세로 30M의 초대형 무대를 세운다고 하네요.

2017 대구생활문화제 행사는 “생활을 녹이다! 문화를 녹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꿈꾸는 사람들의 문화놀이터”라는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올해 남양주 슬로라이프 국제대회는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즐기는 슬로라이프 생활문화 축제로 기획됐네요.

지역의 이름을 걸고 해마다 생활문화 축제가 열리지만 별다른 특색 없이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생활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취지의 공연 및 전시, 장터, 놀이, 체험 등이 여느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에 머물거나 주민 주도형으로 치러지는 문화 중심의 행사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주말을 이용해 아이와 함께 인근 대형마트에 가려다 뭔가 소란스러워서 찾아왔다가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든가 “축제의 자리를 빛내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음악만 크게 틀어놔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시민들의 지적이 있었네요.

인천에서도 제1회 생활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생활로 마주하고 문화로 통하는 우리는 그런 ‘사이:多’”라는 문장이 페스티벌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네요. 9월 2일(토)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아트플랫폼 일대에서 공연과 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전시는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이어집니다.

인천 생활문화 축제는 단순히 공연만 하고 헤어지는 행사가 아닙니다. 참여자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축제 기획단과 함께 장소, 무대, 순서, 운영 등을 직접 결정하고 준비했습니다. 일상을 문화로 공감하는 사이, 행복을 문화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사이, 그냥 좋아서, 마냥 좋아서, 좋아서 만나는 ‘사이:多’. 많은 ‘사이’들이 모여서 만든 페스티벌은 인천문화원연합회와 생활문화동아리연합 놀이터가 주관하고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합니다.

생활문화진흥원은 지난해 ‘2016 생활문화 스토리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생활문화, 내가 활동했던 생활문화동호회, 우리 동네 생활문화센터 에피소드” 등 일상의 소소한 ‘생활문화 이야기’를 모았는데요, 아래 글은 우수작에서 발췌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경험한 생활문화는 치유였다. 문화의 모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체험한 생활문화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치유에 가까웠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또 사람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모두 어우러져 함께했던 그 두 달여의 기간은 무척이나 값진 것이었다. 수강료도 없고, 공간 대여료도 없고, 준비물도 없었지만, 그 공간은 우리에게 약국이었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약사였다. 아플 때 자유롭게 가서 부담 없이 약을 받아오는 그런 곳 말이다.”
김성준, <우리 안의 힘> 중에서(작품 감상하기▶)

“지금까지 나는 그동안 ‘하안문화의 집’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며 그곳을 통해 나름대로 여러 성과물을 축적해 두었다. 가령 기형도 시인의 시를 통해 만든 연극에서 주인공 기형도 역을 맡아 무대에도 올라가보고, 시낭송, 시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 앞에 서보는 귀한 경험도 꾸준히 하고 있다. 또한 업싸이클, 스토리가 있는 사진, 수제 책 만들기 등 현재는 캘리를 통한 결과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윤외숙,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중에서(작품 감상하기▶)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 혹은 블로그를 참고했습니다.
1. 전국축제열전: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우리동네 생활문화 축제
    생활문화진흥원블로그 2017.7.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문화예술 관람률 85%… ‘생활문화 시대’ 열린다
    이데일리 2017.7.1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생활문화진흥원 홈페이지(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안방 잔치로 끝난 ‘대한민국 생활문화축제’
    전북도민일보 2016.8.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대통령의 여름 독서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에 어떤 책을 읽을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독서와 ‘가을’만큼이나 독서와 ‘여름휴가’는 낯설지 않은 조합입니다.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처음 공개한 건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독서광이자 연설가였던 그는 망명생활과 투옥기간 중에도 광범위한 독서를 했고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존 나이스빗 등 미래학자의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1999년 휴가 때는 『지식 자본주의 혁명』과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맹자』를, 2001년에는 『미래와의 대화』, 『비전 2010 한국경제』,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등을 탐독했네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달리는 차 안에서도 책을 읽고, 30여 분 만에 책 한권을 떼는 속독파였습니다. 휴가 독서 목록에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넣었고 당시 100만부 이상 팔리기도 했죠. 『넛지』 같은 경영서와 『쉽게 읽는 백범일지』, 『로마인 이야기』 등의 교양서적도 읽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특히 책 읽기를 강조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재임 기간 공식석상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 『대한민국 개조론』 같은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2003년 여름휴가 때는 IBM의 기업혁신 과정을 다룬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진보학자가 지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물리서적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등을 독파하기도 했습니다.

한 칼럼니스트는 노 대통령을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고, 독서의 내용을 현실 정치에 활용하려 했다. 장차관 워크숍이나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 같은 공식석상에서도 적잖은 책을 추천했다”며 ‘자유분방한 다독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한국출판인회의는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문구를 내건 독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세계는 인간중심, 문화중심의 사회로 바뀌고 있다. 이런 사회가 되려면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쳐나야 한다. 책이야말로 국민 창의력과 상상력의 근본 원천”이라고 강조하며 유력 후보들이 책 읽는 모습을 SNS 등에 올렸죠.

하지만 지난달 공개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독서’는 없었습니다. 67번에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가 있고 68번에 ‘창작 환경 개선과 복지강화로 예술인의 창작권 보장’이 있지만 독서와 도서관, 서점 관련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며 ‘독서신문’이 아쉬움을 토로했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타 출판사 책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름휴가에 읽는(읽을, 읽은) 책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으로(?)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책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인데요,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읽었다며 “마음으로 공감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은 해마다 대통령의 여름휴가 도서를 공개합니다. 2015년 ‘오바마의 책’ 6권은 제임스 설터가 34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자 유작 『올댓이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프랑스 소녀와 독일 소년의 엇갈린 삶을 그린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환경과 인종 문제를 다룬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과 타너하시 코츠의 『세상과 나 사이』, 그리고 JP 모건, 록펠러 등의 일대기로 유명한 전기작가 론 처너가 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일대기 『워싱턴: 한 사람의 일생』였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독서가였다고 하는데 책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의외로’ 다독가였고, 백악관에서 2년간 186권을 완독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대통령의 모습은 언제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 최근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국민들이 책을 멀리하자 정부 차원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독서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독서 캠페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책 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은 자연스럽게 손에 책을 들게 될 것이다.”([김욱동 칼럼] 중에서)

‘대통령의 책’은 아니지만 여름 휴가지에서 읽으면 좋은 책이 각종 언론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일찌감치 올 휴가철에 읽을 책 5권의 목록을 내놨는데 그 중에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3인방’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도 모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네요. 차례로 『기사단장 죽이기』, 『잠』, 『위험한 비너스』입니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하계 추천도서에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 ICT사업 관련 도서가 많습니다. 『1등의 전략』(히라이 다카시/다산3.0), 『보이지 않는 영향력』(조나 버거/문학동네), 『퍼펙트 체인지』(송재용 외/자의누리),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필립 코틀러/더퀘스트), 『제4의 물결이 온다』(최윤식 외/지식노마드), 『플랫폼 레볼루션』(마셜 밴 엘스타인 외/부키),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미래』(KT경제경영연구소/한스미디어) 등이 있네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와 서평가들이 추천한 ‘2017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권’은 여기(국립중앙도서관 페이지 바로가기▶)를 참고하세요. 독서는 역시 여름입니다.

 

* 본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1. [대한민국은 휴가 중②] 책과 함께 힐링 즐긴 역대 대통령들
    2017. 7. 10. 뉴스포스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故 노무현 대통령이 여름휴가 중 읽은 책들.. 휴가법
    2011. 8. 3. 사람세상 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한국출판인회의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캠페인
    2017. 4. 21. 경인일보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칼럼] 100대 국정과제, ‘독서’는 없었다
    2017. 7. 20. 독서신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007’ 탐독한 케네디… 부시는 ‘링컨 전기’ 섭렵
    2015.8.14. 경향신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朴 대통령 “결국 北은 자멸할 수밖에 없을 것”
    2016.10.5. 프레시안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김욱동칼럼] 책 읽는 대통령
    2017. 7. 16. 세계일보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8. 여름 휴가철 책 고르기
    2017. 7. 14. 문화일보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9. 여름휴가, 책과 함께… KT경제경영연구소, 추천도서 발표
    2017. 7. 11. 디지털 데일리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여름의 (감)염병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입니다. 무더위를 식히러 떠나야죠. ‘거기’가 ‘여기’처럼 무덥더라도 일단 떠나고 봐야죠. 즐거운 휴가를 망치지 않으려면 주의사항에 감염병 체크를 빠트려서는 안 됩니다. 음식도, 풀숲의 진드기도, 모기도 조심해야 해요.

살모넬라증과 병원성 대장균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파됩니다. 어패류를 충분히 조리하지 않고 먹으면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릴 수 있죠. 풀숲이나 야외에서 진드기에 물리면 쯔쯔가무시증 또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모기에 쏘이면 지카바이러스, 말라리아, 일본뇌염 등의 진단을 받을 수 있네요.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감염병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히 쯔쯔가무시증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의 발생건수는 지난해 대비 280%(760건)나 늘어났네요.

국외유입 감염병 사례는 2014년 400명에서 2015년 491명으로 23% 증가했고, 지난해부터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국가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현재 국내에 유입된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는 21명으로, 동남아 여행자가 16명(76%), 중남미 여행자가 5명(24%)입니다. 지카바이러스는 모기 외에도 성접촉, 수혈, 모자간 수직감염, 실험실 등을 통해서도 감염된다고 하네요.

감염병과 전염병은 같은 말일까요?

세균, 스피로헤타, 바이러스, 진균, 기생충과 같은 병원체에 감염돼 발병하는 감염병이 다수에게 전파되는 걸 전염병(傳染病)이라고 합니다. 전염병은 ‘염병’이라고도 불리네요.

빨래판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득득 문지르면 시끄러운 소리 듣기 싫어 역신이 물러간다는 염병 치료법이 있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폐옹과 정종, 적취 등으로 표기했는데 폐옹은 폐렴 또는 폐결핵, 정종은 풍사(風邪)로 피부에서 독기가 발생해 가렵고 청황색의 고름이 나오는 걸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홍역과 콜레라, 수두, 장티푸스 등이 다수 발병했는데 콜레라는 1819년에 중국에 들어와 1820년에 중국 대륙을 휩쓸고 1821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뒤, 1822년에는 일본에 파급됐습니다. 아시아가 동시대에 공통된 질병을 앓은 거죠.

1885년 광혜원이 문을 열면서 우리나라는 서양의학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915년 2월에 ‘전염병예방령’을 발포하고 그해 8월 세칙을 시행했네요. 20세기 초반까지 극성을 부리던 천연두, 발진티푸스, 재귀열, 성홍열, 트라코마, 말라리아도 거의 사라지고, 인플루엔자, 전염성 감기, 살모넬라식중독 등도 거의 볼 수 없는,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비전염병 창궐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아, 한국전쟁 이후 잠깐 혼란기를 겪긴 했어요.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행하던 무속 의례다.

불과 얼마 전인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첫 환자 확진 후 38명이 사망하고 1만 6천여 명이 격리됐었죠.

메르스 최초 감염자는 중동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5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68세 남성이었죠. 이 환자는 바레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카타르를 거쳐 돌아왔습니다. 이후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 두 차례 병원을 방문했으나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고, 세 번째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3일간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는 메르스에 대한 사전 정보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이 해외 여러 나라를 돌았다는 걸 밝히지 않았고, 미진한 대응은 병원 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진단이 늦어졌고 이후에 벌어진 일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들으셨을 겁니다.

모 기업에서 하는 사회공헌 활동 중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젝트’라는 게 있습니다. 발병 후 백신을 개발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감염병을 감지하고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A라는 사람이 여러 나라를 돌고 입국했을 경우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직전 방문 국가만 확인 가능합니다. 하지만 통신사는 고객의 로밍서비스 자료로 모든 방문국을 체크할 수 있죠. KT는 로밍이나 위치 정보로 메르스 사태 진화에 기여한 경험을 토대로 첨단 방역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와 MOU를 맺고, 고객이 바이러스 위험지역에 갔다는 걸 질병관리본부에 알려주면 본부에서 문자메시지 등으로 예방법 등을 전달하는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가 반영됐습니다. 공동 선언문은 보건 위기 대응을 위한 보호조치와 보건 시스템 강화를 위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과 국제협력을 강조했죠. 구체적인 방안으로 “인류의 거대 이동이 주요 보건 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인지하며, 이 주제에 관해 국가와 국제기구가 협력을 강화하도록 독려한다”고 적시했네요.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으로 인한 손실은 한 해 약 69조 원이라고 합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질환이에요. 동물이 사람에게 옮기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쉽죠.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염병 중 49%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AI는 닭과 칠면조, 철새 등 조류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 감염되는 병이에요.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조류가 사육 중인 닭이나 오리와 접촉하거나 배설된 분변을 통해 전파되고 그게 사람에게 옮겨오는 거죠.

한국인이 AI에 감염된 사례는 없지만, 질병관리본부는 AI를 면밀한 주의가 요구되는 전염병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고열, 기침 등 독감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폐렴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특효약이 없어 치사율이 50%라고 하네요. AI 유행 시기에는 조류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소화기 질환이 아니므로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상관없고요.

지자체들은 여름철 감염병 예방관리를 위한 질병정보 모니터망 지정, 하절기 비상방역 근무, 하천변/공중화장실/침수 우려/집단수용/쓰레기/가축사육/공원 등의 방역과 소독, 소외계층 대상별 맞춤 방역, 주거지역 정화조 친환경 유충구제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교육청은 학생감염병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모의훈련을 실시하네요.

일상에서는 손을 자주 씻어야겠죠. 마시는 것, 먹는 것 조심하고요.

 

* 본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1. 휴가철 주의해야할 감염병은 무엇이 있을까?
  2017.6.28. 쿠키뉴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빅데이터로 감염병 확산 막는다…세계적 관심
  2017.7.10. 채널A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韓 첨단 ICT, 전 세계 감염병 확산방지 기여한다
  2017.7.9. 아시아경제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AI, 그것이 알고싶다
  2017. 1. 1. 쿠켄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시민과 함께하는 감염병 예방관리
  2017. 6.19. 더데일리뉴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큐레이션 콕콕] 독립출판과 서점의 시대

“SNS에 끼적이는 인스턴트 이미지와 텍스트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담긴 진짜 1인 미디어를 꿈꾸며 냄비받침출판사 전격 오픈!”

독립출판은 상업적인 출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와 작품을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2-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죠. KBS2가 그 물결을 예능으로 가져왔네요. ‘냄비받침’입니다. 이경규, 안재욱, 김희철, 트와이스, 이용대가 등장해 낙선 정치인을 인터뷰하겠다, ‘건배사’ 모음집을 만들겠다, 희귀하고 재미있는 (신상)물품 후기 등을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던 예능의 시대가 가고 ‘예능도 지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별난 재치나 특별한 감동 포인트를 전달하지 못하면 좀처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듭니다. ‘진짜 스토리’를 들려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냄비받침’은 참신함보다 고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을 인터뷰 하다가 걸그룹의 시끌벅적한 모습을 비추고, 술자리를 빌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가 싶더니 매니저에게 아이돌의 생활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백화점식’ 구성이라는 비판도 있네요.


제목과 아이디어가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과 같거나 유사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은 2010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총 5호가 발간됐습니다. 매 호마다 주제를 정해 문학, 시각, 사진 등의 창작자들 작품을 실었고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모 씨는 페이스북에 “같은 이름, 비슷한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에 활용한다는 이 탐탁지 않은 유사함에 대하여 제작진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석연치 않은 답변만 전해 들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을 알지 못하며, 우연히 아이디어가 겹친 것이다.”

독립잡지 프로젝트 진행자들이 홍보로 내세운 슬로건은 “등단하지 않아도 좋다. 많이 읽지 않아도 좋다. 가난한 자취생의 라면을 받치는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였습니다. TV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년이나 야심차게 독립출판 관련 예능을 준비했다고 매체에 소개하던데,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 잡지를 모르다니(독립출판물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우리는 4년에 걸쳐 잡지를 출간했다. 매체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대화 도중 사전 리서치로 언급한 두 곳의 독립출판 서점 중 한 곳은 현재 『냄비받침』이 유일하게 입고되어 있는 서점이다.”

이모 씨는 유명하지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디 문화는 그냥 소재를 가져다 써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이 방송계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그 사실을 명시하고 합당한 존중을 해주는 것이 시대의 상식 아니냐고요.

독립출판이 방송계에 소환된 것과 조금은 결이 다를 수 있지만 독립서점(동네서점, 지역서점, 대안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 바 ‘서점의 시대’입니다.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입니다. 사물(책)이 아닌 인물(작가들)을 전면 배치했네요. 오른쪽 위에 적힌 ‘변신’이라는 단어가 본래 사이즈보다 크게 보입니다.

행사장 안은 내실 있게 짜인 축제의 장이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코너는 서점의 시대였다. 특색 있는 독립 서점들이 각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집, 고양이 관련 서적, 추리소설, 디자인, 여행, 카메라, 독립출판물 등등, 독립 서점은 그 공간을 꾸민 사람의 개성과 특색을 찾아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하지만 독립 서점은 특색 있는 책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살립니다. 2010년 이후 전국에 그림책 서점, 추리소설 서점, 음악 서점, 고양이 관련 서점, 시집 전문 서점, 술 먹는 서점, 여행 서점 등 다양한 서점이 탄생했습니다. 이들 작은 책방은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갖고 독서를 즐기도록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기존 도서전은 헐값에 팔고 헐값에 쓸어 담는 행사라는 냉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그나마도 불가능해졌죠.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달라졌다”는 평이 쏟아졌고 관객 수도 지난해의 2배로 늘었습니다. 기획자들은 ‘몇 부를 팔까’가 아닌 ‘어떻게 재미를 선보일까’를 고민한 결과라고 자평합니다.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제가 그 책 쓴 사람입니다”라며 소설가 이기호, 김탁환 등이 나타납니다. 미술관처럼 그림이 액자에 걸려 전시돼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 줌파 라히리의 ‘책 표지 원본’입니다. 음악 서점 ‘라이너 노트’는 LP 턴테이블을 들고 와서 음악을 틀기도 했고요. 유료입장권(5000원)은 책을 살 수 있는 쿠폰으로 활용됐습니다.

주최 측은 특색 있는 서점 20곳을 선정하기 위해 1차로 서점별 개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2차 기준은 각 지역에서 주민과 얼마나 연대를 구축하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였다. 3차 기준은 얼마나 새로운가였다.”

종이책의 판매는 점점 줄고 있지만 우리는 디지털 기기로 늘 무언가를 읽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시대, 재미의 시대, 개성의 시대.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책을 놀이와 의미의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책이 활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 아이콘으로 변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문 내용 일부와 발췌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 유승민과 트와이스… <냄비받침>, 너무 생뚱맞잖아요
  오마이스타 2017.6.2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TV공감] ‘냄비받침’, 좋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고민
  티브이데일리. 2017. 6.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 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삶과 문화] 서점의 시대, 개성의 시대.
  한국일보 2017.6.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0만 관객 ‘깜짝 흥행’… 비결은 “할인보다 재미”
  조선일보 2017.6.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서점의 시대’… 전국의 개성있는 서점이 모인다
  세계일보 2017.6.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