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의 민주주의, 옛 시민회관 쉼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안역 옛 시민회관 사거리 앞에는 ‘옛 시민회관 쉼터’가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곳은 한때 인천시민들의 문화공간이었던 인천시민회관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신 인천 토박이라면, 시민회관에서 종종 상영하던 심형래, 김청기 감독의 영화를 보신 기억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민회관은 1994년 개관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그 기능을 넘겨주었고, 2001년 건축물 노후로 철거되어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었지요. 이곳에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이름의 기념비가 몇 개 있습니다. 이것들은 공통으로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986년 5월 3일에 벌어졌던 ‘5.3 민주항쟁’입니다.

5.3 민주항쟁은 1986년 3월부터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청주에 이어 개최된 당시 야당인 신한민주당의 직선제 개헌 추진을 위한 개헌 현판식을 계기로,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요구가 폭발한 시위를 말합니다. 이전까지의 다른 지역에서 열린 개헌 현판식 집회는 최대 3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그러나 인천 5.3 민주항쟁이 이전 집회와 다른 것은 민주항쟁이 발생하기 직전에 일어난 4월 30일 여야 대타협에 대한 반발로, 정당 행사의 차원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의 요구가 직접 드러난 ‘중심이 없는’ 집회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시민회관에서 12시에 개최 예정이었던 신민당의 개헌 현판식은 최대 10만 명으로 추산된 시민들과 경찰들의 대치에 가로막혀서 열리지 못했고, 집회의 중심에는 학생운동을 진행한 대학생, 노동계, 종교계 등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오후 5시 반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기까지, 짧게나마 시민회관 사거리를 중심으로 발생한 시위현장의 가장자리에서는 경찰과 경계를 놓고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반면, 안으로는 군사정권의 질서를 무너트린 해방구였습니다.

인천 5.3 민주항쟁 정신 계승비(좌)와 86년 5.3 민주항쟁 당시 모습(우)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도시의 한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저항의 주된 방법이었습니다. 1832년 6월 프랑스 파리봉기 배경으로 다룬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신 분들이라면 온갖 가구들로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2010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을 강타한 ‘아랍의 봄(Arab Spring)’,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름 넘도록 시민들로 메웠던 ‘2011 이집트 혁명’도 그 예입니다. 우리나라 또한 많은 노동운동가가 공장에서, 첨탑에서, 크레인 위를 점거해 왔고, 6월 항쟁에서는 시민들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곳곳을 점령했습니다. 그것을 국가가 제한할 수 없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도시의 한 공간을 점령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의사표현을 하는 거대한 장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를 잠깐 돌려서,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Guattari)는 하나의 질서 속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전쟁’이라고 묘사하였습니다. 철학자 이진경의 해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새로운 삶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가,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통합하는 것을 기능으로 하는 국가와 충돌하는 사태”를 이들은 전쟁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들루즈와 가타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이 만든 현재의 질서를 ‘공간에 홈을 팝니다.’라고 합니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맨 땅에 그어놓은 홈은 경계가 되고, 때로는 그곳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던 땅 위의 사람과 사물에게 홈으로 표시한 질서는 주어진 제약입니다. 이를테면 인천 송도 커넬워크 옆이나 서울 세종대로를 예로 들수 있습니다. 반면, 앞에서 이야기한 ‘전쟁’을 만드는 존재들(들루즈와 가타리는 이들을 ‘전쟁기계’라고 부릅니다)은 이 홈을 따르지 않고 다시 공간을 ‘매끄럽게’ 만듭니다. 권력은 전쟁기계를 제압해서 기존의 홈을 유지하든 포섭하여 새로운 홈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권력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때, ‘점거’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이고 강력한 투쟁이자 대화의 수단이 됩니다. 비록 작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질서에 저항하는 공간을 용인하게 되면, 전체의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면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자더라도 당장 수업을 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만, 그 학생을 깨우지 않는다면 곧 모든 학생이 자버리고 말겠죠. 행군할 때 한 군인이 발을 맞추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봐준다면 부대의 제식은 곧 무의미해지고 말 것입니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권력은 지속해서 작은 점령과 이탈을 찾아내어 다시 질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서 속으로 짓눌린 많은 사례만큼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든 사례들을 보아왔습니다. 1871년 파리시민, 노동자들의 봉기로 구성한 ‘파리 코뮌’ 정부의 설립과 해체,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전자라면 그로 인해 촉발된 1917년 ‘러시아 혁명’과 ‘6월 민주항쟁’은 후자일 것입니다. 권력의 질서가 사람들의 생각을 외면할 때, 점거는 권력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시 공간 안에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점거의 방법을 택해 왔고 지금도 택하고 있습니다.

OWS(Occupy Wall Street: 월스트리를 점령하라) 는 1%의 월스트리트에 대항하기 위해 99%의 모두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좌) 일자리, 교육, 의료보험 등 모든 미국 사회의 문제제기와 토론이 이루어졌다.(우)

지금까지의 많은 점거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선택이었기 때문에 폭발적이고 단기적이었습니다. 많은 점거는 빠르게 소멸하였거나 혹은 빠르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점거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나의 예는 2011년 가을, 뉴욕의 경우입니다.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Occupy Wall Street, OWS)은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을 둘러싸며 시작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월스트리트 부근의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였습니다. OWS는 점거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바리케이드를 쌓고, 밖을 향해서 버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이는 열린 점거를 진행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금융자본의 욕심으로 인해 처한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리버티 스퀘어(주코티 공원)’를 운영하기 위한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합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은 점거가 순간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리버티 스퀘어 안에서 음식을 기부받아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노래를 부르며 회의와 이야기를 합니다. 밤에는 침낭과 텐트 안에서 잠을 잡니다. 도시에서 각자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서 점거했던 것이죠.

2016년의 서울 또한 변화한 점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많은 시민단체가 집회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대를 설치하고 플래카드나 전단지를 만듭니다. 그러나 집회 선동자의 뜻에 따라 거리행진을 하고 점거의 가장자리에서 권력과 싸우는 등 과거의 점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각자 자유로운 발언을 하며 공감하는 시간을 만듭니다. 노동조합, 대학 학생회가 아닌 ‘장수풍뎅이 연구소’, ‘끝나고 치맥’과 같은 유머 넘치는 깃발의 등장은 점거한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투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들이 ‘전쟁기계’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인천의 5.3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약 30년이 되었지만, 그 날을 한 번쯤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당시의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점거의 모습이 2018년의 모습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약자는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점거는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해서 이루어지며 또 사라집니다. 오늘날의 도시 공간 속의 점거를 되돌아보고 민주화를 위해 애쓴 사람들의 노력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기 위해, 우리 도시에서 32년 전의 점거를 다시 기억해 봅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고병권(2012).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그린비
데이비드 하비(2014). 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이진경(2002), 노마디즘 1,2. 휴머니스트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2001), 천 개의 고원. 새물결
“그 날, 1986년 5월 3일”, OBS, 2017년 7월 1일 방송
이상철. 촛불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퀀스. 뉴스앤조이, 2017.9.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빈 시간에 가득한 사건들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국제교류사업인 <중국십방아트센터>교류사업에 에 참여한 작가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어느덧 중경에 온 지 한 달 반이나 지났다니 시간이 참 잘 간다. 타지에 있으면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사소한 발견에 의미를 두어 곱씹어서 생각한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장소와 경험이 떠올라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 같다. 사실 이곳에서 체감하는 하루의 속도는 한국에서 보낸 하루보다 훨씬 더 느린데도 말이다. 현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예전부터 ‘젊어서는 쓰촨성에 살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느리고 게으르기 때문에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중경도 예전에는 쓰촨성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춥고 더운 동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은 빠르고 급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날씨에 사는 서부 사람들은 말도 느리고 태평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게을러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느긋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중경 사람들은 바짝 열심히 일하고 잘 쉬는 것 같다. 나도 중경의 후덥지근한 날씨와 잦은 폭우 속에서 느리지만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기 레지던시의 아쉬운 점은 미술 재료와 도구들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게 좋을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에서는 더 그렇고 나처럼 여러 매체를 다루게 된다면 고민이 많아질 것이다. 장비를 비롯한 작업 환경조성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기엔 시간이 아깝다. 그렇다고 불편함을 감수해서 작업하기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 꼭 필요해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촬영 카메라 받침대, 페인팅 테이블, 선반 2개, 그림 걸이 패널은 유효기간이 3개월이기 때문에 오직 시간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제작했다. 스튜디오 주변에서 쓰다가 남은 목재들을 주워다가 만들었고 약간의 부실함과 마감처리는 너그럽게 눈감아 주었다.

위의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서 드릴, 망치, 못, 피스는 직접 구매했지만, 그 밖의 장비들은 DAC의 목공실에서 빌려 사용했다. 나무를 자르는 작업 역시 톱밥이 많이 날리기 때문에 목공실에서 해결했다. 이번에 목공실을 사용하면서 알게 된 점은 작가레지던시 이외의 시설들이 특이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목공실, 음악작업실, 사진 스튜디오, 서예교실, 원단염색실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 있는데 그곳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책임자가 상주한다. 이러한 시설은 공용공간이 아닌 책임자의 개인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은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협업과 작업을 의뢰할 수도 있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이 방식은 꽤 영리한 세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문 시설들은 아무나 함부로 사용하면 위험할뿐더러 장비가 고장 나기도 쉽다. 다양한 시설을 보유해도 관리가 안 되면 득보다 실이 많고, 일정 시간 방치되면 수습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다. DAC는 전문 예술가이자 시설 책임자의 개인사업 활동을 후원하면서 그들의 시설이 지속해서 활성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임자들은 장기간 무료로 작업실을 사용하며 기관을 통한 다양한 교류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레지던시 작가들도 꼭 필요하다면 매일 출퇴근하는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내가 허락을 받고 목공실 기구를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모두 DAC와 마찬가지로 지역 예술과 관계가 있고 문화 연구와 개발이라는 공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Wenchuan Liang의 개인전

동료 레지던시 작가의 개인전 오프닝이 있었다. 도자를 굽는 작가인데 몇 점의 회화 작품을 포함하여 벽에 거는 조소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판매촉진을 위해 DAC 레지던시 전시공간이 아닌 디자인 가구 전문점에서 도자기 전시를 진행했다. ADC (Art and Design Center)에 위치한 꽤 큰 규모의 가구 매장이었다. 솔직히, 전시 관람을 위해 매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아쉬움이 컸다. 아무래도 크고 멋진 가구들이 많다 보니 작품이 그저 소품처럼 보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웬첸의 작업이 천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 년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90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니 참 부지런하다. 작품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진열된 또 다른 작품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구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아쉬움은 차츰 사라지고 오히려 큰 가구들이 도자 작업을 위한 조연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부터 메인홀 벽까지 걸려있는 조소 작업은 작가의 예술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쇼케이스 역할을 했다. 그 앞에 멈춘 사람들은 작품에 감탄하며 그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흙으로 구운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곱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작품은 전부 어린아이의 옷 모양을 하고 있었다. 레이스 한 올까지 정교하게 재연한 작품은 마치 깨끗이 빨아 놓은 보들보들한 아기 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물질적으로 돌에 더 가깝다. 작가가 현재 겪고 있는 가족사와 자신의 어린 딸과의 관계를 반영한 작품인 것 같다. 아름답고 애잔하면서 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Tagman 퍼포먼스 작업

중경 거리의 사람들을 그리는 것은 내가 DAC 레지던시에서 펼치는 작업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때문에 나는 외출 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점점 사라지는 거리의 노동자 방방, 밖에 나와서 카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가게 안에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거리의 고양이와 개들, 오토바이와 자동차, 해가 질 무렵 광장에 나와서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까지 이 도시를 느끼게 해주는 모든 것을 작은 그림으로 그린다. 어차피 외부인의 시점에서는 도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려고 노력했고, 그 그림을 다시 거리에 나온 시민들과 나누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300개의 그림을 인쇄해서 약 2000개의 태그를 만들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정보화되는 현시대를 표현함과 동시에 예술의 소비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업이다. 한국에서 1년 가까이 계획했던 작업인데 어쩌다 보니 중경에서 첫 시작을 했다. 중국은 한국과 다른 형식의 SNS와 정보 공유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특정 부분 수정이 필요했지만, 퍼포먼스 작업을 다른 환경에 맞추어 현지화하는 것 또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레지던시 매니저 Jing 도 기대에 찬 목소리로 주말에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 나가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도 잠시, DAC의 홍보를 담당하는 Shao Lihua와 Hu Ke가 미팅을 제안했다. 그들은 나의 퍼포먼스 작업에 위험 요소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퍼포먼스 장소로 염두에 두던 쥐팡베(Jiefangbei) 거리는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끄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는 쥐팡베 거리뿐만 아니라, 어느 명소에서나 해당된다. 쥐팡베는 거대한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중경 도심 중심부에 있는 쇼핑거리이자 유명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광장이다. 재작년에 그곳에서 어느 여 작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사람들이 공연을 볼려고 모여드니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공안들이 그녀를 잡아갔다고 한다. 섬뜩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사복 공안이 있는데 그들은 정치적 선전이나 선동을 감시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예술 활동을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거나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즉각 수습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다. 아뿔싸, 나는 공안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다. 내 작업은 정치적 성격도 없지만, 그들에게 내 작업을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게 뻔하다. 너무나 의심스러워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넘치지만, 허탈한 웃음과 함께 머릿속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진다. DAC와 나의 안전을 위해 퍼포먼스 위치와 시간을 조정했고 조만간 진행할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글/ 사진
박경종 작가

 

박경종 작가는 페인팅, 애니메이션,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현실을 빗댄 상상의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예술활동지원 역량강화 분야에 선정되어 중국 중경에 위치한 십방아트센터에서 3개월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 (인스타그램바로가기 ▶)




[큐레이션 콕콕] 쓰레기는 쓰레기다?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전체가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3.0’ 제38호 ‘큐레이션 콕콕’은 쓰레기는 ‘버리고 없애는 것’이라는 기존 관념에서 탈피해 생활의 자리와 예술작품으로 스며든 몇몇 사례를 살펴봅니다.

업사이클은 향상을 뜻하는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입니다. 버려진 것을 가치 있는 무엇으로 재생산하는 작업을 말하죠. 한 번의 소비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쓰임과 중요성을 발견하는 의미에서 업사이클 예술은 굿 아트(착한 예술)로 전달되기도 합니다.

올해 여든한 살인 존 노우드 씨는 폐플라스틱과 담배꽁초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합니다. 폐플라스틱, 납 조각으로 아파트에 모여 사는 현대인들의 회색빛 삶을 재현하고 수백 개의 담배꽁초로 이라크 참전용사의 얼굴을 형상화합니다. 건축 설계사였던 그는 만 점이 넘는 작품을 보관하고 있어 집은 흡사 갤러리 같습니다. 관광지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죠. 노우드 씨는 자신의 결과물을 즐겁게 공개하는 한편 사람들에게 환경 보호의 실천을 강조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출처: KBS뉴스 캡처화면  영상보기 ▶

브라질 출신 비쥬얼 아티스트 빅 뮤니츠(Vic Muniz)는 독특한 재료를 사진 속에 담아냅니다. 장난감, 흙, 설탕, 철사, 못 심지어 방안에 날리는 먼지도 재료로 사용하죠. 단연 돋보이는 것은 쓰레기로 그린 작품입니다.

브라질 외곽 ‘자르딤 그라마초(Jardim Gramacho)’에는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은 산이 있습니다. 일명 쓰레기 산인데요, 뮤니츠는 이곳에 스튜디오를 열고 오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2년 동안 쓰레기를 작품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가 창작 무대가 된 거죠. “물질은 존재 자체로 의미를 보인다.”는 그의 말처럼 일상적이고 의미 없어 보이는 사물도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변하네요.

출처: Vik Muniz 홈페이지
테드 영상 보기▶ ‘철사와 설탕으로 예술을 만들다’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간편하게 구매하고 쉽게 소모되는 물건이 넘쳐납니다. 가볍고 편한 것을 찾는 현대인의 욕망은 수많은 1회용 물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스티로폼, 알루미늄 캔, 유리, 플라스틱, 비닐 같은 소재는 생활에 두루 쓰이지만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하죠. 지난 4월 17일 영국 포츠머스대 연구팀은 플라스틱을 먹는 박테리아의 구조를 분석, 분해 능력을 이전보다 20% 향상한 효소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효소를 넣은 물질로 플라스틱을 제조하면 그대로 완벽한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쓰레기X사용설명서’는 쓰레기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된 전시회입니다. PART1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에 관해 문제제기하는 공간으로, PART2는 그에 대한 우리의 대안을 만나는 공간으로 구성됐어요.

전통 농경사회는 지금처럼 쓰레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살림도구는 더는 사용할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썼고, 땅에서 나온 것을 다시 땅으로 돌리는 순환의 미를 실천했습니다. 분뇨를 자원으로 활용하고, 전깃줄로 바구니를 짜기도 하고요. 쓰레기의 2차 활용과 업사이클링의 역사도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동시대인들은 폐현수막으로 가방과 구두를 만들고, 군용 담요로 바지를 만들고, 담뱃값으로 자리를 만듭니다.

출처: 네이버블로그(꿈책맘) 

서울시 성동구에는 ‘서울새활용플라자’라는 업사이클링 문화공간이 있습니다. 지하2층, 지상5층 규모의 건물은 연면적 5천평으로 국내 업사이클링 관련 시설 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폐품을 이용한 설치미술, 업사이클링에 관해 공부할 수 있는 전시와 체험 공간, 업사이클링 기업을 위한 사무실을 갖추고 있네요.

업사이클링은 폐기물이 본래의 성격과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재활용과는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폐품을 재료의 형태로 되살리고 그 재료를 다시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비용이나 환경오염을 무시할 수 없죠. 효용을 따져 업사이클링 본연의 가치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하네요. 버린 것을 재사용한다는 명분을 넘어 다양한 각도와 폭넓은 이해로 접근하는 시선이 요구됩니다.

 

현대미술가 최정화 씨는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재료로 조형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로 1990년대부터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알케미(Alchemy·연금술)’는 플라스틱 그릇, 소쿠리, 솔, 깨진 병 등으로 제작되는데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쓰레기와 예술의 차이가 어디있겠나”라고 반문하는 작가는 천박하고 야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겸비한 ‘키치의 미학’을 즐깁니다.

환영무를 추는 무용수의 옷자락, 빙글빙글 도는 꽃잎이 겹겹의 원을 만듭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의 잔그림 같은 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성화가 타오르는 백자 항아리, 오륜기의 오륜, 휠체어의 바퀴 모두 둥근 것들입니다. 원 안에서 하나로 공존합니다. 최정화 작가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의 무대감독으로 활약했습니다. “사뮈엘 베케트가 ‘낡은 나사의 새로운 회전’을 이야기했죠. 나는 버려진 쓰레기, 옛사람들의 유물, 동양사상의 근본···그런 것들만 들여다볼 뿐입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고민해온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유무형의 예술품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청소도구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 ‘청소하는 꽃’ 앞에 선 최정화 작가
출처: 서울경제

양말목을 아시나요. 양말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양말 앞코의 마감을 위해 잘리는 부분으로 가위밥이라고도 불립니다. 서울 도봉구의 동네예술가와 마을활동가, 주민 들이 그 용도를 발견하기 전까지 양말목은 섬유 폐기물이었죠. 대안주거문화공동체 ‘황새둥지’는 쓰레기로 소비되는 자원과 주민들의 도움, 예술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마을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양말 제조공장이 많은 도봉구 방학동의 특성을 살려 양말목으로 컵받침, 가방, 냄비받침, 바닥깔개 등의 생활용품을 제작했죠. ‘못 쓸 것’으로 치부됐던 의자를 약간의 수리 후 양말목 방석을 입혀 ‘쓸모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출처: 서울 시민청 제공

광주시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은 ‘쓰레기의 손때’가 가득 묻어있는 곳입니다. 누군가와 삶을 함께 했던 쓰레기들은 폐기되거나 소각되는 대신 삶의 증거로 소환됩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골목 주택가에 불이 나 흉해진 자리에 주민들이 벽화를 그리고 생활 소품을 가져다 놓습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자리를 옮기자 물건은 이전과는 다른 사물이 되고 마을은 어느새 ‘골목 박물관’으로 변합니다.

부챗살처럼 퍼진 골목을 따라 가면 소박한 시와 그림을 감상할 수 있고, 곳곳에 오래된 시계, 신발, 그릇이 걸려 있습니다. 이제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그 자체로 작품이 됩니다. 빈터와 텃밭에는 작은 TV와 라디오, 장독, 의자, 바구니, 가스통, 솥 등이 모여 있습니다. 그야말로 쓰레기 박물관이죠. “멈춰버린 당신의 꿈이 지금 시작됩니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고 적힌 문구는 액자 안에 담겨 텍스트 이미지의 한 장면이 됩니다.

출처: 광주시 제공

 

*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1. 쓰레기로 예술작품, 뉴욕 명물이 되다
    KBS 뉴스9, 2018.4.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쓰레기를 이용한 예술작품
    아트리셋, 2017.11.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쓰레기로 세상을 만드는 예술가, 빅 뮤니츠(Vik Muniz)
    매일경제, 2018.3.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골목 300m에 과거가 거니는… 광주 펭귄마을 골목
    조선일보, 2018.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역발상으로 뻔한 것도 새롭게 쓰레기와 예술, 차이 어딨겠냐”
    서울경제, 2018.3.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쓰레기, 다시 쓰면 애장품!
    브런치(그리미), 2017.8.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방학동 양말목으로 알록달록 얘기 나눠요
    내 손안에 서울, 2016.2.2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5. 꾿빠이, 요코하마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한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뱅크아트는 전시기획과 임대뿐만 아니라 국제 레지던시, 아트스쿨, 미술전문 서점, 카페와 펍을 운영하며 기금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자생적인 수익 모델을 추구한다. 사진ⓒ노기훈

근대라는 SET

벽면에 각인된 뜻 모를 한자들, 기둥에서 떨어져 나간 각기 생김새가 다른 시멘트 파편, 페인트층이 벗겨져 바깥으로 드러난 색 바랜 안층, 어질러진 무늬가 한 곳에 이르러 표식을 형성한 바닥의 얼개. 뱅크아트의 벽면을 매만지면서 100여 년 전 일본 우편선 창고에 누군가 남긴 암호를 해독하겠다는 추리극이 시작된다. 과거에 남긴 흔적과 교감하는 일이야말로 근대가 심어놓은 낭만이 아닐까. 숨을 깊게 들이 마셔본다. 근대에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원혼으로 떠돌다가 공기를 통해 몸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들은 철부지 몽상가의 이성을 마취시킨다. 결박한 곳에 숨겨놓았던 자의식이 몸에서 빠져나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철철 넘쳐난다. 주워 담기에는 이미 홀로되었다는 해방감에 감성을 담당하는 수도꼭지가 박살이 났다. 시간의 축을 마음껏 왕래하는 타임 루프 영화 속 주인공이 감당해야 하는 선행 의식처럼, 그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몸을 다른 이에게 내어줘도 좋다는 식으로 의식은 한결 가벼워진다. 꽉 걸어 잠갔던 이성은 새롭게 맞닥뜨린 이국에서 처참하게 벗겨진다.

일본을 돌아다니며 근대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거라는 기대에 요코하마 곳곳을 꼼꼼히 바라본다. 길거리의 한복판을 다니며 주변을 어긋남 없이 두리번거린다.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이국적인 생김새에서 동인도 회사의 홀란트인을 발견하고, 도시를 감싼 염분 가득한 바닷바람에서 대항해 시대의 기운을 느낀다. 요코하마는 근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영화로 재현된 세트장 같다. 현대 문화의 최전선에 선 현대미술 작가라는 자격으로 입장했지만 때아닌 자취들 때문에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별스럽지도 않은 것에 골똘히 무한한 경지 속으로 빠져든다. 때때로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를 정도로 착란을 일으키며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지 모를 피로감에 사로잡혀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밤낮이 바뀌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낮에 있어도 밤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말을 상실했고, 혼잣말로 한국어를 내뱉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릴 적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와 장시간의 침묵을 이긴 후 헛기침으로 시동을 걸며 이야기해주는 겨울날의 쓰라린 추억담을 듣는 것처럼, 그저 잡히지 않는 뭔가를 떠올리고 다시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 혼자 피식 웃으면서 나만의 근대를 만들어 간다.

일본에게 근대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기억이다. 나가사키에 있는 군함도(端島)는 1974년 폐광 당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폐허로 남은 아파트에는 소녀의 체취가 감도는 바비인형과 당시 일본 내 여타의 지역에 비교해 풍족한 경제수준을 보여주는 가전제품이 여전히 남아있다. 군함도에서 하나뿐이었던 교실에는 40년 동안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걸상이 한쪽 다리를 잃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만약 한국이 군함도의 주인이라면 어땠을까라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일단 교실까지 오르는 긴 계단을 보기 좋게 공장식 나무판넬로 덧대어 무릎이 안 좋은 관광객들도 오르기 쉽도록 개조한다. 내부는 석탄 채굴 당시 풍속에 맞게 정형화된 동작으로 멈춘 미니어처를 투명 아크릴 상자에 넣고, 그걸 어린이들이 가까이 들여다보면 열 감지 센서가 반응하여 익히 듣던 성우의 높고 명쾌한 목소리로 광부의 구구절절한 신세 한탄이 또박또박 읊어지는 설비가 갖춰있다. 상상한 김에 하나 더 하자면, 출구에는 광부의 복식을 가져와 얼굴만 뚫어 놓은 입식 POP가 놓일 것인데, 불특정 다수가 지나간 좁은 구멍은 또 얼마나 불결한 개기름을 끈적하게 쌓아갈 것인가.

시간을 인위적으로 깎고 잘라 각색된 공간에는 정치만 있고 이야기가 없다. 단 돈 5000원도 안 되는 시장통 식당에 할아버지들이 공들여서 하는 이야기는 옆 테이블 앉은 젊은 사람을 겨냥한 듯 적잖이 흥분해서 말을 이어가지만, 눈앞에 그 형태는 보이지 않으므로 막연한 판타지의 영역으로만 인정된다. 보고 싶어 손을 이끌어 달라고 해도 남아 있질 않은데 무얼 보란 말인가? 어르신은 걸걸하게 가래를 끓으며 호통을 치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손가락이 저절로 굽어 제 얼굴을 가리키는 격이다. 할아버지의 환상과 경험이 섞인 구술은 언제나 사실과는 괴리된 무용담으로 각색되고 늙은이의 과거 미화쯤으로 여겨진다.

기억의 가소성에 따라 보려고 하는 것만 남으며 진실은 결국 닿을 수 없는 먼 공간에서 막연하게 맴돈다. 왜냐하면 그들이 증언한 진술에 증거가 될 물리적인 배경이 남아 있지 않아, 내 생각은 원점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판타지의 영역으로밖에 꾸며낼 수 없는 하이퍼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그들의 옛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간직한 공간적 배경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넘어 눈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중첩되어 만날 때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재조직된다. 여러 시공간이 하나의 장소에서 섞이면 전후 맥락을 살핀 다음 현시점에서 좌표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방향감각이 생긴다. 앞으로 가든 좌우로 흔들리든 플롯이 생긴다. 그렇지만 우리 사정은 이러하니 대한민국에서 근대가 뭔지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젊은이들은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과거사에 무관심한 태도를 짓는다. 건축물의 죽음은 대의 민주주의를 잘못 실현한 관과 정치에 책임소재를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에게 다가온 잔혹한 현대사에 맞설 수 없이 먹고 사느라 무감각하게 다져진 미의식에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정도 자조에 끝나면 다행인데, 잘못된 미의식은 형식을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숨은 진실마저도 손쉽게 은폐해 버린다. 현재의 편의를 위해 에폭시를 뒤집어쓴 역사적 현장은 베수비오 화산 분출물을 뒤집어쓴 로마인을 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로테스크하다. 영양섭취와 유산소 운동을 피하고 성형수술만으로는 건강한 노후를 기대할 수 없다.

후지산에 닿은 태양

에노덴(江ノ電)은 가마쿠라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쇼난 (湘南) 해안을 따라 달리는 구간은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등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일본 사람들도 가마쿠라 역에 에노덴이 들어서면 “카와이”하고 사진부터 찍는다.  사진ⓒ노기훈

일본에서 한두 달이 흐르고, 낭만만이 유일한 무드였다던 근대의 표면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도쿄 인근의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를 부단히도 산보했다. 동경에서 남쪽을 따라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로 이어지는 관동지방의 험난한 경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운명을 거스르는 여정이었다.

에노시마(江の島)에 간 날이면 후지산 정상에 해를 걸쳐두고 백석(白石)과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여행했다는 인근의 이즈반도(伊豆半島)를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 여인을 사랑한 도시 엘리트의 순애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정이입은 어려웠다. 하지만 치고가후치(稚児ヶ淵)에서 멀리 후지산을 바라보며 정상에 남아 있는 잔설이 해와 맞닿을 때는 『설국』 후미코의 붉은 볼을 연상케 하며 사진기법 중 하나인 다중노출을 보는 듯 탄식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같은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끌어안고 있는 일본 연인들이 실제로 그 주변에 있었다.

에노시마의 끝자락에 있는 치고가후치(稚児ヶ淵)에 가면 사가미만(相模湾) 너머로 후지산이 가까이 보인다. 관동대지진으로 융기한 지반 덕분에 바다에 인접한 곳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치고가후치는 수행승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자승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뒤이어 수행승도 따라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진ⓒ노기훈

밤이 되면 요코하마에서 도쿄 쪽으로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치밀하고 노출에 순응한 낮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는 밤이었다. 밤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했다. 큰 유흥가만 제외하면 일본의 밤은 유달리 침착했다. 정돈된 거리의 풍경은 일관된 가로등의 화이트밸런스에 맞춰 낮은 음으로 소리를 냈다. 셔터 소리가 정적을 깨며 혹 누군가 잠에서 깰까 불안해 무음으로 바꿔놓았다. 밤에 미명으로 밝히는 것들은 낮의 햇빛에 압도되어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혼잣말을 하듯 작고 희미하게 주변을 밝혔다.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일에는 대체로 나긋한 푸념같은 것들이 의미를 갖추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같이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주말에는 주정뱅이들의 끊임없는 술자리로 식어버린 라면 냄새와 홉 향 가득한 맥주가 은은하게 풍미를 더했다. 첫 차를 타고 돌아올때면 집 앞에 있는 소바 집 자판기 앞에 섰다. 눈을 감고도 자판기 버튼을 찾아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지겹게 먹은 가츠돈, 소바 세트를 뽑았다. 점원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카운터에 표를 내밀며 “아따다카이 소바”라고 몇 안 되는 일본어를 내뱉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날이 밝아와 있었다.

나카메구로(中目黒駅)는 봄이면 메구로가와를 중심으로 벚꽃이 만개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여유로운 일상이 매력적인 동네이다. 저녁이 되면 퇴근한 직장인들이 모여든다. 사진ⓒ노기훈

작업이 일단락된 후에 한동안 뱅크아트에 있는 작업실에 앉아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날리듯 살펴봤다. 나에게는 육성에 대한 갈증만큼이나 책을 넘기는 행위가 중요했다. 하지만 책에 적힌 한자는 매번 나로부터 단절되었다. 나에게 있어 한자는 한동안 짧게 공유되었고, 마치 꿈처럼 재빨리 소멸한 암호 같았다. 그들의 문자는 지나치게 무거운 기호였기에 나는 책 속의 이미지만을 여러번 보았다. 심심할 때면 건물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르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그들만의 야합의 장소를 살펴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비밀의 장소를 발견하면 내 나름대로 공간을 명명하며 귀퉁이에 작은 글씨를 새겨 넣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착각으로 일본 생활은 어리석게 지나갔다. 타국에서 철저히 단절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고독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처럼 어리고 에고가 폭발할 지경에 이를 만큼 과민하게 만든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방만한 상태가 지속되면, 껍데기가 떨어져 나간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때 만나는 나는 어느 시기에도 속하지 않은 완전한 나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한 묶음의 자전적 소설과 풍경으로 떨어져 나간 나의 허물이다. 이때 나에 대한 몰입이 가능해지고 나의 이야기가 보인다. 20대에 여유가 있었으면 자발적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 자신을 대면해 볼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업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환경을 떠나 세달 동안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새로운 곳에서 작업 그 자체를 진척시키기보다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과거보다 더 깊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의미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사진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두운 밤에도 필시 사진에 무언가 찍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달과 빛

뱅크아트 레지던시 인근에 있는 오오카(大岡)강 주변으로 하나미(花見) 시즌에만 한시적으로 포장마차가 허용된다. 벚꽃이 질 때면 포장마차도 철수한다. 사진ⓒ노기훈

레지던시 생활이 두 달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해졌던 11월 즈음에, 웰컴 파티에서 처음 날 본 이후로 ‘기훈 상의 행적이 묘연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중을 보인 뱅크아트 디렉터 이케다 상에게 그간 작업해 온 이미지를 펼쳤다. 그 이후로 2018년 1월까지 개인전을 위해 시계는 맞춰졌다.

개인전 <달과 빛>은 2018년 1월 26일에서 2월 4일까지 뱅크아트 1층 갤러리에서 열렸다. 사진ⓒ노기훈

 개인전이 마무리되었고 다시 조선총독부와 김영삼 정부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식민지 시대에 서울이었던 경성의 도시 구조와 토대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고 험난했던 50년의 협곡을 지나 그동안 돌보지 못한 상처는 비로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리기 시작한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남긴 국권침탈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보다 지난 50년 동안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얼굴이었다. 조선총독부 폭파를 통해 문민정부가 원했던 것, 그건 아마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광복 후 50년의 역사에서 발견해 낼지도 모르는 미래 세대들에게 엄중히 당부하는 절연의 제스춰일까?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날 친구와 광화문 근처를 걸으며 짧은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온 감회를 이야기했다. 서울시의회 옆에 있던 근대 건축물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서로 아쉬워하며 결국 우리가 보는 풍경은 살아남은 것들의 종합병동과 같다고 합의했다.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미명 아래 지켜지는 저 건물들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버티고 있었다.

내친김에 종로까지 걸어갔다. 퇴근길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건물을 배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서울 한복판에 거대하게 솟은 건물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면 철거될 것 같은 건물들을 짐작해 보았다. 20년 전처럼 건축물이 대역죄인이 되어 처형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시대가 바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되었고, 실용적인 것에 우리는 눈을 돌린다. 눈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느리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 역사라는 거대 담론의 옳고 그름에 의해 건축물의 존재가 결정되는 세상은 끝이 나고, 이제는 계산기가 주관하는 숫자의 논리에 건축물의 생명이 좌우되는 세상이다.

건물을 부수는 현장에 피어오르는 먼지와 시멘트 덩어리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지켜보며 그 사라짐을 애석하게 바라보는 부재의 낭만은 인간사의 일정한 시기에만 일어난 과거의 양식, 양태, 관습으로 칭해야 하는 건가. 먼 미래에는 어떠한 이유로 건물이 세워지고 무너질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단순히 수치(羞恥)라는 유교적이고 낭만적인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없어질 줄 누가 알았던가.

건물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빈라덴의 주도하에 뉴욕 중심가에 있던 무역 센터는 단 두 대의 비행기가 관통하며 무너져 내렸다. 요코하마의 도시 재건의 이면에는 2차 대전시 연합군의 폭격과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붕괴가 큰 계기가 되었다. 해가 정상에 얹히는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에노시마의 치고가후치(稚児ヶ淵) 역시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해수면 위로 상승하면서 나타났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몰을 본다. 일본은 2020년에 개최하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도시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도시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오륜기가 말끔히 포스터에 박혀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모던 보이와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사이에서

나는 도쿄 진보초(神保町)를 걷다가 이상(李箱)이 죽기 전에 살았던 2층 다락방을 상상해 보았다. 20세기 초에 지은 2층짜리 여인숙이 남아있는 거리에서 할 일 없이 다다미에서 뒹구는 이상을 떠올렸다. 그런데 통이 넓은 정장 바지에 포마드를 잔뜩 바른 장기리 머리를 한 20대 초반의 건축기사 이상이 조선총독부 2층 난간에서 각혈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조선총독부는 남아있지 않으므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조선총독부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여 검은 난간 속을 질주하는 저 무한한 육면각체의 비밀 속으로 잠입하는 것이 유일한 방편 일 뿐. 이상은 왜 앞날이 창창한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직을 그만두고 끽다점이나 하면서 시원찮은 글이나 쓰려고 했을까.

건물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나는 뱅크아트에 있(었)다. 3달동안 일본 우편선 주식회사 창고에 있으면서 유치한 지적 허영을 즐겼고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어느 건축물을 먼 이국의 감상과 연결 짓는 착각에 빠져들며 다중 노출이라는 착시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간 개념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중에 쓸모 있는 것만 걸러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 현실이라는 단면은 나에게 대한민국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 이따금 들춰 볼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철거해야 했을까 보존해야 했을까? 김영삼 전대통령은 금융실명제로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는 쓰레기 종량제를 기필코 해야만 했던 시인이었는가? 건축물의 사라짐을 추앙하던 마조히스트였던가? 그 먼지 가득한 순간을 즐기는 미술가였던가? 우리에게 1990년대는 30년대 식민지보다 훨씬 리얼하게 현실을 가로막은 가짜들로 날갯짓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굳빠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이상의 ‘날개’ 중 일부분

 

 글/사진 노기훈 작가




[큐레이션 콕콕] 기부는 힘이 세다

지난 3월 31일 ‘무한도전’이 종영했습니다. 13년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무한도전’은 예능의 새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예능의 재미뿐 아니라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에서도 기부는 획기적이었습니다. 출연진이 십시일반 기부하는 방식이 아닌 프로그램의 연결을 통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꾸준히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발성이 아닌 시청자와 함께하는 지속적인 방법을 선택했어요.

달력을 비롯해 다이어리, 볼펜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었고 판매금은 모두 기부했습니다. 2008년부터 달력을 제작했는데 달력 판매일이 되면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품절 사태가 일어나는 등 파급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원가의 몇 배 이상으로 ‘중고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웨딩버스’ 특집도 있습니다. 하하의 결혼을 앞두고 멤버들은 결혼식 축의금을 얼마나 낼 것인지 게임을 했습니다. 유재석의 최종 숫자는 6,580이었는데 이 숫자는 화폐 단위가 아닌 쌀의 무게를 나타내는 킬로그램이었습니다. 유재석은 쌀 6.5톤을 기부했고, 축의금이 아닌 쌀 기부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알렸습니다.

벼농사 특집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부지 선정부터 모내기, 벼 수확까지 1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멤버들이 땀 흘려 거둔 ‘뭥미’는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됐죠. ‘기부가 좋다’ 특집을 방영했고 ‘무도 가요제’ 발매 음원과 공연 수익금도 사회 곳곳에 환원했습니다. 이 밖에도 크리스마스캐럴 음원, WM7 프로레슬링 대회 수익금도 모두 좋은 곳에 쓰였다고 하네요.

‘무한도전’은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가 모였고, 그것을 어디에 썼는지 정확하게 밝혔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기부한 총금액은 63억여 원이라고 합니다. 문화평론가 이호규 교수는 “무한도전이 국민 예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기부다. 그전까지는 기부가 문화로 직결되지 않았지만, 무한도전 이후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예능의 좋은 기능을 잘 보여 줬다”고 말했습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돈 많이 쓰는 착한 스타 1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tvN ‘명단공개 2017’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밝혀진 내용인데요, 김연아는 2007년부터 꾸준히 기부했다고 합니다. 공식 기부 내역만 50여 개, 최연소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기부를 실천했습니다. 방송은 2015년 기준 김연아의 기부 누적금액이 30억 원 이상이라고 소개했는데 비공식 기부까지 더하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네요. 프로그램 진행자는 팬들도 김연아의 이름으로 기부 활동에 동참하며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컬투’ 정찬우는 지난달 17일 인스타그램에 ‘기부스’를 통해 4년간 기부한 이력을 알렸습니다. “조용히 하려고 했는데 이젠 좀 알려야겠다. 알려야 기부가 늘더라”라고 공개 이유를 밝혔어요. ‘기부스’는 2014년 10월, 즐거운 기부 문화 조성을 목표로 만든 국내 최초 기부 전문 팟캐스트입니다. 출연자가 원하는 걸 마음껏 홍보하고 홍보비 대신 현금이나 물품, 재능 등을 기부하는 포맷이죠.

현재 방송은 기획을 맡은 컬투 정찬우와 기부 아이콘인 가수 션, 서울 마포에서 고갈비 식당을 운영하는 천경희씨, 다양한 방송에서 활약하는 이재국 방송작가, 종합편성채널 패널로 유명한 박지훈 변호사,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이용수 등 총 6명이 맡고 있는데요, 정찬우 측 관계자는 “그동안 ‘기부스’를 통해 사회취약계층에 기부한 액수가 물건과 현금을 합해 30억 정도”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SK 와이번스 좌완투수 김광현의 머리카락 기부 소식입니다. 김광현은 2016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1년 넘게 재활치료를 했습니다. 재활 기간 동안 소아암 어린이를 돕기 위해 머리를 길렀고 “첫 등판을 마치고 자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달 25일 장발로 시즌 첫 선발등판 투수로 나선 김광현은 경기 후 인천 송도의 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자른 머리카락은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발 기부에 쓰입니다.

모발기부에서 중요한 것은 머리를 자연 상태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염색이나 파마를 했을 경우 가발 가공과정에서 머리카락이 쉽게 손상돼 기부가 어렵습니다. 머리카락 길이도 최소 25센티미터를 넘어야 한다고 하네요. 기부자가 머리카락을 소아암협회나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으로 보내면 가발 제조업체를 거쳐 소아암 환자를 돕는 ‘항암 가발’이 탄생합니다. 머리카락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가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략 200여 명의 머리카락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김광현 선수의 머리카락 기부는 미국 프로야구 데이비드 오티즈의 ‘수염 기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2013년 월드시리즈 MVP에 오른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오티즈는 덥수룩하던 수염을 깎아 사인이 담긴 면도기와 함께 경매에 내놨습니다. 당시 그의 수염과 면도기는 약 1,100만 원에 낙찰됐고 경매 수익은 전립선암과 고환암 예방을 위한 자선단체에 전달됐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관내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문화예술기부캠페인 ‘아트레인(ARTrai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트레인은 예술(Art)과 열차(Train), 예술(Art)과 비(Rain)의 합성어이자 중의어로, 기부자와 수혜자를 열차 차량처럼 연결하고, 문화소외계층에게 문화예술의 단비를 내려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부금 사업은 기부금 사용범위를 재단에 일임하는 순수 기부와 특정 사업을 기부하는 조건부 기부로 나뉩니다. 순수 기부의 경우, 재단 내부 공모를 통해 3개(희곡낭독, 인천청소년 역사문화, 아트플랫폼 시민참여 프로그램) 사업을 선정, 기존 공모사업으로 다가가기 어려웠던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합니다.

‘아트레인(ARTrain)’은 현재 200여 명의 개인 및 법인이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다양한 분야의 주체와 함께 문화예술기부 활성화를 위한 협업 구조를 이어갑니다. 또한, 지역 내외 기업과 연계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사회공헌 모델을 강구하는 파트너십을 확대해나갈 예정입니다.

‘인천문화통신 3.0’도 ‘인천의 기부자를 만나다’ 코너를 통해 꾸준히 따듯한 마음들을 소개하고 있네요.

최근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기부 참여율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2011년 36.4%를 시작으로 2015년 29.9%, 지난해에는 26.7%까지 떨어졌습니다. 기부 참여 하락률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유독 속도가 빠릅니다.

지난해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1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구촌 기부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중하위권인 75위를 차지했습니다(기부지수 순위는 CAF가 지난 1개월 사이에 낯선 사람을 도와준 비율, 기부 경험, 자원봉사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집계해 지수를 산출, 발표합니다). 2012년에는 45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매번 하락하고 있습니다.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라고 하네요.

독일의 회사원들은 매달 급여의 약 7%를 사회에 환원합니다. 수익의 일정액을 자신이 희망하는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함으로써 단체가 건강한 목소리를 내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거죠. 이런 후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 단체는 시민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합니다.

앞선 통계에서 보듯 기부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경제 사정에 기부와 후원이 널뛰기하는 기부방식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살기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의 실천도 중요한 부분이겠죠. 건강한 사회가 건강한 기부문화를 만듭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1. 스포츠 얼룩, 기부로 지우자
    서울경제, 2018.3.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63억원 기부” ‘무한도전’의 사회·경제적 가치
    일간스포츠, 2018.3.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기부캠페인 ‘아트레인’ 운영
    세계뉴스통신, 2018.4.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김광현, 승리 뒤 긴머리 싹둑 소아암 환자 위해 기부
    한국일보, 2018.3.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김연아, 돈 많이 쓰는 착한 스타 1위
    헤럴드경제, 2017.9.1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기부문화가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충청타임즈, 2017.11.2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보람 느껴” ‘기부스’ 정찬우 사단, 4년간 30억 기부했다
    OSEN, 2018.4.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년 4월 27일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문을 연 지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매년 세계 여러 나라의 공항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천국제공항은 지난 3월 한 달 동안 3만 편이 넘는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매우 중요한 공항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인천국제공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제2여객터미널이 개항하고, 몇 차례 방문하며 드는 생각은 ‘공간이 무척 친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외형은 기존의 제 1 여객터미널과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할 내부 공간 구성은 제1터미널과 매우 유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하층으로 연결된 지하철, 1층의 입국장, 3층의 출국장, 그 사이를 분리해주는 2층의 사무실들, 그리고 4층의 식당 배치는 제1여객터미널이나 제2터미널 모두 공통으로 일치합니다. 출입국심사대를 중심으로 반드시 나누어져야 하는 일반 구역과 면세 구역의 구성은 당연합니다만, 이렇게 층별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나니, 제2여객터미널에 처음 찾아오더라도 그 동안 제1여객터미널을 이용해 왔다면 전혀 어렵지 않게 공항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출국장에 배치 된 항공사 부스의 형태와 색깔도 유사하고, 커다란 알파벳 사인의 색깔까지도 같습니다. 올려다보이는 지붕의 형태는 다르지만, 4층을 작게 만들어 출국장을 두 개 층 높이로 탁 트여 놓은 것도, 각 층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여객터미널의 중앙과 바깥쪽 통유리벽 따라서 배열한 것도 같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다면, 제 2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익숙하게 여객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자동 발권기계와, 셀프 수하물 위탁 카운터가 늘어난 오늘의 공항에서는, 마음만 먹는다면,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출국하기 위해서는 티켓, 여권과 탑승 검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가방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인천국제공항 제 1여객터미널(좌)와 제 2여객터미널(우).
공간 구성, 사인물 등 제 1 여객터미널과 유사점이 많은 제 2여객터미널이 낯설지 않습니다.
(출처: 박준철기자의 에어포트 통신 ‘날다, 떠나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오늘 제가 공항에 대해서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점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지만, 서로 대화와 교류가 없어도 되는 그런 장소 이야기입니다.

지난여름,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1편과 3편에서, 우리는 어떤 장소가 더 많은 의미가 있게 되고, 더 중요해지고,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장소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축적해 온 기억과 역사를 느낄 수 있고,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정통성”의 장소들의 필요성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소는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 장소 안에서 맺어지는 사람들 간의 관계, 장소의 정체성이 없어도 무방한 곳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공항은 이런 장소 중에서 대표적인 곳입니다. 공항은 모두 다른 디자인을 가진 듯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처음 찾아온 외국인도 이해하기 쉽게 다른 나라의 공항과 비슷합니다. 오늘 문을 연 공항이라 하더라도, 공항을 이용하는 데 있어 불편하지 않거나, 감성적으로 아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 한마디 대화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는 이렇게 역사성도, 사람끼리의 관계도, 정체성도 없는 장소를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르길 제안했습니다. 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대화와 행위의 교류가 아니라 공적으로 증명된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오제는 비-장소에서 개인은 타인과 같은 공간 있으면서도 고립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공항으로 예를 들자면,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대신 커다랗게 설치된 사인물과 전광판을 이용하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여권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수준의 교류는 각 여행자와 공항 당국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행객들 사이에선 어떠한 수준의 교류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은 온전히 ‘장소’이며, 어떤 곳은 완벽히 ‘비-장소’라고 규정짓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비- 장소’의 성격을 짙게 띠는 장소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르쿠스 오제는 비-장소의 예로 고속도로, 쇼핑몰, 테마파크 등을 듭니다. 오직 도로 표지판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운전자들이 모이는 고속도로, 각자 쇼핑에 전념하다가 신용카드만 제시하면 되는 쇼핑몰, 같은 방식으로 자유 이용권을 하나 들고 모든 이용객이 각자의 놀이기구를 찾는 테마파크 같은 곳들은 사람들에게 공통된 기억이나 정체성을 주기 힘든, 비-장소입니다.

1990년대 초, 오제가 처음 비-장소의 개념을 제시할 때, 비-장소가 생겨난 이유가초근대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교통과 통신은 극도로 발달해서 세계를 ‘좁히고’, 사람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 보다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대면으로 소통하기보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만나고, 물물교환이나 현금보다는 신용카드와 전자결제가 더 익숙해지는 극도로 근대화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장소는 오랫동안 여러 사람이 교류하고, 공통된 기억을 만들고, 장소의 정체성이 생겨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삶의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고,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며 도시를 떠다닙니다. 근대 이전에 사람들이 거대한 흐름으로 같이 움직였다면 , 오늘의 현대인은 마치 꽃가루처럼 각자의 경로를 찾아 옮겨갑니다. 오제는 비-장소에서개인을 ‘고립’된다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관계로부터 독립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부터 편의점 계산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법 합니다. 어떤 사람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며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기를 꺼립니다. 밤늦은 시간에 아르바이트생은 술에 취한 손님과의 대화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몇 년 전부터 편의점 계산대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1 상품입니다” 또는 “증정품을 받아가세요” 같은. 그리고 이제는 RFID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무인 편의점이 등장했고,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편의점은 작은 예의 하나일 뿐, 많은 소비공간에서, 아니 많은 도시 공간에서 우리는 이러한 고립을 경험합니다. 점점 더 많은 공간이 ‘비-장소’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띠는 것이지요.

최근 도시에서 사람들이 정체성 짙은 장소를 찾는 것, 오래된 공간들이 주목받고, 이를 반영한 예스러운 인테리어 디자인이 유행하는 것,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며 어떤 장소들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대부분 장소가, 심지어는 가장 많은 기억을 공유하고, 정체성이 명확할 것 같은 ‘마을’과 ‘집’ 마저도 ‘비-장소’의 성격이 점점 짙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유대를 쌓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였을지 모를 수십 년 전의 사람들과 같은 장소 안에 머물며 목소리와 눈빛을 나누는 경험을 아쉬워하는 것이 오늘의 도시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마르크 오제 (이상길·이윤영 역), 2017, 비장소, 아카넷
전상인, 2014, 편의점 사회학, 민음사
정헌목, 2013, 전통적인 장소의 변화와 “비장소(non-place)”의 등장, 비교문화연구 19(1)
정혜진, 2015, 비-장소적 시각에서 본 공항건축의 특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계획계 31(11)
인천국제공항공사 홈페이지 (홈페이지 바로가기 ▶)




중경상경 重庆上庆
3개월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한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국제교류사업인 <중국십방아트센터>교류사업에 에 참여한 작가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2018년 3월 20일 저녁 중국 중경(충칭)에 도착했다. 세번이나 방문한 중국을 우연하게도 모두 중경에서 보냈다. 작년 여름, 중국 리장의 아트레지던시에 참여 중, 중경에 사는 작가들을 만난 인연으로 나흘 정도 관광을 왔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인천문화재단 ‘인천-충칭’ 문화예술 국제교류 사업을 통해서 중경의 예술 기관들을 탐방할 수 있었는데 그때 방문했던 십방아트센터는 나에게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낡았지만 운치 있는 독특한 구조의 건물은 햇빛이 잘 들었고 의외로 많았던 스태프들은 다들 무척 친절했다. 무엇보다 긴 복도에 가지런히 나열된 높은 층고의 복층 작업실을 보는 순간 ‘여기 한 번 올만 하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중경에 도착한 나는 공항에 마중 나온 Jing과 함께 곧장 훠궈(hot pot) 식당으로 향했다.

베이징 출신의 Jing은 십방아트센터에서 레지던시 관련 일을 맡고 있다. Jing이 올해 2월 국제교류사업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에 편하고 반가웠다. 그는 트래픽 때문에 나보다 조금 늦게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결국 사용하진 못했지만, 도착 출구에서 나를 기다리며 푯말을 들고 있으려고 했다. 그가 푯말을 보여줬다. 아니 이것은…! 내가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을 출력해서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의 유머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작가 출신인가보다. 돌발행동이 꽤 창의적이고 재밌다. 물론 실제로 사용했다면 결과도 굉장히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중경은 베이징, 톈진, 상하이와 같은 직할시로서 그 중 유일하게 서부에 있다. 자그마치 300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니 인천 인구의 10배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2배가 조금 넘는다니 역시 중국의 규모는 남다르다. 지리적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기 때문에 안개가 많이 끼고 날씨 또한 덥고 습하다. 덥고 습한 날씨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중경의 가장 유명한 음식은 훠궈(hot pot)다. 그 매운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이나 베이징에서 먹은 훠궈랑은 차원이 다른 매운맛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괴롭게 먹는 것 같지만 며칠이 지나면 보글보글 끓는 빨간 고추기름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침샘을 자극한다. 경험상으로는 번듯하게 잘 차려진 식당보다 현지인들이 잘 가는 후줄근한 곳에 가야 진짜 훠궈를 경험할 수 있다. 웃옷을 벗고 시끄럽게 떠들며 먹고 있는 아저씨가 있다면 원조 훠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십방아트센터가 있는 왕지아핑(Wangjiaping)이라는 지역은 약간 낙후된 곳으로 노동자와 서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레지던시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 양지아핑(Yangjiaping)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20분 정도 가야 한다. 반대 방향으로 15분쯤 걸어가면 중국의 미술대학 중 두 번째로 알아준다는 사천예술대학교가 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 장 샤오강도 이 대학 출신이다. 2005년에 여기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새로운 캠퍼스가 만들어지면서 학교 대부분이 이전하는 바람에 여기 구 캠퍼스는 몇 가지 수업을 진행할 뿐 역사를 보여주는 관광지가 된 것 같다. 10년 전 사천예술대학에서 추진한 엄청난 스케일의 벽화들이 동네의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의 외벽에 넘쳐나는 것을 보면 대대적인 차원에서 지역 발전에 힘썼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Jing의 말에 의하면 사천예술대학의 캠퍼스 이전으로 이곳은 내림세를 타며 다시 낙후됐지만 최근 정부에서 이 지역을 다시 중경의 예술 중심지로 발전시키기로 하였고, 따라서 십방아트센터는 본연의 의무에 더 충실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십방아트센터는 예술에 관심이 별로 없는 지역 시민들 일지라도 예술을 함께 공유하며 소통하고자 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지역과 사회를 연구하는 작품을 지원한다. 멋진 취지와 열정으로 형성된 비영리 기관 십방아트센터의 대표 정투(Zeng Tu)는 사천예술대학의 Cross Media 과의 교수이기도 하다.

컨셉이나 사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재료의 연구에만 집중한 작품들을 만드는 것이 수업의 취지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을 빼고 재료와 물질에만 집중하니까 오히려 생각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지역에 익숙해지고 작업실도 모양새를 갖춰갈 때 즈음 나의 예전 작업과 앞으로 이곳에서 진행할 작업에 대한 발표 날짜가 잡혔다. 넓은 소파가 있는 편안한 회의실에서 디렉터 정투와 다수의 관계자, 그리고 레지던시 작가들이 함께했다. 20분 발표와 20분 질의응답이 있었고 사천미대의 학생이 영어-중국어 통역을 해줬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됐다. 내 뒤로 두 명의 작가가 발표를 이어갔고 3시에 시작한 미팅은 6시 반이 넘어서 끝났다. 이전에도 느낀 점이지만 중국 작가들은 토론과 발표에 꽤 자발적이고 열정적이다. 형식과 예우가 갖춰진 환경에서 예술에 대한 평가, 조언, 비판은 작가에게 귀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는 작품에 대한 비판에 예민해서인지 서로 조심하고 말을 아끼는 것 같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비평보다 지적하고 가르치려 하는 평가에 위축된 게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있는 부분이다.

 어느덧 레지던시에 온 지 3주가 지났다. 여느 레지던시와는 조금 다르게 지원일과 입주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십방아트센터는 각각의 작가들이 입실하고 퇴실하는 시간이 자유롭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도 넘게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처음 왔을 때는 기존의 작가들과 친해지기가 조금 힘들었다. 같은 기수라는 동질감이 없고 무엇보다 영어를 잘하는 작가가 너무 없었다. 대부분의 식사를 근처 식당에서 사진으로 주문해서 혼자 먹었는데 저번 주부터 여기 작가들과 부엌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친해지니까 다들 착하고 친절하고 요리도 잘한다. 식사 준비됐으니 와서 먹으라는 문자가 오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전철역  대형마트 수입코너에 한국 고추장부터 된장, 김치까지 다 판다고 하니 언제 시간을 내서 한국요리를 대접해줘야겠다. 

글, 사진/ 박경종 작가

 

박경종 작가는 페인팅, 애니메이션,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현실을 빗댄 상상의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예술활동지원 역량강화 분야에 선정되어 중국 중경에 위치한 십방아트센터에서 3개월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




[큐레이션 콕콕] 스토리텔링으로 빠져든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짓기, 혹은 창작을 말합니다. 디지털 혁명으로 기술 발전이 급속화되고 가상세계로 이야기 공간이 확장되면서 스토리텔링은 문화산업의 주요 도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모든 디지털콘텐츠에 ‘스토리’는 필수요소입니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와 전설, 문학에서부터 게임, 광고, 문화유산, 스포츠 등 다방면으로 확장됩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잇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사회의 새로운 역동으로 자리 잡고 있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화제가 됐던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들은 뛰어난 경기력에 ‘마늘소녀 스토리’로 국내외 스포츠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의성마늘 소녀’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은 대표선수 5명 중 4명이 명품 육쪽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친구 사이, 자매 사이라는 ‘선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주장 김은정과 김영미는 의성여고 동창이자 친구 사이이고, 김경애는 김영미의 동생입니다. 김선영은 김경애의 친구고요. 후보 김초희 선수만 경기도 출신이라고 하네요. 한 언론사는 ‘전설의 마늘컬링’으로 헤드라인을 뽑기도 했습니다. 이들 다섯 명이 모두 ‘김’씨라는 우연의 일치도 스토리텔링에 묘한 재미를 더했습니다.

1998년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리니지’는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게임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조화시켰습니다. 리니지를 시작으로 스토리와 게임을 접목한 각종 온라인 게임이 등장했죠. 디아블로 3, 배틀그라운드, 듀랑고 등은 탄탄한 스토리를 갖춰 게이머로 하여금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합니다. 

‘야생의 땅: 듀랑고’는 현대 지구인이 야생으로 순간이동 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회사, 엽록포럼, 개척회의, 위원회 등 네 개의 단체가 게임의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 가죠. 어느 순간 낯선 땅에 떨어진 이들에게 생존이 최우선 과제로 주어지고, 안내자 ‘K’를 따라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동합니다. 도구를 만들어서 사냥과 채집을 하기도 하고요. ‘듀랑고’는 여기가 대체 어디고 왜 생겨났으며, 이 세계의 질서를 만드는 자는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을 게임 속에 감춥니다. 게임 플레이 중 화면에 텍스트가 출력되기도 하는데 그 글을 통해 듀랑고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올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례집을 새롭게 발간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사례집은 1인칭시점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 피해 여성을 ‘누구누구 할머니’가 아닌 실제 이름으로 표기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우리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하자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서울시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가 할머니 시점에 묶이기보다 시대의 모순 속에서 부침을 겪으면서도 하나의 삶을 일군 인간의 이야기”로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스토리텔링은 평준화, 기능화, 고정화 된 사건이나 제품에 이야기를 더해 감성을 자극하고 간접체험을 전달합니다.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담긴 스토리를 판다는 언급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중심가치인 지식과 문화가 스토리텔링을 입은 신선한 콘텐츠로 변화하고 또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인천발전연구원은 ‘인천 개항장 도시서사자원 활용방안’ 보고서를 통해 개항장 도시서사자원을 스토리텔링하자고 주장합니다. 인천의 이미지 향상과 지역 문화 특성화 활용에 요구된다는 거죠. 인천은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재창조되는 장소로 개항장 관련 서사자원이 풍부합니다. 

도시서사자원은 1883년 개항부터 강제병합 된 1910년에 이르기까지 개항장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인물, 건축물, 경관) 중 식민성과 근대성, 다문화성을 반영하고 있는 자원을 의미합니다. 김창수 연구위원은 “주요 서사자원은 드라마, 다큐멘터리, 웹툰, 연극, 뮤지컬 등의 문화콘텐츠와 디지털 관광, 테마거리, 게임, 캐릭터 및 엠블럼 등의 융·복합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원형 자원 총 220개 중 상위 60개 항목은 서사성, 대중성, 지역성, 활용성, 보편성을 기준으로 전문가 평가를 받았는데요, 그 결과 김구(인천감리서 등), 하상기와 김란사, 자유공원(각국공원), 차이나타운(청관), 대불호텔, 하와이 이민 등이 개항장을 대표하는 서사자원으로 선정됐습니다.

인천감리서는 김구 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일본 육군중위를 처단하고 투옥됐던 곳입니다. 하상기는 인천 부윤을 역임, 독립운동을 했다고 추정되며,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 문학사를 취득하고 여성교육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아내 김란사를 적극 지원한 인물입니다.

자유공원(각국공원)은 한국 최초의 근대공원입니다. 각국의 조계지와 양관이 건설됐으며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지니고 있죠. 차이나타운(청관)은 화교와 관련된 유무형 자원과 다국적 음식문화의 상징인 자장면이 개발된 곳이기도 합니다. 대불호텔은 한국 최초의 근대호텔로 서양식 건물에 고급침구를 갖춘 객실, 피아노가 구비된 연회장 등이 있었습니다. 경인철도 개통 후 쇠퇴해 중화루라는 음식점으로 사용되기도 했죠.

오는 6월 13일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열립니다. 경기일보는 인천시장 예비 후보들이 스토리텔링 선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네요. 현 시장이자 재선을 노리는 유정복은 ‘트리플 크라운 발판 수성’, 박남춘은 ‘2연승 여세 몰아 인천 입성’, 김교흥은 ‘10여년 절치부심 도전장’, 부평구청장을 지낸 홍미영은 ‘5연승 불패신화’를 앞세웁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1995년 37세의 나이로 김포군수 선거에 당선, 1998년 4월 시 승격으로 초대 김포시장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7대 총선에서 경기도 국회의원 61개 의석 중 초선 당선자가 됐고 18, 19대 국회의원에 연속으로 뽑혔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돼 국회의원, 장관, 광역단체장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여세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예비후보는 19대와 20대 총선에서 2연승을 했습니다. 민주당 김교흥 예비후보는 17대 국회의원 이후 10여 년 만의 도전이고요. 홍미영 예비후보는 초대 부평구 의원 및 인천시의원, 부평구청장 등 5연승의 경력을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과거와 현재를 이어 자기만의 스토리를 강조하고 있네요.

우리의 삶은 수많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야기는 동시대, 혹은 세대와 세대를 오가면서 소통하고 회자됩니다. 이야기는 생각하고, 집중하게 합니다. 또한, 상호작용하는 행위이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 이어져갈 문화행동입니다. 정보 과잉시대, 감성과 이성을 건드리는 스토리텔링은 더욱 살아날 겁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1. 감성을 파는 사회, 스토리텔링이 성공 요인
유원종,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04년 7월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4강 신화 女컬링 “마늘소녀 아닌 팀킴으로 불러 달라”
세계일보, 2018.2.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JTB교육그룹 SBS아카데미게임학원, ‘덕業일치’ 세미나 개최
뉴스브라이트, 2018.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알고 즐기면 더욱 재미있는 스토리, ‘야생의 땅: 듀랑고’의 큰 그림을 엿보다
게임포커스, 2018.3.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서울시 “스토리텔링 적용한 ‘위안부 증언’ 사례집 출판한다”
공감신문, 2018.3.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개항장 서사자원들, 스토리텔링 위한 제반작업 필요”
인천in, 2018.2.1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인천시장 예비후보들 ‘스토리텔링 선거전’
경기일보 2018.3.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 이재은




4. 개항장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인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및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동경 시나가와 구(品川区) 신반바 역(新馬場駅) 인근에서 마츠리(祭り)가 열리고 있다. 마츠리는 열리는 계절마다 의미가 다른 종교적 의식이다. 가을의 마츠리는 추수하기 전에 오는 태풍을 잠재워 보내려고 사흘간 춤추며 밤을 지새우는 신앙의식이다. 사진ⓒ노기훈

자전거를 타고 다시 요코하마(橫濱)로 돌아오는 밤길은 여러 가지로 고되었다. 일본 최초의 기차역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정차장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신바시 정차장을 재건축한 철도역사전시실이었다. 근대식 은빛 연와로 마감한 건물은 조명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한밤중인데도 시오도메(汐留)의 높은 빌딩숲 사이에서 운치 있게 빛났다. 2층에 지나지 않는 신바시 정차장은 열차 한 량 정도 길이만 남은 최초의 철로를 유리관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최초라는 명성에서 유추할 수 있는 넓고 깊은 스케일에 비해 현시점에 볼 수 있는 역사(驛舍)는 이미 역사(歷史)가 되어버린 중후함에 비해 작고 초라했다. 그곳은 탐미적이고 과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 단지 신바시 정차장의 외관을 본래와 같은 장소에 최대한 꾸밈없이 재현해 놓는다는데 초점을 맞춘 듯했다. 일본 최초의 역사를 재현해 놓았으니 어느 쪽이나 구 서울역보다는 장엄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넓이와 높이 모든 면에서 구 서울역에 비하면 헤비급과 라이트급 차이였다.

1872년에 문을 연 일본 최초의 역사인 신바시 정차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철도역사전시실이다. 1층 전시실 바닥을 유리로 깔아 개업 당시의 기초석 일부를 관람 할 수 있다. 사진ⓒ노기훈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쪽 계열에서는 크기가 작고 너절한 것이 모더니스트들이 상상력을 발휘했던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취가 있어서, 생각하기에 따라 보다 깊은 풍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라인이 화려한 마천루와 나란히 놓인 구시대의 유물을 보면서 단지 건축물의 크기만으로 같은 링 위에 올리는 건 공정치 못한 승부 같았다. 내가 상상하던 19세기 후반 신바시 정차장의 상징은 중세에서 근대로 시공간의 축을 본격적으로 바꾸면서, 칼과 주인이 있던 봉건시대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한 메이지 시대의 맥락으로 이동시킨 신문물이었다. 그 와중에 기차는 요코하마로 달리는 매 순간 매캐한 연독(煙毒)을 씩씩거리면서 질주하는, 그야말로 근대적인 ‘컬처쇼크’였다. 역과 역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차로 인한 최초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낭만을 선물하던 신바시 정차장은 급격하게 팽창하는 20세기 과학기술사의 진보를 지나며 최초라는 훈장만 남기고 사라져야 했다. 신바시 정차장은 곧 국제도시로 성장한 동경에 걸맞은 세련된 도회지의 풍속을 건축물에 녹아낸 JR신바시역에게 명패를 빼앗겼다. 그 쓸쓸한 영주의 퇴장을 지켜보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은 쉽사리 아스러져 잊혀졌다. 그나마 신바시 정차장과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들은 예우가 좋은 편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간 수많은 구시대의 잔해들을 어떻게 기억해 낼 수 있을까? 

아카렌가(赤レンガ) 창고는 “메이지 말기부터 다이쇼 초기까지 요코하마 항의 창고로 이용되었다. 격동의 20세기를 뚫고2002년 당시의 모습을 남긴 채 문화, 상업 시설로 다시 태어났다.”라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2017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으로도 활용된 아카렌가 창고는 1층을 아트숍으로 꾸미고 2,3층을 이용해 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노기훈

요코하마를 둘러보고 부러웠던 지점은 강자로 살아온 나라가 역사를 보존해 나가는 일종의 우월감이었다. 인천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2013년, 인천 개항장에 도착한 나는 인천 개항장 투어를 신청했다. 인천을 설명하던 문화해설사가 인천개항박물관을 가리키며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근대적 양식의 건축입니다.”라고 이야기 한 건축물들과 양식은 흡사하지만 크기에 있어서는 족히 5배는 뻥튀기한 건축물들이 요코하마 구도심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믿기 힘들지만 100년이 넘은 건물의 내부는 기적에 가까운 리모델링이 이루어져 지금도 주화를 관리하거나 미디어 아트를 교육하는 대학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요코하마 구시가지 쪽에 있는 근대식 건물들을 보면서 장막에 갇혀있던 어느 건축물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불투명도를 높여 형상을 갖추면서 알싸한 감정이 일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에게 요코하마에서 보는 건축물들은 잊었던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건 바로 1993년 시작된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추진한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장면이었다.

1995년 8월에 첨탑 제거로 시작된 조선총독부 철거는 1996년 12월 대회의실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완료됐다.
사진출처: MBC 뉴스 동영상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네이버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건축물’의 정의는 ‘토지에 정착하는 공작물 중 지붕과 기둥, 또는 벽이 있는 것과 이에 부수되는 시설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시멘트 덩어리가 시간의 풍파를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피아식별에 따라, 피동이냐 자동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의 곳곳에서 흘러간 것들을 추억할 수 있는 단서를 채택할 것이냐 인멸할 것이냐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사안이다. 그럼 강자들은 어떻게 당당하게 자신들의 유산-건축물을 합법적으로 상속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요코하마 개항기념관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개항 50주년을 기념해 시민 기부금으로 1917년 준공되었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전소되어 1927년에 재건축되었다. 사진ⓒ노기훈

 내가 요코하마에서 작업실로 쓰고 있는 ‘BankART스튜디오 NYK’는 인천으로 치자면 아트플랫폼이 속한 개항장 지역과 유사점이 많은 요코하마 간나이(館内)에 지역에 있다. 요코하마는 에도(현 도쿄)시대 말기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항만도시로 발전했다. 인구가 부산광역시보다 조금 많다고 하면 도시 규모 면에서 이해가 쉬울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의 짧은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도쿄와 요코하마는 서울과 인천과의 관계와 흡사한 점이 많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구별문화통신 1호에서 했기 때문에 패스. 몇몇 유사성으로 판단에 이르는 건 독단에 가깝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감으로 일어나는 일이므로 혀가 짧고 뇌가 정리되지 않은 예술가적 영역으로 남겨주시길. (그러고보면 괜찮은 작가들은 예술가적 감각을 기초로 하고 최종 목적지를 이미지로 해서 이걸 논리적으로 구현하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단, 성공적으로)

1859년 미일 수호 통상조약으로 개항한 요코하마는 서양문물이 관동지방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써 세계가 요동치던 당시 개항만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문제는 100년이 넘게 지나서도 개항시기에 다져진 인프라와 자의식만으로 버텼다는 것이다. 요코하마시는 닛케이 지수가 나날이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던 70년대 말에 들어서야 낡고 쇠락한 요코하마의 도시 이미지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낭만과 역사가 있는…’이라고 둘러대기에는 다가올 21세기의 국제도시로서 출항할 동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고민에 따라 요코하마시는 21세기 미래의 항구도시 프로젝트, 즉 ‘미나토미라이 21(MinatoMirai21)’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조선 부지와 부두에 국한되어 있던 구도심 지역을 문화 관광지로 개발하여 하드웨어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요코하마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미나토미라이21’이라는 이름이 결정되었다. 일본어로 미나토(港)는 항구, 미라이(未來)는 미래라는 뜻이다. 사진ⓒ노기훈

몸이 만들어졌으면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 근육질 몸에 아무 옷이나 입을 수는 없다. 요코하마시는 ‘미나토미라이 21’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2004년, 시민의 주체적인 참가와 창조활동의 핵심인 예술가들의 결집을 촉구하여 문화예술 창조도시로서의 변모를 골조로 하는 ‘창조도시 요코하마(Creative City Yokohama)’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한다. 이 창조 패키지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문화예술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구동된 프로그램이 바로 ‘뱅크아트(BankART) 1929’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인 요코하마 미술관 1층 내부의 모습이다. 2001년부터 시작한 트리엔날레는 올해로 6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주제는 ‘섬과 별자리와 갈라파고스’로 상반된 가치관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의 모습을 살펴봤다. 사진ⓒ노기훈

드디어 뱅크아트까지 왔다. 뱅크아트를 소개하기 위해서 지면을 이만큼 할애했다. 여기서는 정책적인 의사결정이나 기타 문화예술도시로 변모 과정 등은 글의 성격상 관련 전문가들에게 남겨두기로 하고 나의 직분에 맡게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는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 이야기만 해보겠다.

 뱅크아트는 예상대로 Bank(은행)과 ART(아트)의 합성어다. 그리고 1929도 서기 1929년이다. ‘뱅크아트 1929’는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안에 들어서고 3년 뒤인 1929년에 요코하마 개항장 주변에 건설된 구 후지은행과 구 제일은행 등 근대 석조 건물을 문화예술 활동 기지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은행’과 ‘1929’를 전면에 내세운다. 

일본은 한국정부가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자신들이 그걸 그대로 옮겨가겠다고 제안했다. 이제 막 올림픽을 치러낸 GDP 만달러도 안되는 한국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 ‘경제 대국인 일본도 당장에 급하고 보니까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하고 보네’라고 허언에 가까운 실언이라고 혀를 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히도 조선총독부 첨탑이 내려앉은 1995년 바로 그 해에 요코하마에 있는 어느 한 오래된 건물이 정말 여기서 저기로 장기알 옮기듯 이동하게 된다. 

때는 1929년, 뉴욕주식거래소의 전례 없는 대폭락으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이 몰아 닥치고 역사의 장난인지 돈 없어 망하겠다는 그 해에 혈세를 모아 MOMA(뉴욕현대미술관)가 건립된다. 동시에 요코하마에는 고대 로마의 신전 양식으로 건축된 제일은행 요코하마 지점이 들어선다. 그리고 60여 년이 흐른 1995년, 구 제일은행 요코하마 지점이 마치 한 량의 기차가 되어 바사미치(馬車道)에서 미나토미라이(港未來)까지 놓인 철길에 미끄러져 120m를 이동하게 된다. 

구 제일은행이 미나토미라이 방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전체 제일은행 건물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발코니만 이동한 모습이다. 사진출처: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

 요코하마시는 아이랜드 타워의 일부로 재현된 구 제일은행을 ‘YCC(Yokohama Creative Center) 요코하마 창조도시센터’로 전환해 예술가들의 활동공간으로 지원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외관을 뽐내는 역사적 건축물의 주인을 당당히 예술가들의 몫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강자로 살아온 국가가 건설한 역사적 건축물이나 항만시설, 창고 등은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도심부 재생의 거점이 되었다.

반면, 일제강점기 건물인 조선총독부는 우리 땅 위에 새긴 주홍글씨와도 같았다. 얼마나 싫었던지 조선총독부 철거 당시 나라의 수장이던 김영삼 대통령 조차 공식 인터뷰에서 “일본 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외교적 참사에 가까운 폭탄 발언으로 블랙코미디를 연출했다.

내가 있는 곳은 바로 그 ‘창조도시 요코하마’라는 구호 아래에 예술가의 거점으로 리모델링한 두 곳 중 하나다. 레지던시와 큰 관련이 없는 곳이 구 후지은행과 구 제일은행을 개조한 ‘뱅크아트1929 요코하마’이고, 레지던시 활동의 본거지가 일본 우편선(郵船) 창고를 개조한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이다.

요코하마시는 운영주체를 공모하여 무상임대로  NPO 민간법인에 위탁하여 문화예술 활동을 운영한다. 이와 관련한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의 주요 활동은 전시기획과 전시공간임대를 기반으로 사진, 미술, 건축, 퍼포먼스,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장르를 대상으로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수요일마다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아트스쿨을 연다. 또한 1층에 미술 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때로 출판업무도 담당하며 그 옆으로 카페와 펍을 겸하는 공간이 있어 회합의 장소로 사용한다.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와 더불어 2005년 도쿄예술대학이 구 후지은행 건물로 이전해왔으며, 구 제일은행은 2009년 5월부터 ‘YCC 요코하마 창조도시센터’로 전환되었다. 현재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 가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
1. 네이버 지식백과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출처: 아카렌가(赤レンガ) 창고 공식홈페이지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사진출처
1. MBC 뉴스 동영상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글,사진/ 노기훈 작가

 

노기훈은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뱅크아트 스튜디오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에 체류한다.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 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사쿠라키초역에서 신바시역까지 걷고 있다. 




[큐레이션 콕콕] 한국이 시작한 문화올림픽, 일본과 중국이 이어받는다

지난 2월 25일 평창 동계올림픽이 폐막했습니다. 평창은 날마다 문화가 있고 축제가 있는 문화올림픽(Everyday Culture & Festival)을 목표로 공연, 전시, 설치미술, 축제, 퍼레이드, 포럼 등 40여 개의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라는 평가에 대중의 감성도 사로잡아 질적·양적 측면에서 높은 성취를 인정받았습니다. 강원도의 전통과 자연환경을 이용한 공연과 전시에 관객은 물론 국내외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죠.

파이어 아트페스타(출처: 파이낸셜뉴스)

테마공연 ‘천년향’은 공연장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어느 좌석에 앉아서 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다가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파이어 아트페스타 ‘2018 헌화가(獻火歌)’는 실험적 시도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경포 해변에 대형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한 뒤 모든 작품을 불태우는 파이어 퍼포먼스로 기획했습니다. 작품이 불타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완성한다는 의도였죠. 오랜 가뭄과 강풍으로 산불 위험이 높아 퍼포먼스는 1회에 그쳤지만, 그 의도는 관객에게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트 온 스테이지’는 문화올림픽 프로그램 중 가장 큰 규모로 400여 개에 달하는 공연을 릴레이로 선보였습니다. 국공립 예술단체가 클래식, 연극, 무용 공연 등으로 저마다의 가치를 뽐냈죠. 문화올림픽 강원도 통합추진단 김태욱 총연출감독은 “올림픽과 연계한 전략적 행사 배치, 원활한 관람을 위한 다양한 편의 제공” 외에 “콘텐츠의 저력”을 문화올림픽의 성공 요인으로 뽑았습니다. 올림픽 기간에 주목받은 행사가 일회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대한민국의 대표 유산으로 남아야겠죠.

명품거리도 탄생했네요. 평창읍 평창강 둔치 일원에 약 5km에 걸쳐 조성된 ‘빛의 거리’, ‘올림픽 랜드마크 거리’, ‘올림픽기념 벽화’, ‘성화봉송 거리·마스코트 하우스’, ‘개최국 파크’, ‘올림픽 스타광장’, ‘문화예술 거리·전통체험 거리’ 등은 평창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림픽 상징조형물은 아파트 15층에 해당하는 41m, 지름 14m의 압도적인 크기로 눈길을 끌었죠. 민족의 정취가 깃든 청화백자와 전 세계인이 올림픽으로 하나 돼 미래로 비상하는 평창의 역동성을 표현했습니다.

문화동행포럼 2018, 정선(출처: 일간경기)

평창 문화올림픽 연계 행사로 한국, 일본, 중국의 올림픽 컬처로드 ‘문화동행포럼 2018’이 정선에서 열렸습니다. 각국에서 바라보는 문화올림픽에 대한 관점을 비교·분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중요성을 조명하는 자리였죠. ‘한일중 문화협력의 길을 걷다’라는 포럼에는 인천문화재단을 포함, 한국광역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일본, 중국의 협력사무국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3국 지역 간 문화교류의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문화교류 세션에서는 4건의 사례 중 인천문화재단이 2개 사례를 발표했네요. ‘차이나는 국제교류 인천:충칭’ 사례에서는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시설(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송도 트라이보울 등)을 기반으로 한 가능성을 소개하고, ‘일본 요코하마 뱅크아트 1929 기관교류’ 사례에서는 그동안의 창작지원 진행과 성과를 홍보했습니다.

한일중 3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 5년 동안 하계 및 동계올림픽을 개최합니다. ‘문화동행포럼 2018, 정선’은 올림픽과 더불어 각국이 처해있는 국제정치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3국이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공동의 문화유산을 위한 협력과 서로 간의 교류를 심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봅니다.

인천은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9년 문화도시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은 ‘2019 동아시아 문화도시 전담팀(TF)’ 구성의 일원으로 2019 동아시아문화도시 인천 성공 개최를 위한 7대 핵심 사업에 적극 참여합니다. 개항도시 인천의 위상에 걸맞은 문화 개항도시로 도약할 기회가 되겠네요. 중국과 일본의 문화도시도 조만간 확정된다고 합니다.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출처: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올림픽이 표현하는 시대상과 디자인을 비교해보는 자리인데요. 올림픽에 참여했던 디자이너의 공식 창작물과 제작 과정을 재구성한 ‘88서울올림픽대회, 예술과 마주하다’, 1988년 당시 일상의 모습을 기록한 신문기사, 사진, 책, 노래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집가의 방’에는 호돌이 인형, 성화 봉송, 깃발, 화보집, 올림픽 주화 등 600여 점의 물품이 공개됐네요.

평창올림픽 문화마크를 한 번 보세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한글의 독창성과 차별성이 돋보입니다. 한글 자음 ‘ㅁ’과 대회 엠블럼의 스틱 마크를 한데 모아 다양한 문화가 꽃피우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문화마크(출처: 평창문화올림픽 공식홈페이지)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기념품 매진 사례에, 원하는 물건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소위 ‘웃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인기를 증명하듯 ‘수호랑 반다비 움짤’, ‘수호랑 댄스’, ‘수호랑 포상휴가’ 등의 인터넷 검색어도 눈에 띄네요. 수호랑의 이름은 올림픽 참가 선수, 참가자, 관중들에 대한 보호를 의미하는 수호(Sooho)와 호랑이와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상징하는 랑(rang)을 연결했습니다. 백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호 동물이기도 하죠. 패럴림픽의 마스코트인 반다비는 반달을 의미하는 반다(Banda)와 대회를 기념하는 의미의 비(Bi)를 담고 있습니다. 반달가슴곰은 의지와 용기의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공식 사진가 조세현 작가는 수호랑과 반다비의 인기 요인을 “수호랑은 코가 너무 잘생겼고, 반다비는 살짝 옆으로 곁눈질하는 눈이 굉장히 귀엽고 재미있다”는 데서 찾았네요.

2020년 도쿄올림픽 마스코트는 ‘초능력 캐릭터’가 될 거라고 합니다. 2,042명의 마스코트 공모전 참여작 중 조직위원회가 세 작품을 추렸고, 초등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고 하네요. 이름은 8월쯤 발표됩니다.

수호랑과 반다비(출처: 연합뉴스)

문화올림픽의 열기는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패럴림픽 기간에도 따듯하게 전해집니다. 평창의 밤을 밝히는 불꽃쇼, 몽골, 라오스, 일본, 미국, 한국의 예술가들과 장애인, 청소년 무용수들이 펼치는 ‘투 비 투 원(TWO BE TO ONE)-두리새로 서로하나’와 함께 올림픽 기간에 선보였던 문화행사와 공연도 계속됩니다.

‘70엠케이(mK)-하나 된 한국(just simply KOREA)’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 방문객들의 인터뷰 영상을 전시・상영하는 대규모 영상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70엠케이(70 million Koreans)’는 남과 북, 7천만의 한국인을 의미하며, 하나 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평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시작한 문화올림픽은 2020년에 일본, 2022년에는 중국이 아름다운 상징을 이어갈 겁니다.

 

* 아래와 같은 기사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1. 2018 평창, 문화올림픽 이유있는 성공! 문화 레거시 창출도 기대
경인투데이뉴스, 2018.2.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올림픽 성공 포인트⑦]문화올림픽
뉴스1, 2018.3.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평창서 인천 문화 국제교류 발표
일간경기, 2018.2.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30년 전 ‘88서울올림픽’으로 향하는 시간여행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2018.2.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평창 올림픽 공식 사진가가 말하는 ‘수호랑·반다비’ 인기 요인
YTN, 2018.3.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패럴림픽 기간에도 ‘문화올림픽’ 열기 이어진다
파이낸셜뉴스, 2018.3.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