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생활문화 시대, 함께하는 생활문화 축제

지난달 청와대가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와 향후 추진 계획이 담겼습니다. 그 중에는 생활문화 정책을 통한 문화적 권리 확보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을 강화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정부는 ‘생활문화 시대’를 위해 저소득층의 통합문화이용권 연차별 확대, 국민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분야별 문화도시 지정, 읍면동 단위 중심의 문화마을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정기획위는 지난해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78.3%에서 2022년에는 85%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고, 2016년 2595개인 문화기반시설을 2022년까지 3080개로 늘려 지역문화 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지역문화진흥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생활문화란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뜻합니다.

각 지역의 문화시설을 활용해 개인이 하고자 하는 활동, 또는 개인과 개인이 만나 공동체를 꾸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인과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생활 속 문화를 사회로 확산시키는 것을 생활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생활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예술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지만 생활문화는 나 혹은 우리가 주체가 되어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입니다.

지난 2014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생활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전국생활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았네요.

‘2017 전국생활문화축제’는 ‘두근두근, 내 안의 예술!’을 주제로 오는 9월 6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열립니다. 이번 축제에서는 17개 권역별 생활문화단체와 122개 생활문화동호회가 협력해 동호회 전시 및 체험, 생활문화영상제, 청년 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

지역에서도 매해 개성 있는 생활문화 축제가 소개됩니다.

부천시는 지난 2015년부터 ‘예술이 일상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생활문화 동호인 축제 ‘다락(多樂)’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열리는 축제에는 시민 1,400여 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뮤지컬 ‘흐르는 강물처럼’을 선보일 예정인데요, 8월 26일 폐막공연에 참여하는 생활문화동호회는 모두 124팀 1,400여 명으로 지난해 콜라보레이션에 참가했던 400여 명보다 무려 1천여 명이 증가했습니다. 뮤지컬에 참여하는 배우가 많은 만큼 송내 무지개 광장에 수변무대를 활용한 가로 70M, 세로 30M의 초대형 무대를 세운다고 하네요.

2017 대구생활문화제 행사는 “생활을 녹이다! 문화를 녹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꿈꾸는 사람들의 문화놀이터”라는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올해 남양주 슬로라이프 국제대회는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즐기는 슬로라이프 생활문화 축제로 기획됐네요.

지역의 이름을 걸고 해마다 생활문화 축제가 열리지만 별다른 특색 없이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생활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취지의 공연 및 전시, 장터, 놀이, 체험 등이 여느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에 머물거나 주민 주도형으로 치러지는 문화 중심의 행사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주말을 이용해 아이와 함께 인근 대형마트에 가려다 뭔가 소란스러워서 찾아왔다가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든가 “축제의 자리를 빛내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음악만 크게 틀어놔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시민들의 지적이 있었네요.

인천에서도 제1회 생활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생활로 마주하고 문화로 통하는 우리는 그런 ‘사이:多’”라는 문장이 페스티벌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네요. 9월 2일(토)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아트플랫폼 일대에서 공연과 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전시는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이어집니다.

인천 생활문화 축제는 단순히 공연만 하고 헤어지는 행사가 아닙니다. 참여자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축제 기획단과 함께 장소, 무대, 순서, 운영 등을 직접 결정하고 준비했습니다. 일상을 문화로 공감하는 사이, 행복을 문화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사이, 그냥 좋아서, 마냥 좋아서, 좋아서 만나는 ‘사이:多’. 많은 ‘사이’들이 모여서 만든 페스티벌은 인천문화원연합회와 생활문화동아리연합 놀이터가 주관하고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합니다.

생활문화진흥원은 지난해 ‘2016 생활문화 스토리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생활문화, 내가 활동했던 생활문화동호회, 우리 동네 생활문화센터 에피소드” 등 일상의 소소한 ‘생활문화 이야기’를 모았는데요, 아래 글은 우수작에서 발췌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경험한 생활문화는 치유였다. 문화의 모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체험한 생활문화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치유에 가까웠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또 사람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모두 어우러져 함께했던 그 두 달여의 기간은 무척이나 값진 것이었다. 수강료도 없고, 공간 대여료도 없고, 준비물도 없었지만, 그 공간은 우리에게 약국이었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약사였다. 아플 때 자유롭게 가서 부담 없이 약을 받아오는 그런 곳 말이다.”
김성준, <우리 안의 힘> 중에서(작품 감상하기▶)

“지금까지 나는 그동안 ‘하안문화의 집’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며 그곳을 통해 나름대로 여러 성과물을 축적해 두었다. 가령 기형도 시인의 시를 통해 만든 연극에서 주인공 기형도 역을 맡아 무대에도 올라가보고, 시낭송, 시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 앞에 서보는 귀한 경험도 꾸준히 하고 있다. 또한 업싸이클, 스토리가 있는 사진, 수제 책 만들기 등 현재는 캘리를 통한 결과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윤외숙,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중에서(작품 감상하기▶)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 혹은 블로그를 참고했습니다.
1. 전국축제열전: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우리동네 생활문화 축제
    생활문화진흥원블로그 2017.7.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문화예술 관람률 85%… ‘생활문화 시대’ 열린다
    이데일리 2017.7.1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생활문화진흥원 홈페이지(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안방 잔치로 끝난 ‘대한민국 생활문화축제’
    전북도민일보 2016.8.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2.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를 정의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산업혁명 이후 도시는 ‘공장이 많고, 일자리가 많아 사람이 모여든 곳’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도 산업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대부분의 도시들은 공업단지가 건설되어 주변 농촌의 인구를 흡수하며 성장한 경우입니다. 서울부터 그렇고, 동남권의 많은 도시들, 그리고 인천도 그렇지요. 일제 강점기부터 있었던 원도심의 많은 공장들,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수출 4,5,6공단과 같은 산업단지, 송도신도시의 인천도시첨단산업단지와 같은 ‘공장’의 건설은 겉모습이 조금씩 달라져 왔을 뿐 도시의 형성과 발전에서 거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한국의 도시 개발에는 ‘문화’라는 키워드가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키워드는 때로는 ‘산업’과 연결되고, 때로는 ‘관광’과 연결되고, 최근에는 ‘도시재생’과 연결되며 도시 개발의 새로운 도구로 각광받았습니다. 인천에서 원도심의 차이나타운을 재발견하고, 근대건축유산을 이용해 다양한 지역 문화예술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도 이러한 도시개발 전략의 한 예입니다. 근대건축물이 박제되지 않고 오늘에도 계속 문화 공간으로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을 보며, 과거의 우리 도시의 기억의 공간에서 미래에 기억할 오늘의 도시 기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낙후된 도시 공간, 특히 공업 지역을 다른 용도로 변화시키는 시도는 최초로 산업화를 이루었던 유럽의 공업도시들이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 시도되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 산업도시였던 중부지역의 쉐필드는 한때 영국 철강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대규모 철강회사들이 철강 생산은 물론, 제련을 통한 정밀 공업까지 발전시키면서, 한때 쉐필드에서 영국 철강의 90%가 생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흥 산업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급격하게 쇠퇴하였습니다. 도시 중심부에 있던 철강회사와 관련 업종의 생산시설과 공장 건물들은 폐업으로 인해 비어 있거나, 극빈층의 집단거주지로 변했습니다. 

 

쉐필드 시는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도시 중심부 재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폐공장은 공연장이나 문화산업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이들을 연계하는 공공 공간을 정비하여 도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창조적 거리이자 관광 요소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또한 문화예술 및 연관된 다양한 산업을 촉진 시키고 이와 관련된 인력을 지역 대학에서 양성하여 지속적으로 고용을 늘어나도록 했습니다.
쉐필드의 이러한 변화는 유사한 쇠퇴를 경험한 영국의 산업도시들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뉴캐슬, 리즈, 노팅엄, 맨체스터, 리버풀과 같은 산업도시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고, 런던의 유명한 테이트 모던과 같은 미술관도 같은 맥락의 재생과정입니다.
비단 영국 만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은 최근까지 공통된 과정을 겪어왔습니다. 특히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강 주변이나 해안을 차지하고 있던 공장과 창고들이 새로운 기능으로 변화하면서 ‘워터프론트 개발’이라는 수법이 개발된 것이죠. 조선업의 쇠퇴로 코펜하겐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거주지로 변화된 스웨덴 말뫼의 경우나, 허드슨 강변의 항구 지역을 매립을 통해 초고급 주거 및 업무지역으로 개발한 뉴욕의 배터리 파크 시티와 같은 사례는 도시에서 공업이 빠져나간 공간을 무엇으로 메워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업 중심의 도시 공간에 ‘문화’가 스며들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사람들, 이른바 ‘창조 계급’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이들을 통한 지식기반산업과 문화산업 중심의 ‘창조도시’의 개념도 부각됐습니다. 창조도시 개념의 주창자인 미국의 사회학자 리차드 플로리다는 “학과 엔지니어링, R&D, 기술 기반 산업, 미술 분야, 음악, 문화, 심미적인 일과 디자인 분야, 또는 보건·금융·법률 등 지식기반 전문직 분야 등”을 ‘창조 부문’이라고 지칭하며, 해당 업종의 종사자들을 ‘창조 계급’으로 지칭했습니다. 도시가 이들을 유치하거나, 양성함으로써 새로운 도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도시계획가인 찰스 랜드리는 침체한 도시의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문화활동을 포함한 창조성과 혁신을 제시하면서 플로리다와는 다른 창조도시를 제시합니다.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도시계획학자인 사사키 마사유키는 지방분권 아래에서 각 지방의 전통적 문화산업과 현대의 첨단 산업간의 창조적 융합을 통한 ‘창조산업’ 육성과, 이를 통한 지역 발전을 모색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조도시’의 개념을 활용하여 노후 산업지역이나 원도심 지역을 재활성화 하려는 이론적 검토와 정책적 실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화도시 관점에서 이루어지던 지역 관광 활성화나 장소 마케팅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문화예술 인력을 발굴 및 육성하고, 관련된 산업을 유치하려는 시도들입니다. 창원의 도시재생 시범사업을 통해 형성된 ‘창동 예술촌’을 시작으로, 서울의 연희문학창작촌 등의 사례는 전국 각지에서 매우 많은 예술촌이 생겨났고, 인천의 아트플랫폼과 같은 공공이 건립한 창작공간도 늘어났습니다. 인천은 오랫동안 공업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만성적으로 문화공간의 부족에 시달렸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 부족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확장도시 인천’에서도 많은 참여 필진들이 인천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문화적 갈증을 서울을 통해서 해소하던 젊은 인천인들의 경험담을 많이 접할 수 있었지요. 인천도 이런 시도를 통해서 다양한 예술공간들과 작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밀착한 공공문화시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입니다.

 

그러나 ‘창조도시’를 통한 도시계획의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부각이 그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문화예술이 도시계획에 이용되면서 다양한 스케일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먼저, 각종 재개발 사업, 정비사업, 도시재생사업에서 개발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문화예술이 도구화되기도 합니다. 대규모 건설 사업의 목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부족한 문화예술의 공간을 일부 넣어주는 것이죠. 이것이 ‘창조도시’의 모습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어떤 문화예술을 중점적으로 유치할 것인가, 그것이 기존 원도심과 역사적으로, 혹은 인적 자원의 면으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 지역사회에 관련된 ‘창조계급’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 관련된 ‘창조산업’은 어떤 것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지역사회가 공감대를 이루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대체로 지역 사회는 얼마나 많은 예산 투자로 지역경기 활성화에 기여하는가에 초점이 남아 있고, 정치가들은 결과적으로 잘 조성된 건축물에 집중하며, 여전히 조감도 중심적인 도시계획에 익숙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화예술 종사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면 그것이 성공하여도 문제입니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고용 형태로 창작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론 불규칙적인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주변지역의 지가와 임대료 상승을 불러오고, 이는 사업의 성공에 이바지한 예술가들을 축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업지역에 이들을 위한 저렴한 주거를 공급한다거나, 문화예술인들이 주변지역에 거주할 수 있도록 바우처를 지급하거나, 사업지 주변에서 문화예술인과 임대계약을 맺는 임대인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지거나 하는 정책적 고려는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창조도시’가 과연 도시에 창조성을 공급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이유입니다.
작은 규모의 문화기반 도시재생에서도 문제는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도시재생을 활발히 벌이면서 작은 규모로 여러지역에서 ‘창조도시’ 전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 오세훈 시장 임기 중에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 규모의 창조도시 전략을 입안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가장 먼저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해온 창신숭인 지역의 경우, 자생적으로 시작된 지역라디오 등의 사업을 지속하면서도, 주민공동이용시설을 만들어 지역 내 주요 산업인 봉제 등의 교육을 지원하고, 백남준씨의 생가가 과거에 존재했던 점을 문화적 자산으로 발굴해 지역 내 주택을 매입하여 소규모의 기념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기반 도시재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지역이 이러한 창조적 소재와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1970-80년대에 개발된 단독주택지에서 다른 지역과 다른 독특한 창조적 소재를 발굴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적 구성을 가진 지역에서 새로운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다 보니 도시재생의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의 이름으로 문화예술인들이 수혈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해당 지역에 대한 애착을 요구하거나 기대하기 어렵고, 원거주민들과 잘 융화되기를 바라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부족하나마 공공의 지원을 찾아 전문가의 입장으로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려 하고, 원거주자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들의 낯선 시도들이 익숙치 않은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은 시 정부에게 자신들을 ‘소모품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느끼고, 원거주민들은 이들을 ‘아트워싱’의 전위대로 생각하며 배척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문화적 자산의 활용을 배제하고 도시계획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오히려 모든 공간과 산업에서 문화예술은 더욱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할 가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도시계획의 과정에서 현재 우리의 창조도시 전략이 고민하여야 하고 채워나가야 하는 것들이 많은 것 또한 분명합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이 것은 매우 느리고 점진적인 것이어야 하고, 현실화된 조감도가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이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업화 이래 오랜 시간 동안 해왔던 상전벽해의 도시개발의 리듬을 내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글/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리처드 플로리다(2008), 도시와 창조 계급, 푸른길.
찰스 랜드리(2005), 창조도시, 도서출판 해남

김연진(2015), 문화적 도시재생 정책으로서의 창작공간 사업과 젠트리피케이션, 서울문화재단, 제7회 서울시 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앤디 프랫(2015), 문화소비 주도 도심재생 전략의 문제점: 런던 헉스톤 사례, 서울문화재단, 제7회 서울시 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라도삼(2012), 문화도시의 개념과 문화도시화를 위한 서울시 전략의 반성적 고찰, 도시인문학연구, 4(2)
원도연(2008), 문화도시론의 발전과 도시문화에 대한 연구, 인문콘텐츠, (13)
최병두(2014), 창조경제와 창조도시에 대한 대안들: 탈소외된 노동과 재창조적 축제를 위하여, 공간과 사회, 24(4)
_(2014), 창조도시와 창조계급: 개념적 논제들과 비판,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0(1)

“당신의 동네는 ‘아트워싱’으로부터 안전합니까?”, 뉴스위크 한국판, 2017.6.26.
“영국 쉐필드: 철강도시에서 창조도시로”, 김정후 도시건축정책 연구소, (사이트 바로가기▶)




베를린에 남아있는 새

독일에서 하는 흥정

“흠, 최소 2주에서 3주정도 걸리겠는데요? 그림이 꽤 섬세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베를린 동부 외각에 위치한 레이저 컷팅 회사(LKM-GmbH)에서 받은 연락이다. 영어에서 독어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메일을 주고 받고 인턴의 도움을 받아 통화를 한 후 며칠을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받은 연락이다. 앞이 캄캄해졌다. 다음 주 오픈하우스에 맞춰서 작품설치를 하려면 최소 일주일내로 컷팅이 되어야 하는데 어떡해야 하나? 기계에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잘라주는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이게 왜 2주씩이나 걸린다는 거지? 게다가 가격도 한국과 비교해서 훨씬 비싸게 느껴졌다. 어휴 한국이라면 넉넉히 3일이면 충분할텐데.. 결국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한나, 오늘 너를 하루만 빌릴 수 있을까?(Hanna, Can I borrow you one day?)

“응? 나를 빌린다고?”

어, 우리가 너무 급해서 말이지, 아무래도 LKM을 직접 가야 할 것 같은데 알렉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독어를 못해서 말이야.

결국 사무실에 양해를 구하고 인턴 한나(Hanna)와 레지던시에서 한시간 거리인 LKM을 찾아갔다. 도착해 보니LKM은 생각보다 매우 큰 레이저컷팅 회사다. 철이 잘라지는 괴음과 공장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새하얀 곱슬 머리를 한 채 무표정하게 이야기하는 담당자를 보고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화 내내 가격도 들쑥 날쑥 약속한 날짜도 들쑥 날쑥이다. 아니 내가 아는 독일인의 이미지와 너무 다르잖아? 간결하고 직설적이고 정직한 독일인의 이미지는 착각이었던가? 어쨌든 결과적으론 가격은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3분의 1일 이상이 줄었고 컷팅은 바로 내일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흥정이 된다는 사실은 정말 의외다. 팁이 있다면 독어를 할 줄 아는 친구와 같이 갈 것, 그리고 상냥한 얼굴로 예산을 먼저 이야기 하지 말 것 두 가지다.

 

하룻밤의 마법

다음날 컷팅이 다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운반을 위해 벤을 빌렸다. 베를린에는 포니밥(Pony Bob)이란 앱이 있는데 무거운 짐을 운반해주는 소셜 네트워크다. 필요한 날짜와 시간, 장소를 올려놓으면 가능한 사람이 연락을 해온다. 베를린 시내에서 짐을 옮길 경우 택시를 타는것보다 훨 저렴해 작가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참고로 가격은1시간에 30유로지만 짐의 무게. 거리에 따라 흥정역시 가능하다. 우리 역시 포니밥에서 온 사람과 같이 갓 잘라진 반짝반짝한 철을 받아 레지던시로 돌아왔다. 철은 바로 잘랐을 때는 깨끗한 은회색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거무스름하게 변한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붉게 부식이 되기 시작한다. 작품이 설치 될 베를린 레지던시는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곳이라 철근 기둥, 벽돌 벽, 바닥 콘크리트등이 거칠게 노출이 되어있다. 그래서 이에 어울리는 자연스럽게 부식된 붉은색의 철 작품을 옥상에 설치하고 싶었다. 그래서 철을 인위적으로 부식시키기 위해 물뿌리게에 소금물을 담아 칙칙 뿌렸다. 소금물 때문에 부식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달밤에 옥상지붕에 올라가 비닐 장갑을 낀 채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에 소금물을 뿌리는 모습이란…하하하…기괴하면서 우스꽝스럽다. 그날 밤 폭우가 내렸다. 소금물을 뿌려 옥상에 세워둔 상태라 걱정이 되어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맙소사, 하룻밤 사이에 철이 빨갛게 부식이 되다니..나도 모르게 꺅 소리를 질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르텐스틸의 붉은색, 너무 매혹적이다. 아직은 완벽히 부식이 안되서 부분 부분 본색이 섞여있긴 했지만 이건 설치 후 천천히 자연스럽게 부식되는게 나을것 같아 그대로 지붕에 설치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하룻밤새 마술처럼 변해버린 붉으스름한 철을 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연금술을 부린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레지던시의 세모지붕

지붕에 비스듬히 앉아 레지던시를 내려다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다만 지붕으로 올라가는 길은 몹시 험난하다. 우선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오른쪽 끝 막다른 벽으로 간다. 그리고 천장에 대롱 대롱 매달린 고리를 주욱 밀면 천장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열린 문쪽으로 3단 사다리를 기댄다. 그리고 조심조심 천장에 열린 문을 향해 올라간다. 사다리 마지막 칸에서 양 벽의 손을 기대고 문 안쪽으로 폴짝 뛰어 올라간 후에는 천장이 낮아 허리를 90도로 구부려야 한다. 그리고 핸드폰 라이트를 킨 후 어두컴컴한 길을 30미터쯤 걷다보면 천장에서 45도 각도에 또 다른 문이 나온다. 이 문을 다시 열고 사다리 세칸을 밟고 올라오면 이곳이 바로 레지던시 지붕위다. 다행히 비가 안와 작업하기 딱 좋은 날이다. 런던에 있을 땐 사다리에 올라가는것 조차 보험에 가입 후 올라갈 수 있어 일이 두 배 세 배 더 오래 걸렸다. 심지어 보험을 들지 않으면 문제는 더 커졌다. 사다리에 올라가 벽에 작품을 거는 아주 간단한 설치조차 따로 인력을 고용해 작업을 해야 해 비용이 두 배 세 배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에선 옥상에 올라가는것도 내 맘대로, 사다리에 올라가는것도 내 맘대로다.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는다. 심지어 설치를 도와주는 독일 친구 네드(Ned)는 장갑조차 끼지않고 작업을 한다. 옥상에 와서 살펴보니 바닥에 바로 구멍을 내 고정시킬 경우 물이 샐 염려가 있어 이음새를 사용해 벽쪽으로 연결해 옆에서 고정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설치 방식 역시 그때 그때 바뀐다. 참 별일이다. 베를린이 원래 이런건지, 아님 독일이 원래 이런식인지, 작업을 하며 기존에 알던 독일인, 그리고 독일의 이미지가 많이 바뀐다. 

설치를 도와주는 Ned는 리펑(Refoung)의  멤버다. 리펑은 레지던시 지하실에 작업실을 내고 이곳의 시설물 관리에서부터 의자, 벤치, 책상, 심지어 간이식 집까지 뚝딱뚝딱 만드는 천하무적 메이커들이다. 최근엔 물탱크를 재사용하여 만든 작은 회의실이 내방 왼쪽에 세워졌는데 마치 노란 우주선 같다. 그들의 작업실인 지하실에는 여러가지 공구가 가득하고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만든다. 아쉬운게 있다면 이 모든 공구들은 이 그룹의 소유라는거다. 레지던시 자체에서 가지고 있는 공구는 하나도 없고 필요할 때마다 이들에게 빌려써야 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설치와 관련된 모든 일도 이들이 한다. 우리 역시 이런 이유로 네드와 함게 일하게 되었다. 

 

남아있는 새와 떠나간 새

레지던시 건물 오른쪽 삼각 지붕에는 알렉스가 만든 ‘남아있는 새’(The Birds Who Staye)가 설치되었다. 죽은 아기새다. 알렉스는 올 봄 이곳에서 지내면서나는것을 연습하다 떨어져 죽은 많은 아기새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떨어져 죽은 아기새의 모습에서 과거 이곳에서 근무했던, 경계를 넘지 않은 동독사람들을 떠올렸다. ZK/U는 기차역을 개조한 건물로 과거 분단시절 서베를린에 위치한 지역이었지만 동독사람들이 근무한 특이한 곳이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서독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들의 사회시스템에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경계를 넘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떨어져 죽은 아기새의 모습에서 과거 이곳에서 근무한, 경계를 넘지 않은 동독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정문 쪽 굴뚝 두개에는 마주보고 있는 크낙새, 그리고 꽃으로 둘러쌓인 두루미 왕관을 쓴 할머니 형상이 있다. 작품 제목은’떠나간 새’(The Birds Who Left)다. 함흥에서 피난 온 우리 할머니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할머니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레지던시 건물 지붕에 세웠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지켜보는, 이를테면 어처구니인 셈이다. 경계를 넘어 온 할머니에게서 두루미와 크낙새를 떠올렸다. 새에겐 경계가 없다. 작은 굴뚝위에 올라간 작품은 할머니의 피난 시절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꽃이 피어나는 왕관이다. 제일 꼭대기에는 두루미 한마리가 있다. 두루미는 막 꽃 왕관의 중앙을 넘어서고 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새, 또 가족단위로 이동하는 유일한 새가 두루미다. 동생을 남겨두고 넘어온 할머니가 두루미 같았다. 두루미는 경계를 막 넘어가는 중이다. 몸은 이미 한쪽으로 쏠린 상태이지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큰 굴뚝위에 올라간 서로 마주보고 있는 크낙새 또한 마찬가지다. 크낙새는 북한 함흥에서 주로 거주하는 텃새로 이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텃새가 이동해 다른곳에 자리를 잡는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상상했다. 크낙새 역시 경계를 넘어온 방향을 서로 바라보고있다.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다. 그녀의 삶은 이미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굴뚝에 설치된 이 설치작품은 함흥에서 온 내 할머니이자 분단된 나라에서 북한을 고향으로 둔 많은 이들의 모습이다. 할머니와 크낙새, 두루미는 경계를 넘어 온 모든 사람들의 상징일 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룻밤만에 4마리의 새가 옥상위에 올라앉으니 신기한 듯 했다. 손가락으로 가리 치켜 도대체 언제 설치가 된거냐며 놀라워했다. 베를린 레지던시 옥상에 4마리의 새를 남겼다. 이들은 이곳에서 지역 주민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온 터키 이민자 아이들,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을 바라볼 것이다. 베를린에 남기고 온 이 새들은 이들이 마주하게 될 다채로운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여러사람들에게 계속 전해지고 진화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로 기억되기를.

 

글, 사진 / 이승연

클릿슈즈를 신고 북악스카이를 달리는 꿈을 꾸는 여자. 나는 사라져도 내 이야기가 이야기로 남는다면? 나는 이런 상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서울 및 런던, 독일에서 활동 중이며 개인활동 외 영국 작가 알렉산더 어거스투스와 함께 ‘더 바이트백 무브먼트’ 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국제교류프로그램인 베를린 zk/u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독일의 뮌스터와 카셀로 떠난 미술탐방 여행

지난 7월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레지던시 입주작가들과 함께 독일에서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호 지구별 문화통신에서는 탐방에 참여한 2분의 작가님을 통해 독일의 뮌스터와 카셀 소식을 전합니다.

 


《조각프로젝트 2017(Skulptur Projekte 2017)》와 《도큐멘타 14(Documenta 14)》를 관람하기 위한 탐방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는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유럽여행을 한번쯤은 고려하는 소위 ‘그랜드투어’의 해다. 정확히 10년 전에도 유럽의 대표적인 4대 미술행사(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아트바젤)를 탐방하는 여정의 ‘그랜드투어’의 붐이 일었다. 그해 여름, 유럽에 방문했던 나는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를 관람했지만 일정이 허락지 않아 나머지 행사들은 방문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지원으로 레지던시 동료 입주작가들과 독일의 뮌스터(Münster)와 카셀(Kassel)에서 각각 열리는 두 행사를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탐방을 가기 몇 주 전부터 동료작가들과 몇 차례의 강연을 들으며 각각의 행사가 출범하게 된 역사적 계기와 현재까지의 전개과정에 대해 사전 학습을 했기에 떠나기 전부터 큰 기대와 궁금증을 안고 있었다.

조각프로젝트 2017, 시가 흐르는 도시
울창한 숲길과 호수, 낮은 건물과 그 위로 드러나는 하늘이 인상적인 도시 뮌스터에서 《조각프로젝트》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77년이다. 10년을 주기로 열려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뮌스터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라도 작품을 더 볼 생각에 마음은 분주했다. 올해 프로젝트를 계기로 새로 선보인 예술가 36명(팀)의 작업과, 1회부터 4회까지 전시 후 뮌스터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퍼블릭 컬렉션’ 38점이 도시 전역에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 및 전시공간, 공원과 외부공간에 산재한 작품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지도를 통해 도시 전체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이동해야 효과적인지 동선을 짠 후, 도시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움직여 헤매고 그곳을 체험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종이에 인쇄된 지도, 구글맵 등의 어플리케이션이 필요하고,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을 갈 때는 자전거를 빌려 이동할 수 있다.

호수가 시작되는 풀밭에서 발견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Giant Pool Balls>, 도심 골목에서 청량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니엘 뷔랭(Daniel Buren)의 <4 Gates>, 숲 속에서 만난 댄 그래험(Dan Graham)의 <Octagon for Münster>, 땅 밑으로 침하되는 경험을 주는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Square Depression>, 이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토마스 슈테(Thomas Schütte)의 <Cherry Pillar> 등의 작품들을 그렇게 찾아다니며 만날 수 있었다. 이 도시에 사는 거주자들은 이 작품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하나의 일상일 뿐이겠지만, 방문객으로서 나는 마치 도시를 지시하는 응축된 시어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일리야 카바코프(Ilya Kabakov)의 작품을 보면서 시와의 비유를 떠올렸는데, 그의 작품에서 정말 시를 만났기 때문이다. 높이 솟은 안테나 모양의 작품을 올려다보면 허공에 시가 적혀 있고 이를 읽기 위해서 관람자는 누워야만 한다. 몸을 기울여 누워 시를 읽다보다 보면 자연스레 뮌스터의 하늘을 볼 수밖에 없고 풀의 촉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뮌스터에서 작품과의 만남은 이 도시의 자연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게 하고 그곳의 삶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었다.

뮌스터의 자연과 삶의 시간이 또 다른 방식으로 압축된 작업들도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끌었다.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는 뮌스터 시에서 시민에게 할당해 준 농장을 경작하는 이들과 협업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이들에게 10년 동안 식물들과 기후의 상태를 기록하고 농장의 일상을 일기로 기록하도록 요청했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30권의 책으로 묶어 이를 전시하였다. 무려 10년이란 시간의 결과물은 동일한 형태의 책 속에 담겼지만, 책을 열면 농장에서 보낸 각자의 삶은 개별화되고 구체화되어 펼쳐진다. 직접 쓴 일기, 전통행사나 사소한 모임들의 기록, 각종 사진, 날씨보도나 경작에 관한 내용의 신문 스크랩, 때로는 아무 기록이 없는 공백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을 이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작품 중에는 삶의 면면을 다루기보다는 보다 큰 우주적 시각을 보여준 작업도 있었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작년에 폐장된 아이스링크의 내부공간을 변화시키는 작업 <After ALife Ahead>를 선보였다. 땅을 파내거나 쌓아 굴곡진 언덕과 웅덩이를 만들고, 콘크리트와 자갈들이 널려 있다. 고동과 해조류가 사는 수조가 있고 벌과 벌집이 보이고 한 켠에는 푸릇한 새싹들이 무리지어 나고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현장에서는 몰랐지만 인큐베이터에 증식시킨 암세포도 있었다고 한다. 천장에는 열고 닫는 기계장치가 장착된 피라미드 모양의 창이 있다. 생명체와 무생명이 공존하는 현장은 인간의 삶 너머 행성의 파국 및 재건과 함께 억만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듯 했다.
본질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것만 같은 미술작품도 실상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가 빠르다고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세월의 거리를 두고 보면 빠른 것처럼 보이는 그 걸음이 오십보백보이거나 제자리인 경우도 허다하다. 뮌스터의 조각프로젝트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흐른다. 도시의 자연과 일상 속에서 시가 된 조각들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 조각이라는 매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고 도시 공간과 공적 영역에서 그것을 실험해 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도큐멘타 14, 기록과 증언의 바다
독일의 중부 도시 카셀에서 열리고 있는 《도쿠멘타 14》는 《조각 프로젝트 2017》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조각 프로젝트 2017》이 조각이라는 미술의 매체를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도쿠멘타 14》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의제를 시작으로 미술의 실천과 담론을 조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최 당시의 정치·사회·경제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제까지의 도큐멘타 전통을 이번에는 어떻게 이어갈까. ‘아테네로부터 배우기’라는 이번 주제는 사회정치적 이슈와 미술 실천의 접점을 어떻게 드러낼까. 카셀과 함께 공동 개최지로 지목한 아테네를 지금의 유럽에서 지정학적으로 시급한 의제로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적 첨예함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도쿠멘타의 명성과 이번 주제가 주는 낯섦은 가기 전부터 이런저런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테네’라는 지리적 설정은 현재 유럽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묵직한 이슈라는 것은 행사의 메인 광장인 프리드리히광장(Friedrichsplatz)에 도착하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광장에 설치된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ín)의 <The Parthenon of Books>은 아테네의 파르테논을 1:1 비율로 제작한 후 건축물의 외면을 십만 권의 금서로 둘러싼 작품이다. 이곳 광장에서 나치가 엄청난 양의 책을 불태운 사건이 있었고, 도쿠멘타의 출발이 이에 대한 반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아테네 파르테논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정체성이 각인된 곳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해 온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불안정성이 노정되어 있어 위협받을 수 있다는 통찰이 이 작품과 함께 하는 것 같다.

광장의 또 다른 한편에는 히와 케이(Hiwa K)의 작품 <When We were Exhaling Images>가 설치되어 있다. 나란히 쌓아올린 오렌지색 파이프의 내부에 소소하고 사적인 물건들을 배치하여 누군가 살았음직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난민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실제공간처럼 구현한 것이다. 이를 접하면서 아테네가 시사하는 바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최근의 아테네는 그리스의 경제 위기, 협력 체제로 출범한 유럽연합의 갈등의 심화, 지구 곳곳의 난민과 이주민의 문제, 테러 위협과 삶의 불안정성으로 확장되는 여러 문제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이번 도쿠멘타는 카셀의 35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전시와 퍼포먼스 외에도 영화, 다큐멘터리 상영과 퍼블릭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두 관람하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주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예전의 우체국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하는 노이에노이에갤러리(Neue Neue Galerie), 도큐멘타 전용 전시관인 도큐멘타 할레(Documenta Halle), 노이에갤러리(Neue Galerie), 카셀중앙역(Kassel Hauptbahnhof) 등 주요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관람하였다. 전반적으로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조한 작업보다는, 크고 작은 역사, 대안적인 기억들, 주목받지 못했던 사건의 기록과 내러티브를 집요하고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작업이 많았다.

방대한 양의 작업들 속에서 내가 대면한 것은 도쿠멘타의 명칭처럼 기록과 증언이었다. 수많은 시각이미지와 자료들이 전쟁과 역사, 개인의 기억과 삶의 흔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었다. 기록과 증거의 목록은 방대했지만, 무엇보다 주변적이고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더 관심이 갔다. 프리데리치아눔의 지하 전시장에 상영되는 벤 러셀(Ben Russell)의 작품 <Good Luck>은 수리남의 불법 금광과 세르비아의 국영 구리광산의 광부들과 작업현장,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노이에갤러리에서 전시된 <Rose Valland Institute>는 유럽의 유대인이 소유했던 재산의 몰수와 그 영향력을 조사하고 기록한 예술 프로젝트이다. 전쟁 후에 나치가 몰수한 예술품의 반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전시장에는 이와 관련한 자료들을 전시하였다. 또한 생전에 카셀에서 활동한 예술가이자 두 팔을 모두 잃어 장애가 있었던 트랜스젠더 로렌자 뵈트너(Lorenza Böttner)의 드로잉, 페인팅, 그리고 아카이브 자료들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역동적이었던 개인의 삶을 증언하고 있었다.

여행은 미적·문화적 산물을 통해 도시의 면면을 이해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예술작업의 의미가 도시의 맥락 속에서 확장되는 효과를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여정이다. 다른 삶과 도시, 그곳의 문화를 접하는 경험은 늘 새로운 관심거리와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계기가 되곤 한다. 도큐멘타 참여작가인 올리버 레슬러(Oliver Ressler)의 작품에 나온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어쩌면 오래된 질문을 되뇌고 있다. 도쿠멘타에서 접한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들에 치열하게 반응하는 미술실천들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시아 한국의 상황 속에서 시차와 거리감을 느끼는 내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이정은

삶과 사회에 대한 소소한 관심들을 전시기획과 미술비평으로 풀어내며 살고 있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있다.




[큐레이션 콕콕] 대통령의 여름 독서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에 어떤 책을 읽을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독서와 ‘가을’만큼이나 독서와 ‘여름휴가’는 낯설지 않은 조합입니다.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처음 공개한 건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독서광이자 연설가였던 그는 망명생활과 투옥기간 중에도 광범위한 독서를 했고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존 나이스빗 등 미래학자의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1999년 휴가 때는 『지식 자본주의 혁명』과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맹자』를, 2001년에는 『미래와의 대화』, 『비전 2010 한국경제』, 『배는 그만두고 뗏목을 타지』 등을 탐독했네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달리는 차 안에서도 책을 읽고, 30여 분 만에 책 한권을 떼는 속독파였습니다. 휴가 독서 목록에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넣었고 당시 100만부 이상 팔리기도 했죠. 『넛지』 같은 경영서와 『쉽게 읽는 백범일지』, 『로마인 이야기』 등의 교양서적도 읽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특히 책 읽기를 강조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재임 기간 공식석상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 『대한민국 개조론』 같은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2003년 여름휴가 때는 IBM의 기업혁신 과정을 다룬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진보학자가 지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물리서적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등을 독파하기도 했습니다.

한 칼럼니스트는 노 대통령을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고, 독서의 내용을 현실 정치에 활용하려 했다. 장차관 워크숍이나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 같은 공식석상에서도 적잖은 책을 추천했다”며 ‘자유분방한 다독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한국출판인회의는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문구를 내건 독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세계는 인간중심, 문화중심의 사회로 바뀌고 있다. 이런 사회가 되려면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쳐나야 한다. 책이야말로 국민 창의력과 상상력의 근본 원천”이라고 강조하며 유력 후보들이 책 읽는 모습을 SNS 등에 올렸죠.

하지만 지난달 공개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독서’는 없었습니다. 67번에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가 있고 68번에 ‘창작 환경 개선과 복지강화로 예술인의 창작권 보장’이 있지만 독서와 도서관, 서점 관련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며 ‘독서신문’이 아쉬움을 토로했네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타 출판사 책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름휴가에 읽는(읽을, 읽은) 책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으로(?)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책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인데요,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읽었다며 “마음으로 공감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은 해마다 대통령의 여름휴가 도서를 공개합니다. 2015년 ‘오바마의 책’ 6권은 제임스 설터가 34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자 유작 『올댓이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프랑스 소녀와 독일 소년의 엇갈린 삶을 그린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환경과 인종 문제를 다룬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과 타너하시 코츠의 『세상과 나 사이』, 그리고 JP 모건, 록펠러 등의 일대기로 유명한 전기작가 론 처너가 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일대기 『워싱턴: 한 사람의 일생』였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독서가였다고 하는데 책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의외로’ 다독가였고, 백악관에서 2년간 186권을 완독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대통령의 모습은 언제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 최근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국민들이 책을 멀리하자 정부 차원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독서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독서 캠페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책 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은 자연스럽게 손에 책을 들게 될 것이다.”([김욱동 칼럼] 중에서)

‘대통령의 책’은 아니지만 여름 휴가지에서 읽으면 좋은 책이 각종 언론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일찌감치 올 휴가철에 읽을 책 5권의 목록을 내놨는데 그 중에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3인방’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도 모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네요. 차례로 『기사단장 죽이기』, 『잠』, 『위험한 비너스』입니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하계 추천도서에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 ICT사업 관련 도서가 많습니다. 『1등의 전략』(히라이 다카시/다산3.0), 『보이지 않는 영향력』(조나 버거/문학동네), 『퍼펙트 체인지』(송재용 외/자의누리),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필립 코틀러/더퀘스트), 『제4의 물결이 온다』(최윤식 외/지식노마드), 『플랫폼 레볼루션』(마셜 밴 엘스타인 외/부키),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미래』(KT경제경영연구소/한스미디어) 등이 있네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와 서평가들이 추천한 ‘2017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권’은 여기(국립중앙도서관 페이지 바로가기▶)를 참고하세요. 독서는 역시 여름입니다.

 

* 본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1. [대한민국은 휴가 중②] 책과 함께 힐링 즐긴 역대 대통령들
    2017. 7. 10. 뉴스포스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故 노무현 대통령이 여름휴가 중 읽은 책들.. 휴가법
    2011. 8. 3. 사람세상 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한국출판인회의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캠페인
    2017. 4. 21. 경인일보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칼럼] 100대 국정과제, ‘독서’는 없었다
    2017. 7. 20. 독서신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007’ 탐독한 케네디… 부시는 ‘링컨 전기’ 섭렵
    2015.8.14. 경향신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朴 대통령 “결국 北은 자멸할 수밖에 없을 것”
    2016.10.5. 프레시안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김욱동칼럼] 책 읽는 대통령
    2017. 7. 16. 세계일보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8. 여름 휴가철 책 고르기
    2017. 7. 14. 문화일보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9. 여름휴가, 책과 함께… KT경제경영연구소, 추천도서 발표
    2017. 7. 11. 디지털 데일리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하늘아래 미술관 미리 혹은 다시 보기

지난 7월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레지던시 입주작가들과 함께 독일에서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호 지구별 문화통신에서는 탐방에 참여한 2분의 작가님을 통해 독일의 뮌스터와 카셀 소식을 전합니다.

 

‘하늘아래 미술관’이라는 모토로 10년마다 열리는 공공미술의 현장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Münster Skulptur Projekte)와 5년을 주기로 진행되며 ‘미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실험 현장’이라 불리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kumenta)가 동시에 펼쳐지는 이번 독일의 여름은 유난히 더욱 뜨겁다. 필자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한 2017 IAP 예술현장학습-독일 현대미술 탐방 프로그램의 일한으로 현장을 방문해 세계적 미술행사의 열기를 직접 체험하였고 그 중에 뮌스터시의 2017년 조각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어떻게 예술과 도시가 함께 어울려 40년의 긴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생각 해 보고자 한다.

올 여름 인구 32만 명 독일 북서부의 중소도시 뮌스터(Münster)에서는 1977년부터 시작되어10년 주기로 도시 전역에서 펼치는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행사가 6월 10일에서 10월 1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매해 전 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하는 LivCom-Awards 기관에서 뮌스터 시는 2004년 1위를 수상할 정도로 복지와 자연, 문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며 인구의 20프로에 가까운 6만 여명이 대학생인 교육도시이고 뮌스터 돔(St.Paulus Dom)을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 중세시대의 성당이 즐비한 가톨릭 종교의 도시이기도 하다.

구서독의 평온한 작은 도시였던 뮌스터에서 지금은 행사 방문자 수만 60만 명에 가까운(2007년 기준) 조각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첫 구상은 1973년 뮌스터 시에서 구입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의 시민들에겐 상당히 ‘모던한’ 작품이었던 조각가 조지 리키(George Rickey)의 ‘3개의 회전하는 사각형’(Drei rotierende Quadrate)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반발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에 대한 논란과 토론이 계속되자 당시 서독의 주립은행이 1975년 당시130,000DM(65,000유로)가격을 지불하고 조지 리키의 작품을 뮌스터 시에 선사하기로 결정하고, 베스트팔렌 주립미술관 관장 클라우스 부쓰만(Klaus Bußmann)과 세계적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Kasper König)는 뮌스터 시민들에게 현대예술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더욱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로 1977년부터 예술가들 초대해 뮌스터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이거나 또는 지형적인 관계를 예술과 접목시켜 예술과 공공성의 관계를 토론할 수 있는 전반적인 실험장의 형태로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올해 5회째를 맞이하는 조각프로젝트는 카스퍼 쾨니히(Kasper Koenig)가 1회부터 꾸준히 총감독을 맡고 있고 브리타 페터스(Britta Peters)와 마리아네 바그너(Marianne Wagner)와 큐레이터로 함께 준비했으며 19개국의 작가 35명이 참여하고 있다. 준비기간 동안 세 개의 매거진이 발간되었는데 첫 번째 ”Out of Body”는 퍼포먼스에 관한, 두 번째 “Out of Time”은 시간, 마지막으로 “Out of Place”는 장소특성화에 관한 테마를 가지고 사회와 신체, 시간, 장소의 개념들이 점점 증가하는 디지털화 시대에 어떻게 달라지고 또한 예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전시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 조각프로젝트에 초대된 세계적인 작가들은 꾸준히 “예술과 공공장소 그리고 도시의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관한 작업을 진행하고, 여타 2-3년 주기의 비엔날레나 아트페어 성격의 행사와는 비교가 안되는 10년이라는 오랜 준비기간 동안 스스로 전시할 공간을 찾아서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들이 시내 중심가와 시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산책로 프로메나데(Promenade)주변과 하펜(Hafen), 아호수(Aasee)를 비롯한 시 전역에 전시되기에 많은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작품을 자연스럽게 향유하고 또한 뮌스터 방문객들에겐 시내 안 밖으로 도보나 자전거를 타고 조각 작품을 찾아다니며 입장료가 없이 누구나 부담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올해는 예외적으로 Marl이라는 뮌스터 근교 작은 도시에서도 몇 작품을 선보이며 각 도시의 공공콜렉션을 교환해 다른 장소에서 선보이고 또한 이전보다 관람객과 상호작용을 실험하고 질문하는 퍼포먼스와 비디오작업들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등 이 시대의 조각의 개념과 공공영역의 예술에 대한 재규정을 반영하며 예술을 통해 비판적 경험 장을 만들어 다양한 장르의 사회적, 철학적, 정치적 관계를 질문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카셀 도쿠멘타에 참여하기도 했던 프랑스출신의 피에르 위그는 2016년 폐장되어 곧 허물어 질 아이스링크에 3미터의 땅을 파고 피라미드 모양의 개폐식 천장의 창문을 통해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보여준다. 우리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몰두하면서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레퍼토리의 경계를 없애고 예술, 기술 그리고 자연의 결합 속에서 ‘실재’에 관한 개념을 확장시킨다. 사라져가는 공간을 재해석해서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이 작업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이 즐겨 찾던 장소가 허물어지기 전, 그 공간 안에서 새롭게 펼쳐진 작업을 통해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며 현대 미술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뉴욕에서 작업하고 있는 니콜 아이젠만 역시 뮌스터 시민들의 산책로 프로메나데(Promenade)주변에 연못을 설치하고 다섯 피규어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통상 마주치기 쉬운 장면이지만 장식적이며 고전적 방법을 벗어나 매력적이거나 영웅화된 형상이 아닌 뭔가 어색하고 반영웅적인 형상을 통해 공공장소 안에서 오래된 연못의 장식품으로써의 조각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일상적이나 새로움을 담은 이 작품 역시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터키출신의 아이세 에크만은 뮌스터 항구 북쪽의 주말이면 항시 관광객이 즐비한 강기슭과 상대적으로 공장지대의 음습한 남쪽기슭을 가로지르는 물속에 수면보다 살짝 낮은 길을 만들었다. 분단되어 보일 수 있는 양쪽 지역의 공간을 ‘물 위‘ 다리가 아니라 ‘물 속‘ 다리로 연결시켜 관람객들이 마치 물위를 걸어 다니는 듯 직접 체험 할 수 있다. 여름철의 친절한 이벤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시(詩)적이면서도 점차 수송과 운반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뮌스터 항구의 장소를 선택해 뮌스터 특정장소의 의미를 되짚어보거나 유럽의 난민문제나 종교적 상징 등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주변 환경과 시민, 관광객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작업을 통해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2013 베니스비엔날레 영국 대표 작가였으며 2004년 터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제레미 델러는 이번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에서 2007년부터 10년간 진행해 온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10년전 54개의 뮌스터 주말정원클럽에 2017년까지 각자의 정원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인 사소한 일부터 작물의 성장 과정이나 기후의 변화 등을 자연스럽게 사진이나 글, 스케치로 기록하며 ‘정원일기’를 작성해 줄 수 있는지 제안했고 그 중에 다양한 국적의 주말정원클럽의 시민들이 만든 지난 10년간의 기록을 대략 30권의 녹색 정원일기장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델러의 작품은 시민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예술과 문화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사회적, 환경적, 미학적 기능 안에서 삶을 어떻게 함께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지 실험하고 또한 주변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역과 현지인이 배제된 단기간의 보여주기식 공공기획과 행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데 작가의 모습보다는 지역주민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흥미와 관심을 갖고 10년 동안 참여하여 진행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독일대표작가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히토 슈토이얼은 영상작업과 설치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Hell Yeah We Fuck Die‘ 라는 제목은 온라인 음악잡지 빌보드지 중에 지난 10년간 영어 음악차트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었던 다섯 단어의 나열이다. 이 단어들은 다시 음악작곡을 위한 베이스역할을 하고 다시 빛나는 글자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로버트 실험장면의 영상은 LBS건물 (작품이 전시 되고 있는 장소)이 건설되기 전 기존에 위치했던 옛 뮌스터 동물원과의 장소특정적 관계를 통해 동물들의 생존지역과 현대산업기술의 관련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새롭게 인식하며 고민하게 만든다. 또 다른 영상작업에서는 터키의 남동쪽이며 시리아와의 국경지역인 Cizre배경으로 핸드폰 SIRI 소프트웨어를 연결시켜 전쟁 속에서 컴퓨터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대략 살펴본 올해의 전시 작품처럼 40년 전, 뮌스터 시민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자 시작된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어느새 10년 주기라는 호흡처럼 서서히 세계의 공공미술의 모범이 되어가고 있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당시의 뮌스터 2007년 조각프로젝트를 되돌아보면 뮌스터 시민들은 100여 일간의 프로젝트 진행기간 동안 전시를 본다는 생각보다 여유롭게 산책하듯 주변의 작품들을 지나치고 발견하며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맞이했다. 시나 개인 기증자가 구입한 작품은 영구 설치되어 더욱 더 일상의 한 조각으로 도시에 존재하게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가 한 번도 도시를 직접 변화 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작품이 도시에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일부분으로 흡수되어 공공장소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프로젝트로서 역할을 하고 진행되길 개인적으로 바라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10년 후 다시 뮌스터를 방문 했을 때에는 여전히 ‘조각’이 무엇이라 불리며 이해되고, 어떠한 작업들이 익숙함과 새로움의 관계 속에 어떤 모양새로 하늘아래 펼쳐질 지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안상훈

서른 나이에 독일로 떠나 뮌스터, 베를린에서 10년 넘는 시간을 흘러 다니다가
올해 귀국해 인천아트플랫폼 8기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큐레이션 콕콕] 여름의 (감)염병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입니다. 무더위를 식히러 떠나야죠. ‘거기’가 ‘여기’처럼 무덥더라도 일단 떠나고 봐야죠. 즐거운 휴가를 망치지 않으려면 주의사항에 감염병 체크를 빠트려서는 안 됩니다. 음식도, 풀숲의 진드기도, 모기도 조심해야 해요.

살모넬라증과 병원성 대장균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파됩니다. 어패류를 충분히 조리하지 않고 먹으면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릴 수 있죠. 풀숲이나 야외에서 진드기에 물리면 쯔쯔가무시증 또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모기에 쏘이면 지카바이러스, 말라리아, 일본뇌염 등의 진단을 받을 수 있네요.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감염병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히 쯔쯔가무시증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의 발생건수는 지난해 대비 280%(760건)나 늘어났네요.

국외유입 감염병 사례는 2014년 400명에서 2015년 491명으로 23% 증가했고, 지난해부터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국가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현재 국내에 유입된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는 21명으로, 동남아 여행자가 16명(76%), 중남미 여행자가 5명(24%)입니다. 지카바이러스는 모기 외에도 성접촉, 수혈, 모자간 수직감염, 실험실 등을 통해서도 감염된다고 하네요.

감염병과 전염병은 같은 말일까요?

세균, 스피로헤타, 바이러스, 진균, 기생충과 같은 병원체에 감염돼 발병하는 감염병이 다수에게 전파되는 걸 전염병(傳染病)이라고 합니다. 전염병은 ‘염병’이라고도 불리네요.

빨래판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득득 문지르면 시끄러운 소리 듣기 싫어 역신이 물러간다는 염병 치료법이 있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폐옹과 정종, 적취 등으로 표기했는데 폐옹은 폐렴 또는 폐결핵, 정종은 풍사(風邪)로 피부에서 독기가 발생해 가렵고 청황색의 고름이 나오는 걸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홍역과 콜레라, 수두, 장티푸스 등이 다수 발병했는데 콜레라는 1819년에 중국에 들어와 1820년에 중국 대륙을 휩쓸고 1821년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뒤, 1822년에는 일본에 파급됐습니다. 아시아가 동시대에 공통된 질병을 앓은 거죠.

1885년 광혜원이 문을 열면서 우리나라는 서양의학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915년 2월에 ‘전염병예방령’을 발포하고 그해 8월 세칙을 시행했네요. 20세기 초반까지 극성을 부리던 천연두, 발진티푸스, 재귀열, 성홍열, 트라코마, 말라리아도 거의 사라지고, 인플루엔자, 전염성 감기, 살모넬라식중독 등도 거의 볼 수 없는,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비전염병 창궐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아, 한국전쟁 이후 잠깐 혼란기를 겪긴 했어요.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행하던 무속 의례다.

불과 얼마 전인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첫 환자 확진 후 38명이 사망하고 1만 6천여 명이 격리됐었죠.

메르스 최초 감염자는 중동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5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습니다. 68세 남성이었죠. 이 환자는 바레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카타르를 거쳐 돌아왔습니다. 이후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 두 차례 병원을 방문했으나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고, 세 번째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3일간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는 메르스에 대한 사전 정보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이 해외 여러 나라를 돌았다는 걸 밝히지 않았고, 미진한 대응은 병원 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진단이 늦어졌고 이후에 벌어진 일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들으셨을 겁니다.

모 기업에서 하는 사회공헌 활동 중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젝트’라는 게 있습니다. 발병 후 백신을 개발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감염병을 감지하고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A라는 사람이 여러 나라를 돌고 입국했을 경우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직전 방문 국가만 확인 가능합니다. 하지만 통신사는 고객의 로밍서비스 자료로 모든 방문국을 체크할 수 있죠. KT는 로밍이나 위치 정보로 메르스 사태 진화에 기여한 경험을 토대로 첨단 방역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와 MOU를 맺고, 고객이 바이러스 위험지역에 갔다는 걸 질병관리본부에 알려주면 본부에서 문자메시지 등으로 예방법 등을 전달하는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가 반영됐습니다. 공동 선언문은 보건 위기 대응을 위한 보호조치와 보건 시스템 강화를 위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과 국제협력을 강조했죠. 구체적인 방안으로 “인류의 거대 이동이 주요 보건 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인지하며, 이 주제에 관해 국가와 국제기구가 협력을 강화하도록 독려한다”고 적시했네요.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으로 인한 손실은 한 해 약 69조 원이라고 합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질환이에요. 동물이 사람에게 옮기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쉽죠.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염병 중 49%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AI는 닭과 칠면조, 철새 등 조류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 감염되는 병이에요.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조류가 사육 중인 닭이나 오리와 접촉하거나 배설된 분변을 통해 전파되고 그게 사람에게 옮겨오는 거죠.

한국인이 AI에 감염된 사례는 없지만, 질병관리본부는 AI를 면밀한 주의가 요구되는 전염병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고열, 기침 등 독감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폐렴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특효약이 없어 치사율이 50%라고 하네요. AI 유행 시기에는 조류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소화기 질환이 아니므로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상관없고요.

지자체들은 여름철 감염병 예방관리를 위한 질병정보 모니터망 지정, 하절기 비상방역 근무, 하천변/공중화장실/침수 우려/집단수용/쓰레기/가축사육/공원 등의 방역과 소독, 소외계층 대상별 맞춤 방역, 주거지역 정화조 친환경 유충구제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교육청은 학생감염병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모의훈련을 실시하네요.

일상에서는 손을 자주 씻어야겠죠. 마시는 것, 먹는 것 조심하고요.

 

* 본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1. 휴가철 주의해야할 감염병은 무엇이 있을까?
  2017.6.28. 쿠키뉴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빅데이터로 감염병 확산 막는다…세계적 관심
  2017.7.10. 채널A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韓 첨단 ICT, 전 세계 감염병 확산방지 기여한다
  2017.7.9. 아시아경제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AI, 그것이 알고싶다
  2017. 1. 1. 쿠켄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시민과 함께하는 감염병 예방관리
  2017. 6.19. 더데일리뉴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1.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5월 30일에 있었던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송현동 구 ‘애경사’ 건물의 철거를 계기로, 인천의 근대 건축물이 다시 재조명되는 듯 합니다. 인천시는 내년부터 인천시 내 근대 건축물을 전수 조사하기로 하였고, 각 구청에 근대 건축물 보호를 요청하였습니다. 인천시는 알려지지 않은 근대 건축물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니, 이번 일을 계기로 건축 유산이 더 주목받고 보호받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낡고 오래된 건물로만 이해되던 근대 건축물이 보호의 대상으로 존중되고, 그것을 넘어 새로운 도시 명소로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1년의 일로, 이 제도를 계기로 만들어진 지 50년 이상 된 건조물이나 시설물 중 “근대사에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큰 것, 지역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고,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한 시대의 조형의 모범이 되는 것” 등이 등록문화재 지정을 통해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등록문화재 소유자에게 유지와 보수 비용, 세금 등의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이 훼손되지 않고 꾸준히 관리될 방법을 만들게 되었고, “개조, 내부변경, 부분변경, 창조적 모티브의 채용”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현재에도 사용가능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근대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활용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일종의 복고주의가 유행하면서 잘 보존되고 활용되는 근대건축물이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를 연상시키는 상업시설, 패션이나 디자인에서 레트로한 경향이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또한, 건축과 인테리어에서 속칭 ‘인더스트리얼 모던’이라고 불리는, 인테리어 요소에서 구조나 설비의 날 것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혹은 그것을 모티브로 이용하는 방법들이 유행하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80년대 건축된 단독주택의 리모델링이 부각되고, 북촌 한옥마을로만 이해되던 도시형 한옥이 전국 각지에서 재발견되며, 나아가 근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레플리카가 아닌 오리지널로써의 근대 건축물들이 다시 도시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천, 서울, 부산, 군산 등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들은 도시 역사의 스토리텔링을 위하여 이러한 근대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관광 자원화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1900년대 초중반 건립된 근대 건축물, 특히 서양식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재발견하고 건축물에 남아 있는 기억을 되살려 도시의 삶에 역사의 깊이를 심기엔 무척 어려운 부분이 한 가지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건립되어 행정기관이나 금융기관 등으로 사용된 건물이고, 이것을 ‘기념’하기에는 이 건축물들에 남겨진 역사적 기억은 침략과 고통의 역사이기에 적절치 못하다는 벽에 부딪히는 것이었습니다.
근대 건축물을 통해 역사 공간을 구성하고 관광 자원화 하려는 시도와 그 공간의 실제 기억 사이의 딜레마에 처한 도시는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근대에 들어서 서구 세계와 접속하면서 해안 주요 도시에 열강의 조계를 내어주어야 했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의 수많은 서양식 건축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의 열강 침략의 유산입니다.

이 중에서 상하이의 경우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줍니다. 상하이는 오래된 구도심과 옛 조계 지역을 재건하면서, 이런 역사적 기억을 긍정적 기억으로 치환하는 시도를 합니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서양 각국의 침략의 역사였던 조계 지역은 실제로는 중국인들이 더 많이 섞여 살았던 일종의 ‘국제도시’로 이해됩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상하이의 역사적인 대구(對句)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 해석을 기반으로 상하이의 오래된 주거지와 조계지는 과거 중국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한 ‘상하이 모던’의 상징 공간으로 이해되고, 오늘날 국제적인 금융 도시인 상하이의 원조와 같은 모습으로 관광 자원화 됩니다. 신텐디, 티엔즈팡과 같은 지역이 근대 주거 건축물 등이 적극적인 외부 보존과 내부 수리를 거쳐 가장 떠오르는 상업 공간과 관광지로 변신한 것입니다.

굳이 근대 건축물을 관광자원이나 공공시설, 전시관 등으로 이용하지 않더라도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변화한 도시에 걸맞게 증축되어 업무시설이나 상업 건축물로 이용된 사례들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2006년 완성된 뉴욕의 허스트 타워는 본래 대공황 시기에 6층으로 지어진 업무용 건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은 노후화되고, 기업은 더 많은 사무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이런 경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허스트 타워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철거와 재건축 대신 증축을 택합니다. 기존 건축물의 외면을 살리면서 내부에서 기존 건축물을 기단 삼아 182m의 초고층 빌딩을 세운 것입니다.

일본 도쿄의 중심가인 마루노우치 지역도 오래된 업무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비슷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근대건축 보존을 독려하기 위해서 외관을 보존하면 내부 개조와 용도 전용을 폭넓게 허용해주고, 보존에 대한 보상으로 재건축 과정에서 용적률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1894년 은행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미츠비시 이치고칸 뮤지엄처럼 증축 없이 내부 개조를 통해 재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쿄 중심가에서는 1990년대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근대건축물을 보존하면서 고층 증축을 하는 사례가 확산되었습니다. 1993년 기존 건물의 2개 입면만을 남기고 고층으로 증축한 도쿄은행협회빌딩, 1995년 21층의 고층 건물을 증축한 제일생명관(DN타워 21), 1920년에 건설된 건축물의 1/3을 보존하며 초고층 빌딩으로 증축 및 재개발한 일본공업클럽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마루노우치가 본격적으로 재개발되면서 2005년 미츠이무로마치 타워가 건립되고, 2013년 고층 증축과 함께 중앙우체국 건물의 입면과 내부구조 일부를 보존하면서 내부를 쇼핑몰로 개조한 ‘키테’(KITTE)등이 개관하면서 마루노우치는 일본 경제의 황금기 기억을 장소에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심지어 도쿄에서는 이미 없어진 근대건축물을 사진과 도면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재현된 신바시 정류장은 신바시-요코하마 간의 일본 최초의 철도의 시점이었습니다. 1997년 업무용 빌딩과 주택 등으로 재개발되어 사라진 이 역은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가 드러났는데, 옛 건물에 대한 자료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재현된 건물이 원형과 다름을 명시하면서까지 이 건물을 복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박물관에 밀어 넣지 않고, 도시 안에서 계속 생명력을 갖고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한 다양한 모습의 결과들입니다.

한때 낡은 주거지역에서 도시 미화와 관광을 목적으로 ‘벽화마을 만들기’가 대 유행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화동, 동피랑 마을, 부산 감천마을 등의 사례를 통해서 알려진 벽화 그리기는 무수한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되었지만, 대부분 사후 관리에 실패하거나, 개성 없는 복제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이제는 잘 논의조차 되지 않는 벽화마을의 사례는 각 도시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는 방법으로 ‘요즘 유행하는 어떤 것’을 잘 찾아 가져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오히려 도시의 스토리텔링과 정체성 찾기에 더 좋은 방법은 도시에 숨겨져 있는 기억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발견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으로서의 도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때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여러 작은 기억들을 찾아내어 현재에 다시 내놓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과거의 향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도시의 작은 역사가 베낄 수 없는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찾아내어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도시 풍경을 어지럽힌다고 무시 받았던 오래된 건물들을 적극적으로 재이용하려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은 식민통치의 상징이어서 제거의 대상이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고도성장기의 건축은 건축적 철학이 부족하거나, 건설 수준이 조악하다고 비판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떠한 건물들은 그 건물이 있었던 동안 간직해온 역사를 통해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은 낮고 낡아서 수익성이 떨어지니 고층의 산뜻한 현대적 건물로 재개발해야 한다’는 과거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근대 건축물을 통해 인천의 100년 전을 지금도 느낄 수 있듯, 신포동의 극장들과 번화가, 송림동과 만석동을 채우던 공장들, 양조장들과 같은 50년 전의 구도심의 여러 기억 또한 현재에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개항과 산업화를 관통해오며 인천은 다른 도시들보다 더 많은 기억과 이야기거리를 쌓아왔음에도 더 현대적인 도시와 발전된 미래를 좇아오느라 그것들을 잊어왔습니다. 오래된 건축물과, 그 안에 있는 오래된 기억들을 찾아내어 기억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인천경제자유구역과 같이 미래를 꿈꾸는 인천의 다른 한 편에 깊은 역사를 채워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글/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 한지은(2014), 도시와 장소 기억,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 문화재청(2005),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등록문화재 제도 안내, 문화재청
– 이토 타케시(2006), 도쿄에 있어서 근대건축보존의 성립과 전개, 서울학연구, (27)
– 이현정,윤인석(2007), 한국 근대건축의 보존과 활용-명동지역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28)
– 임태희,이시다 준이치로(2005), 일본 근대건축 보존개념의 변천에 관한 연구-1970-1999까지의 월간 『신겐치쿠(新建築)』誌를 대상으로-, 대한건축학회 논문집-계획계 21(3)

 




베를린의 예술가 부엌

마약 하는 여자
‘쏴아악’ 수돗물이 쏟아지고 ‘탁!탁!탁!’ 마늘이 잘린다. 그릇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고 파리는 ‘윙~윙’거리며 자꾸 몸에 달라붙는다. 싱크대 구석에는 비눗물과 식초를 담은 컵이 놓여있다. 영국 작가, 알렉스가 야심 차게 만든 ‘파리 잡는 컵’을 들여다보니 파리 몇 마리가 둥둥 떠 있다. 흠, 효과는 있지만, 부엌에서 익사한 파리를 보자니 영 찜찜하다. 냉장고를 여니 고약스러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누군가 먹다 만 파스타를 그대로 넣어두었다. 벽지에 바르는 풀이 바짝 말라붙은 것 같다. 썩은 양파, 끈적끈적한 파프리카도 있다. 도대체 누구 거야!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인상을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냉장고가 더럽건 말건 누군가는 부엌 한쪽에선 막 요리한 노란 커리를 먹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슈퍼에서 사 온 독일 소시지가 크기만 하지 짜다고 불평한다. ZK/U 베를린 레지던시 부엌은 지나치게 활기차다. 눈을 감고 여기서 나는 온갖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엉뚱하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기분이다. 머나먼 이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란 느낌 때문인가? 이래저래 애증이 엇갈리는 레지던시 부엌에서 나도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미숫가루를 꺼내 든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물과 섞어 미숫가루를 타는데, 옆에서 토마토를 자르던 아일랜드 작가, 레베카가 자꾸 힐끔거린다. 그녀에게 물었다. 한번 마셔볼래?

“정말?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무슨 마약처럼 보이는데… 하하, 영화에서 많이 봤잖아? 지퍼 백에 담긴 밀수품 가루…”

풉! 그러고 보니 색이 좀 다르긴 해도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나는 담배도 안 피우는데 순식간에 베를린에서 마약 하는 여자가 돼버렸다. 그나저나 미숫가루를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건 미숫가루라는 건데, 콩을 갈아 만들어. 아, 콩뿐만 아니라 콩이랑 비슷한 쌀, 보리 같은…뭐라 그러지? 그러니까 ‘콩 친구들’ 있잖아? 콩이랑 비슷한 곡물들…’

멥쌀이 영어로 떠오르지 않아 대충 ‘콩 친구들’이라 설명하면서 나도 속으론 좀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작가들까지 귀를 쫑긋거리며 우리 대화에 끼어든다. 그들이 진지하게 묻는다. ‘콩 친구들’,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미숫가루에 꿀이나 설탕 대신 다른 걸 넣으면 어떤지… 아이고,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 후 미숫가루를 한 모금 입에 넣을 때까지 한참 시간이 흘렀다. 아이, 못 살겠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방송 쿠킹쇼
ZK/U 베를린 레지던시엔 작업실이 열세 개 있다. 그런데 부엌은 달랑 하나뿐이다. 처음엔 어떻게 스무 명이 부엌 한 개를 같이 쓰나 의아했는데 뜻밖에 잘도 굴러간다. 매일 누군가와 같이 써야 하는 불편만 빼면 말이다. 부엌 찬장엔 각자의 방 번호가 붙어있다. 냉장고 역시 방 번호에 따라 칸칸이 나눠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곳을 침범했다간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웬일이람. 베를린에만 가면 천장 높은 유러피언 키친에서 우아한 브런치나 다이닝을 즐길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단체생활이 따로 없다. 게다가 부엌 한가운데 긴 테이블은 ‘요리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다들 나란히 서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러 요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시청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처음 여기서 지내기 시작했을 때는 부엌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내가 뭘 먹는지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다른 작가들 시선이 불편했다. 게다가 내가 뭘 만드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과정이 드러나는 것도 어색했다.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단, 피곤하거나 괴로워 조용히 밥만 먹고 싶은데 누군가 자꾸 말을 거는 날만 빼고

레지던시에서 열리는 이벤트 중 하나는 ‘Thursday Dinner’다. 부엌이 가장 활기찬 날이다. ‘목요일 저녁’이란 이름 그대로 작가들이 매주 돌아가며 음식을 준비하는 날이다. 식사 후에는 ‘아티스트 토크’가 이어진다. 어쩌면 단조롭다고 할 수 있는 레지던시 생활에서 이번 주 ‘목요일 저녁’은 누가 하는지, 무슨 음식을 하는지는 이곳의 빅 이슈다. 

지금 이곳엔 이집트, 캐나다, 호주, 한국, 영국, 스웨덴, 중국, 독일, 아일랜드, 이란, 벨기에, 칠레 등에서 온 작가들이 머문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작가들이 요리하다 보니 종종 흥미로운 일이 종종 생긴다. 이집트 작가, 라미스(Lamis)는 호무스(hummus)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직접!

“아주 간단해, 일단 병아리 콩을 갈고 거기에 식초, 레몬, 마늘,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섞어. 그리고 ‘적당히’ 소금과 후추를 뿌려주면 되는 거야, 기호에 따라 ‘적당하게’. 간단하지?”

그녀가 알려준 대로 ‘적당히, 적당하게’ 넣고 뿌리는 게 간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중동 음식 중 하나가 호무스다. 한국에서 종종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였는데 베를린 레지던시에서 이집트 작가에게 호무스 만드는 법을 배울 줄이야! 그녀가 알려준 대로 호무스를 만들어보지만 ‘적당히’ 넣으라는 말이 참 모호한 탓인지 나는 왠지 사 먹는 게 더 나을 것도 같다. 여기 와서 알았다. 미역의 미끌미끌한 촉감을 싫어하는 유럽인들이 많고, 김밥을 만들어주어도 간장을 주르륵 부어 먹을 만큼 짠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미역을 불리건, 된장을 풀건 음식을 할 때마다 밀려오는 질문에 하나둘 대답하다 보면 만들고 먹고 치우는 데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무슨 음식인지, 어느 나라 음식인지, 재료는 어디서 샀느지, 어떻게 만드는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서부터 한식의 종류는 어떤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식혜나 수정과 같은 디저트 얘기까지 하다 보면 도무지 끝이 없다. 어쩌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고, 매번 원치 않는 비평을 받는 것만 빼면 말이다. 레지던시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그 시간만큼은 누구나 국가별 대표선수가 되어 생방송 쿠킹쇼의 주인공이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제발 청소 좀 합시다
“PLEASE look back at what you are leaving behind after cooking.”
한참 웃었다. 이게 뭐람, “밥 먹고, 제발 청소 좀 하자!”는 단체 이메일이라니… 지금 내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나? 전 세계 훌륭한 작가들이 모여 있는 베를린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선 종종 이런 이메일을 받는다. 사실 내가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부터 받았던 잔소리 메일이다. 지난번에 지냈던 독일 다른 레지던시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이런 메일을 받아도 할 말은 없다. 내 눈으로 직접 ‘아티스트 키친’의 실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엌의 청결도가 이 모양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있는 ‘부엌 대청소 날’ 빠지기라도 하면 엄청난 눈총을 받는다. 이해하자고 들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여러 사람이 부엌 하나를 쓰자니 깨끗한 부엌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국적별, 성격별로 설거지하는 방법, 물건 놓는 장소, 냉장고 사용 방법이 전부 다르다. 부엌을 관찰보다 보니 나라별로 음식에 관한 믿음, 체질에 관한 의견 또한 전부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를 꼭 마셔야 하는 사람, 글루틴이 들어가지 않은 빵만 먹는 사람, 카페인이 들어간 차는 마시지 않는 사람, 우유 말고 두유만 마시는 사람,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Ramadan)’을 지키는 사람, 라마단 시간을 피해 새벽에 먹는 사람, 고기를 좋아하지만 양고기는 먹지 않는 사람 등 정말 식성도 문화도 다양하다. 다양한 작업만큼이나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일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밥을 해 먹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곳만큼은 정반대다. 많은 작가들이 매일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배우는 일에 열정적이다. 때로는 작업실에서 작품 만드는 것보다 부엌에서 밥을 할 때 한결 열정적이다. 어쩌면 음식을 만드는 게 작품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작품으론 만족하기 어려운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음식으로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레지던시 부엌에서는 음식만 만드는 건 아니다. 여러 회의, 아티스트 토크 또한 여기서 이루어진다. 긴 식탁은 회의 탁자가 되고, 선반 위 하얀 벽은 프로젝터를 쏘는 스크린으로 변한다. 가끔 다른 작가의 사생활 같은 각가지 가십, 혹은 작업에 관한 고민, 불평도 흘러 나간다.
매달 열리는 레지던시 ‘오픈 하우스’ 때 부엌 전시장으로도 바뀐다. 부엌 한쪽에 영상을 쏘고 식탁 가운데 작품을 전시한다. 미팅, 발표, 요리, 식사, 전시, 파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레지던시 부엌이다. 부엌이자 사교장, 전시장, 사무실, 커뮤니티 공간이다. 각기 다른 국적의 작가들이 각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보여주는 문화 공간이다.

‘음식’ 하면 자연스럽게 잘 차려진 음식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역시 전시를 하면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좋아해 주길 바란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눠 먹는 건 그와 생활을 공유하는 일이고, 작품을 만들고 선보이는 것 또한 내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북적북적한 레지던시 부엌에서 밥을 한다. 온갖 논평이 끊이지 않는 생방송 쿠킹쇼에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피곤하고 동시에 즐거운 ‘데일리 이벤트’다. 여기 머무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만큼 다양한 인생과 작업을 부엌에서 발견한다. 음식을 같이 만들고, 밥을 같이 먹으며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매일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 그곳이 베를린의 예술가 부엌이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은 더러움에 종종 화들짝 놀라지만 한국의 깨끗한 내 집에 돌아가면, 어쩌면 간절히 그리울 2017년 여름이다.

 

글ㆍ사진/ 이승연

나는 사라져도 내 이야기가 이야기로 남는다면? 나는 이런 상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상상의 작업으로 현재를 신화로서 기록하는 것, 이것이 기이한 듯 보이지만 명랑한 내 작업이다. 서울 및 런던, 독일에서 활동 중이며 현재 영국 작가 알렉산더 어거스투스와 함께 ‘더 바이트백 무브먼트’ 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베를린 ZK/U 레지던시에 입주 중이다. 이승연




[큐레이션 콕콕] 독립출판과 서점의 시대

“SNS에 끼적이는 인스턴트 이미지와 텍스트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담긴 진짜 1인 미디어를 꿈꾸며 냄비받침출판사 전격 오픈!”

독립출판은 상업적인 출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와 작품을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2-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죠. KBS2가 그 물결을 예능으로 가져왔네요. ‘냄비받침’입니다. 이경규, 안재욱, 김희철, 트와이스, 이용대가 등장해 낙선 정치인을 인터뷰하겠다, ‘건배사’ 모음집을 만들겠다, 희귀하고 재미있는 (신상)물품 후기 등을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던 예능의 시대가 가고 ‘예능도 지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별난 재치나 특별한 감동 포인트를 전달하지 못하면 좀처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듭니다. ‘진짜 스토리’를 들려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냄비받침’은 참신함보다 고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을 인터뷰 하다가 걸그룹의 시끌벅적한 모습을 비추고, 술자리를 빌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가 싶더니 매니저에게 아이돌의 생활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백화점식’ 구성이라는 비판도 있네요.


제목과 아이디어가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과 같거나 유사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은 2010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총 5호가 발간됐습니다. 매 호마다 주제를 정해 문학, 시각, 사진 등의 창작자들 작품을 실었고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모 씨는 페이스북에 “같은 이름, 비슷한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에 활용한다는 이 탐탁지 않은 유사함에 대하여 제작진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석연치 않은 답변만 전해 들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을 알지 못하며, 우연히 아이디어가 겹친 것이다.”

독립잡지 프로젝트 진행자들이 홍보로 내세운 슬로건은 “등단하지 않아도 좋다. 많이 읽지 않아도 좋다. 가난한 자취생의 라면을 받치는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였습니다. TV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년이나 야심차게 독립출판 관련 예능을 준비했다고 매체에 소개하던데,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 잡지를 모르다니(독립출판물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우리는 4년에 걸쳐 잡지를 출간했다. 매체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대화 도중 사전 리서치로 언급한 두 곳의 독립출판 서점 중 한 곳은 현재 『냄비받침』이 유일하게 입고되어 있는 서점이다.”

이모 씨는 유명하지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디 문화는 그냥 소재를 가져다 써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이 방송계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그 사실을 명시하고 합당한 존중을 해주는 것이 시대의 상식 아니냐고요.

독립출판이 방송계에 소환된 것과 조금은 결이 다를 수 있지만 독립서점(동네서점, 지역서점, 대안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 바 ‘서점의 시대’입니다.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입니다. 사물(책)이 아닌 인물(작가들)을 전면 배치했네요. 오른쪽 위에 적힌 ‘변신’이라는 단어가 본래 사이즈보다 크게 보입니다.

행사장 안은 내실 있게 짜인 축제의 장이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코너는 서점의 시대였다. 특색 있는 독립 서점들이 각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집, 고양이 관련 서적, 추리소설, 디자인, 여행, 카메라, 독립출판물 등등, 독립 서점은 그 공간을 꾸민 사람의 개성과 특색을 찾아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하지만 독립 서점은 특색 있는 책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살립니다. 2010년 이후 전국에 그림책 서점, 추리소설 서점, 음악 서점, 고양이 관련 서점, 시집 전문 서점, 술 먹는 서점, 여행 서점 등 다양한 서점이 탄생했습니다. 이들 작은 책방은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갖고 독서를 즐기도록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기존 도서전은 헐값에 팔고 헐값에 쓸어 담는 행사라는 냉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그나마도 불가능해졌죠.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달라졌다”는 평이 쏟아졌고 관객 수도 지난해의 2배로 늘었습니다. 기획자들은 ‘몇 부를 팔까’가 아닌 ‘어떻게 재미를 선보일까’를 고민한 결과라고 자평합니다.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제가 그 책 쓴 사람입니다”라며 소설가 이기호, 김탁환 등이 나타납니다. 미술관처럼 그림이 액자에 걸려 전시돼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 줌파 라히리의 ‘책 표지 원본’입니다. 음악 서점 ‘라이너 노트’는 LP 턴테이블을 들고 와서 음악을 틀기도 했고요. 유료입장권(5000원)은 책을 살 수 있는 쿠폰으로 활용됐습니다.

주최 측은 특색 있는 서점 20곳을 선정하기 위해 1차로 서점별 개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2차 기준은 각 지역에서 주민과 얼마나 연대를 구축하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였다. 3차 기준은 얼마나 새로운가였다.”

종이책의 판매는 점점 줄고 있지만 우리는 디지털 기기로 늘 무언가를 읽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시대, 재미의 시대, 개성의 시대.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책을 놀이와 의미의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책이 활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 아이콘으로 변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문 내용 일부와 발췌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 유승민과 트와이스… <냄비받침>, 너무 생뚱맞잖아요
  오마이스타 2017.6.2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TV공감] ‘냄비받침’, 좋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고민
  티브이데일리. 2017. 6.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 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삶과 문화] 서점의 시대, 개성의 시대.
  한국일보 2017.6.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0만 관객 ‘깜짝 흥행’… 비결은 “할인보다 재미”
  조선일보 2017.6.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서점의 시대’… 전국의 개성있는 서점이 모인다
  세계일보 2017.6.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