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려면 – 부평 캠프마켓 반환 이후 향방에 대하여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평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미군기지 ‘캠프마켓’이 지난 12월 11일 반환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반환 논의가 있던 것이 1990년대 후반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날의 ‘즉시 반환’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2010년대 들어서 토양 오염 등의 문제에 대한 협의가 지연되면서 반환 예상 시점이 계속 미뤄졌던 것도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부평 군부대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조병창은 당시 일본 본토를 제외하면 조선과 만주국 내의 단 두 곳에만 존재했는데, 부평의 조병창이 그중 하나입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이 공간은 규모의 크고 작음이 달라졌을 뿐, 자연스레 주한미군과 그와 관련된 국군의 시설이 모인 곳이 되었습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군부대는 조금씩 침식되었으나 사라지지는 않고, 도시 한가운데에 마치 섬처럼 남았습니다. 수십 년 전 일부는 산곡동의 고층아파트로 변했습니다. 1997년에는 캠프마켓 건너편에 있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2002년까지 조성공사를 거쳐 부평공원이 만들어졌고, 같은 시기 캠프마켓이 규모를 축소하면서 일부 영역이 반환되어 부영공원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캠프마켓은 송도 센트럴파크보다도 넓은 13만 평 정도의 규모입니다. 인천에서 포화되고 오래된 도시의 숨을 틔게 할 넓은 공공 공간으로 변모 가능한 곳은, 섬과 같이 존재하는 이 캠프마켓밖에 없다는 인식이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기지 반환에 관련한 주장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2월 11일 인천시청에서 열린 캠프마켓 반환 기자회견
출처: 인천시 인터넷방송 홈페이지 (자세한내용 보러가기▶)

캠프마켓 반환 후 이 공간은 대규모 도심 공원이 되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산 이외에 도심 녹지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대규모 공원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많은 공원이 만들어진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간석오거리에서 인천 터미널에 이르는 중앙공원이 조성된 것이 이즈음입니다. 서울에서는 여의도 광장을 여의도 공원으로 바꿨고, 선유도 공원과 서울숲, 드림랜드가 문을 닫은 자리에 조성된 북서울 꿈의 숲이 연달아 만들어진 때이기도 합니다.

대도시 안에 있는 미군기지의 활용은 대체로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됩니다. 용산 등 다른 대도시 내의 군기지에 대한 논의도 대규모 녹지 조성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며, 부평공원과 부영공원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캠프마켓 이후에 들어설 공간도 훌륭한 도심 공원이 되어 인천 북쪽 시민들의 삶의 질에 큰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저 공원을 만드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공원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고, 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온통 나무와 물과 산책로만 있기엔 이곳은 너무 넓고, 인천 도심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빈 공간입니다. 이 공원이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할지, 어떤 공간을 품었을 때 시민들의 만족감이 더 높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렵사리 확보한 공간을 헛되지 않고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시민사회 곳곳에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캠프마켓의 건물 중 일부가 유일하게 일제시대 조병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박물관 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50년대 대중가요가 미군기지 주변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점을 근거로 들어 대중음악과 관련된 대중음악 자료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도 있습니다. 인천시 의료원을 확대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거나, 시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의견도 있습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인천의 부족한 문화예술 시설을 이유로 들며 시립미술관이 부평에도 하나 더 지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이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곳곳에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부대시설이 잘 갖춰진 사회인 야구장이 늘었으면 할 테고, 또 누군가는 유소년 축구클럽을 위한 운동장을 기대할 것입니다. 자전거 하이킹 코스나 애견 동반 놀이터를 바라는 이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인천시는 대략적으로 공원에 대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지난 2014년 주민 공람을 거쳐 2015년 1월 최초로 고시한 내용에서는 이곳을 ‘신촌공원’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녹지 공간을 위주로 일부 체육시설을 조성하고, 용도를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23개 동의 1층짜리 벽돌 건물의 ‘교양시설’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 5월 변경된 조서에서는 이 ‘교양시설’이 49개 동으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캠프마켓에 남아있는 건물들의 역사성을 고려해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이 안을 어떤 것들로 채워 나갈지는 앞으로 고민할 부분으로 남겨 놓은 듯합니다.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서 인천시와 부평구의 공직자 및 연구자들은 앞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용산이 그랬듯 설계 공모와 같은 과정을 거칠 수도 있습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며 ‘슬로 시티 프로세스’ 방식을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의 삶에 연결되는, 더 나은 공공 공간을 상상하고 만드는 몫은 이제 시민들의 손에 넘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서울시에서 개최된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2차 토론회 모습
출처: 다산콜센터 네이버 블로그 (자세한내용 보러가기▶)

저는 몇 차례 글을 통해서 이 땅의 미래를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습니다. 캠프마켓의 미래를 만드는 과정은 지역 정치와 거버넌스의 실험장이자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시민으로부터의 도시계획’을 그리 믿지 않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오래전부터 행정가와 전문가들이 지역에 필요한 공공 공간을 연구하고 조사합니다. 그렇지만 공공 공간을 마련하기 전 열리는 몇 번의 세미나나 토론회, 공청회는 대체로 잘 홍보되지 않고, 대부분 평일 낮에 열려서 참석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이전부터 지극히 관심이 높던 사람들 일부가 빅마우스의 역할을 하고, 대다수의 시민은 다 건설되고 나면 그냥저냥 큰 만족도 불만도 없이 공공 공간을 이용합니다.

공공이 떠맡아야 하는 역할이 무겁지만,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도록 공유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계획을 검토·수정하며, 이렇게 시민들과 정말로 함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지역 언론은 지속적으로 인천 시민사회 곳곳에서 어떤 공공 공간을 원하는지 발굴하는 등, 캠프마켓이 반짝 이슈로 머물지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북돋아 주었으면 합니다. 약간의 농담이 섞인 이야기입니다만, 어쩌면 정말로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주변의 산 및 이미 조성된 공원과 연결된 녹지나 체육시설, 박물관이 아니라, 서울 동부권역 혹은 경기 동부권역까지 가지 않아도 도심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일 수도 있습니다. “인천시는 공원을 만들려 합니다. 어떤 공원이 좋을까요?”보다는 “인천 시민은 이 자리에 어떤 공간을 원하시나요?”가 더 나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더 소모되는 질문이지만, 저는 여러 번 그 지난한 과정이 오늘날의 도시계획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십여 년 전 ‘마을 만들기’가 도입되던 때부터,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제도적 방법들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운영하는 행정가들의 조바심으로, 때로는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많은 제도들이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작은 성과들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으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캠프마켓은 주한미군의 손을 떠났지만, 아직 토지 정화의 문제가 남아있고, 당장 빵 공장이 문을 닫는 시점은 내년 여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캠프마켓이 정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시민이 잘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민이 스스로 쌓아 올려서 만든 공간’이어야 합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전갑생(2016). 한국전쟁기 인천의 미군기지와 전쟁포로수용소. 황해문화
심주영(2017). 용산미군기지 공원화 과정의 도시담론 분석. 한국도시설계학회지 도시설계, 18(5)
전대욱,허훈(2015). 미군 반환기지의 특성과 통일대비 활용방안. 한국정책연구, 15(1)
인천광역시보 제1445호. (2015. 1. 26.) 인천광역시청
인천광역시보 제1742호. (2019. 5. 7.) 인천광역시청




천천히, 조금씩 만들어가는 도시는 없는가
–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845년 엥겔스가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펴냈을 때, 전세계 산업화의 최정점에 있던 영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야말로 참혹한 상태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창문이 없어 채광도, 통풍도 안되는 집에서 제대로 된 가구도 갖추지 못하고 비좁게 뭉쳐서 잠만 자고 공장에서 열여섯 시간을 일했습니다. 집에서는 단 8시간 잠만 자니 3가정이 한 집을 3교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리는 좁은데다가 항상 분뇨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습니다. 도시가 생산에만 몰두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지 않을 때 도시는 어둡고, 더럽고, 서로를 경계하고 다투는 곳이 되었습니다.

1900년대 이후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옴스테드는 도시 안에 자연과 같은 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시 공원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자연과 같은 공간에서 도시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녹지가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기능적인 요소 또한 강조되었습니다. 사실 옴스테드와 같은 사람들이 의도한 진짜 효과가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열악한 도시 여건 속에서 발생하는 범죄, 다툼과 같은 도시 문제를 ‘보기 좋은 자연’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잘 가꾸어진 자연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교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효과와 더불어 공원을 휴식과 여가를 통한 재생산의 장소로 삼아 노동자들이 더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옴스테드는 이런 관점에서 맨하탄에 거대한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센트럴 파크가 그것입니다. 이후 르 코르뷔제가 빛나는 도시를 계획하면서 도시에 고층빌딩을 세우는 대신 빈 공간을 녹지로 구성하려는 것이나, 높은 가로수를 심은 산책로인 프롬나드와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같은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현재에도 공원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 공원은 여전히 도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자연이고, 일상적인 휴식처이자 놀이공간이고, 잘 자란 녹음은 산소를 뿜어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00여 년 전에는 이런 공간이 통치술의 하나로 도시민에게 주어졌다면, 오늘날에는 도시민들 스스로 도시공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획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공원을 요구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전국 지자체들은 올해 내내 이 공원을 만드는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1999년에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토지를 장기간 실제 공원으로 개발하지 못하는 경우, 소유주의 재산권을 위해서 도시공원 예정지 지정을 해제하여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통해서 ‘장기간’이라는 시간을 20년으로 정했습니다. 20년간 개발되지 못한 도시공원은 예정지 지정을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도시공원 일몰제’라 합니다. 그래서 내년 7월, 아직까지 실제로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해서 공원 조성이 되지 않은 예정지는 도시공원 예정지 지정에서 해제됩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이런 땅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전국에 이런 땅은 무려 396.3km2나 됩니다.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천의 40%에 가까운 면적의 공원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직 정식으로 조성된 공원이 아니다보니 대체로 이런 곳들은 주로 도시의 작은 산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도시들이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에 비해서 갖는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작은 산들입니다. 어느 도시든 중간중간에 작은 산들이 있고 도시를 감싸는 큰 산들이 있어서,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지 않아도 한국의 도시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상당수가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고, 또 이들 중 많은 부분이 내년에 공원 예정지에서 해제될 예정입니다. 물론 당장 공원 예정지에서 해제된다 하더라도,  당장산이 없어지고 개발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유지인 곳들은 주인이 원하는 쓰임새를 위해 시민들이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국공유지인 곳들은 소유 기관이 원하는 사업을 위해서 개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민들은 미래의 공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무척 심각합니다. 내년 7월 해제되는 도시공원 예정지의 20% 정도가 서울시에 있습니다. 면적이 무려 72.3km2인데, 이정도면 부평구와 계양구를 합친 면적과 엇비슷합니다. 옛 북구만큼의 공원이 서울에서 통째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규모가 실감이 나실 것 같습니다. 서울은 이 도시공원 예정지를 다시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해서 기존의 공원 역할을 지속하게 하려 합니다만, 시간이 정해진 기존의 규제와 비슷한 규제를 다시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의 목소리 또한 많습니다. 많은 지자체에서는 도시공원을 개발하기 위해서 5만㎡의 도시공원 예정지를 민간이 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하면 면적 중 30%는 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성이 적어 민간 참여가 없는 경우도 있고, 환경문제나 경관훼손 등의 이유로 추진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국공유지와 사유지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겠지만, 많은 지자체가 비용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내년 7월 일몰제가 적용되는 도시공원 예정지가 최근 부쩍 부각되는 것은 이 시기가 당장 내년도 예산을 마련하여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인천은 도시공원 일몰제에서 조금 자유로운 편입니다. 우선 내년에 일몰될 가능성이 있는 공원 면적이 약 7.5km2로,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그래도 동구 전체의 면적보다는 많습니다만, 서울의 1/10 수준에 불과합니다. 인천시는 이 중 80%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하고, 부족한 재정은 지방채 발행을 통해서 충당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공원 조성 계획 비율과 예산 투입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인천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인천시는 인천대공원, 소래습지와 같은 큰 공원들을 비롯하여 소규모 공원들과 어린이 공원 등의 장기미집행공원에 대해서 공원 조성을 완료하는 로드맵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림 1> 지난 2월 인천시가 발표한 장기미집행공원 대응 로드맵(위)과
장기미집행공원 공원조성 첫 사례인 서구 현무체육공원 준공식(아래).
주변의 많은 공원 예정지들이 사실은 일몰제를 앞두고 있었고, 최근에 들어서 공원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위)아주경제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아래)인천광역시 서구 네이버 블로그(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도시공원 조성에 2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지자체들이 올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동안 무수한 도시개발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토지 확보는 60-70년대처럼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보상의 절차를 통해야 했습니다.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토지를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이나, 신도시를 개발할 때 도시 안에 공원을 조성하는 일이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무수한 신도시에 잘 계획된 공원들을 조성하면서도, 도시민들이 이미 사용할 수도 있었던 도시공원 예정지 중에는 매입과 조성 절차 없이 그냥 놓아둔 땅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입니다. 20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도시는 장기간의 계획에 따라 천천히 개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에서 공원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면, 그래서 신도시 곳곳에 공원을 당연히 조성하고 있다면, 지난 20년간 점진적인 예산 투자를 통해 도시공원 예정지들이 일몰을 맞이하기 전에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서, 눈에 띄지 않아서 미루어졌던 공원개발 대신 대규모 도시개발은 도시를 살리는 치적사업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편이 4년마다 재평가 받는 지자체장들에게는 시간과 비용과 인력을 들여 도시공원 예정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이런 오래된 습관들 때문에 인천에서도 언제 사람들이 살게 될지 아직도 짐작키 어려운 영종하늘도시의 단독주택용지 옆 공원이나, 미단시티 한가운데의 광장이 지자체가 도시공원 예정지들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기 전에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여유 시간이 있었던 전국의 도시공원 예정지들은 당장 내년에 얼마나 사라질지 짐작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림 2> 독일 함부르크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하펜시티의 마스터플랜(좌)과
랜드마크인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우).
하펜시티는 도시가 빠르게 완성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처: (좌)Hafencity Hamburg(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우)조선비즈(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최근 함부르크의 낙후한 항구를 재생하는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면적의 불과 2%에 해당하는 지역을 무려 30년에 걸쳐 재생하는 도시재생사업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도시를 만드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도, 도시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에 다양성을 만들고, 더 섬세하게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지속적으로 계획에 반영하며 더 많은 시민들이 만족하고 사랑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략입니다. 1920년대 건축된 슈투트가르트의 중앙역을 재건축하고 철도를 지하화 하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는 1990년대 후반 계획되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문화재와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시 정부는 그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고 오랜 설명회와 공청회, 의견수렴을 반복하며 천천히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 계획했던 예산의 50% 만큼이 더 들어가게 되었고, 최소 2024년까지 완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는 이렇게 천천히 오래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만들어져야 합니다. 특히나 ‘아래로부터’, ‘주민 스스로의’ 도시계획을 점차 강조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에벤에저 하워드(2006). 내일의 전원도시. 한울아카데미
엥겔스(2014).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피터 홀(2009). 내일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다시 쓰다, 도시 3.0] ①함부르크는 더 이상 항구가 아니다. 조선비즈. 2019.11.18




자주 만나면 사랑에 빠질까_전시장과 공연장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근대적인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굳이 한 단어로 꼽으라 한다면 아마 ‘생산’이 아닐까 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계속해서 도시는 가장 선진적인 산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곳입니다. 자본주의가 자리잡은 이래, 도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정수로 여겨집니다.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잉여 생산이 대공황을 불러온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고정된 생산과 소비 시설을 만들어내는 ‘2차 순환’을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2차 순환’의 결과물에 ‘건조 환경’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도시는 건조 환경의 가장 주된 예입니다.

끊임없이 돈을 투자해서 돈이 되는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공간이 도시라면, 도시는 참으로 삭막하고 여유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도시 밖보다 도시의 삶에서 더 나은 여유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도시에서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시에서의 예술 또한 대단히 양면적입니다. 예술은 이미 앞서 말한 ‘가장 선진적인 산업’ 중 하나입니다. K-pop은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일신하는 역할을 하고, 게임산업은 문화산업 수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전에도 창조 도시와 관련된 논의를 소개해 드린 바 있는 것처럼,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도시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며,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오늘날 도시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도시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삶 속에서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도시 공간의 무수한 매스 미디어들을 통해, 거의 모든 도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자신의 취향을 가지게 됩니다. 도시민들이 도시 정부에 자신의 취향을 충족하는 더 많은 예술의 장을 제공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림 1> 문화산업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모바일 생태계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좌)와 애플TV+(우)(출처: IT동아(좌), Apple 홈페이지(우))

전문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예술의 우열을 가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분명 예술을 소비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로 읽힙니다. 여기에 예술도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이 더해지면 ‘수요자 중심’의 예술시장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공공이 예술의 장을 공급하는 문제로 이야기의 중심을 옮기면 이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시대의 모든 현상에서 이제는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와 SNS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술 관련 산업에서 이는 더욱 도드라집니다. 통신기업 중심이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제 디즈니 등 콘텐츠 기업이 직접 뛰어드는 대규모 시장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트위치 등 동영상 플랫폼은 점차 라이브 방송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들 플랫폼 차원이 다른 접근성으로 인해, 많은 문화 예술이 여기로 흡수됩니다. 오래된 드라마가, 회화와 조각들이,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DVD와 미술관, 공연장에서 벗어나 더 일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 접촉합니다. 대중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더 다양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은 전적으로 개별 사용자의 선택에 의존합니다.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가 있는 반면, 수백 배, 수천 배의 선택받지 못하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예술에 적자생존과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점차 예술은 다양성을 잃게 됩니다. 공공의 역할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예술의 체험이 교육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체험학습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의 예술을 직접 관람하고, 체험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인천은 오랜 시간 문화의 불모지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문화시설 자체가 부족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수한 노력으로 공공 도서관 시스템이 확립되고, 지방자치단체 중에 가장 활성화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문화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최신 시설의 콘서트홀인 아트센터 인천을 갖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문화시설은 영화관이 대다수이며, 민간의 기증으로 갖추어진 송암 미술관을 제외하면 300만 인구의 광역시에 걸맞지 않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이며, 민간이 운영하는 공연시설이나 미술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부족한 도시입니다. 아트센터 인천을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공연시설은 다목적 강당에 가까워 무대, 음향 등에서 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습니다. 아시안게임 개최 이후 대규모 공연이 가능한 체육관을 통해서 대중문화 공연이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촬영 등이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전문예술분야는 많은 부분에서 서울의 전시공연 시설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림 2> 울산이 시립 미술관 착공을 시작하면서, 인천은 아직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입니다.
인천 시립미술관이 자리할 뮤지엄파크 조감도(좌)와 2001년 신축 이전한 서울시립미술관(우).
(출처: 매일경제(좌), 서울시립미술관(우))

문화적 소양은 배워서 만들어지기보다는 어린 나이부터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쌓이게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전시 공연에 익숙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문화를 익숙하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또한 청소년기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은 이후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예술 체험을 유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청소년 시기의 공교육은 입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관심과 선택이 아닌 교육과정의 일부로 접하는 예술이 깊은 영향을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요가 적거나 수익성이 떨어져서 민간에서 많이 제공하지 못하는 전시시설과 공연시설, 특히 전문예술에 대한 맞춤 공연시설은 공공이 다양하게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대규모의 치적사업으로서의 전시공연시설이 아니라, 마치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처럼 일상에 밀접한 전시공연시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도 이런 시설은 건설비용과 운영비용이 많이 들고, 수요는 적고 처음에는 양질의 전시 공연을 채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민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 일상처럼 이런 공간들이 있을 때 시민들의 예술과 미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됩니다. 좋은 전시장과 공연장은 인천 외부의 훌륭한 예술가들을 인천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아이돌과 유튜버 이외에도 다른 예술을 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온라인으로 사기 시작하자 대형 서점들은 매장을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곳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책을 접하는 기회를 늘림으로써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결국 더 많이 접할수록 더 많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시대는 공공영역에서도 흑자를 내야 하는 시대이지만, 어떤 부분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할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김형숙. 2009. 미술과 지역사회의 파트너쉽-지역사회 미술교육의 성립 배경을 통해 본 실태 연구-,
미술교육논총, 23(1), 93-124.

남정미, 유소이. 2015. 공연예술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탐색적 연구:
공연예술교육경험을 중심으로. 소비자정책교육연구, 11(1), 77-96.

엄미선, 한상미. 2017. 청소년의 진로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한국자치행정학보, 31(4), 189-206.

한미란, 김유정. 2017. 미술관 및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유아교사의 인식 및 활용 실태 –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미래유아교육학회지, 24(3), 55-78.

문화공간. 1993-2016. 인천광역시기본통계. 인천광역시.




가정도 일터도 아닌, 그 어딘가. – 제3의 장소, 카페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제 눈에 띈 주요 일간지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판교를 시작으로 신도시 단독주택용지(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주택 건축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판교의 단독주택용지에는 공동체 도시 형성을 위해 각 주택에 담장을 쌓지 못하고, 고작해야 1.2m 이하의 나무를 심는 것만이 가능하도록 지구단위계획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입주민들은 담장을 만들지 못하는 것을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건물을 채우고 도로 쪽으로는 큰 창을 내지 않으며, 대신 내부에 중정을 배치하는 일종의 ‘요새’가 늘어선 동네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지구단위계획을 입안한 계획가들은 길을 따라 늘어선 담장을 없애고자 했겠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담장보다 훨씬 높은 3층짜리 장벽이 길가를 막아서는 동네가 된 것입니다. 기사에서는 이런 주택들이 판교뿐 아니라 최근 조성되는 신도시의 단독주택용지에 널리 퍼지고 있으며, 일각에서 “자폐주택”이라는 비판까지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의 거주 환경의 기본 형태는 이미 아파트, 빌라 등 층층이 쌓인 공동주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것, 더구나 노년층의 귀향이 아닌 중년층의 단독주택 선택은 일종의 도피입니다. 층간 소음으로부터의 도피, 주차난으로부터의 도피, 불가피한 이웃과의 접촉으로부터의 도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단독주택을 위해 토지를 구매하는 것은 우리 가족이 대지 지분의 일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내 땅 안으로, 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담을 없애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고, 결과적으로 집을 담 삼아 도로로부터 등을 돌려 앉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 중정형 단독주택 트렌드를 보여주는 주택들.
담장은 없지만 담장보다 몇 배는 높은, 창문 작은 건물이 대지 끝까지 메우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을 지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공동체인지, 온전한 그들의 삶인지 계획가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출처: VMSPACE(좌), 한국일보(우))

오래 전 저는 송도의 쇼핑몰들이 공공 가로에서 등을 돌리고, 길마저 자신들 안으로 포섭해버린 것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택에도 같은 가치를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의 공동체가 다시 강조되고 있지만, 가정과 주택은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보다 더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하는 개인의 영역입니다. 비록 게이티드 커뮤니티와 같은 문제가 지적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현대의 공동체성은 더 이상 옆집과 담을 마주해서,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같이 공놀이를 해서, 이사 오면서 떡을 돌려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만들어지고, 유튜브에서 증폭되고 있습니다. 점점 사회가 파편화되고 있다는 염려 속에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매개 삼아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SNS와 스마트폰 안에 잠복해 있지만, 세상에 드러나야 할 때 과거보다 더 강력하게 존재를 드러냅니다. 수년 전 광화문에서, 강남역에서 그러했고, 최근 대학가에서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근접성 없는 공동체’가 우리 삶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수록 점차 지역공동체 속에서의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집니다. 일찌감치 출근해서 늦게까지 일하며, 맞벌이가 일상화된 도시의 삶에서 퇴근 후에, 혹은 주말이 되어야 면대면의 기회를 기대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는 내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선택한 공동체에 비해서 덜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점점 우리 삶에서 지역공동체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삶 속에서 우리 동네, 우리 지역의 이슈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더 많은 매체, 더 많은 네트워크에 접속하면서 국가 차원의 이슈나 세계적인 갈등엔 익숙하지만, 정작 우리 동네 안에서 어떤 이슈가 생겨나는지는 잘 모릅니다. 또 나 스스로도 별다른 이슈를 제기하지 못하게 됩니다.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방자치가 더 성숙하기를 기대하며, 지역 정치의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유럽 사회에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거리낌 없이 감수하며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서 주민들이 끊임없는 의논을 통해 접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훌륭한 모델로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 우리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그런 시스템의 기반을 기대할 수 없게 합니다. 기나긴 업무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들어가기 바쁘고, 여가 시간이 동호회나 SNS 활동으로 소비되는 동안 지역 사회의 이슈는 우리 삶으로 들어올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 결과 동네는 나의 의사나 관심과 상관없이 변하고, 나는 동네에 더욱 애정을 잃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1989년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미국 사회에서 가정과 직장 이외에 평등하고 일상적인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제3의 장소’를 제안합니다. ‘제3의 장소’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한 자발적 공간이고, 사회적 위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격식 없는 공간이며,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을 위한 장소입니다.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로 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모이는 술집을 예로 듭니다. 그래서 제3의 장소는 일견 가정과 직장으로부터의 해방구로 인식되곤 합니다.

하지만 올든버그가 주장하는 제3의 장소의 진짜 의미는 동네 사람들이 사회적 계층 관계를 벗어나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이며, 지역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장소이며, 그로 인해 지역 정치가 생성되고 발전하는 장소입니다. 제3의 장소를 단순히 가정과 직장 사이의 해방구로 이해하면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넘쳐나는 먹자골목과 음주문화로 충족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장소를 다시 이해하고 나면, 제3의 장소는 지역공동체 재생의 도구이자, ‘기초 의회 무용론’을 제기하는 일상적 시각과 제도와의 괴리를 줄이는 접점이 됩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는 여전히 진동벨 대신 직원이 목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음료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조금이라도 접점을 갖게 하려는 창립자의 고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프랜차이즈 카페는 점점 더 비장소적인 성격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좌), 조선비즈(우))

우리 사회에서 제3의 장소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은 카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카페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더 빠른 회전과 더 많은 F&B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습니다. 이런 곳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소이지만, 이곳에서는 운영자와 이용자 간의 친교를 만들기 어렵고 동네마다 다른 경험을 얻기도 불가능합니다. 이 공간들은 제3의 장소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비장소’-마르크 오제의-에 가깝습니다.

또 한 부류는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SNS에 최적화된 카페들입니다. 이들은 더 예쁘고 사진에 잘 나오는 메뉴를 개발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좌석을 둘러싼 네 방향은 모두 다른 느낌의 포토월이고, 여기서 찍은 사진들은 SNS로 공유됩니다. 이런 공간은 도시의 여느 상업 공간들처럼 스펙터클로 기능합니다.

마지막 부류는 일부 주택가로 스며든 작은 카페들입니다. 동네의 소규모 갤러리나 책방, 수공예품 가게가 카페를 겸업하는 경우도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이런 공간들은 언제든 도시의 스펙터클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3의 장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들입니다. 동네 카페들은 낮은 매출과 높은 임대료 사이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전장이기도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매일의 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입니다. ‘원데이 클래스’나 독서 모임 등을 만드는 카페들은 최근의 ‘근접성 없는 공동체’의 일부를 다시 지역에 착근하도록 손을 잡아 이끕니다. 이런 장소들은 사람들이 취향에 따라 선택했던 네트워크와 공동체가 우리 지역 안에도 존재함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이런 접점이 더 잦아지고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는 아주 조금씩 지역의 이슈를 발견하고 나의 관점이 생겨나며, 주변과 인식을 공유하고, 지역사회를 바꾸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느리고 지난한 과정이고 결과를 담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저 더 많은 이야기를 지역 안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 하나로 공동체는 조금씩 갖추어지고, 우리 동네의 정치도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레이 올든버그, 2019, 제3의 장소, 김보영 역, 풀빛
마르크 오제, 2017, 비장소, 이상길·이윤영 역, 아카넷
이종범, 2017,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 스펙타클 프로젝트
“담장 없애랬더니 집 요새화…판교의 ‘중정형’ 단독주택”, 중앙일보, 2019.09.08




지역화폐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천e음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5월부터 인천에는 ‘인천e음카드’ 열풍이 불었습니다. 8월 초 가입자가 이미 7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인천 인구가 300만 명이니,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이미 인천e음에 가입한 꼴입니다.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역화폐에 열광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반면, 인천e음은 호응이 너무나 커서 지자체는 캐시백 혜택을 줄인다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서구, 연수구, 미추홀구에 이어서 남동구와 부평구도 인천e음 카드를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인천e음은 당분간 인천시민의 지갑 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인천 지역화폐 ‘인천e음’ 홈페이지. 첫 화면 안내의 대부분이 캐시백 비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캐시백 정책은 단기간에 지역화폐 ‘인천e음’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9년 전통시장 상권을 보호할 명목으로 만들어진 ‘온누리상품권’은 제도적으로 도입했던 우리나라 지역화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절에 특히 많이 발행되는 온누리상품권은 아마 많은 분이 사용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전통시장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온누리 상품권과 달리 이후에 만들어진 ‘지역사랑상품권’은 발행된 지자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지역화폐 성격에 좀 더 가깝습니다. 현재 92개의 기초 지자체가 종이나 전자 상품권의 형태로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각 지자체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상품권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많은 지자체가 이렇게 브랜딩하여 지역사랑상품권을 사용합니다. 서울 노원구의 ‘NW(노원)’, 경기도 시흥시의 ‘시루’, 성남시의 ‘성남코인’과 같이 말입니다. 인천e음을 비롯하여 인천e음 플랫폼을 통해 자치구에서 지원하는 서로e음, 연수e음, 미추홀e음 또한 지역사랑상품권에 속합니다.

 지역화폐가 제도적으로 채택되기 전에는 사회운동의 일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통적 화폐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혹은 점차 넓어지는 국제적인 분업화 등으로 지역사회의 경제 공동체가 무너졌을 때 보급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매개 삼아서 서로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동체 내부에서 얻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지역화폐는 일종의 물물교환 형태에 가까울뿐더러 공공에 의존하지 않아 제한되어 사용됩니다

 지역화폐가 지역 상권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의 소비가 촉진되도록 유도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갑을 열면 좋겠지만, 최소한 우리 지역 안에서 벌어들인 돈은 우리 지역 내에서 쓰자는 입장입니다. 특히 지역 상권이 침체 되어 지역 주민들이 타시도에 나가 소비하는 경우에 이런 전략이 이용되는 편입니다. 인천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적은 소비량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인천 시민이 인천 이외에 타시도에서 소비량을 보여주는 역외 소비율이 2018년 기준으로 무려 52.8%에 달합니다. 백화점 등 대규모 상권이 많은 서울과 아울렛이 도처에 형성된 경기도 서부권으로 사람들이 소비하는 데다가 인터넷 쇼핑과 해외 직구로 다른 곳의 물건들을 손쉽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한 사람당 100만 원을 벌면 불과 47만 원이 인천에서 지출되어 인천 상권은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8년 역내 소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인처너카드’를 처음 도입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인처너카드를 17만여 개의 점포에서 사용할 수 있더라도, 시민들의 이용률은 무척 저조했습니다. 공무원에게는 일정 금액의 사용을 강제하려는 논의도 있었으니 당시 시민들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인처너카드가 인천e음으로 명칭을 바꾸고 올해 5월부터 갑작스레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최대 결제액의 1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캐시백 형태로 이러한 단순한 혜택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몇몇 자치구는 인천e음에 합류할 예정이지만, 캐시백 혜택이 감소하면 그 사용량도 어느 정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내의 자본 순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인천e음을 사용하게 하려면, 캐시백 혜택이 점차 줄더라도 시민에게 다른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인천e음 애플리케이션 화면(좌)과 인천e몰(우). 지역화폐의 성패 여부는 이제 온라인 이용 편의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화폐는 충전도 필요없고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신용거래의 이점을 이겨내야지만 지속적인 사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택배와 배달 시스템이 거미줄처럼 퍼진 대도시에서 소비의 많은 부분은 집 안에서 이루어지고, 애플리케이션으로 결제됩니다. 지역화폐는 기존의 신용카드와도 경쟁해야 하지만, 온라인 결제 시스템도 이겨내야 합니다. 인천e음이 독자적인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지역 상품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 별도의 송금 시스템을 구축한 것, 심지어 배달 음식점 전화 주문까지 연결하는 시도는 기존에 지역화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저는 인천이 장기적 목표를 향해서 천천히 지역화폐의 틀을 넓혀갔으면 합니다. 인천e음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애플리케이션에 마련된 ‘인천e몰’입니다. 더 빠르고 편리하게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데, 굳이 지역 공동체에서 소비하기 위해서 점포를 방문해야만 한다면 이는 지역화폐 사용의 또 다른 장벽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천e몰의 존재는 그런 장벽을 허물어 줍니다. 인천e음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편리한 데다 지역 안에서 더 저렴한 물품을 구매하도록 돕는 지역화폐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더욱 발전시켜서, 인천e음을 사용하는 점포와 이용자를 늘리는 것 등 이상으로 다음 목표를 찾았으면 합니다.

인천e음에 가입한 사업체들이 시장과 먹자골목의 형태로 모여, 인천e음을 통해 결제하고 상품이 배송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어떨까요. 신선식품업체나 식당이 이런 플랫폼에 가입하고, 시민들은 전통시장이나 상점을 검색해서 식품과 음식을 주문하여 배달서비스를 통해 받아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차문제와 새벽배송으로 인해 대형마트보다 낮은 접근성을 보이는 전통시장과 소매상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인천e음을 통해서 인천의 스타트업 업체들에게 클라우드 펀딩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해 봅니다. 시민들에게 많은 클라우드 펀딩을 받은 업체들에게 인천시에서 창업지원금을 주거나, 기술지원을 위한 대학이나 연구소를 연결해 준다면 어떨까요? 인천e음을 통해서 더 많은 젊은 창업자들이 인천으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인천이 더 젊고 역동적인 창업 도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지역화폐 정책이 지자체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됩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면 기존 사업은 재평가를 받지요. 혹평을 받은 사업은 사업명과 내용이 변경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특히나 그래서는 안 되는 정책입니다. 시민들이 태생적으로 더 범용적인 전통화폐와 신용거래보다 불편한 지역화폐를 더 많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의 폭을 확대하고, 이용의 제약을 낮추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여 덧붙여 나가야 합니다. 화폐는 모든 거래를 대체할 수 있기에 화폐입니다. 지역화폐 또한, 거래의 제약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더 많은 방법으로 거래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종이 상품권을 구매하고 지불하면 상인은 소비자로부터 받은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야 하던 기존 결제방식이 체크카드와 어플리케이션 결제로 대체되면서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만듦으로써 소비자의 접근성도 한결 개선되었고, 관광, 건강검진, 인터넷 교육 수강 등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캐시백 정책이 동반되면서 불과 석 달 사이에 인천e음은 대단히 주목받는 지역화폐가 되었지만, 이 훌륭한 시작이 더욱 발전하여 인천 시민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지역화폐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인천e음이 지역화폐 제도에서 머물지 않고 지역 상권 생태계를 확장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김민정. (2011). 지역화폐운동의 성과와 한계-한국사례를 중심으로. 기억과 전망, 26.
지주형, 조희정, 김순영. (2019). 지역화폐 형성과정과 분권화에 대한 연구: 이념·제도·이익을 중심으로. 비교민주주의 연구, 15(1).
인천e음 홈페이지 (바로가기▶)
[인기폭발 이음카드, 빛과 그림자·(1)]캐시백으로 왜곡된 지역화폐 (경인일보 2019.7.22)
[인기폭발 이음카드, 빛과 그림자·(2)]빨라지는 예산 고갈 시점 (경인일보 2019.7.23)
[인기폭발 이음카드, 빛과 그림자·(2)]직접적 예산투입, 분석 철저히 (경인일보 2019.7.23)
[인기폭발 이음카드, 빛과 그림자·(3·끝)]꼼꼼한 제도 보완 필요 (경인일보 2019.7.24)




더 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기 -‘도시의 동물’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 특별히 붐비는 곳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칩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1호선만 타더라도 많은 사람을 지나치게 되니까요. 기억을 천천히 곱씹어 봅시다. 온종일 다니면서 마주친 사람들 사이로 몇 마리의 동물을 보셨나요.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애완동물’이란 용어는 ‘반려동물’로 대체되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키우는 동물을 사람보다 열등하고 소유물로 취급했던 관념에서 벗어나서 더불어 사는 친구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영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이 사람과 서로 정을 나누고 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일명 ‘펫팸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자신들의 자녀와 함께 커가는 것을 긍정합니다. 또한, 반려동물 사람의 기준에 규율하기보다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림 1> 반려동물을 사람과 구분하지 않고 가족처럼 지내는 ‘팻팸족’이 늘어나면서, 자녀와 반려동물이 함께 성장하는 가정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그래서 반려동물과 관련한 도덕적 기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사람이 얻게 되는 정서적 교육이나 치료 효과, 삶의 만족감 등의 효용을 주장하는 학문적 연구와 증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대중들은 사람이 얻는 효용을 넘어서,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더 나은 건강, 더 많은 체험, 더 오랜 수명, 더 많은 행복감에 집중합니다. 질 좋은 먹이, 각종 용품, 야외 활동을 위한 시장이 여러 형태로 발달하고 규모 또한 커졌습니다. 온라인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이번 여름 휴가에 반려동물과 함께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나 펜션을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사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서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애견 샵과 같은 과거의 유통경로에 의문이 제기되고, 비윤리적인 ‘강아지 공장’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었습니다. 애견샵 강아지를 분양받기보다는 가정 분양이나 유기견 입양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또 동물장묘업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면서 사후 반려동물을 ‘폐기물’로 처분하던 과거와는 다른 방법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물들이 늘어났지만, 도시 공간에서 반려동물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여전히 흔치 않습니다.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인천대공원 등 몇 군데에서는 애견 놀이터를 운영하지만, 식당, 카페, 상점, 대중 교통과 같은 도시의 일상에서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것은 여전히 난망한 일입니다. 도시 공간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개선할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엘리베이터나 산책로에서 반려동물이 이웃을 공격한 사고가 꾸준히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반복되는 사고는 무척 민감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변 반려동물과 반려인들에게 편견이 심어집니다. 공공장소에서 펫티켓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갈등이 빚어집니다.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에티켓, 동물을 대하는 비반려인의 에티켓 모두 잘 알려지지 않으며, 지켜야 한다는 인식도 부족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시간과 홍보의 문제입니다.

독일은 동물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프랑스는 동물을 사람의 재산이 아니라 ‘감성을 지닌 생명체’라고 법률로 규정하기까지 2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동물의 지위, 사람과 동물 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는 이렇게 어렵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애견 관련 TV 프로그램의 급증과 스타 훈련사 등장으로 반려동물의 삶이 대중에게 조명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제외하면 다른 반려동물에 대한 양육 관련 정보를 얻기도, 적절한 동물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반려동물이 아닌 가축, 실험동물 등의 영역은 논의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 전 모 수의대에서의 동물 학대 사건은 과거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적 의식이 얼마나 모자랐는지 보여주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림 2> 지난 5월, 계양구 반려견 쉼터에서 열린 ‘반려동물 교실’. 우리는 동물과 사람 사이에 더 나은 관계를 배워야 하는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사진 출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반려동물과 사람 간의 관계가 달라진 만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난 5월, 계양구는 인천시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위한 펫티켓, 반려동물 교육법, 의료지식 등을 알려주는 ‘반려동물 교실’을 열었습니다. 새롭게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더 나은 반려동물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 반려동물의 삶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기회가 더욱더 많아져야 하고, 쉽게 접근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수의사, 동물훈련사 등이 모여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의무화가 된 반려동물 등록제도를 통해 새로운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유도하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현재 반려동물 등록율은 약 절반 정도 수준으로 추정되고, 고양이 등록이 시범 운영되는 동구 지역을 제외하면 강아지 이외의 동물은 등록조차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지자체는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면서 반려인들에게 자신의 반려동물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움을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반려동물을 만나면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 미리 대비할 수 있으며, 10만 마리가 넘게 발생하는 유기동물의 문제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반려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에티켓도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이미 반려동물은 도시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고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강정구(2016). 펫팸족의 출현과 반려동물의 재인식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과 영화작품을 중심으로, 세계문학비교연구, 54, 5-27.
김치호(2019). Bold journal. Issue No. 12. 서울: 볼드 피리어드
오승규(2015). 프랑스법상 동물의 지위에 관한 검토. 법과 정책연구, 15(4), 1-18.
홍완식(2017). 독일의 동물보호법제에 관한 고찰. 유럽헌법연구, 25, 523- 25, 523-544.




내 방이 온 우주가 되어간다_백화점과 새벽배송 사이에서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쇼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파는 곳에 찾아가서 상품을 몇 개 살펴보고, 물건을 구매하여 집에 들고 오는 것이죠. 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많은 선택권을 얻길 원할때, 그 해결책은 더 큰 규모의 시장입니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흔히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큰 변화를 마주하는 동안, 근본적으로 물건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행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쇼핑은 오랫동안 당연했던 생각, “물건은 직접 보고 산다”라는 진리를 깨끗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쇼윈도는 제품의 상세 사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의류, 가구, 먹거리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상품을 스마트폰 하나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택지가 늘었습니다. 대규모 쇼핑 사이트와 포털의 쇼핑 탭이 발달하면서, 같은 상품을 사더라도 매번 가격을 비교해가며 다른 업체에 주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SNS나 카페를 통한 공동구매, 해외 구매대행 업체가 무수히 늘어나면서 단순히 소매상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유통경로 자체가 다변화되었습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외국의 세계적인 유통기업을 논외로 하더라도, 국내의 주요 인터넷 쇼핑 플랫폼 업체들은 동종업체는 물론, 거대한 유통 대기업과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우리가 새 TV를 사러 흔히 전자제품 매장이나 백화점으로 갔지만, 이제는 국내 인터넷 쇼핑몰과 해외 직구까지 포함한 대여섯 개의 선택지에서 가장 나은 구매 조건을 찾습니다.

<그림 1> 한 중고차 판매 사이트 광고. 몇 년 전 TV 홈쇼핑에서 수입차가 판매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제는 중고차를 스마트폰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넷 쇼핑으로 살 수 없는 물건이 몇 개나 남았을까요.
(출처 : 케이카 홈페이지_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온라인 쇼핑에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사는 물건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제품의 종류일 뿐이지 내게 배송될 상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매와 획득의 시점이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사고 나서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죠.
과거에 흔히 하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봅시다. 먼 미래에 과학이 발전하면, 우리는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도 촉각이나 후각을 체험하면서 구매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홀로그램으로 옷을 입어보는 것처럼 피팅을 하고, 냄새를 맡으면서 신선한 과일을 고를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여전히 상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계속 흐른다고 하더라도 이런 미래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좀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더 빠른 배송’과 ‘더 쉬워진 반품’입니다.
좁은 땅과 밀도가 높은 도시에 사는 덕분에, 우리는 엄청나게 빠른 물류 이동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흔히 농담처럼 말하는 ‘옥뮤다 삼각지대’-한 택배회사의 물류 센터인 옥천 물류 센터에서 배송 물품이 며칠 동안 머무는 것을 말하는 인터넷 신조어-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늘 아침에 결제한 물건은 대체로 내일 점심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 이런저런 생필품을 아침에 주문하면 바로 그날 저녁에도 받아볼 수 있습니다. 한때 당일 배송을 강조하는 한 인터넷 서점 업체에서 점심시간에 주문한 책을 다음날 배송하게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는 일화가 SNS에서 퍼지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스타트업 기업이 시작한 신선식품 새벽 배송은 밤 11시에 주문하면 새벽 7시 전에 현관 앞에 물건이 도착합니다. 새벽 배송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러 업체가 앞다투어 제공하는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이 ‘배송 경쟁’의 결과, 이제 하루 이틀 사이에 대부분의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게다가 물건이 도착했을 때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실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쉽게 반품할 수 있습니다. 극도로 억제된 물류비용 덕분에 배송이나 반품에 드는 비용은 고작 3~4천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림 2> 고도로 발달한 우리나라의 택배 서비스는 넓은 세상을 현관 앞에 가져왔습니다. (출처 : ㅍㅍㅅㅅ_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도시는, 특히 도시의 서비스업은 소비자들의 새로운 요구를 찾아서 더 자잘하게 분화되고, 더 전문적인 서비스를 위하여 변화하여 왔습니다. 이로 인해 한때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대부분의 생활을 집 밖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일은 회사에서, 밥은 식당에서, 공부는 카페에서, 여가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복합 쇼핑몰에서 보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심지어는 가사노동이 집 안에서 사라지고, 식당과 편의점, 세탁소와 빨래방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교통의 발달을 통한 이동성의 증가는 도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쉽고 싸게 이용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들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도시에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이동성 또한 점점 더 혁신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과 자가용의 틀을 넘어서 공공 자전거 서비스와 택시 서비스, 퍼스널 모빌리티 등을 더 자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시 사람들은 이러한 이동성 증가를 통해서 더 많은 도시공간을 옮겨 다니며 서비스를 구매하고 여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내 집, 내 방안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인터넷 쇼핑을 통해 택배로 받습니다. 배달대행 서비스로 동네의 맛집에서 배달 주문해서 식사합니다. VOD 서비스로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SNS와 유튜브로 사람들을 소통합니다. 물론 여전히 주말마다 쇼핑몰은 붐비고, 힙한 거리는 사람들로 메워집니다. 방안으로 불러들인 생활은 정말 일부분일 뿐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대단히 커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나흘 정도의 휴가를-어떤 사람들은 더 긴 시간을- 온전히 집안에서 보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입니다.

지난여름, 저는 쇼핑이 일종의 레저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쇼핑은 이제 인터넷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집 앞 구멍가게, 문구점, 학교 앞 서점, 단골 정육점 등 생활 편의시설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백화점과 마트는 레저의 영역으로 옮겨집니다. 지난달, 부평과 구월동의 백화점 건물이 오랫동안 팔리지 못하다가 어렵사리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전철 이용자들이 퇴근길에 가득 메울 거라고 믿었던 사실과 다르게 10년 동안 민자 역사 쇼핑몰 한 곳은 20년이 가깝도록 대부분이 빈 건물로 남아있었습니다. 백화점 간의 경쟁과 건물 규모의 문제, 인근 부천시와 직면하는 상권 문제, 원도심의 쇠퇴 문제 등이 공실문제의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속사정에는 백화점과 마트에 가는 일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내와 방안에서 있어도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온 세계로 자유롭게 갈 수 있고, 방 안에 온 세계를 담을 수도 있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존 어리(2012).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 휴머니스트
존 어리(2014). 모빌리티, 아카넷
석혜탁(2018).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미래의 창
“롯데百, ‘앓던 이’ 인천점·부평점 매각 성사”. 머니투데이. 2019.5.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한국 경제를 망친 가장 큰 단일 직종은 역시 택배기사일지 모른다”. ㅍㅍㅅㅅ. 2017.3.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자율주행 기술과 도시공간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는 지난 전시와는 다른 모터쇼를 선사하였습니다. 많은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지난 몇 해 동안 자율주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동차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섰다고 평가되는 구글이나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들처럼 우리나라의 자동차 제조사와 통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자율주행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서울대 연구진이 개발한 자율주행차가 여의도 일반 도로에서 시험 운행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출시된 자동차에는 대부분 레벨2와 레벨3 사이의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해 있습니다. 단거리에서 일부분 조향과 속도 조절, 주변의 상황을 온전히 자동차에 맡길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얼마 전 한 통신회사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인천 경제자유구역에서 자율주행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레벨4는 스티어링 휠과 페달이 사라지는 레벨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에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운전에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림 1> 이제 자동차 제조사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작동 방법보다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중점을 둡니다.
CES 2019에서 기아자동차가 출품한 R.E.A.D 시스템에 운전석 탑승자의 얼굴을 분석하여 감정 정보를 추출하고,
운전자의 상태에 맞게 내부 환경을 조절합니다. 
(사진 출처: 스마트경제 _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인천에서 추진되는 자율주행 인프라는 아직 레벨5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의 대중화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운전자 개인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동차 수의 증가는 주차 공간의 면적을 증가시킵니다. 거의 모든 건축물은 면적에 비례하여 주차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동차가 늘어나며 필요한 주차면 수는 점점 늘어났고, 자동차 크기가 커지면서 자동차 1대당 주차장 면적도 넓어졌습니다. 늘어나는 주차 수요는 야외 주차장들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이제 주차장도 지상과 지하 여러 층으로 켜켜이 쌓아 올려야만 합니다. 10년쯤 전부터 아파트 단지 계획에서는 보편적으로 주민들의 안전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 지상에는 공원의 형태를 조성하고 지하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단층 야외 주차장 방식으로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거주자들의 소유 차량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완전자율주행 차량의 대중화는 주차장 조성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운전자는 이동할 때마다 자동차 주차 문제를 우선 생각했지만, 완전자율주행 차량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완전자율주행은 운전자 없어도 스스로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으니, 자동차는 운전자-완전 자율주행차량에서는 아무도 운전하지 않으니 그냥 ‘사용자’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만-가 이동할 때 달려오고, 그렇지 않을 때 더 먼 곳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직장인을 출근을 시키고 집에 되돌아간다거나, 가족을 놀이공원에 데려다주고 자동차는 30분쯤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연료를 소모하면서까지 승용차 주차가 운전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가정한 이유는 번화한 도시일수록 토지의 가격이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경우, 공영주차장 1개의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대략 8천만 원에서 2억 원까지 추산하고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값비싼 업무용 토지를 아침 출근부터 저녁 퇴근까지 주차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공간의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건축물에서 주차장이 차지하는 면적이 줄어든다면, 해당 공간만큼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아예 현재의 지하주차장이나 주차타워와 비슷한 양식의 건물을 짓지 않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는 현재의 건축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건축자재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도심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든, 녹지를 확보하여 탄소 발생을 줄이든 주차장이 감소한다면 혼잡한 도시도 조금 숨통 트일 수 있습니다.

완전자율주행 차량의 보편화는 ‘개인적인 대중교통’의 수요를 좀 더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자가용에 준하는 택시 서비스가 보편화할 수도 있습니다. 도시 대중교통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무인버스’, ‘무인택시’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현재 기관사 없이 운행하는 인천지하철 2호선처럼 말이지요. 버스는 노선이 이미 정해져 있어 큰 차이가 없겠지만, 택시는 지금과 다른 형태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카카오택시나 티맵택시 사례와 같이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보급되어 있으나, 여전히 빈 택시가 승객을 찾아 헤매는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무인택시는 공공이나 민간 사업자들이 마련한 몇 군데의 거점에서 대기하다가 승객이 택시 탑승을 원하면 가까이 위치한 곳에 승객을 태워 도착지에 내려주고 다음 거점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굳이 자동차를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운전자 없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자가용에 탑승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점차 상승하는 자동차 구입 및 유지 가격으로 인해, 자가용 구매보다 무인 택시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시간대에 승차 거부와 택시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심야에는 승객이 없는 빈 택시가 도로를 메우는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림2> 미국의 유통회사 아마존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의 결과로
2016년에 30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하는 무인배송시스템 Prime Air의 시범 운영을 진행했습니다.

(사진 출처: 아마존_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자율주행의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도시가 더 입체화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자율주행이 자동차뿐 아니라,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항공기 기술과 연결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이미 2013년에 미국의 유통회사 아마존에서는 드론으로 개별 가정에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시험했습니다. 여전히 아마존, DHL, 알리바바 등의 유통기업들은 무인항공기를 통한 배송 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류 수송이 도로 교통에서 완전히 해방되면서 신속한 수송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은 이 기술의 현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론 기술은 제도적으로 사생활 침해와 보안, 해킹을 통한 범죄 이용 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천의 경우, 공항 주변과 휴전선 부근 등에서 드론 이용이 금지되었고, 서울의 경우 허가받지 않은 대부분 시가지에서는 날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드론 배송 기술이 향상된다면, 도시 공간도 지금과 같은 규제에서 벗어나 이에 적합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도시의 하늘에는 상업적인 물류 배송을 위한 드론 경로가 제일 먼저 지정될 것입니다. 마치 비행기 항로가 평면적인 이동경로와 이동고도가 정해져 있듯이 무인 항공기 도로를 구획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 기존 도로의 상공을 이용하겠지만, 산이나 강과 같은 지형에서는 기존의 도로와는 별개로 하늘길이 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건축적으로는 개별주택의 옥상이나 마을 단위로 드론 착륙장이 생길 것입니다. 아파트의 베란다도 마찬가지로, 어쩌면 현재 아파트 평면에서 많이 계획되는 에어컨 실외기실이 드론 착륙대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정적으로는 무인항공기를 위한 하늘길을 법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입체 지적에 대한 논의가 확대될 것입니다. 현재 지적제도에서 대지, 전, 답 등으로 구분하는 지목은 하나의 평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발달하면서 단일 토지를 복합용도로 이용하는 사례가 매우 빈번해졌고, 한 토지를 여러 지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지목과 실제 이용이 달라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행정기관이 토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상과 지하를 구분하는 입체지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무인항공기 이용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입체 지목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행정기관의 토지관리가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고 예상됩니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과 무인항공기의 보편화는 굉장히 먼 미래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기술로 산업, 일자리, 일상생활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도시공간도 바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공간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김순자 외(2016). 드론 택배 도입을 위한 각국의 정책과 발전방안에 대한 연구. 물류학회지, 26(1).
김영수,지종덕(2014). 입체지적 도입을 위한 지목세분화에 관한 연구. 한국지적저보학회지, 16(1).
김영수,지종덕(2013). 한국 입체지적을 위한 지목체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지적정보학회&서울특별시 춘계학술대회 논문집.
이승준(2017).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 관련법상 운전자 개념 수정과 책임에 관한 시론 –독일의 논의를 중심으로-. 형사법의 신동향, 56.
“SKT, ‘인천경제자유구역’에 5G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한다”. 로봇신문. 2019.4.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원도심이 젠트리파이어를 맞이할 때 – 싸리재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젠트리피케이션은 무척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새롭게 떠오르는 가게나 거리가 SNS에 올라오면 그곳을 쫓아 유행을 즐기면서도, 사람과 가게가 사라지고 새롭게 생기는 일들이 거듭 반복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 거리의 색깔이 남아있을지를 생각합니다. 서울의 오래된 주거지역들엔 짧은 기간 동안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트렌디한 상업화’의 파도가 덮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홍대에 인접한 상수동과 연남동이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경리단길’로 유명한 이태원과 공장이 많던 성수동이 그 뒤를 이었고, 망원동, 후암동, 익선동 등의 주거지가 어김없이 먹거리와 작은 상점으로 변화하면서 유행의 최전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지방 도시들도 이러한 트렌드에 합류했습니다. 과거 ‘육군중앙경리단’이 인접하여 이름 붙여진 ‘경리단길’을 따라서 부산의 ‘해리단길(해운대+경리단길)’, 전주의 ‘객리단길(객사길+경리단길)’, 수원의 ‘행리단길(행궁로+경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황남동+경리단길)’ 등이 무수히 생겨났습니다. 인천 부평에 ‘평리단길’이라고 붙여진 골목에도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 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최근 원도심 지역에서도 새로운 흐름과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습니다. 개항장 일대를 중심으로 카페나 음식점 등이 생겨나지만, 최근 사람들의 관심 끄는 이야기는 대체로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년 전 여름, 이태원의 한 거리에 다양한 음식점을 열며 성공한 한 외식 사업가가 개항장 내동에 두 개의 음식점을 열게 되면서 동인천이 언론에 잠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부터 민간 사업자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그룹이 창립되자 인접한 싸리재의 몇몇 폐건물에 식당과 갤러리 등이 생겨났습니다. 블로그나 SNS 등에서 해당 가게들은 이미 유명명소가 되었고, 싸리재에서는 해당 도시재생그룹 이외에도 창업한 상점들이 일부 포착되고 있습니다.

한때 인천 최고의 번화가였던 경동 거리가 쇠퇴하고 다시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염려와 우려의 시선들이 오가며 이에 대한 근거들도 분명합니다. 인천의 주요 일간지에서 연재 기사로 다룬 내용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8년 말까지 경동의 상업·업무용 건물의 매매 103건 중 42%인 44건이 2017년과 2018년 사이에 집중되었습니다. 또한 이 일간지가 최근 거래된 건물 중 소유주를 파악한 20개의 건물에서 4곳을 제외하고는 타 지역의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이 활성화되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을 때, 부동산을 매각하며 단기 이익을 낼 가능성에 대해서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가구점이었던 기존 건물에 뉴트로한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변화한 싸리재 골목
(좌) 2017년 11년 경동거리 (참고:네이버 지도), (우) 2019년 4월 경동거리

쇠락했던 싸리재 골목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우려는 가로 활성화의 영향으로 현재 상점의 임대인, 인근 주거지의 거주자들이 타의적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홍대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서 음식점, 카페, 술집이 상수동 주택가로 옮긴 경우와 마찬가지로 익선동의 낡은 도시형 한옥에 도시재생 스타트업 기업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그곳에 머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상업화된 익선동에서 누군가는 그곳에 생동감을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집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싸리재의 미래도 그럴 수 있다는 염려도 이런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싸리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시재생그룹은 이러한 우려에서 비켜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싸리재는 주거지 한복판으로 상업시설이 밀려든 상수동이나 익선동보다 낙후하였지만, 기존 상권이 남아있어, 거주자 축출로 이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굴레가 비교적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익선동이나 연남동 등에서 ‘세탁소, 문구점 등 주민편의시설이 사라지는 대신 카페와 펍이 들어서면서’ 동네 주민들의 기본생활권이 붕괴되었지만, 싸리재는 가구점 위주의 상권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겸 전시공간
(좌)2017년 11월(참조 : 네이버 지도) (우) 2019년 11월 상가건물

표면적으로 지역 내 노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전시 등을 통해 노포와의 공존을 내세우는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은 최근 레트로 유행을 따르면서 오래된 지역의 물리적 환경만을 취하여 지역의 성격을 바꾼 여타 지역의 도시재생 민간기업과는 차별되는 점입니다. 젠트리파이어가 기존의 상권과 공존하려는 시도는 서울의 많은 지역의 실패와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서울의 많은 지역에서 젠트리파이어들은 거리에 색깔을 바꾸고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그로 인해 기존의 상점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젠트리파이어들조차도 장기적으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높은 임대료를 지출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이나 병원 등으로 대체되었고, 결국 거리는 다시 몰개성화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이 자신들의 새로운 가게를 늘려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역의 노포들을 발굴하고 알리려는 것은 장기적으로 거리의 개성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샤론 주킨의 표현을 빌리면 ‘정통성’을 가지려는 것이죠. 이들이 이 지역의 역사와 노포를 강조하고 도시재생그룹의 대표 스스로가 이 지역 출신임을 강조하는 것 또한,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을 생각하되 단기적인 이익에만 목표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이 ‘뜨는 동네’에서 단기적인 시세 차익을 노리는 외부 투자자들과 일견 다른 면모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싸리재가 또다른 익선동과 연남동이 될 수 있다는 지역 사회의 우려는 당연합니다. 이 그룹은 이미 해당 지역에 20여 개의 건물을 구입하여 지역재생에 활용하고자 합니다. 젠트리파이어들이 임대 상인으로 지역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과 협력하여 건물을 구매하는 것은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오랫동안 머물기 위한 긍정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지만. 이와는 달리 거리 활성화를 통해 차익을 더 크게 얻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지역사회도, 도시에 관심을 두는 외부인도, 어쩌면 싸리재의 도시재생그룹 또한 전자를 바랄 수 있지만, 미래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노포들과 공생하겠다는 목표는 어쩌면 이들의 손을 떠난 문제입니다. 가로가 활성화되어 땅값이 상승할 때, 노포들의 임대료를 올리는 것은 해당 건물의 토지주와 노포 상인 간의 문제이며 도시재생그룹이 이해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후한 거리에 자본이 빠르게 투입되었을 때, 지방자치단체의 선제 역할과 제도적 방편이 필요합니다. 건물이 매매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임대 상인들이 권리를 보호받는지, 새롭게 들어서는 상점이 거주민들의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낡은 건축물들을 철거하거나 개조를 할 때, 보존하여야 하는 건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인근 임대료가 함께 상승하면서 임대 상인들이 무분별하게 축출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관찰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입니다. 성수동의 사례에서 보듯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통해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거나 계약 기간을 보장하는 방편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화여대 앞의 경우처럼 지방자치단체의 주선으로 지역의 토지 및 건물주들이 무분별한 개발과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체를 조직하여 거리의 개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낙후된 지역에 젠트리파이어들이 진입하여 ‘뜨는 거리’가 되면, 그것은 분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 있으나, 급등하는 지가에 따라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입점하는 것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인천시가 오래된 가게를 발굴하여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개발하는 계획을 세우고 아울러 자문위원회와 싸리재 주변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TF팀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차이나타운과 개항장 일대에서 인천의 근대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듯 인접해 있는 싸리재가 산업화 시대에 인천 원도심의 오래된 기억과 가치를 가장 트렌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사진/ 이진솔 (정책연구팀)

[참고문헌]

김다윤, 김경민, 김건 (2017). 주거지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이 빈곤밀집지역에 끼치는 영향. 서울도시연구, 18(2), 159-175.
김준우, 김용구, 전동진 (2018). 신포동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연구. 인천학연구, 29, 303-320.
윤혜수 (2016). 새로운 소상공인의 취향과 공간적 실천. 문화와 사회, 227-281
“[인천 싸리재 리포트·(1)자본 유입 우려 시선]외부자본의 힘, 쇠퇴한 경동거리 흔드나.” (경인일보 2019. 3. 27. 8면)
“[인천 싸리재 리포트·(2)변화를 이끄는 사람들]민간 주도 ‘개항로 프로젝트’ … 도시재생 실험 도전장” (경인일보 2019. 3. 28. 8면)
“[인천 싸리재 리포트·(3끝)우려의 시선들]지역가치 훼손 막을 ‘안전장치’ 서둘러야” (경인일보 2019. 4. 1. 7면)
“개항기 번화가 ‘싸리재’ 다시 주목받는다” (경인일보 2019. 4. 5. 1면)
“오래된 가게, 손때 묻어나는 ‘스토리텔링’” (경인일보 2019. 4. 11. 3면)




작아지는 가족, 작아지는 집 <1인 가구와 작은 주택들>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Valérie Gelézeau)는 한국 사회와 아파트를 분석한 책을 쓰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의 존재감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의 아파트는 건설산업을 지탱하며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의 구조를 바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파트는 주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습니다. 아파트는 좋은 주거를 판단하는 기준이자 토지와 건물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이며 자산 증식을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파트는 삶의 과정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목표가 됐습니다.

아파트의 시대가 50년 이상 지속되면서 아파트의 모습도 다양하게 나뉘었습니다. 한때는 브랜드 아파트 순위에 따라 사람들을 계층화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반면 어떤 아파트는 사람들에게 낙인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속칭 “휴거”는 우리 사회가 임대아파트와 그곳에 사는 거주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말해주는 슬픈 신조어입니다.

이제 아파트는 한국인의 삶에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최근 수년간 주거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내 집 마련’이라는 표현에서 ‘내 집’은 ‘아파트’를 내포합니다. 아파트가 주거의 대표 표상이 되어서, 사람들은 집을 선택하고 평가할 때 아파트를 기준으로 둡니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거나 그렇지 않던 간에도 아파트의 존재를 인지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주거 문화를 ‘아파트’가 잠식하는 동안, 실제로 아파트는 우리나라 주택의 약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9%의 가구가 아파트에 산다고 합니다. 도시 지역은 이런 경향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로 인천광역시는 전체 가구의 약 52.9%가 아파트에 거주합니다. 꾸준한 택지 공급과 주택지의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의 수가 증가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가구 절반이 아파트가 아닌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천 전체 가구의 약 40% 가까이 단독주택(통계상에서 단독주택에는 다가구 주택을 포함합니다.)과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최초로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가구도 약 5%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다세대 주택의 숫자와 주택 이외의 장소에 사는 가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것은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서 단순해진 세대구성에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저출산으로 인해 가족원의 숫자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천 초등학교 한 학급당 학생 수는 이미 2012년에 25명이 채 되지 않았고, 작년 2018에는 23명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과거보다 한 자녀 가구는 큰 변화가 없지만, 세 자녀 가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한 지붕 아래에 함께 살지 않기도 합니다. 학교와 직장을 따라 한 가족이 여러 가구로 나누어졌습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기획 의도에서 “1인 가구가 대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족마저도 물리적 공동체에서 정서적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흐름은 인천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기준 한 가구를 구성하는 평균 가구원 수는 2.6명(전국 평균 2.5명)에 불과합니다. 반면, 인천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2017년에는 무려 266,434가구에 이릅니다.

1인 가구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보통은 결혼 전의 청년층이나 사별한 노년층이 많을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50대가 1인 가구의 20%에 육박합니다. 그리고 20대부터 50대까지는 남성이 여성보다 1인 가구 수가 더 많습니다. 인천의 1인 가구는 일자리를 위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표 1. 인천의 연령별 1인 가구 수 (2017년. 출처: 인구총조사)

이 1인 가구들이 차지하는 주거 형태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주거형태 비율과 아주 다릅니다. 인천의 가구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2017년 1인 가구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1/3에 미치지 못합니다. 절반 이상이 단독주택(역시 다가구주택을 포함합니다.)이나 다세대 주택에 살며,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가구도 12%를 넘어섰습니다.

표 2. 인천 1인 가구의 주거 형태 (2017년. 출처: 인구총조사)

인천에 지속해서 늘어나는 1인 가구가 아파트 이외에 다른 주거 형태에 훨씬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은 여러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1인 가구에 대한 주거 복지 정책이 청년층에 대한 임대 주택 건설과 노인 복지의 일환으로 치중되어 이루어지나, 인천의 1인 가구는 다양한 연령대로 분산되어 있습니다. 특히 경제활동인구가 많은 연령대에서 남성이 다수의 양상을 보입니다. 이는 인천의 ‘1인 가구’가 혼인을 하기 전 단계인 청년층의 임시적 가구나, 사별 혹은 황혼 이혼으로 인해 혼자 사는 노년층이라는 일반적 인식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 1/3이상이 사는 단독주택(실제로는 대다수가 다가구 주택)의 상당수는 6~8평 수준의 원룸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인천의 1인 가구는 생애주기의 상당 기간 동안 절대적인 주거면적의 부족을 겪고 있으며, 대단지 아파트가 갖추고 있는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의 결핍과 같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측면에서 더욱 불리한 조건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림 1> 한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등록된 인천의 원룸(상)과 그 중 한 사례(하).
어느 도시가 그렇듯 인천의 1인 가구의 터전은 6평 원룸이며 이는 주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사회에 진출하여 평생직장을 구하고, 결혼과 함께 저축과 청약으로 아파트를 얻는 일종의 한국판 ‘주택주사위’(住宅双六. 일본의 생애주기에 따른 주거의 변화를 말판놀이로 구성한 것)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1인 가구에 대한 주거 복지가 특정 연령층에 집중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사각지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여전히 대단지 아파트 중심의 도시계획에서 빗겨나 있는 주택들의 주거의 질에 대한 제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소형 주택이 밀집한 원도심 지역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도시재생사업은 도시의 길과 공공시설, 커뮤니티와 지역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의 질 향상은 길 양 옆에 있는 오래된 주택들과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수많은 다가구 주택들의 건축적 향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글 · 이미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박인석(2017). 건축이 바꾼다. 마티
발레리 줄레조(2007). 아파트 공화국. 후마니타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자세히 내용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