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로 가는 길

‘예술’이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로 가는 길

한은혜(은하수미술관 대표)

2020년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19라는 전염성 질병의 유행으로 생활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있었다. 비대면 교육 시장의 활성화, 화상회의와 재택근무, 배달 문화의 확산, 방역의 생활화 등 각 분야에서 언택트 상황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났고, 10년 후쯤 미래에 일어날 것만 같았던 많은 일들이 앞당겨졌다.

미래에는 많은 것들이 기계화·비대면화 될 것이라며 다방면의 기술적인 연구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런 일들은 기술분야의 산업 또는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예술활동 분야처럼 느껴졌고 나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모든 상상이 빠르게 실현되었고, 강제적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꽤 아날로그한 감성과 생활 습관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나도 어느새 무인 상점을 자연스럽게 들어가고, 온라인 공간에서 화상회의를 직접 주최하며, 온라인 공연을 감상하기도 한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이 선포되고 문화예술교육의 장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교육 대상을 예술의 단순한 향유자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예술 경험을 더 깊게 내재화하고 실재적으로 삶의 변화와 사회 문제 해결까지 이끄는 매개체로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교육의 장에서 ‘대면과 현존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물음은 소극적인 기다림을 선택하게 했다. ‘괜찮아지면 만나러 가자. 조금 기다렸다가 만나러 가자.’고 다짐하면서.

인천서구문화재단 아동·청소년 특화 교육사업 <2020 찾아가는 예술학교: 찾아가는 미술관> 교육 현장 (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이 상황이 길어지고, 중요하고 긴박한 일상의 상황 등을 정리해 나가다 보니 그사이 ‘정서적 우울감’, ‘코로나19로 인한 공포감’, ‘아동의 발달 지체’, ‘가정에서의 스트레스 증가’ 등 새로운 문제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예술과 예술교육현장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즈음 은하수미술관도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2020년 상반기 동안 미루었던 교육을 어떻게 시행해야 하고 지금까지와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고, 인천서구문화재단의 <찾아가는 예술학교: 찾아가는 미술관>을 만나게 되었다.

은하수미술관은 이전부터 ‘찾아가는 은하수미술’이라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양한 명화 작품들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달하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본 후에 ‘명화일기’로 감상을 기록하고 작품을 재해석하는 인문학과 예술의 융합 교육 콘텐츠였다. 그래서 우리는 ‘온택트로 찾아가는 미술관’을 컨셉으로 하여 더 재미있는 그림이야기와 창작 키트를 가지고 찾아가기로 했다.

학교의 요구와 문화예술 강사들의 제공 서비스, 아이들의 실제 교육 참여와 만족도가 일치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많은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미리 문화재단과 미팅을 하고, 콘텐츠를 영상으로 제작한 후에, 학교에 전달해 콘텐츠의 내용과 활동의 수준 등이 우리가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맞는지 교사로부터 확인받고, 필요할 경우 학교 교사들을 만나서 직접 수업의 시연을 거치며 콘텐츠를 보완했다.

인천서구문화재단 아동·청소년 특화 교육사업 <2020 찾아가는 예술학교: 찾아가는 미술관> 교육 현장 (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좌충우돌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0년 하반기에 400여 명의 아이들과 만났다. 아이들이 활동한 사진을 전달받은 후에 ‘진작에 우리는 이렇게라도 만나야 했다.’라고 생각했다. 우린 주저했지만 이미 아이들은 너무나 익숙했다. 비대면도, 영상 콘텐츠도, 영상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비대면으로 만난 찾아가는 예술학교는 아이들에게도 강사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단절을 이어주는 기회였다. 2021년 역시 코로나19 상황은 2020년과 다르지 않다. 다만 교육을 하는 우리는 이전보다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상도 열심히 보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전달 방법도 고민하고, 아이들이 비대면 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다.

‘만남’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우리는 서로 만나고 싶어 한다. 서로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서로 공감하고 싶다. 아이들이 예술을 만나러 나올 수 없다면 예술이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을 확대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야만 한다. 방법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항상 우리는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만남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표현하며, 교감할 수 있는지 교육 현장에서도 새로운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언택트 중심의 생활은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비대면은 확산 될 것이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마주잡을 수 있다고 느낄 만큼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서서 경험과 교육을 내면화 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교육을 설계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자 앞으로의 숙제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 예술과 문화예술교육은 위로를 넘어서 다시 공감과 창의성, 자기 내면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다짐한다.

‘우리가 조금 느려도 기다려줘.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러 갈게.’

한은혜 (韓誾慧, Han Eunhye)

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 졸업(2007). 은하수미술관 대표(2018).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 <시간을 달리는 수인선 낭만열차길 조성> 프로젝트 진행(2020). 길 위의 인문학 <거리로 나간 예술, 그라피티 아트로 마을에 흔적을 남기다> 강의(2021).




현장 담당자로 지역 안에서 지역 바라보기

현장 담당자로 지역 안에서 지역 바라보기

김새놀(연수문화원)

어린 시절 겨울이면 가족들과 썰매를 타러 가던 송도유원지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차가 거의 없어 어머니가 운전 연습을 하던 해안도로는 송도신도시로 가는 길목이 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지만 연수구가 생길 때부터 성장하고 경험해왔던 문화적 향수를 바탕으로 그럴싸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거기에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문화예술’로 이를 풀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해졌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연수문화원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고, 나를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6개월의 경력밖에 없던 사회 초년생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만, 연수구에 관해 묻노라면 A부터 Z까지 꿰고 있는 이 지역 부심 하나로 6년째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연수문화원 생활문화팀에 근무하면서 생활문화와 문화예술교육 관련 사업을 기획․운영하고 있기에 관내 곳곳을 찾아갔고, 다양한 지역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열정과는 달리 ‘문화재단’도 ‘문화예술단체’도 아닌 ‘문화원’에서 문화사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애매한 지점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문화원은 전국 230개 지역에 설립되어 있을 정도로 꽤 큰 조직이지만, 향토 및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고유 목적이 분명하여 최신 트렌드나 이슈를 반영한 시도에는 한계점이 분명 존재하였다. 게다가 문화사업은 어느 정도 연속성과 중장기적인 계획이 중요하고 그 중심엔 재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낮은 문화원에서는 사업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 얘기는 즉, 적은 예산으로 최대치의 사업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 몫은 자연스레 사업 담당자들의 책임감이자 부담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녹록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문화원이 던질 수 있는 승부수는 바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연수문화원은 지역 안에서 20년을 마주하며 물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변화까지도 담아내고자 하였다. 문턱이 낮은 문화원에 다양한 평생학습 강좌들이 개설되다 보니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제일 놀라웠던 것은 주민분들이 직접 과일을 깎고 옥수수를 삶아와 사무실에 주기도 하시며, 본인의 일상을 얘기해주고 또 직원들의 안부를 되묻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박한 일일지 모르지만,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SNS로만 감성을 논하던 나에게 문화적 향수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강좌나 프로그램 참가자가 아닌 지역주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자연스레 사업에 녹여낼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2020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사진: 연수문화원)

문화원에서 가장 애정하고 보람된 일을 꼽자면 바로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일, 그 과정이 사람과 지역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곳에서 가능한 문화예술교육이 뭐가 있을까?’ 늘 고민하였다. 문화원의 접근성과 지역 안에서의 이점을 바탕으로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고 싶었다.

2016년도부터 선정되어 운영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도의 사업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200여 명의 곡이 만들어졌으며, 이제는 지역 안에서도 꽤 입소문이 나 많은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동안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관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지속해서 연주될 기회를 마련하며,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올해부터는 그 의미와 가치를 담아 <인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으로 프로그램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전문성을 담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인천 현장역량강화사업>을 통하여 전문 인력이 부족한 문화원에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의 협력 운영으로 진행되는 <인천 생애전환문화예술학교>는 50~64세 신중년을 대상으로 개설된 예술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만들어진 사업인데, 올해는 ‘트롯’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지역주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20 인천 문화예술교육사 현장 역량강화사업 <트롯은 인생을 싣고> (사진: 연수문화원)

문화원에서 이렇게 문화예술교육이 잘 자리 잡은 데에는 함께하는 예술강사와 긴밀한 소통과 나눔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행정 담당자라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강사가 마주하는 ‘현장’을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참가자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하고 고민과 생각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기능 중심의 어떠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해를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목적’이 아닌 ‘과정’에 주목하고 ‘잘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였던 이러한 기록들이 지역 안에서 문화원이 문화예술교육을 ‘잘’할 수 있게 된 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문화에 대한 경험은 인구의 수나 건물의 높이가 아닌 연수 지역 곳곳에 대한 애착과 일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행정 담당자가 아닌 현장 담당자로서 지역주민과 예술가들을 만나며 나의 도시 ‘연수’를 위한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다.

김새놀(金새놀, Kim Sae Nol)

서울연극협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연수문화원 생활문화팀장으로 재직중이다. 생활문화동호회 지원사업과 문화예술교육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늘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있다.




새로운 문화 담론의 시작점, 인천아트아카이브

새로운 문화 담론의 시작점, 인천아트아카이브

이탈(인천아트아카이브 총감독)

아카이브는 일차적으로 작가가 예술 활동 과정에서 생산해 낸 자료이자, 그 활동을 보조하고 체계화하기 위하여 만든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의 기록 일체(보고서, 계획서, 팸플릿, 카드, 도면, 시청각자료, 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자료)를 말한다. 더불어 단순히 과거사 복원에 머문다거나 공간적으로 폐쇄된 장소로서의 아카이브 형식을 벗어나 유동성이 부각된 기록화 방법론들이 개발되고 있다.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며 원본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전통 방식의 아카이브와 달리, 주관이 개입하고 감응과 충동 경험으로 기록을 벗어난 다양한 현재적 증언과 증거들이 교차하는 가치 발굴의 기록보관소로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작가들은 생산자의 생산맥락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맥락적 해석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공식적 기록 외에 비공식적 아카이브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미시적이고 이질적인 텍스트들이 교차-생성하는 또 다른 예술 작업으로의 기록 보관소인 것이다.

인천문화재단의 ‘인천아트아카이브’ (http://www.inartarchive.kr)

개인 혹은 집단적 기억이 특정 사건을 통해 구축되는가하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기억에 의존해 특정 사건이 아카이브로 구축되기도 하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이 반드시 과거의 기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마르셀 프루스트) 기억과 역사가 똑같이 과거를 재현하는 통로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기억은 언제나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입장과 과거를 ‘재신화화(Remythologization)’하는 태도 사이에서 긴밀한 긴장과 충동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물관, 미술관에 ‘박물(博物)’ 된 사료(史料)를 의미해왔던 컬렉션도 동시대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공적 담론의 콘텍스트가 되어 ‘재맥락화(再脈絡化)’가 가능하다.

이부웅 작가 작업실 방문(이부웅, 김한별)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아카이브

역사적으로 한 지역에서 생산된 예술 작품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관련 아카이브의 유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카이브는 특정 시대의 정신과 예술의 동향을 담고 있는 정신적 유산이며, 작가와 작품 관련 기록은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예술의 경향이 변화하는 원인과 과정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집된 자료들이 생산된 지역과 관련지을 때 지역 미술사의 보다 높은 가치를 담보할 수 있다. 또한, 창작자 개인 차원에서 생산된 자료들은 적절한 시기에 수집, 보존되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실·망실되어 사라지며, 사라진 자료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다. 인천지역에서도 시각 예술에서 중요한 활동을 했던 예술가들의 작고가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적극적인 아카이빙 실천이 시급하다 할 수 있다. 창작 주체들이 생산한 다각적인 자료들을 수집, 보존, 분류, 연구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역사의 하부를 조망하고 재창안하는 연구를 독려하는 아카이브를 통해 작가가 활동하고 있는 시기부터 체계적, 조직적 수집 및 보존이 필요하다. 창작자와 작품 중심의 아카이빙을 넘어서기 위해서 자료수집의 현황과 잠재적 정보를 가능한 포괄적으로 조사하도록 그 범위와 대상을 구체화할 필요도 있다. 아카이브 화는 기록된 양 만큼의 사건을 생산한다는 맥락과 맞닿는 이치다.

인천문화재단 기획 회의(주현수, 이생강)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아카이브

인천문화재단의 <2020 인천아트아카이브> 사업의 핵심은 지역 시각예술작가 아카이브의 디지털화이다. 문서화·시각화를 특징으로 하는 미술영역의 기록들을 디지털 플랫폼에 연결하는 것이다. 하부 저장고로서 개인들의 독립적인 온라인 아카이브까지 매칭하여 새로운 기록 보관소로서의 질서를 조성하고, 박제되지 않는 ‘유동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인천아트아카이브는 아카이브의 최종 취합이 아니다. 기록 연속체적 관점에서 개인이나 사설단위의 소장자 및 연구자들의 아카이브와 연계하는 장을 마련하여 현장 예술계에 퍼져있는 자료들의 공유와 연구 네트워크를 모색하는 접근방법이다. 시공간에 묶여 종결된 아카이브가 아닌 과정적이고 재해석적 가치를 열어둔다면 전통적 이론 프레임을 넘어서 동시대 예술 아카이브 패러다임을 상호적으로 형성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인 작가 구술채록(김경인, 김달진)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아카이브

<2020 인천아트아카이브>는 60세를 전, 후로 인천출생 출향작가, 인천으로 이주하여 최소 20년 이상 인천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작가를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재단 관계자, 지역 연구진, 인천아트아카이브 기획팀과 협의를 통해 아카이브의 이해와 자료수집의 원활성 등을 토대로 일차적으로 2020년 작가 목록을 구성하였다. 직업별 배분과 창작활동의 배경 또한 선별의 중요한 지표로 고민하였다. 교사, 교수, 학원 운영, 자영업, 전업 작가 등 창작과 생계를 위한 다양한 직업도 아카이브의 중요한 배출구라는 인식이다. 아카이브는 일반적 전시회의 구조와 다르므로, 작가들 간의 친목이나 작품 성향의 관련성, 이데올로기적 판단 등을 배제하였고, 순수하게 개별 작가의 생애주기별 아카이브 정리가 가능한 작가를 우선으로 배정하였다. 특히, 이미 진행된 혹은 진행되고 있는 아카이브 방식에서 작업실 이동 경로를 추적, 제공함으로써 여타 아카이브 방식과 변별점을 갖는다. 작가들의 생활고는 종종 작업실 문제로 이어지곤 하는데, 작품이 쌓여갈수록 보관 문제도 함께 동반되어 적지 않은 작품들이 이사 시점마다 여러 방식으로 분실, 파손, 사장되어버리곤 한다. 생계의 위기와 창작의 고충 등 삶의 질곡이 묻어있는 사연과 흔적이 뒤섞인 작업실 스토리텔링은 또 다른 기억의 저장고로서 작업실이 가지는 의미이다.

<2020년 인천아트아카이브>는 향후 진행될 아카이브의 목표와 방향설정의 이정표이다. 아카이브는 지속적인 DB의 업로드가 요구되는 사업이므로 2021년부터는 지역 연고 작고 작가와 원로작가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치밀하고 섬세한 연구를 통해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카이브는 창작자를 넘어, 지역의 인내와 헌신, 그리고 충분한 시간과 예산확보를 통해 가능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지역 문화예술의 유산을 발굴, 보호하고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은 자료 공유를 위한 아카이브 기증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어 지역 미술사 연구의 저변을 견고히 하는 기회가 제공되리라 기대한다. 이번 인천아트아카이브에 참여한 작가들에 의해 빈번히 발언된 ‘동시대’라는 용어는 단순히 ‘지금’, ‘오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감이란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듯이, 동시대의 해석도 저마다의 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인천아트아카이브가 향후 어떤 맥락으로 공공기록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대 공감 정서의 보다 구체적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탈(李脫, Lee Tal)

이탈은 2020년까지 13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경기대, 백석대, 인천대, 중앙대, 춘천교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타쉬켄트 비엔날레, INSIDE AFRICA, 다카르비엔날레 특별전,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여러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현재는 한국미디어아트협회 이사를 역임하며 인천 강화도에서 작업하고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부평아트센터의 새로운 시도

코로나가 불러온 부평아트센터의 새로운 시도

임정인(부평구문화재단)

여전히 코로나19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힘이 든다. B.C(Before COVID19)와 A.C(After COVID19)로 나눠야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크고 작은 감염이 계속 이어지며 현재 4차 유행의 위험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겠지만 문화예술 분야 또한 그 어느 시장보다 직접적인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문화예술 행사는 물론 국공립 예술극장의 운영 중단 권고라는 문화예술 산업에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문화예술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위로와 위안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많은 문화재단과 문화예술기관에서는 코로나19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선보여 왔다. 비대면의 가장 기초적인 영상화 사업들은 각 공연장들의 영상 채널 송출을 위한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기회가 되었다. 문화예술과 디지털 융합의 긴밀한 연계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예술가들은 발코니 음악회와 같은 기존과는 다른 형식의 찾아가는 공연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부평구문화재단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소소하게 이어가고 있다. 2020년은 부평아트센터가 개관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살이 된 부평아트센터를 지역 주민, 관객들과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아쉬웠다. 작년의 경우는 대면 공연 기회도 축소되었고, 모든 작품을 영상화로 대체할 수 있는 여력도 충분하지 못해 부평아트센터에서 보여 줄 수 있는 특별한 작품들을 선별하는 데 노력해왔다. 지난해 그리고 올 4월에 진행했던 특별했던 2개의 공연 사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평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이머시브 연극 <극장을 팝니다> (앤드씨어터, 부평아트센터 일대, 2020.9.4.~9.6.) ⓒ김봄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극장을 팝니다>라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2020년 부평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작년 부평구문화재단은 상주단체였던 앤드씨어터와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0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관객 참여형 연극인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을 제작하였다. 초반에는 대면형 이머시브 연극을 준비하였으나,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의 제한이 생기면서, 관객들과 출연진, 관객들과 관객들이 최소로 만나면서 참여할 수 있는 이머시브 연극의 방향으로 변경하였다. 2020년 최고의 화두인 팬데믹을 반영하여 지난 10년의 부평아트센터의 가치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두 담아낸 <극장을 팝니다>는 공연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부평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이머시브 연극 <극장을 팝니다> (앤드씨어터, 부평아트센터 일대, 2020.9.4.~9.6.) ⓒ김봄

부평아트센터라는 공간감을 관객들이 직접 느낄 수 있게 시간당 5명의 소규모의 관객이 참여하되, 태블릿을 통해 공간의 연극화된 영상을 보고 들으며 공간들을 밟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극장을 팝니다’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팬데믹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연장을 매물로 내놓은 설정이었다. 관객들은 배우, 공연장 행정가, 무대기술스태프, 관객, 시설관리자 중 1개를 택하여 태블릿을 보면서 부동산을 소개하는 매개자 없이도 직접 공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밀도 있게 공간을 체감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팬데믹 시대에 적합한 비대면 오프라인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점이다. 개인당 제공받은 태블릿 PC를 통해 각자 개별의 동선을 체험함으로써 관객과 배우(또는 관객) 사이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영상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극장의 현장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앤드씨어터와 함께 부평구문화재단의 공연 담당자와 무대기술 스태프들은 아이디어 회의부터 다양한 진행과정에서 거듭된 회의를 통해 작품의 방향성을 함께 만들어 갔다. 작품 시나리오 구성을 위해 시설관리자, 행정직원, 부평아트센터를 찾아주셨던 관객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직원들은 물론 관객들도 부평아트센터의 10주년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체험에 참여한 관객들에게는 이 극장을 팬데믹으로 인해 팔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주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게 될 그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2021 부평구 법정 문화도시 지정 기념 공연 <다시, 봄> (부평구아트센터 해누리극장, 2021.4.3.) ⓒ부평구문화재단

두 번째로 소개할 공연은 올해 진행했던 <다시, 봄>이다. 2020년 코로나19를 처음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가급적 공연을 취소하는 것이었다면, 올해는 ‘위드 코로나(with COVID19)’로 노선을 바꾸어 안전하게 공연을 치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올해는 부평구가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도시 부평을 알리고자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된 시기인 4월 3일 소규모의 캠핑음악회를 선보였다. 코로나19로 굳게 닫혔던 공연장 문이 다시 돌아온 봄을 맞이하여 관객에게 열리고, 관객들은 무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공연 제목을 <다시, 봄>으로 선정했다.
타악팀인 한울소리, 팝페라그룹 일리브로, 가야금랩오드리, 로커빌리밴드 스트릿건즈, 그리고 부평구문화재단 제작공연이었던 뮤지컬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과 뮤지컬 <헛스윙밴드>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였는데 부평구나 인천에 연고가 있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오랜만에 공연장으로 나들이 나오는 관객들을 위해 야외에 텐트를 설치하려 했으나 우천으로 인하여 급히 공연장으로 장소가 변경되면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무대에 텐트와 캠핑용 감성 조명을 설치하였다. 170팀 신청 가족 중 19팀을 선정, 단 70명만 관람한 공연으로 관객은 무대에 앉아서 빈 객석을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을 마주했다. 타악 연주에서부터 뮤지컬, 팝페라, 가야금 연주 그리고 락음악에 이르기까지 약 80여분의 공연으로 답답한 일상에 지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관객들의 밝은 표정을 마주하였다. <다시, 봄> 공연은 부평구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소개한 두 작품은 아마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쉽게 시도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헬렌 켈러의 말처럼 코로나19는 공연장에서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아직은 코로나19의 긴 여정의 끝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18년 최초 발병하여 범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은 그 당시 세계 총인구 16억 명 중 대략 30분의 1에 해당하는 5천만이 사망한 최악의 바이러스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집단면역 형성과 검역 격리 및 방역의 효과로 1920년에 종식이 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 코로나19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과거보다 훌륭한 의료 장비와 의료진,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다. 이 어둠의 끝을 향해 조금 더 참고 서로를 배려해 나가며 조만간 문화예술계도 활짝 웃을 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임정인(林正仁, Lim Jeong In)

한국문화복지협의회, 구로문화재단, 대성디큐브아트센터를 거쳐 오랜 시간 부평구문화재단 공연사업팀(現 예술기획팀)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경영지원팀장으로 재직중이다. 문화예술교육, 문화바우처(현재의 문화나눔), 찾아가는 공연, 하우스매니저, 대관, 축제, 기획, 제작 등 공연장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부평구문화재단 제작 뮤지컬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헛스윙밴드> 제작 PD를 맡았으며, <부평키즈페스티벌>, <오늘도 무사히 콘서트> 등을 기획하였다.




학교 공간에 ‘예술’ 비집고 들어가기

학교 공간에 ‘예술’ 비집고 들어가기

김은주(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교사)

인천시 부평에 있는 동수초등학교와 부평서중학교의 복도, 계단,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 지난 4월부터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학교 ‘공간’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으로 예술가 인세인박&송희정, 김나영&그레고리마스가 들어와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인세인박&송희정, <등교하며 매일 만나는 작은 미술관>(동수초등학교, 2021) (사진: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학교를 떠올리곤 한다. 유현준 교수가 “전화기, 비행기, 자동차, 학교는 근대화를 만든 시스템이다. 그중 전화기. 비행기, 자동차는 지난 100년 동안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 바뀌었다. 그러나 학교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제가 다닌 학교나 우리 아들이 다닌 학교나…….”라고 말한 것처럼 학교 공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필자가 교사로서 20년 동안 다양한 학교를 경험하면서 그대로 느낀 점이기도 하다. 학교는 관리와 지도를 위한 근대적인 건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권위적인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학교 공간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학교의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공감과 소통의 공간으로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의 중심이 학생에게로 이동하면서 공간을 활용하는 주체가 학생이며, 주체를 위한 공간으로의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이 ‘학교공간혁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학교공간혁신’은 소수의 학교에 제한되어 있거나 기존의 외형의 틀을 바꾸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형의 변화가 공간을 변화시키고 공간이 관계를 변화시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형변화에만 치중하는 점과 주체자인 학생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는 점이 항상 아쉬웠다. 이러한 점에서 동수초등학교와 부평서중학교에서 진행된 전시는 기존의 물리적인 학교 공간을 바꾸지 않고 공간과 관계에 변화를 주기 위한 예술가들의 시도였다. 이는 기존의 학교 공간을 마주하고 있는 필자에겐 커다란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인세인박&송희정, <등교하며 매일 만나는 작은 미술관>(동수초등학교, 2021)(사진: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학교 복도를 따라가 보자. 아이가 그려 놓은 듯한 픽셀화된 낙서 이미지, 화장실 세면대 앞 악수하듯 내밀고 있는 손 모양의 비누, 학교라는 현실적 공간에 떠다니고 있는 초현실적인 이미지, 학교 중앙현관 장식장 속 트로피와 상장을 밀어내고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피규어가 있다. 학교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예술은 할아버지부터 손자로 이어져 오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던 학교의 견고한 분위기를 혼돈과 질문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학교 공간에 예술가들이 엉뚱한 예술적 상상력으로 학교 공간의 주인인 학생들과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는 것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호수의 물이 일렁이듯, 예술가들은 학교에 예술을 던져 소통이라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이 재미난 시도를 지켜보면서 숨어 있는 학교 공간에 돌멩이를 찾는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소통의 파장을 일으킨 물보라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질문이 적힌 종이를 보며 일방적 전달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학교공간혁신’의 하나로 학교 공간 안에 갤러리 공간을 구축하는 사업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학교에 예술품이 들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보여 주기식의 형식화된 예술품 전시와 감상으로 끝나버리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은 흔적을 학생들이 삐뚤빼뚤 눌러쓴 자기의 생각과 질문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짐으로써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학교 공간에 관한 생각을 주고받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학교 공간의 변화에 매우 고무적이고 흥미로운 일이다.

김나영&그레고리마스, <learning Machine>(부평서중학교, 2021)(사진: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학교 공간이 공감과 소통의 개방적 공간으로 변하는 것과 더불어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학교가 꼭 필요한 곳인지 물음을 던졌다. 교육과 소통이 학교 공간이 아닌, 인터넷 공간에서 가능해졌고, 우리는 학교의 역할과 학교 공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는 일상 풍경은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급속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학교 공간에서의 소통과 공감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이 전시를 통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예술이 학교 공간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김은주(金銀珠, Kim Eunju)

인하대학교 미술교육졸업.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 석사졸업(인문학적 미술교육을 주제로 논문).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 박사 과정 중. 『시각문화교육 프로그램: 미술교육 대안교과서』 공동 집필진. 현재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교사.




‘문.알.못’ 신입 직원의 문화재단에서 살아남기

‘문.알.못’ 신입 직원의 문화재단에서 살아남기

김지수(연수문화재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입사하고 처음 경험한 주간회의에서 대표이사님, 국장님, 팀장님들이 나누시는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회의 자료는 한글로 쓰여 있고,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시는데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과연 여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화예술을 하는’ 신입직원에게 입사의 기쁨은 딱 일주일이었다.

사실 문화예술 쪽에서 일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문화재단이 어떤 기관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또한 입사 전엔 그 존재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재단’에서 일한다고 하면 안정적인 근무 환경과 적은 업무량을 상상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사실 전문성을 이렇게까지 요구할 줄 몰랐다.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 행정 실무 능력. 이렇게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연수구는 내가 살아온 동네니까, 행정실무는 인근 기초재단이나 구청에 물어보며 어떻게 비벼볼 수는 있을 거 같은데, 문화예술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나에게 문화예술은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연수문화재단 기획경영팀에서 급여, 복리후생, 근태관리, 서무 등 업무를 하고 있다. 다른 문화재단의 경우 대부분 문화예술 관련 전공/경력자가 경영지원 업무에 보직되어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 같은 경우엔 경영학을 전공했고,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던 취준생이었다. 문화예술분야와 우리 지역에 대해 무관심해도 내가 부여받은 업무는 잘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 들어온 문화재단인데 벌써부터 고여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경영지원 업무를 하고 있지만 길게 보면 순환보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료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외딴섬은 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문화예술을 잘 몰라서 헛소리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진 않아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사실 입사를 준비하면서 지역문화재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논문과 언론, 홍보자료 등을 통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실무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특히 이쪽 업계에서만 쓰는 용어들이 분명히 있었다. 팀장님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말씀하시는 ‘전지연’을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사람 이름이 나오지 ‘역문화재단합회’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당시에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를 몰랐던 게 아니라, 업계 용어가 익숙하지 못했다. 먼저 타 문화재단을 경험한 동기들에게 업계 용어를 하나둘씩 물어가며 익히고 공부해 나가야 했다. 동기들의 도움 덕분에 요즘은 그래도 겨우 대화가 좀 통하는 거 같다.

With 연수! 자동차극장(옥련동 석산, 2020.4.25.~27.) 2020 #플레잉연수 토요문화마당(문화공원, 2020.8.8.)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30년 동안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해결 방법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 재단에서 하는 사업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최대한 모든 행사와 세미나, 포럼 등에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With연수! 자동차극장>, <#플레잉연수 토요문화마당> 등 평일에는 업무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서 업무 지원을 나갔고, 주말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현장을 찾아 내가 도울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보다 나의 문화예술 역량은 현저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지역 예술인들이 재단을 방문하면 누가 누구인지 두리번거리고, 어떤 축제? 어느 기관? 무슨 작품? 끊임없이 검색하고 공부해야 했다. 그래서 아르코 챔프아카데미 기초과정을 수강하기도 하고,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에서 지원하는 문화예술 관련 교육도 정말 열심히 들었다. 인천문화재단 하늬바람 프로그램도 지역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무국장님과 팀장님께서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흔쾌히 다녀오라고 허락해주셨고, 재단 직원분이 사내 게시판에 매주 업로드해준 양질의 자료를 보며 지역문화와 예술에 대한 저변을 조금씩 천천히 넓혀갔다.

여전히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올해는 큰 맘 먹고 대학원도 진학했지만, 첫술에 배부르진 못하다. 문화재단은 일 할수록 어려운 곳이다. 사실 행정업무는 연차가 쌓일수록 익숙해지는데 반해 문화예술은 해마다 트렌드가 달라지고, 유행도 쉽게 타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신생 재단답게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기획경영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도 두렵지만, 자칫 기획경영팀이라서 문화예술에 대해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두렵다. 아직 신입의 패기가 남아 있어서 의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날에는 ‘문.잘.알’(화예술을 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지역에서 정말 멋지게 사업하는 사람이 되어있길 꿈꿔본다. 먼 훗날 내가 이 글을 보며 ‘이불킥’하지 않도록, 그리고 ‘문.알.못’ 신입 직원이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래 다닐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글을 마친다.

글/사진 김지수(金志水, Kim Jisu)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재학
(전) 재단법인 청년재단
(현) 재단법인 연수문화재단




실패를 응원하는 직업

실패를 응원하는 직업

장은영

뮤지션이자 작가, 제주의 동네 서점 책방 무사의 대표인 요조는 자신의 일을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고 설명한다. 지도에 없는 길을 만들고, 아무도 만들어낸 적 없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의 삶을 우아하고 도전적으로 그려낸 표현이다. 예술가의 삶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빛날 때나 무대 밖 작업실에서 고군분투할 때, 이들의 직업가적 삶에 집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행정가’, ‘기획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곤 하는 이들은 ‘실패를 응원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 또는 광역시구 등 지방자치단체 출자 출연기관으로 ‘문화재단’이다. 특히 지역문화재단에 속한 이들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마음껏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그리고 시민의 삶 속에서 예술향유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 ‘지역’과 ‘문화’와 ‘예술’의 공통분모 속에서 공공예술행정서비스를 부지런히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실패를 응원하는 갖가지 방법은 주로 ‘예술인 지원사업’을 통해 작품 제작과정 및 발표에 대한 재정적·물리적 지원이나, 다양한 기획 사업에 참여하여 작품 발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지원은 중앙 또는 지방정부의 재원에서 비롯되므로, 선정을 희망하는 모든 예술가에게 지원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문화예술진흥법」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크게는 시행령·규칙·조례 등에 반(反)함이 없이, 작게는 재단 내부규정에 어긋남이 없도록 촘촘히 지원기준을 만든다.

2020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Ⅳ <아라채집>, 참여작가 박혜원 작품(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좀 더 섬세하게 실패를 응원하는 자들도 있다. 예술가들의 내밀한 작품세계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크고 작은 전시공간에서, 무대 위에서, 또는 유무형의 세상에서 널리 알리는 기획자의 역할을 도맡기도 한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지속가능한 ‘지역에서 예술 하기’라는 담론과 마주하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업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인천서구문화재단의 ‘일상 속 문화예술로 구민이 행복한 서구’라는 비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문화예술로 구민의 일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도 함께한다. 문화예술계의 최신 트렌드와 이슈, 떠오르는 작품과 지역의 현안에 대해 눈을 크게 뜨고 한정된 재원 안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을 선정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한 편의 연극이, 한 번의 예술교육이 누군가의 인생의 중요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보람된 순간은 학교로, 복지센터로 찾아가는 콘텐츠를 만들 때이다. 광활하게 느껴지는 대극장의 객석에서 마주하는 관객들은 각자의 감동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짐짓 점잖게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에 학교, 복지센터 등에서 만나는 소규모 관객들은 감동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공연 중에는 핸드폰을 꺼주세요, 옆 사람과 대화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극장 기반의 엄중한 예술관람 규칙이 재미있게 부서지는 현장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껏 예술을 즐기고,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피드백이 날아든다.

다(多)락(ROCK)방 콘서트 시리즈Ⅱ <데이브레이크 콘서트>(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필자의 어린 시절은 TV만이 유일한 문화예술 향유 통로였다. 성인이 되어 서울을 비롯한 세계 유명 도시들의 문화예술공간을 방문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흡수하게 되면서, 내면세계가 부쩍 풍요로워졌음을 깨닫는다. 예술의 경험은 일상의 모양새를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뒤늦게 자아를 찾아 문화예술계에 헌신할 용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경험의 질과 양은 중요한 요소이다. 재단에서 부르짖는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 확대’는 이처럼 시민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의 질과 양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재단 밖에서는 반공반민(半公半民, 반은 공무원 반은 민간인)처럼 보이는 직원들도, 각자의 온도는 다를지언정 문화와 예술에 사랑을 느끼는 자들이다. 한때 예술가를 꿈꾸던 사람들이거나, 문화예술과 무관한 전공을 공부하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문화예술계로 뛰어든 이들이다. 음악, 미술, 경영, 심지어 사회복지까지 전공의 종류도 장르도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각자를 구성하는 아카데믹한 렌즈로 지역 문화예술계를 바라본다. 이 고유한 관점은 관객의 입장에서, 예술가의 시선에서 지역을 바라보는 독특한 장점이 된다.

해당 지역에서 나고 자란 예술행정가는 지역의 복잡미묘한 문화예술계 지형에 눈이 밝다. 유무형의 자원을 연결하고 실현가능성을 짐작하는 데 장점을 가진다. 지역 밖에서 온 이들은 지역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며 지역과 외부를 활발히 연결하여 사업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다양한 배경이 어우러져 「지역문화진흥법」 제19조의 지역문화진흥에 관한 주요 사업을 수행하는 집단이 구성된다.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를 거시적으로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지역 예술가들이 인천에 머무르며 성장하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지역의 무대는 제한적이다. 순수예술 장르일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공공 영역에서 만드는 무대로는 창작의 생태계를 풍성하게 조성하기 어렵다. 또한, 지역 예술가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인천에 거주한다면? 인천에 사업자등록을 가진다면? 인천의 여러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역 예술가의 범주는 지역 예술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 있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문화와 예술이 ‘돈’이 되느냐 ‘밥’이 되느냐는 현실적인 질문이 아프게 날아든다. 여기에 명쾌하게 답변하기 어렵다. ‘생존’에 앞설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므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매일 생존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실 물을 나눠 세수를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을 가꾸는 아이러니를 발견하며, 오늘날 팬데믹 상황에서 문화예술의 쓰임을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내면으로 침잠(沈潛)하여 지도에 없는 길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길은 실수와 실패를 필연적으로 대동한다. 험한 길을 외로이 걸어갈 때, 서로의 실패를 아름답게 위로하는 사랑과 이해의 근간에는 문화와 예술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장은영(張恩永, Jang Eunyeong)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예술축제 담당.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 박사과정.
‘나’다움으로 나만의 일을 천천히 만들어 갑니다. 글쓰기, 새로움 발견하기, 영상 만들기, 요가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축제를 만들고 있지만, 다양한 시도에 열려 있습니다.




곽은비 :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기획전시 “당장의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