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선진국을 북돋는 예산 정책
문화 선진국을 북돋는 예산 정책
임승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에 이어 문화자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문화기본법에 따른 ‘문화권’은 자율성과 창조성, 다양성, 평등성을 품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최근 들어 지역의 문화진흥기관들은 문화정책 생산과 실행에 있어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는 중앙에서 세운 정책을 지역에 넘겨 실행하던 기존 방식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방향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에서 정책 이해당사자들이 문화공동체의 주체로서 직접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고 평가하고 수정해 가며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문화정책에 대한 시민의 참여는 수동적이고 형식적이며, 정부는 시민 의지나 역량을 신뢰할 만한 경험을 충분하게 축적하지 못 한 상태이다. 정부를 사적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추구하며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으로 바라보는 기존 정책 생산 방식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이유로 인해 ⑴‘거버먼트’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 수행방식으로 인식되어 왔고,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 ‘거버먼트’를 유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주류 경제학 이론이다. 하딘(Garrett Hardin)은 1968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에서 ⑵‘공유지의 비극 ’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라고 밝혔다. 이는 공공재인 예산 집행에 대한 기획은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제학 이론은 정부 정책 수립과정에 중요한 준거가 되었다.
*⑴거버먼트(government ; 통치)’는 정책결정이 특정개인이나 소수집단에 의해서 행해지며, 강제력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도모하는 통합의 방식을 뜻한다. 이념적으로는 자치와 대립되며, 오늘날 보통 협치(協治)로 해석되는 거버넌스(governance)와 구별된다.
*⑵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자원은 사람들의 남용으로 쉽게 고갈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극대화하면 공동체나 사회 전체는 물론 자연까지 파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미국의 생물학자 가레트 하딘(Garrett Hardin)은 날로 증가하는 인구의 수와 다르게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류가 공공재인 천연자원을 남용한다면 지구에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1968년 12월 13일 논문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민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며 공간 제약 없이 이슈들을 논의하고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 중심의 하향식 통치나 계몽 방식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또한 점점 복잡해지고 그 원인도 알 수 없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에서도 ‘거버먼트’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도 주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공론장을 통해 민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정책에 대한 만족도 향상을 기대하며 협치의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 거버넌스 협의체는 기득권 완장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 예산을 획득한 주민이 배타적인 사업 주도권을 요구하기도 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런 이유로 인해 ‘거버넌스’는 비교적 문제 발생 여지가 적은 정책자문위원회나 심의위원회의 역할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딘(Garrett Hardin)의 이론이 발표된 지도 40년이 지났고, 이제 정치학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유의 비극 이론’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는 공유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를 보존하고 유지할 방안을 논의하여 새로운 규칙을 합의하고 준수를 약속하는 것이다. 무임승차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감시와 제재 방식도 신뢰할 수 있게 마련한다. 결국 ‘공유지 비극’의 원인은 당사자들의 의사소통 부재에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논의와 합의를 이루고 무임승차 없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공유지는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9년에 참여예산제도를 처음 시작한 브라질 뽀루뜨 알레그레 시(Porto Alegre 市)의 사례는 예산의 효율적 사용과 정책에 대한 만족도에 대해 큰 영감을 준다. 물론 인천광역시는 7대 광역시 중 최하위인 문화예술 예산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집행 방법이다. 정책 이해당사자가 최대한 모두 참여하여 정책을 직접 제안하고 모아, 우선순위를 합의하여 예산에 맞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병이어’와 같은 공유지인 예산에 대한 주인의식과 효율적인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요즘 한국 드라마와 노래, 음식 문화는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 강국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하며,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 문화정책도 변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문화정책은 문화 선진국을 안정적으로 북돋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화 선진국에 어울리는 예산 지원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흔들리거나 퇴보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문화현장에서 이룬 성과와 경험을 안정적으로 키우고 전수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협치 제도 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광역시는 지난 몇 년간 중요한 시도를 해 왔고,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인천에서는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이 10기를 맞이했고 인천문화포럼이 다양한 실험과 변화를 모색하며 4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20년 전 인천의 젊은 문화 활동가들은 이제 나름의 위치에서 문화 리더로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이 흩어진 이 점들의 역량을 연결하여 창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글/사진 임승관(林承寬, SoungKwan Lim)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인천에서 20년 동안 생활문화 활동가로 지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생활예술과 지역 공동체 문화 강의를 하고 다른 지역을 다니며 컨설팅과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