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한다는 것

축제를 하나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왜 축제가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축제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 등 사람마다 다른 생각들이 표출된다. 이렇게 사람마다 생각이 다양한 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축제에 애정과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0월 12일(금)~14일(일) 아트플랫폼과 신포동 공간에서 개최된 2018 인천개항장예술축제도 복잡한 과정을 겪었다. 기존 지역주체들과의 관계성은 어떠한지, 기본적으로 지원의 역할이 큰 재단에서 왜 직접 축제를 열어야 하는지, 짧은 시간 안에 축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등을 논하는 간담회와 자문회의가 몇 차례 이어졌고 다양한 주체들과 비공식적인 자리도 많았다. 순조롭게 의견이 일치하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논의와 과정을 무수히 거쳐 축제를 열게 됐다.

 
<2018 인천개항장 예술축제> 포스터   2018 인천개항장 예술축제 간담회 진행

이번 축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체와 함께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런 만큼 의견이 일치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가급적 의견을 많이 수렴하고 반영해 축제라는 그릇에 담으려 노력했다. 이 부분은 저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려 했다고 자평한다.

따라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주체들이 함께했다. 크게 음악과 무용으로 구성됐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클래식과 합창·재즈·뮤지컬·록·힙합·포크·현대무용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용·스트리트댄스·타악·전통연희 등 프로그램이 아주 많았다. 장르가 다양한 만큼 신진예술가와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중견 예술가 단체 등 참여 주체의 폭도 넓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 백화점 나열식의 프로그램 구성이라 말할 수 있다. 100퍼센트 부인할 수 없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 갖는 기분을 이번 축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예를 들어 아빠는 클래식을, 엄마는 뮤지컬을, 자녀들은 스트리트댄스를 좋아하는 가족이 축제를 찾았을 때 모두가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특정 주제로 구성된 연극 또는 영화 축제도 의미와 재미가 있지만, 축제들에는 저마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하겠다.

타악 퍼포먼스 아작

극단 십년 후

프로그램들을 간략히 들여다보면 첫째 날에는 화려한 연출과 힘 있는 무대를 보여주는 ‘타악퍼포먼스 아작’의 공연을 시작으로, 근대양악과 인천이라는 두 가지 소재로 짜임새 있는 공연을 보여주는 ‘인천 콘서트 챔버’, 정상급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단의 무대, 인천의 성냥공장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뮤지컬 갈라 콘서트가 이어졌다.
둘째 날에는 ‘재즈와 스윙’ 그리고 ‘클래식과 무용’을 주제로 했다. 각각 야외와 실내로 구분해 야외에서는 신진 재즈밴드와 관록 있는 연주자들로 구성된 재즈오케스트라,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록 밴드, 멀리 뉴욕에서 건너온 빈티지 재즈 팀이 함께 공연했다. 또 실내에서는 실내악 4개 단체와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프로젝트 반

마지막 날에는 ‘인천의 젊은 예술’이라는 주제로 여러 단체가 참여했다. 특히 실내에서는 인천의 젊은 무용인들 공연이 한 무대에 올랐다. 평소 접하기 힘든 현대무용 공연과 인천을 대표하는 실내악 단체 공연을 한자리에 모았다. 신포동에서는 이 밖에 적게는 몇 년 많게는 35년이나 된 멋스러운 공간에서 포크와 재즈, 록을 중심으로 클럽공연도 열렸다.

축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해 여러 의견을 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참여와 의견은 많을수록 좋다. 새롭게 만든 축제들은 상대적으로 신도심보다 원도심에서 힘든 과정을 겪는다. 왜 그럴까?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많고 적음 때문일 것이다. 땅을 일구어 새롭게 조성된 아파트단지 주변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다양한 정서와 오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원도심에서 열리는 축제나 행사는 시작부터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렇게 진행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축제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내야 한다. 단 한 사람의 의견과 추진력으로 만든 축제는 그 생명력이 그다지 길지 않다. 앞으로도 이어질 인천개항장예술축제도 절대 재단만의 의지와 추진력으로 되지 않는다. 일단 판(板)을 만들었으니 그 판 안에서 함께해야 한다. 지지고 볶으며 머리를 맞대고 언성을 높여 내 주장을 펼치면서도 타인의 주장 또한 들어줘야 한다. 시작과 과정에 부족함이 있었지만 이러한 판의 역할을 인천개항장예술축제가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축제문화팀




평범한 우리 문화로 꽃처럼 웃는다. 제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의 성장과정

제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의 성장과정

지난 9월 15일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100개의 동아리가 참여하는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생·동·감>이 이루어졌다.
인천생활문화축제는 사이:多를 첫 회로 작년에 시작되었지만, 그 첫 시작은 13년 전으로 돌아간다.

2005년, 인천에서 10년간 활동하던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는 인천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꿈으로 많은 시민을 만나고, 소통하고, 그 힘으로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어내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문화수용자 운동을 시작하였다. 시민이 주인인 문화를 만들어 문화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문화바람’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1,000명의 문화바람을 만나기 위해 활동가(문화기획자)들이 몇 달을 뛰어다니며 문화바람을 만들어 갔다. 문화바람이 첫 번째 한 일은 공연유치였다. 그 당시, 재미있는 공연 한 편을 보려면 인천의 공연장을 찾기보다 대학로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예술인들도 대학로에 가서 활동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로의 유명한 공연들이 전국 순회를 하면 인천은 빼놓을(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수밖에 없어 좋은 공연을 찾기는 쉽지는 않았다. 문화바람은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로 공연을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백창우와 굴렁쇠아이들’, 마당극 ‘밥상을 엎어라’, ‘오!당신이잠든사이’, ‘강풀의 순정만화’ 등 연 5회 문화바람과 함께 하는 공연을 유치 또는 제작하여 무대위에 올렸고 이후 많은 시민이 참여하였다.

 

그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것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을 보는 것이었다. 문화바람 회원도 많이 늘어났지만, 온라인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각 동아리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었던 ‘더 많은 시민’과 만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진동아리는 <동사진 전시회>를 매년 열었고, 통기타 동아리는 매월 작은 발표회를 열었다. 작은 발표회를 통해 조금씩 실력을 쌓아가던 동아리는 여름에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에서 독자적인 공연을 열기도 하며 작곡동아리는 매년 창작발표회를 열었다. 활발한 동아리 활동은 자신의 모임을 넘어서 다른 동아리, 공동체, 사회로 시선을 넓혀가기도 했다. 1년에 3~4차례 교류의 자리가 열렸는데 여름에는 1박 2일로 ‘회원 MT’를 진행하였고, 가을에는 ‘체육대회’, 겨울에는 ‘송년회’를 가졌다. 또한, ‘신입회원의 날’, ‘공동체 모임’ 등을 통해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고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만난 회원들은 자신을 넘어 타인을 알게 되고, 그 타인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튼튼한 관계는 이후 폭발적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2006년 6월 17일, 확대된 문화바람 회원들과 함께 ‘회원의 날’ 행사를 진행하였다. 야외에서 제대로 한번 놀아보자는 취지로 만든 그 행사명은 <삐까번쩍야외축제>였는데, 그 이후2016년 인천시민문화예술축제<끼가뻔쩍시민축제>로 발전되어 11년 동안 축제가 이어졌다. 축제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회원들은 우리가 만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축제가 생긴 것을 기뻐했다. 게다가 타 동아리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형성되었다. 이는 이후 아마추어(생활문화)동아리 축제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진] <끼가뻔쩍시민축제>에 여성통기타 동아리 ‘토마토’가 공연하고 있다.
처음 축제 이름은<삐까뻔쩍야외축제>였다. 3회 축제를 준비할 때였던 것 같다. 행사 몇 주 전부터 장소 근처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는데, 그 현수막을 본 어떤 어르신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다. “삐까뻔쩍이 뭡니까? ‘삐까’란 말은 ‘번쩍’이라는 일본어예요” 그래서 4회부터는 명칭을 변경했고, “끼가 뻔쩍이는 시민들의 축제”라는 의미를 담아 <끼가뻔쩍시민축제>로 정하게 되었다.

덕분에 동아리 활동은 점차 활발해지고, 합창단, 밴드 등 다양한 동아리가 생겨났다. 동아리 수가 늘어날수록 모임 공간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동아리 간에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일터에서 업무와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나서 어른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신나는 문화공간 <놀이터>를 만들게 되었고, 동아리들 간에 교류와 협력할 수 있는 생화문화예술동아리연합 <놀이터>가 탄생하였다. 그해는 2009년이었다.

[사진] 동아리 회장단 회의 모습이다. 놀이터는 매월 1회 동아리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사업과 운영에 대한 자발적인 결정을 하였다. 지금은 ‘놀이터’의 공간이 없어졌지만, 운영위원회를 꾸준히 개최하여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모단체인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에서 독립한 생활문화예술동아리연합 <놀이터>는 한 해의 주 사업으로 <끼가번쩍시민축제>를 펼쳤다. 일정기간에 참가동아리 신청을 받고, 장소를 디자인하고, 장소별로 각 동아리가 배치되어 공연, 전시, 체험으로 시민들을 맞이했다. 또, 동아리 회원들이 직접 스텝이 되어 무대설치부터 철거까지 함께 하였다. 동아리 회원들의 자원봉사모임 명을 “기동단”이라고 지었고 활약을 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끼가번쩍시민축제>에 참여한 동아리 수는 약 1000여 개의 동아리이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축제, 서로가 격려하는 축제, 내가 즐거운 축제로 자리매김하며 자라왔다.

[사진] 오전 9시에 만나 무대 장치를 나르고 설치하는 모습이다. 동아리 회원들이 자원하여 축제 스텝이 되고 무대 설치부터 철거까지 함께 하였다.

<인천생활문화축제>는 이러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민간단체에서 주관했던 <끼가번쩍시민축제>의 목적과 의미를 기반으로 인천생활문화축제는 태어났다. 축제의 주인이 동아리 회원들이 축제의 일원이 되어 공연무대를 채우고, 전시하고, 체험을 준비하여, 동아리를 알리고, 시민에게 생활예술을 알리는 축제가 되는 것이다. 인천생활문화축제 과정은 이렇다. 워크숍을 통해 생활예술의 의미와 축제에 대한 시선을 함께 맞추고, 축제의 이름을 투표하여 정한다. 축제를 선포하고, 라인업을 함께 구성하고 출연료도 함께 논의하여 기준을 정한다. 각자 연습과 작품준비를 하고 필요한 기자재들을 준비하면 축제가 이루어진다. 물론, 100% 동아리 회원들이 준비할 수는 없지만, 그냥 공연만 하고 가는 축제가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축하해 주는 축제로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인천생활문화축제는 다른 축제와 달리 준비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동아리들과의 의사소통 구조가 기본이기 때문에 전체 동아리가 모이는 워크숍도 몇 차례 진행해야 하고, 실무자들도 많은 회의를 진행해야 비로소 축제가 이루어진다.

제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의 목표는 더 많은 동아리가 참여하고,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며 우리(동아리)도 즐거운 축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결과 84개 공연 동아리, 15개 체험 동아리, 11개 전시동아리 등 총 100개 동아리가 참여하였으며, 60명의 스텝이 배치되어 진행되었다. 6곳의 공연장소, 5곳의 전시장소, 1곳의 체험 장소를 비롯해 푸드 트럭, 이벤트 부스 등이 함께 어우러져 진행되었다. 그리고 장소마다 컨셉을 달리하여, 칠통마당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중앙광장은 넓은 잔디 위에서 관객과 공연자가 편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꾸몄다. H 동은 밴드팀만의 공간으로 꾸며져 간단한 음료와 함께 개성 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사진]칠통마당에서 공연하고 있는 첼로동아리‘바첼리’. 이번 축제에는 총 100개 동아리가 참여했으며, 그 중 84개는 공연팀이었다.

[사진]인천아트플랫폼 중앙광장 공연장. 공연장마다 컨셉을 달리하여 진행되었다. 중앙광장에서는 17개팀과 통기타 콜라보공연, 합창콜라보공연이 이루어졌다.

한중문화관 야외는 공연장소 중 가장 많은 동아리가 공연하였다. 축제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축제의 과정을 담은 영상과 더불어 20개 동아리가 모여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펼쳤다. 또, 지나가는 이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버스킹 무대를 마련하였다. 전시도 카페 서니구락부, 하버파크호텔 등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곳으로 전시장소를 섭외하였으며 일주일간 전시가 이루어진다.

[사진]H동 밴드 동아리 공연장. 작년보다 밴드동아리 참여율이 높아 밴드팀이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특화하였다.

[사진]축제의 마지막은 20개 동아리가 창작곡으로 콜라보레이션 공연한 것이었다. 축제 전 연습모임을 갖고, 즐겁게 서로 배려하고 준비하여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어쨌든 9월 15일 축제는 끝났다. (물론, 전시동아리의 전시는 21일까지 진행된다) 동아리들이 축제에 임하는 모습은 아름다웠고,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했다. 축제당일 우천예보가 있었고 비도 내렸다. 운영진이 야외공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동아리 팀원들은 괜찮다며 운영진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테이블을 나를 때도 사람이 없어 고심했지만 도와주겠다며 함께 날라주었다. 오랫동안 축제에 참여해서 힘들 텐데 웃으며 공연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다리 아픔도 싹 없어졌다.

축제 당일 철거까지 완료 후 만보계를 보니 총 2만8천 보를 넘게 걸었더라. 아마, 실무자들이 다 그러했을 것이고, 참여했던 동아리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 걸음만큼 축제는 보람된 일이다.

김경원(金京垣, kim kyeong won)

. 문화바람 대표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 총연출

 




인문·예술로 함께하는 열린 학습 플랫폼, 하늬바람

지난 4월 인천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이 김애란 작가 특강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로 한해를 열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혹은 우리 삶 전반을 둘러싼 모든 것을 지칭하는 문화라는 말이 보통 아주 멀게 느껴지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 쓰린 기억들로 가득한 봄의 한가운데서 작가 김애란이 말했다. 글쓰기와 글 읽기가 그렇듯 예술은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이제 겨우 한 해의 모든 계절을 겪고 넘긴 하늬바람이 품은 취지이기도 하다.

.. 그래서 어쩌면 글쓰기와 글 읽기는 직업이기 이전에, 교양이기 이전에, 스펙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 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도 여러분과 같은 시대에 같은 언어로, 글을 쓰고 글을 읽는 동시대 작가, 동시대의 독자라는 것을 앞으로도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애란(2018년 4월 19일_봄, 한가운데서)

모든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인천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은 지난해 상반기, 사업 전반에 대한 운영 준비 과정을 거쳐, 2017년 가을부터 2회의 특강과 체험 워크숍을 비롯하여 12개의 상설 강좌로 본격 개설되었다. ‘반려동물과 문화예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따라잡기’, ‘알고 보면 쉬운 클래식’ 등 친근한 주제들로 구성되었던 지난해 하늬바람은 그간 문화예술교육이 유아와 청소년, 노인 등 일부 세대에게 집중되어 왔던 것에서 나아가 전 연령, 특히 일반 성인에게까지 참여 범위를 확대하여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하는 데 의의를 두고 출발하였다. 이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확대’라는 중앙정부의 정책, 그리고 인천광역시 ‘문화시민 3.0’ 정책 등에 발맞추기 위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인천문화재단이 시민교육을 통해 인문, 예술로 인천시민을 더욱 가깝게 만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2018 새롭게 만나는 <하늬바람>
첫해이자 시범사업이었던 2017년을 넘어가며, 하늬바람은 학기제(상·하반기)라는 연간 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신청자가 각 강좌의 성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과 형식에 따라 특강과 일상예술, 지역 연계, 인문사회 등으로 범주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중 문화예술 특강은 인문·사회, 예술 분야의 명사와 함께 사회적 화두를 나누고, 예술과 인문이 가져오는 삶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매 학기가 시작되는 봄과 늦여름,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하는 겨울, 총 3번에 걸쳐 운영된다. 지난해에는 월드뮤직의 세계를 구도하고 있는 음악가 하림의 공연을 비롯하여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선생님의 ‘행복을 위한 삶의 조건’ 강연,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와 같은 체험형 공연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여름 특강] 하림의 여행일기   [체혐형 공연]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일상예술 프로그램] 그림으로 옮겨가기   [일상예술 프로그램] 야근 대신 바느질

하늬바람 강좌들 중 모든 이가 가장 쉽고도,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는 강좌가 있다면, 아마도 ‘일상예술 프로그램’일 것이다. 일상예술 프로그램은 일종의 예술 입문 과정으로 강의 형식뿐만 아니라 실제 예술가와 함께 예술 창작의 과정과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강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하늬바람의 일상예술 프로그램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그에 필요한 창작 기술을 익히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만약 올해 당신이 하늬바람의 일상예술 프로그램을 함께했다면, 조금은 서툴고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부르고 작곡한 노래 한 곡이, 내 이름이 수놓아진 손수건 한 장이, 어쩌면 오늘 내 하루가 오롯이 담긴 시 한 편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무언가 덤으로 생기는 것이 있다면, 일주일에 단 한번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눌, 나이를 떠난 다양한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인천 곳곳에서 만나는 <하늬바람>
인천 최초의 재즈클럽에서는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선생님과 함께하는 재즈 강좌를, 1960년대 지어진 여관을 개조한 카페인 ‘인천여관×루비살롱’에서는 불금의 디제잉 파티가, 버려진 건어물 창고를 개조한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전국의 동네 책방을 만날 수 있다.

2018 하반기 프로그램 <그 남자의 재즈일기> with 재즈클럽 버텀라인

인천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문화 공간들과 함께하는 ‘지역연계 프로그램’은 더욱 다양한 공간에서 더 많은 분과 만나고자 기획·운영하는 강좌들이다. 지난 상반기에는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 꿈’, ‘신나는 여성주의도서관 랄라’, ‘콘서트하우스 현’ 등과 함께 여행과 페미니즘, 클래식 등을 주제로 함께한 바 있으며, 하반기에는 올해 35주년을 맞이한 인천 최초의 재즈클럽인 버텀라인의 ‘그 남자의 재즈일기’를 시작으로 더욱 멋진 공간들과 다양한 형식의 강좌로 만날 예정이다.

세상을 보다 깊이 있는 사유와 문화적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인문사회 아카데미는 철학과 예술, 사회분야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강좌로 시민들의 비판적 세상 읽기와 삶과 예술, 문화에 대한 탐구를 돕고자 기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면 안에서 읽혔을 세간의 떠들썩한 이슈가, 혹은 무심코 지나쳤을 예술 작품이나 문화적 현상이 인문사회 아카데미 안에서는 각 주제를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부해온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재해석된다. 상반기 총 6회에 걸쳐 ‘한국 문화예술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묻다’라는 강좌를 통해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의 성별을 질문했다면, 오는 10월에는 현상학(phenomenology)이라는 가교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법을 탐구할 ‘현상학과 건축: 삶의 시선에서 도시 읽기’ 강좌가 준비되어 있으며,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 삶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주제로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인문·예술로 더욱 풍요로운 하루를
사실 무언가를 다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기가 쉽지만은 않다. 보통은 나를 다시 채우기도 전에 내가 소박하게 가진 것조차 비워내려는 것들에 온종일 시달리니 말이다. 일주일에 꼭 하루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강좌를 신청하지만, 갑작스러운 출장과 야근이 내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오늘만큼은 일찍 와서 아이를 봐주겠다던 남편이 회식이라는 이유로 자꾸만 늦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하물며 비가 옴팡지게 쏟아지면, 그냥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기도 하고, 오늘 하루쯤은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내가 생각하던 그 강좌가 아니어서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러니 그 수많은 난관과 유혹과 곤혹스러움을 헤치고 오늘 저녁, 공부하러 온 당신에게 무한한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부디 하늬바람과 함께 인문·예술이 당신의 하루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붙임] 하늬바람 강좌 수강 신청 시 유의 사항 안내
아래 하반기 프로그램 안내를 보시고, 강좌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부디 한 번 더 고민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늬바람의 강좌는 대부분 대기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수많은 난관과 유혹, 곤혹스러움을 뒤로하고 함께 배움의 장을 열고자 하시는 분들만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8 하늬바람 하반기 프로그램 안내]
○ 신청 기간 : ~ 각 강좌 정원 마감 시까지 / 선착순 접수
○ 신청 방법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온라인 링크(바로가기 ▶)
○ 참 가 비 : 무료
○ 문 의 : 인천문화재단 문화교육팀 032-760-1097

구분

강의명

운영 일시

장소
일상예술
프로그램
[신청 마감] 연극하는 인간: 우리 삶이 연극이다! 매주 월요일 19시 30분
8강(9. 3 – 10. 29)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신청 마감] 야근 대신 바느질: 두 번째 이야기 매주 목요일 19시 30분
6강(9.6 – 10.11)
숨과 쉼 매주 금요일 11시 30분
6강(10. 5. – 11. 16)
평범한 사람의 노래 매주 일요일 14시
6강(10. 21 – 12. 2)
지역 연계
프로그램
[신청 마감] 그 남자의 재즈 일기 매주 수요일 19시 30분
4강(8. 29 – 9. 19)
버텀라인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매주 토요일 15시
6강(10. 13 – 11. 17)
인천시청자 미디어센터
Book·복덕방: 이색 동네 책방을 소개합니다. 매주 화요일 19시
6강(10. 16 – 11. 20.)
요일가게
불금의 뮤직피플 양성 과정 매주 금요일 19시 30분
6강(11. 2 – 12. 7)
루비살롱
×인천여관
인문사회
프로그램
현상학과 건축: 삶의 시선에서 도시 읽기 매주 월요일 19시
7강(10. 8 – 11. 19)
한국근대문학관
디아스포라: 이동하고 관계하는 삶 매주 금요일 19시 30분
8강(10. 5 – 11. 23)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글/ 장문정(문화교육팀)




인천시민이 생각하는 인천의 문화유산과 관련 정책

인천시민들은 인천의 역사와 문화유산 그리고 시의 관련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에서는 인천광역시 문화유산 보존·관리·활용 중장기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본 연구 수행의 일환으로 인천시민의 인천지역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이해, 인식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알앤에이에 의뢰해 인천지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주요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먼저 인천이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 보유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유산에 대한 시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이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응답자의 20.3%(매우 그렇다 2.5%, 그렇다 17.8%)에 그쳤다.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27.1%(전혀 그렇지 않다 5.0%, 그렇지 않다 22.1%)였으며, 가장 많은 48.3%가 ‘보통이다’라고 답하였다.

도표 1. 시민들의 인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 인식

인천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역사를 아우르는 ‘지붕 없는 박물관’강화도와 근대 격동의 역사를 상징하는 중구의 근대 개항장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한 도시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시민들이 인천을 역사문화도시로서 체감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활용과 홍보, 보존 등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역사유적(역사적 공간)으로는 응답자의 40.6%가 ‘강화도의 역사유적지’를 꼽아 다른 유적이나 공간을 답한 비율을 월등히 앞서 인천지역사에서 강화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에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유적·공간을 답한 비율은 ‘중구 및 옹진군의 여러 섬들’(12.3%), ‘부평도호부와 계양산성 일대’(10.6%), ‘인천도호부와 문학산성 등 원인천’(9.6%), ‘중구 근대개항장’(5.5%) 순이었다.

도표 2.시민들의 인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 인식

인천시의 문화유산 정책(사업) 분야 중 향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분야는 가장 많은 27%가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재산권, 지역개발과의 조화 문제 포함)’를 꼽았다. 이는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과 함께 개인의 재산권과의 충돌을 해소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화유산의 활용과 수익 창출’을 답한 비율도 25.8%에 달해 문화유산이 지역사회에 경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데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표 3.인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전반적 인식

문화유산과 관련한 시민의 참여나 향유 기회가 충분한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4.3%(매우 그렇지 않다 14.3%, 그렇지 않다 60.0%)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하여 많은 시민들이 문화유산과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나 향유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절반이 넘는 50.5%가 ‘여간시간의 부족’으로 답하여 일과 여가의 균형·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도표 4.시민들의 문화유산 관련 참여와 향유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인천의 문화유산 및 관련 정책에 대한 생각을 상당 부분 엿볼 수 있었다. 인천시와 인천역사문화센터는 이번 시민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적극 반영한 문화유산 중장기 종합발전계획 연구 결과를 올해 12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가 리서치알앤에이에 의뢰하여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3일까지 인천광역시 거주 만 19세 이상 일반 시민 1,007명을 대상으로 대인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하였으며, 표본오차는 ±3.2%(신뢰수준 95%)이다. 자세한 조사결과는 인천문화재단 인터넷 홈페이지(www.ifac.or.kr) 자료실 메뉴의 인천역사문화센터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안홍민




등산용 방석에서 ‘즉흥의 매력’을 읽는다는 것 <2018 PUMP>

8월이다. 이는 곧 찌를 듯한 매미 소리의 시작이요, 추석 다음으로 인구 이동량이 가장 많다는 휴가철의 시작이기도 하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인고의 시간을 거친 매미가 우화(羽化)한다. 계절을 알리는 알람 소리처럼 누가 맞춰놓은 것도 아닌데, 자연의 시간에 맞춰 폭발하듯 울린다.’ 성충이 된 매미와 휴양지로 향하는 사람들. 시간과 공간의 무수한 이동 속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번 네트워킹 데이에는 의자 대신 방석을 깔아주세요.”
지난 20일,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인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2018 공연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 펌프(PUMP)’의 끝을 기념하는 네트워킹 데이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남의 시작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료식’을 곁들인 파티이지만, 행사장의 공기는 제법 남달랐다. 50평 남짓 되는 연습실에는 의자 대신 방석이, 그것도 무려 ‘등산용 1인 방석’ 50개가 전부였다. 이는 진행 멘토인 임형택 감독의 요청이었다.

“콤포지션(즉흥장면 만들기)을 해야 하니, 최대한 공간을 비울 수 있도록 의자를 뺍시다.”

세팅이 끝난 연습실을 보며, ‘이거 그림이 나오려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의도된 연출이라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온 참가자들이 텅 빈 행사장에 물음표를 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러나 앞선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공간에 들어온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한가득이었다. 비로소 모든 참가자가 자리에 앉았을 때, 지난 생각이 바뀌었다.

 

뷰포인트 메소드 워크숍의 시작
본 프로그램은 ‘전문공연예술인을 위한 심화과정’과 ‘기초자를 위한 입문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전문 공연예술인에게는 양질의 창작물을 제작할 역량을 제공하고, 입문과정에 있는 신진예술인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시민에게는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한(또는 향유하기 위한)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기획목적이었다.

2018 펌프(PUMP)의 첫 신호탄은 ‘뷰포인트 메소드(Viewpoints Method)’를 활용한 신체워크숍. ‘뷰포인트’는 미국의 포스트모던 무용계에서 발현된 즉흥 테크닉으로 뉴욕대학교 연극과 교수인 매리 오버리(Mary Overlie)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동대학교 연출가인 앤 보가트(Anne Bogart)’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뷰포인트 콤포지션 메소드는 크게 ‘뷰포인트 트레이닝’과 ‘콤포지션 창작 메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움직임과 시공간에 대한 지각을 극대화하여(뷰포인트) 작품 일부를 만들어내는 즉흥과정(콤포지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퍼포머에게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슈가 지배적이다. 극의 시작부터 후반부까지 유기적인 시공간 속에서 창작물이 발현된다. 이러한 속성은 ‘뷰포인트 메소드’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수많은 공연예술 장르를 불문하고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던 끝에, 무대와 퍼포먼스 간의 상호작용에서 ‘시공간적 요소’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결론을 내렸다.(일례로, 뷰포인트를 체계화한 미국의 SITI COMPANY에서는 연극뿐만 아니라, 무용, 음악, 미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본 메소드를 수행하도록 이끌고 있으며, 실제로 훈련을 체득한 예술인들은 다양한 창작물에 뷰포인트를 투영시킨다) 진행은 우리나라에 뷰포인트를 제일 먼저 도입한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 예술감독과, 예술강사로 활동 중인 윤채연 배우가 맡았다.

우리는 신체를 활용하여 ‘지속(Duration)’, ‘반복(Repetition)’, ‘즉각반응(Kinesthetic)’이라는 시간적 속성을 가지고 놀거나, ‘모양새(Shape)’, ‘환경(Architecture)’, ‘흐름의 형태(Floor Pattern or Topography)’ 등 공간적 속성을 탐험하였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통해 자연스러운 무대 위 표현과 앙상블 훈련을 마친 이후에는 앞서 터득한 요소들을 활용해 즉흥으로 동작을 만들어보는 콤포지션(Composition)을 시도했다.

* 본 설명에서 나열된 단어들은 SITI COMPANY에서 소개하는 테크닉에 등재하는 용어들로, 정확한 개념설명을 위하여 영문명을 함께 기재하였습니다. 본 메소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내에 출간된 ‘뷰포인트 연기훈련’ 서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문 퍼포머가 아닌 입문과정에서는 본 메소드가 더욱 생경할 터. 이에 우리는 기존 뷰포인트의 목적을 두 갈래로 나누었다. 퍼포머들에게 훈련의 목적이 ‘자연스러운 무대언어 체화와 앙상블의 조화’라면, 입문과정의 참가자들에게는 ‘신체를 통한 새로운 발견과 일상 밖 경험’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동일한 메소드지만 연극놀이나 연극치료 등을 가미하여 정통의 방식에서 조금 더 다각적인 워크숍으로 재구성하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는 발바닥을 맞대는 게 어때요?”
(앞으로 돌아와서) 네트워킹 파티의 시작을 알리고 제일 먼저 수료증 전달식이 진행되었다.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인사말과 함께 호명되는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름이 적힌 수료증을 받아들었다. 수료인원은 총 35명 중 31명. 아쉽게도 수료증을 받지 못한 참가자조차 박수를 치며 함께한 이들을 축하했다.

뒤이어 워밍업을 위한 간단한 연극놀이를 시작으로 그동안 터득한 요소들을 함께 꺼내어보는 ‘오픈 뷰포인트(Open Viewpoints)’와 콤포지션을 진행하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명함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대신, 몸짓을 명함 삼고 손대신 발을 내밀어 서로를 환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달여간의 워크숍을 통해 누군가는 뷰포인트가 여전히 어렵다고 하고 다른 혹자는 제주행 쾌속선을 탄 듯 6주가 훌쩍 지났다고 한다. 이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니, 아쉽지만 또 다른 해를 기약하고자 한다.
워크숍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으레 여름이 되면 매미가 울고, 많은 인파가 휴양지를 향해 떠나가듯이 말이다. 입문과정의 첫 수업에서 ‘뷰포인트는 일상 속 선택과 자유의 폭이 넓어지게끔 하는 매개체‘라는 윤채연 멘토의 말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동안 멈추어있던 연습공간의 가압펌프들이 ‘예술펌프’로 다시 가동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으니 말이다.

 

글/ 인천문화재단 공간문화팀 강수연
사진/ 김희천 작가

*공연예술인 역량강화 펌프(PUMP)


다양한 매개를 기반으로 인천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인들이 양질의 창작물을 제작하도록 도모합니다. 공간의 모태인 상수도 가압장 속 펌프가 ‘흐름’, ‘공급’, ‘교류’의 상징이듯이 지속적인 프로그램(Permanent Program), 지속적인 프로젝트(Permanent Project), 그리고 지속적인 공연예술(Permanent Performing Arts)을 추구합니다.




<바로그지원> 덕분에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가 되어본 후기

2017년 <바로그지원>에 지원하기 전에 나는 굉장히 특이하고 재밌는 삶을 살고 있다는 한 여성, ‘송아영’에 대한 이야기를 4-5명의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예술적인 창작물로 올리고자 <바로그지원> 7월 심사에 지원해 당선되었다. 공연은 12월 9일 부평 스위트홀 소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고, 나는 이것을 좀 더 잘 키워보고 싶다.

…. ‘세 줄 요약’을 사랑하시는 분들께서는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무방하다. 안 그래도 바쁜 세상에 어떤 이상한 여자가 연극 올린 과정과 이야기를 왜 보아야 하냐는 그대들의 의견도 존중하니까. 그런데도 <바로그지원>이라는 간결하고 깔끔하고 확실한 지원 프로그램과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용기가 만들어낸 듣고 보지도 못한 연극의 창작 스토리를 듣고 싶은 분들께서는, 이 글을 재미나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

1. 마녀가 된 여자
<바로 그 지원>의 지원을 받아 발표한 내 프로젝트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씨의 씐나는 모험”의 주인공 ‘송아영’ 씨는 대략 이런 사람이었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레즈비언이고 급진적 여성 커뮤니티인 ‘메갈리아’ 사이트의 운영자이면서 남성 대상의 접대노동을 하는 룸살롱 마담인데 남성에게 채찍질하길 즐기는 엄청난 새디스트인 데다가 남자관계가 매우 문란하고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안 넘어갈 수가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팜므파탈임. 등 뒤에 씌어있는 음란마귀의 명령에 따라 남자를 마구 유혹해서 정기를 빨아먹는 마녀임. 유명 예술가와 교제중인데 동시에 남자친구를 다섯 명 이상 사귀고 있으며 부유하고 나이많은 남자에게 막대한 후원을 받고 있음. PD(노동운동)계열의 좌파 운동권인데 종북주의자이며 러시아어에 매우 능통해서 중국과 북한의 간첩이 각각 그녀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하려 했고 그 때문에 경찰의 주요 시찰 대상 인물임. 그 와중에 국정원의 돈을 받고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핸드폰에 여행 사진까지 저장해가며 매우 열심히 시찰중인 요주의인물임. 그런데 이런 엄청난 정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조용하게 사는 이유는 엄청나게 뒷배가 빵빵한 권력과 부를 갖춘 암흑가 집안의 딸이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나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

사실 이 길고 이상한 ‘정체성’은 지난 3-4년간 나에 대해 떠도는 소문들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주변 지인 4-5명에게서 듣고 수집한 것이었다. 나는 2009년부터 약 9년째 퍼포먼스와 연극을 주된 매체로 쓰는 행위예술가로 활동 중이고, 2014-15년에 정치적, 사회적 1인시위 퍼포먼스로 신문과 방송을 타며 이름이 알려진 적도 있었다. 예술가로서 적지 않은 기간을 작업하고, 그 대부분을 몸을 매개체로 사용한 행위예술로 이름을 알리다 보니 자연히 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 소문의 일부가 내 귀에 들어오기도 했다. 소문들의 내용은 대부분 위에 있는 텍스트처럼 매우 허황되고, 때로는 아무 이유가 없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이런 소문들이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지인들이 말한 소문의 ‘출처’는 참으로 다양한 ‘집단’들이었다. 소문의 내용은 과도하게 성적인 내용이었다.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가장 쉬운 방식이 그 여성을 성적인 언어로 모욕하는 ‘소문’들을 퍼트리는 것이라는, 심증으로만 존재했던 불안이 나에게 물증으로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소리들을 모두 모아보니 역설적으로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나에게 부족하다고 말해지던 소위 ‘여성성’과 ‘섹시함’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섹시한 성적 매력으로 남자들을 마구 유혹하고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얻어내는 데다가, 간첩이 탐낼 만큼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 정치력, 게다가 여성 운동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 대인의 배포까지. 시선을 달리하니 루머가 오히려 내게 힘을 주는 ‘이야기’ 가 되었다.

몸으로 메시지를 표현하고 공연하던 그간의 나를 가장 위축되고 신경 쓰게 하던 말들은 다름 아닌 나의 성적 매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유명한 여성 예술가가 되려면 살을 빼고 섹시해져야 해’,
‘너에겐 여성스러운 성적 매력이 부족해. 여성 예술가는 더 예뻐야 주목받는다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성분들이라면,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이것과 비슷한 외모품평과 평가절하는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것이리라 예상한다. 재밌지 않은가? 앞에서는 내 실력과 아이디어보다 내 외모와 몸매를 소위 ‘나노단위’로 나누어서 가치를 깎아내리기 바쁜 사람들이, 뒤에서는 나를 성적 매력의 화신으로 만들어서 실력과 아이디어를 깎아내리려 애썼다는 것이. 그런데 그 ‘안티’의 말들이 모이고 모이니, 마치 팜므파탈의 위험한 매력이 가득한 마성의 슈퍼우먼이 만들어진 것이다! 허탈한 웃음이 나면서 오기가 생겼다. 이걸 갖고 한 번 제대로 놀아 봐야겠다고.

그래, 당신들은 내 가치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헛소리와 루머들을 만들어 냈지만 나는 거기서 또 다른 힘을 가진 내 분신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 것이라고.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축약한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 씨의 씐나는 모험이다.

2. 바로 그 지원
나에 대한 소문과 루머들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작업해야겠다- 고 결심하고 나니,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가장 좋은 퀄리티로 제작하고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까를 자연히 고민하게 되었다. 가장 큰 고민은 ‘돈’이었다. 아시다시피, 예술활동은 베테랑이 아니면 지극히 수익 창출이 어려운 분야의 ‘사업’이다. 일정한 경지에 올라서 지속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유명 작가가 아닌 이상 창작에 따르는 금액은 아무리 줄여도 적자를 단단히 각오해야 할 만큼 상당한 자금이 요구되곤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글을 쓰고 행위예술을 하는, 비물질적인 예술을 주 작업 수단으로 삼는 예술가이다. 아이디어는 언제나 넘쳐 흐르지만, 그 아이디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행시킬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면 언제나 수반되는 것은 제작비와 파급력에 대한 걱정이었다. 과연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 가며 적자를 감당할 가치가 있을까. 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발표하더라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서 사장되어 버리면 어쩌지? 몇 날 며칠을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설정을 써 내려가며 머리 터지게 고민할 무렵, 나는 인천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지원프로그램 [바로 그 지원]의 7월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바로그지원>은 나의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에 충분히 훌륭한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2016년에 <잃어버린 순무김치의 맛을 찾는> 프로젝트로 한 번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던 나는, 새롭고 신선한 작업을 열린 마음으로 환영해주고 또 필요한 공간과 작업에 대한 조언까지 전해주는 [바로 그 지원]이 나의 새 작품의 시초를 닦을 지원사업으로 딱 맞는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서류 제출과 100만 원이라는 창작지원금, 그리고 공개 발표를 통한 공정한 심사 과정까지. 이 사업이라면 이런 다소 이상하고 급진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편견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공정한 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장 큰 동기로 작용했다. ‘설마 이게 될까?’ 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쓱 내고 발표날을 기다렸다. 어찌 보면 상당히 괴상한 제목의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라는 타이틀이 과연 발표 기회를 얻고 또 뽑힐 수 있을까? 의문과 떨림으로 가득한 며칠이 지나자, 담당 코디네이터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코디네이터님은 상냥했고 또 이 작업의 포인트를 잘 짚어 주셨다. 방향을 잘 잡아 발표를 마치고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땐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런 제목과 내용의 프로젝트에 1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을 쾌척해 주신 인천문화재단의 용맹함에 감격했다.

2-1. 제작 과정
사실 처음에 계획했던 내용은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이나 만화를 창작한 뒤에 내가 그 주인공인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으로 분장하여 자기계발 토크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을 모으고 회의를 몇 번 거친 결과, 처음에 조금 거창하게 계획되었던 초안은 점점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작 가능한 ‘연극’과 ‘사진’, 그리고 ‘파티’를 개최하는 쪽으로 구체화하였다. 내 머리에서 내 이야기를 통해 나온 기획안이었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도움과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구체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것을 여기에 다 적기엔 부족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이 친구들에게 계약서를 쓰고 급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는 점이다. 단순한 동료 관계를 넘어서, 적지 않은 인건비와 노동력을 교환하는 한 사업의 파트너로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나 혼자서는 무리인 장소 섭외와 세팅, 포스터 디자인과 홍보용 화보 촬영, 공연까지 스탭들의 노력과 정성이 있었다. 이 기획에서 내가 온전히 한 일이라고는 대본을 적고 연기를 한 것 정도였다. 다양한 분야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이니, 다들 각자의 일로 바쁜 가운데 시간을 쪼갰음에도 괜찮은 공간에서 좋은 이미지와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노력과 정성에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그지원>의 지원금 덕분이었다.


<지옥페미> 공연과 촬영의 가장 중요한 소품이었던 꼬ㅊ다발. ‘팽이버섯같은 남근다발’이라는 어느 평론가님의 멘트에서 따온 제목이다. 자기들끼리의 헛소리를 퍼트리며 성차별을 굳건히 하려 하는 남성 집단에 대한 풍자적 상징으로, 방방곡곡에서 긁어 모은 가짜 꼬ㅊ들을 꽃과 함께 엮은 ‘선물의 꽃다발’로 무대의 어여쁜 중앙 장식이자 극중 소품으로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최종 결과발표는 2017년 12월 9일,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스위트홀 소극장에서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씌의 씐나는 모험> 이란 제목의 연극형 스탠딩 코미디와 흥겨운 DJ 댄스타임이 합쳐진 파티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다소 생소한 장소였지만 와 주신 관객분들 덕분에 웃음과 폭소가 함께했고, 지원금으로 빌린 캠코더로 공연 영상도 충실히 녹화되어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물건이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공연 영상을 참조해 주시라. 삶이 30분 동안 유쾌해질 것이다.

[영상]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씌의 씐나는 모험” 공연 현장
Youtube 바로가기 ▶

3. 결과
결과는 무난하게 괜찮았다. 관객들이 와 주었고 함께 즐겼으며 훌륭한 장비로 기록까지 잘 남겼으니 이 정도면 그간의 예술 작업 중에서 꽤 괜찮은 결과가 나온 셈이다. 더군다나 ‘자신에 대한 성적인 루머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다소 과격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음에도 무사히 지원을 받고 별 사고 없이 공연을 마쳤다는 데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적자를 탈출했냐고? 그럴 리가. 적자는 여전히 났다. 좋은 퀄리티의 공연과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자본주의의 마법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 돈 20만 원만을 가지고 만든 연극과, 120만 원을 가지고 만든 파티의 차이는 같은 20만 원의 적자라도 규모와 퀄리티, 내용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지원금이 존재함으로써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더 좋은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었고 이 프로젝트를 다음에 더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공연기록 영상과 사진 작품을 얻었다. 100만 원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완성시키는 데에 약간 부족한 돈이었을지 몰라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시험하기에는 괜찮은 금액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의 예술적 가치관과 창작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을 얻었다. 처음에 기획했을 땐 ‘에이 설마 이런 게 예술이 될 수 있겠어?’ 라 생각했던 것이 점차 사람을 모으고 형태를 갖추어 가며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바로그지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느끼기 힘들었을 보람과 성취감의 시간이었다.

나는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프로젝트를 앞으로 더욱 키워볼 생각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언어에 의한 성폭력에 시달리는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다가가 불의한 언어폭력에 맞서는 힘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소문에 대한 이야기와 평판에 대한 고민을 주변 여성 예술가, 활동가, 직업인들과 나누어 본 결과, 무언가 자기 뜻을 가지고 능력을 펼치는 여성들은 성과 금전에 관련된 헛소문에 크고 작게 시달려 본 경험이 적지 않게 있었다.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가치를 내리는 언어 성폭력과 루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였다. 나는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씌의 씐나는 모험” 을 작업의 떡잎 삼아, 이 문제들을 실제로 겪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좀 더 활기차게 가해자들에게 대항할 방법을 연구할 가능성을 더 크게, 더 널리 만들어 주고 싶다. 확장된 2차 프로젝트에서는 여성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집단 창작 워크숍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물론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적, 제도적 장치를 활용하여 가해자를 응징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일이다. 하지만 싸움은 길고, 삶은 단순하지 않기에, 가장 좋은 해결책까지 가는 길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수치심과 2차 가해로 인해 지치곤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피해자가 아니다. 젠더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을 비열하게 괴롭히는 가해자들이다.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 당연한 두 줄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당연한 문장이 자리 잡지 못한 채로 피해자가 부끄러워하고 위축되게 하는 성차별적 분위기와 ‘피해자다운 피해자’의 이미지라는 2차 가해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존재한다. 나는 여성 피해자들이 더 이상 모욕적인 말을 듣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놀고 웃을 수 있게 만듦으로써 지치지 않고 싸워나갈 수 있는 하나의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 이것이 완벽한 저항은 아닐지라도, 싸움의 과정에서 웃고 까불면서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며 발랄하게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의 다리를.

글/ 사진
송아영 (바로그지원 2017년 7월 대상자)




인천 속 근대 음악사를 따라가며, 합창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인천합창의 궤적> 기획전

인천문화재단 개관기념 기획전 <인천합창의 궤적>은 합창음악을 공연이 아닌 역사적 관점으로 풀어낸 최초의 전시이다. 인천은 개항기 근대 문물이 유입되며, 서양음악도 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5음계의 우리 고유 전통음악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8음계의 서양음악을 접했을 때 그 충격과 새로움은 어땠을까? 선교사 아펜젤러의 찬송가 연주가 최초로 인천에 울려 퍼졌을 때를 한번 상상해 보라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인 ‘영화여학당’은 바깥출입도 어려웠던 당시 여성들에게 김영의, 김활란 같은 한국의 1세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다. 영화학당을 다녔던 여성들이 선교사의 추천으로 서울에 있는 중학과정의 이화학당에 입학하기도 하였으니 인천의 교육이 얼마나 앞섰는지 짐작이 된다. 아울러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단체인 엡웟(Epworth)청년회도 민족의식과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교육, 강연회, 음악회 등을 열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최영섭은 인천 출신이다. 그는 내리교회에서 한국 최초로 오케스트라 반주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연주한다. 이 당시 등사원지에 철필로 직접 그려 등사기로 인쇄한 악보를 사용하였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 실물자료를 볼 수 있다. 작곡가 최영섭은 인천구국학생합창단, 인천해군경비부정훈합창대의 지휘도 하면서 1963년까지 인천에서 활동한다

오늘날 인천이 ‘합창음악의 도시’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50년대부터 활동하였던 다양한 합창단에 기반한다. 1958년 창단된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졌던 ‘호산나 합창단’을 필두로 인천남성합창단, 인천여성합창단, YWCA합창단, YMCA합창단 등 합창단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남녀칠세부동석이었던 우리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 남성으로 나누어져 있던 합창단은 1968년 샤론합창단을 시작으로 로고스합창단, 인천합창단 등의 혼성합창단이 창단된다. 합창제와 음악제를 통해서 합창단들의 교류와 활동이 많아지면서 1970~1980년대에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 합창단도 합창제와 합창대회에 참여한다.

1981년 인천시립합창단이 생기고 1995년 윤학원 예술감독이 오면서 합창단의 활동범위와 레퍼토리가 다양해진다. 인천시립합창단이 재창단되며 가장 주목할 점은 전속 작곡가를 두어 창작 합창곡을 무대에 올린 점이다. 이후 합창의 “세계적, 한국적, 창의적” 목표를 둔 인천시립합창단의 행보는 한국 합창음악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ACDA (American Choral Directors Association, 미국합창이사회)에서 세계 4대 합창단으로 초청되어 연주한 것은 그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김종현 예술감독 부임 이후 합창 지휘세미나, 합창대축제 등을 통해 지역 합창단과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고 있는 인천시립합창단의 활동이 기대된다.

이번 ‘인천합창의 궤적’ 기획 전시를 통해 인천의 역사적, 음악적 가치를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인천은 서양음악에 대한 노출이 빠르고 교육과 근대화에 앞장선 도시로 신여성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개항기 때 음악가들이 유독 인천 출신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교회에서 시작된 성가대의 합창음악은 1950년대부터 일반 합창단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오늘날 인천이 합창음악의 도시로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뿌리이다.

유구한 역사를 기반한 인천합창이 앞으로 어떻게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을지 인천시립합창단을 중심으로 한 사립, 구립 합창단의 활동이 기대된다. 이번 전시가 “근대 음악의 도시”, 인천을 “현대 음악의 도시”, 인천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비와 계획의 준비로 기억되길 바란다.

 

글/ 이지영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교 학사, 동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미국 위스콘신대학 음악대학 음악학 박사( D.M.A.)
YTN “이지영의 뮤직톡톡” 진행
이화여대, 추계예대. 세종대 출강
(주)이지영 음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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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용훈




지역문화공간 음악창고 Rock(樂) Camp

어렸을 때 내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는 늘 ‘가수’라고 대답했다. 합창단에서 만나 결혼하신 부모님의 영향인지 노래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노래를 좋아하는 감정만큼이나 잘 부르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을 공부하면서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타를 배우면서 만난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소소하게 밴드 활동을 했다. 우리는 음악을 함께했지만, 음악으로는 먹고살지 않았다. 함께 모여서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즉흥적으로 부르면서 기타를 치고 놀았다. 가끔은 거리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무대에 초청되어 음악을 향유했다. 그러면서 느꼈다. 뮤지션은 아니더라도 관련된 일을 하면 재밌겠다고.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시흥의 한 축제 사무국에서 우연히 일하게 되었다. 행사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물을 만들고, 직접 배포에 나섰다. 많은 인파로 북적거린 행사에서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 알았다. 비록 무대에 서지 않아도 음악을 가지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과 관련된 행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에서 근무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 사는 직원들과 함께 방을 구해야 했다. 집에서 시흥까지 출퇴근하는 길이 무척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영화관람이나 쇼핑 등 간단한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조차도 한참을 이동한 후에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인천에서 고민해본 적 없던 사소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크게 다가왔다. 인천이 그리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 내내 인천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잘되면 인천을 떠나야지’라는 마음으로 줄곧 지내었다. 인천은 수도 서울과 가깝고, 국제공항, 항구, 전철까지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최적의 교통조건을 가지고 있기에 내 주변 분들도 인천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기를 언제나 희망했다.

난생처음 시작된 타향살이가 인천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떠오르게 했다. 인천에 다양한 인프라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실 늘 서울과 비교해서 그렇지, 다른 지역에 비하면, 교육 및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저 너무 당연한 것들이기에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인천의 고유함과 독특함으로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지역문화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역과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이론 수업을 들으면서 기본적인 지식을 쌓았다. 5월부터는 현장과 연계하여 인천지역의 문화공간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음악과 관련된 공간에 관심이 있어 ‘락캠프’에 기대가 컸다. 사실 과거에는 ‘록’이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았고 ‘라이브 클럽’도 어떤 곳인지 몰라 섣불리 방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을 계기로 방문한 ‘락캠프’는 21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음악 공간이었다.

부평구청역 3번 출구에서 직진으로 20걸음 정도 걷다 보니, 길 건너에 커다란 ‘락캠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다양한 공연 포스터들이었다. 내려가는 계단 옆쪽 가득 붙어있는 낡은 포스터들이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정면에는 정유천 대표의 사진으로 만든 간판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액자에 담긴 공연 사진이 가득했고, 고개를 돌리자 수백 장의 음반들이 한쪽 벽을 감싸고 있었다. 공연하는 공간이라 어두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짝이는 조명들이 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대표님 내외분께서 한 분 한 분 커피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대표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락캠프’가 문을 연 곳은 인디씬이 생겨난 1997년 부평삼거리 인근이었으며, 2006년 강화도로 옮겼다. 그리고 현재의 공간에 정착한 지 어느새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어쩐지 지나온 시간에 비교해 공간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21년 동안 한 공간을 유지하기에는 음악 시장의 판도가 많이 변화하였다. 특히 클럽문화가 성행했던 97년은 록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록 밴드가 데뷔를 위해 공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락캠프’도 365일 중 360일 이상을 공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록’보다는 ‘팝’ 장르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음악 장르가 한쪽으로 편중되면서 시장에서 ‘락밴드’보다 ‘아이돌’을 꿈꾸는 이들이 늘었다. 공연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레 줄었고, 밴드 공연 중심으로 수익을 내던 대부분의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락캠프’ 또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평을 떠나 강화에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부평구청 쪽으로 돌아오면서 이름을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이름 속에 들어있는 오랜 추억을 져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토요일에만 정기공연이 있지만, 종종 금요일에 기획공연을 진행한다. 이제는 무대에 록 밴드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이 설 수 있도록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공간을 둘러보았다. 꽤 넓은 공간이었다. 보통은 100여 명 정도 앉아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나, 공연내용에 따라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스탠딩으로 즐기면 300여 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실제로 유명 인디 가수가 방문했을 때는 350여 명의 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무대에는 각종 앰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모두 쓰는 것인지 여쭤보니, 앰프별로 출력되는 소리가 다르고 뮤지션마다 선호하는 소리도 달라 많은 종류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분의 기타 및 신디사이저를 소장하고 계셨고, 여러 색의 조명, 스모그 효과까지 공연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무대에서 조명부터 장비의 각 위치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대표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는 경제적인 이윤보다는 뮤지션에게 내어줄 수 있는 무대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락캠프’의 취지에 동참한 몇몇 가게들이 모여 인천 대중음악 공연장 협회를 구성하는 동시에 상생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거리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나 또한 버스킹을 시작으로 밴드를 꾸렸지만,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본적인 장비만 준비되어 있으면 무대공연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공간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록이 갖는 고유한 문화적 정서를 인천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문화기획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고민을 했다.

<지역문화인력양성> 수업을 통해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보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하나둘 모여 더 나은 지역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앞으로의 만남이 더욱 기대된다.

앞서 말했듯이 어렸을 때 나의 꿈은 ‘가수’였다. 성인이 된 지금, 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음악을 소재로 한 문화기획자가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 답하고 싶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글/사진
김지연(지역문화인력양성 프로그램 수강생)




기억 소환소 스페이스 빔

2년 전 지인이 술 빚는 법을 배운다며 봄에는 이화주를 가을엔 연엽주를 마셔보라며 선물했다. 탁한 막걸리를 정수기를 통해 맑게 만든 듯한 이화주의 부드러움에 반했다면, 연엽주의 은은한 향과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당장이라도 술 빚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들게 했다. 배다리 전통주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알게 된 곳이 스페이스 빔이다. 2018년 사단법인 인천마을넷의 정기총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총회를 진행하는 사람이 능숙하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고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때가 민운기 이사장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해가 진 5월의 마지막 날 네비양의 안내에 따라 낯선 동구의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술을 빚는 학교, 마을공동체가 아닌 문화예술공간으로 스페이스빔에 찾아갔다. 도착했을 때 도로 양쪽으로 빼곡히 주차된 차에 가려서 유명한 ‘고뇌하는 깡통 로봇’이 보이지 않아 잘못 찾아왔나 싶어 당황했다. 밝게 비춰주는 조명도 없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반대쪽 벽이 보일 정도로 빈 공간과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듯 물건이 널려 있는 1층의 어둡고 은은한 불빛이 오히려 공간에 대한 불편함보다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아서, 오히려 굳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은 나른해진 저녁의 몸이 쉴 곳을 찾은 안도감을 준 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랐다. 계단 중간쯤 나풀거리는 커튼 사이의 ‘쿵’ 글씨는 절대로 부딪히지 않을 높이의 키를 가진 사람도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들어 인사성을 발휘하게끔 했다. 키 큰 이들이 머리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걸어갈 수 없게 한 ‘쿵’ 글씨에 웃었다.

도착 후 들어서기 바빴던 1층에 비해 2층에서는 일행들이 모이길 기다리는 동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고두밥실, 주모실, 발효실, 시음실, 숙성실의 방에 붙여진 이름을 보고 ‘아 이곳이 옛날에는 양조장이었지’를 상기시켜 줬다. 인천의 길고 긴 시간을 품었던 건물들이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허물어져야 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간의 흔적들로 채워진 방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나와의 관련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91년~92년에 잠깐 머물던 인천과 2000년부터 정착해 살아온 인천살이에서는 관련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시음실에서 아주 희미하게 맡은 어떤 냄새 한 조각은 어린 시절에 우리 마을 양조장으로 데려갔다. 국민학교 때 막걸리를 받기 위해 양조장 문턱 위로 피어오른 시큰한 막걸리 냄새를 맡아가며 양은주전자를 들고 기다렸었다. 이 시큼한 냄새가 주는 익숙함과 해가 길에 늘어진 시골길을 터덜거리며 걸어가다 주전자 입구에 입을 대고 홀짝 거리는 내가 보였다. ‘아~! 우리 동네에도 양조장이 있었는데…’ 하는 기억이 갑자기 소환됐다. 좋았다. 잊고 있었는데. 더운 여름날에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한 잔씩 드리면 고맙다며 칭찬해주시던 반가운 얼굴들이 순간 휙 지나갔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동네 분들의 모습과 술을 못 드셔서 미숫가루 한 사발을 들이키시던 엄마까지. 벽에 걸린 9시 45분에 멈춰버린 시계처럼 내 마음속 깊이에서 우리 동네의 산과 밭, 또랑, 서낭당 느티나무까지 순간 내 주위에 잠깐 머물다 간 고향의 모습에 울컥해졌다.

일행과 함께 민운기 대표님께 스페이스 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묻고 이야기를 들었다. 생산형 도시를 지향하는 인천, 그중에서도 유별난 동구에서 생활형 도시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스페이스 빔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문득 철커덕 거리며 일정하게 들리는 전철의 바퀴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시계가 없던 어린 시절에 지나가는 충북선의 느린 화물 기차는 우리들의 시계였다. 기관사를 향해 우리 손목을 치면 기관사는 손가락으로 시간을 알려줬다. 기찻길은 놀이터였고 먼 학교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긴 못을 철길에 놓아뒀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납작해져서 칼 대용으로 쓰기도 하였고 기차 바퀴에 눌러 넓어지게 만든 십 원짜리 동전을 기찻길 주변에 살지 않던 옆 동네 친구에게 백 원에 팔기도 했다. 그렇게 기찻길을 우리들의 장난감을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이 스페이스 빔을 이야기할 때 대안지역문화공간이라고 하지만 내게 다가온 스페이스 빔은 잊고 있었던 기억의 소환장소가 됐다. 키 작은 어린 시절의 열등감을 유머코드로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주는 곳이 됐고, 잠깐이나마 고향마을을 다녀올 기회를 줬다. 그래서 또 가고 싶은 곳이 됐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스페이스 빔은 어떤 공간으로 다가올지를 생각했다. 어떤 특별한 기억을 심을 수 있는 곳이면 또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 전래놀이를 하는데 스페이스 빔에서 숨박꼭질이나 런닝맨 놀이로 공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 참 재밌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한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날에는 고뇌하는 깡통로봇의 배꼽을 꾸욱 누르면 사이다가 섞인 달달한 막걸리 한 잔이 나와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스페이스 빔은 어떨까 싶다.

 

김영남(金永男, Kim Young Nam), 노리데기
현)창의인성공감연구소장
현)나눔이있는교육협동조합 사무국장
나눔놀이단원




소리로 인천을 발견하는, ‘인천의 소리’ Archive Project

“글쎄. 자유공원에 나던 소리가 아닐까?”
“밤 10시가 되면 확성기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어. 그리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부모님이 기다리는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런 방송이 나왔던 것 같아.”

60세가 넘은 어르신(남성)들은 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셨다. 밤 10시에 자유공원 꼭대기에 있던 확성기에서 귀가를 알리던 소리. 밤새워 놀고 싶었던 청춘들을 집으로 돌이켜 세우던 이 소리를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이들을 바르게 살라며 계도하던 이 소리가, 기억 속 인천의 소리가 될 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인천 하면 떠오르는 소리가 뭘까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이런 질문을 건넨다. 지금의 소리도 좋고, 기억 속의 소리도 좋으니 인천이란 도시 공간을 가만히 생각하면, 떠오르면 바로 그 ‘소리’가 뭘까.

인천항과 연안부두의 뱃고동 소리, 1호선 열차 소리, 야구장에서 부르는 연안부두 응원 소리, 백령도의 콩돌 해변 소리, 공장의 소음, 자장면 먹는 소리 등등. 인천의 대표적인 장소 또는 이미지와 연관된 소리가 자주 나오는 대답이다. 아파트 공사현장의 ‘삽질하는 소리’. 바닷모래 채취하는 소리, 네 아버지 ‘뻘소리’, 취업 걱정 ‘한숨 소리’ 등등 현실을 비꼬는 재미있는 대답도 많았다.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인천의 소리’를 녹음해서 라디오 방송으로 들려주려 하기 때문이다. 인천이란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리와 이야기들. 이름하여 ‘인천의 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들려주려는 기획이다. 인천에 있는 자연의 소리, 문화(재), 시설물 등 의미 있는 소리를 그 스토리와 함께 들려주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MBC 최상일 PD께서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발로 만든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유사한 프로그램이다. 다만 ‘인천의 소리’는 그 소재가 ‘민요’가 아니라 ‘공간’, 즉 도시와 그 도시가 품은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인천역 뒤편, 월미도로 가는 길 만석고가 밑에서 녹음을 했다. 화물 ‘디젤’ 열차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대부분 사라진 철도 건널목의 풍경과 소리가 이곳에는 아직 남아 있다. 인천항으로 수입한 유연탄과 철강들이 이곳 축항선 선로를 통해 제천 등 지역으로 실려 나간다. 호루라기 소리와 차단기 내려가는 소리. ‘덜컹덜컹’ 낡은 디젤 기차 소리가 선명하게 살아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인천 원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리이다.

인천과 노량진. 우리나라 최초의 기차선로가 놓인 도시, 인천. 인천역 앞에는 이를 기념한 석축 기념물이 ‘소리 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지금은 사라진 증기기관차와 석탄 열차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윗세대들이 이야기하던 일명 ‘꽥꽥이’ 수인선 증기기관차 소리도 그 쓸모와 함께 모두 사라졌다. 인천항 축항선 화물 열차가 아니라면 이젠 디젤 열차 소리도 여간해선 듣기가 어려워졌다.

사라진 건 소리만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기억하는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이다. 송도 조개 고개 언덕에서 수인선 꼬마열차에 뛰어오르던 무임승차의 기억. 열차 가득했던 비릿한 생선 냄새. 기차선로에 귀를 대고 언제 열차가 오나 알아맞히던 꼬마들. 선로에 올려놓던 쇠못과 짱돌. 덜컹거리는 기차에 매달려 있던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을, 모두 말줄임표 같은 밤 기차의 불빛과 함께 떠나보냈다. 이제 우리는 무소음의 조용한 세상에 진입하고 있다.

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무소음의 공간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 광고가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미 텁텁하고 숨 막히는 용각산 분말 같은 ‘무소음 도시’에 우리는 사는 것이다. 아파트에서의 삶을 생각해보자. 타인의 소리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물의 소리를 제거한다. 반려동물의 소리도 제거한다. 함께 쓰는 공간은 무소음 진공상태로 만들어 서로를 고립시킨다. 소음은 살인의 동기가 된다.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싸구려 향수와 감흥 없는 음악으로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채워 넣는 것이 이 도시의 현대적 삶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없앤 그 소리를 저급한 음질로 재연하는 세계. 이웃과는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사물인터넷, AI 기계와 이야기하는 세계. 외로운 개인의 세계.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사는 도시의 현대적 삶이다.

‘인천의 소리’ Archive Project는 사라진 소리, 사라지는 소리, 사라진 소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리 등 다양한 우리 주변의 ‘소리’를 통해 인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장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잃어버린 것은 단지 소리만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다. 경인방송 라디오(FM 90.7 MHz) <백영규의 가고싶은 마을>(오후 4시~6시) 목요일 코너 ‘인천의 소리’에서 이를 들을 수 있다. 라디오를 통해 시민들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인천의 소리를 묻고, 이를 녹음해서 퀴즈 형태로 들려주는 1시간 분량의 코너이다. 인천광역시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굿모닝 인천>의 유동현 편집장이 출연해서 소리를 통해 시시콜콜한 인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천의 골목 구석구석을 이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방송 첫 회 만에 ‘인천 골목대장’ 이란 별명이 붙었다. 첫 회(5월 3일)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디젤 화물열차 소리’에 청취자들은 뜨거웠다. 반응이 좋은 ‘소리’는 스토리를 갖추어 6월부터 연말까지 3분짜리 라디오 캠페인으로 따로 방송될 예정이다. 라디오를 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팟캐스트, Youtube 보이는 라디오 등 온라인에서 다양한 콘텐츠 방식으로 찾아갈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경인방송과 인천문화재단의 매체협력 사업으로 진행된다. 아이템 선정부터 진행까지 재단의 후원과 도움이 힘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재단을 통해 이 작업이 계속 소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UHD, 4K 등 화려한 영상 시대에 왜 하필 ‘소리’일까. 30년 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뒷북을 치는 것도 아니고, 4차 산업혁명을 코앞에 둔 이 시대에 이 아날로그적인 발상은 대체 뭘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는 이야기이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매개물은 ‘소리’이다. 인간과 기계는 자판과 스크린 터치를 넘어 이제 ‘소리’로 소통한다. 개별 음성을 인식하고 음성으로 답해주는 AI 음성비서, 사물인터넷이 익숙한 전자제품으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당연히 ‘소리’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듯 요즘 <숲속의 작은집>(tvN), <우주를 줄게>(채널A) 등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ASMR 콘텐츠가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 쾌락반응)은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하여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주변의 소소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유튜브 등에서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에 ‘온기’가 있듯이, 소리에는 따뜻함이 있다. 이것이 올드 매체 라디오의 여전한 매력이자, 소리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소리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이 같은 체온과 온기이다.

기술적으로는 우리가 채집한 소리 가운에 공간감이 필요한 사운드는 입체음향으로 녹음-믹싱하여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할 계획이다. 입체음향은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세계적으로 돌비의 Dolby Atmos와DTX의 Headphone X 등이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기업 소닉티어(Sonicteer)가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이영애처럼 나와 나의 동료 ‘유지방’ 그리고 ‘이담에’ 작가는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작정이다. 물론 우리는 ‘이영애’가 아니며 ‘유지태’도 아니고 게다가 라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으로 인천 시내 어딘가에서 통통하거나 뚱뚱한 ‘유지방’ 가득한 두 사람이 녹음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만난다면, ‘내가 생각하는 인천의 소리는 이것이다’라고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 프로젝트에 ‘아카이브’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2차, 3차 콘텐츠를 위해 소리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려 하기 때문이다. ‘소리’와 결합한 도시 공간 전시, 음반 작업, 다큐멘터리 등으로 이어가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이 지면을 통해 뜻있는 곳의 후원과 협찬을 기대한다.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한다. 우리는 시끄럽게 태어나 침묵으로 생을 마감한다. 소리가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인천이란 도시의 소리. 함께 듣고 싶은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이 ‘인천의 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이다.

 

글/사진 안병진(安柄鎭, Ahn Byung Jin)

1976년 인천 출생.
경인방송 PD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항구,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2013), [다시 부르는 인천의 노래](2013)
[아시아의 음악을 찾아서](2014), [소리로 떠나는 인천 섬 여행](2017),
[행복한10시, 이용입니다](2017), [백영규의 가고싶은 마을](2018) 등 연출.
[Sound of Incheon](2017), [기타킹](2012) 등 앨범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