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 PARK Jihye

박지혜는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미술실기 및 현대미술비평으로 학사학위와 동대학원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현상들에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조합하여 만들어낸 상황과 그 안에서 발생되는 갈등의 여러 형태들을 시간성과 공간성을 의도적으로 제한한 장치 안에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사유를 시각화 시키는 작업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하여 다층적인 시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곳에 아무도 없다,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트랙, 23분 25초, 2019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의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 속 다양한 관계 내에서 잠재된 심리적 흔적에 주목하며 연속적이면서도 불연속적인 이미지들과 사운드가 하나의 촉각적 장치로 전환되어 이러한 비가시적 현상들을 감각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시간성과 공간성이 결여된 세트나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가시화시켰다면 최근에는 실제에 존재하는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시적인 혹은 비가시적인 요소들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시키는 실험을 하는 중이다.
나는 이러한 비틀림을 통해 발생하는 비가시적 감각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서부터 거대한 역사적 사건까지 어떻게 어루만지며 매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또한 그 안에서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경험으로 변모하기도 하거나 그 반대로 작용하는 지점들에 대하여 작업으로 드러낸다.

사라져버리는 기억은 없다,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트랙, 5분 10초, 2018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최근 개인전 《그곳에 아무도 없다》(2019)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이 전시에서 나는 단 한 번의 사용 이후 그 상태 그대로 버려진 공간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수집한 자료들의 바탕으로 공간 속 내재하고 있는 수많은 관념과 욕망의 충돌, 갈등, 교환과 타협의 과정들을 심리적인 풍경으로써 담아내는 작업을 선보였다. 영상 작품에 배경이 되는 버려진 하수 처리장 곳곳에서 발견한 장면들, 가령 단절된 파이프나 자라난 들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벽면의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되어있는 모습 등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질감을 탐구하고 이를 면밀하게 담아내었다. 동시에 채집되고 가공된 사운드의 청각적 장치들을 통해 공간의 촉각적 부분 또한 전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텅 빈 공간을 끊임없이 부유하는 인물과 공간의 기억으로서만 존재하는 인물, 그리고 왈츠의 몸짓을 통하여 분명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기능과 목적을 잃고 기억에서 망각된 장소와 심리적 공간에 대한 흔적과 그에 따른 의미를 환기 시키고자 하였다.

《그곳에 아무도 없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9)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나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쉽게 정의되거나 분류될 수 없는 불명확한 하나의 형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이들은 시작과 끝이 모호하고, 무엇을 지시하거나 명확히 포착해서 직접적 의미를 전달해주지 않으며 다분히 감각적이며 또한 촉각적으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이러한 각각의 비물질적 구성요소들을 이미지로써 변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업의 이야기가 결정되어 진다. 오래전 나에게 각인된 이미지 혹은 이미 경험된 이미지, 그리고 파편적 이미지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새로운 이미지들이 제작된 음악과 사운드를 통해 다시금 중첩되고 선명하게 드러나며 또한 감각적으로 재구성이 되기도 한다. 특히 조화되지 않은 공간과 시간을 결합을 통하여 그것의 이야기 속의 디에게시스(diegesis)범위 안에서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수축하며 발생하는 긴장감에 주목하고 있다.

Evanesce,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트랙, 5분 50초, 2015
Evanesce 전시 전경, (송은아트스페이스, 서울, 2015)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분명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통해 비가시적인 현상들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기승전결이 있는 선형적이고 인과적인 시간성에서 벗어나고, 그에 따른 의미를 도출하기보다는 다양한 것들이 혼재된 의미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을 넘어 공동 경험의 구조로 확대되는 포괄적인 관점 또한 수용 가능하게 한다. 작업을 통해 기억과 사유를 끌어내고, 각자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경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객과의 소통이다.

Rumination,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트랙, 6분 30초, 2017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최근 나는 실제적인 역사적 사건에 기반하여 어떠한 경계로 인해 가려지고 숨겨지고 그래서 비어져 버린 것들이 만들어 내는 헤아릴 수 없는 감각들과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풍경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다. 현실에서 멀어진 무의미한 풍경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풍경을 넘어서 발견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또한, 이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로서 언어라던지 텍스트 등의 이야기 구조 형식들을 시간성을 내포한 서사적 매체로서가 아닌 비물질적인 재료라는 또 다른 형태로서 사용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를 통해 실재 장소와 담론적 장소 그리고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들로 공간 이미지의 다면적 확장을 지속해서 다루고자 한다.

Affection take, 3채널 비디오, 보이스, 사운드 트랙, 6분 12초, 2017
《Fragmented Love(파편화된 사랑)》 전시 전경, (아트스페이스 와트, 서울, 2017)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이상원 LEE Sangwon

이상원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음대에서 재즈피아노 학사, 암스테르담 음대에서 실시간 전자음악 석사를 취득했다. 그는 즉흥연주를 기반으로 라이브 일렉트로닉스, 인터렉티브 영상 등 현대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확장된 음악 퍼포먼스를 구현해오고 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형식을 지향하며 그것은 2016년 귀국 후 발매한 음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에는 보다 더 깊은 몰입감을 주는 공연 창작을 위하여 시각과 청각의 세밀한 상관성에 관한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VAM: Collective 1 앨범커버, 2016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피아노와 라이브일렉트로닉스(Live Electronics), 영상을 이용하여 작품을 하고 있다. 주로는 소리 데이터를 이용하여 전자 사운드 및 영상을 컨트롤하고, 때로는 물리적인 인터페이스(Interface)를 이용하기도 한다. 2010년 즈음부터 재즈 연주에 일렉트로닉스를 조금씩 적용해보는 작업 방식을 시도하였으며, 그 후로는 디지털 기술을 중심에 두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스타일로 발전하였다. 작업은 크게 3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의 컨셉을 구상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 작곡과 그에 따른 프로그래밍을 위한 단계, 그리고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작품에 따라 준비된 소프트웨어 및 컨트롤러를 충분히 숙련하는 단계이다.

<Jazz&Electronics Project>(몽크, 부산 2018) 공연 포스터 <Piano&Music: Live Electronics Project [Immerse]> (게토, 서울 2017) 공연 포스터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STEIM(스타임)에서 진행했던 솔로 피아노, 라이브일렉트로닉스 퍼포먼스와 국내 귀국하여 발매한 밴드 VAM(뱀)의 앨범 “Collective 1” 음반과 공연을 언급하고 싶다. VAM은 재즈, 펑크, 록, 자유즉흥음악, 테크노 등 경계를 넘나드는 크로스 장르적 특징을 강조하는 음악을 진행해왔다. 다양한 음악적 재료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결합 및 재창조하는 시도를 했었고, 개인적으로는 ‘Vampire(뱀파이어)’라는 곡을 좋아한다. 밴드 활동을 하며, 작곡, 연주, 프로듀서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음악 그룹 ‘Ontogenesis’ 콘서트 <To See Eye to Eye>, 스타임,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5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치열하게 구상을 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편은 아니다. 아무 계획 없이 이것저것 코드부터 짜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막연히 피아노 연주할 때나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영감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 경험이 영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현대음악 그룹 ‘VAM’ 콘서트(커먼키친, 성남, 2016) 공연 포스터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청각, 시각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만족하게 하는 작품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선사하고 싶다. 우리가 비슷하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하여 집중하지 않으면 잘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확장하여 표현하고 싶다.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대음악 그룹 ‘Trazzionic’ 콘서트, Amstel Kerk,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5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꾸준하게 IT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작품을 지속해 나가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도 진행하고 싶다. 해외 아티스트와의 교류의 기회도 만들 것이며, 작품 사례를 통한 연구 결과를 논문 형식으로 투고할 계획도 있다. 피아노 연주자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지연 재즈 오케스트라 콘서트<K-PAZZ>, 실시간 영상 퍼포먼스, 문학시어터, 인천, 2019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www.youtube.com/sangwon2




임노식 LIM Nosik

임노식은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학과 학위를 취득했다. 작가는 자연에서 관찰한 인위적인 상황과 흔적들을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또한 다양한 공간 경계 형태들과 그것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전 작업이 작업실 근방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후의 작업에는 몇 년 전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고향인 여주에 다시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이미지가 발견되는 장소와 구현되는 장소에 거리를 두는 작업의 프로세스는 유지하되, 그 장소의 거리를 늘어뜨려 보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작업실01, 259×193cm, 캔버스에 유채, 2019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의 작업은 바라보고 느끼고 포착한 것 그 순간을 옮겨 낸 결과이다. 그 이미지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주변을 배회하고 부유하는 일상적인 공간이자, 그 순간 자체를 떠내어 수집한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나의 첫 개인전 《안에서 본 풍경》(OCI 미술관, 2016)에서는 선보였던 연장은 유년 시절 보냈던 공간인 목장과 축사 그렸다. 이때는 사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을 풍경으로 재현하였고, 그려내기 위해 관찰이라는 행위에 집중했다. 기록보다는 기억을 통해 공간 자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되새기는데 몰두하면서 작업을 했다. 두 번째 개인전 《Folded Time》(합정지구, 2017)에서는 고향인 여주(목장)보다 문래동 작업실에 머물러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소재도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거나, 같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관찰을 했다. 반복된 관찰로 지각 경험은 축적이 되고 그 공간에 무감각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중첩된 시공간 속에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옮겨 작업했다. 나는 주로 작업 과정에서 드로잉 위주로 이미지를 수집한다. 무엇을 그려야 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하는지 아주 느린 편집 과정을 통해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안에서 본 풍경1, 890×25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
작업실05, 116×91cm, 캔버스에 유채, 2019 작업실06, 60x90cm, 캔버스에 유채, 2019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올해 3월에 열린 세 번째 개인전《물수제비(Pebble Skipping)》(보안여관, 2020)는 회화의 구동 방식에 대해서 되새겨보며 작업을 했다. 우리가 흔히 관용적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눈에 담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회화도 같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담다’라는 표현에서 모래를 담아 올리는 장면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보통 모래를 담아서 들어 올릴 때, 담긴 모래를 전부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몇 조각씩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회화 작업 또한 야외에서 작가가 풍경을 보고 작업실로 가지고 오면서 모든 것을 캔버스에 담을 수 없고, 중간에 누락되는 것들이 생기는 과정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여기서 보통 모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서 거리가 멀어져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캔버스 직조 사이사이로 풍경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되려 그들의 잔존이 캔버스에 남겨지는 것이 아닐까 탐구하며 작업한 전시이다.

《물수제비(Pebble Skipping)》 전시전경, 보안여관(서울), 2020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몸의 체험으로부터 이미지 수집과 작업을 하고 있다. 1~2년마다 주변 환경에 달라짐에 따라 그림의 소재도 자연스레 달라지고 있다.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에 속하고, 어떤 장소에 있으며, 이것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곳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는 누군가에 대해 나를 설명하기에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나의 지리적 이력은 분명 작품의 외적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

Daybreak, 가변크기, 캔버스에 유채, 2017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이전까지의 작업을 되돌아보면, 주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공간 자체와 그것에 대한 관찰적 태도 및 시선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는 공간을 인식하고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행위 사이에서 축적되는 모든 감각의 이미지들이 재현하는 것은 결국 무엇이고 그 끝에 지각되는 잔존의 형태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후 작업 역시 이러한 맥락을 이어가지만, 그간 작업의 주를 이루었던 공간-재현의 틀에서 빗겨 나와, 공간-현상에 몰두해 보고자 한다.

Solmi road01-04, 193×130cm, 캔버스에 유채, 2019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nosiklim.com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김경아 명창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첫 연재이므로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형식을 다듬어갈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에 날아온 보물, 김경아 명창 인터뷰
– 인천에도 국악을 위한 언플러그드 공연장이 있는 날을 꿈꾸며“

“국제도시이자 허브도시인 인천에 일 년 내내 국악을 들을 수 있는 국악전용극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는 가부키 전용극장이 있고, 중국에 가면 경극만 365일 하는 극장이 있는 것처럼요.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인천에 국악전용극장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인천이 판소리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시절이 있었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 어려웠고, 듣는 사람도 있을까 싶을 때였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김경아 명창이 소리 선생님으로 초빙돼 처음 인천에 발을 내딛었을 그 때가 꼭 그랬다. 하지만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인천은 전국의 소리꾼들이 꼭 서고 싶은 무대로 자리매김 했다. 매년 추석명절 즈음이면 명창과 귀명창(판소리를 제대로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만남의 광장이 펼쳐진다. 스승에서 제자로, 또 그 제자에서 제자에게로 이어져 온 민족예술의 정수인 판소리가 ‘들어줄 줄 아는’ 시민들을 만나 빛을 발한다. 전국의 명창들이 꼭 서고 싶은 무대로 자리매김 한 인천에서 우리 소리의 저변을 보다 확대할 방법은 무엇일까.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자 인천을 대표하는 소리꾼 김경아 명창에게 들어봤다.

추석을 앞두고 미추홀구에 위치한 ㈔우리소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명창은 ‘제 5회 청어람 한가위, 판소리 다섯 바탕’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도 6년 째 지켜온 명창과 귀명창의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명창은 판소리를 즐기는 시민들의 실력이 상당하다고 추켜세웠다.

김 명창은 “청어람이 5회째인데 전국에 인간문화재 선생님들 다 와서 깜짝 놀라요. 틀리면 망신당한다고 전국에 입 소문 나서 공연 한달 전부터 연습할 정도입니다. 소리꾼들은 귀명창이 있고, 추임새가 나오고, 진짜 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있는 이런 무대가 필요해요. 또 관객은 TV에 나오는 사람 말고도 숨어있는 명창들을 만날 수 있는 무대를 원하고요. ‘명창과 귀명창의 만남’이라는 원래 꿈꿨던 공연장 분위기가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관객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까닭은 판소리가 함께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정숙한 분위기 속에 공연이 끝나면 일제히 박수를 치는 서양음악과 달리, 판소리는 관중이 흥을 내고 힘을 주며 무대를 같이 만들어 나간다. 김 명창은 이런 점을 판소리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김 명창은 “옛날에는 ‘1고수, 2명창’이라 했는데, 이제는 ‘1청중, 2고수, 3명창’이라 할 만큼 청중이 없는 판소리는 있을 수 없어요. 그만큼 관객의 추임새와 몰입도가 중요하고, 관객이 그 판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 어디에도 관객이 이렇게 직접 음악에 뛰어들어서 더 잘하게 만들고, 흥하게 하는 이런 형식이 없어요. 관객의 추임새가 오롯이 무대에 전달되고 그것이 다시 작품이 되어 나오는 것이 굉장히 큰 매력이죠.”라고 자부했다.

최근에는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을 원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판소리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자 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레슨은 물론, 아마추어들이 참여하는 단체강습에도 항상 대기자가 있을 정도다. 20여 명의 단체강습 수강생들은 춘향전 한 바탕을 다 뗀다는 같은 목적으로 4∼5년 째 꾸준히 달려오고 있다. 판소리의 저변 확대는 이러한 아마추어들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섯 바탕 중에 가장 길고 어려운 바탕인 춘향전을 한바탕 다 뗀다는 것은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아마추어들은 짧게는 4년이 걸리는 분도 있고, 7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도전한다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어요. 우리 음악을 계속 들어보라고 하는데 일단 한번 배우면 더 많이 들려요. 조금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또 배워봐야 정말 귀명창이 될 수가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소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공연 인프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상호작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판소리에 있어 공연 환경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극장 규모가 너무 커서는 안 되고, 울림이 많아서도 안 된다. 이 같은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공연장이 사실상 인천에는 전무하다. 또 명절 연휴에는 공공에서 운영하는 극장을 빌리는 일 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6년 째 이어오는 청어람 공연만 하더라도 매년 극장 대관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김 명창은 “인천에 소극장이 너무 없다 보니 극장 대관이 너무 어려워요. 서양음악이 많은 관중들을 놓고 극장에서 울리게 듣는 것이라면, 우리 음악은 마당이나 사랑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꽂히는 발성이라 오히려 울리면 전달이 안 되거든요. 마이크를 쓰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300석 규모의 언플러그드 극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플러그드 극장에서는 공연하는데 기계를 안써도 되니 돈이 안들고, 관객들도 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어 좋지요.”라고 설명했다.

김 명창을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는 지원과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이뤄지는 지원 사업 역시 지역특성에 맞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사업을 심사할 때 공정성을 위해 외부에서 오다 보니 오히려 인천에 대한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아요. 서울에서는 흔하지만 인천에서는 아닐 수 있고, 인천 지역만의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반영이 잘 안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업을 뽑을 때 참신한 것을 따지는데, 전통에서 참신함이란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고, 소리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이 느끼기에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이죠. 그것이 바로 전통의 매력이고 본질인데 그런 부분 자꾸 무시되는 점이 속상해요 지속적으로 후원해 줄 수 있는 분야들을 선정해서 지원 사업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토로했다.

또 교육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직접 국악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했다.

김 명창은 “지금 학교 음악 교육에서 국악프로테이지가 높아졌는데 아무래도 수업에서는 전달이 잘 안 돼요. 그럴 때는 열 번 설명하는 것 보다 가슴에 꽂히게 한번 들려주는 게 좋죠.. 각 학교에 한번 씩만 들려줘도 그 여파 클 것 같아요. 인천에 예고가 있는데 국악이 없는 점도 아쉬워요. 청소년들이 교육적으로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 넓혔으면 좋겠어요.”라고 목소리를 냈다.

김 명창은 2016년 제24회 임방울국악제에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했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말한다. 매년 여름 한 달씩 홀로 산 속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지난해에는 평생의 꿈이었던 100일 공부도 이뤄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소리만 하는 일상을 100일 내내 보냈다.

김 명창은 “남들보다 모자라니까 하는 것이죠.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는 그게 최고인줄 알았는데, 그 때 한 것을 보니 어찌 그 소리로 큰상을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네요. 여수에서 한 달에 한번 배우러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저 멀리서 오시는 걸 보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지역의 원로 분들께 ‘인천에 날아온 보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공부하면서 부족한 점을 찾고, 채워가는 기쁨을 느끼며 지내고 싶습니다.”라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홍봄 기호일보 기자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육상효 감독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첫 연재이므로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형식을 다듬어갈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영화, 그리고 인천
– 육상효 감독과의 인터뷰

육상효

영화감독,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1994년 단편영화 <슬픈 열대>로 영화를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각본을 썼으며, 각본/각색/감독을 맡은 <방가? 방가!>를 통해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19년 각본/감독을 맡은 <나의 특별한 형제>로 2019년 제3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 2020년 10월 20일, 인하대학교에서 최근 영화촬영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육상효 감독을 만났다. 본 인터뷰는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이루어졌음을 밝혀 둔다.

류: 안녕하세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못하니 자주 뵙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를 승낙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해주시면 어떨지요.

육: 인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간간이 영화를 만드는 육상효입니다. 최근에 영화 한 편을 마무리해서 지금은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류: 촬영하시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제 다 마무리가 되셨군요. 어떤 영화인가요?

육: <휴가>라는 작품이에요. 바로 얼마 전에 완성되었어요.

류: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개봉은 언제인가요?

육: 아직 개봉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코로나 때문에 개봉예정작들이 많이 몰려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 빨리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지금 한 100여 편이 대기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다음 주에 모니터 시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류: 모니터 시사는 어떤 것인가요? 일반적인 시사회는 아닌 것 같군요.

육: 모니터 시사는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시사회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약간 강의평가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영화가 메인 타깃으로 삼은 관객을 임의로 뽑아서 시사회를 갖는 방식이죠. 모니터 시사회를 담당하는 전문 회사가 있어서 거기서 연령대나 지역 등을 고려해서 100명 정도의 인원을 모집합니다. 가령 20대를 타깃으로 하는 영화라면 20대가 더 많게, 이런 식으로 구성돼요. 이 시사회에 오시는 분들은 영화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요. 관계자도 아니도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영화가 좋아서 오시는 분들이죠.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와서 영화를 관람하고 세세하게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류: 들어보니 정말 강의평가와 비슷한 면이 있네요. 익명이고 점수도 부여하고.

육: 이분들의 평가가 개봉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모니터는 5점 만점인데 여기서 4점 이상이 되면 아무래도 관객의 호감도가 높은 거니까 개봉일정을 잡는데 유리하죠. 3점대면 조금 심란해지는 거고요. 예전에는 4점이 넘으면 200만은 보장이라고 말도 있었어요. 강의평가도 4점대가 넘으면 평가가 좋은 거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모니터 시사회에는 가지 않아요. 아무래도 스스로 굉장히 압박을 느낄 만한 자리니까 스텝들이 주로 가지요.

류: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함께 응원합니다. 말씀을 듣고 나니 저까지 긴장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계의 상황도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최근에는 극장을 가본 일이 별로 없어서요.

육: 사실 극장은 코로나에 있어서는 그리 위험한 장소가 아니에요. 방역도 잘 되고 있고, 거리두기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그런데도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오지 않지요. 극장에서 감염된 사례는 전무한데도 말이죠. 요즘에는 넷플릭스에 관객이 다 몰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감독이나 스텝 입장에서는 극장 개봉이 안 되고 넷플릭스로 가게 되면 일종의 월급쟁이가 된 느낌이죠. 극장에 걸리면 관객의 수에 따라 흥행수입도 달라지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아무래도 제작비를 기준으로 계약이 되거든요.

류: 시작부터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그러다 보니 제가 본론도 말씀을 못 드린 것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에 모시게 된 이유는 인천문화재단에서 내는 <인천문화통신>의 기획인터뷰 때문인데요. 인천문화재단과의 인연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주시겠어요?

육: 인천문화재단과의 인연은 인하대로 오면서 시작되었죠. 재단이사직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엔 인천영상위원회가 인천문화재단 내에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영화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재단이사로 필요했던 거죠. 제가 재단이사를 하면서 인천영상위원회 위원장도 4년 정도 맡았어요. 그때부터 재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위원회는 재단에서 독립해서 별도의 기관으로 있어요. 제가 위원장이었을 때도 관련 논의가 많이 나왔었는데 후에 따로 나와서 현재는 독립된 기관으로 규모도 커졌지요.

류: 인천영상위원회에 계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업이나 이슈가 있으셨나요?

육: 하도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팸 투어>인 것 같아요. 이건 요즘도 지역마다 많이 하는 건데, 외부에서 작가나 감독을 초대해서 인천의 여기저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죠. 저도 그때 같이 참여했는데 인천의 구도심이나 항구, 관문 이런 곳들을 소개해주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공간을 보여주면 사람들 기억에 남고, 아무래도 나중에 영화를 찍을 때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저 역시도 영화를 찍을 때 인천에 있는 공간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거든요. 인하대에서도 많이 찍었고요.

류: 공간에 대한 인상을 전달해주는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말씀이 나온 김에 연결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영화적 공간으로서 인천이 가진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은 인천에 바라는 지점이 있다면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육: 인천은 구도심과 신도심이 모두 있는 공간이에요. 제가 영화를 찍을 때 80-90년대 분위기를 나타내고 싶을 때 인천의 구도심을 많이 활용하거든요. 또 외국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는 송도에 있는 공간을 활용했고요. 이 거리가 멀지 않으니까 인천이라는 지역 안에서 촬영이 용이하죠.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세트장 같은 거예요. 부산만 해도 세트장이 꽤 있거든요. 세트가 있으면 아무래도 그곳을 중심으로 영화를 찍게 되니까 산업적인 면에서는 좋지요. 요즘은 파주 같은 곳에도 세트가 많이 생기는 추세고요. 인천은 서울에서 근거리니까 아무래도 더 유리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을 것 같아요. 구도심과 신도심이 공존한다는 점도 영화의 로케이션으로 좋다고 할 수 있고요.

류: 인천시와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인천이라는 공간이 가진 장점이 영화를 통해 많이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있는데요. 감독님께서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 스스로 가장 만족했던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육: 음, 하나를 꼽자면 저에게는 <나의 특별한 형제>인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제가 작업한 다섯 번째 영화인데요. 아무래도 저도 나이가 있는 감독이다 보니까 이 영화를 찍으면서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부터 스텝까지 팀 전체가 다 만족스러웠어요.
이것만이 아니라 외적인 환경도 굉장히 좋았어요. 왜냐하면 <표준노동계약제>의 확립이 된 상태에서 찍은 영화였거든요. 그 전까지는 사실 영화 작업이라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표준노동계약 이후에는 딱 12시간만 작업하게 되었거든요. 그 시간에 정리 시간도 포함되니까 실제 촬영은 11시간 정도죠. 만약 시간이 더 필요할 경우엔 노동자대표와 협의가 되어야 해요. 당연히 스텝들의 임금도 상승되었고요.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죠. 앞으로도 더 좋아질 거라고 예상되고요. 무엇보다 영화촬영을 하면서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촬영기간에도 가족들과의 일상도 가능해졌고, 촬영 끝나고 저녁식사하면서 이야기할 여유도 생겼고요. 그래서인지 <나의 특별한 형제>를 찍을 때, 정말 이것이 ‘즐거움’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류: 영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즐거운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인천문화재단에 대한 생각이나 바라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육: 인천문화재단이 15년이 되었는데,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내부적인 가치에 비해 외부적인 확장성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여전히 인천의 문화를 이끌어간다고 하기엔 대중적인 가치를 확실하게 이끌어내진 못한 것 같아요. 물론 내부에서 여러 사업을 열심히 하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나 교수가 아닌 일반 시민으로서 느끼기엔 다른 광역재단에 비해서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엔 여러 가지 한계들이 있겠죠. 인천시와의 관계라든지 시민들의 관심 부족. 이런 것들이요. 앞으로 인천문화재단이 극복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류: 아무래도 재단의 색깔이 분명해져야 한다는 말씀이신 같습니다.

육: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천문화재단이 어떤 사업을 하느냐, 할 때 확실하게 떠올려지는 것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홍보 문제일 수도 있고 예산 문제일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일반 시민에 어필되는 사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많은 사업을 꾸리는 것도 좋지만 인천과 인천문화재단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좀 더 대중적인 사업들이 꾸려지고, 그 안에서 인천문화재단의 이름이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속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류: 앞으로 재단 안에서 많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대중적 인지도와 정체성 확보에 좀 더 공격적으로 나아가 주길 당부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수연 문학평론가, 인하대 프론티어학부대학 교수




박얼 PARK Earl

박얼은 홍익대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새로운 매체를 위한 디자인을 해오다가 근본적으로 뉴미디어를 구성하는 재료와 기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기계에 대해 느끼는 개인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간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고 있으며, ‘기계적’,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경계를 확장하며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개념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그의 작품에서 기계는 다른 미디어를 창출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주체로서 자리한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 180×180×10cm, 로봇 2종(카메라, 센서, 전자부품 및 리튬 폴리머 배터리 포함), 나무, 2017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시대의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를 통해 인간의 특질들을 모방하거나 이율배반적인 개념들을 연결해 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작품은 주로 키네틱(Kinetic)이나 로보틱(Robotic)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구체적인 작업으로는 관람객의 심장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로봇 <콩닥군>(2011)이나 인간의 신경증과 같은 비합리적 행동을 합리적 알고리듬으로 모사하는 로봇인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2017) 시리즈, 인간다운 걷기 행위를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구현한 <The Walking Man> 시리즈, 구도자의 모습으로 고려대장경을 새기는 로봇 <PITAKA>(2015), 그리고 레이저들이 만들어 내는 움직이는 삼각형의 조합과 사운드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Try Triangle>(2018) 등이 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교 졸업 작품을 만들 때 시간의 레이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보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다. 관객의 모습을 시간 순으로 디스플레이에 겹쳐서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 당시 투명 디스플레이가 없었기 때문에 구현하기 쉽지 않았다. 방법을 찾다가 결국 컴퓨터 모니터를 몇 개를 뜯고 분해하고 고치고 하길 반복해보니, 투명도가 어느 정도는 확보되는 디스플레이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종의 하드웨어 해킹이었는데 필요에 의해 그 과정을 넘어 전자 회로를 찾아보게 되고, 기존의 제품으로는 안돼서 PCB회로기판도 만들어보며, 3D 모델링도 배우고 각기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들도 사용하게 됐다. 이상하게도 하고 싶은 작업마다 필요한 재료나 기술이 다르니, 매번 기술을 배우면서 일종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비슷한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 것 같다. 마냥 즐겁기만 한 프로세스는 아니나 아직까진 즐기고 있다.

콩닥군, 50x60x80cm, 인터렉티브 설치, 전자부품, 센서, 모터, 접촉식 마이크, 서브우퍼 유닛, 폴리카보네이트, 알루미늄, 2011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몇 년 전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며칠간 냄새를 맡지 못한 경험이 있다. 말 그대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신기하다가, 다시 냄새를 못 맡게 되는 것 아닌가 두려운 감정을 느끼다가, 서서히 감정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도, 공포라는 감정의 근원적 이유에 대해서도,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과 인지작용을 통해 뇌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성하고 구축한다. 다른 생명체들이 각기가 가진 신체와 감각기관을 통해 살아가는 유형이나 생활양식이 정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화된 ‘튜링 기계(Turing Machine)’인 것은 아닌가,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과연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 180×180×10cm, 로봇 2종(카메라, 센서, 전자부품 및 리튬 폴리머 배터리 포함), 나무, 2017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은 단순한 논리회로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를 통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신경증’과 같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움직이는 테이블과 자신이 생각하는 영역 밖으로는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알고리듬의 트랩에 갇힌 강박증을 가진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인>은 여러 로봇으로 구성된 작업으로 특정한 집착 대상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애착, 집착증을 가진 로봇의 행동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기계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생물을 관찰하듯 기계의 행동을 관찰하게 되며, 그 과정 자체로 인간과 기계는 새로운 상호관계 속에 설정된다. 최근 인간 두뇌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표면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 행동에도 두뇌 신경학적으로 그 나름의 논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가지고 있던 질문들이 함축되어 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앞으로 계속될 작업이기도 해서 선택하게 됐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90×90×110cm, 인터렉티브 설치, 로봇 1종(센서, 전자부품, PCB 및 리튬폴리머 배터리), 나무, 철, 알루미늄, 네오디뮴 자석, 2017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작업의 영감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여러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가 불현듯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과 결합되는 것 같다. 일상에서 지나가면서 보이는 기계들의 움직임이나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새로운 물질이나 재료들을 많이 찾아보는 편이고, 다큐멘터리,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등의 정보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한 예로 <Try, Triangle>은 천장 모서리를 바라보며 멍하게 집중하며 생각하고 있다가 기계 구조나 방식까지 한 번에 생각이 난 작업이고, 레이저를 거울에 반사시켜 만든 움직이는 삼각형들의 조합과 입체음향 사운드를 경험하는 키네틱-오디오 설치작업으로 발전되었다. 이 작업은 ‘기계’와 ‘명상’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두 개념을 연결하고, 두 개념이 유기적으로 융합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시도이다. 관람자는 그저 공간 안에 서서 바라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공간 안에서 떠 있거나 자신이 움직이거나 다른 곳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주로 동작해야 하는 작품들이 많다 보니 구상한 작업을 기술적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실현되지 못하는 작업도 많이 있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은 펀딩을 받거나 가능한 시점까지 미뤄지곤 한다.

Try Triangle, 6×6×6m, 7채널 사운드시스템, 키네틱-사운드 설치, 9개의 3축 액추에이터 모듈, 레이저, 전반사거울, 헤이즈머신, 2018 (박얼, 사자김, 배정식)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우리는 인간과 기계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가는 특별한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기계들은 더 쉽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인간을 도와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실용적인 부분이나 정서적인 면에서도 유기적 관계를 형성해가고 있다. 또한, 인간의 진화과정 중 포스트 휴먼으로서 인간의 신체 또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계와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기계와 상호작용할 일이 더 많아지는 시대에 인간 중심적 사고 속에서 인간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자, 인간을 비춰보는 거울로써 기계의 가능성을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The Walking Man, 1.2×0.65×2m, 키네틱 설치, 철 프레임, 알루미늄, 황동, 기어, 벨트, 모터, 풍선, 2016
The Walking Man II, 1.1×1.1×2m, 키네틱 설치, 철 프레임, 알루미늄, 황동, 벨트, 기어, 모터, 2018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백남준 작가는 그 시대 사용할 수 있는 온갖 매체(TV, 캠코더, 레이저, 인공위성)를 사용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날수록, 그 기술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폭은 넓어진다. 앞으로 어떤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재료들이 나올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언제나 즐겁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몇 년간은 앞으로 머릿속에 있는 여러 작업을 현실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을 것 같고, 뻔한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색깔이 묻어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PITAKA, 6×6×6m, 뉴미디어설치, 로봇 팔, 아크릴 플레이트, 알루미늄, 철 프레임, LED, 카메라, 제어소프트웨어, 2015 (트랜스미디어랩: 김태윤, 박얼, 윤지현, 양숙현)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www.heartpowder.com




윤제호 YUN Jeho

윤제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테크놀러지과에서 컴퓨터음악작곡 전문사를 취득하였고 소리, 빛과 공간 자체를 언어화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이 상상하는 디지털 세계를 현실 공간에 구현하고 컴퓨터로 디자인된 소리와 빛으로 채운다. 작가는 기존의 틀에 박힌 관람, 청취 방식을 지양하며, 관람객이 공간에 참여하여 촉지적 감각과 함께 의문을 가지게 하고 작품을 실마리로 각자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고 탐색하게 만든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화 되어가는 ‘부유하는 현대인’ 에게 각자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경계를 사유하며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休息洞窟(휴식동굴), 6분 1초, 가변크기, 아크릴릭 큐브, LED 라이트, 무빙 헤드 레이저, 윈치 시스템, 2019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소리와 빛으로 공간에 이야기를 만들고 관람객에게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하여 디지털 시대 속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악기와 전자음악 또는 전자음악과 영상이 결합된 작업을 해오다가, 2015년에 유망예술지원으로 <SOUNDHUE> 라는 이름의 단독 공연을 준비하면서 소리, 빛,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관람객이 느끼는 감각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연과 전시의 경계에 대한 사유가 확장되어 공연과 전시 형태를 구분 짓지 않는 형태의 작업을 이어 가게 되었다.
나는 주로 전시 혹은 퍼포먼스 공간의 형태에 맞추어 작업한다. 공간을 보고 빛과 오브제 형태를 생각한 뒤 소리의 위치를 고민한다. 소프트웨어로 전체적인 공간 구성을 짠 후 실재 공간에서 프로토타입을 설치해보고 전체적인 느낌을 본다. 그 후에는 느낌과 어울리는 소리를 찾고 실험해보며 음악을 만든다. 빛과 영상은 소리에 맞춰 반응하거나 음악의 타임라인에 맞추어 변화된다.

線(선), 6×4×4m, 옵티컬 프로젝션 시스템, 4채널 스크린, 스피커, 의자, 2015(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서울)
Maze Composition(메이즈 컴포지션), 6×4×4m, 옵티컬 프로젝션 시스템, 4채널 스크린, 스피커, 의자, 2015(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서울)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나의 대표 작업/전시는 2019년 작업 <휴식동굴>이다. 서울에서 전시 형태로 진행한 첫 작업이었고, 많은 일반 관람객과 만나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전시는 공연보다 전시 활동이 많아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대인은 디지털 데이터가 떠다니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꺼지거나 온라인과 접속이 끊어진 채 자연으로 돌아갈 때,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디지털 세계에 둘러싸여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에게 ‘쉼’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다른 세계, ‘그곳’에 존재할 것이라는 환상과 맞닿아 있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완벽한 ‘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갈구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0과 1의 디지털 세계를 기꺼이 자연의 구성 요소로 받아들인다면 도시에서도 ‘쉼’을 발견할 수 있고 디지털 기기로 인해 디지털 세상 속에서 정처 없이 부유하는 현대인에 걸맞은 ‘쉼’이 완성될 수 있다. <휴식동굴>은 데이터화되어 존재하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모호해지는 디지털 공간에서 ‘쉼’과 함께 우리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위한 전시였다. 나의 작업을 표현하는 단어는 구분을 짓지 못하는 ‘모호함, 혼재’ 이다.

休息洞窟(휴식동굴), 6분 1초, 가변크기, 아크릴릭 큐브, LED 라이트, 무빙 헤드 레이저, 윈치 시스템, 2019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나는 선생님들, 선후배를 포함한 동료들에게서 작업 영향을 받아오고 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내 주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이나 그들과 작품을 만들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영감을 받는 편이다. 한 예로 원래는 컴퓨터와 빔프로젝터를 이용한 오디오 비주얼 작업을 주로 하다가 2017년에 입주한 경기 창작 센터작가들의 영향으로 오브제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현재의 작품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작업의 원동력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고, 작품의 실재적인 영감은 전시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실재 공간에서 얻는다.

Another space on the wall, 4분 10초, 빔프로젝터, 무빙 헤드 레이저, 2019(문화비축기지 T6, 서울)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작업의 의미는 상상과 고민했던 것들을 실현하는 자체에 있다. 결과의 좋고 나쁨보다 생각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실험이 더 의미가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이 결과물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나는 나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감상하길 바란다.

동굴에서 빛을 만지다, 가변크기, 무빙 헤드 레이저, 아크릴릭 큐브, 윈치, 키넥트 센서, 2019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독특한 장소에서 그 공간과 나의 작업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온전히 결합되는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다양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예술가로서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통해 느낀 감각의 기억들이 잊히지 않는 작업을 제작하고, 그런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은하수 빛으로 병기를 씻다, 7분 3초, 가변크기, 무빙 헤드 레이저, 빔프로젝터, 투명 아크릴릭 큐브, 2019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www.jehoyun.com




지박 JI Park

지박은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과정에서 현대음악을, 홍익대학교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하였다. 클래식을 전공한 후 프리재즈에 매료되었고, 어떤 한 장르에 국한되기보다는 자신만의 필터를 거친 <지박 컨템포러리 시리즈(Ji Park Contemporary Series)>를 통해 다원예술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2014년부터 한국과 유럽, 미국을 오가며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 및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현대무용 음악감독에서부터 영화음악 작곡가, 즉흥 연주자로 전방위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DMZ, 60분, 퍼포먼스,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9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주로 어떤 사건 혹은 경험의 단상을 기억하고 응축하여 음악작업 혹은 작곡으로 표현한다. 음악이 주가 된 공연보다는 비디오아트 혹은 현대무용, 라이브 페인팅 등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지난 7년 동안 17개의 다원예술 작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4년 프랑스 유학 이후, 판소리와 첼로, 비디오아트 등과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나현 안무가가 만든 ‘유빈댄스’ 의 현대무용 음악감독을 맡아 사운드 디자인 및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또한. 2015년 뉴욕 OMI International Arts Center 레지던시 아티스트로 선정된 이후에는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나는 음악 작곡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곡 전체의 흐름과 구성에 대한 스케치를 그려두고 확정 지어놓는다. 곡에서 어떤 악기를 사용할 것인지를 정할 때 어떤 연주자를 섭외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연주자의 장점을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곡을 쓰려고 신경 쓰는 편이다.
곡의 편곡과 솔로 파트 등의 큰 그림을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다 고민하여 정하여 작업한다. 비디오아트 영상을 직접 만들 경우에 한 테마 혹은 패턴의 베리에이션으로 곡의 기승전결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내 작업을 함축하여 표현 할 수 있는 핵심개념은 ‘시계추 이론’이다. 끝과 끝은 통하고 거식증인 사람이 오히려 비만이 될 확률이 높듯, 양극단은 오히려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개념을 매우 많은 실생활에서 대입하여 생각하고 분석하는 편인 것 같다. 음악적으로도 양극단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지만, 이 두 끝은 결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백남준에 관한 스트링퀄텟 음악 작곡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음악 작업은 완전한 현대음악의 기법으로써, 대중적이진 않지만, 스스로 음악에 대해 자유롭게 연구하고 작곡할 예정이다.

<DMZ>앨범 커버_ 2019(실황연주 레코딩 발매)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나의 대표 작업으로는 <Ji Park Contemporary Series Vol.17 – DMZ>(2019)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작업은 2018년 독일에 해외투어를 하러 갔을 때, 베를린 마주한 것에서 시작한다. 베를린 장벽을 실제로 보았을 때, 나는 큰 파도가 휘몰아치는 감정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한국에 돌아가 비무장지대(DMZ)에 직접 가보고,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시기에 우연히 영상작가 이지송에게 국제 시각 예술가 그룹 Nine Dragon Heads & Shuroop과 함께 “DMZ 무경계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받았고,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DMZ 무경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50여 명의 국내외 시각 예술가들이 종일 DMZ 일대를 탐색하며 리서치하기도 하고, 서로의 퍼포먼스를 본 뒤 생각을 나누는 등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이때 매일 다른 국내외 작가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때로는 붕 떠오르는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러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의 경험은 DMZ를 다각적으로 보고 또 느낄 수 있던 기회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스트링퀄텟, 피아노, 모듈러신스&사운드디자인+비디오아트 구성의 음악으로 공연하고 음반을 발매하였다. 나의 세대가 느끼는 DMZ에 대한 단상에 대해 리서치하고 고민한 이 작업은 앞으로 더 발전시켜보고 싶은 프로젝트이기에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다.

<Ji Park Contemporary Series Vol.17 DMZ>, 60분, 퍼포먼스, 인천아트플랫폼, 2019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나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을 나열해보면 코닐리우스 카듀(Cornelius Cardew), 안소니 콜맨(Anthony Coleman),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에그베르토 지스몬티(Egberto Gismonti),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이다.

2019 IAP 콜라보 스테이지 VOL.5 COR3A, 지박, 인천아트플랫폼, 2019

나는 주로 영감을 받기 전에 머릿속을 정리하러 탁 트인 바다에 가서 바다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를 계기로 바다 앞으로 이사 왔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또한 평소에 아주 현대적인 작품들을 접할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무용이든, 새로운 필터와 작품을 발견했을 때 가장 행복하고 거기에서 받는 영감이 가장 크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에게 작업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고, 더불어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나의 작업 방식이나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은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그저 일상 속에서 찾고 많이 느끼려고 노력할 뿐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특별하게 전환할 있다면, 그것은 작품으로 발전될 수 있는 씨앗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 생각의 시점에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내가 의도한 주제 의식은 있지만, 음악과 공연이 만들어지고 그 시간, 공간에서 예술이 지나가 버리면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나조차도 어떤 예술가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때 그 예술가로부터 반드시 전달받은 부분은 없다. 그때 당시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HIdden Dimension>, 음악감독 및 작곡,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2019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올해 현대음악, 얼터너티브, 현대무용 음악,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 그리고 각기 다른 멤버들과의 협업 및 작곡 프로젝트로 음반 5개를 발매할 예정이다.
음악가는 음악으로써 가장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향후 3~4년 동안 음반 작업을 많이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대중음악부터 실험 음악까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예술적 구분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대 예술에 대한 공연이나 음악을 만들 때 관객과 나 사이에 어떤 ‘선’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가끔 그 선으로 인해 지칠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지점이 변화하는 시작점에 대한 고민과 기대가 되기도 한다. 국내의 관객분들이 동시대 음악이나 미술, 무용을 더 많이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시기를 꿈꿔본다. 예술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나도 앞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새로운 필터로 완성도를 높이는 작가, 작곡가, 공연 기획자로 기억되고 싶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무용가, 그 이상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무용가 박혜경(인천문화재단 이사)을 만나다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첫 연재이므로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형식을 다듬어갈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무용가, 그 이상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무용가 박혜경(인천문화재단 이사)을 만나다

류수연

◆ 2020년 9월 14일, 인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박혜경 이사를 만났다. 박혜경 이사는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한 지난 4년은 “무용가, 그 이상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류 : 안녕하세요? 항상 회의 장소에서 뵙다가 이렇게 다른 곳에서 뵈니까 새로운 기분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 : 저를 소개하자면, 과거에는 ‘무용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충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이에 더해 ‘후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언제나 고민하는 선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요즘 들어 계속 고민하는 문제인데, 앞으로 제가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인천문화재단을 통해 컨템퍼러리 외의 다른 분야를 접하면서 점점 이런 고민들이 커진 것 같습니다.

류 : 인천, 그리고 인천문화재단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박 : 사실 저는 해남 출신이고 고등학교는 광주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가장 오래 산 곳은 이곳 인천이죠. 그러니까 인천은 저에게는 사실상의 고향이지요. 제가 인천에 온 계기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생 때 인천 시민의 날 공연에 참여했던 것이 인천과의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류 : 인천과의 인연이 정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군요. 이사님께는 인천이 제2의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박 : 처음 인천에 온 것은 1987년인데 그때는 무용학원 강사였어요. 1989년부터 인천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요. 제가 2005년에 인천무용협회 회장이 되었는데, 그때가 바로 인천문화재단이 출범을 한 때였어요. 그러면서 인천문화재단과의 인연도 시작되었죠. 아무래도 무용협회 회장이니까 재단과 함께 논의할 것들은 많았지만, 당시까지는 그래도 개인 활동가였으니까 재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2017년부터 재단이사가 되면서 더 구체적인 인연이 생겨났어요.

류 : 그렇다면 사실상 재단의 15년 역사는 안팎에서 보신 셈이군요. 그렇다면 인천문화재단 이사로 계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업이나 이슈는 무엇이었나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요?

박 : 재단이사가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아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사로 있으면서 인천문화재단이 진행한 여러 사업들의 면면을 본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일단 저는 무용인이니까 무용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전문 예술가들에게 대한 지원부분에 좀 더 관심이 많았고요.
제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했던 사업들도 이런 영역에 관련이 있어요. 먼저 재단 사업 중에서 예술인 지원을 청년, 중년, 장년으로 구분해서 하는 것이 있어요. 생애 시기별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부분이 좋았습니다. 또 전에 전문 예술인에게 해외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업들도 굉장히 좋았어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니까요.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예술인 복지 관련 사업들도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사업이고, 인천문화재단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업이지요. 이 외에도 ‘트라이 보울’이나 ‘아트플랫폼’의 발전 가능성도 계속 지켜보아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류 : 정체성 문제가 나와서 연결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정체성이라는 결국 재단의 가치나 지향점과 연결되어야 하는 지점일 텐데요. 문화예술계의 종사자로서 생각하는 인천문화재단의 가치는 무엇인지, 혹은 인천문화재단의 지향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박 : 제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재단의 정체성 문제입니다. 인천 내에 문화재단이 인천문화재단 하나밖에 없었던 15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현재 인천에는 부평, 연수, 서구에 구 단위의 지역문화재단이 있어요. 며칠 전에 기사를 보셨겠지만, 중구문화재단의 설립도 발표된 상태이고요. 즉 인천 내에 1개의 광역문화재단과 4개의 지역문화재단이 생긴 거지요. 다른 구에서도 문화재단이 곧 생기리라 추정해볼 수 있고요.
그렇다면 인천문화재단의 성격 역시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바뀔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문화재단과 구분된, 광역문화재단으로서 인천문화재단의 정체성이 강화되어야 생각이 그것이에요. 사실 얼마 전에 <인천문화통신 3.0>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기도 했어요.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요.
저는 무엇보다 일단 생활문화와 예술이 좀 구분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인천문화재단이 그것을 다 이끌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지역문화재단이 생활문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광역문화재단으로서 인천문화재단은 예술가 지원과 같이 전문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 정체성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이야말로 이런 문제를 인천시도, 인천문화재단도 고민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해요.

류 : 저 역시 충분히 숙고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단의 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에는 코로나19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현 단계(코로나19) 상황에서 인천문화재단에 바라는 것이나 제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 : 전반적으로 사업들이 잘 시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아쉬운 것은 언택트가 현실이라고 해서 공연 등에 대한 지원이 정지나 취소되는 부분들이에요. 사실 이 부분은 재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예산의 사용과 관련된 문제일 텐데요. 사실 공연 같은 경우에는 대관에 맞추어진 지원이 많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영상 등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들면 오히려 다른 방식의 언택트 공연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이 공간(박 이사의 사무실)만 해도, 사실 이런 공간을 활용해서도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거든요. 영상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관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탄생할 수 있는 거죠. 기존에서 함께 하기 어려웠던 다른 예술 분야와의 협업도 이루어질 수 있고요. 재단 이런 부분에서 보다 유연하게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좀 더 모색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예술가들도 기존에 할 수 없었던 방식의 공연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내야 할 거고요. 저는 이 상황이 오히려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류 : 인천문화재단의 이사직을 마친 소회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 :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참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사회도 열심히 참석했고 혁신위원회도 참여했지만, 그럼에도 이사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고 많은 일을 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로 미안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스스로는 열심히 참여하려고 노력했어요. 제 연습실이 재단에서 가까웠던 점도 좋았고요.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한 지난 4년은 저 스스로를 많이 성장시킨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와는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좋은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에는 무용, 그 안에서도 컨템퍼러리. 이런 것만 보았는데, 이제는 컨템퍼러리를 넘어 무용 전반을 보게 되고, 또 다른 예술 분야와의 협업도 함께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 무용계에서 좋은 선배로 나아가겠다는 제 다짐을 갖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류 : 마지막으로 재단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박 : 앞에서도 했던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요. 인천문화재단이 광역문화재단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그것입니다. 인천문화재단만의 색깔, 역할. 이런 것에 집중해주실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사실 재단이 일이 굉장히 많고, 그 내부의 직원들이 정말 일당백으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인천문화재단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집중’되면 이런 부분들도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더 전문성을 갖게 되리라 생각해요.

류 :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혜경 이사는 인천문화재단의 창립 초기부터 자문이자 조력자로서 협업했고 4년간 인천문화재단의 이사로 있으면서 재단의 현황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한 박 이사와의 인터뷰에는 재단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진심어린 조언들이 드러났다. 그 진심이 인천의 예술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박혜경(朴慧京, Park Hye Kyung) : 무용가/ Korea Action Dance Company 단장.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 석사. 동덕여자대학교 무용학 박사, 시립인천전문대학 무용과 강사, 인천무용협회 회장, 인천안무가협회 회장, 인하대예술교육원 강사 역임. 인천예총 예술상, 인천시 공연예술부문 문화상 수상.

1)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동네 책방을 열고 가꿔가는 소소한 이야기 – 동네책방 ‘산책’ 대표 홍지연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첫 연재이므로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형식을 다듬어갈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동네 책방을 열고 가꿔가는 소소한 이야기
– 동네책방 ‘산책’ 대표 홍지연

김민재

서점은 국어사전에서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로 정의된다. 서점과 비슷한 말로는 서관, 서림, 책방 등이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집 앞까지 책이 배송되는 요즘, 서점은 사전 의미 그대로 ‘사고-파는’ 역할에만 충실해져 가고 있다.

인천 계양구 계산동 경인교대 인근 주택가에 자리한 서점 ‘책방 산책’은 책도 있지만, 문화가 있고, 사람이 있고, 휴식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가 책과 사람을 만나는 동네 문화 놀이터다. 새벽 1시까지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혼자 읽기 버거운 고전을 함께 읽거나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열어 문화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공간이다.

인천 토박이 홍지연(46) 대표가 단독주택 1층을 개조해 만든 책방 산책은 2016년 11월 문을 연 동네 책방이다. 동네 책방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참고서 판매 중심의 중소형 서점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지역 사회를 근간으로 책 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서점을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작은 서점이란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작게, 낮게, 천천히 가려는 삶의 가치를 담은 개념”이라고 홍 대표는 설명했다.

헌책방 거리가 있는 동구 배다리에서 자란 홍지연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누가 꿈을 물으면 “마흔이 되면 헌책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년시절부터 책과 가까이 지냈던 덕에 대학생 때는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직장에 다닐 때도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 퇴직으로 이어지는 흔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줄임말)’의 삶을 살아가던 홍 대표는 진짜 마흔이 넘어서자 꿈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까맣게 꿈을 잊고 있었는데 계산동으로 이사와 공동 육아를 하고, 어린이·청소년 관련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 모임을 하면서 꿈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책방을 운영하기 위해 여기 저기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홍 대표가 책방을 열기 위해 공공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고, 가족여행 삼아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거리 등 다른 지역의 서점을 다니면서 준비했다. 그런데 정작 다른 동네 책방 주인들이 이런 홍 대표를 말렸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고.’

홍 대표는 청소년 전문 서점을 열고 싶었다. 어린이·청소년 책이 주류를 이뤘으나 학부모들을 위한 책도 들여 놓고 하다 보니 소설과 비문학 등도 서가를 채우기 시작했고,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문을 열고 1년 반 동안은 너무 힘들었죠. 문을 닫으려고 했을 정도니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책을 안 읽는지 몰랐어요. 책방 산책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서가를 거닐면서 조용히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 지은 이름인데 어린이들이 오면서 북적북적 해지고, 이게 책방인지 놀이터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어요.”

홍 대표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생각을 바꿨다. 책방에 손님이 맞추는 게 아니라 책방이 손님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동네 책방의 취지와도 맞는 것이었다. 과연 이 동네에서 책방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온라인 주문에 익숙해 오랫동안 서점을 떠났던 사람들에게 왜 서점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는데 현실을 보니까 요즘 아이들은 택배 아저씨들이 책을 만들어서 오는 줄 알더라고요. 도서관에도 책은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야 좋을지 몰라 1년 6개월 동안은 상당히 많이 고전했어요.”

때마침 비슷한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 지기들이 모여 만든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가 구성됐다. 홍 대표도 여기에 참여해 이런 저런 사정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인천지역에서도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동네 책장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책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모임을 열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동네에 거주하는 역사 선생님을 초청해 연 강의다. 국정 교과서 이슈를 시작으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나눴고, 학생과 학부모 반응이 나름 괜찮았다. 다음은 고전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혼자서는 도저히 완독하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고전 낭독클럽을 열었다. 출판사와 협업해 ‘열하일기’를 10주 가량 낭독했는데 20여 명이나 참여했다.

“열하일기를 낭독하는 날 하필 천정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적이 있었는데 한 명이라도 오면 행사를 열자는 생각이었지만, 참석자들이 옷이 흠뻑 젖은 채로 와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 동네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주로 야간까지 문을 열고, 주말에도 행사를 했어요.”

책방 산책의 최대 히트작은 ‘심야 책방’ 프로그램이다. 여름 밤 무더위에 잠도 오지 않고, 집집 마다 에어컨을 틀어놓을 필요 없이 서점에서 책을 읽을 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집에서 책을 가져와도 되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어도 되는 방식이다. 원래 밤 11시까지 열려고 했는데 참가자들이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 아이들만 먼저 집으로 들여보내고, 새벽 1시까지 운영시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사실 작가와의 만남도 좋지만, 스스로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아이들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책을 읽는 재미도 느끼고, 서로 이 책을 왜 선정했는지와 읽고 나서 느낀 소감 등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기도 했어요.”

책방 산책은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온라인 프로그램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 중이지만, 어려움이 예상된다. 동네 문화공간으로 자리했지만, 서점 본연의 기능인 책 판매가 없이는 운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고 도서 등의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는 도서정가제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동네 책방의 경쟁력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현금 할인 10%와 마일리지 적립 5%까지만 허용하고 있는데 할인율이 높아지면 온라인·대형 서점과의 할인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책이 덤핑과 할인으로 각인돼버리고, ‘적정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우리 같은 동네 책방은 고사할지도 몰라요. 이미 온라인 서점의 무료배송이 사실상 할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후퇴하게 되는 셈이에요. 책은 옷과 신발 보다 종류가 많아요. 박리다매로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서점 뿐 아니라 출판업계도 타격이 클 거에요.”

홍지연씨의 목표는 책방산책 2호점을 내는 것이다. 지금은 주택가에 있지만, 인근의 경인교대 학생들을 위한 작은 서점을 내고 싶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비어 있는 캠퍼스에 다시 새내기들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지금 책방은 주민들의 놀이터로 남겨두고, 교대 앞으로 가서 청년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청년들이 책을 읽고 꿈을 키우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동네 책방 운영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기존의 독자를 나눠 갖는 게 아니라 독자를 확장해 나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운영한다면 동네 책방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해요. 저도 경험 했듯이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만류가 심할 테지만, 꼭 혼자가 아니어도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프라인 서점에는 온라인 서점이 AI로 취향을 분석해서 책을 추천하는 것과 달리 책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들춰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니까요.”

책방 산책은 인천 계양구 계산동 향교로 5번길 23에 있다. 인천지하철 1호선 경인교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 동네책방이 궁금하신 분들의 방문을 권한다.

1) <경인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