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도약하는 문화도시 연수 – 임고은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도약하는 문화도시 연수임고은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임고은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 약력

2004년 인천연구원이 잠시 송도에 머물던 시절, <인천문화지표 조사연구>의 연구보조원으로 처음 인천에, 연수구에 왔다. 이후 인천문화재단에 근무하며 <인천문화통신>을 창간하고 <인천문화지표 조사연구>, <인천문화예술연감> 발간 등 인천의 문화정책 연구사업 및 문화사업을 담당해왔다. 2008년 연수구로 이사한 후,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으로 활약하다 2011년 <연수구 문화도시 중장기 발전계획 연구>를 계기로 연수구청 문화체육과에서 근무하며 연수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2020년 연수문화재단 사무국장을 거쳐 올 3월부터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으로 근무 중이다.

임고은 센터장을 만나기에 앞서 그의 약력을 먼저 보았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으로 활약”하다 연구를 계기로 연수구청과 인연을 맺으며 현재 문화도시센터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그의 이력 속에서 그가 겪었을 고뇌와 함께,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열정을 볼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뇌를 함께해왔던 든든한 동지를 얻은 것처럼 반갑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연수구가 키운 여성 인재”

이것은 임고은 센터장을 설명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인 것 같다. 그는 대학원생 시절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진행된 인천문화지표연구의 보조원으로서 인천과의 인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인천문화재단에 입사했고, 인천의 문화정책 연구사업 및 문화사업의 담당자가 되었다. 본 인터뷰의 지면인 <인천문화통신>의 창간을 직접 담당하기도 했기에 그 감회가 새로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고비 없는 인생은 없다 했던가? 다른 기관에 비해 비교적 여성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탄탄했던 인천문화재단에서 근무했음에도 육아에 따른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그는 자신의 경력을 내려놓는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십 수 년 전의 사회적 인프라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비록 육아로 인해 스스로 경력을 내려놓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인천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연수구 문화도시 중장기 계획에 참여하면서 다시 문화기획자로서의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육아와 병행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차 연수구의 활기차고 도전적인 정책과 분위기 속에서 점차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인재에게 개방적인 연수구의 진취적이고 문화적인 분위기 덕이 크다고 강조했다.

(제공: 연수문화재단)

(제공: 연수문화재단)

“문화로 잇고 채우는 동행 도시 연수”

그는 현재 연수구의 가장 큰 과제는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이라고 말한다. 특히 두 지역이 따로 떨어져 교량으로만 연결된 구조라서 다른 지역보다 지리상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연수문화도시센터가 내세우고 있는 “문화로 잇고 채우는 동행 도시 연수”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원도심과 신도심 사이의 ‘차이’에 대한 긍정이면서, 그것을 통해 어떻게 서로를 잇고 채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은 바로 ‘문화다양성’이다. 연수구는 인천 내에서도 일찍부터 문화다양성의 문제가 구정의 중심에 놓여 있던 곳이다. 이제는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고려인·러시아·우즈베키스탄 이주민들이 원주민과 함께 어울려 사는 ‘함박마을’을 필두로, 송도유원지 자동차 매매단지의 중동·중남미 이주민을 비롯해 국제도시인 송도 신도시에는 정말 다양한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이 하나의 공동 생활권을 이루어 살아가고,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는 연수구를 그 어떤 도시보다 열린 행정으로 이끌어왔다. 서로 다른 인종·국적·종교·이념을 가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좋은 매개는 문화라는 점에서 연수구가 문화정책에 강점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연수구는 그 자체로 시민들의 요구를 통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임고은 센터장은 문화도시로서 연수구의 강점을 이렇게 말한다. 잘 알고 있는 대로 연수구의 원도심은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곳이다. 매립지였던 곳에 1990년대 중반 대규모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연수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계획도시인 신도시 초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적 인프라를 조성해 가는 과정이었다. 새롭게 도시로 이주해온 시민들의 요구가 구의 행정 전반을 바꾸어 온 것이다. 그러한 시민력이 현재 연수구의 원도심을 만들어온 요체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연수구 원도심 내에 있는 여러 종합사회복지관들이 지역민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 연수·세화·선학 종합사회복지관이 연수구의 역사와 함께 하며 주민과 함께하는 열정적인 프로그램들을 이끌어왔고, 새로 생긴 함박 종합사회복지관은 함박마을의 재생적 문화다양성 노력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문화도시의 진정한 동력이 결국 지역민의 시민력에 있다는 점에서 연수구는 이미 그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제공: 연수문화재단)

(제공: 연수문화재단)

“지역의 문화정책 패러다임과 매커니즘을 바꾸는 성과로서의 문화자치”

임 센터장은 연수문화재단의 문화도시 사업 추진 성과를 이렇게 정리한다. 2020년 설립된 기초문화재단인 연수문화재단은 연수구가 가진 문화적 자생력을 연결하는 허브이자 거점으로서 문화도시 연수의 가치와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현재 연수문화재단의 사업 중 돋보이는 것은 바로 레지던시인 ‘아트플러그 연수’ 개관과 ‘꿈꾸는 예술터’ 사업이다.

얼마 전 ‘아트플러그 연수’는 정규1기 작가 모집을 마쳤고, 현재 프리뷰 전시가 진행 중이다. 연수구에 자리 잡고 있는 가천대학교 가천학원이 10년 간 건물을 무료로 임대해 주면서 레지던시가 성공적으로 개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어린이·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인 ‘꿈꾸는 예술터’가 리모델링을 예정하고 있다. 이것은 연수구에 사는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가장 현장의 예술을 접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수구는 또한 지속적으로 연수구 곳곳의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계획도시인 만큼 연수구는 인천 내에서도 가장 많은 공원을 가지고 있는 구이다. 그러한 곳곳의 공원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토요문화마당’은 지역민과 문화재단이 함께 만드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코로나 방역 지침이 변화함에 따라 잠정적으로는 ‘굿바이 코로나’를 선언할 수 있는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업이 주민들의 자치를 통해 이루어지고, 거기에 따른 예산 또한 주민자치에 기대어 편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수구 주민참여예산 안에 문화도시분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한 강점이다. 주민자치를 통해 문화도시 사업을 발굴하고 그것을 예산에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연수문화재단과 문화도시센터가 주민들과의 밀착도와 애정 면에서 최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물론 하나의 사업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임은 분명하다. 문화적 니즈에 대한 생각 차이가 늘 현장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딪치고 논쟁하는 시간들이야말로 연수를 가장 연수답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송도도 변화해야죠. 현재의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아젠다에 예술자유구역이라는 가치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연수문화재단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신도시 송도에 문화적인 저변을 넓혀가는 일이다. 사실 송도는 경제논리에 몰두해서 개발된 도시이다. 국제도시와 스마트도시라는 가치에 맞추어 고층건물과 대규모 전시관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까지도 문화적으로는 척박한 상황이다. 실제로 인천아트센터와 트라이보울 빼고 송도를 기억할 만한 문화적 공간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일상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공원이 시민들의 문화적 요구를 모두 채워줄 수 없다. 더구나 국제도시라는 네이밍은 경제자유구역이라는 가치만으로는 충족되기 어렵다. 따라서 임 센터장은 그에 걸맞은 문화콘텐츠들이 절실함을 역설한다.

현재 연수문화도시센터가 새롭게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이라고 한다. 모든 신도시는 필연적으로 언젠가 구도시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한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이다. 현재의 연수구 원도심은 그것을 성취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리고 이제 송도에도 그러한 노력들이 더욱 요구된다. 고층건물뿐인 도시가 아니라 그 사이 사이에 사람과 문화가 숨 쉬는 도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송도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송도에는 공항과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항만과 여객터미널, 크루즈터미널 등이 같이 존재한다. 이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에 있어서도 엄청난 강점이다. 국내외 예술가들이 가장 쉽고 편리하게 모여들 수 있는 제반조건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통상의 편의를 최대한 이용해서 임 센터장은 송도가 혁신적인 예술이 가능한 도시로 전환되기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예술가들에게 규제를 최대한 완화하고 지원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송도에서는 1년 내내 최첨단의 새로운 예술들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술자유구역 송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신도시의 롤모델이 될 연수구를 꿈꿉니다.”

임 센터장에게 마지막 포부를 물었다. 그는 연수구가 대한민국 모든 신도시의 롤모델이 되기를 꿈꾼다고 답하였다. 연수구는 구 전체가 ‘신도시’에서 시작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획도시로서 모든 신도시가 가진 장단점을 끌어안고 발전한 도시이며, 그것으로부터 스스로 가치를 발굴해온 도시이다. 그러므로 연수구가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일은, 결국 다른 대한민국 도시들과 그 문화적 대안을 나누는 일이 될 것이라고 그는 역설하였다.

‘문화’는 그대로 ‘삶’이다. 그것은 계획만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가치이다. 연수구는 지역민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가장 자생적으로 문화도시의 가치를 일구어낸 도시이며, 그 안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고 있다. 이 당연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는 담당자에게서 그보다 큰 열정을 발견하는 것은 기쁘고 든든한 일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꿈을 실천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는 임고은 센터장의 포부를 응원한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재즈의 영혼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최윤미 재즈피아니스트 (한국 New York Art Production(주) 대표)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재즈의 영혼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최윤미 재즈피아니스트 (한국 New York Art Production(주) 대표)

장지혜 (인천일보 기자)

최윤미 프로필

현, 한국 New York Art Production(주) 대표

현, 한국 미래재즈협회 회장

현, 미국 Velcanto Opera Inc. Jazz Department 음악 감독

현, 뉴욕 Girl behind the curtain Production Musical 음악감독

전, 그래미어워드 보컬리스트 Concha Buika 음악감독

전, 뉴욕 Aaron Theatre Production 음악감독

숙명여대 학사

Prince Claus Conservatory 학사

Queens College 석사

인천문화재단 시민문화협의회 의원

네덜란드 2014 Leiden International Jazz award 1위

이탈리아 2017년 국제 Virtual Jazz 콩쿨 4위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칼 한쪽에 정열의 코르사주를 단 그녀. 최윤미 재즈 피아니스트의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연주가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마치 한순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듯 빈틈없는 주법이 여백을 채운다. 3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최윤미는 인천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다. 클래식 피아노 신동이었던 그가 어떻게 지금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세계 유명 무대를 휩쓸게 됐을까. 얼마 전 미국에서 귀국해 지금은 인천 청라에 거주하고 있는 그를 만나 그동안의 예술 여정을 들어봤다.

처음엔 엄마가 시켜서, 지금은 내 인생 그 자체

“엄마가 어느 날 피아노와 관련된 꿈을 꿨대요. 그때부터 ‘윤미야 너 피아노 해야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냥 그렇게 모든 게 시작됐죠.”

최 씨에게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뭣도 모르고 출발한 피아노이지만 그에게 소질이 있었다. 좋은 성적으로 인천예고와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 뒤 그에게 혼돈이 찾아왔다.

“졸업하고 나니 ‘잘 될 거야’라는 엄마의 격려가 ‘이제 돈 벌어야지’라는 쪽으로 바뀌더군요. 피아노로 어떻게 돈을 버나 생각하다가 피아노 학원 강사를 알아봤는데 20년 전 당시 일주일에 나흘 일하고 받는 월급이 70만원이었어요. 너무 적었죠.”

최윤미 재즈 피아니스트
(사진: 장지혜 기자)

연주회에서의 모습
(사진: 최윤미 제공)

클래식밖에 몰랐던 그녀가 실용음악에 발을 들인 건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할 때였다. “드럼이나 기타를 치는 다른 분들이 나와 리듬이 다르더라고요. 그 리듬을 알려고 실용음악을 배웠어요.”

실용음악 학원에서 재즈 기법을 알게 되면서 최 씨는 재즈의 자유로움에 매료됐다. 언제나 다양했고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이었다.

“클래식은요 하나라도 틀리면 전체가 오류인 거에요. 하지만 재즈는 다르죠. 코드 안에서라면 자유로워요. 틀린 음으로 변형할 수 있고 순발력을 발휘하면 틀린 게 아니라 다채로운 거거든요.”

재즈를 만난 그의 연주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커진 스펙트럼 안에서 그 역시 자유자재로 유영했다.

세계적 재즈 아티스트의 탄생

그는 어느 날 네덜란드로 떠났다. 더 넓을 가능성,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자 유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네덜란드 음악 학교에서 더 깊이 있는 재즈 피아노를 공부했죠.”

2학년이 되던 해 그는 자칫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한다. 창작곡으로 데모를 만들어 유럽 전역의 재즈 페스티벌 관계자를 찾아 이메일을 일일이 보낸 것이다.

“웹사이트에서 프로그래머 메일 주소를 검색하고 데모를 보냈죠. 100개였어요. 그 개수가.”

100명 중 90명은 메일 자체를 읽지 않았다. 10명이 읽었고 그중 2명이 답장을 보내 연주해 달라고 했다. 단 2건을 시작으로 조금씩 관계를 넓혀가는 방식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많은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니 제 열정과 실력을 알아주는 곳이 생겼죠.”

이 모든 게 네덜란드 학교 재학 중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최 씨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 과정을 밟는다.

이후 최윤미 트리오를 결성한 그는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러시아 한국, 미국, 이탈리아에서 300회 이상 활발한 연주를 하는 명실공히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엔 ‘Netherlands Leiden’ 국제 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인천 Wave Jazz 페스티벌, 울산 재즈페스티벌, 북촌 음악 축제, 춘천 아트페스티벌 등에 초청받아 음악적인 발판을 넓혔다.

“미국에서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발탁된 것은 저의 음악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어요.”

2015년 미국 ‘타임스퀘어 Swing 46’에서 진행하는 ‘Girl Behind the Curtian’ 프로듀서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발탁되는 성과가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드문 사례일 뿐 아니라 아무런 연고나 발판이 없던 그가 스스로 일궈낸 결실이었다.

이후 2019년 그래미 어워드 보컬리스트 ‘Concha Buika’의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감독으로 선정되며 카네기홀, ‘New Port Jazz festival’, ‘Red Sea Jazz festival’, ‘NYC Summer stage’, ‘SF Jazz center’, ‘Coliseu Theater’ 등 세계 유명 음악 공연장과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하는 등으로 국제적 활약을 하고 있다.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모습
(사진: 최윤미 제공)

뉴욕 섬머 스테이지에서
(사진: 최윤미 제공)

아무도 못 말리는 예술혼

‘신들린 듯 고풍스러운 연주.’ 최윤미의 재즈 연주는 흔히 이렇게 평가된다. 막상 피아노 앞에 앉으면 오로지 본인과 음악만 존재한다는 그가 가장 아끼는 무대는 관객 50명 안팎의 작은 무대다.

“관객들의 표정이나 움직이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보이거든요. 그들과 호흡하며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몰두하다 보면 관객들도 어느새 저와 같은 세상에 들어와 있죠.”

작곡도 하는 그는 여행하거나 예술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음악가들의 곡을 들으면 머릿속도 활발해지죠. 여러 악기가 가상의 공간에서 합주하며 악상이 떠올라요. 그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피아노에 앉아서 곡으로 옮기는 것이죠.”

2021년에 발매한 ‘7 days’ 정규 앨범은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인간이 저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감동하며 곡을 쓰기 시작했고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 7일을 가지고 7개의 곡을 만들 수 있었어요.”

재즈의 영혼 시민들과 공유했으면

한국에 들어와 그는 서울에 뉴욕아트프로덕션이라는 기획사를 차렸다. 여러 뮤지션과 공연을 기획하고 그가 리더로 있는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장르도 왈츠, 가곡, 클래식, 재즈로 여러 가지다. 솔로로 혹은 그룹으로 그는 서울과 인천, 전국을 오가며 종횡무진 한다. 특히 재즈의 일상화를 위해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재즈가 원래 미국의 금주령 시절부터 시작해 자유를 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장르였죠. 하지만 점점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바뀌더니 우리나라에 특히 쉽지 않은 형식으로 알려졌어요.”

최 씨는 쉬운 재즈, 누구나 노래하는 재즈를 주창한다. 바로 기본 스윙재즈다.

“인천 청라에서 스윙 댄스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반나절 누구나 스윙재즈를 익히고 어둑해질 무렵에 모두 나와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죠. 이렇게 새로운 문화를 인천에서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최 씨의 꿈이 인천에서 오롯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진행/글 장지혜 (인천일보 기자)




지역민과 호흡하는 문화, 도시 서구: 박희제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지역민과 호흡하는 문화, 도시 서구박희제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박희제 센터장 소개

1989년 사회 첫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하면서 정년을 맞을 때까지 32년간 한 직종의 외길을 걸었다. 국회, 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에 이어 1994년부터 인천에서 인천대학교 시립화,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투쟁, 북구청 세도사건, 인천국제공항 개항, 경제자유구역 지정, 인천 신항 개항, 도시재개발 및 도시재생사업 등 수많은 현장을 취재해 인천 성장의 기록자이자 산증인이다. 인천서구문화재단 이사(전), 인천교통공사 이사(현), 인천언론인클럽 회장(현) 등을 맡았고, 제38회 인천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인천의 문화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인천문화를 대표하는 인천문화재단은 새 수장을 맞이했고, 새로운 문화도시가 탄생했으며, 여러 자치구에 기초문화재단이 각자의 비전으로 시민을 위한 문화적 토대를 놓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인천서구문화재단의 변화는 더욱 눈여겨 볼만하다.

최근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새로운 비전에 닿을 올렸다. 박희제 센터장을 새로운 리더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인천 문화계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전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는, 이미 ‘인천통’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기사는 오랜 시간 동안 인천 구석구석의 문화 소식과 그 숨은 의미를 전달해주었다. 그런 그가 이제 문화도시 서구를 일구어낼 새로운 리더십의 일원으로 합류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박희제 센터장과 문화도시센터 직원들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박희제 센터장)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제2의 고향 인천, 그리고 섬

박희제 센터장이 인천과 처음 마주한 시기는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과 무작정 떠난 여행지가 바로 작약도. 그때부터 인천의 섬이 가진 매력에 빠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인천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가 인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인천의 노동운동과 관련된 책들을 독파하면서 새롭게 마주한 인천은, 그에게 그대로 일종의 로망이 되었다고 한다. 1989년 기자가 된 후 인천에 자원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섬 여행을 즐긴다는 박 센터장은 인천의 귀한 보배인 섬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낙원으로 되려면 생태와 문화적 요소와 더욱 잘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사례로서 일본의 나오시마를 예로 들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이다. 오래된 섬의 가옥들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그러한 적극적인 문화적 접근이, 인천의 섬에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가령 덕적도의 서포리 해수욕장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섬임에도 그 문화적 가치가 경제성이라는 원칙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했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긴 안목으로 이끌어나갈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지역의 특색 없이 획일화될 수 있습니다.”

예비문화도시 서구를 본격적인 문화도시로 성장시킬 아젠다로 그가 내세우는 것은, ‘지역문화의 주체성’이다. 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성공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함에도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지역 특색은 사라진 채 비슷비슷한 도시들이 넘쳐난다. 인천 서구 역시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서구에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서구만의 독특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시민력’이다. 무엇보다 원도심에서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키워 온 문화력의 역사가 길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3동의 경우이다. 주민들이 직접 벽화를 그리고, 화분을 심으며 디자인거리를 만들었다. 폐공장을 문화복합공간으로 재생시킨 ‘코스모40’과 함께 민(民)의 힘이 관(官)을 움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서구는 인천의 다른 도시에 비해 지역민과 밀착된 문화 활동이 잘 활성화 되어 있는 편이다. 여기에는 문화충전소의 영향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거점공간으로 모델링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도심 문화재생 상생마을 – 문화더하기 회복나누기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문화공간 네트워크 활동 모습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혹시 이음카드가 서구에서 시작된 것을 아시나요?”

서구만의 자랑거리를 묻자 그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1820년대 협동조합운동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엔의 노동바우처에서 기원한 지역화폐는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는 익숙한 개념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면서 가입자와 사용처 모두 급증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 전자화폐를 인천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 바로 서구였다. 그것은 ‘서로 이음’이었는데 그것이 인천이음카드 사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서구민들의 염원이 적극적인 실행력을 보였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서구의 오랜 노력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서구는 오랜 시간 동안 환경적인 문제로 골치를 썩었던 도시였다. 쓰레기매립지와 소각장, 화력발전소, 주물공장 등 오염시설이 전국 최고로 몰려 있어 ‘환경재앙도시’로 불렸다. 이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이에 서구가 내세운 것은 스마트 에코시티와 문화도시를 결합시키는 청사진이었다.

도심의 자투리 공간을 친환경적 포켓으로 활용하는 에코정원은 작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주도하려는 서구의 시각이 담겨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민간 거버넌스에서 출발했고, 지자체의 행정이 그것을 도왔다. 이처럼 서구의 변화가 민관 협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 성장 방향에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주민참여생태공감프로젝트 – 문화이음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생태적 삶 시민조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회색도시가 녹색도시로

문화도시로서 인천 서구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역시 여기에 있다. 현재 서구가 내세우는 도시의 키워드는 ‘회복’과 ‘탄력’이다. 사실 이것만큼 서구와 잘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서구의 이미지는 회색도시였다. 그러나 현재 서구의 이미지는 달라지고 있다. 오랜 회색도시는 새로운 녹색도시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가 지역민들의 주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서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이라고 본다. 결국 문화도시의 비전은 시민들의 문화적 주체성을 일상(생활)에서 풀어내는 것,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캠페인 및 펀드레이징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서곶시민살롱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서구를 움직이는 103개의 거점에 주목하라

센터장으로 취임한 지 10일 남짓, 그는 현장을 다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서구에는 103개의 문화충전소가 있는데 그 가운데 58개를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20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도서관과 문화기획사업이 결합된 가정동의 <사도들교회>, 복합문화공간 <비움>, 10년간 주민들과 호흡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구 민중의 집> 등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2013년 문을 연 <서구 민중의 집>을 주민자치가 진화해온 좋은 사례로 꼽았다. 목재단지 주변의 동네 특성을 살려 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맞벌이 자녀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회원들이 취미로 시작한 DIY 가구 만들기 동호회가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서구에는 이러한 지역문화의 거점이 103개나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구의 문화적 동력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에너지가 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만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문화다양성 기획학교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시민정책 공론장 <데모스 정서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예비’가 아닌 진짜 문화도시로의 발돋움

신임 박희제 센터장에게 인터뷰의 마지막이자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문화도시 선정에서 서구가 고배를 마시게 된 원인을 어떻게 극복하고 문화도시로의 마지막 도전장을 내밀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었다.

박 센터장은 부임한 이후 서구의 중요 거점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 그간 그는 문화에 대한 동경이 컸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친문화적 감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고 했다. 그런데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더 많은 예술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구상하고 일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머릿속 구상이 현장의 역량과 잘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을 보강 중인데, 무엇보다 타성이 젖은 듯한 모습부터 고쳐나가는 과정이 그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내부의 자체적 동력을 존중하면서도 외부 조력에도 열려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박 센터장 자신이 때로는 창으로 때로는 방패로, 바로 이 공간을 준비하고 채워 나가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피력했다.

서구청년솔루션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지역문화자원활용실험단-콘텐츠실험(모노크롬)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어떻게 역량을 최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문화도시의 구호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조직 내부에 과부화가 걸리지 않게 조절하면서 지역의 민간과 협업하는 상생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단 역량으로만 감당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거버넌스로 슬기롭게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는 결국 사람이다. 문화도시의 이상 역시 결국 사람을 그 중심에 둘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새로 부임한 서구 문화도시센터 박희제 센터장을 중심으로 사람과 함께 성장할 문화도시 서구의 꿈과 도약을 응원하고 싶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할 말이 많은 도시 인천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다”: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할 말이 많은 도시 인천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다”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경인일보 박현주(朴賢珠) 정치부 기자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그동안 인천이라고 하면 부평역 지하상가 정도만 떠올렸죠.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인천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 도시는 참 할 말이 많은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손다혜(30) 영화감독은 인천에서 독립영화 제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기록을 보여주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손 감독은 “많은 사람이 현상을 담은 뉴스가 객관적인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뉴스도 제작자의 견해가 들어가듯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그렇다.”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실을 나열하고, 제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시 어떻게 조합해서 만들지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인천 고택, 30일 간의 기록 –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제4회 더줌 다큐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2019년 시청자미디어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역 문화와 역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룬 ‘시민영상 아카이브 인천’의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서울에서 방송과 드라마 편집, 편성 업무를 맡았던 손 감독이 잠시 일을 쉬던 시기 우연하게 알게 된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징용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이 있다”는 해설로 시작한다. 영화 소재가 된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본 군수공장 ‘미쓰비시제강’에 징용된 노동자 숙소다.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해 서울과 인천항을 잇는 부평에 군수품을 생산하는 인천육군조병창을 만들었다. 이어 일본의 군수공장 중 하나인 미쓰비시제강도 이곳으로 오게 됐다.
“과거 미쓰비시제강이 있었던 부평공원에는 인천육군조병창과 미쓰비시제강에 강제 노역된 노동자들을 기린 ‘징용 노동자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픔이 서린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루고 싶었어요.”

영화는 미쓰비시 줄사택에서 살았던 주민과 전문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한 주민은 “미쓰비시 줄사택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을 빨리 떠나는 게 목표였다”면서도 “과거가 있어야 현대가 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근대 문화를 자꾸만 없애면 현대는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영화 속 인물의 말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둡고 아픈 역사의 증거’라는 가치를 가지면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미쓰비시 줄사택. 이 고택의 쉽게 헐릴 수 없는 운명을 짚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인천이라는 도시에 관심을 두고 정착하기로 했다는 게 손 감독 얘기다.

“경상남도 밀양과 경기도 평택, 안성, 일산 등 여러 곳에 살다가 2017년부터 서울로 출퇴근하기 위해 인천에 오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 도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손 감독은 이듬해 2019년에는 CJ나눔재단이 지원하는 한부모 자조모임 프로젝트 일환인 영화 ‘드림 캐쳐(감독·옥승희)’의 각본·구성을 맡기도 했다. ‘드림 캐쳐’는 나쁜 꿈은 걸러내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장신구 이름이다. 그는 청소년 시기 아이를 낳은 8명의 한부모와 유대 관계를 형성해 그동안 어디에도 쉽게 터놓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 과정에 더 많은 의의가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찼을 한부모들은 편견과 혐오라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항상 위축돼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한부모들이 많은 관객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의 부모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값진 의미가 있었다고 손 감독은 설명했다.

“영화에 출연한 한부모들은 영화 상영 이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아이 엄마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그동안 내가 한부모라는 사실을 밝히면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은 관성이 컸을 테니까요. 그러나 많은 관객이 이들과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한부모들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부모들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뿌듯하고 기쁜 성과가 있을까요.”

손 감독은 낯설었던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영화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현재 지역 영화인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20년부터 인천 영화인들이 모인 사단법인 인천독립영화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 발족한 인천독립영화협회는 인천 지역 독립 영화인에게 필요한 인적 자원은 물론, 교육·사업 등을 연계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활동하던 독립영화 감독들이 “다 같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한 것이 인천독립영화를 조직한 계기였다. 올해는 인천독립영화협회가 매년 열고 있는 ‘인천독립영화제’가 10회를 맞이하면서 이전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천독립영화제는 인천 영화인을 발굴하고, 주민에게 독립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 수가 늘었고,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감독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 감독은 올해 8월 열리는 인천독립영화제 주제를 ‘지나온 10년, 나아갈 10년’으로 잡고, 인천의 독립영화가 성장한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인천독립영화제가 인천 영화인과 시민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인천의 예술 축제’로 확장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지난 10년간 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 중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시 살펴보고 인천과 인천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이뿐만 아니라, 인천의 독립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인천 독립영화와 함께 성장한 만큼,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손 감독은 지역 영화인과 함께 인천만의 ‘영상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영화인이 영화 제작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더라도 인천에서 독립영화를 만들고, 상영하고, 배급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천에서도 영화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천독립영화협회가 그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상업영화에서 흥행이라는 요소 때문에 배제될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오롯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독립영화만이 갖는 매력 아닐까요. 지역 영화인이 제작한 독립영화를 통해 그동안 관객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인천만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정치부 기자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나직하지만 단단하게: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이종구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나직하지만 단단하게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이종구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이종구 李鍾九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동산고 교사를 거쳐 지난해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임술년> 그룹전, <지평전> 등에서 활동하였고,  <민중미술 15년>(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리얼리즘>(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출품했다. 1980년대부터 피폐해 가는 농촌현실과 민족현실에 주목하며 우리의 삶을 주제로 작업해 오고 있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가나미술상, 우현예술상을, 그리고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공공미술관과 한국은행, 청와대 등 공공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종구 교수를 수식하는 말은 ‘국내 및 인천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제 그를 호명해왔던 이 수식어 뒤에 또 다른 수사가 더해질 것 같다. 바로 그가 제7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오랫동안 지역 예술계의 멘토로 자리매김해 왔던 만큼, 인천문화예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할 일꾼으로서 그에게 거는 지역 예술계의 기대 역시 크다.

인터뷰를 위해 부평구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로 향하면서,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확고한 자기 세계를 가진 예술가에 대한 존경과 인천 문화예술의 미래를 일구어낼 광역문화재단 신임 대표이사로서의 포부. 어느 쪽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정된 지면을 고려하면서, 필자가 선택한 방향은 후자였다. 화가이자 교수로서 그의 삶은 이미 『인천을 감각하는 8인의 대화』(인천문화재단, 2020)에 어느 정도 담긴 만큼, 이번 만남에서는 신임 대표이사로서 그의 비전과 포부를 담아내는 것이 보다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천문화재단 제7대 이종구 대표이사 취임식(2022년 2월 28일)

인천’ 작가를 키우는 시스템으로

이종구 대표이사가 가장 먼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인재’ 그 자체였다. 그는 문화예술사업 및 지원에서 보다 고려되어야 할 것은 지역작가의 육성이라 강조했다. 지역작가는 있지만 지역미술(혹은 지역예술)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동시대와 호흡해야 하며 거기엔 지역이라는 경계는 없다고, 그는 말한다. 오늘의 인천에서 생산되고 호흡하는 미술이 서울이나 부산과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예술을 지역의 명칭으로 한정하는 것은, 자칫 폐쇄적인 성격의 향토예술로 전락해버리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사회적, 예술적 탐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역작가의 육성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3년 차 작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이제 막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인천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원금을 주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젊은 작가들이 인천에 와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원금의 액수와 규모를 확장하는 것만큼, 예술가들의 활동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청년예술가들이 인천으로 와서 자립할 수 있는 트랙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등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그것과 연계될 수 있는 또 다른 동력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

인천문화재단 청년예술가기획지원 ‘바로 그 지원’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사실 청년예술가를 키워야 한다는 구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것이 얼마큼 실천되는가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진입장벽을 마주한다. 기존의 진입장벽이 경력과 생계였다면, 최근에는 장르까지도 하나의 한계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는 단지 여러 장르의 협업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현대 예술이 더 이상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예술 현장에서는 그 어떤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는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다. 기존의 틀만으로는 청년예술가들로 하여금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문화재단의 눈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정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더하기’의 눈이다. 바로 새로운 시대의 문예를 위한 시야와 추가적인 지원과 활동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가들이 인천이라는 도시로 모여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문화재단은 정보지원의 거점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음을, 그는 또한 강조하였다. 재단의 지원이 비단 경제적인 것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광역문화재단이 지역의 모든 예술가를 지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보에 있어서만큼은 재단은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재단의 문을 두드리는 예술가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허브로서 재단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만 지역작가들이 문화재단을 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예술’을 둘러싼 재단의 전문성 강화

이러한 실천을 바탕으로 신임 대표이사로서 그가 내세우는 첫 번째 포부는 예술지원과 예술교육에 따른 재단의 전문성 강화이다. 예술지원/교육 영역은 문화재단의 핵심적인 역할이며 어찌 보면 재단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조직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육성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임 이후 이 분야의 인력을 충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내부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포부를 강조했다. 이는 향후 인천문화재단이 사업 중심의 조직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인천’을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예술행사의 필요성

그가 내세운 두 번째 포부는 인천을 대표하는 예술제의 확립이다. 인천은 서울과 인접하고 공항과 항만을 끼고 있는 국제도시이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문화예술행사가 아쉬운 상태이다.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있지만, 인천이라는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예술의 화두는 아직 명징하지 않다. 인천만의 ‘무엇’을 담아내는 동시에, 그간 인천에서 자생해왔던 여러 문화적 기반을 아우를 수 있는 상징적 아젠다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한 것이다. ‘평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 방향성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셋째, 인천문화재단 설립 20주년을 향한 포부

잘 알려진 대로 이종구 대표이사는 인천문화재단 설립 이전부터 재단과는 건실한 협업 관계를 구축해왔다. 재단 설립추진위원회의 일원이었으며, 인천문화재단의 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러한 그가 재단의 20주년을 책임질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으니 그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무엇보다 지난 3년간 인천문화재단은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혁신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업과 조직 모두 한층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안정기를 맞이하며 새롭게 도약할 시점이 되었다. 인천문화재단이 인천 문화예술인의 든든한 지원자로서 제대로 성년(成年)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종구 대표이사는 자신의 임기 동안 내실을 다지는 일에 헌신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나직하지만 단단한 의지

2시간여 동안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이종구 대표이사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흔들림 없이 단단하였다. 교단에서 물러나 오롯하게 자신의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포기하고 재단의 대표이사를 맡고자 나서기까지 적지 않은 고뇌의 시간이 뒤따랐을 것으로 예측된다.

화가란 그야말로 자유로운 열정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한 그가 상근이라는 구속에 얽매여 3년이라는 자못 긴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광역문화재단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큰 명예일 수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의 나직하고 단단한 목소리의 힘은 아마도 그러한 고뇌의 결과일 것이다. 이종구 신임 대표이사가 인천문화재단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튼튼한 디딤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한데 묶는 문화의 힘, 마을문화공동체로 꽃피다: 시각예술분야 문화예술교육사 심은혜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지역사회를 한데 묶는 문화의 힘, 마을문화공동체로 꽃피다 시각예술분야 문화예술교육사 심은혜

홍봄(기호일보 기자)

“‘문화예술교육사라고 하면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스스로를 브랜딩하고 홍보하기 시작한 이유죠. 문화예술교육사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건 그만큼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화예술이 보다 활성화되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문화예술사업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예술로 꿈꾸며 디자인하는 시각예술분야 문화예술교육사’ 심은혜 씨를 만나다

유독 길었던 겨울이 움츠러들 무렵 만난 심은혜 씨는 자신을 ‘예술로 꿈꾸며 디자인하는 시각예술분야 문화예술교육사이자 마을문화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심 씨는 8년 차 문화예술교육사다. 과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는 자유학기제를 활용한 디자인 수업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교육의 길로 들어섰다. 2014년을 시작으로 인하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 학교예술 강사지원사업 <we art play> 디자인 강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예술교육사 현장길라잡이 연수> 문화예술교육사 퍼스널 브랜딩 특강, 인천교육청학생교육문화회관 <찾아가는 아트스쿨 진로체험> 강의 등을 활발히 해왔다. 현재는 문화예술 콘텐츠개발과 교육, 문화예술사업에 참여하면서 인하대 대학원에서 문화경영학, 디자인융합을 공부하고 있다.

인하대문화예술교육원,  2021 학교예술강사 지원기획사업 ‘We Art  Play’ 프로젝트
(사진 제공: 심은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들자

심 씨가 최근 몇 년간 새롭게 몰두하기 시작한 분야는 마을문화교육이다. 2020년 마을문화교육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한 것을 계기로 지역 마을문화 커뮤니티 ‘상상예담’ 부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마을 단위 매개자로서 문화예술을 통해 개별화된 삶을 사는 주민들을 사회적 참여와 지역변화에 함께 관심을 만들어 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심 씨는 “문화예술교육을 할 때는 소통과 경험 중심의 예술교육과 사람, 학생을 잇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마을문화교육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마을)과 사람을 이어가며 지식, 예술, 교육, 가치 등을 지속적으로 나누고자 해요. 지역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도 늘 지역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대상들이 문화와 예술교육을 접할 기회나 소통의 장, 활동공간이 확대되길 바랐어요. 예술가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자들, 학생,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문화 공간이 확대되었으면 했기 때문에 마을문화교육 역시 이전 활동과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라고 설명했다.

미래사회 대응 열쇠는? 마을문화교육과 생태주의적 교육!

그는 “교과서 중심으로 개인학습이 이루어지는 방식보다는, 학생 간의 협동이나 교사와의 관계가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으로 확산되는 관계적 네트워크 안에서 배움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그 도구가 될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생태주의적 교육 원리는 ‘상생’이다. 공동체 안에 공존과 협동을 위해서 교사와 학생을 포함한 모든 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상호존중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안팎에서 올바른 마을문화 공동체 학습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학습생태계 안에서 학생들은 상호작용, 경험, 교육주체의 자율성 등을 통해 스스로 배움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과 커가는 지역마을문화 커뮤니티 ‘상상예담’

상상예담은 마을문화교육과 생태적 교육을 실현하는 단체다. 마을문화교육활동가양성과정에서 만난 인연들이 모여 공부하고 고민하고 실현한다. 상상예담 구성원들은 함께 지역 마을학교 <마을 속에서 나를 찾는 문화예술 창의체험>, 평생학습 공동체 사업 <업사이클링을 통한 마을융합교육 프로그램 연구>,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동아리 사회공헌 지원사업 <지속가능한 예술로 순환 생태계> 등에 참여했다. 또 평생학습관 <환경메이커 여기여기 모여라!>, <환경실천 워크숍 & 새활용 작품 강의>, 노인인력개발센터 <초등학교 아동 돌보미 전문 시니어 양성교육> 강의 등을 해왔다.

상상예담을 꾸린 1년 차에는 공동체에서 의미를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했다. 미술과 음악, 스피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지역마을문화 커뮤니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년 차는 업사이클링과 생태교육이라는 큰 이슈를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을 대상으로 공유했다. 3년 차인 올해는 연극이나 원예 전문가들을 모셔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학습을 심화해나갈 예정이다. 남동구평생학습관에서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만든 결과물을 전시하는 것 역시 올해 목표 중 하나다. 심 씨는 “경험 중심의 상호교류적인 마을문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아이들과 시민들의 공감능력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다양한 교과목과 문화예술교육을 자신의 미래를 지역에서 자기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참여하며 풀어 나아가도록 조력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2022 인천마을학교 메타버스 박람회
(출처: 심은혜 블로그)

“접하기 쉽고 편안한 인천 문화공간 많이 생겼으면…”

심 씨는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 방안으로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공기관들이 교육을 위한 공간을 개방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확보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사나 마을활동가들이 도서관이나 지역행정복지센터, 문화공간 등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섭외에 노력하지만 여러 이유로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그는 “길을 지나다 보면 카페는 쉽게 찾게 되지만 문화공간은 찾기가 힘들어요. 우리가 커피를 찾아 카페를 손쉽게 갈 수 있듯이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과 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을 쉽게 접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더 갖고 함께 즐길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여기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는 문화시민이 되려면 관련 플랫폼이나 홍보, 접근 기회도 필요하다. 그는 좀 더 다방면의 주민 제안 문화사업, 지역 시민 중심의 지원사업,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향의 문화예술사업이 확대되기를 기대했다.

문화공간을 세우는 것은 그의 꿈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을 만들어 프로그램 기획과 학습, 역량 강화 네트워킹 등 주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 심 씨는 “문화예술교육사들이 쫓아다니면서 강의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찾아와서 문화를 접하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꼭 세우고 싶어요. 인천 문화예술교육사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문화교육 활동가 모두 응원합니다!”고 환히 웃어 보였다. 

인터뷰 진행/글 홍봄(기호일보 사회부 기자)




꿋꿋하게 오늘을 밀고 나가는 힘: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만남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꿋꿋하게 오늘을 밀고 나가는 힘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만남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김윤식

시인,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198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고래를 기다리며』 외 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인천문인협회 인천시지회장과 인천문화재단 3기 이사, 그리고 인천문화재단 제4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신포동 패션거리 알아요? 거기서 봅시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지명이었다. 한때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던 신포동이 지역의 패션 메카였다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인천과 연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필자라고 다를까?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신포동 패션거리를 누볐던 추억 하나쯤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최근 수년 동안은 들어보지 못했던 명칭이라,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익숙했지만 어느덧 낯설어진,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신포동 패션거리에서 시인을 만났다.

현재의 신포동

기억 속에 추억을 다시 꺼내며
김윤식 시인은 최근의 근황을 ‘다시 읽기’라고 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예전에 한 번 들춰보고 말았거나 묵혀두었던 책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읽기’를 통해 책에 깃든 자신의 옛 시간과 그 당시의 느낌과 마주하는 일이 매일의 감각을 다르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다른 일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바로 ‘정리하기’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한 사고 때문이었다. 어느 날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서 그 안에 저장된 대부분의 파일이 지워지는 ‘대참사’를 겪은 것이다. 250여 편의 인천 관련 글들, 책으로 묶고자 준비하던 930여 매의 원고. 백업조차 없는 글들이 마치 애초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는 한동안 깊은 정신적 공황을 겪기까지 했다고 한다. 모든 ‘글쟁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고통에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삭제된 파일 중 여기저기 메일로 전송했던 일부 원고를 찾아내면서 당시의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작업으로 변주되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찾아낸 파일들을 정리하며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록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일상은 다시 읽기에서 정리하기로, 그리고 다시 읽기를 넘나들게 되어버린 것이다.

추억이 그대로 오늘이 된 곳
시인에게 인천의 의미를 묻자, 그는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했다. 인천을 거의 떠나지 않았던(군대 3년, 그리고 서울에서 1년, 부천에서 1년을 살았다.) 인천 토박이인 그에게, 인천은 그저 매일의 일상을 함께하는 공기와 같은 곳이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나들이를 하면 발길마저 가벼운 것처럼, 인천은 그의 삶에 그대로 녹아 있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그러니 이렇게 어쩌다 한번 그런 질문이 던져질 때면, 오히려 그제야 그것이 실감으로 다가온다고. 그러니 한 마디로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우문현답이었다.

그럼에도 한번 터져 나온 이야기보따리는 멈추질 않았다. 아직 인천이, 아니 동인천이, 제물포가, 아니 그보다는 신포동이, 바닷가 소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때부터 그의 시간은 오직 이곳에 푹 젖어 있었으니 말이다. 제물포역 앞에 쭉 늘어져 있던 배밭에서부터 인천의 곳곳에 있던 수많은 극장들. 그곳에서 보았던 영화, 그리고 때로는 빨간딱지의 외설물들까지. 인천은 그의 추억이 잠든 곳이고, 새로운 만들어지는 곳이며, 그래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필자가 제3의 시선으로 김윤식 시인에게 있어서 인천의 의미는 이쯤 되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추억이 그대로 오늘이 된 곳,’ 그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인천, 그리고 신포동과 함께할 테니 말이다.

덜컥 수상한 교내 백일장, 운명 같은 문예반 생활
기왕에 추억의 보따리가 열린 김에 문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때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하던 그가 덜컥 교내 백일장에서 수상을 한 것이다. 「파랑새」라는 당선작이 문예반 선생님의 눈에 띄면서 문예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잡지 학원에 몇 번인가 글이 뽑히기도 하였다. 그 덕에 전국에서 오는 여학생들의 팬레터를 받기도 했다며 소년처럼 웃음을 지었다.

시가 계기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시로 등단했지만, 산문에 대한 욕심은 꾸준히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인천과 관련된 산문을 쓰는 것은 그의 20여 년 작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특이하게도 머릿속에 인천이라는 도시의 기억이 사진처럼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단지 몇 개 건물이 어디에 있었다가 아니라, 골목과 골목을 따라 즐비한 식당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풍경, 거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기억을 사진으로 인화할 수는 없지만, 글로 써낼 수는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만 시인은 그것을 그림이나 사진처럼 생생히 표현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그가 최근에 출판한 『인천의 향토음식』은 그러한 기억의 결과물이다.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21)

자신만의 고유색을 가진 도시가 되길
그가 꿈꾸는 인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천문화재단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그였기에 현재의 인천에 어떤 예술적 감각을 입힐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는 한 마디로 작은 아이디어들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커다랗고 멋들어진 건물을 세우는 것 이상으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어지는, 사람의 삶과 일상이 살아있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의 일상이 색을 입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러면서 맹인 점자, 훈맹정음을 펴낸 송암 박두성 선생의 예를 들었다. 선생의 집을 찾아오는 맹인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 집을 찾기가 아주 쉬웠다고 한다. 길에서 누구라도 붙잡고 “여기 태극무늬가 크게 그려진 대문 있는 집이 어디요?”라고 물으면 누구나 알려주는 집. 그 집이 바로 선생의 댁이었다고 한다. 김윤식 시인은 행복복지센터나 여러 관공서에도 이러한 특징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할 곳들이 타지사람이 쉽게 찾을 수 없으면 되겠냐는 그의 말이 비근한 예이지만 묵직하다.

예술가로서 선택한 길을 꿋꿋하게 짊어질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대를 관통해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지금, 후배 문화예술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시인은 어렵게 견뎌온 모든 예술인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며, 또한 다시금 견뎌야 하는 시절임을 기억하자는 당부를 함께 건네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결국 우리를 지탱한 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이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것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자기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던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복합된 것이리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다짐을 한 마디 더한다. 예술인으로서 살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그 길이 결코 빛나고 행복한 길이 아니 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선택한 것임을, 그러므로 그 선택에 혼을 바침으로써 ‘위대한’ 예술인이 될 것임을.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 이종범 『스펙타클』 발행인 겸 편집장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이종범 『스펙타클』 발행인 겸 편집장

박현주(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인천 청년들이 취재한 인천 이야기, 지역 잡지 『스펙타클』

“인천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알려주고 싶었던
공간과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달 창간호를 낸 잡지 『스펙타클(Spectacle)』 발행인 겸 편집장인 이종범(29) 씨는 이같이 말했다. 표지에 적힌 말 그대로 인천에 사는 ‘인처너(Incheoner)를 위한 잡지’다. 이 씨는 편집자 주에 “인천에 깊숙이, 혹은 느슨하게 한 발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면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인천하면 흔히 떠오르는 일관된 상상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목차를 이룬다. ‘차이나타운 어느 집 자장면이 원조인지’, ‘월미도 테마파크에서 무슨 놀이기구를 타야 재밌을지’ 이런 진부한 소재를 다루는 책자가 아니다. 인천이 꽤 익숙한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이 씨는 이번 호 주제인 ‘코로나 시대의 로컬’에 대해 “팬데믹 상황이 불러온 단절 속에서도 우리의 도시를 즐겁게 바라보는 방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스펙타클』에는 인천의 사람, 가게, 풍경,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권 없이 떠날 수 있는 인천의 세계 여행지를 소개한 내용도 그중 하나다. 중앙아시아부터 오세아니아·아메리카·유럽·동남아·동북아 등 각 대륙의 음식을 파는 곳이 상세하게 정리돼있다. 인천 곳곳에 있는 외국 음식점에서 이국적인 맛을 즐기고 여행하는 기분도 낼 수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부평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미얀마 유학생 술라와의 인터뷰에서는 인천이란 도시가 가진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찾기 힘든 미얀마 음식점이 부평에 가면 여럿 있다는 그의 얘기처럼, 부평은 유학생, 노동자, 활동가 등 재한 미얀마인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활성화한 곳이다. 야채 곱창과 가수 ‘SS501’을 좋아하는 술라의 일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2월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현지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끊기고, 주변 사람이 군부에 의해 끌려갔다는 짧은 인터뷰에서 미얀마가 처한 비극은 더 크게 와닿는다.

집에서 마시는 ‘홈술’이 지겨운 이들을 달랠 지역 ‘혼술 플레이스’도 빼놓을 수 없는 읽을거리다. 집에서 가볍게 마시는 캔 맥주 대신, 도수 높은 위스키가 끌릴 때 방문하기 좋은 곳들이 포함됐다. 인하대 인근의 가게 2층에는 서가에 가지런히 놓인 책 사이로,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가 놓여 있는 ‘심야 책 바(Bar)’가 있다. 입구에 “취기가 아닌 공간과 술을 즐겨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끄는 곳. 홀로 술을 즐기는 이에게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평리단길 일대 양복점 외관을 한 가게는 와인과 막걸리, 소주 등 다양한 주종을 판매한다. 젓갈 파스타, 봉골레 떡볶이, 스위스식 감자전 등 ‘무(無)국적’ 안주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입안 가득 달곰한 맛을 돋운다.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술집은 직접 구운 쿠키와 맥주·위스키를 주로 내놓는데,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니 홀로 낮술 즐기기 딱이다. 잡지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내가 아는 인천에 이런 곳이 있나’하는 생각에 빠진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료들과 인천을 탐방하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우리, 학교 문집 만들 듯 소소하게 할까요?
아니면 기왕 하는 거 좀 의미 있게 한번 해볼까요?”

이 씨가 잡지 『스펙타클』을 만들게 된 계기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그가 지난 3월 결성한 지역 청년 모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1기 팀원들이 “우리 활동을 바탕으로 책 한 권 내보자.”고 제안했던 게 시작이었다. 제작비는 책이 발행되길 바랐던 시민들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인천에서 일하는 청년 10여 명은 3~4명이서 팀을 이뤄 동네를 탐방하고, 인천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인천 스펙타클과 강화유니버스가 함께 진행하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썸머세션의 3일차
(출처: 인천스펙타클 인스타그램)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하는 활동이 많이 제한됐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를 만든 이유입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의 팀원은 학생이고, 교육자이자 연구자다. 다 같이 콘텐츠를 발굴·기획하면서 어떤 주제든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폭넓은 범위에서 활동이 이뤄진다. 어떤 날에는 공방에서 나뭇조각을 깎아 숟가락을 만들고, 또 다른 날에는 40년 가까이 운영된 LP 재즈 바에서 공연을 듣는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의 새로운 취미인 등산을 체험하기 위해 계양산을 갔다가 초입길에 있는 맛난 커피집을 들르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6개월 활동을 마무리한 1기 팀원들의 발자취는 『스펙타클』 창간호에 담겼다. 지난달에는 40명의 팀원이 새로 꾸려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2기에 합류했다. 이들의 활동은 내년에 발간될 『스펙타클』 2호에 반영된다. 이 씨는 지속해서 지역 모임을 운영할 계획이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게 뭔지 고민했습니다. 취향에 맞는 공간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가 인천에서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종범 기획자는?

이 씨는 2017년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을 출간했다. 개항기 일본식 목조 건물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페와 송도국제도시 마천루 사이에 자리 잡은 커피집까지 총 30곳을 방문하고 책으로 집필했다. 그는 동네 특색과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카페라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가장 작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 카페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 2017 『인천의 창작자들』, 2019
(출처: 인천스펙타클 인스타그램)

“서울로 대학교와 회사를 다니다 보니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시간만 3~4시간이더라고요. 그런데 주말에도 서울에 가서 문화생활을 할 때가 많잖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천에서도 퇴근 후와 주말의 삶을 보낼 만한 근사한 곳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역 카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어요.”

2019년에는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는 『인천의 창작자들』을 발행했다. 음악·미술·디자인·공예 등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의 삶과 활동을 담았다. 이 씨는 지난 5년간(2017~2021년) 지역 사회 문화 기획이나, 창작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예술반점 길림성, 인천 서구 크리스마스마켓, 인천크리에이티브 마켓 서멀장, 인천시 문화가 있는 인천애뜰 콘텐츠 등을 기획했다. 앞으로도 도시 인천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를 찾는 게 이 씨의 목표다.

“언제 타도 북적이는 용산행 지하철에 가까스로 몸을 구겨 넣으면, 맞은편에 텅 빈 동인천행 승강장이 눈에 들어와요. 인천이란 도시가 서울과 인근 지역을 향하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 아닌, 충분히 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라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 인천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 나채훈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인천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 나채훈

나채훈(羅彩勳)

1947년 인천시 중구에서 태어나 약 40년간 거주했다. 이후 20년 이상 중구에 집필실과 사업장을 두고 중구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197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문학사), 이후 『주부생활』, 『여원』, 『리빙뉴스』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더불어 그는 중국 고전서 연구에 바탕을 두고 리더십 연구에 힘써왔다. 주요 저서로 『정관정요』, 『삼국지신문』, 『카리스마 리더 조조』, 『유비의 리더십』, 『위대한 CEO 제자백가의 경영 정신』, 『중국인의 발상법』, 『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려라』, 『조조와 유비의 난세의 리더십』, 『누구도 나를 버릴 수 없다』 등 다수가 있다.

2021년 9월 24일 오후, 인천중구문화재단 나채훈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인천문화재단 손동혁 정책협력실장의 진행 아래 초대 대표이사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앞으로 인천중구문화재단이 구상하고 있는 역할과 사업방향, 그리고 인천의 여러 문화재단과의 협력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손동혁: 인천중구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라는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먼저 나채훈 대표이사님에 대한 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채훈: 고향이 인천이라 옛날부터 오래 봐왔죠. 자유공원 일대의 개항기 때 만들어졌던 건물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외부에서는 중구에 문화유산이 많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란 곳이다 보니 상당히 관심이 많죠. 대학에서 쓴 논문도 인천 중구 조계 제도에 대해서 다뤘어요. 그 이후에는 방송국에 잠깐 있다가 『주부생활』이라는 여성잡지사에 들어갔어요. 제 실력이 있어서라기보다 제 윗사람들이 일찍 관둬서 데스크 생활만 18년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간신문도 만들어보고 했고요. 연극계에 몸담기도 했습니다. 희곡도 써보고 연극연출도 해봤고요. 『정관정요』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게 워낙 잘 팔려서 이참에 인천 가서 책 50권만 쓰면 평생 먹고살겠다 싶어서 인천에 내려왔어요.
막상 내려오니 소설만 쓰는 것도 참 그렇죠. 마침 인천 지역의 후배들이 문화단체 일을 주선해줘서 잠깐 일을 하는데, 제가 어릴 때 보고 자란 곳 도처에 틀린 안내판이 붙어있고 설명도 미흡하더군요. 제가 논문을 조계지에 대해서 쓰기도 해서 중구 지역의 개항사에 대한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역사지리를 전공한 입장에서 볼 때, 틀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고치고 강의도 하다 보니까 중구지역에서 인문교육을 11년 정도 하고 있었더라고요. 책도 마흔아홉 권 정도 썼고요. 대부분은 중국 역사에 대한 책들이고, 인천의 역사를 다룬 책은 『인천 개항사』가 있어요. 주로 삼국지 리더십 주제로는 강의를 했고요. 작년부터 다른 구에서 문화도시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인 중구에 문화재단이 설립된다는 소식에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고향에서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대표이사직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손동혁: 그동안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다채로운 문화 활동과 개항장 관련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 어떤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천광역시 중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나채훈: 아직 인천 중구하면 생각나는 대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개항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구만의 대표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인들이 중구에서 다양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살만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사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요.

손동혁: 지난 8월 27일에 ‘(재)인천중구문화재단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가 개최됐습니다. 이제 문화재단 출범을 위한 행정적인 준비를 거쳐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직원을 충원하는 등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로 보입니다. 초대 대표이사로서 인천중구문화재단 사업의 초기 방향에 관한 구상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2021년 기준으로 전국에 117개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보통 5년이나 10년이 넘으면 조직이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르게 경직화되는 현상도 있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답게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몰되어 가는 경우가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초기에는 조직의 안정화에 힘쓰려고 합니다. 인천중구문화재단은 4개 팀으로 출발을 하는데요, 원래는 8개 팀 정도가 필요한 조직인데 예산 문제로 상당히 슬림화한 거죠. 적은 인원에 업무가 가중될 수 있지만, 오히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많이 듣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직원들이 조직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외부와의 소통으로 채워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성 하나를 꾸준히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 조직의 안정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중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개항문화의 재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883년에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성장과 발전이 있었습니까?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으니 문화화될 필요가 있어요. 개항을 통해 전달된 근대문화, 또 오늘날 인천의 출발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문화라고 하는 것을 생산성이나 소비성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뜻을 크게 갖고 우리 문화재단의 출발에 의미를 두고 함께 노력해야지요.

손동혁: 인천광역시 중구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 세계로 열린 두 개의 문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천의 해양성과 국제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향후 이러한 상징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대표이사님의 혜안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문화적인 부분에서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국제성은 가장 중구다운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인드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종적·종교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죠. 개항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들은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야죠. 평생교육의 장을 만들어서 인문학 강좌, 생활문화동아리 활동 지원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기 위한 추가적인 활동도 만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또한, 해양자원은 선조들이 남겨준 유산인데 오락적인 요소의 이벤트로만 사용할 게 아니라 각종 교육과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할 것, 자연유산이 소중하고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해안가에서 많이들 발생했죠. 생산적인 면도 포함해서 괜찮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제2의 종합문화예술회관 같은 것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내항 재개발의 문제가 있는데요, 그 공간을 좀 더 인문학적 시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항문화축제를 내항에서 제대로 했으면 해요. ‘제대로’의 핵심은 우리 주민들이 최소한 과반 이상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참여행사지요. 중구문화재단이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동혁: 지난 2월 2020년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는데요, 지금 말씀하시는 해양과 교육, 문화 이런 부분들이 잘 포함된 법률이어서 살펴보다 보니 제도혁신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 중구를 보면 영종 지역에 더 많은 분들이 살고 계신 데 상대적으로 그곳이 연령층도 더 낮고요. 하지만 역사문화자원이나 시민들의 문화 환경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시나요?

나채훈: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영종 지역의 특성은 새로 유입된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급속도로 한 도시의 인구가 팽창하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폐기물 대책 하나만 해도 따라가기가 어렵죠. 이러한 일은 행정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영종 지역에서 증가하는 젊은 가정에 대해 두 가지 정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중구문화재단은 문화기금을 조성하면서 후원금을 받았을 때 문화예술 인재육성기금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또한, 평생교육에 문화예술교육을 접목한 강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강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소수의 인원도 의미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다양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을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중구민에게 다양한 인문교육도 필요하겠지만, 좀 더 ‘관계인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주지는 다르더라도 일자리가 중구에 있는 사람들, 그 관계인구를 우리가 ‘관계주민’으로 인식해야 해요. 오히려 온종일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오는 사람보다 훨씬 중요한 주민일 수 있거든요. 이런 분들하고도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방 체험과 같이,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부분은 앞으로 중구문화재단 임직원들과 토의를 거쳐 구상을 다듬어보려고 해요.

손동혁: 인천에는 인천문화재단, 부평구문화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연수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초 출범을 목표로 남동구문화재단도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단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방안에 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아무래도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각각의 기초재단들이 협심해야 할 텐데 대표이사의 임기가 잘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지방자치의 문제이기도 한데 임기제의 장점이나 정년제의 장점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자꾸 단점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되면 좋은 계획을 세워도 진행되기가 쉽지 않죠. 하나의 뼈대를 세우고 거기에 계속해서 살을 더해 가면 좋은데 이어지지 못하면 용두사미가 될 위험이 커요. 그래서 저는 일차적으로 인천 지역문화재단의 직원들이 모인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임기제인 대표들은 뒤로 빠져서 앞으로 오랜 시간 일할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구상을 갖고 인천의 문화를 만들어가게 하는 거죠. 문화재단들이 연계 협력할 수 있도록 재단의 대표들은 지원을 하고요.

손동혁: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나채훈: 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데에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문화의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요. 복지문제도 그렇고요. 어떻게 보면 문화복지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수이기도 한데 별것 아닌 돈 낭비라는 인식이 있죠. 공항이나 단지 조성 등에 들어가는 돈은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하지만 그러한 돈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성공한 일이 없었어요. 인천에서도 그렇게 터무니없이 사용된 재정 지출도 많고요. 그런데 문화예술에 쓰는 돈은 꼭 낭비하는 것처럼 말하며, 예술이나 문화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일까지 가볍게 여기는 건 문제가 많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부터 제대로 해주고 그랬으면 합니다. 앞으로 중구문화재단이 앞장서서 뭔가를 좀 할 수 있을 때 많이 격려해 주셨으면 하고요,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인터뷰: 손동혁(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장)
정 리: 박준혜




프로젝트그룹 노니〔noni〕, 경계를 넘어 소통의 장을 펼치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프로젝트그룹 노니〔noni〕, 경계를 넘어 소통의 장을 펼치다

홍봄(기호일보 사회부 기자)

노니〔noni〕, ‘노닐다’, ‘놀다’, ‘play’의 의미로 소소하게 노는 것에서 시작하여 일상을 다채롭게 채웁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이 모여 말랑하고 유연한 상상을 펼치고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추구하는 문화 예술 크리에이터입니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틀에 한정 짓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를 벗어나며 A와 Z를 연결해 주는 ‘중간자’로서 소통의 장을 만듭니다.

〔noni〕는 동갑내기 디자이너인 정한결(26)씨와 이승나(26)씨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한결 씨는 시각 예술 디자이너이자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승나 씨는 공간 예술 디자이너이자 공간 설계 디자이너다. 동시에 프로젝트 기획자이기도 한 두 사람은 20대 초 인연을 맺은 이후 줄곧 자연스럽게 공동 작업 이야기를 해 왔다. 함께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올해 연수문화재단의 청년예술지원을 계기로 실현됐다.

프로젝트 그룹을 결정하기로 한 두 작가는 활동의 중심점이 될 브랜딩에 가장 공을 쏟았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자 중심점이 〔noni〕이다. ‘Non of I’ 약자로 ‘내가 없다’, ‘내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우리말로 ‘노니’라는 발음을 가진다. 이는 하나의 정체성에 묶이지 않고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수많은 n명의 사람들 또는 우리 크루의 시작인 n과 n의 콜라보를 뜻한다. 한결 씨는 “요즘 ‘본캐’, ‘부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예술활동과 일을 병행하지만 두 가지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원동력이 됐으면 했어요. 그럴 때 더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고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라고 〔noni〕를 설명했다.

《P.P.L Project》 개요

〔noni〕의 첫 프로젝트인 《P.P.L Project》 역시 개인들의 경험에서 시작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이다. 승나 씨는 “프로젝트를 고민하면서 불안정한 시기에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서 다가가기로 했어요. 우리는 늘 불완전하고 애매모호하며 잡다한 고민, 걱정, 불안과 함께 위태로운 경계에 있잖아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경계를 벗어날 수 있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P.P.L Project》는 소소하게 노는 것에서 시작하여 지루한 일상을 다채롭게 채우고(PLAY), 일치하는 생각과 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나와 다른 관계의 엇갈림과 접속에서 소통하며 생각의 환기를 유도한다(PEOPLE). 마지막으로 사람을 레이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다양한 층이 얽혀 있는 유기적인 공간을 만든다. 위계가 없는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지향한다(LAYERS).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전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전시인 <잡동산이_아! 그것을 버리지 마시오>는 10명의 참가자에게 일주일 치 미션지를 택배로 보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공간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게끔 했다. 취업준비생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등 불완전한 경계에 있는 청년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미션을 수행하며 잡동사니에 대해 자유롭게 기록했다. 한결 씨는 “잡동사니는 잡다한 것이 한데 뒤섞인 것, 또는 그런 물건을 말해요. 이번 프로젝트는 각자의 잡동사니 사물에서 출발하여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담아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전시인 <Blur-Blah>는 익명의 대상들에게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나의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요?’, ‘나의 사랑은 어떤 색깔일까요?’라는 질문에 80~90여 명이 답한 결과는 놀라울 만큼 서로 달랐다. 승나 씨는 “사랑은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입니다. 사랑의 정의할 수 없는 특성은 불완전한 우리와 닮아 있어요.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의 정의, 모양, 색깔에 대하여 질문하고 완전한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 정해진 정의도, 모양도, 색깔도 없음을 알게 되죠.”라고 설명했다.

이 전시를 어떻게 온라인상에서 구현시켜낼지가 현재 〔noni〕의 주된 고민이다. 참여자들이 단순히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닌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쌓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전시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N월 27일에 온라인 전시를 오픈할 계획이다. 두 사람은 이번 전시가 비대면 시대에 쉽고 재밌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주제를 기획해 단기성, 중장기성, 장기성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다. 요리사나 음악가 등 타장르 작가들과 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수많은 n명의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그룹명처럼 더 재미있는 주제를 찾아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이렇게 타 장르 작가와 교류를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연수문화재단의 도움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이 열려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결 씨는 “작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재단에서 워크숍을 열어 지역 문화 활성화에 대한 작가들의 의견을 꾸준히 듣고 있어요. 경험이 많지 않은 청년 작가에게 재단은 믿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앞으로 예술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시작점’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작가에게 예술의 의미를 물어보자 한결 씨는 ‘일상이자 삶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예술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됐을 때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을지 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전업 작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 삶과 별개라고 할 수 없고 개인 작업도 계속하고 있죠. 그렇게 보면 보고 느끼는 모든 일상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표현했다. 이어 승나 씨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항상 새로움을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승나 씨는 “예술이 어렵고 고지식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면 그게 예술이 될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두 작가는 인천지역에서 문화예술이 보다 꽃피기 위한 제언도 덧붙였다. MZ세대인 두 사람은 젊은 세대가 ‘감각적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문화생활이 활발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지역 대학생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영상 플랫폼이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한다. 인천의 문화에 대해 풀어내는 과정에서 새롭고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두 작가는 “부모님과 친구같이 지내는 MZ세대는 자신이 감각적이다 생각하면 가족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홍보방식을 고민하고 전문 인력을 활용해 유입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파급력이 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비어 있는 임대공간을 이동하며 팝업 전시를 여는 등 어느 도시에서도 하지 않는 기획들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진행/글 홍봄(기호일보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