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세상에 일부러 잠입한 듯한, 세상에서 일부러 혼자인 듯한, 작가 ‘신민’

 

소외된 세상에 일부러 잠입한 듯한, 세상에서 일부러 혼자인 듯한, 작가 ‘신민’

여린 종이로 제작된 작가 신민의 작품은 거칠게 다루기에는 겁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거친 질감, 뭉뚱그린 외형과 달리 종이 한 장 한 장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그녀의 작품은(금방 찢어지는 종이의 속성이 무시된 채) 외형의 모습처럼 강한 강도를 갖는다. 신민은 동시대의 나와 나의 주변인들, 그리고 제 3자를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삶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소외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작품 속에서 발견해볼 수도 있다. 야무지지 못하고 무기력해보이고, 어쩌면 아파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금방 찢어져 소멸될 수 있는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단단해져버린 덩어리가 되어 어지간한 힘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작가 신민은 비판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맥도날드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신민 작가와의 만남에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한 기업의 CEO가 근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속으로 위장 잠입했던 TV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처럼 작가도 작품 제작을 위해 일부러 맥도날드에 위장 잠입한 것인가, 그리고 일부러 그들만의 세상인 듯(혼자인 듯)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했나였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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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주술적인 느낌을 준다.

A. 사람들이 전시를 본 후 화내고 슬퍼하고, 내게 고민을 던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 내가 생각하는 창작은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반응을 얻는 행위인 것 같다. 어릴 때 나름대로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쟁취하지 못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해오면서 초월적인 존재, 힘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귀신을 불러내는 주술인 ‘분신사바’, 소원을 이루어주는 부적이나 기도 등을 몰래, 굉장히 열심히 했다.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주술 행위를 하듯 의도적으로 하기보다는 무의식적인 흐름에 따라 완성했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작품에 기운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계속 주술의 방식으로 작업을 양산했는데 얼마 안 가서 결국 비슷비슷한 소원과 응답에 싫증을 느꼈다. 그리고 방에 쌓여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여성들, 그것도 상처 입은 모습의 여성들만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실 (원래는) 여성에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 할인시간 때마다 정말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 햄버거, 콜라, 아이스크림, 커피를 담고 만들고 포장하면서 몸이 상하고, 관절이 아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팠던 것 같다. 런치 시간이 끝나면 감자포대가 어마어마하게 버려지는데, 이 포대를 보고 느낌이 왔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퇴근할 때마다 쓰레기를 챙겨 와서 아르바이트생의 군상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작업은 미술 잡지보다 오히려 시사지에서 보도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공감해주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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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작품에서 과감하고 (날 것 같은) 거친 느낌이 든다. 대화를 할 때도 작품처럼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오묘하게도 작가를 대할 때, 그리고 작품을 바라볼 때에 동일한 단어가 떠오른다. ‘일부러’, ‘잠입’, ‘홀로 조용히’…. 그러한 느낌은 조각상들이 (홀로가 아닌) 함께 모여 있는 <모의 생일잔치>(2007)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은 한 공간 속에 함께 모여 있지만, 히키코모리를 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무서운 세상 바깥에 놓여도 겁 하나 낼 것 같지 않은 작품 속의 그들은, 오히려 소외되어 보이고 그들만의 세상 깊숙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나는 담력이 없다. 계획된 잠입 같은 것은 해 본 적 없다.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쉽게 피곤해져서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생일도 가족과 친구들 양쪽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 보내왔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보람차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인간관계에 금이 가도 괜찮았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작품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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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어떠한 특정한 사건, 정확한 타겟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대표 작품인 <견상(犬 狀)자세 중인 알바생>(2014)과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중심으로 작품의 타겟과 내용을 짧게 설명해주면 좋겠다.
A :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화나 나서 만들게 된 맥도날드 작업들은 청년들의 보편적 상황과 나의 상황의 동일한 지점, 자본주의 시대에 맥도날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삶의 현장에서 수집한 질 좋은 미국산 감자포대가 작품 제작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고, 생각한 대로 작품이 잘 나오게 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맥도날드 작업 이후로는 전쟁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의 상황을 스포츠의 속성을 차용하여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Q :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는가?
A : 우선 종이로 캐스팅을 하고, 그 위에 연필 등으로 드로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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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경숙>, <은숙>, <은주언니>, <딸기코의 딸들> 등 작가의 대다수의 작품에는 여성들이 중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작가가 작업 중인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있는가?

A : 일상에서 혼이 나갈 대로 나간,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여성의 상황을 흔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고, 잊을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그리고 만든다..


Q :
아까 최근의 고민을 언급했는데 바로 ‘태도’에 관한 얘기였다. 작가의 실제 경험을 체화시킨 후 작품에 녹여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리서치에 기반한 창작) 사이에서의 고민이으로, 태도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인 것 같은데?

A : 맥도날드 작업으로 예기치 않은 관심을 받았고, 운 좋게 인천아트플랫폼에도 입주하였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고, 경력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발되는 곳이기에 작업이 실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작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있는지, 실적에 좋은 이야기를 실적을 쌓기 좋은 모양으로 하는지 계속 스스로 묻고 있다. 부끄럽지만, 이게 고민이다.
Q :
마지막으로 <인천문화통신 3.0>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영상 작업에 출연해 주실 여성 출연자 분들을 찾고 있다. 신체 노출은 없고, 얼굴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참여하고 싶거나 관심있는 독자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겠다. 의향이 있다면 8월 17일(수)까지 핸드폰(010-2649-1879)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주셨으면 한다.

○ 자 격 : 작가가 제작한 의상을 착용하고, 기괴하고 격렬한 움직임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분
○ 모집인원 : 10명
○ 일 시 : 8월 19일(금), 오후 1~7시
○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인천역 도보 7분)
○ 사 례 : 참가비 5만원(지원금 사용 절차상 입금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 식사 제공

글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우리의 ‘인식’은 수 없이 많은 오해들의 합이다.” – 프로젝트 그룹 ‘멜팅다츠’

 

“우리의 ‘인식’은 수없이 많은 오해들의 합이다.” – 프로젝트 그룹 ‘멜팅다츠’

‘멜팅다츠’는 연출, 극작, 무대 디자인, 음악 등 서로 다른 4가지의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으로 인천아트플랫폼에 3개월(2017년 6~8월) 간 단기 입주 작가로 들어오면서 인천과의 첫 만남을 시작하였다. 리더인 연출가 이수은은 15년 넘게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본인이 느낀 ‘인식’에 대한 선입견과 ‘한국인들은 이럴 거야’라는 외국인들의 편견에 대해 작업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 ‘멜팅다츠’는 처음 방문하는 도시에 대한 낯선 시각을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이를 공연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멜팅다츠’ 구성원들에게 인천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없다. 그들은 인천과 아무런 연고가 없을뿐더러 인천을 딱히 의식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인천에 대해 ‘인식’이라는 어려운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려는 것일까? 이 질문에 구성원들 모두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인식’에 대한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 선입견은 가장 큰 방해물이기 때문이란 말도 덧붙였다. 이들은 인식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채 오늘도 인천시민들을 만나 그들에게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1“인천 분이세요?”, “인천은 어떤 곳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천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천에 대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그냥 편하게 들려주시겠어요?” ‘멜팅다츠’는 인터뷰 대상과 평범하게 대화를 나눈다. 설문도 아니고 조사는 더더욱 아니다. 무리한 질문을 하지도 않으며 흑백처럼 단정적인 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들어주고 그 생각을 노트에 옮겨 적을 뿐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인 시민들과의 인터뷰는 영상, 음악, 퍼포먼스 등으로 재구성되어 인천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공연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멜팅다츠는 ‘인천 시민들이 본인들의 터전인 인천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바’를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 과정을 통해 멜팅다츠 자신은 인천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구축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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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멜팅다츠’의 소개를 부탁한다.
A : 멜팅다츠는 이번에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면서 만든 팀 이름이다. 저(연출가 이수은)는 무대 & 의상 디자이너,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2006년부터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 ‘콜렉티브 작업방식’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 작업방식은 팀 구성원들 간에 잦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고, 그럴 때마다 우리가 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방식을 공연 결과물에 녹여내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작업 주제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합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작업을 해 보고 싶었다. 공연예술이란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공연 프로젝트마다 형식, 장르, 작업 방식들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공연으로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방식이나 새로운 개념을 원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작업의 중심을 제작 결과에서 제작 과정으로 옮겼을 뿐이다. 저와 허영균 작가가 먼저 팀을 결성하고, 손지희 무대 디자이너, 싱어송라이터 도재명 작가가 합류했다.

Q : ‘인천 사랑’ 단체티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A : 인천에서 작업하는 동안 쭉 입으려고 만들었다. 옷을 입는 것 자체로 ‘작업 모드’가 된다. 인천을 잘 모르기 때문에 ‘표어’처럼 인천 사랑을 내세웠다. 신기하게도 옷을 입으니 실제로 인천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또한 단기로 입주한 팀이기 때문에 아트플랫폼을 오가는 분들과 서로 인사하고 지내려면 눈에 잘 띄어야 한다는 생각에 옷을 맞추기도 했다. ‘인천 사랑’이라는 글이 적힌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우리에 대한 인천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입고 다니지?’ 생각했는데 사람들과의 경계를 허무는 데 이 티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셔츠를 입고 있을 때와 입지 않았을 때가 다르고, 입고 있을 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태토가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웃게 되는 효과도 있다. 옷을 입지 않았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무표정이지만, 이 티셔츠를 입게 되면 작업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물론이고, 웃는 표정과 열린 마음까지 자연스레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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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인천 시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인천에 대한 선입견은 무엇이었나?
A : 인천 토박이가 적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타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정착한 땅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인천 사람들은 바보다, 다 내어 주고 빼앗기고 그러고 산다. 인천은 서울쓰레기 매립지, 안 좋은 것은 다 인천으로 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인천의 주변 도시와 인천의 지리적 한계(서울을 보완하는 역할), 인천을 구성하는 인구 성향(가령 외지인 유입, 화교, 실향민 등)이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거나,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다양성이, 결국 인천이 “개방적” 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인천 사람들은 ‘짜다’는 선입견이 있다고 멋쩍어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 단어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현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인터뷰하면서 만난 인천 분들은 오히려 반대의 성향을 가진 분들이셨다.

Q : 각자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추후 활동계획이 궁금하다.
A : 도재명은 현재 영화음악 작업 중이고, 허영균은 7월 26일부터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음악극 <보물섬> 드라마투르기로 작업에 참여한다. 허영균은 개인적으로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는데, 하반기에는 각각 희곡집과 공연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책을 출판할 생각이다. 각각 1도씨 희곡선, 1도씨 추적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손지희는 7월 말에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연극<사우나>, 9월에 국립민속국악원의 <나운규 아리랑> 무대 디자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수은은 ‘마술피리’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연출하고 10월 ‘대구오페라페스티벌’에서 ‘피델리오’ 협력연출, 11월에는 국악과 현대무용을 실험적으로 접목시켜는 공연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독일 공연창작집단 <오퍼 디나모 웨스트 Oper Dynamo West> 창단멤버로 10년째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공연 작업을 하는데, 내년에는 음악극<바하유람기>, 연극<마담 고질라(가제)>를 독일과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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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공연을 찾아주실 인천시민들께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A : 정보나 사실이 아니라, 인천에 대한 이야기가 감각적으로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망상을 부추기는 공연일 수도 있으니, 오감을 열어두고 관람하길 바란다. 공연을 보기 전에, 스스로 ‘인천은 어떤 곳이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그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본다면 공연을 즐기기 더 좋을 것이다. 객관적이고 통계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일이 우리의 최종 결과물은 아니다. 우리는 주관적 편견이 무엇이고 각각의 편견 조각들이 모여져, 편견의 구조로 만들어진 인천의 한 모습이 궁금하다. 관객들은 우리가 본 인천의 인상, 혹은 편견에 대해 솔직해지면 되는 그런 공연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관객도 우리도 <개항하는 마음 그 자체다.>

프로젝트 그룹 ‘멜팅다츠’는 인천아트플랫폼 단기 입주 작가로써 작품과 공연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천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인식을 그들에게 다시 보여주려 한다. 그 결과물은 오는 9월 <2016 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기간 중에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

글 : 고승용(인천아트플랫폼)




Would you be my model? 나의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작가 서해영

 

Would you be my model? 나의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작가 서해영

1작가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거리로 나간다. 가방 안에는 흙과 석고, 조각을 위한 재료들이 담겨있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두상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거리의 예술가들과 조금 다른 점은 돈을 받지도, 만들어진 두상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두상을 만드는 시간조차 일정하게 정해두지 않으며, 5분이든 1시간이든 모델로 참여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 안에 조각을 만든다. 완성된 조각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모델과 한 장씩 나눠 갖은 후 부숴버리고 이들이 나눈 시간과 과정은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으로만 남는다. 서해영 작가가 지난 3개월 동안 호주 시드니에 머물며 진행한 “Would you be my model?”(2015) 프로젝트다. 이 작업은 다양한 문화, 다른 언어를 갖은 사람들과 시간이나 기억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로 불특정 다수에 가까운 개인과 느슨하게 ‘관계 맺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본인이 마주한 특정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작업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우연처럼 불거지는 화학작용을 만들어 낸다.
작가 서해영은 <산에서 조각하기> ,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등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조각을 거부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해오고 있다. “Would you be my model?” 프로젝트는 2016년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진행되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참여전시에서 매주 3일간 진행될 예정이고 누구나 작가의 모델이 될 수 있다.

2Q. 거리에서 사람들의 두상조각을 만들면 참여한 사람이 돈을 주고 갖고 싶어 하거나, 작가로서도 없애지 않고 남기고 싶을 것 같은데?
시드니에서 거리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How much?(얼마에요?)”였다. 나는 그때마다 “It’s free~!(공짜)”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대신 조각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지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기뻐하며 한참을 기다리면서도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거리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과 예술행위를 돈으로 보상받고, 사람들은 돈으로 그 예술의 가치를 인정(표현)하기 때문에 나의 거리예술은 좀 이상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돈’을 교환의 가치로 두지 않았던 것은 내가 모델을 만나고 조각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 동등한 관계에서의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시드니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웠고 그 얼굴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을 통해서 담아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돈을 받고 조각을 만들었다면 그들을 더 닮게 만드는 일에만 열중해야 했을 것이고 자유로운 대화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대신 즉석사진으로 기억을 공유하고자 했다. 물론, 몇 개의 초상조각은 석고캐스팅을 했다. 작업의 내용과는 모순되지만 내가 만든 것을 부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고 하루에 1개의 두상은 뜨기 시작했다. 시드니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조각 총 10개가 겉틀 상태로 남겨져 있고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초상조각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인천은 한국이지만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과는 매우 다른 곳이라고 느껴진다. 이주민의 역사가 깊고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와 그 주변을 여행하면서 내가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담아내고 싶다. 이번에는 인천의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의 초상조각을 만들고, 전시장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을 할 계획이다.

Q. 기존의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조각을 거부하는 반모더니즘적 성격이 눈에 띈다. 이런 작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오랫동안 전통적인 조각교육을 받아오면서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의 획일적인 작업방식에 한계를 느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은 무엇일까” , “현대 조각의 ‘조각’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나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과 경험을 반영하는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조각의 방법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Q. 작업 과정에 중심을 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산에서 조각하기>는 그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배낭을 꾸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최대 무게의 작업재료, 도구, 옷과 음식 등을 꾸려 산에 올라가서 산의 풍경, 돌멩이들을 조각으로 만든다. 스스로 운반이 가능한 재료들을 가지고 산에 올라 조각을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나의 신체적인 조건에 의해 재료의 양과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관습적인 조각의 방법론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산에서 조각하기> 등의 작업들을 통해 ‘등산’이라는 일상적인 노동과 ‘조각하기’라는 미술의 노동을 결합한다. 즉, 내 삶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상호연결할 수 있게 만들고, 순수한 예술의 영역을 지지하는 전통적 조각의 입장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의 산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번의 산행이 필요하다. 첫 번째 산행에서 주로 작업 장소를 찾아 재료를 옮겨놓는다. 두 번째 산행에서 추가로 흙과 석고, 물을 운반한 후에 흙으로 조각을 만든다. 조각 과정은 카메라 앵글을 이용해 조각이 실제의 산 풍경을 가리는 형식으로 촬영된다.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오는 실제 산의 풍경을 흙으로 가리는 방식으로 만든다. 흙 작업은 석고로 겉틀을 뜬 다음, 석고 틀만 가지고 산을 내려온다. 흙 작업에 썼던 흙은 수풀 속에 버리고, 작업실에 가지고 내려온 틀은 다른 물질로 캐스팅한다. 산에서는 재료, 공간, 날씨, 운반, 관찰의 한계에 의해 제한된 조각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존의 ‘멋진’ 조각이 아니라, 개인의 구체적인 조건과 한계가 반영된 ‘현실적인’ 조각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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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구름을 잡기 위한 도구>와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는 작가가 사용하거나 만지는 도구들을 적극적인 형태로 변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구름을 잡기 위한 도구>는 인공암벽을 즐겨 하는 내 일상적인 취미활동에서 시작됐다. 인공암벽에 붙어있는 홀드(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돌기, 덩어리)를 유기적인 형태로 만들어 비어있는 공간에 설치한다. 이 홀드들은 제작 과정에서 내 손에만 맞게 만들어졌다. 내가 만든 이 홀드들은 도구의 기능과 조각의 형식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완성된 나만의 도구(홀드)들은 흘러가는 구름영상과 중첩하여 암벽타기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벽에 설치했다.
도구와 조각을 결합하는 방식은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여성 조각가인 나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것으로, 대나무 자나 기타 물건을 이용하여 헤라(조소도구)등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건 본래의 기능은 조각을 위한 도구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전환되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했던 재료와 도구가 조각의 최종적인 결과물로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조각의 상황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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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시리즈는 다양한 형태의 협업과 커뮤니티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갔는데 커뮤니티 작업이 궁금하다.
기존의 획일화된 작업 환경에 문제를 느끼고 여성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대안적인 작업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실제 협업을 시도하고 이를 위한 협업의 도구를 제작했다.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들과 협업을 한다면, 조금 더 여성의 다양한 조건과 생각들을 반영한 실질적인 도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온․오프라인으로 7명의 여성들을 모집해 한 달 동안 하나의 타피스트리(Tapestry)를 만들어 나갔다. 여성들의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게 만드는 도구가 필요함을 느꼈고, ‘소통’을 위한 도구로 ‘타피 원형 틀’을 만들었다. 이 틀은 원형테이블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 참여자들 간의 물리적인 만남을 갖게 하고, 그 안에서 많은 대화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작업적인 부분에서도 서로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원형구조와 릴레이 타피스트리 작업방식으로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 타피스트리(Tapestry): 손으로 직물을 짜서 이미지를 만드는 섬유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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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
엄마의 고향이 인천 섬이다. 그곳은 ‘백아도’라는 외딴섬으로 인천에서 덕적도로, 덕적도에서 통통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백아도는 누구나 알만한 관광지도 아니고 활발한 어촌마을도 아니며 이제는 군사지역도 아닌 섬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곳은 매우 쓸쓸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많지 않은 엄마의 고향, 백아도를 과거와는 다른 관점, 다른 입장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고, 엄마가 기억하는 그곳의 모습과 지금 내가 바라본 그곳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관심이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그곳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시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무는 기간 동안 인천의 다양한 지역의 모습을 작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보여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정리 : 오혜미 /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불편한 세상을 불편하게 기록하는 작가 ‘최현석’

 

불편한 세상을 불편하게 기록하는 작가 ‘최현석’
스스로 붓을 놓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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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마틴 핸드포드의 『월리를 찾아라』라는 얇고 큰 책자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월리와 비슷하게 생긴 인물들이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로 빼곡하게 차여 있고, 월리보다도 더 월리 같은 그 수많은 인물들은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우선 책을 펴면 독자는 월리가 놓인 장소를 눈으로 확인한 후, 그 속의 사건들을 한곳 한곳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번 훑고 나서면 이제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나는 월리를 빨리 찾아야 돼!’ 최현석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큰 화폭 앞에 서면 작가가 그린 장소와 상황을 파악해보기도 전에 알록달록한 색채들과 섬세하게 그려진 대상들에 현혹되어 버린다. 그리고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사건들이 화면에 등장함으로써, 관람자는 작품 가까이에서 흥미를 갖고 그림 속 상황들을 쉽게 대하길 시작한다. 그러다 한참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아차!’ 알게 된다. 내가 보고 있는 저 그림이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기록화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화려하고 뛰어난 언변으로 가득 찬 미디어 매체를 쉽게 접하는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 신봉자가 되어가고 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게 되는 그 사건들은 개인의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미디어가 전해주는 대로 입력되기도 한다. 수많은 기록 속에서 진정한 기록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작가 최현석은 그렇게 유머라는 코드로 편치 않은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Q. 미술의 여러 방식 중 기록화를 접하게 된 배경이 있는가?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의례와 향연이라는 특별전이 열린 적 있다. 그곳에서 마주한 궁중기록화들은 나에게 감응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왜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데에 익숙한 나에게 기록화가 감응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왜 그렇게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기록화는 그동안 현대미술에서 접하지 못했던 매력을 갖고 있었다. 즉 쉽게 읽혀지는 형식과 레이어의 풀이 방식이었다. 그와 함께 기록화라는 도구의 사용 목적이 권력자들의 권위의식을 돋보이게 하는 박제화로서의 수단으로만 활용되어 왔다는 점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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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록이 갖는 힘을 역이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사람이 만든 도구이다. 망치를 나쁜 사람이 무기로 사용해서 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했을 때, 그것이 망치의 잘못인가? 망치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망치를 만든 사람의 잘못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 망치를 사용한 사람의 잘못인 것이다.’
이처럼 기록화는 단순히 도구로 치면 못을 박는 망치처럼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없앨 수 없다면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그 용도를 가치 있게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Q. 작품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작품을 통해 혹시라도 현실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것들이, 행복한 삶으로 구현될 수 있는 자그마한 가능성 내지 힌트를 머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꺼져가는 작은 불씨에 장작불 하나라도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 쓸모없는 행동이 쓸모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라는 자그마한 희망을 갖는다.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움이 없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Q. 작품 감상 시, 깊게 봐야(생각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나는 단 한 번도 기록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좋았던 것을 그린 적이 없다. 그래서 작가가 표현한 불편한 지점을 한번 찾아보면 좋겠다. 과거에는 기록화가 박제화였다면, 오늘날 나가 표현하는 기록화는 치부화(畵)이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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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벽화 지우기, 오늘날 상품으로 보이는 종교의 행보,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생활 등이 있다.

Q. 기록화를 진행하며 경험한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반적인 모습을 표현한 기록화 중, 고지도 형상을 빌려 8미터에 달하는 화폭에 담아낸 작품 <국란도(國亂圖)>가 있다. 어느 날 그 작품을 충북 ○○시에 있는 전시관에서 전시할 기회가 생겼는데, 마침 시장님이 감상하시고는 나에게 우리 시를 이렇게 멋지게 그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셨다. 나는 기록화의 언어가 쉬워서 누구나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고 난 후, 좋고 나쁨을 평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작가가 쉽고 재미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감상자가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아낸 작품이라 하더라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하는 좋은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토요창의예술학교에서 4주간 중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되었는데, 수업 이전에 걱정했던 중학생의 모습(중2병)보다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매섭고 솔직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다. 그러면서 현대미술로서 기록화가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한 작은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느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4Q. 작가로서의 소망이 있다면?
나에게 작가의 의지로서의 소망이 있다면, 더 이상 ‘이상’이 이상으로만 표현되지 않고 현실로서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가 더 이상 붓을 들 이유가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하기 이전에 나 스스로가 붓을 내려놓는 그 날이 반드시 왔으면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자그마한 소망이며 희망일 것이다.

Q.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어쩌다 보니 개인전을 못한지가 3여 년이 흘렀다. 그래서 개인전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작업량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입주 작가로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작업환경에 걸맞게 이전에는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실험적인 작업들 또한 시도하고자 한다.

정리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물을 찾는 물고기처럼…- 에릭 스캇 넬슨(Eric Scott Nelson)

 

물을 찾는 물고기처럼…
실험→실패→발견의 여정은 계속된다
– 에릭 스캇 넬슨(Eric Scott Ne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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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중앙 큰 공간에 아파트 광고 현수막 몇 개가 천장에서부터 세로로 늘어뜨려 걸려 있다. 바닥에도 유사한 현수막들이 사각형을 그리며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흰색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이 놓여 있다.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A기간(3~5월) 국외 입주작가 에릭 스캇 넬슨의 결과보고 전시의 메인 장면이다.

에릭 스캇 넬슨이 작업으로 은유하고자 했던 우리의 현실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현대인들과 이루지 못할 욕망으로 가득 찬 그들의 삶, 이러한 삶을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정치 구조이다. 수많은 아파트 광고 현수막이 불법적으로 내걸려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닿지 못할 열망이고 이루지 못할 염원이 아니던가.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작가는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에 빗대었다.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기간 동안 이동 및 휴대가 가능한 물고기 모양의 조각품을 만들고(기브스 재료로 머리 부분을 만들고 캔버스 천으로 몸통 부분을 접어서 갤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물을 찾는 물고기마냥 인천 중구 일대를 돌아다니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조각품을 등에 매고 걷다가 적당하다 싶은 장소가 나오면 내려서 펼치고, 그 안에 들어가 누워서 쉬는 행위를 반복한 것이다. 이러한 퍼포먼스가 나오기까지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실험 과정, 작품 제작의 재료, 최종 퍼포먼스 결과(총 4회)가 2016.6.3~6.11까지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 제하의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기간이 끝났다. 2016년 3월~5월까지 어떤 활동을 했나?
올해 3월 초에 서울 문래동의 ‘두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5년에 작업한 것들을 전시하면서 오프닝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3월을 무척 바쁘게 시작한 셈이다. 이후에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리서치와 드로잉 등을 하면서 작업의 주제와 분위기를 설정했다. 내 작업의 기본 목표는 휴대 가능한 조각(portable sculpture)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등에 매고 다니다가 바닥에 펼치면 안에 들어가 눕고 잠을 잘 수 있는 형태의 조각 작품으로 이것을 이용한 야외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조각은 ‘물 밖의 물고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는 이것을 인천아트플랫폼 인근의 야외 공간과 실내 공간들에서 사용했다. 4월에는 서울을 비롯해 중국의 청두(성도, Chengdu)와 충칭(중경, Chongqing)에서도 퍼포먼스를 했다. 모든 작업들은 이전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고 미래의 작업에 다시 영향을 줄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종료 시점에는 그간 진행한 퍼포먼스들의 자료(다큐멘테이션)와 새로운 작업들, 사진, 드로잉, 조각,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 전시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2016.6.3~6.11)를 B동 전시장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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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전(展)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준다면?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는 여러 아이디어에 대한 스케치를 상이한 여러 매체로 확장하여, 정치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시(詩)를 짓고자 하는 탐구 작업이었다. 전시에 사용된 텍스트로는 3개월간 내가 꾼 꿈의 내용을 담은 책(출판 작업)과 다음의 글귀가 유일했다.

점령되지 않고, 소유되지 않으며, 상업화되지 않고, 임대되지 않은, 사용되지 않는 공간은 어디인가? 공공의 공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며, 사적인 공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영원히 손에 닿지 않을 무언가, 그 무언가를 더 꿈꾼다는 것.
욕망의 본질.
정치. 땅의 배분, 분할, 양도. 정치가들.

물은 땅이 된다. 심지어 물조차 소유된다.
억압받는 문화. 문화를 소비하기.
도시는 공격적이고, 우리의 감각이 잠시 물러나 휴식을 취할 곳은 없다.
점령당하고 통제되는 곳.
이러한 환경은 변화를 겪고 우리의 지식이나 동의와는 무관하게 조정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영원히 불편하다.

휴식을 위한 장소는 어디인가?

몸, 피부, 옷, 외부의 층, 쉼터, 확장된 피부.
우리에게 물을 달라. 우리에게 땅을 달라. 우리에게 공기를 달라.
우리에게 공간을 달라.

03전시 기간 중에 총 4번의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설명을 해준다면?
전시 기간 중 4일간 아파트 광고 현수막과 물고기 조각 설치작품을 이용하여 라이브 퍼포먼스를 소개했다. 기본적인 행동은 물고기 조각 안으로 들어가 눕고, 그대로 몸을 움직여서 물고기에게 생명(움직임)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주변의 현수막을 이용하여 그 순간의 공간에 반응하고자 했다. 퍼포먼스 4회 모두 물고기 안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움직이고, 숨소리를 내는 방식은 같았지만 매번 그 진행 내용은 달랐다. 퍼포먼스 때 사용한 상징적인 제스처, 관객들과 상호 작용 방식, 물고기 밖으로 나오며 퍼포먼스를 마무리하는 지점과 시점을 달리했다. 1회의 퍼포먼스를 본 관객은 총 4부로 구성된 퍼포먼스 중 한 회를 본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동일한 매체(재료)를 사용한 4개의 분리된 퍼포먼스였다.

공연분야 입주작가로서 전시 형태로 작업을 보여주었다. 퍼포먼스의 시간적 제약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나?
나는 나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있어 ‘공연예술(performing arts)’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공연예술가(퍼포머)’라고 부른다. 사실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와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s)를 잘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용어에 대한 정의가 시간과 상황에 따라 항상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작업은 행동(액션)에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신체의 모든 감각을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시각 예술(비주얼 아트)’이라고 불리는 분야가 나의 작업을 설명하는데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통적인 무대나 극장과 같은 장소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나의 행동들을 조정하고, 공공장소나 대안공간, 갤러리, 뮤지엄 등에서 퍼포먼스하는 것을 선호한다. 주제, 공간, 시간 등이 서로서로 연결된 관련 작업들로 전시를 구축함으로써 관람객들이 다른 설명 문구 없이 본인들의 경험을 통해 내 작업의 기반과 내용을 이해하길 바랐다. 전시라는 형태는 부가적인 맥락과 사운드를 창출해 내어 여러 개의 작품들이 공간 안에서 서로 화답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준다. 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B동 전시장이 매우 좋았고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결국,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내가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블랙박스 극장이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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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나 퍼포먼스 영상을 온라인 혹은 언론에 잘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앞으로 작가 홍보용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은 없는가?
때때로 드로잉, 설치, 조각 작품의 사진 이미지들을 온라인에 공개하기는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퍼포먼스 장면을 담은 비디오나 사진들은 오프라인으로만 보여주려고 하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우선 퍼포먼스 작업이 사람들에게 라이브로 경험되고 전해지길 바란다. 사람들이 비디오나 사진 기록물(다큐멘테이션)을 통해 퍼포먼스를 접할 경우, 대개 작업을 오해하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다큐멘테이션은 잘못된 재현이 된다. 사진이나 비디오는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한 개인이나 순간의 관점만을 드러내고, ‘거기에 있음(being there)’이라는 본래의 현장 경험으로부터 분리되어 또 다른 고정된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여줄 때에는 그 자체로 새로운 작품 자체이기 때문에 소개한다. 매체의 확장과 이로 인한 의미의 이동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퍼포먼스 사진과 비디오를 보여줄 것인지 세심하게 결정한다. 새로운 설치 방법을 고민하고 매체를 재조정하여 새로운 물리적 공간을 창출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보여주지 않았다. 스토리텔링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통적인 구전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일차적인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토크 등 내 작업을 소개해야 할 경우에도 기록물을 보여주기 보다는 내가 ‘라이브 다큐멘테이션(live documentation)’이라 명명한 방식을 이용하는데, 스토리텔링과 행위의 결합을 이전 작업과 유사한 방식, 유사한 행동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졌던 일들, 본래의 퍼포먼스 작업을 감지하는데 있어 촉각적, 청각적, 시각적, 후각적이며 때로는 미각적인 참조 지점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원작을 온전하게 유지하는데 있어 비디오나 사진보다 더욱 강력한 다큐멘테이션의 방법이자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더욱 많지만 향후 출판 작업을 위해 아껴두겠다.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 계획은 있지만, 만들게 된다면 내 작업을 홍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책들을 독립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목탄을 씹어 먹는 등 다소 과격하거나 몸을 혹사하는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이유인가?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발견되는 무엇인가가 있다. 오랫동안 빠르게 움직임을 반복하다보면 지치거나 몸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점은 아니다. 모든 행동이 가능하고 모든 행동이 퍼포먼스이다. 충격요법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행동 등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을 할 뿐이다. 어떤 행동은 지나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판단조차 두려움이라든지 사전에 학습된 내용에 따라 그런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서 해소하고,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우면 가능성의 영역은 더욱 커지고 인식의 전환도 나타난다. 내 작업들 중 상당수는 매우 부드럽고, 웃기고, 달콤하다.

향후 작업의 지향점과 계획이 있다면?
내게는 항상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두었다가 특정한 장소와 그 시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작업으로 발전시킨다. 작업은 그 작업이 진행되는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 년은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 머물며 작업할 예정이고, 그 와중에 한국과 중국을 오갈 생각이다. 물리적 환경이 이동하고 변화함으로써 나의 작업도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나는 항상 내 능력에 도전하고, 내가 어렵다거나 불편한 것들로 나를 밀어붙여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실험한다는 것은 실패를 많이 한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새로운 실험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패, 발견, 반복의 과정이다. 앞으로 ‘행동(액션)의 반복’은 나의 작업에서 주요하고 강력한 지점으로 유지될 것이다. 습관을 깨고, 새로 배우고, 배운 것을 답습하지 않고자 하는 나만의 작업 방식이다. 하지만 언어나 작업에 사용되는 매체는 유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나의 지각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나의 일상적 행동과 소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구분은 없다. 내가 굳이 구분을 지을 때가 있다면, 사람들이 내가 하는 행동에 좀 더 관심을 두었으면 할 때, 이 행동들을 좀 더 부각시키기 원할 때에는 이를 ‘예술’이라 부르고, 나의 행동을 별 뜻 없이 봐 주었으면 할 때에는 일상적 행동이라고 한다.

정리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빨간색은 무슨 소리일까? 그레이코드, 지인

 

빨간색은 무슨 소리일까?
그레이코드, 지인<#include red>

GRAYCODE(본명 조태복), JIIIIIN(본명 정진희)은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사운드아티스트다. 이들은 컴퓨터를 기반으로 작곡한 사운드와 이를 형상화한 영상을 결합한 인터렉티브 사운드-미디어 작품을 만든다. 그들의 첫 번째 공동작업인 <#include red>는 “빨간색은 무슨 소리일까?” 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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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볼 수 있는 파장, 즉 가시파장은 일정한 색상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 가능한 영역을 구분하고 가시광선 내의 파장 630~700nm에 위치하는 부분을 언어의 구조를 작동시켜 “ㅃㅏㄹㄱㅏㅇ” 이라는 단어로 명명했다. 빨강색은 가시광선 중 가장 낮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소리의 파장으로 변환하면 20헤르츠(Hz) 정도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20헤르츠(Hz)에 해당하는 소리는 과연 3옥타브의 음 ‘미’일까 ‘파’일까? 일반적으로 빨강은 색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레이코드, 지인은 색을 보다 폭넓은 어휘로 사용한다. 이들은 단순한 인상이 아닌 구체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색채를 소리로 환원시킨다. 색과 소리는 마치 건축도면과 같은 알고리즘 구조의 정확한 데이터와 숫자, 코드를 통해 영상과 사운드로 프로그래밍된다. 그리고 색채로 환원된 소리는 결국 빨강이 된다.

색은 공간을 채우고 소리는 시간을 채운다. 무수한 0과 1, 이진법인 컴퓨터의 언어로 만들어진 그들의 작품은 색과 소리로 치환되어 다양한 변주의 과정을 거친다. 사실 <#include red>는 정확한 데이터 프로그래밍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시장에서 그들의 작품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색채가 주는 강렬함이나 소리가 주는 긴장감을 먼저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이들은 강렬한 빛에 의한 색채, 그리고 음향연출을 통해 변화의 공간, 확장된 공간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우리의 감각적 미디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두 가지 감각의 구조적 혼합 즉, 공감각의 영역을 다양하게 실험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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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레드 색채와 색채가 가진 주파수에 해당하는 사운드가 결합된 작품으로 관람객이 공간 내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색채의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레드로 공간과 시간을 채우는 이번 작품은 관람객들이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공간을 이동하며 변화하는 색과 소리 안에서 몸을 맡겨보는 새로운 지각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레드의 소리를 찾는 것은 이제 온전히 관람자들의 몫이다.

Q. 그레이코드,지인 그룹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우리는 ‘그레이코드와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활동하고 있는 전자음악 작곡가이다.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를 계기로 함께 첫 공동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Q. 전자음악 작곡가라고 하면 좀 생소하다. 음악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컴퓨터에 기반한 사운드를 제작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관람객과 어떻게 소통하기를 바라는지?
전자음악 작곡가라고 하면 어떤 음악을 만드는 것일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전자음을 소재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시대에서 전자음은 컴퓨터로 만들 수 있으며, 결국 우리에게 컴퓨터는 마치 바이올린, 피아노와 같은 하나의 악기로 치환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음악은 그 시대의 상황과 기술을 반영하며 발전해 왔다. 18세기 바흐의 시대에서부터 20세기 현대 음악의 시대까지 당대 최고의 테크놀로지는 많은 작곡가들에게 작품의 영감과 작품을 제작하는 기술력이 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작품도 현 시대의 최고의 테크놀로지인 컴퓨터 기술을 반영하며 작업된다. 비록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소리가 낯설지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발전된 기술력을 생각해본다면 변화하는 예술도 생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매체가 지니는 디지털 감성만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아니고, 본래 음악이 지니는 청각적 감각과 아날로그적 감정을 낯선 소리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03 Q. 공연 형식으로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이번 <#include red> 는 전시 형태여서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다. 흥미로웠던 점이 있었다면?
공연과 전시의 가장 다른 지점은 관객이 전시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제약하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시간예술인 음악에서 그 시간에 따른 변화의 순간들과 소리들을 오롯이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 사운드 전시의 한계이자 큰 특징이었다. <#include red>에서는 전시장에서 이동하는 관객의 동선에 따른 소리의 배치와 공간성을 고려한 사운드를 제작하는 것에 고민이 많앗다. 순간의 찰나에 사운드를 들을 때, 전시장이라는 충분한 공간감을 느끼며,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패턴들로 전시장이 오픈되어있는 긴 시간동안 매번 새로운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었다.

 Q. 레드 시리즈와 관련한 추후의 작업계획이 있다면?
5월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한 <#include red>는 오디오비주얼 전시 버전으로 만들었다. 추후에는 이 작품을 퍼포먼스 버전으로도 제작, 전시와 더불어 퍼포먼스로도 관람 가능한 작품으로 작업할 계획에 있다. 또한 이번 작품의 컨셉을 바탕으로 red뿐만 아니라 다른 색깔 또는 다른 물리적 현상에 따른 #include 시리즈를 제작하려 한다. 

 * 그레이코드, 지인은 인천아트플랫폼에 3월부터 5월까지 머물며 협업을 통한 다양한 사운드미디어아트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 실험의 첫 번째 결과를 이번 전시 <#include red>를 통해 선보였으며, 2016년 9월 진행될 오픈스튜디오에서는 공연버전의 <#include red>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들의 다른 작품과 정보는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www.inartplatform.kr)와 작가 개인 홈페이지(그레이코드 www.theGRAYCODE.com/ 지인 www.jiiiiin.com)에서도 볼 수 있다.

정리 : 인천아트플랫폼 오혜미 큐레이터




반갑습니다! IAP 7기 입주작가 소개 – 김유정

 

숨과 숲 사이에서, 김유정
김유정은 서양 중세부터 벽화 기법으로 사용되던 전통적인 프레스코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그녀는 캔버스에 흑석을 도포한 후 석회(회벽)가 마르기 전 스크래치(긁기)하는 기법을 반복하며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이러한 일련의 전통적 작업과정들을 통해 전통과 동시대 미술을 연계한 길항 관계를 모색해 나간다. 그리고 회벽을 긁어 화면에 생채기를 내는 기법은 ‘우리 삶의 상처 치유를 갈망하는 현대인과 그들의 삶을 표현하는 기법적 은유’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작품제작 방식에 있어 미세한 요철들의 스크래치 기법은 치유를 갈망하는 상처받은 현대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기법적 은유이자 현대인들의 삶 그 자체이다. 또한 작품 프레임 안에 재단된 ‘인공화된 자연’ 혹은 ‘도시화된 자연’의 풍경은 인간중심주의, 인간의 욕망, 문명의 이기심, 도시주의에 속해버린 자연관, 화분과 같이 인간의 소모품이 되어버린 생명 등을 상징한다. 이는 획일화된 일상이 강요되는 현대인들의 씁쓸함을 그들이 가두어 놓은 관상식물을 통해 반증하려는 것이며,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우리들의 삶과 고민을 자연적인 물질로 승화시키고자 함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상실된 내면을 시각적으로 정화시키는 치유의 정원을 선사하고 있다.

sub10_02Q. ‘프레스코화’ 기법을 고수하며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는데 의도가 있는가?
회벽에 행해지는 대상의 재현, 그 이면에 은폐된 미세한 요철의 생성들은 ‘긁기의 스크래치적(외상적)’ 행위과정을 통해 심리적인 치유를 대변하는 기법적 은유이자 삶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원래의 대상이 가진 의미가 사회적 목적으로 바뀌어 버린 현실을 나의 시선에 의한 관념적 정원 속에서 관람자의 감각이 동화된 반려의 장을 프레스코회화, 사진 등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Q. 새로운 제작 방법을 사용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며 어려움은 없는가?
동시대 작가로서 전통적인 방식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시대와 사회, 문화의 상관관계 속에서 예술이 발전해 왔고 그 모태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대 회화에 대한 진정성있는 고민과 작업의 키워드에 부합하는 매체로써 중요하게 부각되고 보여지기를 바란다.

Q. 전시제목이 ‘조각난 숲’인데 제목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전시 제목 <조각난 숲(Carved Grove)>은 지금까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식물들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 정원이나 식물원과 같이 자연이라고 생각되는 인공적인 환경과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미와 함께, 내가 오랫동안 지속해온 ‘긁기(조각하기)’라는 행위들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sub10_01 Q.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매체와 방식을 확장하였다. 그간 집중해 온 2차원 캔버스 작업인 프레스코회화의 근작과 신작이 다수 포함되는 반면, 설치 작품 ‘숨(Breath)’과 ‘숲(Grove)’, 식물 미로를 담은 사진 작품, 철사 와이어로 식물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촬영한 사진 작품 등을 전시했다.

 Q.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설치 작품 ‘숨(Breath)’과 ‘숲(Grove)’ 작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
[숨(Breath)]은 인공적인 자연에서 빛을 투과하여 보여지는 농담의 깊이를 감상케 한 작품으로 생존을 위해 숨가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역설적으로는 인위적인 자연의 공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상황의 재현으로 거짓이 만들어낸 시스템 안에서 때때로 쉼조차도 강요당할 수 있음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은 도시에 사는 인간에게 익숙한 인테리어 식물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물음을 제시하는 설치 작품이다. 회벽을 바른 조형물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명으로 강조된 공간을 가득 메운 ‘스투키’ 를 대면하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공기정화 식물이라는 긍적적 느낌과는 달리 뾰족한, 폭력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자신을 집안에 가둔 이기적인 인간을 향한 식물의 복수심과 폭력성으로 그로데스크한 장면을 연출하듯 말이다.

Q.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계획은?
인천아트플랫폼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의 방식, 혹은 그의 방식이 어울리는 개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또한 내 작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인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레스코 워크샵을 해보고 싶다. 감상과 체험하는 미술로서 문화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문화의 협력을 지원하는 자로, 혹은 제반 주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자로 상호보완적인 긍정적 성과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회화에서 시작된 내 작업은 ‘환영과 형식적인 조건’, ‘비재현적인 방식과 재료’ 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제도권 속에서 미술로 수용된 회화라는 양식의 범주를 벗어난 비회화적인 재료와 비재현적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과 가치 인식이 가능한지를 실험해 왔으며 그런 맥락 속의 대안적인 미술과 미술품을 제안하고 제작해왔다. 소비되는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고 기술과 자본의 영향 밖에서 새롭게 가능한 미술이 무엇이 될지 사회와 역사, 그리고 문화라는 컨텍스트(Context) 위에서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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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IAP 7기 입주작가 소개 – 최선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들과 함께 2016년도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들을 만나봅니다. 첫 번째 만날 작가는 “예술의 가치가 외형적 근사함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통념적 미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그 태도 속에 담긴 생산적 가치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최선입니다.

작가 홈페이지 ssunya.net

환영을 넘어서
전시장에 추상표현주의 혹은 엥포르멜 회화 즈음으로 보이는 정갈하고 도도한 거대한 회화작품이 걸려있다. 강렬한 색채, 익숙한 선과 획으로 포장된 드라마틱한 물결 앞에서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사실 더러운 오수의 장식적인 부분을 그림의 형식으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지하게 된다. 작가 최선의 < 오수회화(적분의 그림), 2015 >이다. 최선은 돼지 한 마리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들어 관람객의 체온에 녹아버리는 그림을 만들고, 공기 중에 유출된 무색무취의 맹독성 화학물 불산(HF, Hydrofluoric Acid)을 채취해 작품을 만든다. 그는 짐승과 사람 털을 태운 가루를 온 전시장 벽에 발라 가득 채우기도 하고, 심지어 물감 대신 캔버스에 침을 뱉어 말려 그림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으나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롯해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관례적인 표현방식과 형식의 예술 틀에서 한 걸음 비껴나 본다면, 물질성 너머 보이지 않는 가치 속에서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은 동시대 미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하며, 문화의 한 형식으로 현대미술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의미의 균열을 만들어 내는지를 탐구해 왔다. 그는 오늘도 스튜디오에서 자신과 사회 현재의 문제들을 어떻게 시각적 언어로 담아낼 수 있을지를 실험해 나간다.

Q. 작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한 메아리전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 메아리, 2015 >는 급격히 사회가 과거로 회귀해가는 요즘, 어린시절 똥물로 넘쳐나던 변두리 개천 다리 밑에서 토치로 개의 털을 태우던 어른들의 과거 문화를 떠올리며 손바닥이 까지도록 벽에 짐승의 털가루를 발랐다. 짐승들의 털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벽은 한국의 과거를 들춰내는 벽화이며 동시에 시대적인 오브제이다. 미화되는 과거를 현대적인 화이트큐브 속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주고자 했다. 접착제 없이 벽에 달라붙어 있는 털가루들이 먼지처럼 떨어진다.

Q. 사람들과 함께 진행한 < 나비 프로젝트 > 또한 인상적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너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 명 한 명의 보이지 않는 숨길을 드러내는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 나비 프로젝트 >는 2014년 안산의 길거리에서 마주친 외국인 노동자들과 처음 시작했으며, 참여자들은 관념적으로만 인식하기 쉬운 자신의 숨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개인들이 동일한 숨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작가는 누구이고 또 예술작품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미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하나의 담론을 만들고자 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졸업 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 동냥젖, 2005 >이다. 당시 이 작품을 선보인 전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모든 언어를 총동원해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당시 관념화된 미술교육이 몸서리치게 싫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을 전시하며 배운 것이 크게 두 가지 있다. 내 스스로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작품은 작품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기에 사람들을 벗어난 세계에서는 예술이 있을 수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 다 른 한 가지는 내가 그토록 찾던 ‘새로운 것, 새로운 예술’ 이라는 것이 너무나 낯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그저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낯선 것’을 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이를 격려해주고 공감해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 동냥젖 >을 통해 아름다운 것만이 벽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불쾌한 것, 부식되어 형식은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 짓밟히고 그 형태가 뭉그러뜨려지는 것을 통해 진정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Q. 똥, 피, 침, 폐유, 오수, 재 등 더럽다고 간주되는 재료나 소재가 대거 등장한다. 이런 소재들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 실바람 >은 요코하마의 화장터에서 유골 분진을 얻고 그걸 전시장 바닥에 뿌려 설치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뼛가루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뜨면서 실바람처럼 움직이는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뼛가루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먼지처럼 달라붙어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동안 강제 출국당할 위기도 있었고, 전시를 못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언짢아하기도 하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대응하다가 지금은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일 수 있으니까.

Q. 작가 최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나는 모호한 예술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호한 의문을 더 선명한 물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실천을 해왔다. 내 시간과 겹치는 한국현대미술의 부조리한 과거를 뒤에 두고, 과연 무엇이 예술적이며, 무엇으로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이곳을 둘러싼 서구중심적 예술의 통념들이 낳은 모호함 앞에서 당신과 내가 또렷이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의 참혹함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예술적이다. 미술품을 만드는 나의 ‘미술’에는 이중적인 것이 있다. 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이지 않은 것, 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이지 않은 것, 선명한 것과 선명하지 않은 것, 그리고 미술적인 것과 미술적이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예술적인 것과 예 술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예술’이 사라져 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술품을 만들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예술적’이지 않은가?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회화에서 시작된 내 작업은 ‘환영과 형식적인 조건’, ‘비재현적인 방식과 재료’ 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제도권 속에서 미술로 수용된 회화라는 양식의 범주를 벗어난 비회화적인 재료와 비재현적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과 가치 인식이 가능한지를 실험해 왔으며 그런 맥락 속의 대안적인 미술과 미술품을 제안하고 제작해왔다. 소비되는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고 기술과 자본의 영향 밖에서 새롭게 가능한 미술이 무엇이 될지 사회와 역사, 그리고 문화라는 컨텍스트(Context) 위에서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