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세상에 일부러 잠입한 듯한, 세상에서 일부러 혼자인 듯한, 작가 ‘신민’
소외된 세상에 일부러 잠입한 듯한, 세상에서 일부러 혼자인 듯한, 작가 ‘신민’
여린 종이로 제작된 작가 신민의 작품은 거칠게 다루기에는 겁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거친 질감, 뭉뚱그린 외형과 달리 종이 한 장 한 장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그녀의 작품은(금방 찢어지는 종이의 속성이 무시된 채) 외형의 모습처럼 강한 강도를 갖는다. 신민은 동시대의 나와 나의 주변인들, 그리고 제 3자를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삶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소외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작품 속에서 발견해볼 수도 있다. 야무지지 못하고 무기력해보이고, 어쩌면 아파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금방 찢어져 소멸될 수 있는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단단해져버린 덩어리가 되어 어지간한 힘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작가 신민은 비판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맥도날드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신민 작가와의 만남에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한 기업의 CEO가 근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속으로 위장 잠입했던 TV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처럼 작가도 작품 제작을 위해 일부러 맥도날드에 위장 잠입한 것인가, 그리고 일부러 그들만의 세상인 듯(혼자인 듯)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했나였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주술적인 느낌을 준다.
A. 사람들이 전시를 본 후 화내고 슬퍼하고, 내게 고민을 던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 내가 생각하는 창작은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반응을 얻는 행위인 것 같다. 어릴 때 나름대로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쟁취하지 못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해오면서 초월적인 존재, 힘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귀신을 불러내는 주술인 ‘분신사바’, 소원을 이루어주는 부적이나 기도 등을 몰래, 굉장히 열심히 했다.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주술 행위를 하듯 의도적으로 하기보다는 무의식적인 흐름에 따라 완성했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작품에 기운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계속 주술의 방식으로 작업을 양산했는데 얼마 안 가서 결국 비슷비슷한 소원과 응답에 싫증을 느꼈다. 그리고 방에 쌓여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여성들, 그것도 상처 입은 모습의 여성들만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실 (원래는) 여성에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 할인시간 때마다 정말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 햄버거, 콜라, 아이스크림, 커피를 담고 만들고 포장하면서 몸이 상하고, 관절이 아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팠던 것 같다. 런치 시간이 끝나면 감자포대가 어마어마하게 버려지는데, 이 포대를 보고 느낌이 왔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퇴근할 때마다 쓰레기를 챙겨 와서 아르바이트생의 군상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작업은 미술 잡지보다 오히려 시사지에서 보도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공감해주는 계기가 됐다.
Q : 작품에서 과감하고 (날 것 같은) 거친 느낌이 든다. 대화를 할 때도 작품처럼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오묘하게도 작가를 대할 때, 그리고 작품을 바라볼 때에 동일한 단어가 떠오른다. ‘일부러’, ‘잠입’, ‘홀로 조용히’…. 그러한 느낌은 조각상들이 (홀로가 아닌) 함께 모여 있는 <모의 생일잔치>(2007)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은 한 공간 속에 함께 모여 있지만, 히키코모리를 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무서운 세상 바깥에 놓여도 겁 하나 낼 것 같지 않은 작품 속의 그들은, 오히려 소외되어 보이고 그들만의 세상 깊숙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나는 담력이 없다. 계획된 잠입 같은 것은 해 본 적 없다.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쉽게 피곤해져서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생일도 가족과 친구들 양쪽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 보내왔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보람차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인간관계에 금이 가도 괜찮았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작품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Q :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어떠한 특정한 사건, 정확한 타겟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대표 작품인 <견상(犬 狀)자세 중인 알바생>(2014)과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중심으로 작품의 타겟과 내용을 짧게 설명해주면 좋겠다.
A :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화나 나서 만들게 된 맥도날드 작업들은 청년들의 보편적 상황과 나의 상황의 동일한 지점, 자본주의 시대에 맥도날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삶의 현장에서 수집한 질 좋은 미국산 감자포대가 작품 제작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고, 생각한 대로 작품이 잘 나오게 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맥도날드 작업 이후로는 전쟁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의 상황을 스포츠의 속성을 차용하여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Q :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는가?
A : 우선 종이로 캐스팅을 하고, 그 위에 연필 등으로 드로잉을 한다.
Q : <경숙>, <은숙>, <은주언니>, <딸기코의 딸들> 등 작가의 대다수의 작품에는 여성들이 중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작가가 작업 중인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있는가?
A : 일상에서 혼이 나갈 대로 나간,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여성의 상황을 흔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고, 잊을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그리고 만든다..
Q : 아까 최근의 고민을 언급했는데 바로 ‘태도’에 관한 얘기였다. 작가의 실제 경험을 체화시킨 후 작품에 녹여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리서치에 기반한 창작) 사이에서의 고민이으로, 태도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인 것 같은데?
A : 맥도날드 작업으로 예기치 않은 관심을 받았고, 운 좋게 인천아트플랫폼에도 입주하였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고, 경력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발되는 곳이기에 작업이 실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작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있는지, 실적에 좋은 이야기를 실적을 쌓기 좋은 모양으로 하는지 계속 스스로 묻고 있다. 부끄럽지만, 이게 고민이다.
Q : 마지막으로 <인천문화통신 3.0>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영상 작업에 출연해 주실 여성 출연자 분들을 찾고 있다. 신체 노출은 없고, 얼굴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참여하고 싶거나 관심있는 독자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겠다. 의향이 있다면 8월 17일(수)까지 핸드폰(010-2649-1879)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주셨으면 한다.
○ 자 격 : 작가가 제작한 의상을 착용하고, 기괴하고 격렬한 움직임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분
○ 모집인원 : 10명
○ 일 시 : 8월 19일(금), 오후 1~7시
○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인천역 도보 7분)
○ 사 례 : 참가비 5만원(지원금 사용 절차상 입금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 식사 제공
글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