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현

<드로잉-뒤로넘어지는의자_65×90cm_피그먼트 프린트_2015>

<뒤로넘어지는의자_50×16×43cm_PVC, 레진_2015>

사진으로 치환된 결과물들의 다수는 오히려 실제와 기억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에 대한 고민들은 보이지 않는 차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강주현은 일련의 사진작업들을 통해 사진과 조각, 드로잉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사진조각과 사진드로잉의 형식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의 재현적 사진을 입체로 구현해 사진조각을, 사진을 중첩된 선들의 집합으로 재구성해 사진드로잉을 실현하는 것이다. 사진을 단순히 대상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여러 가지 조형적 특성을 발굴하고 실험하여 대상을 구현함으로써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과 사진이라는 매체의 미세한 차이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차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경계를 허물게 할 것이다. 현재 <감정의 신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는데, 이는 특정 대상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차이를 투영하여 새로운 오브제들을 만들고 이에 관해 연구하는 작업이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도 역시 경계의 위치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실험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단순히 보고 느끼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상상력이라는 요소들을 이용하여 새롭게 조합되거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로, 이미지의 개념을 새롭게 확장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다.


<드로잉-뒤로넘어지는의자_70×90cm_피그먼트 프린트_2015>

<뒤로넘어지는의자_49×17×43cm_PVC, 레진_2015>
<드로잉-세번돌려그리는선_85×100cm_피그먼트 프린트_2015>
<드로잉-엉키게그리는선_95×115cm_피그먼트 프린트_2015>
<드로잉-곧게엉키게다시곧게그리는선_120×360cm_피그먼트 프린트_2015>
작가노트

어린시절 나의 프레임엔 거센 바람에 춤을 추는 나무들과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아련한 해질녁 수평선이 가득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그러하듯 나는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랬다. 하지만 막상 사진으로 치환된 결과물들의 다수는 실재와 기억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경우가적지 않았다. 사진은 기억들을 기록하는데 유용하지만, 내가 대면했던 대상들에 대한 순간의 감정들은 재생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들은 경계를 만들어내는 차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이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며 둘의 경계를 허물 수는 없을까, 그 차이라 불리는 것들을 만들 수 있다면 새로움에 대한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런 사진에 대한 고민들과 일련의 사진작업들을 통해 사진과 조각과 드로잉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조각, 사진드로잉의 형식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의 재현적 사진을 입체로 구현해 사진조각을 실현하고, 사진을 중첩된 선들의 집합으로 재구성해 사진드로잉을 실현한다. 단순히 기록되는 사진이 아닌 실재와의 차이를 통해 새롭게 다가오는 대상을 구현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세상에 대한 경계를 허물게 하며, 나를 끊임없이 실험하게 한다.

http://blog.naver.com/jubal81k




김홍기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7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들이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7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 분들을 소개합니다.

magNIP_12, 김홍기

김홍기

미술비평가, 번역가, 미학 연구자. 동시대 작가, 작품, 전시, 담론에 대한 글을 쓴다. 또한 미술과 철학 분야 해외서적을 번역하며, 개인적으로 매체미학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김홍기는 오늘날 미술의 이론과 실천이 간직한 동시대적 징후를 수집하며, 발터 벤야민, 질 들뢰즈,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자크 데리다, 조르조 아감벤, 장-뤽 낭시 등이 개진한 현대철학의 논의를 주된 이론적 참조로 삼아 다분히 무질서해 보이는 동시대미술을 관통하는 공통의 개념들을 모색하고 있다. 입주 기간에 김홍기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시간의 감속과 사건의 지연이 지니는 미학적, 정치적 의의를 밝히는 작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다가올 해방의 유토피아를 앞당기는 가속과 진보의 시간관으로 대표되는 지난 세기의 아방가르드와 달리, 다가올 파국과 디스토피아를 지연시켜야 하는 오늘날의 예술적 실천이 갖춰야 할 에토스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연계의 (불)가능성_동시대 미술의 범주들(2016) 중 일부]

20세기 후반기는 아마도 온갖 종류의 종말론에 시달린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예술계에서는 회화의 종말, 모더니즘의 종말, 더 나아가 예술의 종말이 거론되었고, 정치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로 역사의 종말까지 회자되었던 것이다. 1999년 말 불어닥친 밀레니엄 버그 소동은 이 모든 사망선고로 인해 증폭된 불안이 응집되어 나타났던 민망한 해프닝이었다. 시간은 인간의 호들갑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며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21세기의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내고 있다. 알다시피 거의 모든 것이 종말론의 저주에 희생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회화와 조각부터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택해 다양한 양식을 구사하며 활동하고 있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는 유예되고 갈등과 반목의 역사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우후죽순 생겨났던 종말론들은 그저 세기말이면 한차례씩 휩쓸고 지나가는 주기적인 열병으로만 여겨야 할 것인가? 미술계와 관련하여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리오타르의 말처럼 거대서사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이나 또는 그 외의 다른 어떤 담론도 그 자체로 유효성을 상실하진 않았지만, 이제는 그중 어느 것도 거대서사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예술을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한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실각한 것이다. 위계와 기준을 세우는 거대서사가 신용을 잃자 그 자리엔 숱한 담론과 실천이 각각 작은 서사로서 평등한 권리를 갖기 시작한다. 리오타르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포스트모던한 상황”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미술을 총체화하고 정돈할 아무런 규정도 없는 이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이란 그저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라는 다소 중립적인 명칭에 합의하는 것뿐이다.

* 이 글은 2016년 12월에 발행된 New.In.Paper NIP(newinpaper.com) 프로젝트에서 발표된 글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김홍기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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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게임 속의 당신, 개인에게 잘못을 탓하지 말길, 작가 ‘조원득’

 

잘못된 게임 속의 당신, 개인에게 잘못을 탓하지 말길, 작가 ‘조원득’

01

낯선 직장에 출근한지 몇 달 안 됐을 무렵, 수많은 일들과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허둥지둥 손과 발을 움직여 헤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상한 상황이라 사표를 내고 싶었지만, 오히려 나는 나약한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 상황들 속에 버티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고, 나를 화나게 만든 상황들에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조직 앞에서 다시 굴복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까지는 낯선 상사가 한마디 건넨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마.” 그것은 어떤 것보다도 큰 위로이고, 한편으로는 해답 없는 막연함이었다. 조원득 작가에게 그 위로를 다시 받는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지 9개월 정도 됐다. 입주 기간 동안 해온 일들, 그리고 지내온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심정이 궁금하다.
A. 그동안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업해왔다면, 올해에는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고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예전 작품 ‘공동체’를 보면 공동체 속에서의 고통 받는 개인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리는 방법적인 면에서도 예전에는 벗은 인체를 갖고 불안전하게 그리곤 했는데, 그것도 어쩌면 나름의 강박이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던 와중에 입주 기간 동안 나름대로 시도를 해서 자유롭게 그려봤고 개인전까지 열게 되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는 발전적인 일들이었다고 생각한다.전에는 혼자 그림을 그려왔다. 동문들 전시 정도에만 가고, 다른 학교에서 작업했던 작가들을 만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작가들의 뒤풀이에 가거나 교류하는 활동을 하지 않았고, 다른 작가들이 모여서 하는 그룹전의 경우에도 전시만 했지 작가들과 친해지고 작업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았다. 작가들과 이렇게 함께 기획(괘념미술 전에서는 평론가, 작가와 ‘아노님’으로 작업)하고 얘기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동안 정보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함께 입주한 최현석, 최선 작가 등이 지식적인 부분부터 미술을 하며 느꼈던 일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공유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고, 좋은 기회였다.
  02

Q. ‘잘못된 게임’은 지난 작품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 날것의 느낌이 든다. 그 날것의 끝(완성)을 어디로 보고 있는가?
A. 앞으로 더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 지금보다 거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뺄 수도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Q. 관심 있는 창작의 소재를 찾을 때, 보통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과 매체와 주변 등 간접적인 경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A. 둘 다 중요하다. 기사, 인터넷 사진 같은 것을 활용해서 거기에서 느끼는 특이한 감정을 그림에 담을 때도 있다. 인천에 살다가 아예 짐을 빼서 이사를 하면서 힘든 경험이 있었다. 계약 기간이 다 돼서 집을 빼야 하는데, 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얘기하자, 가족과 친구 등 친한 사람들조차 내가 그 사람에게 똑바로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고 트집잡는 거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서 작업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10년 전에 본 ‘울 100%’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버림받은 자매가 주인공인데, 자매는 새벽마다 사람들로부터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나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한다. 그리고 오뚜기 인형을 주웠다면, 깨끗하게 닦은 후에 그 모습을 공책에 그리고 이름을 짓는다. 나중에는 버려진 물건들을 너무 많이 모아서 집에서 넘칠 정도가 된다. 쓸모없는 것들이 버림받은 자매에 의해 닦아지고 이름까지 붙여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버려졌던 자매가 버려진 물건들을 모으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모으는 것과 같은 행위였을 테고, 나중에는 그것들을 불태우면서 극복하는 것으로 영화에는 나온다.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어떤 새로운 것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서 언젠가 작업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쳐지나가며 읽은 기사 속에서 느껴졌던 감정을 그릴 수도 있고, 방금 말했듯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것들을 갖고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경계를 두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Q. ‘잘못된 게임’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의 내용을 떠나서 전체적으로 꽉 막힌, 무엇인가가 얹힌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작품 한 점씩을 읽어보려고 하면 솔직히 굉장히 어렵다. 어떤 내용이 담긴 것 같기는 한데, 명확하게 작품의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내용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편인가?
A. 그렇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여러 방향으로 해석됐으면 한다. 감정이 뭉뚱그려진 점이 분명히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느끼기보다 그림을 보고 불편한 감정, 무서운 감정 등을 느꼈으면 한다.
 03

Q.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 속 자신의 생각을 쉽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에 반대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전시장에서 궁금해서 물어본다면 어떤 의도로 작업했는지에 대해 말을 안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굳이 보는 사람의 생각에 앞서 작가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04

Q. 처음에는 인체의 살이 보이는 작품이 더 강하고 잔인한 느낌이 들었지만, 작품을 보면 볼수록 ‘지리멸렬’ 작품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작품을 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A. 죽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사는 느낌일 수도 있고, 쉬고 싶은데 아침에 꾸역꾸역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 하는 느낌일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정을 담은 것이다. 작품을 그렸던 당시에는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해서 오전에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느낄 때의 감정은 마치 (그림처럼) 불을 꺼야 하는데 수심이 깊을지 안 깊을지도 모를 물에 함부로 뛰어들 수도 없고, 무섭게 느껴졌다.
  05

Q. 작품에 약자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약자의 모습이 약자같지 않아 보이게 그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짐승 같은 어린 아이의 모습, ‘바르게 살자’ 돌 앞바닥에 앉아 있는 술 취한 노숙자 같은 남자의 모습, 옷을 벗은 여러 명이 테이블에서 무엇인가를 삼켜 먹듯 하는 모습들이다. 의도한 것인가? 길을 지나가다 소위 약자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무서워하게 되는데… 그것처럼 의도하여 표현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감정 속에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인가?
A. 나무 위 어린 아이의 그림을 보고 김홍기 평론가가 ‘약자와 동물의 폭력성을 연계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약육강식 작품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약자가 강자에게 항상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마치 강자인 것처럼 포장하며 살아가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도와 의도하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 어린이의 눈빛이나 약육강식의 깃털은 의도한 것이고, 눈에서 불이 나는 노동자의 경우에는 무서워 보이기보다는 처절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바르게 살자’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인위적으로 거친 느낌을 주기보는 그들이 가진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Q. 언제부터 약자와 권력화 된 것들에 대한 반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는가?
A. 조교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교수들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느꼈었다. 당시에는 얼굴에 십 원짜리 훈장이 달린 ‘무조건 충성’이라는 그림으로 교수와 조교 간의 권력 관계를표현했다. 그때부터 사람들 사이에 작동하는 권력 관계에 관심을 가졌는데,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보통 그림을 그릴 때 나 자신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내가 속한 가장 작은 사회인 가족, 그 가족 속에서 느꼈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의 힘, 남녀의 문제, 돈 있는 자와 없는 자 등에 대해 작업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회와 나에 대해 작업해왔고, 지금은 딱히 나로 한정짓기보다는 더 전반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Q.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그 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크게 반향을 일으키는 작업을 하기보다는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길 바란다. 다만 관객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이야기를 공감하고,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정도만 돼도 좋겠다. 앞으로 더 공부를 해서 발전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다른 작가들에게도 물어봤었는데 동양화라는 매체에 집착하는가? 아니면 작업 필요에 따라 매체와 범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가? 작가의 작업을 보면 유화의 느낌이 들 때도 있다.
A. 딱히 유화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최근에 서양화 붓을 썼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동양화 붓은 길어서 툭툭 치는 듯한 느낌이 나지 않아 서양화 붓을 쓰게 됐고, 많은 재료들 중에 표현하기에 느낌이 좋은 것을 선택해서 쓸 뿐이다.

Q. 전문적으로 예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 보이는데?
A. 그런 부분에 부담이 많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힘든 일이고 도전이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들어오면서 입주 작가들에게 내 작업을 소개하는 플랫폼 살롱, 오픈스튜디오 등은 그래서 꽤 큰 도전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겪다보니 공포증은 조금씩 없어진 것 같아서 좋은 경험이었다.

Q. 내년도 계획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A. 아까 말했던 ‘쓸모없는 것’에 관한 작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개인전을 위한 작업을 해볼 예정이다.

* 조원득 작가의 작업과 전시 소식은 페이스북과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홈페이지 : http://wondeuk.blogspot.kr


 
정리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지금 여기에 있음’ 으로서의 연극, 덕스씨어터

 

‘지금 여기에 있음’ 으로서의 연극, 덕스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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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덕스씨어터(Dirks Theatre)가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입주작가로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인천에서 활동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덕스씨어터의 멤버 우메이보(여)와 입카만(남)은 팀의 공동 디렉터이자 그들 스스로 배우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 여독이라는 말이 무엇이냐는 듯 고향에 돌아간 기쁨과 편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또 다른 레지던시를 준비하고 있단다. 인천에서의 작업과 활동은 과연 어땠고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덕스씨어터에 대해 알려 달라. 덕스씨어터가 창단된 것은 언제였으며, 어떤 계기에서였나?
덕스씨어터는 2009년 홍콩에서 설립되었다. 몇몇 배우들과 함께했고, 우리는 우리만의 작업 방식을 개발하고 예술적 비전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가끔씩 경우에 따라 만난다’는 원칙 하에 활동하였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프로듀싱하지는 않았다. 2011년에 나(메이보)와 카만이 영국에서 공연관련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둘이서 덕스씨어터를 풀타임 극단으로 발전시키고 프로젝트를 지속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후 우리는 공연자(퍼포머)들의 트레이닝 방법론을 연구했고,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렸다. 카만의 근거지는 주로 마카오였기 때문에 우리의 작업들은 주로 홍콩과 마카오 두 도시를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해가기를 원했고, 그래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함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공연을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 공연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국제문화교류 리서치 프로젝트나 공동 프로덕션에 참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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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레지던시 경험의 만족도는?
지난 5년간 작업 활동을 해오면서, 우리는 그간의 경험과 창작 방식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예술적 환경과 지원이 가능한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학제간, 문화간 협력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과 협업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은 물론 매우 역동적인 아트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서울에서 공연 투어를 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지리적 위치나 분위기 등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사실 인천아트플랫폼이 우리의 첫 번째 레지던시 경험이었고,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서포트, 다른 입주예술가들과의 일상적인 교류는 우리의 지식과 관점들을 여러모로 확장시켜 주었다. 감사한다.

Q.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기간 중에 행한 리서치나 창작 활동들은 덕스씨어터의 작업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
우리는 둘 다 홍콩에서 전문 배우로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추후에도 덕스씨어터 이름으로 창작과 감독(directing)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레지던시에 지원하기 전부터 공연자들을 위한 트레이닝 교수법을 연구해 왔고, 이를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풀어나갔다. 새로운 공연을 창작할 때마다 ‘열린 창작 과정(open creative process)’을 도입하는데, 공연 프로덕션의 다양한 측면을 발견하고 형식을 고안해 내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연의 내용, 테마, 심미적 부분, 연출 방식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극의 구상을 시작한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중에도 이러한 방식과 그간의 경험을 강화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해 보려고 하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작업과 리서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며 아주 순수하게 예술적인 공간이었다. 특히 인천아트플랫폼은 여러 문화유산이 만나고, 지역적 특성과 국제적 면모가, 전통과 현대가, 개인과 공공이 상존하는 접점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 아트플랫폼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시공’은 우리 연구와 창작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열쇠 요소라는 점에서 적절한 장소에서 중요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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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을 떠나기 전에 <실비아 플라스 되기 Becoming Sylvia Plath>라는 쇼케이스 공연을 보여주었다. 줄거리와 시놉시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면?
<실비아 플라스되기>는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 시와 전기들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한 유명한 시인의 일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 삶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으로, 그녀가 겪었던 사회적 상황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하기에 이르는데, 이후 그녀가 자살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조차 ‘지난 밤에 무슨일이 있었나?’하고 어떤 시에서 물었을 정도다.
우리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지는 못한다. 그 사람이 우리와 가깝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일지언정 완벽한 동일시는 가능하지 않다. 극에는 두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둘의 대화를 역동적인 몸짓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극의 기본 플롯이었다. 두 명의 캐릭터는 남과 여, 음과 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역할들이 각자의 자존감이나 가족과 연인간의 친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관객들에게는 그저 숨 막히는 관계를 타개해 보려 애쓰는 남녀 커플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전달하기 보다는 신체의 움직임과 시각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우리가 전하려는 테마와 주제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각자의 상황들과 연결시켜보기를 바란다. 공연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역할이라는 오랜 전통과 개인에게 부과되는 기대치들이 행복, 절망, 사랑이라는 관념과 감정에 얼마큼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Q. 말한대로 <실비아 플라스되기>는 남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무대에 소품으로 사용된 각종 옷가지들은 현대 사회가 남성과 여성에게 부과하는 역할에 대한 은유, 메타포인 것 같은데… 어떤가?
그렇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관찰하고 파악한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에 관한 통념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복들을 사용하고 싶었다. 이러한 옷들로 개인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아이덴티티가 겉에서 바라보는 이미지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는 사회 역할의 스테레오타입을 드러내는 옷들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시간상으로 쉽지 않았다. 군복, 간호사 복장, 교복, 회사원 양복, 공사장 인부들의 작업복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모두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옷은 좀 부족했지만 관객과의 교감에서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디자이너들과 상의해서 공연을 좀 더 다듬을 것이다. 그러면 관객들에게 좀 더 완결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Q. 무대 위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장치로 ‘거울’이 있었다. 특별한 의미나 거울을 통해 노리고자 했던 효과가 있는지?
작업 초기 구상단계부터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거울’의 의미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각자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공연자든 관객이든 거울의 반영적 특성을 인지하면서, ‘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 반추해보자는 것이었다. ‘거울 속 반대편 세상’을 탐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거울을 통해 현실에서 멀어지는 기분도 가질 수 있고, 주체로서의 개인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심리적 지평을 비추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극 공간에서는 ‘현실’과 ‘상상’이 마주치고 공존한다. 우리는 항상 이 사실에 매우 매료된다. 가끔씩 매우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무대 세트를 만들고 연극을 할 때조차도, 우리는 이 ‘현실’과 ‘상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에서 관객들의 감정을 연결시키고 극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는 작업의 구상 초기부터 우리가 매우 신경 쓰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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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비아 플라스 되기>에서는 대사보다는 몸의 움직임이나 제스처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의 움직임이 안무라고 할 정도로 무용에 가까웠다. 
신체의 움직임과 제스처는 우리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온전히 텍스트에 기반하는 정통 연극보다는 ‘신체적 연구’의 영역에 좀 더 접근하고자 한다. 실제로 그런 작업들을 프로듀싱해왔다. 아마도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이나 훈련들이 우리를 이런 작업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 것 같다. 흔히 연극이라고 하면 생각하게 마련인 텍스트 기반의 드라마들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창작 과정은 신체 언어로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허설은 항상 몸 작업으로 시작한다. 우선 몸의 맥박들을 깨운다. 공연이라는 경험은 일차적으로는 공연자가 생생하게 겪고 느끼는 신체 경험이다. 이런 점에서 몸의 움직임이 우리의 매우 중요한 작업 ‘도구(tool)’인 것이 맞다. 우리의 작업 방법론의 핵심을 말하라면 ‘배우의 존재로 공간을 활성화 하는 것(the activation of the space through an actor’s presence)’이라 답하고 싶다. 이와 더불어, 조명, 소리와 음악, 무대 세트 등 외적인 요소들의 조합을 세밀하게 고려하고, 이 모든 요소들이 함께 숨 쉬고 서로 상호작용하여 공간이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게 하려고 애쓴다. 공연장은 관객들의 시각적, 감각적 여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공연장에서의 시각적이면서 신체적인 경험, 에너지의 상호 이동이 우리 미학의 주요 요소라 할 수 있다.

Q. 인천아트플랫폼의 동료 입주작가인 서영주 작가가 이번 공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이처럼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은 덕스씨어터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장르와 분야, 문화가 다른 예술가들과 작업하는 것을 즐기고,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협업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든 개인적인 부분에서든 독특하고 새로운 관점과 지평을 열어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서영주 작가가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한국어로 낭독해 주었고 이를 녹음하여 공연에 음향으로 사용했다. 서영주 작가의 음성이 공연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해 주었고,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서영주 작가와는 젊은 여인, 할머니 음성 등 여러 가지 버전의 녹음을 시도해 보았고, 우리도 중국어로 시를 낭독해 보았다. 그것 자체로도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Q. <실비아 플라스되기>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작품이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 공연 스케줄이 잡힌 것이 있는지? 
물론 이 작품을 좀 더 다듬고 발전시키는 등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은 여지없이 확실하다. 하지만 일단은 조만간 타이페이의 뱀부 스튜디오(Bamboo Studio)에서 두 번째 레지던시가 계획되어 있어 그 준비에 집중하려고 한다. 홍콩, 마카오, 한국의 공연 관계자들과 ‘망명과 정착’이라는 주제로 협업을 할 계획이다. 이것이 끝나야 인천에서 했던 작업들을 되돌아볼 시간이 될 것 같다.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작품의 미적 측면을 좀 더 섬세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다른 예술가들을 초빙할 계획도 있다. 드라마터그를 초청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극을 바라보고, 움직임이나 도구 사용의 맥락을 넓히거나, 공연의 주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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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덕스씨어터가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가 연극이라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았다. 연극을 통해 우리는 호기심을 잃지 않을 수 있고, 현존한다는 느낌,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간직할 수 있다. 연극은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사실 그 자체를 너무나 잘 드러내는 매체이다. ‘지금 여기에 있음’을 신체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타인들과 조우하면서 공유하는 것이다. 연극은 또한 우리에게 빈 공간이나 다름없다. 비어있기 때문에 일상의 경험과 걱정들을 가져가서 자세히 살펴보거나 질문해 볼 수 있고, 비록 답이 없을지 몰라도 무언가 또 다른 관점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각자의 경험과 시각들을 진정하고 소중한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개개의 표현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존재(Presence), 공간(Space), 앙상블(Ensemble, ‘함께한다’라는 뜻에서), 협업(Collaboration)이 우리의 예술적 방향을 가리키는 열쇳말들이다.
우리는 신진 예술가로서 겸손하고 정직하며 헝그리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만 호기심을 유지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연결하고, 개인을 성장하게 해주는 매체로서의 연극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덕스씨어터의 예술적 인지도나 작업적 성취에 대한 욕심은 있다. 하지만 항상 왜 처음 연극에 발을 들였는가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연극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 자제로도 이미 너무나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Q. 벌써 연말이다. 인천 시민들에게 인사 한마디 전한다면?
인천에 머무를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고 감사한다. 인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름다운 도시이다. 공기, 풍경, 여러 양식의 건축물들, 음식, 그리고 가는 곳마다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지난 3개월 간 잘 지낼 수 있었고, 벌써 인천이 그립다. 조금 이르지만 인천아트플랫폼과 인천 시민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17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사랑을 보냅니다!


글, 번역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로 초대합니다. 작가, 그레이스 은아 킴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로 초대합니다.
작가, 그레이스 은아 킴

2016년 10월 27일 직원들의 출근이 막 시작된 아침 시간에, 신포동 주민센터의 한 직원이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네댓 명이 검은 천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 지나가던 동네 주민과 행인들이 무섭다고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가 이런 일을 ‘벌였다’던데… 어찌된 것이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는 것이 문의의 골자였다. 우리는 그레이스 은아 킴 작가가 동틀 무렵부터 퍼포먼스를 할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 왔기에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공손히 대답해드렸다. “곧 끝날 것입니다. 예술 작업이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침 나절 가벼운 소동이라면 소동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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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라는 제목의 이 해프닝은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국외 입주작가인 그레이스 은아 킴이 추진한 프로젝트로, 폭 1미터, 길이 약 45미터에 달하는 검은 천을 도심의 여러 장소들을 이동하며 일시적으로 설치했다가 치우는 작업과 5명의 공연자들이 출연한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상상의 놀이터’라는 타이틀에서 ‘상상의’는 불필요한 수식어인지도 모르겠다. ‘놀이’가 항상 상상의 세계를 전제하고, ‘상상’이야말로 ‘놀이’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 자기가 엄마, 아빠, 어른이라 상상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수퍼 영웅이나 공주와 왕자가 되지 않던가. 여러 가지 역할극은 실제가 아닌 픽션의 세계에 내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내리다’와 ‘흰 눈이 내리다’가 결국은 같은 뜻이지만 다른 어감인 것처럼, ‘상상의’라는 수식어 덕에 놀이의 ‘상상적’ 속성이 환기되고 그 가치가 부각된다.
과연 그레이스 은아 킴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정작 행인들은 놀라고 심지어는 무서워하기까지 했던 그 모든 행위가 그저 ‘놀이’였고, ‘재미있자고 한 것’은 아닐 터였다. 작가는 오히려 어린 아이가 수퍼영웅이 되는, 즉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장소로서 놀이터의 기능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리라.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단어로 ‘공공 장소에서의 개입(intervention in public space)’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개입(intervention)’의 방식은 누군가를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우리의 환경과 사회를 다른 각도에서 함께 들여다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자 작가 나름의 말을 거는 방식, 대화에 초청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레이스 은아 킴 작가에게 작업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1)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입주작가로 9월부터 11월까지 인천에서 작업을 해왔다. 특히 10월 27일에는 여러 명의 공연자들과 함께 인천 중구의 해안동과 신포동 일대에서 ‘상상의 놀이터’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상상의 놀이터’ 는 한밤중 설치 작업과 함께 시작된 예술 실험이었다. 설치 시간으로 한밤중을 택한 것은 도시가 깨어나는 아침에 나의 작업이 자연 현상인 듯이 나타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검은 천을 기존의 구조물들에 걸치거나 감는 방식으로,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풍경 안에 상징적인 방해요소를 그림 그리듯 생성시키고, 그렇게 새로운 통로와 장애물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나 공간 안에서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게 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퍼포먼스는 도시에 생기가 돌고 행인들이 서서히 거리에 나오기 시작하는 동틀 무렵에 시작되었다. 도중에 마주치는 행인들도 퍼포먼스의 일원이라고 여겼다. 나의 ‘상상의 행인’역을 수행하는 공연자들 역시 해가 뜰 즈음에 도착하여 행위의 무대였던 길거리에서 시적인 액션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키고 중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몇 시간 뒤에 작업을 멈춰야 했는데, 민원이 많기도 했고, 경찰도 그만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평화적인 실험을 원하지 대중들과 적대적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민원을 제기한 대중들 역시 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공연자였고, 그들도 우리와 함께 무대를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던 간에, 나는 내 작업의 일부로 그들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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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상의(imaginary)’라는 단어와 ‘놀이(play)’라는 단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단어들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이매지너리(imaginary)’는 상상 속 공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상관없이 마음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을 지시한다. ‘무언가를 상상하였다면, 그 상상은 이후에 현실이 된다’는 개념을 내포하기도 한다. 상상을 통해 경험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상상이라는 것도 종국에는 결국 현실의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현실은 개인적인 상상과 공동체적인 상상 간의 끊임없는 타협의 결과물이다. 나는 놀이의 이론적 측면에도 관심이 있는데, 놀이가 이성적 구조와 존재 방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한계 공간(liminal space)이라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놀이터는 다른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존재의 참된 모습(眞相)이 표현의 수단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상상의’와 ‘놀이터’ 모두 내가 나의 작업에서 일깨우고자 했던 공간의 심리지형적(psychogeographical) 조건을 지시하는데, 이는 공공 공간에 작동하는 매커니즘과 그 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구조물과 각종 경계들은 물론, 사람들이 공동체의 풍경을 어떻게 읽고, 겪으며 공유하는지 그 방식을 만들어내는 규칙들을 의심해 보게 해준다. 

3)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신청서상의 계획과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 공간에 개입한다는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공공 공간(public space)’이 작가의 작업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어떤 것인가?
나에게 공공 공간이란 ‘상상의 놀이터’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유의미하고 사회적이며 예술적인 탐구가 일어날 수 있는 가공하지 않은 무대와도 같다. 말했다시피, 나는 공간과 장소의 심리지형적 측면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풍경과 메커니즘을 만들어 낸 창조자이지만, 거꾸로 이러한 풍경과 메커니즘이 우리 자신 모습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과의 상호 작용은 끊임없이 돌고 돌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매우 힘이 든다. 이 순환 고리를 끊고 비판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공공이라는 것을 개인으로서의 자기 안으로 끌어 들여야만, 내면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의 풍경은 나의 캔버스가 되고, 개입은 탐구의 영역이며, 사람들은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내 작업의 공동 창조자이다. 나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맥락을 설정하려고 애쓴다. 공공영역에서 벌어진 각각의 프로젝트들은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배웠는가 하는 점에서,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가라는 점에서 모두 매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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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입(intervention)’이라는 형태가 최근 들어 서서히 현대미술계에서 그 양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단어이자 혼란스러운 개념인 것 같다. 특히 ‘개입’이나 ‘간섭’은 타인의 범위나 권한을 침범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개입’의 가치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나 역시 ‘개입’의 부정적 측면을 이해하고 있고, 그간 예술사에게 보아 왔거나 동시대적이라고 하는 예술 행위들이 개입이라는 방식을 선동적이고 아나키스트적 동기에서 사용해 왔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도 이러한 접근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나의 방식에 주의하려고 애쓴다. 개입을 통해 기존의 규범들을 의심해 보고자 하는 것은 같지만, 매우 기본적인 상호 존중의 범위 내에서도 비판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개입은 사회적, 예술적 탐구의 방식으로, 일종의 휴머니즘적 행동주의(activism)를 겨냥한다. 나의 개입들은 실재와 픽션, 인지와 미지 사이의 모호한 공간 안에서 대중과 연계하는 것이다. 개입의 공간에서 관람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도록 자극 받게 되고, 이러한 지점은 내 작업의 극히 중요한 부분이 된다. 나는 모순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실제로 참인 것(real truth)’이 발견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실존적 몽유병(existential sleepwalking)’에서 이따금씩 깨어나고, 우리의 환경과 사회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으려면, 기존의 매커니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개입을 통한 대화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

5) ‘상상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함께할 공연자나 보조인력을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알고 있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예술 프로젝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이 아닌 이른바 ‘서구권’에서 진행했을 때와 특별히 다르다거나 어렵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도시와 도시간의 차이, 문화와 문화 간의 차이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왜 서로 다른 현상들이 일어나는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곳에서나 항상 도전 과제들에 직면하게 되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 또한 어렵기 그지없다. 내가 마주치게 되는 예술가들의 유형이나 태도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뜻이 맞는 협력자들을 만나는 것은 운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프로젝트에 적합한 커뮤니티를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커뮤니티는 멀리 숨어있거나 감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항상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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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천아트플랫폼에는 ‘시각예술’ 분야 입주작가로 들어왔는데, 진행한 프로젝트는 다분히 공연적이다. 작가는 프로젝트를 연출하거나 기획하는, 영화로 치면 감독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장르 간의 칸막이를 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비주얼 아티스트로 시작했고 여전히 시각적인 부분이 내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는 활동들을 하나의 어떤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공연이나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이미지를 사고의 좀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며, 관람자들과의 대화에 좀더 다가가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퍼포먼스 작업은 처음에는 부분적으로만 사용하였는데, 이미지들이 살아 움직이는 내 머리 속으로 관람자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러고 나자, 이 세계와 공공 공간이 이미 살아있는 이미지이자 극장이었음을 깨달았고 관심이 더 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퍼포먼스는 일종의 전복적인 이미지 극장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 위에 다른 차원의 것을 평행하게 쌓아 올리는 것, 대화를 통해 실험하는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퍼포머(공연자)들은 공연을 수행하고 극을 재현하는 매개자 그 이상이다. 가끔씩 그들과의 작업들을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정의하는 것에 주저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나의 작업이 좀 더 사회적이면서 살아 있는 이미지 실험으로 여겨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이론적 측면은 항상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의 모습은 이미지의 세계가 결정하고 이미지의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이런 점을 잘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나의 퍼포머들이 항상 말이 없는(대사가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퍼포머들은 상상의 관중이자 그들 자체로 상징적이며 움직이는 이미지들이다.

7) 태어나고 자란 곳은 미국이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주요 거점은 독일이며, 박사과정 중인 학교는 스위스에 있고, 현재는 인천에 와 있다. 친척들이 있어 한국에도 비교적 자주 오는 것으로 안다. 노마드적 삶은 예술가의 숙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삶에 대한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삶은 어렵게 마련이다.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삶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나를 매우 풍요롭게 한다. 나는 이러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는 세계와 세계 사이를 미끄러지듯, 표류하듯 옮겨 다닐 때에 가장 균형감을 느낀다. 이와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나 일정한 패턴과 예측가능성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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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곧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기간이 끝난다. 입주 종료 전에 전시를 개최한다고 들었다. 전시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면?
‘상상의 놀이터’를 기록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영상을 편집하였고, 이에 더해 사운드 설치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기록물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단순한 도큐멘트로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놀이터’라는 이벤트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위한 시적이고도 서정적인 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퍼포먼스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적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해당 전시 은 2016.11.19~30까지 인천아트플랫폼 G1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전시 제목은 ‘상상의 놀이터’가 진행되었던 날짜에서 따온 이다. 
    
9) 인천아트플랫폼 이후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인천에서의 긴 여행이 끝나면 베를린으로 돌아가 휴식 시간을 가지며 글쓰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새로운 협업작업과 프로젝트들도 추진 중이다. 특히 내년에 베를린에서 퍼포먼스와 개인전을 진행할 예정이라, 그 또한 준비하려고 한다.
  
10) 예술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나 지향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는 어둡고도 위태로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끼곤 하는데, 내가 실행에 옮기려는 모든 행동들이 어떻게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되고, 나는 과연 어떤 리서치를 수행해야 하며, 타인들과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할 것인지를 더욱 깊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 작업들은 미래의 시간이 도래하여야,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콘텍스트가 더욱 넓어져야만 그 존재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 여러 도시의 사상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야만 작업의 가치가 부가된다고 믿는다. 예술은 사회 속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을 발동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놀이터’와 같이 말이다. 

글, 번역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삶의 수많은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작가, 김푸르나

 

삶의 수많은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작가, 김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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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대부분은 인간의 편리와 편의를 위해 ‘구분’법이 사용되고, ‘다름’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생명이 생길 때부터 존재한 선천적인 구분(성별, 독성, 인종 등)일 수도 있고, 후천적인 것(재산의 부와 빈, 학식 수준, 권력 지위 등)일 수도 있다. 구분지어지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인간 사회의 질서이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행위는 인간을 다른 것들과 구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존재할 수 있었을 테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이 아닌 것들을 존중하지 않는 구분이 생기는 순간, 인간은 먹어서는 안 되며 인간 스스로의 안위를 보장한다. 이렇듯 이미 삶 속에 존재하는 생체, 공감각 등에 대해 구분지어지는 것들을 우리의 뇌는 인식하고 있다. 인간에 최적화된 구분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나가고 있으며, 그러한 구분들은 인간에게 이롭게 하기도 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해치기도 한다. 그리고 구분짓기에 익숙한 우리 인간은 구분이 없어지면 불안해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의 7기로 입주 중인 작가 김푸르나는 이러한 구분짓기와 인간의 불안성에 대해 창작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그 구분을 창작 속에서 ‘경계’라고 언급하며, 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왜 그녀는 경계를 허물고 싶어할까, 그녀에게 경계는 과연 어떠한 것들이며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제 작가를 직접 만나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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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계’에 대해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A. 경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인 것 같다. 아마도 나는 2009년에 시작한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 ‘The Modern People’ 시리즈에서 이러한 경계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시리즈는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 인정의 결핍과 같은 혼란의 상황을 보여준다. 아버지 세대인 ‘중년 남성의 얼굴에 젊은 여성의 몸’이라는 모순된 신체를 조합하여, 자웅동체적인 인물의 형태로 결합시켰다. 작품은 주로 현대 자본주의 소비문화 속에서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풍자하는 시각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졌던 가부장제도 안에서 성 역할(Gender Role)의 ‘경계 넘기’를 보여주는 작업이 되었다.
 03
Q. ‘경계’는 우리의 삶을 힘들게도 하지만, 편리하게 만든다고도 생각한다. ‘경계를 허문다’는 것의 필요성을 알고 싶다.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기에 남겨두어야 할 최소한의 경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A. 최소한의 경계라…. 나의 생각은 하루하루 변화하고, 바뀌고, 혼란스럽다. 때문에 경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경계는 항상 생성되고, 무너지고, 다시 발생되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최소한’이라는 기준을 가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저 나는 지금 구분 짓고 있는 그 경계가 의미 있는 경계인지 생각해보길 바랄뿐이다.

04 Q. 선천적인 경계와 후천적인 경계는 모두 ‘후천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경계를 만드는 이유와 힘에 대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우리는 아직까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남자/여자, 안/밖, 몸/정신, 자아/타자, 삶/죽음 이밖에 모든 것들…) 나 또한 나만의 경계짓기를 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실 계속 없애려 해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반복하는 것이 경계가 아닐까 싶다. 경계가 완벽하게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모호한 경계를 즐기는 방법을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05

Q. 초기 작품에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성별의 모습으로 변환되는 직접적인 표현이 보인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은 사라지고 인체가 등장한다. 사람이 등장하게 된 계기, 그리고 작품에서 의도하고자 한 바를 알고 싶다.
A. 앞서 말했듯이 ‘The Modern People’ 시리즈는 아버지로 표현되어지는 ‘중년 남성의 얼굴에 젊은 여성의 몸’이라는 모순된 신체를 결합한 형태의 작업이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강요되어지는 여성 이미지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업이었다. 이 시리즈는 결국 ‘남성성,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 역할의 질문으로 확대되었다. 때문에 다음 작업인 ‘The Borderless Body(경계 없는 신체)’시리즈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던 것 같다.

06

Q. 작품에 인체가 자주 등장한다. 인체를 소재로 삼은 계기와 작품에서의 의미를 알고 싶다.
A. 학부에서 대학원 시절을 거치며 신체를 무리하게 사용했었다. 결국 학업을 쉬어야 할 정도로 심한 목 디스크가 왔다. 휴학기간 동안 물리 치료와 디스크 치료를 받으면서 한동안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내 몸을 내가 알아야겠다’ 싶어 신체에 대해 연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작정 도서관을 오가며 다양한 해부학 서적을 보던 중,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 신체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해부학 책 속의 신체는 각각 해체되고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사실 정보 전달을 필요로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시각예술을 전공하는 나에겐 이 점이 흥미로웠고, 책 속에 있는 신체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이 수집한 신체들을 다시 섞는 작업에 도입했다. 이전 작업(‘The Modern People’)의 내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우선 남성과 여성의 특징적인 신체인 생식기를 섞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이후에는 염색체, 혈액, 지방, 피부조직 등 다양한 신체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 작품 또한 안과 밖이 서로 뒤섞이는 질서 없는 신체들의 행위를 통해, 두 개로 분리되어진 사고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Q. 최근 가장 관심이 있는(허물어 버리고 싶은) 경계는 어떤 것인가?
A. (작업의 내용과 무관할지 모르나) 관심보다는 최근에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허물어진 경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요즘 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사업으로 동인천역 주변에 위치한 ‘미림극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인천의 유일한 실버극장인데, 극장을 찾는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은 70대에서 많게는 90대까지 다양하시다. 처음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세대 간의 경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걱정을 했었는데 6개월 동안 이곳에서 일해 본 결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경계가 많이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어르신들도 나처럼 청춘이 있었고, 꿈이 있고, 아직도 나처럼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세대 간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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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를 들어 <유선의 성장>을 이미지 자체로만 보면 ‘여성’의 아름다운 몸’으로 생각되기 쉬울 것 같다. 그러면서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국 여성의 몸이라는 경계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해주길 바란다.
A. 작품 <유선의 성장>은 해부학서적에서 유선의 이미지와 근육세포 확대이미지를 추출한 후, 확대, 축소, 변형의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신체 안에 있었던 세포들이 배경으로 채워지고, 그 안에 식물처럼 보이는 유선의 성장과정 이미지를 집어넣었다. 사실 이러한 회화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유선이라는 여성의 몸을 사용한 것이 아닌 확대, 축소, 변형의 과정을 거친 신체가 서로 재조합되는 과정이다. 이는 <인체정물화>라는 작업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작품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뒤섞인 외부와 내부의 신체를 통해 분리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파편화된 신체를 정물화의 이미지로 변형시킨 이 작업에서 자궁은 꽃병이 되고, 생식기ㆍ세포ㆍ신장ㆍ혈관 등은 꽃이나 잎으로 변형된다. 테이블로 표현된 피부조직이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X 염색체의 패턴들은 내부와 외부를 분리시키는 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신체들을 수용하며 결국에는 모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Q.작가들을 미술사적 담론 속에서 ‘○○ 작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성의 신체 해부학적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여 단편적으로만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은 페미니즘 작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경우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사견은 어떠한지?
A. 사실 그랬던 경우(페미니즘 작가로 구분됐던 경우)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에 있어 어떠한 작가로 구분짓는다는 것은 경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나에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초기작품이었던 ‘The Modern People’시리즈를 보고 ’변태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다. 나는 그 변태라는 말이 거북하다기보다 흥미롭게 들렸다. 왜냐하면 동식물이 변태의 과정을 거쳐 성장하듯이 나의 생각과 사고는 항상 변태하기 때문이다.

08
Q.매체를 실험하는 시도를 자주 볼 수가 있는데 작가에게 중요한 매체가 있는가?
A. 일상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진행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09 
Q.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가라면 미술 영역 안에서 작품이라는 아우라를 가질 수 있는 화이트 큐브 공간, 작품의 담론과 의미를 더 생산해볼 수 있는 전시장이 아닌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을 모두 실험해보길 바랄 것이다. 김푸르나 작가에게 있어 작품 설치 장소는 중요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에게 공간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매력적인 공간은 어떠한 곳인가?
A. 2015년 첫 기획 개인전인 <기묘한 전시>에서 나는 4년 남짓 사용했던 작업실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작업실은 지하였는데, 입구에 들어가는 통로부터 전시장 벽, 전시 내부공간을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람객이 직접 신체 안으로 들어오는 체험적 공간을 경험하도록 기획하였다. 지하로 내려오는 통로의 공간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주는 신체의 공간으로 재해석하였고, 전시장 벽면에는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뉴런’ 벽화작품을 작업했으며, 전시장 내부 곳곳에는 설치작품과 평면작품들을 배치하였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힘은 화이트 큐브가 주는 아우라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직접 생활해보고 느꼈던 체험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공간은 이러한 체험적 공간이 아닐까 싶다. 
 10  
Q. (특히) 아크릴 작업의 경우에 디자인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관람객들 역시 고운 색채와 반복되는 패턴에 시선을 먼저 두고, 어쩌면 ‘예쁘다, 귀엽다, 갖고 싶다’ 등 이야기하며 촬영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것은 작가가 어쩌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반응을 의도한 것인가, 그리고 의도하였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 바란다.
A. 관객들이 ‘예쁘다, 귀엽다, 갖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이면 우선 내 의도가 절반은 성공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주로 작품의 소재로 쓰는 신체들은 생식기, 혈액, 가슴, 세포, 지방 등 관람객들이 보기엔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한 신체들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일지 모르겠지만) 작품은 신체가 가지는 이런 개인적, 감정적인 측면의 완화를 돕기 위해 방법적 측면에서 객관적이고 냉소적인 표현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신체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방법이다. 
 
Q.보는 이가 어떻게 느끼면 좋겠는가.
A. 내 작품은 구분되고 나누어졌다고 생각했던 안과 밖의 신체가 서로 뒤섞이며 유쾌하게 변화하는 과정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 안에서 모호한 경계의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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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페인팅 작업에서의 경계 허물기와 장소 특정형 설치 작업에서의 경계 허물기, 이 두 가지 트랙으로 나눠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각 트랙은 다른 경계를 의미하는 듯하다. 각각 어떠한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바란다.
A. 그 동안의 회화 작업은 터부시되었던 신체의 일부나 섞일 수 없는 신체들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모호한 경계 넘기의 과정이었다. 반면 장소 특정형 설치 작업에서는 그 공간에 있던 흔적을 이용해 현재의 공간과의 접점을 찾고,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따라서 관객이 이 공간 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모호한 공간으로 인식되어질 것이다. 나의 페인팅 작업이 신체를 통해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사고의 경계에 질문을 하고 있다면, 장소 특정형 설치 작업은 공간을 통해 경계를 체험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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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가지 트랙으로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
A. 두 가지 트랙으로 의도해서 작업하지는 않는다. 다만 장소 특정형 설치작업에서는 페인팅에서 보여 줄 수 없었던 갈증들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Q.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를 바란다.
A. 최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참여했던 ‘웻 페인트’ 전시는 현재 나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아트플랫폼 주변과 자유공원 길거리 일대에서 채집한 매미의 껍질(선퇴)을 샹들리에 조명으로 제작했다. 매미의 껍질을 채집한 것은 앞서 말할 것처럼 일상에서 매체를 찾기 위한 시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 당시(전시를 준비하는 여름기간 동안) 아트플랫폼 뒤쪽에 많은 매미들이 울부짖었으며, 그 흔적들은 주변 공원 나무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매미의 몸이었던 선퇴는 매미의 몸이자 현재는 매미의 몸이 아닌 몸이 되었다. 모호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 이 매미의 몸은 작업의 소재로 쓰기에 충분했다. 200마리 남짓 되는 매미의 껍질을 채집했으며, 이는 설치와 아카이브의 형태로 전시되었다. 이 밖에도 가슴을 산의 형태로 만들고 나의 손을 직접 촬영해 꼴라주 작품으로 제작한 ‘The Borderless Body- 가슴산 365시리즈’ 작업은 목표인 365장이 다 채워지면 하나의 영상으로 제작될 계획이다. (웻 페인트 전시에서는 완성된 160장의 작품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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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창작 계획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A. 현재 ‘몸, 채집’이라는 컨셉으로 작업의 방향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는 매미의 껍질을 소재로 한 작품을 시작으로 이미지 채집, 다양한 몸 채집 등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다. 또한 내가 표현하는 신체가 하나의 소재를 넘어 직접적인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매체와 설치, 공간을 통해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싶다.

정리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웃픈 사회 속 존재의 이유 – 작가 손승범

 

웃픈 사회 속 존재의 이유 – 작가 손승범

01

오늘날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정신 질병과 관련한 황당한 사건을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웃고 있지만 공포스럽고 괴기한 잭 니파이어의 얼굴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폭력이라는 인간 감정의 양면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현대사회 속 우리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겉으로는 웃고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감정과 매일 싸우며 속으로 우는 사람들이 바로 현재인이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동화 ‘파랑새’에서 꿈속에서 행복한 파랑새를 찾기 위해 막연히 길을 떠났지만 결국 찾지 못해 좌절했고, 결국 꿈속에서 찾지 못했던 파랑새는 현실 속 자신들의 새장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현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막연한 몽상을 꿈꾸는 현대사회 속 우리의 불안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오늘날 ‘파랑새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고,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은 ‘착한아이 콤플렉스’도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 파생된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정신 질병으로 불린다.

이러한 질병들은 인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기계화, 도시화, 자본화된 현대사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현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정신적 폐해를 세상에 알리기보다는 숨기기에 바쁘다. 왜냐하면 정신적 폐해를 드러내는 순간 결국 나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웃음, 화려한 행동과 치장 속에 감춘다.

7기 입주 작가 손승범은 이런 현대사회의 양면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인간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숨으려고 한다. 다 가려지지도 않는 어떤 사물이나 배경 뒤에 필사적으로 숨는다. 그리고 어쩌면 바보 같이 순진할 정도로 무모했던 인간은 어느 순간 숨는 대신 자신을 알아볼 수 없을 법한 변장과 위장의 허물을 쓴다.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숨는 인간은 변태하며 결국 감정을 폭발시키고 터트린다.

손승범 작가는 화려함과 암울함의 양면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드러내왔다.
 02
Q. 작가가 생각하는 현대사회 속 인간의 특징은 무엇인가?
A. 넘쳐나는 정보와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생활화되고 교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반면에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이들과 타인을 훔쳐 보는 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고립되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03

Q.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유하고 은유하여 드러내는 작품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창작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A. 특별한 이유보다는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왔다. 가족들, 친구들과 같은 주변인들부터 내가 경험한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Q. 인간의 양면성은 천성인가, 아니면 외부적인 요인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A. 천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면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작은 뾰루지였는데, 자꾸 자극을 주다보면 큰 여드름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04

Q.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식을 갖는 인간이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되는가?
A. 완벽에 가까운 것이 존재할지는 몰라도 완벽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Q.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면?
A. 작품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한 더 나은 삶을 위한 탐욕과 욕심, 허망한 염원 등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만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Q. 존재의 본질은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이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발화시키고 싶을 때, 철학적 담론에 기댈 때가 있다. 작가에게 있어, 혹시 이 부분을 대신 설명해줄 수 있는 철학(미학) 책이 있는가?
A. 『사라짐에 대하여』(장 보드리야르, 민음사)를 추천하고 싶다.
  
05
Q.관람객의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이 장치들이 작품의 내용과도 연결되는데 설명을 덧붙인다면?
A.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 방법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함(가속화되어 발전하는 사회) 속 이면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 또는 주변에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작품을 구상할 때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 한 화면에서 나타날 때 더욱 극적인 상황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Q.위에서 이어지는 질문인데, 대비적인 표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작품을 보면 표현적인 면에서 실험적인 모습이 특히 드러나는 것 같다.
A. 대비적인 표현 방법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 있어서 자연스러워져서 어느 정도 나를 표현하는 색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구상하는 과정 속에 있던 것들이 작업하다보면 즉흥적으로 교체되는 부분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부분들은 작품 속에 어떤 이미지 또는 소재들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 고민하고 작업에 대입시키고 있는 부분은 형체가 없는 ‘사라짐’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Q.작품의 레퍼런스는 어디에서 갖고 오는가?
A. 주로 경험을 비롯하여 특별하게 느껴졌던 순간들이나 사건들을 우선으로 하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웃픈 이야기를 가져와 설정하기도 한다. 또는 예전에 나에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변질되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체험할 때 그때의기묘한 느낌을 기록해 두었다가 작품에 대입시키기도 한다.

Q.<허망한 염원>展은 소재도 약간은 다르지만, 표현 방식에서 감정을 누르기도 하고,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던데?
A. ‘허망한 염원’에 출품됐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라짐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표현 방식을 고민했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공상과학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분자들이 서로 해체되면서 사라지는 장면을 보고 차용하게 되었다.

06
 Q.최근 작품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아젠다가 있다면?
A.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라는 오픈스튜디오의 타이틀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대상은 어떤 물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본질들과 같이 형상이 없는 어떤 의미에 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본래와 현재의 의미가 변해버린 것들, 또는 변질되어서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재미있었다. 사실 어떤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 영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그토록 의미있던 트로피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가치 있지 않다. 그 트로피는 결국 트로피 자체로가 아니라, 전시장의 작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의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작품은 전시장 내에 설치될 때 작품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갖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는 역사 속으로 남겨질 뿐이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그렇게 계속 변한다.

07

Q.예술의 힘, 예술의 매력은 무엇인가?
A. 예술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차츰 번져나가 예술을 체득한 이들에게 올바른 영향을 준다. 더불어 삶의 다양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08 
Q.이전에도 평면 속에 다양한 물질을 쌓아 올리기도 하였지만, 매체(한국화)를 실험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은 작가의 작업 내용에 필요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화를 다루는 작가들의 경우, 고유 매체를 지키며 실험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의견과 작가가 느끼는 한국화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실험함에 있어, 어느 선까지 자신의 고유 매체를 지키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다.
A. 고유 매체를 지켜가면서 확장시키는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아예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거나, 전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고유 매체를 버리지는 않는다. 재료적인 면보다는 재료를 다루는 의식과 정신,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09 
Q. 이번 가을 오픈스튜디오 때 보여준 것은 작품들이 모여 하나의 무대가 연출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극적인 요소를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염두하고 있는지(혹은 작품을 연극적 무대로 보여주는 것을 염두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A. 연극적인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연출적인 부분이 보이게 된 것 같다. 미술 작품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듯이, 작품의 맥락과 그 속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 
Q.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과 앞으로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올해는 평면 작품과 더불어 새롭게 입체작업들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참여했던 ‘웻페인트’전에 입체 작품을 출품했는데 나 스스로도 제작 과정에서부터 결과물까지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됐다. 향후에는 입체작품들로만 구성된 전시도 계획 중이다. 올해에는 머릿속에서 그려둔 계획들을 잘 꺼내 놓을 수 있게 준비하고, 내년에 실행하는 것이 목표다. 평면이라는 매체에서 처음으로 벗어나는 시도를 했으니 앞으로는 좀 더 확장된 영역의 작품들을 구상하고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글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종이인형 P의 노래를 따라가는 여정, 작가 서영주

 

종이인형 P의 노래를 따라가는 여정, 작가 서영주

씨앗이 떨어져 자기 자리를 찾아 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여정은 일종의 다시 태어남의 ‘방황기’이다. 종이인형이 한동네를 배회하고 있다. 종이인형이 배회하는 의미를 모르는 보는 이들은 그 이유를 찾아 자연스레 인형의 뒤를 따른다. 어느 장소에 도착하면 인형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그 춤이 끝나면 인형을 연기한 배우가 관객들에게 티타임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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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단기 입주 작가 서영주는 거리극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약한 종이인형으로 표현한다. 연기는 물론 노래까지 하며 진행되는 그녀의 거리극은 보는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녀는 글을 쓰는 사람도 노래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녀는 배우이다. 하지만 그녀의 퍼포먼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의 이미지와는 멀다.
배우가 왜?
어째서 배우가 종이인형을 만들고 노래하며 연출까지 하게 됐을까?
어째서 배우가 거리로 나와 사람들과 춤추고 이야기하는 걸까?
프로젝트의 탄생 배경부터 메시지까지 서영주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03   
Q1. 본인과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한다.
저는 한 사람의 배우. An actor, 행동하는 자이다. 그리고 배우를 대변하는 인형 P를 만들고 이 P를 움직이는 자이기도 하다. 종이로 만든 이 인형 P는 가장 흔하고 찢어지고 구겨지기 쉬운 약한 소재로 만들어져, 내 안의 가장 조용하고 내밀한, 다뤄지지 않은,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P의 행동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페이퍼맨의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부터 이어져온 이 작품은 그림자극 영상과 인형을 활용하여 ‘추락’에 관한 의미를 무대 위에서 움직임으로 표현해 낸 이미지 극으로 출발했다. 가장 약한 소재인 종이로 인형을 만들어 배우를 대변하여 움직이고, 이를 통해 ‘삶의 과정은 모두 낙화의 반복이다. 막다른 길, 한계 지점에서 뛰어내려야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개인의 추락을 대변하는 인형의 추락 이후, 씨앗이 뿌리를 내려 새싹을 틔우는 단계에서 함께하는 춤사위는 우리 삶 곳곳에서 함께 부딪쳐온 한계와 절망의 벽으로부터 새롭게 상생하는 극복의 의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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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얻고자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일상 중에 마주한 추락, 벼랑 끝. 늘 되돌아오는 한계 지점에서의 관찰이 이 작업의 시작 지점이 되었다. 피하고 싶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그 지점이 내가 있어야 할 나의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때부터 추락 = 비상 = 만개(滿開)라는 것이 보였다.
“낡은 모두가 추락하고, 새롭게 모두가 피어나는 춤사위”라는 점에서 종이 인형 P는 나 자신이고, 노래하는 자다. 현재 이 P.Play 프로젝트로 P(나)는 내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와 걷고 움직이고 노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차를 마시고 교감하고 춤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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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본인이 기대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있는지?
대중적이지는 않으나 호환 가능한 이미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인형 P와 배우가 나열하는 움직임을 바라보며 각자 포착되는 이미지들을 통해 개개인의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 혹은 각자의 내면에 해당하는 P와 만나고 하나가 되는 지점을 마치 땅 속에서 만나는 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공명하였으면 한다. 만일 퍼포먼스 중 전체의 호흡을 함께하지 못하고, 부분만 보게 된다면, 지향점인 목적이 관객에게 호환되지 못하여 발생되는 오류는 클 것이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기이하거나 새롭기만 한 자극만 얻어 간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 물어보고 싶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관객과의 대화를 유도하는 창을 열어놓게 구성하였다. 그것이 만개(滿開) 춤사위 이후 티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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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4. 인천아트플랫폼 단기작가로 입주해 있는데 지원 당시와 지금의 프로젝트 진행에 생각의 차이가 있는지?
차이라기보다는 발전도와 진행 과정을 말할 수 있겠다. 3월부터 9월 초까지 이미 프로젝트를 한차례 진행한 후 인천에 입주했다. <Pappet Play> 지역주민과의 워크숍, 이를 통한 쇼케이스 <다뤄지지 않은 몸짓> <바다 해프닝>과 Sseo와 P의 버스킹 등을 진행해 왔다. 인천에서는 벌써 한 달이 지났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적다.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할 수 없기에 한차례 진행하고 올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Pappet Play: 피플레이>에 더 집중할 단계라고 본다.

Q5. 마지막으로 인천문화통신 3.0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낯선 몸짓과 소리들이 다가갈 때, 있는 그대로 그저 바라보시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찰나가 눈이 부셔 놀란다면 고이 간직하시길…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가슴속 방문을 두드린다면 살며시 열어보시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반응하다가 한자리에서 함께 움직여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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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인형과 함께하는 서영주 작가의 프로젝트는 작가의 아트플랫폼 입주 기간 동안 인천아트플랫폼, 차이나타운, 신포 문화의 거리, 동인천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에서 시민들과 “추락”의 극복과정을 공명할 계획이다. 서영주 작가의 거리극은 오는 11월 한 달 동안 진행되며 그 결과는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




땅이 된 바다, 김순임 작가

 

땅이 된 바다, 김순임 작가

개항장 일대를 걷다보면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 사람들이 의외로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는 이곳 또한 과거에 바다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9월, 바람이 분다. 바다로부터… 그리고 바다로부터 온 무엇이 인천아트플랫폼 스튜디오 앞 거대한 나무가 되어 자라났다. 김순임 작가의 작품 <굴 땅>이다.
김순임은 일정 공간에서 리서치 과정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정서, 삶, 공간이 형성되어 온 배경 등을 주로 자연물을 이용해 예술 형태로 발전시킨다. 작품 <굴 땅>은 인천 해안가 사람들의 고된 삶의 역사가 그 지역 생계수단인 굴과 그 껍질로 덮혀 개간된 땅 위에 살고 있음에 주목한 작업이다. 작가가 직접 그곳에서 수집한 굴 껍질과 같은 오브제를 사용해 만든 설치작품은 그들의 삶과 노동, 소멸이 잉태한 새로운 생성을 상징한다. 또한 바다를 땅으로 일구고 척박한 삶과 역사를 버텨내며 살아온 이 지역 사람들의 생명력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김순임 작가의 개인전 《땅이 된 바다》는 10월 30일 까지 진행되며 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연계전시 《웻페인트 WET PAINT》전(2016.8.26-9.25 B,G1,G3 전시장)에서는 본 작업과정이 기록된 영상과 도면, 모형 등과 같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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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이번 전시《땅이 된 바다》의 작품 <굴 땅>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만석동에 갔다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가에 이주한 땅 없는 사람들은 바다가 공짜로 내어준 굴을 캐어 팔아 가족과 자신을 생존케 하면서 오랜 시간 이 곳(인천 만석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팔고 버려지는 것은 산처럼 쌓이는 굴 껍질들뿐이었는데 그 장면이 매우 인상깊었다. 굴이 원래는 한 생명체의 집이었지만 또 다른 생명(사람)을 위해 내어주고, 그 껍질들로 다시 해변을 메우고 땅을 개간한 곳에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온 것이다. 굴로 개간된 땅들은 점점 넓어져 이제는 이곳이 원래 바다였다는 것조차 알 수 없지만, 이곳엔 사람이든 굴이든 생명을 담았고 살게 했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노동과 생존이 꿈처럼 피어나고 넝쿨처럼 자란 형상을 풍요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다. 

Q2. <굴 땅> 작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는데, 그것은 무엇이고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15 겨울 인천 만석동 우리미술관 개관전(집과 집 사이)을 위해 지역 리서치를 하면서 이 지역과 이곳 사람들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인천 만석동은 매우 검소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버려지는 것은, 내다팔고 남은 굴 껍질과 연탄재뿐이다. 버려지는 굴 껍질조차 오랫동안 이 지역에 쌓여 땅으로 개간되는데 쓰였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밟고 있는 땅 아래를 채운 것이다. <굴 땅>은 인천 해안가 사람들의 고된 삶의 역사가 만들어낸 땅의 이야기를, 그 지역의 생계수단인 굴, 그 껍질로 덮혀 개간된 땅 위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내어준 바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했다.
 

빈손으로 바다에게 와
땅을 짓고 집을 세워 가족을 지킨 사람들
그들을 위해 기꺼이 정착해준 바다.
바다였던 도시
바다였던 집들
바다였던 길
바다였던 사람들
잠시 정주하지만,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숨은 바다의 꿈
사람에게 자신을 내 준 바다 이야기
그리고 그런 사람의 이야기

Q3. 주로 만나는 주변, 그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대상, 그리고 그 만남에 의해 생성되는 기억이 얼마나 특별해 지는지에 주목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자연, 주변의 것들을 작업으로 연결시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떤 특정 계기가 있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소백산 자락의 풍기에서 자라면서 자연 외에는 놀거리가 없었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충당할 수 없는 미술대학의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교 뒷산 숲에서 구한 재료나, 버려지는 것들로 작업을 해야 했던 대학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가부장으로 가족을 지배하셨던 할아버지, 아버지와 아버지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함께 살았던 시골에서 어린 여자아이로 성장하며, 주변인을 관찰하게 된 것까지… 나의 성장 과정과 배경이 자연스레 작업의 방식 속으로 들어왔고, 그 대상이 확장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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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장소 특정적 또는 대지미술에 가까운 작업들을 해오면서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 오히려 자연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작품을 설치할 때 고려하는 요소가 있는가?

공간과 자연을 내가 직접 고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공간과 자연이 작업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작가가 어떤 작업을 구현하고 그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을 찾는 일보다 마음에 들어오는 공간을 만나고 그 공간과 함께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나의 이상이라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실 이 두 가지가 모두 일치했다. 먼저 인천의 ‘만석동’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 자연, 환경 등을 배웠고, 그래서 그 공간이 마음으로 들어와 작업의 씨앗으로 발현되었다. 그곳에서 받아온 굴 껍질과, 어떤 형상으로 세상에 나올지에 대한 대략적인 드로잉이 나오고, 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서 주변 공간과 환경을 한 달 넘도록 산책하며 관찰했었다. 이 작품이 어디에서 행복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번 작품 <굴 땅>은 이렇게 해안동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매번 매 작품, 매 만나지는 공간마다 고민하는 요소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Q5. 거대한 설치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어려운 점들이 많았을 것 같다. 노동 집약적이고 큰 규모의 작품을 작은 체구의 작가가 직접 설치하는 모습이 가히 수행자를 방불케 했다. 구상만 하고 실현하지 못한 작품이 있거나,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헤프닝이 있다면?
사실 무척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의 무게는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어려움을 잊을 만큼의 큰 즐거움이 있어 이런 작업들을 계속하는 것 같다. 대형작업들은 특히 나 혼자의 힘이나 경제력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렵고, 당연히 공공 공간일 경우가 많으므로 다양한 서류작업들이 필요하다. 작가들이 무척 힘들어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일 것이다. 작업을 구현하기 위해 지원 가능한 단체나 기관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나머지 작업을 구현하는과정에서 날씨, 사람, 기술 등의 것들은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귀이 여기고 배우며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잘 준비하면 오히려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는 행운도 필요하다.
구상하고 실현하지 못한 작업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드로잉 북에 쌓인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서, 기술적으로 아직 몰라서, 재정적으로 불가능해서…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것들은 사실 모두 큰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드로잉 북을 봤을 때 그때 실현가능하면 하면 되는 것이니까. 드로잉한 작업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충분히 익지 않았고 충분히 배고프지 않아서가 아닐까? 개념이 소통가능할 만큼 잡혔고, 방식이 이해가능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너무 해보고 싶어지면, 실현 가능한 방법들을 찾고 제안하고 지원하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뜨거운 날씨에 《땅이 된 바다》의 설치를 진행했었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나다니던 주민들에게서 기운을 얻었다. “어? ‘땅이 된 바다?’ 그래, 여기가 오래 전에 바다였지, 하하하” 하고 웃으며 지나가는 할아버지들, “이게 뭔지 알아? 바다의 굴 껍질이야” 아가에게 말해주는 아기 엄마, 그리고 갓난아이를 안고 바다와 넝쿨, 굴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르는 등 작업 주변에서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이 작업 중인 나와 우리를 깨어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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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과 작가의 특별함으로 재해석한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는 국내외에서 작가 김순임을 주목하게 한 대표 작업으로 보여진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I meet with stone. –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일명 ‘Stone Project’는 2003년 1월 안양에서 처음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5년에 한번씩 전체를 모아 개인전을 통해 발표를 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새로운 지역이나 새로운 시간에 길 위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만나면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셔터를 눌러 그 돌멩이가 보았음직한 풍경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돌멩이 위에 돌멩이를 만난 날짜와 장소를 적어둔다. 산의 돌은 그 산을, 강의 돌은 그 강을, 시골의 돌은 그 시골을, 도시의 돌은 그 도시를 닮아있다. 그곳에 오래 산 사람인 것 처럼 말이다. 사실 돌멩이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지만 이름 없이 길 위에서 사람들의 발에 차이기도 한다. 그런 이름 없는 돌멩이를 누군가 작가가 만나고 그 만남을 기록하면, 전시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돌멩이를 자세히 보고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으려 하게 되니 말이다. 전시장 벽에 붙은 종이에 있는 사진과 새겨진 날자와 장소, 돌멩이에 써진 날자와 장소를 기반으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인연이 생겨난다. 매칭되는 사진과 돌멩이를 찾는 관람객에게는 작품을 1,000원만 받고 그 자리에서 나눠준다. 그 관객이 그 돌과 맞여진 인연을 위해 찾는데 들인 시간이 그 비용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돌은 또 누군가에게 기억되기에 이제 더 이상 이름 없는 ‘무엇’이 아니게 된다.

Q7. 그럼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무엇이고, 그 이유가 있다면?
모든 작업이 다 애착이 가지만 작업이 완성되고 나면 작품은 모두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다. 나의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은 ‘다음 작업’이다. 그 이유는 지금 나의 온 영혼이 집중해 있고 또 다음에 만들어질 작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직 이야기하기엔 이르지만 말이다.

Q8.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내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관객들 모두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보았거나 느꼈던 것들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흔하고 사소한 것들을 작품을 통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또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 나의,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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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1. 전시명 : 김순임 개인전《땅이 된 바다_ 굴 땅》
2. 기 간 : 2016년 8월 26일(금) ~ 10월30일(일)
3.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E동 앞 야외
4. 전시연계 간담회 :《땅이 된 바다》에 관한 수다
1) 초대패널_ 채은영(임시공간 기획자), 정상희(Space Ado 기획자), 김순임(작가)
2) 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G2
3) 일시 : 2016년 10월 29일(토), 오후 3시

글 / 오혜미(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당신이 알고 있는 사진은 정말 사진일까? – 작가 이민우

 

당신이 알고 있는 사진은 정말 사진일까? – 작가 이민우

이민우는 캐나다 국적의 작가로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시각예술 분야 입주작가로 6월에서 8월 동안 인천에 머물며 창작 활동을 했고, 입주를 마무리하는 8월에는 개인전 <끈적한 자유낙하>를 진행했다. 이민우 작가는 사진작가로 불리지만 막상 그의 작품들을 대면하면 ‘이게 사진이야?’라고 묻게 된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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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부터 8월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입주기간이 끝난 것에 대한 소감이 있다면? 자체 평가를 내려 주어도 좋겠다.
짧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타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한테 많이 배우며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단기(3개월)라는 시간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타지에서 타자로 생활하는데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다. 6월에서 8월까지가 입주기간이기는 했지만 7기가 시작된 3월부터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플랫폼 살롱’이나 ‘지역연구 리서치’나 입주작가 개인전 오프닝 같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하는 행사들에 가능한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입주 후에는 정해진 기간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중요한 행사 외에는 오히려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기간 내에 작업을 완수해야 하고 전시 일정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이 몰두와 집중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같다. 물론 입주기간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고, 작업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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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월 10일부터 21일까지 개인전 <끈적한 자유낙하>를 진행했다. 어떤 전시였나?
아트플랫폼에 입주할 당시 이미 생각해 둔 작업들도 있었고, 전시 내용도 나름대로 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겪는 것처럼 준비 과정에서 차질이 발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구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달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고, 이번 전시는 이러한 수많은 과정과 탐구 이후에 진행하게 된 것이다.
<끈적한 자유낙하>는 짧게 말하자면 ‘사진에 대한 사진전’ 이다. 개인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면서 사진의 이미지(image)와 그 이미지가 구현되는 바탕면(support)의 물질적 특성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업들은 전부 사진 기법을 이용 또는 응용한 작업이지만 특정한 대상들을 촬영한 것은 아니다. 대상 없는 사진이란 무엇인지의 대해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내 작업에서, 사진이라는 물질적 표면에 나타나는 형상(image)은 사진을 만드는 현상적 과정에 의해, 다시 말해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현상액의 화학적 반응에 따라 인화지 위에 즉 사진의 표면에는 액체성이 부각된 이미지들이 생겨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진 표면 위의 액체적 이미지들도 전시장 바닥으로 흐르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시 제목을 이해해 주면 좋을 것 같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전시를 목적으로 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작업하지는 않는다. 작업을 할 때 특정한 아이디어가 작품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고나 할까.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만큼 내 작업 중에 진정한 완성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시도, 다양한 과정, 끊임없는 탐구를 거치면서 궁금증과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고자 또 다른 시도와 탐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 또한 ‘과정전’이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전시된 작품들을 완결된 하나하나의 개체로 바라보기보다 전체적으로, 그리고 변화하고 진행 중인 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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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끈적한 자유낙하>라는 전시 제목이 재미있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글 ‘자유낙하 속에서 : 수직 원근법에 대한 사고 실험(In Free Fall: A Thought Experiment on Vertical Perspective)’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들었다. ‘자유낙하’는 히토 슈타이얼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고정된 시점, 하나의 지평선(수평선),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발 딛고 서 있는 안정적인 기반(땅, ground),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로 하는 기존의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에 대항하는 개념이자 그 극한의 형태로 제안한 것이다. 슈타이얼의 글에 한 일화가 언급되고 있는데, 19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선원근법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풍경을 관찰하고 그것을 회화로 옮기거나, 움직이는 배의 돛대에 몸을 묶어 다(多)시점과 흔들리는 수평선을 실험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슈타이얼은 “당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닿을 수 있는 땅은 없다고 상상해보라” 라고 제안한다. 끝없이 떨어지는만큼 수평선은 무한히 붕괴될 것이고(혹은 무한히 많은 수평선을 연속적으로 보게 되거나), 그 때 우리가 인지하게 되는 세상의 풍경과 장면을 상상해보면 선원근법의 한계와 터너의 어뚱한 듯한 실험들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당신은 슈타이얼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 같지는 않다. ‘끈적한viscous’이라는 형용사는 자유낙하를 방해하는 물질의 점성, 중력에 대항하는 내재적 힘같은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였는지 확인해 달라.
히토 슈타이얼의 바로 그 글은 몇 년 전 처음 접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씀대로 슈타이얼이 ‘선원근법’의 대안으로 제시한 ‘자유낙하’나 ‘수직 원근법(vertical perspective)’을 답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술사를 새로운 시점으로 바라본 글이라 평가하며, 이 글을 좀 더 확장된 시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슈타이얼이 말한 ‘선원근법’은 말하신 것처럼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하고 있고, 사진이라는 매체 역시 근본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찍는 주체와 찍히는 대상을 생각해 보라). 사진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쉽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이를테면, 어떠한 사진 작품이든 대상과 그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 간의 거리를 구분할 수 있다. 아무리 초점을 흐리고, 표면의 질감 처리를 특수하게 하고, 렌즈를 미세하게 왜곡했든지 말이다. 이러한 거리는 한 개의 시점(렌즈)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사진의 법칙에 따라 발생하며 그 거리를 늘리느냐 줄이느냐의 문제이지 거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즉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법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번 작업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대상을 아무리 없앤다 하더라도 사진이라는 표면 위에 나타나는 ‘회화적 풍경(Pictorial Space)’과 그 안에 자리잡은 형상, 이미지는 그것이 구현되고 있는, 말하자면 접하고 있는 물질적인 바탕면(support)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공간과 사물이라는 물질성을 왔다 갔다 하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에 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가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영화에 흠뻑 빠져들어 동화될 때쯤 에어컨 바람에 의해 영상을 반사하고 있는 천이 흔들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면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공간이 다시금 인지되고 내가 앉아있는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경험처럼 말이다. 사진에서는 사진이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와 사진이라는 매체의 물질적 결합이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이미지와 바탕면의 관계를 역전시켜 보는 것, 이미지가 다른 어떤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탕면의 물질성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형상과 매체의 관계가 흔들리고, 객체와 주체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 그것이 슈타이얼이 제시한 ‘자유낙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고, 그 용어를 가지고 왔다.

질문과 답에서 언급된 슈타이얼의 글은 링크 참조
http://www.e-flux.com/journal/in-free-fall-a-thought-experiment-on-vertical-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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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 스스로도 이야기 했듯이 사진하면 흔히 피사체를 상정하게 마련이고, 사진의 표면에는 피사체를 스쳐간 빛의 흔적과 시간이 이미지로 재현되게 마련인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으려고 하는 것 같다. 피사체 없이, 즉 재현하려는 대상 없이 작업을 하거나, 있더라도 지우려고 하는 작업들이 인상적이다.
대상 없이 사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맞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현실을 어떻게 잘라내어 피사체로 추상화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근본적인 요구라는 것이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회화가 무언가를 더해가면서(additive) 만들어지는 반면, 사진은 가득 차있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추출하고 덜어내는(subtractive) 과정이다. 즉 둘 다 이미지를 다루기는 하지만 회화와 사진은 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사진의 어원은 ‘빛으로 쓰다(writing with light)’로, 빛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근본적인 과정과 기법을 따져보면 지워낸다는 것이 사진에 가장 걸맞은 속성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대상을 배제하고 사진이란 매체의 표면을 지워내는 과정을 중시함으로서 정말 사진다운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봤다. 이렇게 사진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많았다. 표면을 지속적으로 씻어낸다는 행위가 정적으로 느껴졌으며, 사진을 이렇게 지우다 보면 그 종국에는 무(無)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유(有)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암실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모든 작업의 결과를 비시각적 촉감에 맡겨야 한다. 작업 결과는 매우 우연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만큼 작가는 작업의 소유자라기보다 그 작업에 연루된 혹은 관계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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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천아트플랫폼에 오기 전에 한 작업들을 보면 마주보는 거울 간의 무한 반사, 백남준의 ‘TV 부다’를 연상시키는 폐쇄회로 장치, 실재와 재현 간의 혼돈스런 상황들에 대한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들게 하는 상황들을 일부러 만들고 그것들을 지각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지적 유희 혹은 슈타이얼의 표현대로라면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작업화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거의 모든 작업들이 사고실험에서 유발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궁금증에서 유발된 탐구 과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매체의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매체’라는 단어는 어느 수단적 목적성을 지니고 있어 나의 예술적 태도에 부합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은 자율적(autonomous)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작가의 이야기를 담는 수단이 아니라 작가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실이어야 한다. 작가가 혼자 작업실에 있을 때 대화의 상대가 매체라면, 그 대화의 흔적과 결과가 예술 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작업들은 언제나 진행형이고, 마주보고 있는 거울 간의 무한 반사처럼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폐쇄회로 장치와 같이 관람자들을 타자화시키기도 하며,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출구 없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으며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어느 정도 현대미술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적이 뚜렷하며 수단으로 사용되는 매체에 대한 예술적 태도 또는 시선에 대한 반항이나 반감이라고 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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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앞으로의 계획이나 향후 작업의 지향점이 궁금하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내 삶 또한 내 작업처럼 계속 목적지 없이 흘러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으며, 그만큼 정리할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기약없이 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달할 때가 온다. 하지만 정상에 도달한 순간 다시 내려와야 한다. 아마 이번 레지던시도 그러한 과정에 속해 있지 않나 싶다. 아마 정리의 시간을 보낸 후 다음 산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사실 입주기간 동안 전과 다르게 영상 작업을 해보려 했었고, 인천이란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특정적 아이디어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구현해보려 했지만 결국 다시 이전처럼 폐쇄적인 과정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다음 작업 또한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 계기로 인해 내 작업이란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을 더 심도있게 고민해볼 생각이다. 

글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