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하는 열정의 날개짓 – 락밴드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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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토요일 오후, 연수구 동춘동에 자리한 연수문화원에서는 <연수 문화 너나들이 축제>가 열렸다. 다양한 생활문화 동호인들이 화합하는 장이었던 축제에서 밴드 동아리의 공연이 단연 백미로 꼽혔다. 공연이 끝난 뒤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02밴드 ‘화려한 외출’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린다.
서순희 : 다문화가정 밴드, 주부 밴드 등 여러 개의 밴드가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 이 팀은 ‘화려한 외출 락밴드’로 가장 활발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팀이다. 혼성 락 밴드로 지난 해 8월 결성되었고, 매주 금요일 밤에 연습을 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서순희
: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은 오래 되었다. 일명 아줌마 밴드로, 2001년부터 2012년도까지 여성 밴드 활동을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해왔다. 같이 활동했던 언니들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밴드 활동이 힘들게 되었고, 어쿠스틱 밴드 활동만 하고 있던 중, 작년에 젊고 실력 좋은 친구들을 만나 다시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결성하게 되었다. 지금 이 멤버들은 전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부터 굉장히 오래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아왔던 친구들이다.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통해 함께 모여 화려하게 나래를 펼쳐보자는 의미에서 밴드명을 짓게 되었다.

03멤버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최진용 : 기타를 맡고 있다. 이전에 속해있던 밴드에서 지금 함께 보컬을 하고 있는 정균 씨와 활동했었는데, 정균 씨가 여기 밴드로 옮기게 되면서 합류하게 되었다. 와보니까 좋은 누님(서순희 님)이 계셔서 함께 의욕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정균 : 보컬을 맡고 있다. 다른 분들하고 함께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활동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6개월 정도 활동하다가 팀이 와해되었다. 멤버를 구하던 중 누님을 소개받아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박제선 : 건반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누님이 운영하시는 악기사에 자주 방문해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번 놀러오라는 제안에 연습실을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건반을 맡게 되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이한균 : 밴드를 한 지가 꽤 오래 되기는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인 밴드라 엎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여러 밴드에 용병처럼 지원을 나가는 정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밴드에 합류하게 되고 이제야 정착을 하게 됐다.
서순희 : 베이스를 맡고 있다. 밴드 활동을 오래 해왔지만, 그 동안은 기타를 연주했었다. 지난 해 정균 씨의 제안으로 베이스를 처음 맡았다. 마침 갱년기를 지나며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열정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 도전해보는 악기이지만 굉장히 매력이 있고, 생활의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동인천에서 오랜 기간 ‘허리우드 악기사’를 운영해 오면서 밴드를 만들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서순희 : 악기사를 운영한 지가 30년이다. 내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다섯 살 즈음에는 악기사 일을 마친 후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하는 등의 일도 했었다. 그동안 악기사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연락처와 음악적 취향들을 물어보고 기록해놓고 있었는데, 열다섯 명 정도에게 연락해서 밴드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15년이 지난 지금 모양새는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밴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직장을 따로 가지고 있으면서, 시간을 따로 내어 연습을 하고 밴드 활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밴드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이한균 : 아내도 밴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큰 반대는 없었다. 대학교 때 밴드에서 만났기 때문에, 아내가 활동을 많이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
최진용 :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힘들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무대에 서서 사람들 앞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중간의 과정들은,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그 목표를 떠올리면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김정균 : 음악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집에서 게임하는 게 힘들지는 않지 않나. 우리에게는 음악이 그런 존재이다.
서순희 :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음악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굉장히 긴장도 많이 되는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멋있다고 박수도 많이 받는다. 그런 긴장감과 짜릿함을 살면서 얼마나 느껴보겠나. 연습하는 과정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다.
김정균 : 오늘도 2주 만에 쉬었는데, 휴일을 공연 일정에 맞췄다. 2003년부터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밴드 활동을 굉장히 반대했다. 어쩌다 한 번 쉬는데, 그날마저도 밴드 연습과 공연을 다니니까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밴드 활동을 반대하느라 아내가 일주일 간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다. 딸아이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빠가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도 이제는 밴드 활동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준다. 오늘도 아내와 딸아이가 공연장을 찾아와서 응원해주었다.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 원장님까지 대동해서 공연장을 찾아준 걸 보면 이제는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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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출’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진용 : 같은 밴드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뀐다. 서로가 호흡이 맞아야지만 일치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 팀에 들어와서는 실력을 떠나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굉장히 좋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인 밴드 치고는 실력도 굉장히 탄탄하고 음악적인 이해도 뛰어나다. 그래서 합이 잘 맞고, 연주하는 게 더 힘이 난다.
김정균 : 전에는 직장인 밴드를 자주 옮겨 다녔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멤버들끼리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누구 한 명이 자꾸 늦게 되면 불만들이 쌓이곤 하는데, 자영업을 하다 보니 연습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 감정들이 쌓이다보면 1년, 2년 이상 팀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누나가(서순희 님) 온 이후에 응집력이 더 강해졌다. 좋은 멤버들도 영입할 수 있었고. 같이 끈끈하게 갈 수 있는 역할을 해주고 계셔서 불안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밴드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밴드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은 계속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박제선 : 밴드를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게 가장 좋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니까.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만나 연습을 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이한균 :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멤버들이 스케줄을 많이 양해해준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기술 영업 쪽이라 지방을 많이 다니고, 한번 가면 며칠씩 있다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스케줄들을 다 양해해주셔서 참 감사하다. 이전에 활동하던 밴드들이 엎어졌던 게 거의 스케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양해해주시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함을 느낀다. 두 번째는 나이차가 있고, 혼성 밴드이며, 각자 하는 일에 전부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연습을 하는 데에 있어 대화가 굉장히 잘 통한다는 것이다. 다른 밴드에 있을 때는 자존심의 문제도 있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터치하지 않으려고 했다. 할 말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고 하다 보니 불만이 쌓이고는 했다. 하지만 이 팀에서는 대화가 굉장히 잘 이루어진다. 이 부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대화가 되니까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지 않아 좋다.
서순희 : 직장인 밴드들이 오래 못 가는 이유는 욕심들이 있어서다. 자기만 좋아하는 것을 조금 내려놓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서로 감싸주어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은 지적을 하고, 자기만 잘났다고 연주하는 것들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팀이 와해되는 경우가 많다. 멤버들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음악동아리고,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모여 있기에 묻고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꾸어준 노래가 하나씩은 있지 않나.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만들어 주었다거나, 자신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거나 하는 노래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면 어떤 노래인지, 이유도 궁금하다.
박제선 : 김건모의 노래 중에 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가 와 닿아서 좋아하는 노래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 공부나 해라” 말하는 노래인데, 그 노래 가사처럼 못생기고 키도 작고, 연주나 노래를 아주 잘하지는 않지만, 노래를 하는 것과 연주하는 것이 그저 즐거워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한균 : 신해철 1집 수록곡 중에 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 거야/지나간 일이라고”라는 구절이 있다. 99년도에 대학 밴드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연습했던 곡이 이 곡이었다.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이 “너 드럼 해”라고 해서 드럼을 맡게 됐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었는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가끔씩 힘들거나 지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힘든 것도 다 지나갈 테니까 지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최진용 : 넥스트 1집에 <아버지와 나>라는 곡이 있다. 배경 음악 위에 신해철이 노래가 아닌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곡이다. 곡이 절반 쯤 지나면 기타가 등장해 뒷부분을 끌고 가는데, 내레이션도 감정이 폭발하듯 점점 고조된다. 기타는 사실 목소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곡에서는 폭발할 듯한 내레이션과 함께 기타에도 마치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 노래를 학창시절에 들으면서, 기타가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그 곡을 계기로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여전히 그 곡에서처럼 멋진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순희 : 80년대 학번 세대에는 대학가요제가 굉장히 성행했고, 밴드 음악이 굉장히 많았다. 고등학교 때 ‘나 어떡해’와 같은 곡을 카세트에 넣고 산에 올라가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불놀이야’라는 노래에서 기타 애드립이 굉장히 멋졌다. 저런 기타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정균 : ‘She’s gone’이라는 노래에 사연이 있다. 친구들보다 생일이 느려 영장이 늦게 나왔는데, IMF이다 보니 취업도 안 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군대라도 빨리 다녀오고 싶은데 영장이 나오지 않아 지원하면 바로 갈 수 있는 의경에 지원하게 되었다. 동네 파출소에 발령받을 것을 생각했는데, 기동대에 발령이 났다. 당시 그 곳의 분위기가 굉장히 엄해 가자마자 선임들에게 많이 맞았었다. 흔히 말하는 ‘고문관’ 소리도 듣기도 하고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가 왔는데, 부대 앞에 있는 노래방으로 잠시 외출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 곳에서 ‘She’s gone’을 불렀는데, 부대에 돌아와 보니 온 중대에서 나를 때리던 모든 선임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 하는 친구’로 알려지면서 군 생활도 수월하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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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이한균 : 고객들을 직접 마주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다. 밴드 활동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무기다. 음악을 매체로 한 활동들을 통해 좋은 기운들을 얻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 또 하나는 업무 시간 이외의 여가시간을 보통은 그냥 쉬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시간으로 보내는데, 밴드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는 느낌이 든다.
박제선 : 음악을 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기타면 기타, 피아노면 피아노, 다양한 악기들을 혼자 씨름하며 익혔다. 음악을 계속 해오면서 음악이 꼭 큐브 같다고 느꼈다. 한 면을 다 맞추면 다른 면이 흐트러지고, 다른 면을 맞추면 또 다른 면이 흐트러지지 않나. 여섯 개의 면을 모두 맞추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연습하면 큐브의 모든 면을 다 맞추게 되는 것처럼 밴드 활동도 열심히 연습해 모든 면을 다 맞추고 싶다.
김정균 : 밴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삶을 더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살게 되는 것 같고 가정에도 더 충실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일주일에 한 곡을 연습하는데, 금요일에 멤버들과 모이기 전까지 일주일 내내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연습한다. 출퇴근하면서도 듣고, 차 안에서도 듣고 흥얼거리며 연습을 한다. 그러다 보면 딴생각을 할 틈이 없다. 업무 시간에도, 집에서도 더욱 성실하게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최진용 : 나에게 음악이란 판타지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판타지라고 한다면, 음악을 하는 것은 판타지 속에 빠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직장인 밴드 활동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들지 않나. 음악은 그런 현실의 고단함과 지난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판타지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가장 값어치 있는 삶의 일부이다.
서순희 : 음악은 열정 충전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많이 느낀다. 스스로 열정을 만들어내고 쏟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간 일을 하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주말 오후.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은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연습과 공연을 하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그들을 찾은 기자에게도 멤버들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열정이 가지는 힘은 엄청난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외출’의 열정이 널리 퍼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인터뷰 및 정리 / 시민기자 김진아




“예술 통해 함께 꿈꾸고 나눠요.”- 송도고등학교 ‘미남 융합미술부’ & ‘ABC 건축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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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희가 미술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림만 그리는 미술부 활동이 아니라 특색 있고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송도고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하고 주도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두 개의 동아리가 있다. ‘미남 융합미술부’와 ‘ABC 건축동아리’이다. 두 동아리는 지난해와 올해 인천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에 각각 선정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아리를 담당하고 있는 조형은 미술교사는 처음 학생들이 교무실로 자신을 찾아와 동아리 활동을 제안했던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02아이들의 제안으로 시작한 동아리 활동
“작년에 처음 이 학교에 발령받으면서 미술부를 담당하게 되었어요. 3월 초,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개괄적인 계획만 가지고 있었을 때였는데, 아이들이 먼저 교무실로 찾아왔어요. 이후 아이들과 수차례 면담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구체적인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조 선생님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3년간 미술 분야의 진로를 꿈꿔왔다. 하지만 입시에만 치우쳐 미술학원에서 일상을 보내고, 미술부 활동도 미술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단일한 형태의 미술만을 공부했어요.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는 것이 미술부 활동의 전부였죠. 하지만 학교 밖으로 나와 보니 미술에는 훨씬 다양한 형태와 분야가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진로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에게도 그 점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기술을 다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폭 넓은 사고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잘 맞아떨어졌죠.”

주도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은 대부분 1,2학년 학생들이다.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진로를 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고 탐색하려 노력했다. 교사는 지나친 개입보다는 학생들의 옆에 서서 함께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택했다. “시작부터가 아이들의 제안이었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거의 맡기고 있어요. 동아리를 통해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해 묻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죠. 지난해에는 아이들이 재능기부 활동과 전시, 벽화그리기 등의 활동을 제안했어요. 아이들이 제안한 활동을 토대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 좋을지, 적재적소에 맞는 활동을 고민했어요. 학교 축제 때 교내 전시를 하는 방법이나 지역의 경로당을 찾아 재능기부를 하는 방법을 아이들과 함께 찾았어요. 건축동아리의 경우에는 같은 예술 분야이기는 하지만 미술과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건축분야에 관한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함께 건축박람회를 다녀오기도 하고 다양한 논문들을 찾아보며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은 주변의 지인이나 인맥들을 동원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천 소재 대학교의 건축학과 학생들을 멘토로 섭외하여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어요.”

03옆에서 함께 가는 교사, 뒤에서 밀어주는 학교와 지역사회
“학교의 분위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 뿐 아니라 미술교과 수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아이들이 정말 적극적이에요. 주요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미술 수업을 등한시할 수도 있는데, 결코 수업에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지 않아요. 1학년 때 전교생이 일주일에 한 번 인성교육을 받는데, 그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자랑을 하고 다닐 정도예요. 굉장히 즐겁게,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교사로서의 보람과 즐거움이 컸고 그러한 에너지를 받아 동아리 활동과 학교의 전반적인 활동에 자극을 받게 되었어요.”

송도고등학교의 학생들 뿐 아니라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도 미술동아리와 건축동아리의 활동에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무척 많으세요. 과학중점학교이고 일반계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동아리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미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대요. 하지만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활동들을 보시고는 더 많은 지원을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담당교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학교 자체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교는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좋습니다.”

학교의 지지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송도고와 연수구 노인복지관이 MOU 체결이 되어있어요. 학생들과 재능기부 활동을 기획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반갑게 생각해주시고 연수구에 있는 가장 큰 노인정을 연결해주셨어요. 미술부 인원이 조금 많다보니 소규모보다는 규모가 큰 노인정을 찾아 직접 연결해 주신 거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울리는 기회를 통해 스스로 지역의 구성원임을 인식하고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려서 얻는 뿌듯함이 아니라 어울림을 통해 자아 효능감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인천문화재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문화재단의 지원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지원을 받게 되었는데, 덕분에 재료비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동아리 활동에 따르는 제약도 덜 수 있었습니다. 재료 준비도 넉넉하게 해서 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활동할 수 있었고, 마지막 날에는 함께 활동했던 사진을 액자에 넣어 선물해드렸어요. 작품을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진도 남겨드리니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미술동아리의 경우 올해에는 아쉽게도 지원사업에 선정이 안 되었지만, 지난해 진행한 활동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올해도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었을 활동들이에요. 다른 선생님들과 학교 전체, 그리고 지역사회가 모두 협조해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조 선생님은 스스로 인천문화재단의 팬이라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실제로 그녀는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구모임을 통해 다른 선생님들을 만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고, 지역문화예술교육 기획자 양성과정 ‘그로잉 업’에 참여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서 전공을 하게 되었고, 미대를 졸업했어요. 사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인천지역의 특색이나 인천지역의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해 알지 못했죠. 개인 작업을 지역과 연관 시킬 생각도 하지 못했었어요. 대학 졸업 이후 스페이스빔과 연이 닿았고, 그 계기로 인천문화재단을 알게 되었어요.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되려면 미술의 형태가 단독적이기 보다 통합된 형태로, 다양한 분야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활동을 진행할 때 미술교사 개인이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인천문화재단인 것 같습니다.”

팬이지만, 조 선생님이 재단에 바라는 부분도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예술분야의 진로를 꿈꾸는 아이들은 사교육을 찾아 밖으로 나가기가 쉬운데, 학교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학교문화예술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예술분야 동아리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술교사끼리, 음악교사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기획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이 모이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관련 교사 연수도 수년간 초등 교사에게만 국한되어 있는데, 중등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가 있었으면 합니다. 함께 모여 고민을 나누고 사례를 공유한다면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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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 꿈꾸고 밖에서 펼치는 아이들
점심시간을 틈타 미술동아리와 건축동아리의 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학생들과 동아리를 구성한 과정과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승훈(ABC 건축동아리)
처음에 대여섯 명 정도 건축에 관심이 있고 그 쪽으로 진로를 생각한 친구들이 건축동아리를 만들어보자고 모였어요. 조형은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건축박람회를 다니면서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쌓고 모형만들기와 같은 체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올해 ‘프로젝트 W’를 기획 중인데, 건축을 처음 접하는 친구들이 백색의 종이에 스케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만든 프로젝트 명이에요. 1학기 때는 건축박람회를 방문하여 관련 지식을 쌓았고 2학기 때는 직접 모형을 만들어보고 벽화 그리기와 같은 봉사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백광현(美남 융합미술부)
기존에도 미술부가 있기는 했지만, 미술과 관련된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서 C.O.A.라는 이름의 미술동아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형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재능기부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원래는 미술치료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할 것 같아 재능기부를 선택했어요. 어르신들과 함께 어울리며 많은 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올해는 미술 관련 논문을 쓰는 ‘미남 융합미술부’와 함께 이름을 변경하여 활동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경제와 사회문화 등 다른 분야와 미술을 접목시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죠. 사례를 들어서 논문을 쓰는데, 최근 송도에 지어진 아트센터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와 전망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윤규선
지난해 경로당을 방문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와드렸어요. 예시를 들어드리면서 비슷하게 그리실 수 있도록 하거나, 생각하신 그림을 직접 부채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이외에도 장승 만들기와 같은 활동을 했는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고구마와 수박 같은 간식들도 챙겨주시고 많이 가까워 질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규민
제 경우에는 만화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어서 평소에 미술관 같은 곳을 별로 다녀보지 않았고 전통 미술에도 역시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난해 학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송암미술관을 다녀왔는데, 전시 주제가 전통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그동안 전통은 멋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편견을 깰 수 있었습니다. OCI 미술관 창작 스튜디오에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는 실제 작가 분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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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나 특성화고와 달리 일반고에는 희망진로가 각각인 학생들이 모여 있지만, 교육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학생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학교는 드물다. 송도고의 미술동아리와 건축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진로탐색과 학생들을 위한 교사의 열정, 그리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너지를 발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예술을 꿈꾸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답을 찾고 그 꿈을 밖으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취재 및 정리 : 시민기자 김진아




“연극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해요” – 연극동아리 ‘행복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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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남동구 간석동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이다. 이곳에는 생활문화예술 동아리 연합 놀이터 소속의 많은 동아리가 있다. 그 중 기자가 만난 동아리는 연극동아리 <행복한 사람들>이다. 2014부터 결성되어 올해 2년 차로 의욕과 열정이 넘쳐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그들의 주 활동지인 문화바람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최진숙 회장님을 통해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02그들의 시작
처음 시작은 문화바람의 연극 강습이었다고 한다. 최진숙 씨의 강력한 주장으로 만들어진 문화바람의 연극 강좌가 <행복한 사람들>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이전에도 극단 MIR가 주관한 ‘시민 누구나 연극하자’ 프로그램에 2년 동안 참여하며 연극을 배웠고, 이 과정에서 연극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고 한다. 이후 2번 정도 연극동아리를 운영했으나, 아쉽게도 정기 발표회를 하지도 못하고 끝내게 되었고 그녀에겐 연극에 대한 열망과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다. 이후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2013년 문화바람의 시민 강좌는 발판이 되어줬다. 이 연극 강좌에서 발표회를 하고 이후 수강생들과 뜻을 함께 모아 지금의 <행복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가슴 속 아픔을 꺼내다.
<행복한 사람들>은 기존의 연극 대본을 쓰는 대신, 그들이 마음에 품어온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냈다. 어린이 극단인 야의 대표님과 단원들의 합의로 이 작업은 시작됐다. 단원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기억이나 아버지로 인한 아픔, 첫사랑과 같이 각자 마음깊이 숨겨놨던 아픔과 기억들을 꺼내놓았다. 이런 기억들을 글로 쓰고 이야기로 나누면서 기획한 연극이 바로 ‘행복한 여자’(아트홀 소풍, 2014)였다.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각본을 쓰고 연습하는 과정 내내 아픈 기억을 계속 되새겨야 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고, 괴로운 마음에 포기하고 숨어버리려는 단원들도 많았지만, 결국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 아픔과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에 더욱 서로를 다독이며 북돋워 줬고, 그 위로에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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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회의 발표회를 진행하기까지…
2014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진행한 행복한 여자1과 2 이후 행복한 사람들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의 각본을 만들었지만, 이 과정이 너무 힘들고 쉽지 않은 작업일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몰라서 고민에 빠진 것이다. 수많은 고민과 회의 끝에 선택한 것이 기막힌 동거였다. 기막힌 동거는 내 집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현대사회를 꼬집는 시대 풍자물로 방 한 칸을 두고 방을 빌린 숙자와 아영, 아영의 남자친구 동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전까지 행복한 사람들 단원들의 힐링 차원으로 극을 올렸다면, 기막힌 동거를 기점으로 더 전문적으로 연극을 다루게 된 것이다.

기막힌 동거와 시작된 인연
행복한 사람들은 정기 발표회 2회 이후로 그들을 이끌어줄 전문적인 연출가가 부재했다. 학창시절 연극을 했던 단원도 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그때 실제 전문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단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적인 조력자가 필요했던 그들은 한밤의 사발면 의식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고 최진숙 씨는 이야기했다. 행복한 사람들에 그가 영입됨으로써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연출지도 이외에도 정기 발표회 당시 조명, 음향, 포스터, 사진 등의 극의 외부적인 부분에서 아예 실제 종사자분들로 팀을 꾸려서 도움을 줬다고 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포스터를 준비하던 그들에게 그는 너무나도 고마운 조력자가 되어줬다. 큰 도움이 되어준 실제 전문가분들과 단원에게 감사하면서도 보답을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미안할 뿐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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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들의 열정과 의외성에 놀란 지인들
그들은 정기발표회를 하면 가족들이나 주변의 지인들을 초대한다고 한다. 관객으로 온 그들의 지인들은 우선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왔다가 프로같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곤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연극을 보며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의 이외성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 정기발표회 연극에서 부부단 원 중 남편분이 5만원이 그려진 속옷을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보며 평소에 생각할 수 없던 과감한 모습에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고 한다. 단순히 지인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로 왔던 그들은 연극을 보며 그들의 열정에 감명받고 다음 발표회를 기다리는 마니아가 됐다.

행복한 사람들이 나와 우리에게 미친 영향
인생에서 엄청난 전환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싶은 연극을 할 수 있어서 자아실현에서 만족도가 크고 가족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행복한 사람들에는 부부 단원이 있는 데, 이 부부가 연극을 같이 하게 된 계기는 남편이었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연기에 대한 꿈이 있던 사람으로 탤런트 시험과 개그맨 시험까지 봤다. 이후 어쩔 수 없이 꿈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연기와 연극에 대한 열망은 항상 품어왔던 그였다. 그런 그의 권유로 부부가 행복한 사람들의 단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아내가 활동을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기 발표회가 가까워지면서 더 연습하자고 하며 열정적으로 변했고, 극에선 너무나 멋지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시작과 달리 연극에 흥미를 붙이면서 부부 공통의 취미가 생긴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꿈과 열정을 실현함과 동시에 아내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의 가족들의 응원
행복한 사람들은 연극과 연기에 대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사람들의 열정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러한 행복한 사람들 활동이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변화를 일으켰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부모님의 삶을 존중하게 되고 그들의 배우자 또한 마찬가지로 개인 취미 시간을 인정해준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부모님의 새롭게 끊임없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을 응원해준다고 한다. 부부 단원의 딸들은 행복한 사람들 연습실로 직접 찾아와 부모님의 연극 연습을 구경하고, 팬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단원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최진숙 씨의 자녀들도 엄마의 연기에 대해 평하고 지적하면서도 엄마의 공연에 자신들의 친구들을 관객으로 초대하며, 엄마의 열정적인 모습을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이가 먹고 부모가 되더라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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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아마추어 동아리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
가장 기본적인 고민은 재정적인 문제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정기발표회 3회를 준비하며, 인천문화재단 지원 신청을 했다. 설마 되겠냐 하는 마음이었지만, 운 좋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기 공연 준비 이외에 문화바람과 놀이터 일원으로서 부담하는 비용과 같이 부가적인 비용이 드는 것은 항상 고민되는 문제이며, 이것은 행복한 사람들 이외에도 아마추어 동아리로 활동하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두 번째는 전문적인 인력 지원이다. 좀 더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한계점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좋은 코치를 해줄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시민아마추어동아리에게 그러한 도움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다 같이 연극을 보러 가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실제로 연극을 관람하면서 배우들의 표정 연기와 몸 쓰는 연기까지 꼼꼼하게 본다. 그러한 것들이 도움이 되지만 실질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가능하다면 전문인력 배치와 전문인력을 유입할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 또한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행복한 사람들의 의미
그녀는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가족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행복한 사람들이 연습 이후 혹은 그 외의 시간에 같이 모이게 돼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극과 별개로 돈독해지고 소속감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정기 발표회를 준비하며 의견충돌이 있었던 그들이다. 전문적으로 연극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합을 맞추는 과정에 그리고 재정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저 하고 싶은 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스태프로서 활동하기도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여러 부분에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에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갈등도 있었지만, 정기 발표회 이후 더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후 화해하고 더 사이가 좋아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더 돈독해지며 힘이 되어주는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꿈이 있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가장 먼저 시작을 위한 한 발자국을 떼는 것이 제일 어렵다. 그러나 용기를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우선 한 발자국 내밀어 다가오면 우리가 함께 도와줄 수 있으므로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채워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함께 하고자 하면 어렵지 않기에 용기를 가지고 말하고 싶다.

연극동아리 <행복한 사람들>은 이제 막 2년 차가 된 시민문화예술동아리로 앞으로 활동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고 했다. 최진숙 씨는 자아실현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재능기부 또한 하고 싶다는 바람 또한 내비쳤다. 다섯 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그들의 꿈을 펼치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마주하겠지만, 그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비춰볼 때 <행복한 사람>들의 앞으로는 더욱 밝으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기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 및 정리 : 시민기자 오지현




10년의 인연, 사람 냄새 가득한 사진집단 人

 

인천 서구 원당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동아리 사진집단 人이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어느새 10년이라는 기록과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6년 5월, 비 내리는 화요일, 사진집단 人의 아지트인 Long Black에서 4대 회장인 최우경(아톰) 씨, 총무 정은경(엘라) 씨과 사진집단 人의 회원인 이영희(가이아) 씨, 임봉(블루보리) 씨, 김지숙(미셰린) 씨, 이선혜(소니아) 씨, 이선희(가을이) 씨와 함께 그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sub09_01 Q. 사진집단 人 동아리는 어떻게 생기게 됐나요?
A. 2005년 원당중학교 개교기념으로 학부형과 민간인 대상으로 진행된 평생학습프로그램의 사진반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3개월간 무료로 진행되던 사진반이 폐강되면서 이에 대한 아쉬움으로 당시 사진반을 수강하던 30명 중 5명이 한 뜻이 되어 사진집단 人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 1기 멤버가 현재 회장인 최우경(아톰) 씨와 이영희(가이아) 씨이다.

Q. 사진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모두 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최우경(아톰) 씨는 사진집단 人의 같은 회원인 오숙경(처음처럼) 씨의 권유와 함께 평소에 배우기 어려운 사진을 무료로 배울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이영희(가이아) 씨는 남편의 권유로, 임봉(블루보리) 씨는 수많은 취미를 배웠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았는데 사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합동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시작했다. 김지숙(미셰린) 씨는 처음에 아이들을 잘 찍고 싶어서 시작했고…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유로 사진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취미로서 사진을 즐기고 있다.

Q. 각자 추구하는 사진 스타일이 다를 것 같은데,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스타일이 있나요?
A. 딱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다양한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열린 해석을 할 수 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처음 사진을 본 사람들이 사진집단 人의 사진을 어렵다고 얘기할 때도 있을 정도다. 길에 핀 들꽃이나 하늘처럼 일상 생활의 사소한 부분을 담아내기도 하고, 인물 사진을 즐겨 찍으면서도 사물의 디테일함을 잡아내는 작업도 좋아한다. 개인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지만, 사진집단 人은 전반적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주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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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진집단 人의 모토로 재능기부를 통한 사회적 환원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A. 대표적으로 3개가 있다. 첫 번째는 장수사진 프로젝트로 서구청의 평생학습동아리 우수프로젝트에 1등으로 당선되어 2009년부터 3년간 진행했다. 독거노인 혹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장수하시라는 의미로 사진을 찍어드리는 활동이었다. 두 번째는 다문화가정프로젝트로 다문화 가정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액자를 만들어 선물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2012년부터 시작, 4년 동안 총 130가정에게 사진을 선물했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원당 프로젝트로 인천의 과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이다. 약 2~3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로 사진집단 人 모두가 인천 곳곳의 같은 자리에서 매달 1번씩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 변화의 기록을 남겼다.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지만, 그 이후 개발이 더뎌지면서 자연스럽게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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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까지 8번의 사진전을 진행했는데, 사진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전시회는 보통 10월~11월 중에 열리고 8월쯤부터 주제를 정하기 시작한다. 1인당 총 5점의 사진을 출품하고, 전체 스토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한 해당 약 90점 이상의 작품이 전시된다. 2015년에 진행된 전시회는 상상바라보기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으며, 말 그대로 사진을 보며 대중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열린 해석을 하며 소통하고자 했다. 실제로 사진집단 人의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서 전시회를 지키는 것도 소통하기 위한 일환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하거나 사진을 어려워하는 관람객이 우리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전시회를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우리의 사진전을 기다리는 매니아층도 생겼다.

Q. 매해 전시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어떤가요?
A. 전시회를 준비할 때마다 장소 섭외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 순수 아마추어 동아리인 우리 입장에서 전문 갤러리는 재정적으로 너무 부담스럽다. 다행히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계양역 같은 역사 내에서 전시회를 진행해 왔지만, 대관을 꺼려하는 경우도 있어서 항상 장소 섭외는 우리에게 큰 과제이다. 대관하게 되더라도 2주라는 기간은 작품을 보여주기에 너무 짧다. 19명의 회원이 1인당 5점의 작품을 출품하니, 최소 90여 점 이상의 작품이 전시되는 셈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서 90여 점 이상을 전시하는데 2주는 너무나도 짧고 아쉽다.

Q. 재단의 지원을 받으면 도움이 되나요?
A. 매해 전시회를 준비할 때 개인 부담금이 적지 않게 소요되고, 전시회뿐만 아니라 대관비와 출사 혹은 장비 등 지출할 부분이 꽤 많다. 적은 비용이지만, 도록 발간 지원금은 사진집단 人의 전시회 준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문화예술동아리에게 지원해주는 인천문화재단은 항상 고마운 존재다. 앞으로도 우리와 같은 많은 아마추어 문화예술동아리에 적극적이고 다양한 지원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10년 동안 사진집단 人가 잘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가장 큰 원동력은 끈끈한 결속력과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진집단 人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사진집단 人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우리를 더욱 하나로 뭉치게 해준다. 평일에 활동할 수 있는 정규반과 직장인을 위한 직장반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사진집단 人의 일원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다. 또한, 모든 회원은 전시회에 꼭 참여하도록 하는 데 이를 통해 소속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 이끌어가는 것이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Q. 여러분들에게 사진과 사진집단 人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A. 사진은 우리에게 있어 인생의 활력소이자, 나를 위한 유일한 시간이면서, 잊고 있던 나의 감성과 정서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도구다. 주부가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위로가 되어준다. 혼자 사진을 취미로 영유할 때는 자칫 게을러지거나 나태해질 수 있는데, 사진집단 人이라는 동아리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의무감을 가지게 해 나를 잊지 않게 해준다. 그렇기에 사진집단 人은 아름다운 구속이며, 사람 냄새나는 모임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사진집단 人이 지금까지 보내온 10년의 세월처럼 변함없이 지속하며 이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전시회에서 최근 여덟 번째 전시회까지의 사진을 살펴보면 우리의 발전을 볼 수 있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혼자일 때 불가능했던 것들이 사진집단 人인 이라는 우리가 되어 가능했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그리고 사진에 관심 있으시다면 주저하지 않고 우리 사진집단 人에 손을 내밀어 주셨으면 좋겠다. 젊은 분들도 환영이다.

각자의 카메라를 소중하게 들고 모인 사진집단 人에게 사진은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이다. 처음에 그저 가족들을 잘 찍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의 그녀들에게 사진은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 되었다. 몇 시간 동안 길게 이어지는 인터뷰에도 지치지 않고 사진과 사진집단 人을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눈빛은 젊은 날 소녀의 눈빛처럼 생기 있고 밝게 빛났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사진집단 人의 앞날을 응원한다.

 

취재 및 정리 : 시민기자 오지현




사진으로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 <선린동 사진구락부>

 

햇볕 따스한 4월의 봄날. 차이나타운 해안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카페 모노그램에서 < 선린동 사진구락부(이하 구락부) >의 회원들을 만났다. 운 좋게도 기자가 < 구락부 >를 방문한 날은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로, < 구락부 >의 많은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화교학교 사진반 수업’을 계기로 만들어진 < 구락부 >는 올해로 2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와 아카이빙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은미 사진작가를 비롯하여, < 구락부 >의 회장 손미영 씨, 총무 왕언리(앨리스) 씨, 화교학교의 선생님이자 < 구락부 >의 회원인 손세혜, 추계홍, 사서범 선생님을 만나 < 선린동 사진구락부 >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선린동 사진구락부 >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모임을 구성하게 된 계기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궁금하다.
서은미
2014년 인천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사업인 [무지개다리] 사업을 통해 사진반을 개설했다. 학생반, 인천대 유학생 반, 성인반의 3개 반이 있었고, 성인반은 화교학교의 졸업생과 선생님, 학부모 등이 함께했다. 사진반 수업이 진행되었던 2014년 12월에 아트 플랫폼에서 수업을 정리하는 전시가 있었고, 그 후에 성인반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
앨리스
한 달에 한 번, 매월 두 번째 수요일에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각자 한 달 동안 사진을 찍어오고, 그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일주일에 한 장 정도 사진을 찍어오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얼마 전 벚꽃이 한창일 때는 같이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도 했다.

지난 해 <114년의 기억, 한국인천화교중산중소학>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출간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서은미
아카이빙을 통해 모은 자료집의 일종이다. 회원 중 대부분이 화교학교 출신이거나 선생님이기 때문에, 무지개다리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화교학교의 역사와 기록을 아카이빙하기로 하고 1년여 동안 자료를 모았다. 작년 12월에 그 결과물로 책이 나온 것이다. 1902년에 화교학교가 설립된 이후로 2015년 당시 현재까지의 기록들을 모을 수 있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시회에는 주로 어떠한 작품을 담는가?
서은미
맨 처음 열었던 사진전은 < Re:선린동 2014 >로, 사진반 수업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진행되었다. 사진전 제목은 선린동을 다시 불러낸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 직후 < 화교 생활사 사진전 >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진행했다. 인천대에서 진행된 전시회였는데 < 구락부 >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사진을 모았다. 이후에도 세 명의 회원이 따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고, < 114년의 기록 > 출판기념회 때도 사진전을 열었다. 작년 전시 때는 회원 네 명이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으로 < 네 명의 여자가 찍은 사계여행 >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 재작년에 대만으로 사진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몽골로 사진 워크숍을 가는 것을 계획 중에 있다.

다양한 예술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진을 소통의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사진에 주로 어떤 내용을 담는가?

서은미
우선은 재단에서 사진반 수업을 연 것이 첫 번째 계기였다. 화교학교의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다.
손세혜
처음에는 재밌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다. 전에는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풍경을 찍는 정도로만 사진을 찍었었는데, 사진을 배우고 나서는 달라졌다. 오히려 사진을 배운 이후에 사진을 찍는 장소가 훨씬 줄어들었다. 무엇을 찍고 싶다고, 사진을 찍으러 어디를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현실적으로 멀리 가기는 힘들어서 아직까지는 근처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지금껏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앨리스
몽골에서 찍었던 별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락부>의 다른 회원과 함께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찍었던 별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은미
손미영 회장님은 동네를 많이 돌아다닌다. 일상에서 골목의 요모조모를 사진에 많이 담는다. 손세혜, 추계홍, 사서범 회원은 화교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찍는다. 사서범 선생님은 매주 여행을 떠날 정도로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행 다니면서 남긴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손미영 회장님은 동네 사진을 특히 많이 찍는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손미영
원래 인천에서 화교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고 대만으로 갔다.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10여년씩을 살고, 인천으로 돌아온 지 5년이 되었다. 인천으로 돌아와서 일을 쉬고 있었는데, 마침 사진반 수업이 열려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잘 찍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활동을 했다. 사진반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려 고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동네 사진을 찍고 있다. 처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인물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골목의 오래된 모습과 같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회원들과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즐겁다.

추계홍 선생님과 사서범 선생님은 화교가 아니라 대만 분들이신데, 화교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추계홍
대만에서 대체복무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군인 신분으로 1년간 복역을 했고, 제대한 이후에도 계속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은미 선생님이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것도 좋았고, 학교의 아이들도 정말 귀여워서 학교에 남게 되었다.
사서범
인터넷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화교학교에 오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었고 편해졌다. 벌써 7년차 선생님이다.

서은미 작가님은 인천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특별히 화교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 구락부 >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서은미
지금은 다 이사를 가버리고 없지만, 모교인 축현국민학교와 남인천여중이 이 동네에 있었다. 학창시절에 놀던 동네였던 것이다. 이 동네에서 지낸 물리적인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지냈던 추억들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네에 대한 애착, 애증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 인천 이지안 >이라는 개인작업을 진행할 때 인천의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도시 ‘인천’의 특징을 잡으려고 시도했었다. 인천은 개항도시이고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화교만이 이곳에 정착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화교 분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무지개다리] 사업에 참여하여 화교학교에서 사진반 수업을 열게 되었다.

기자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들으면 관광지 정도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오랜 기간 화교사회가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화교학교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화교사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사진전과 활동은 화교사회를 알리며 지역사회에 소개하고 또 소통하고 있는데, <구락부>활동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변화한 점이 있는지?
손세혜
학교가 개방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서은미
그렇다. 작년 가을에 열린 제 3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화교 소학교 학생들이 찍은 영화의 시사회를 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영화제에서 많은 작품이 상영됐는데,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찍은 영화가 큰 주목을 받은 것이다. 올해도 영화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이 직접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거쳐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전시나 보도 덕에 화교학교가 많이 노출되고,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지역사회가 화교학교나 화교 사회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학교가 개방이 안 되어 있었나?
손세혜
이전에는 화교학교와 지역사회의 교류가 아예 없었다. 원래 폐쇄적인 사회였는데, 사진 수업을 통해 외부인이 화교학교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고, 수업을 하면서 화교학교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외부에 전시를 하는 등의 교류가 생긴 것이다.
서은미
화교를 피사체로, 대상으로 외부인이 작업한 사진은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사진을 찍고 전시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화교 사회 내부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다. 학생들의 사진도 전시되었는데, 학생들의 사진들은 성인반의 사진보다도 더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화교 사회 내부에서 많은 어른들이 학생들의 작업 결과를 보면서 “기특하다, 기대 이상이다”하며 좋아했고, 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결과물들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화교학교가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꼭 <구락부>의 활동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화교학교와 화교사회가 이 전보다는 더 많이 알려지고 소통하고 있는 데에 일조한 것 같아 뿌듯하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사진전이 있는가?
서은미
1년에 한 번은 사진전을 열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화교학교의 역사에 대한 아카이빙으로 사진을 모았던 것처럼 ‘화교 생활사 아카이빙’을 계획하고 있다. 14년도에 생활사 사진 공모전 때문에 모아놓은 사진들이 있어서 더 많은 자료들을 추가해 책을 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 선린동 사진구락부 >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앨리스
다른 회원들보다 늦게 참여하게 되었지만, 함께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이 아닌 다른 일상의 이야기도 나누는 것이 참 즐겁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말고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 구락부 >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인연을 통해 또 다른 인연들도 만나게 되었다.
추계홍
재미있다.
사서범
한국에서 친구들이 많지 않았는데, <구락부>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진도 찍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손세혜
제일 많이 놀 수 있는 나이에 한국에서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지내는 생활이 매우 단조로웠다. 대학친구들도 다 대만에 있고, 집과 학교만을 오갔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생활이 아니었다. <구락부>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여가 활동을 전보다 더 많이 즐기게 되었다. 심심할 때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사진기를 메고 밖으로 나가거나, 사진전을 보러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좋은 장소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손미영
이 모임이 끝까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정말 좋다.
서은미
처음 사진반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는, 폐쇄적인 이 곳의 특성상 참가자 모집도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모임이 이어져오고 있고, < 구락부 > 의 회원들이 비타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말 내내 심하게 앓았는데, < 구락부 > 모임에 오면 기운을 차리게 된다.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 말고도 수시로 모인다. 오늘처럼 회원의 생일이 있으면 챙기기도 하고, 이 곳(카페 모노그램)에서 함께 커피수업도 듣는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 선린동 사진구락부 >는 사진을 통해 화교사회를 지역사회에 소개하는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 구락부 >의 회원들에게서 사진에 대한 더 큰 열정과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화교사회를 소개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일상을 다시 발견하고, 그 일상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다. 재단에서 시작한 작은 수업 하나가 많은 사람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이제 그들에게 사진은 소중한 일상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 선린동 사진구락부 >,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뷰 및 정리 인천문화통신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