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돈대(墩臺), 340년 역사의 흔적
강화도에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 강화도에 오면 한국사를 파노라마처럼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강화의 다양한 문화유산 중에서도 강화를 상징하고, 강화의 역사적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돈대(墩臺)를 꼽고 싶다.
강화를 방문해서 해안 근처를 지나다 보면 곳곳에서 돈대와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돈대는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경관 좋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사진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올해는 강화에 돈대가 축조된 지 34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인 1679년(숙종5) 조선왕조는 강화도에 돈대를 쌓았다. 중국에서 기원한 군사시설인 돈대는 강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한산성 등 다른 방어시설에서도 돈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강화 돈대는 다른 어느 곳의 돈대보다 역사적, 군사적으로 특별하고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조선왕조는 두 차례의 치욕적인 호란을 거치면서, 왕조의 보장처이자 국가 방어의 요충지인 강화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강화도 방어 시설 정비에 나선다. 특히 조선 숙종 대에 큰 노력이 이루어졌는데, 지금 우리가 강화읍을 방문하면 볼 수 있는 강화산성이 수축한 것도 숙종 대이다. 돈대 역시 강화도의 방어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축조한 시설이다.
강화를 사방으로 둘러싼 돈대는 강화가 전략적 요충지이며, 국가방어의 중요한 보루임을 상징한다. 강화의 읍치에 산성을 쌓고 해안가에 돈대를 축조함으로써 강화도는 요새의 섬이 되었다. 이처럼 섬 하나를 요새화하기 위해 섬 주변에 조밀하게 돈대를 쌓은 경우는 강화가 유일하다.
강화돈대 위치도
돈대의 축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당시 병조판서였던 김석주(金錫胄, 1634~1684)였다. 김석주는 왕실의 외척으로서 숙종 초 대단한 권력을 누린 권신이자 공작 정치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1680년 남인이 대거 숙청되고 서인이 권력을 잡은 경신환국(庚申換局)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김석주는 병조판서로서 1678년 10월 강화도를 살피고 돌아와 숙종에게 지도와 서계(書啓)를 바친다. 그는 강화도의 지세를 살피고서 49곳에 돈대를 설치할 것을 건의한다. 실제 돈대의 축조는 이듬해에 이루어진다. 당초 김석주가 건의한 49돈대 중 불은평(佛恩坪)을 제외한 48개의 돈대가 만들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돈대의 축조에는 어영군(御營軍) 4,262명과 승군(僧軍) 8,900명이 동원되었다. 축조에 걸린 기간은 80일이었다고 한다. 돈대의 성첩(城堞)을 쌓는 데에는 강화도 옆 매음도(현재 석모도)의 해명산 박석이 사용되었다. 해명산 박석은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에 깔기도 한 석재이다. 해명산에서 박석을 캐서 강화로 옮겨 실제 축조 장소까지 운송하는 작업은 전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석모도 해명산
강화 돈대는 우리 역사의 고난과 아픔이 담겨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 당시 강화의 돈대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당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찾는 유적지이자 관광지인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이 바로 그 장소이다.
48개가 처음 만들어진 후에 6개가 추가 설치되어 강화의 돈대는 모두 54개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부 온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다. 보수나 복원이 이루어진 곳도 있지만, 돌무더기만 남은 곳도 있고 아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도 꽤 있다. 강화의 돈대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성보의 손돌목돈대
광성보(광성·손돌목·용두돈대), 덕진진(덕진돈대), 초지진(초지돈대) 등은 일찍이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의 전적지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다. 강화에 오는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의 필수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인 곳 외에도 강화 해안 곳곳에는 다양한 돈대들이 산재해 있다. 아름다운 동막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초승달 모양의 분오리돈대, 바다 건너 북한 땅을 접할 수 있는 월곶돈대, 오랜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 신비감마저 주는 초루돈대 등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각양각색 다양한 느낌의 돈대를 경험할 수 있다.
분오리돈대
초루돈대
송곶돈대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 5월이 왔다. 이번 달 주말에는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강화 돈대를 한 번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340년 역사의 향기를 느껴보기를 권한다.
글 · 사진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