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발언, 계속되는 연극 – 심포지엄 『포럼연극에 묻는다!』

0102 막이 오르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관객은 헛기침도 삼킨 채 최대한 정숙한 자세로 관람 매너를 준수하며 극을 ‘수용’한다. 무대 위에선 말하고 무대 아래에선 듣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연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모방된 허구가 더 현실같이 느껴지더라도,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는 연극예술은 무대와 관객 간의 소통에 한계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인물 간에 갈등이 펼쳐질 때, 등장인물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관찰자로서는 차마 보기 힘든 운명의 고난이 전개되려는 순간에 무대로 뛰쳐들어가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등장인물에 몰입했거나 그가 처한 상황이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즉 ‘나의 문제’ 로 와 닿는다면?

극중 상황에 대해 관객의 의견을 요청하는 연극, 관객을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주체로서 연극에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직접 말과 행동으로 실행하도록 하는 “포럼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심포지엄 『포럼연극에 묻는다』가 부평구문화재단 주최로 지난 5월 13일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열렸다. 김병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가 <포럼연극의 이해 및 흐름>으로, 김현정 ‘극단 해’ 부대표와 원성원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 대표가 <지역사회에서 포럼연극의 확장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으며, 이혜경 인천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장과 손미선 인천여성의전화 사무국장, 고동희 부평구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이 토론을 맡아 진행했다.

03 
아직 우리에게 낯선 개념과 형식으로 다가오는 포럼연극은, 관객들이 극에 직접 참여하여 연극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현실문제에 대한 자각과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게 하는 목적으로 창안되었다. 포럼연극의 창시자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은 1950년대 말 고국인 브라질 상파울루의 Arena Theatre를 이끌며 유럽 고전극 등을 주로 연출하다가 극심한 빈부차의 문제, 독재정권과 고질적 부정부패, 각종 사회문제에 신음하는 민중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이들을 결속시켜 적극적인 변혁의 주체로 계몽하는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도구로서의 새로운 연극이론을 고안하게 된다. 1974년에 발표된 그의 책 『억압받는 이들의 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1))』은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회적이며, 따라서 모든 연극행위 역시 정치적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며, 포럼연극의 사상과 방법론이 집대성되어 있다. 억압받는 이들은 바로 사회적 부조리에 고통받는 우리, 관객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다.
(1)한국에서는 1985년에 『민중연극론』(창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포럼연극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분리된 관계가 아니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연극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극중에 직접 피력하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배우들을 도와 내용을 수정하거나 자신이 배우의 역할을 넘겨받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배역을 통해 직접 표현한다. 대단히 적극적이고 실천중심적인 이 기법이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효과를 발휘했을까? 발제로 참여한 ‘극단 해’와 ‘프락시스’에서는 그동안 진행했던 포럼연극의 사례들을 풍부하게 소개했다. 학교폭력, 진로, 환경, 외국인노동자 인권, 미혼모, ‘워킹맘’이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문제 등 이 사회 전반에 걸쳐진 보편적인 문제들을 포럼연극을 통해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사례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연 후 관객들의 답변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만족감도 크고 주변에 추천 의향도 높은 것으로 드러나 있으나, 두 극단과 부평문화사랑방 모두 모객의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토로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①관객의 참여에 따라 매회 다른 구성이 될 수밖에 없는 형식, ②관람보다는 참여와 토론에 방점이 있어 이벤트적 성격을 띄게 되는 점, ③토론을 부담스러워하는 관객 성향 등을 그 원인으로 분석했다. 또한 관객 본인과 연계되는 지점이 없다고 판단해 버리면 공연에 대한 관심을 점화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겠다는 진단에도 동의했다.

04

부평문화사랑방은 지난 3년간 꾸준히 포럼연극을 개최해왔다. 이미숙 부평구문화재단 사랑방운영팀장은 “보통 사랑방에서는 상업적인 레퍼토리 공연들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다른 곳과 프로그램을 차별화하면서 지역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포럼연극을 주목했다고 한다. 일방적으로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이곳 지역 주민들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로 같이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는 그는, 포럼연극이 지역사회의 변화와 소통의 장으로서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포럼연극이 아직 한국에서 보편적인 공연 형식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지난 5월 26~28일 내한 공연한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극장의 연극 <민중의 적(An Enemy of the People)>이 한국 관객들을 무대로 이끌어 열띤 토론의 광장을 만들었던 것처럼, 포럼연극의 발생은 오래되었으나 우리를 둘러싼 정치․사회문제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며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의 ‘발언’ 역시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 : 노수연(재단 예술지원팀장) , 사진제공 : 부평문화사랑방




제 19회 인천예술고등학교 예술제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월의 첫 토요일, 북적북적 문화인천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운동, 인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sub05_01
sub05_02지난 4월 29일(금) 경동 <싸리재>에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서울시에서 서울역 고가도로 녹지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벤치마킹 사례로 삼았던 것이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사례이기도 하고, 근래 이 신포동 일대에 슬그머니 대두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결하여 강연을 진행한다고 하니 호기심이 절로 동했다. 심지어 강연 장소도 한옥을 리모델링해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싸리재’였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현장에 인천문화통신 3.0 생생 지상중계가 출동했다. 강연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진빈 교수가 진행했다.

sub05_03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1840년대 화물 운송용 철로를 이용하여 녹지로 만든 공원이다. 이 철로는 뉴욕 남서 구역의 공장들과 선착장을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당시는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로, 하이라인으로 통해 다니는 기차와의 잦은 사고로 인해 죽음의 길(Death Avenues)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고 1950년 이후 고속도로 건설과 대형 화물트럭의 등장으로 철도 이용이 감소하여 결국은 하이라인 노선은 폐쇄되었다. 그 폐쇄되어 버려진 철로 위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식물과 조류 등이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이라인은 철거와 보존을 둘러싸고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되다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 활동가, 환경운동가,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후원자들에 힘입어 공원 개발 방향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공원은 2005년 공사를 시작해서 2009년부터 단계별로 개방되었고, 지금은 한해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뉴욕의 명소가 되었다.

하이라인 파크가 생기고 동네는 변했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늙어버린 건물들과 그 사이사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도축장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재생되었다. 하이라인 파크가 만들어낸 녹지와 그 길을 따라 들어선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들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동네는 활기를 찾았다. 공원 주변에서는 연중 300일 동안 공연 등 행사가 이루어지고 인근은 건축 붐이 일었다. 그러면서 2002년 맨하탄 전체 평균보다 8% 낮았던 부동산 가격이 2011년까지 103% 상승하였고, 현재는 뉴욕시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 상황은 건물주들에게는 반길 만한 상황이었지만 세입자들은 달랐다. 둥지를 튼 지 50년 또는 100년 된 소규모 자동차 수리점들과 음식점들은 오히려 매상이 줄어들었고, 설상가상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했다.

sub05_04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젠트리화 되다’, ‘귀족화 되다’라는 의미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한다. 공장지대로 슬럼화 되었던 곳이 노동자 계급이 밀려나고 중산층 그리고 그 이상사람들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하이라인을 보존하고 공원으로 만들자고 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을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단 하이라인 파크 개발 사업만이 아니라도 개발과 발전 그리고 보존과 활용이 동네가 변화하고 활성화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은 약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뉴욕의 임대차보호법은 우리보다 잘 제도화 되어 있는 편이라지만 그들이 얼마나 그들의 집에서 버티고 투쟁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강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인천대학교 박진한 교수는 이 하이라인 파크 사례를 통해 인천의 현재 상황을 재고해 보고자 했다고 그 기획 의도를 밝혔다. 얼마 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경인고속도로 녹지화 사업과 지금 비어 있는 부평 미군기지 부지 활용, 신포동 일대와 부두를 포함하고 있는 개항창조도시재생사업 등 인천은 한참 변화 중이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 경관과 주민들의 생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행정 차원의 법적, 제도적 지원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강연은 인천대가 인문도시지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근대유산을 찾아 떠나는 도보여행-근대유산의 활용과 지역 활성화[ 꼭지로 구성된 강연 중 하나였다. 개발, 발전, 보존, 활용,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는 지역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을 거라 짐작해본다.

정리 : 정책연구팀 강혜림




음악이 흐르는 신포동, 풍경 셋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의 구도심에서 색다른 민간 문화공간들이 살아가는 방법

올해 첫 번째 목요문화포럼은 시작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부평과 신포동 등지에서 개성 넘치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꾸려가고 있는 네 명의 개척자를 한 자리에 모셨기 때문이다. 빙고, 요일가게, 잇다스페이스, 발로까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낯선 공간이 아닌가? 지금껏 서로 교류한 적 없다던 네 명의 개척자는 마치 이런 자리를 기다려왔다는 듯 각자의 이야기와 고민을 술술 털어놓았고,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뜨거웠던 그 날의 현장을 인천문화통신에서 만나보자.

이의중(아카이브카페 빙고)
잠실에서 살던 어린 시절 재개발을 목격한 뒤에 오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일상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을 아카이빙하려는 마음으로 마을 재생을 실현하고 싶다는 이의중 대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인천 근대건축자산의 가능성을 보고 인천을 선택했다. ‘잠실 사람’이 ‘인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인 셈.

“개인 입장에서 봤을 때 인천이 자원은 참 많은데 활용이 잘 안 되고 있으니 내가 들어가면 인천에서 할 일이 많겠구나 싶었어요. 누군가에게는 황무지로 보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이게 다 제가 해야 할 일로 보인 거죠. 그래서 인천을 선택하게 됐고, 회사 이름을 < 건축재생공방 >이라고 지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한 프로젝트가 지금의 < 빙고 > 공간입니다.”

< 인천 아카이브 빙고 재생사업 > 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건물은 예전에 굉장히 번화가였던 중앙동에 있다. 그렇지만 골목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공간에 있었던 작은 얼음 창고였다. 대지는 17평, 건물평수는 14평에 실내 내측 사이즈는 12평 반이다. 좀 특이한 점은 윗부분이 목조트러스트로 되어있다는 것. 일본에서 공부한 이의중 대표에게 익숙한 창고 건물 양식이었다. 그런데 얼음창고이다 보니 밑에 2m 정도가 화강석으로 쌓여있고, 출입구가 굉장히 작고, 개구부(창문)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년 8월 성공적으로 골목길에 나타난 < 빙고 >는 실력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 소변금지 >가 써붙여 있을 정도로 지저분했던 골목에서 < 골목길 탁구대회 >를 열고, 인디밴드와 함께하는 동네음악축제 < 사운드바운드 in 신포동 > 행사도 4월에 진행해 밤늦게까지 동네 사람들과 신나게 놀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생각만 하시고 그냥 멈춰계신 경우가 많은데요, 한 사람이라도 더 용기를 내시고 세상으로 적극적으로 나오셔서 가능성도, 가치도 있는 신포동 같은 동네에서 활동을 활발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건축재생공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고, < 빙고 >와 같은 공간도 마련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청산별곡(요일가게-다 괜찮아)
환경단체 활동가에서 생활 예술가로, 그리고 마을 활동가로 인천 배다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산별곡은 ‘배다리 생활 8년’을 ‘8년의 레지던시’라고 표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요일가게-다괜찮아>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에 살아서 집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없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그녀가 취한 방법은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기’였다.

“모든 곳이 다 제 집이에요. 저는 어딜 가든 그곳을 다 제 집으로 만들어버려요”

그러나 그렇게 꾸며놓은 집은 속은 그녀의 것이되 겉은 여전히 남의 것이었다. 죽어가던 공간을 살려놓으면, 욕심을 부리는 주인들 탓에 매번 쫓겨나고 옮겨다녀야 했던 그녀가 찾은 마지막 공간이 바로 인천, 그리고 배다리였다.

“어떤 상업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를 여는 것, 셔터 올려놓는 게 제 목표에요. 다른 책방에서 책을 사서 제 가게 에서 쉬면서 읽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저는 수익이 안 나니까 여기서 마냥 손님만 기다릴 수 없어요. 그래서 무인가게로 운영을 하 는 거죠. 저는 다른 곳에서 놀다 오고 손님이 주인이 되어서 직접 운영하고… 저는 이 방식이 참 좋고, 제가 또 잘했다고 생각해요. 잃어버리고 하는 것도 많은데(웃음) 그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이런 방식이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 또 < 요일가게 >와 < 생활문화공간-달이네 >가 운영되는 거죠. 결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주변에서 다들 도와주셔서 하는 거죠.”

독특한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 요일가게 >는 이제 제주 등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닫혀진 셔터를 열고 싶어서 시작했던 청산별곡의 시도는 ‘알아서 돌아가는 수익 구조’라는 신선한 결과를 가져왔다.

“< 요일가게 >를 꼭 지속시켜야겠다는 굳은 다짐 같은 건 없어요. 지금껏 했던 것처럼 계속 공간을 바꿔보고, 안 맞으면 다른 시도도 해보고… 그래서 < 요일가게 >로 쓸 수 있는 건물을 사는 게 제 꿈이지만, 현실적으로 건물을 사긴 어렵고, 유럽풍의 책방을 해보고 싶어요. 요일가게가 천장도 높잖아요. 책을 쫙 둘러서 꽂아놓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책을 보는 그런 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정희석(잇다스페이스)
목조형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석 대표는 ‘만들고’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개인 아뜰 리에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 잇다스페이스 >는 ‘문화주주 짓다’ 등 크라우드 펀딩과 주변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모르는 사람의 돈이 들어온다는 부담감과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는 더 열심히 지금의 < 잇다스페이스 > 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천의 골목길을 샅샅이 뒤지며 공간을 찾아다니던 일,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 주인을 설득한 에피소드와 뒷이야기도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좁은 골목으로 장비를 들여가며 리모델링을 하느라 고생은 많았지만, 고생한 만큼 현재 < 잇다스 페이스 >는 누가 와도 감탄하며, 공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곳으로 재탄생했다. 공간을 케어했지만 나중엔 그 공간이 본인을 케어한 것 같다는 정 대표는 버려진 것 같아도 안에서 계속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던 < 잇다 >의 공간에 감사한다.

“제가 ‘잇다’라고 생각을 한 것은 ‘잇다’, ‘짓다’하고 마지막으로 ‘하고’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15년 전에 만들어놓은 것인데 이번에 다 써먹어봤습니다. 아직 옥상을 개방하지 않았는데 그곳은 ‘하고’가 될 것 같습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직 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 잇다스페이스 >는 사람과 문화, 사람과 사람, 공간과 자연,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연표(스튜디오 발로)
도시재생이라는 화두가 전 세계적으로 핫한 이슈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실패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 발로 >의 김연표 대표. 그는 외국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국내에서 진행되는 관 주도의 도시재생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낡은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 발로 >식 도시재생을 추천했다. SG산업이라는 모체를 가진 < 발로 >는 영화, CF, 대중음악의 뮤직비디오 등 대규모 촬영이 가능한 로케이션 스튜디오이자 인더스트리얼 가구 판매점, 카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각각으로 따지자면 가구, 카페, 스튜디오 모두 레드오션입니다. 국내에 발로와 유사한 컨셉으로 가구를 파는 카페 등은 많습니다. 그러나 가구 파는 카페에서 각종 로케이션이 가능한 곳은 < 발로 >가 유일합니다. 일부러 공간 사진 촬영을 하는 데에 비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용을 받는 만큼 새로운 아이템들을 선별해서 갖춰놓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구요. 그 덕에 영화감독들이 사랑하는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공간재생, 도시재생, 문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면 먼저 공간이 아닌 사람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말고, 인재를 키우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발로는 하나의 인큐베이팅이고 계속해서 또다른 발로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철강 공장에서 철강을 만드는 아버지 세대처럼 자녀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의미가 있는 일. 그래서 우리는 지역 주민과 사람에게 집중해야합니다. 이것이 공간보다 앞서는 전략이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발로는 5.28(토)에 판매 수익금의 10%를 지역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플리마켓을 준비하면서, 셀러들을 모집하고 있다. 플리마켓 당일에는 방송 촬영 스케줄을 비우고, 참여하는 셀러들이 무료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날 포럼은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딱딱하고 지루한 포럼이 아니라 지역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민간 문화 공간들이 자연스러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앞으로 함께 할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더 자세한 목요문화포럼의 내용은 5월 중순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될 자료집을 통해 확인 가능하며, 6월에 열리는 두 번째 목요문화포럼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로 준비 중이라고 하니 미리 체크하시길!
정리:정책연구팀 강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