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노는 하루, 2016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축제 <꿈다락 올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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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만나는 용춤과 사자춤 – 105주년 중화민국 국경절 기념 ‘쌍십국경’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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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한국인천화교중산중소학은 일 년에 두 번, 어린이날과 국경절인 쌍십절에 교정이 들썩거린다. 학교 학생들은 물론 인천에 살고 있는 화교들과 학부모들까지 행사에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모두 출연하여 솜씨를 자랑하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용춤과 사자춤이다. 학생들이 일주일간 연습하고 선보이는 용춤과 사자춤은 보는 이들을 신명나게 한다.

인천에는 인천화교협회에 등록(2015년12월 통계)된 화교들이 약 3천여 명에 이른다. 그중 화교학교인 중산학교에 재학 중인 인원은 유치원생을 포함해 3백여 명 정도이다. 인천의 인구 3백만 명 중에 아주 적은 숫자(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구화교는 현재 2만 명 내외)로 살아가고 있는 화교들의 신분은 중화민국(타이완)의 재외국민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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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화교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용춤과 사자춤은 중국 전통 명절뿐만 아니라 각종 경축 행사나 기념행사에서 단골 프로그램으로 등장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사자춤과 용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까닭은 장소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고, 전설과 관련된 미신적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농업을 주로 하는 문화권에서 바람과 비는 농업 생산의 성패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풍년은 곧 백성을 배부르게 하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라가 평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과 사자의 능력은 무한한 능력으로 이해되며, 온갖 복을 가져오고 온갖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용춤과 사자춤은 기우제와 풍년을 기원하는 각종 명절과 행사에 빠지지 않고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10월10일 중산학교의 교정은 요란한 북소리에 맞춰 힘차고 박진감 넘치는 용춤과 사자춤을 선보이는 학생들과 그에 화답하는 관중들로 꽉 찼다. 학생들의 몸짓은 중화민국 건국 105주년 기념 축하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고 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학생들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연습기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그들의 전통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흐뭇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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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용춤을 시작했다는 송승헌 학생(현재 고등학교 3학년)에 따르면 용춤은 15명씩 팀을 이루어 연습을 하고, 두 팀이 교대로 공연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5명 모두의 팀워크라고 한다. 용춤은 중,고등학생 팀과 소학교 학생팀이 별도로 운영 중인데, 팀에 따라 용의 길이와 인원이 다르다. 10kg 정도 하는 용 머리는 여의주와 함께 경험이 많이 있는 학생이 맡아야 하고,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많은 용 꼬리는 발이 빠른 학생이 제격이라고 한다.

사자춤은 2명이 한 팀을 이루고 현재 6팀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자의 동작은 쿵푸의 동작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처음 중산학교의 사자춤은 북방계 사자춤으로 시작하였으나 1970년대 들어서 남방식 사자춤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화교학교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용과 사자는 1980년대부터 대만과 중국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화교학교 중에 용춤과 사자춤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학교는 인천의 중산학교와 부산 화교학교뿐이다. 오래 전 인천 시민의 날이나 각종 경축행사에 함께했던 용춤과 사자춤을 인천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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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니, 사람들을 좋아해서 인물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낸 시간 중에 차이나타운은 특히 더 그랬다. 일탈을 꿈꾸던 어린 내가 만났던 높은 담장의 화교학교는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야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진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도 카메라를 들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차이나타운에 어떤 일이 생기거나 본인들 가족에게 일이 있으면 내게 먼저 연락하여 함께하기를 권한다.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힘들 때도 한 번 들러 차 한 잔 하고 가기를 청해오는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우리네 이웃이다.

인천은 예로부터 항구도시의 성격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다. 지금도 동북아의 허브도시로 성장한 도시 인천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인천 속 작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다이내믹한 도시 인천의 모습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어떤 인연도 노력하지 않으면 영원할 수가 없다고 하니까.

글 / 서은미(사진가)




2016 인천문화재단 국제교류기획지원사업 <트라이 밴드 in 트라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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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자와 시와 인천의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송도 센트럴 파크에서 진행된 이번 공연은 모두 세 팀이 참여해 진행되었다. 2015년 가나자와에서 열린 재즈 스트리트 경연대회 우승팀(나츠미 요시다 쿼텟), 그리고 인천 출신의 뮤지션이 결성한 두 팀(클랜타몽, 오리엔탈쇼커스)이 릴레이 식으로 공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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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오프닝으로 일본 출신의 여성 뮤지션이 더 있었는데 실제 제공된 공연 프로그램에는 하나의 팀으로 함께 표기되어 관객들에게 약간의 혼동을 주기도 했다. 세나 카나라는 이름의 이 여성 가수는 엄밀히 뒤에 진행된 일본 재즈 쿼텟과는 별개의 것으로 완전히 성격도 다른 음악을 들려줬다. 키보드와 어쿠스틱 베이스 여성 보컬의 편성으로 총 세 곡을 소화해냈으며 모두 일본의 기존 대중음악들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음악들이었다. 전체적으로 무난하며 맑고 단아한 음성을 가진 가수라는 정도의 인상을 전해주었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팀부터 본격적으로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일본은 한국과 비교해 월등하게 재즈 시장규모도 크고 또 활동하는 재즈 뮤지션들의 수와 실력 모두 우월한 위치에 있다. 이는 최근 10년 동안 눈에 띄게 성장한 국내 재즈 신(Scene)의 저변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그 격차가 분명히 있는데, 이 팀의 무대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러한 면을 실감하게 되었다. 먼저 독특하게 여성 트럼페터가 프런트라인에 나와 있는 편성이라는 점도 필자의 시선을 끌었는데, 국내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여성 뮤지션들이 피아노에 치우쳐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브라스 악기를 선택한다는 점도 그리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면은 이후 이 팀이 들려주는 연주에서 별반 고려의 대상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일본 본토 전체의 메이저급 경연대회가 아닌, 인구 40만 정도에 불과한 가나자와에서 이루어진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팀의 실력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특히 이 팀의 드럼과 베이스 연주가 기대 이상의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전체 사운드의 토대를 아주 잘 받쳐주고 있었다. 거장 베니 골슨의 명 스탠더드 넘버인 ‘Staplemates’와 자신들의 오리지널 곡들을 함께 섞어 연주했으며 그룹의 오리지널인 세번째 곡에서 이 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상당한 테크닉과 힘 있고도 단단한 어프로치를 보여준 베이시스트 이토오 유우지의 워킹과 솔로가 임팩트있게 다가왔으며, 거기에 드러머 슈아키 모토의 날렵한 스틱워크도 자연스레 눈과 귀를 잡아끌게 만들었다. 연주에 대한 관객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필자가 보기엔 이날 공연장 가장 좋았던 팀이 바로 나츠미 요시다 쿼텟이었다) 자연스레 앙코르까지 나왔고 이들은 이에 또 하나의 스탠더드 넘버 ‘Cherokee’로 화답해주었다. 전체적으로 이제 20대 초반의 신인밴드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생각되는데, 다소 아쉽게도 리더인 트럼펫 주자 나츠미 요시다의 존재감이 타 악기 파트에 비해 다소 빈약하게 보였다. 마이크와의 능숙하지 못한 거리 조절은 차치하고라도(차라리 핀마이크가 있었더라면 좀 더 나았을 거다) 좀 더 명료하고 깨끗한 톤에 아티큘레이션을 가졌더라면 이 팀의 연주가 더욱 훌륭히 살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멤버들 모두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이니 만큼 노력여하에 따라 향후 일본 본토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입지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만한 잠재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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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팀은 국악과 일렉트로닉계열의 사운드가 한데 크로스오버된 팀으로 국내 출신의 클랜타몽이란 그룹이었다. 요즘 국악과 서양 음악의 접점을 찾기 위한 시도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데 이 팀은 멤버들의 젊은 나이에 걸맞게 좀 더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면을 자신의 음악에 수용하고 또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디제잉, 그리고 태평소, 대금같은 국악기를 함께 다루는 이호윤이란 뮤지션이 음악적 중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곡들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일정한 리듬패턴을 루프로 돌리면서 국악의 창과 무용이 한데 어우러지는 퍼포먼스와 음악이 함께 결합된 형태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가창을 담당하는 여성 보컬리스트 이수인은 창의 발성과 일반 가요에서의 창법을 곡에 맞춰 함께 구사하는 특이함을 보여줬다. 허나 리듬 메이킹의 단조로움 및 과도한 반복, 거기에 무용과 곡의 가사 모두 일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다소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면이 있었는데 표현의 완성도 및 설득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런 점은 앞으로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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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무대를 장식한 팀은 7인조로 구성된 대형 밴드 오리엔탈 쇼커스였다. 기본적으로 업템포의 밝고 그루비한 성향을 가진 팀으로 여성 보컬리스트 김그레를 메인으로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의 기본 세팅에 트럼펫, 트럼본 같은 브라스와 색소폰 같은 혼악기 주자들까지 포진한 개성적인 편성이 시선을 끌었다. 이러한 악기 편성에서 볼 수 있듯 재즈의 스윙에서 펑크(Funk), 레게, 스카와 같은 다채로운 리듬을 자신들의 음악에 포함시켜 공연 내내 몸을 들썩거리게 만들었으며 곡의 멜로디 진행은 가요의 성격도 충분히 담겨져 있어 일반 대중들도 거부감 없이 들을만한 면을 함께 보여줬다. 이미 지난 달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한 바 있으며 탑밴드 시즌3 출신인 만큼 라이브 무대에서의 연주 호흡에서도 별다른 어색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지막 앙코르로 연주한 김건모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감칠맛나는 편곡도 재미있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분명 기대되는 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공연의 흥겨움과는 별개로 무대 오른편에 있는 모니터 스피커의 노이즈는 잊을 만 하면 발생해 필자의 귀를 거슬리게 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국제교류기획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젊고 가능성 있는 뮤지션들을 서로 소개하고 공유하는 무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필자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지자체 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는 공연들은 대부분 이미 알려진 기존의 유명 뮤지션들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의도가 기저에 포함되어 있다. 그 의도대로라면 결코 마다할 일이 없다. 아니 오히려 권장되고 더 활성화되어져야 할 일이다. 기존의 대중 음악판에서 쉽사리 주목받지 못할 젊은 뮤지션들, 진취적이며 자신의 방향을 그려나가길 원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펼쳐보일 마당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이런 기획은 당연히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천문화재단의 이 사업은 그 점에서 성공적인 출사표를 던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향후 이 기획이 얼마나 초심을 잃지 않고 일관되게 진행되어져 나가는가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신경쓰면 될 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회를 거듭해갈수록 처음의 취지를 망각하고 요상한 형태로 변질되거나 혹은 대중들의 반응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몇번 지속해보지 않고 그만둬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적어도 이곳 송도의 트라이볼에서 진행되는 이 기획만큼은 꾸준하고 흔들림 없이 지속되어져 나가기를 바란다. 그게 재즈이건, 록이건 팝, 국악이건 혹은 월드 뮤직이건 간에 어느 특정장르에 귀속되지 않고 폭넓고 고른 시선을 갖고서 지원을 해나간다면 재능과 열정, 가능성을 지닌 젊은 친구들이 자연스레 이곳에 모일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마당을 만들어가는 것. 그게 문화 사업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번과 같은 무대가 지속되어져 나가길 바란다. 

글 / 김희준(MMJAZZ 편집장)




작가의 방, 그 공간에서의 특별한 3일, 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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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반영하는 문화의 창, “축제”를 바라보다.-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 오스트리아 연수(2016.08.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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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면 다양한 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축제”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며 지역의 고유한 사회, 문화적 특성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축제”의 홍수 속에서 지역성과 독창성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축제에 대한 방향성과 비전, 자원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축제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축제의 성공적인 개최와 꾸준한 유지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선행조사와 효율적인 운용이 필수다.

올 여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연수를 통해 오스트리아 브레겐츠(Bregenz)와 잘츠부르크(Salzburg)를 방문, 축제에 참여하고 관계자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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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겐츠는 인구 2만 5천명의 작은 도시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넓은 보덴 호수와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알려진 한적한 휴양도시였지만 1946년 축제행사가 시작된 이후로, 현재 호수 위로 세워진 무대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페스티벌의 무대를 관람하기 위해 인구의 10배가 넘는 25만여 명의 관광객이 매년 여름 동안 브레겐츠를 방문하고 있다.
사실 브레겐츠가 역사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도시였기에 축제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2차 대전 끝난 후 별다른 극장도 없었던 상황에서 지역을 특화할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호수 위에 배를 띄우고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을 시작한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호수’라는 천연자원과 결합하여 높은 시너지를 생성해냈다. 이후 1950년에는 호수에 나무기둥을 설치하여 그 위로 수상 무대를 만들었고 5년 뒤, 인근의 곡물창고였던 공간을 개조하여 만든 브레겐츠의 첫 실내 극장 “Theater am Kornmarkt” 등을 만드는 등 관련 인프라를 꾸준히 늘려왔다. 7,000석의 야외극장과 공연뿐만 아니라 각종 컨퍼런스가 가능한 페스티벌 하우스, 브레겐츠 미술관 등이 10분 내 거리에 서로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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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는 전쟁 폭격 피해가 적었던 구도심과 건축물을 활용한 페스티벌을 개최하자는 발상이 바탕이 되었다. 대성당 광장에서 시작된 무대는 이후 승마학교를 축제장으로 활용하고 축제극장이 건립되면서 점차 커져갔고 1948년, 잘츠부르크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축제의 예술 감독으로 합류하고 1950년에는 오스트리아 연방법에 의거 페스티벌재단이 공식 출범해 체계적인 관리체계와 지원 방안을 마련하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로 성장시켰다.

매년 26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경제 효과는 우리 돈으로 2,500억 원에 이른다. 공연 중심의 음악축제이지만 인근 미술관에서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시기에 맞춰 아카이빙 전시 등 특별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무대들도 마련된다. 15만이 조금 되지 않은 잘츠부르크에서 페스티벌과 관련해 일하는 사람 수만 해도 3,300여 명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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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두 지역에서 축제가 시작될 때 지역적인 특성은 서로 달랐다. 한쪽은 이미 모차르트의 출생지이면서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반면 한쪽은 작은 시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축제가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공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두 축제 모두 기획 단계에서부터 향유 대상을 명확히 설정한 후 이에 따라 조직 설립 및 공적기금 유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브레겐츠와 잘츠부르크 모두 초기부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기획, 대중적인 장르를 중심으로 축제를 진행했다. 축제 기간을 휴가철로 설정한 것도 성공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축제 조직을 공공기관과 연계하여 체계적인 조직기구로 변화시키고 공적기금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입하였기에 콘텐츠 구성뿐만 아니라 홍보 및 재원 마련을 위한 체계적인 운용이 가능했다. 현재 관리부서 외에도 홍보마케팅, 후원 및 개발 부서 등 다양한 전문부서에서 직원들이 근무 중이며, 매년 30~40%의 공적보조금을 바탕으로 자제 수입을 충당하여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을 축제 공간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두 도시의 페스티벌은 도시를 특징지을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브레겐츠의 경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보덴 호수에 메인무대를 제작했고, 잘츠부크르 또한 옛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도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구도심에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열린다.

셋째, 관련 인프라가 주요 진행 장소 인근으로 꾸준히 구축되어 축제를 즐기는 관람객들의 편의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두 도시 모두 축제 메인 행사장 인근 1Km 이내에 부대행사를 위한 극장 및 문화시설, 식당들과 쇼핑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축제 기간 동안 방문자들의 이동 동선을 한정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축제의 경우 소비 성향이 두드러지기에 더욱 그렇다. 두 도시 모두 티켓 판매 및 후원협찬 등을 통한 직접 수입 이외에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금액은 축제 예산의 최소 8~10배에 이르고 있다.

넷째,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지역민들 역시 이를 체감하고 적극 협력한다. 잘츠부르크 축제와 브레겐츠 축제의 티켓 가격은 100유로에서 200유로 내외로, 저렴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금액이다. 하지만 축제 메인 프로그램 외에 지역 주민들이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부대 프로그램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무료 혹은 저렴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페스티벌의 단기 일자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훌륭한 경제활동의 보조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다섯째, 경제성을 고려한 효율적인 공간운용방식을 모색하고 신규관객 유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메인무대인 수상무대는 한 번 설치되면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의 야외 오페라가 수일 또는 일주일 남짓 설치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하우스는 축제 기간 외에는 국제 컨퍼런스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 년 내내 축제 공간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신진 예술인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 및 워크숍은 물론이고, 축제의 메인 장르인 클래식뿐만 아니라 재즈, 록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페스티벌도 일 년 내내 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축제의 부가가치 확대를 위한 홍보 및 재원 확보를 위한 지역기반의 기업 및 후원자들과의 연계가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가상품의 경우 축제의 명성을 활용한 다양한 로고 상품 및 TV 중계권 판매 등의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롤렉스나 아우디 등 다양한 기업들의 페스티벌 후원 및 협찬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고정 후원관객을 바탕으로 한 기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축제 사무국에서는 후원사 및 협찬사를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들과 함께 후원자 대상 네트워크 파티 등을 열고 있으며, 직접 발행하는 잡지와 지역 관광지를 활용해 축제와 기업의 동반 관계를 홍보하고 있다.

오늘날 “축제”는 중요한 문화콘텐츠로 우리 삶과 연관되어 있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유희적 대상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 향유해야 하는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축제들이 선행연구와 환경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생겨나고, 장기적인 계획이 없이 실행되어 몇 년 만에 사라지고 있는 현 상황이 너무나도 아 쉽다. 물론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축제를 진행해온 오스트리아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짧은 역사 속에서도 축제의 다양성과 개채 수를 확장해온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되기에 더욱 그렇다.

아직까지 인천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제외하고 뚜렷하게 지역을 대표할 만한 축제가 없다. 인천소래포구축제와 부평풍물축제도 주목할 만한 축제로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지역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공간 구성과 향유 대상을 철저히 검토하여 구성된 다채로운 프로그램, 지역민들이 실제 축제를 통해 수혜자로서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장치와 제도가 필요하다. 안정적인 운용 능력 배양을 위한 자생력 확보 및 가치 확장을 통한 축제의 장기적인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인천의 인구가 3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인천에 방문하는 관광객 및 방문객의 수도 무려 100만이다. 이제는 새로운 매력을 가진 인천의 축제, 우리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반영한 콘텐츠가 간절히 필요할 때다. 앞으로 발전할 인천 축제의 가능성과 미래를 기대한다.

김세진 / 인천문화재단 공간사업팀, 프로듀서




송도의 여름밤, 재즈로 물들다. 2016 트라이볼 재즈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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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자들의 이야기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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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으로 첫 눈에 보기에도 개성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강원도, 경기도, 서울과 인천에서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나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과 단체들의 교류의 장으로 4개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함께 준비한 워크숍 ‘사방팔방’ 참여자들이다.

워크숍은 <문화디자인 자리>의 최혜자 대표가 열었다. “미사여구를 벗고 다시 문화예술교육으로”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은, 어떤 의미나 가치를 전달하기보다는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 후 참가자들은 아트플랫폼 인근 카페 여덟 곳에 두런두런 모여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10명 남짓이 둘러앉은 분임토의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의 경험이 많은 이들이 퍼실리테이터로서 이야기의 흐름을 잡았는데, 조금씩 스타일은 달랐지만 참여자들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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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인사로 시작되었다. 어느 지역에 있는 어떤 단체 혹은 기관의 아무개이고 올해 펼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은 누구와 함께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자기 소개로 시작된 이야기는 같이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활동 사례 나눔으로 이어졌고, 때로는 각자의 활동에 대한 자부심과 격려로, 때로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교육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는 쉽게 공동의 주제가 되었다.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그들에게 말 붙이기 위해서 얼마동안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부딪쳤을 때 이를 해결했던 방법에 대해서는 눈을 반짝였다. 비슷한 상황에 대응했던 자신의 노하우를 보태주기도 했고, 역시 시작하기 전에 예상치 못했던 감동 스토리에는 다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했다. 시골 마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마을회관에서 매일 화투를 치시는 분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화투에서 교육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얘기나, 그분들이 동네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 알고 보니 그동안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는 얘기는 문화예술교육이 예술에만 갇혀있는 활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 주었다. 노인분들을 만나려고 보건소장을 먼저 만났다는 경험도 교육을 프로그램 안에서만 한정하지 않는 참여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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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다 아는 문화예술교육의 좋은 점과 성과를 어떻게 가시화해야 할지에 대해, 지속가능한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도 오갔다. 공모사업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하고 있다거나 지원금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생각하게 되면서 처음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거나… 같은 일을 하면서 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고민을 꺼내놓고 풀어놓는 시간이기도 했다.

주어진 3시간은 서로가 누군지 알기에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어서 이런 고민들을 깊게 논의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활동과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사람들도 바쁘다. 이번 워크숍도 없는 시간을 쪼개서 왔을 테고 와서도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되었고,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 덕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었고, 서로에게 조언자가 되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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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은 저녁을 먹고 서로 배움을 주고 받을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워크숍을 함께 하고, 2일차에는 인천아트플랫폼과 복합문화공간 트라이볼, 월곶예술공판장을 탐방한 후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간 각자의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 워크숍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그들의 현장으로 이어졌으면, 이렇게 기획된 워크숍이 아니더라도 고민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그들의 일상에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일상을 함께 고민하는 현장에서 자주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글 / 김영경(인천문화재단 문화교육팀)




사이를 걷는, 3일의 영화 축제 – 제 4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진짜’ 가족사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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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다른 말은 ‘식구’입니다. 식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에 한 끼라도 온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가족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공유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라 할 수 있는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8월 13일(토), 10팀의 가족이 인천아트플랫폼에 모였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된 <토요창의예술학교-여름방학 가족예술캠프 ‘가족사진’>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형식을 벗어나 가족만의 특색을 살린 가족사진을 제작함으로써 예술을 매개로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10팀의 가족과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 10명은 1:1로 팀을 이루고, 이틀에 걸쳐 팀별로 특색 있는 가족사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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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첫날 한 팀을 이룬 가족과 작가들은 스튜디오로 이동, 어떤 가족사진을 만들지 심도 깊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이날 처음 만난 사이, 첫 만남은 다소 어색했지만 가족들의 고민부터 추억까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졌습니다. 컨셉을 잡기 위해 가슴 속 은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처음 듣는 서로의 속마음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집안 대소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등 가족들끼리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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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을 잡은 팀은 곧바로 가족사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형식과 틀에서 벗어난 가족사진 제작’이라는 프로그램 목적답게 팀들은 각자의 기발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가족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거나, 벽에 붙인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는 등 작가의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각 팀의 뚜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작업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작업을 마친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건 맛있는 저녁식사였습니다. C동 야외 데크에 설치된 파라솔 아래 옹기종기 모인 참가자들은 준비된 야외 뷔페를 즐긴 후 공연장으로 이동, 어쿠스틱 밴드 ‘착한밴드 이든’의 잔잔하고 따뜻한 공연을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밴드의 앵콜 공연으로 폭염 속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의 첫날은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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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앞둔 프로그램 둘째 날, 각 팀은 점점 더 완성된 형태의 작품을 완성해나갔습니다. ‘주술적인 가족 나무 모자 만들기’를 컨셉으로 잡은 최선 작가 팀은 온 가족이 껌을 씹고 난 껌의 모양을 본떠 만든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 없이 가족사진 만들기’를 시도한 이민우 작가 팀은 가족이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암실에 들어가 종이를 오려 붙이며 인물 없는 가족사진을 완성하였습니다. 신민 작가팀은 가족들의 얼굴이 들어갈 손가락 조형물을 만들어 각 손가락에 가족이 얼굴을 집어넣어 사진을 찍었고, 집을 형상화한 가족 우체통을 만든 김유정 작가팀은 우체통 옆에서 편지를 읽는 가족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습니다. 고등어 작가팀은 가족들의 신체, 물건을 접촉하여 그림을 그리는 일명 ‘촉각 드로잉’으로 멋진 가족사진을 완성하였고, 가면과 망토를 두르고 화려하게 치장한 손승범 작가팀의 가족사진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가족의 실루엣을 그린 위영일 작가팀의 작품 안에는 가족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윤대희 작가팀은 온 가족이 페이스 페인팅으로 분장하고, 호러무비 포스터 촬영을 진행해 전혀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가족의 얼굴을 배경으로 서로의 얼굴 위에서 가족의 특징을 담은 캐릭터가 뛰어노는 소인국을 만든 조원득 작가팀은 또 어떤가요?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그림과 다양한 색을 통해 가족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그림을 완성한 최현석 작가팀은 가족이 서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단박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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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친 프로그램은 단체사진 촬영 없이 마무리됐습니다.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각자의 마음 속에 이미 사진 한 장씩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일상적인 풍경처럼 존재하던 가족사진이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이번 <토요창의예술학교>는 예술을 매개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술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들의 가족처럼.

김수현(아산프론티어유스 인턴 프로그램 참여자/인천아트플랫폼 인턴)




박사가 사랑한 문장 – 한국근대문학관 ‘책 듣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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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소리는 더욱 깊어진다. 빗줄기가 소란을 잠재우기 때문일까. 아침부터 내린 비는 ‘책 듣는 수요일’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산 속 발걸음이 번거로워 외출을 자제한 이도 있었으리라. 조촐한, 열 명 남짓의 청자들은 ‘박사’(‘책 듣는 수요일’ 진행자)를 감싸는 모양새로 반원을 만들었다.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은 금세 따뜻한 반달이 되었다.

다섯 번에 걸쳐 문학작품을 듣는 시간. 시작과 끝의 한가운데, 8월의 주제는 ‘근대를 깨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박사 씨는 김명순 소설 ‘나는 사랑한다’와 강신재의 ‘안개’, 나혜석의 시 ‘아껴 무엇하리 이 청춘을’를 들려줬다. 나는 박사의 목소리를 타고 근대 여행을 떠났다.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다. 성우가 아니다. 속도와 음의 고저를 계산하지 않은 데서 온 낭독에는 담백함이 묻어있었다. 라디오 문학관 등에서 들었던 성우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녹음파일이 아닌 같은 시공간에서의 라이브 청취는 지금,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슬쩍 돌아보니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박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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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대개 라디오에서 나왔다. 라디오 한 대를 온 동네가 공유하며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에 빠져들었다. 동시성을 되살린 ‘책 듣는 수요일’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건드린다. 듣지 않아도 되고(읽으면 되고), 함께가 아니어도 되는데(혼자 들으면 되고), 그럼에도 굳이 집을 나선 것은 장작으로 때는 군불 같은 그리움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푹푹’에서 ‘쌀쌀’로 예고도 없이 ‘페이스 오프’한 계절 탓에 더운 아랫목 공기와 선한 입김을 만나고 싶었다.

왜 1920~50년대 작품이었을까. 왜 ‘나는 사랑한다’와 ‘안개’였을까.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무색하게(나는 소설가다) 두 작품 다 생소했다. “연애소설인데 큰 불로 끝나다니 뭔가 교훈적이죠?”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많이 아실 것 같아서 ‘안개’를 골랐어요.” 각각 30여분씩 쉬지 않고 정주행한 두 개의 단편소설에 대한 감상을 나는 좀처럼 말할 수 없다. 20세기의 문장은 현대의 문장과는 달라서 나는 스토리보다 소리적 재미에 더 끌렸다. 딴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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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점을 말해야겠다. 책을 들려주기 전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줄거리를 알려주었더라면 ‘음성’이 아닌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 작품을 큐레이션했는지, 어떤 부분에 특히 끌렸는지 사적인 정보를 나눴더라면 앉은 자리에서 낭독자를 달처럼 우러러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제 심정 같아서 골라봤는데 여러분도 나해석의 청춘에 공감하셨나요?” 듣는 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들려주는 사람의 속도로 한 번 들은 시를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멈춤이 불가능한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사색을 위한 일시정지’를 외쳤다. 귀 막힌 바보, 바보였다.

낭독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잠자기 전에 듣는 ‘수면제’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서재에 있는 책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 읽기’가 콘셉트라고 하지만 들어보면 청자의 수준을 낮게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쉬운 문장으로 적힌 텍스트를 짚어낸다는 뜻이다. 작가는 글의 앞뒤 맥락을 설명하고 전체가 아닌 부분을 읽는다. 인물, 사건, 배경이 담긴 한 편의 글보다 일부를 발췌하는 편이 청자를 염두에 둔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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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성격 문제다. 나라면 사람들을 앉혀 놓고 장시간 책 읽어주는 일은 못할 것 같다. 저기 있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의 표정도 보지 못하고, 내 코를 책에 빠트린 채 낭독만 한다고? 나는 확인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세요?” “문장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이 유려한 시어를 좀 보세요.” “달콤한 행간의 여백을 음미하셨나요?” 관객과의 대화를 유도한답시고 촐랑거릴 게 틀림없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은 박수도 크게 치지 않았다. 진지한 청자로서 낭독자의 호흡과 리듬을 가만가만 배려했다.

‘박사’가 사랑한 다음 문장은 ‘앞서나간, 너무나 앞서나간’ 사람들(이상과 박태원)의 것이다. 그들을 잘 안다고 단정짓지 말라. ‘책 듣는 수요일’에 가면 낯설어질 것이고, 소리의 신선함에 젖어들 것이다. 그 경험만큼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이재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