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말 걸기 위해 절망을 이야기하다
트라이보울 인문예술아카데미 <봄, 다시 희망>

지난 4월 23일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송도의 복합문화예술공간 트라이보울에선 시인 정호승과 가수 재주소년(박경환)을 초청해 ‘봄, 다시 희망’이란 주제로 인문예술아카데미를 열었다. 필자도 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트라이보울을 찾았는데, 세계 최초 역쉘(shell) 구조로 지어진 건축물의 오묘한 아름다움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부의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부는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말하던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축소한 것 같았다. 여기서 혹자는 희망을 주제로 한 아카데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왜 비극을 슬며시 꺼내는가하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호승의 강연이 그랬다. 그는 ‘희망’에 말 걸기 위해 ‘절망’을 꺼내놓고 있었다.

정호승은 자신의 시 몇 개를 소개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정호승이 말하듯 시는 역설과 반어, 더 나아가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법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각자의 경험을 끌어오거나, 또 다른 레퍼런스를 경유해 볼 수 있다. 필자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끌어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물론 철학자의 몇 마디 말로 시를 재단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원형극장을 닮은 트라이보울과 희망에 말 걸기 위해 절망을 꺼내든 시인의 모습이 필자에겐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정호승의 시로 곧바로 들어가기 보다는, 우선 니체가 소개하는 미다스 왕과 현자 실레노스의 유명한 일화를 경유해보자.

어느 날 미다스 왕은 현자 실레노스를 불러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훌륭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실레노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가련한 하루살이여, 우연의 자식이여, 고통의 자식이여, 왜 하필이면 듣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복될 일을 나에게 말하라고 강요하는가? (…)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무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은 – 바로 죽는 것이네.” 이 지독한 염세주의에 대한 니체의 처방은 그야말로 훌륭하다. 그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스인들은 삶의 무가치성과 의미 없음에서 오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고통스러운 실존의 문제에서 출발해 생기 넘치는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것이 바로 비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신들은 스스로 인간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정당화했다. 그러므로 니체는 이제 실레노스의 말을 거꾸로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곧 죽는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나쁜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7, 41쪽, 43쪽 인용]

절망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비극처럼 정호승의 시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절망을 꺼내놓는다. 그는 희망을 위한 희망은 마치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제정자들의 입에서, 수많은 텔레비전 채널에서, 즐비한 사회 캠페인 속에서 정체 없이 밝은 미래와 눈부신 희망을 본다. 그것들은 마치 하늘에서 포도주 눈이 내리고, 치킨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던 생시몽주의자들의 환상처럼 한순간 아스라이 질 운명에 처해있다. 그래서 정호승은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강연 내내 절망을 소중히 품에 안을 것을 강조했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 인용

여기서의 희망과 절망의 의미는 그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 정도로 축소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비록 강연에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희망의 밤길」에서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라고 묻는다.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 만약, 희망이 절망을 딛고 서 있다면 그 절망이란 무엇인가? 그의 시 「바닥에 대하여」는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건넨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정호승, 「바닥에 대하여」 중 인용

바닥은 있거나 없거나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절망과 바닥은 절벽이란 메타포로 이어진다. 정호승은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절망의 절벽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절벽 그 자체를 받아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절벽 그 자체가 되고, 그 밑에 있는 바닥이 되고, 거기에 뿌리 내린 나무가 되며, 그 나무 끝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새가 될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천의 얼굴(가면)을 갖고 있다. 희망은 불확정성을 딛고 선다.

정호승은 강연을 계속해 나가면서 우리에게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거기엔 토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우주 한 가운데에 좁쌀만큼 작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주적 스케일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존재란 일천할 뿐이고, 덧없고 허무할 뿐이다. 이는 앞서 실레노스가 말한 고통이며, 세계의 불확정성 속을 허우적대고 있는 존재자의 고통이다. 우리는 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여행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호승은 우리가 절망의 여행만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리에겐 절망 말고도 또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다. 여기서 희망은 존재론적 문제에서 윤리적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정호승은 「여행」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 정호승, 「여행」 중 인용

우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찾아서 인생이란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란 가치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래서 정호승은 이러한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시에서 여행을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라고 강조해 말한다. 이는 윤리적 행위를 촉구하는 타자의 명령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찾아나서는 일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타자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정호승은 그 여행이 “설산”과 “오지”로 떠나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처럼, 사랑과 고통이란 결국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절망과 고통은 희망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사랑이 고통을 동반한다면, 그것은 연인들의 배타적 사랑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나의 시야 앞에 놓여 있다고,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기다란 팔로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자이고, 재주소년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 옆에서 손뼉을 치고 있는 자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는 틱낫 스님의 말처럼 절망이란 타자는 희망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줄곧 절망을 희망의 반대급부처럼 여기고 그것을 소외시키려했다. 희망을 위한 희망엔 절망이란 타자가 없다. 타자를 제외한 희망은 불가능하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는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서로를 사랑한다.






 

글/ 박치영 인천문화통신3.0시민기자




시장에서 대 모험을 펼치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숭의평화시장에서는 복작복작한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가 있는 날 지역 특화프로그램 공모에 선정된 행사인 <숭의평화시장 대모험>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와 상인기획단, 거주 예술가, 주민들이 함께 기획한 지역특화프로그램이다.

숭의평화시장은 1971년 4월 12일에 남구 숭의 1,3동에 개설된 48년의 역사를 지닌 남구의 대표적 재래시장으로 1960년대 산업화 단계에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일대는 숭의 자유 시장, 숭의 깡 시장, 목공예 점포가 들어서 함께 성장했다. 숭의 평화 시장 건너편에는 인천에서 처음 건설된 숭의 공설 운동장이 있어 전국 체전 등 각종 스포츠, 종교, 문화, 정치 행사가 모두 이곳에서 개최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의 호황을 누렸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개설된 지 오래되어 시설이 낙후되고, 상인들의 연령은 고령화되어 1990년대 들어 활기를 잃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시장의 쇠퇴에 가장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은 시장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옛날의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본인들의 의지로 시장 상인, 주민들로 구성된 <숭의평화시장대모험> 기획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숭의평화시장에 어울리는 복작복작하고 사람 냄새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게 되었다. 시장을 아끼는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주민, 상인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숭의평화시장대모험>은 ‘어른’과 ‘아이’ 모두 놀 수 있는 공간이자 ‘시장’, ‘과학’의 문화예술적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단순히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놀러 가는 시장 즉 체험, 공연 판매 등의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원예, 농업, 목공, 에너지, 자원재활용 등 다양한 주제가 월마다 놀이, 과학, 문화예술로 어우러져 모든 체험이 무료 행사로 진행된다.

지난 4월 26일은 ‘꽃놀이 대모험’이라는 주제로 꽃 조명탑 만들기, 게릴라 가드닝, 무료체험, 아트마켓, 오픈마켓, 시장 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작은 시장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체험행사를 즐기러 이곳에 모여있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정의 경품을 낚는 시장 낚시에서부터 게릴라 가드닝 등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버려지고 황폐된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는 활동으로 소규모의 화분에서 게릴라 가드닝이 진행되었다. 직접 화분에 식물을 심으며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 황폐화된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밖에도 행사장 한 편에 캘리 공방 <다락>가게가 마련되어있었다. 이곳에서는 캘리그래피 전문가와 함께 직접 캘리그래피를 체험해볼 수 있다. 어버이날을 앞둔 아이들이 캘리그래피로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시장 한구석에서는 도깨비 책방이 열리고 있었다. 책을 구매하고 싶은 주민들은 이곳에서 어른 책, 어린이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또한 가죽공예, 규방, 우드아트, 클레이, 천연비누, 석고 방향제 등 다양한 수공예 제품들도 판매되고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시장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다문화 가족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공연팀부터 레노바기, 인천에 거주하는 어르신 합창단 등의 다채로운 공연으로 모든 숭의평화시장 <꽃놀이 대모험> 행사가 끝마쳐졌다.

이번 행사를 진행한 최경숙 사무처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숭의평화시장대모험>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이번 프로그램은 인천 남구청에 있는 시장 살리기 프로그램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응모해 당선된 지역 특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거주 예술가, 지역주민, 상인들이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에 참여한 만큼 주민들의 시장살리기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가 높다. 이러한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Q. 숭의평화시장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숭의시장은 다른 시장들과는 달리 시장 중앙이 세모 모양을 이루고 있는 예쁜 모양을 가진 시장이다. 이 공간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색다른 공간 즉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에 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또 앞으로도 진행될 5개의 행사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숭의평화시장대모험> 행사를 체험하며 작은 부분에서까지 시장에 대한 상인, 주민들의 애정과 사랑이 느껴져서 관람객의 입장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역 상인들이 직접 기획에서 진행까지 행사에 모든 부분에 노력을 투자했다는 것이 이 시장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 같다. <숭의평화시장대모험>에서부터 시작된 상인, 주민들의 작은 노력들이 계속해서 모인다면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5개의 행사들, 5월 31일에 열리는 <뚝ᄄᆞᆨ나라 대모험>, 6월 28일 <100명의 페인트공이 떳다!>등 많은 무료체험, 오픈마켓, 시장 콘서트가 진행된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숭의평화시장으로 모험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 사진/ 최승주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문학이 있는 저녁 – 자유부인을 만나다
한국근대문학관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

지난 4월 20일 목요일 저녁,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H동 2층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날은 한국근대문학관의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이 시작되는 첫 날로,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 70여 명이 강연을 찾았다.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은 2014년과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하며 매 회마다 수강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강연을 신청해 대기번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진행을 맡은 함태영 학예연구사는 강연에 앞서 ‘인천에서 진행하는 강연은 왠지 모르게 서울보다 수준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근대문학관의 특강은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분들을 엄선하여 시민들이 좋은 강의를 접하고 문학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총 8회로 구성된 특강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 하나씩을 선정해 소개한다. 작품을 미리 읽어오면 더욱 좋지만, 그렇지 않고도 충분히 강의를 따라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강의를 진행한다. 첫 번째 시간은 195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으로, 한양대 김현주 교수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연재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초 150회로 계획되었던 연재가 200회로 연장되었다는 것으로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유추할 수 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TV 드라마 ‘아내의 유혹’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대중문학이라는 인식이 강해 한동안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 받았지만, 50년대의 사회, 문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며 사람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이날 강의를 맡은 김현주 교수는 묻혀있던 정비석의 소설들을 학계와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유족들을 설득하여 몇 해 전 책으로 발간했다.

작품은 195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급격하게 늘어나며 자유와 부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는 움직임이 생기던 시기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온 남성들이 잃어버린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를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생겨났다. 또한 사랑에 대한 규범이 느슨해지면서 다양한 욕구가 공적 담론화 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통속 연애소설, 대중소설로만 보일 수 있지만, 당시의 윤리관, 사회문화적 풍토 등을 예리하게 묘파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부와 자유에 대한 당대 여성들의 욕망, 그리고 윤리적 잣대를 내세우며 여성들의 욕망을 억누르려는 남성들의 심리, 그러면서도 역시 타락한 욕망을 쫓는 당대 남성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모순까지. 작품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처럼, 당대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조명했다.

<자유부인>이 쓰였을 당시를 기억하는 할아버지부터 <자유부인>과 같은 해에 태어난 참여자, 그리고 그 시절을 역사로만 접했던 청년들까지,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이 모여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70대의 한 참여자는 당대 거리의 모습에 대한 회상을 들려주며 작품을 더욱 생생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젊은 참여자는 강사가 소개한 당대의 유행가를 스마트폰으로 틀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강연은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으로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은 오는 6월 29일까지 진행되며 황석영, 박완서, 한강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한국근대문학관은 올해 거점문학관으로 선정되어 인천, 서울, 경기 지역의 문학관을 지원하며 더욱 폭 넓은 사업을 진행한다. 또한 ‘개항문화플랫폼’의 일환으로 조성되는 ‘북플랫폼’으로 재편성되어 시민들이 문학을 더욱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사진으로 만나는 현장’을 통해 그날의 모습 소개를 대신합니다. ( 이미지 보러가기▶ )

 

글/ 김진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낯선 음악으로의 편안한 여행
소파사운즈 인천 (Sofar Sounds Incheon)

지난 4월 27일 목요일 저녁, 소파사운즈 인천(Sofar Sounds Incheon)의 다섯 번째 공연이 열린다는 구월동의 공간 쿠니를 찾았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공연을 찾을 때면 언제나 낯선 기분이 들지만, 소파사운즈의 공연을 찾는 건 조금 더 낯설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공연을 연다는 것과, 그 날 공연할 뮤지션이 누구인지 모른 채 공연장으로 향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주 다니던 길을 따라 공연장을 찾으면서도, 멀리 낯선 곳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설렘이 함께했다.

공연장에 도착하자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따뜻한 조명 아래 기타를 매고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공연장은 캄캄했고 입구에서는 야광 팔찌를 나눠주고 있었다. 청년들만 공연을 보러오겠다고 생각했지만 40, 50대 관객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 날 공연의 장르는 일렉트로니카 음악. 일렉트로닉이라고 하면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외치던 EDM만 떠오르는 내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장르였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악기가 아닌 기계를 만지며 노래하는 가수, 그 옆에서 음악에 맞춰 영상을 만드는 VJ, 자유롭게 먹고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한 분위기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소파사운즈는 런던에서 처음 시작한 공연으로, ‘Songs From a Room’의 줄임말이다. 런던의 한 디렉터가 펍에서 음악을 듣다 너무 시끄러워 음악에 집중을 할 수 없자, 누군가의 집에 뮤지션을 초대하는 형식의 공연을 만든 것에서 시작했다. 소파사운즈가 여타 공연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시크릿 라인업’이다. 당일 공연할 뮤지션의 라인업을 당일 공연에 와서 확인할 수 있다. 매번 비슷한 음악을 찾는 관객에게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뮤지션을, 매번 비슷한 관객을 만나는 뮤지션에게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함이다. 이날 두 번째 순서로 공연을 선보인 YESEO는 ‘공연에서 나를 모르는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들릴까하는 걱정이 컸지만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소파사운즈 인천의 공연을 관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 매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올라오는 소파사운즈 인천의 공연 소식을 찾는다. 둘, 공연 소식과 함께 올라오는 신청 링크를 통해 공연 초대를 신청하고 초대장을 기다린다. 셋, 초대장이 날아오면 보증금 만 원을 입금하고 공연에 참여한다. 보증금은 무료 공연을 신청하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관객을 막고 더 많은 관객에게 공연을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공연 당일 돌려받을 수 있다. 공연 초대를 신청한 모두에게 초대장이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공연을 꼭 관람하고 싶다면 유료 티켓을 구매하여 초대를 확정할 수 있다.


이날 공연을 찾은 김지은 씨는 페이스북의 홍보를 통해 소파사운즈 인천을 찾았다. 평소 소규모 공연을 좋아해 자주 보러 다닌다는 그는 부천에 살며 인천의 공연을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형식에 흥미를 느껴 공연 초대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공연 중간 쉬는 시간, 소파사운즈 인천의 스태프 한 명이 그에게 맥주 한 캔을 건넸다. 혼자 공연을 찾은 함께 온 사람들과 음식과 술을 즐기며 공연을 관람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홀로 공연을 찾은 관객이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까 맥주 한 캔과 함께 말을 건네며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운영진의 배려였다.


소파사운즈 인천은 기존의 소파사운즈 공연 형식에 인천만의 색깔을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의 특색을 나타내거나 알려지지 않은 공간과 인천에서 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찾아 관객에게 소개한다. 매 공연마다 소량으로 판매하는 유료 티켓과 드물게 들어오는 기부금이 수익의 전부인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매달 새로운 공간과 아티스트를 찾아 공연을 꾸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번 공연의 경우 아마추어 아티스트를 위한 대관 사업을 운영하는 쿤컴퍼니에서 공간을 제공하고 실비를 지원했다. 소파사운즈 인천의 한명화 총괄팀장은 ‘공연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관객들에게 새로운 공간과 음악을 소개하고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연의 취지가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답했다.


낯선 공간에서 만나는 낯선 음악. 하지만 내 집 안방에서 콘서트를 즐기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 소파사운즈 인천의 공연은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서 멋진 풍경을 마주한 것처럼 들뜨고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설레는 공연이었다. 소파사운즈 인천은 여섯 번째 공연을 5월 27일 토요일 저녁 일곱 시, 상상카페에서 진행하며 공연초대 신청은 5월 21일까지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 )를 참고하면 된다.

 

글/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소파사운즈 인천 페이스북




2017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 <소설,애니메이션이 되다>

행사일/ 2017.05.02~09.10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촬영, 편집, 구성/ 김유라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공공미술프로젝트 <2007 홍예문프로젝트>

미래의 당신, 어떤가요?
“10년 후 미래의 당신, 잘 살고 있나요?” 지난 4월 7일 오후 3시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광장에 어린아이부터 70세의 백발의 신사까지 작은 벤치 앞에 모였다. 바로 10년 전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진행된 <2007 홍예문 프로젝트>의 ‘타임캡슐’을 개봉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김창기 작가의 「타임캡슐」 은 <2007 홍예문프로젝트>중 하나의 작업으로, 인천문화재단과 인천광역시 중구청 그리고 인천중구문화원이 함께했다. 자유공원 일대 주민들의 추억의 소장품을 담아 2007년 4월 7일부터 2017년 4월 7일까지 10년 후 개봉되는 ‘타임캡슐’을 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원의 역사적 특수성을 조명하며 그것이 타인의 역사가 아닌 우리 개인의 역사임을 되새기게 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의미의 무형적 기능과 안락한 벤치의 기능을 한 곳에 마련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출석체크한다”라는 누군가의 기대에 찬 목소리와 함께 개봉된 타임캡슐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린 타임캡슐 안에는 강원도에서부터 서울, 부천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10년 전 자신을 추억하는 소장품, 편지들이 들어있었다.

10년이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듯 편지는 습기가 차 있었고 물건들은 세월의 빛을 바라있었다. 변색되어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편지를 받은 한 주민은 아쉬움에 그 편지지를 코팅해서 집에 가져가 다시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말했다. 타임캡슐에는 10년 전 86세 할머니의 편지도 있었다. 지금은 96세이신 이 분의 타임캡슐은 가족들의 품에 돌아가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모인 주민들은 자신의 10년을 추억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족, 친구와 함께 가졌다.

10년 전 타임캡슐을 묻은 주인공들 중 오현경 씨의 개봉된 타임캡슐에는 증명사진 2장, 10년 전 자신에게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녀의 편지의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이지만 이것을 볼 땐 대학생 일텐데 나의 꿈 선생님 그 꿈을 항해 달려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몸이 많이 안 좋은데 건강 잘 챙겼으면 좋겠고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어요.

오현경 씨는 타임캡슐을 개봉한 소감에 대해서 “10년이 지나서 제 자신이 많이 변화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또 여기 10년 전의 타임캡슐을 연 한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 주인공은 부천에 사는 이동철, 김성진 부부이다. 10년 전 20대였던 부부는 결혼 초 임신한 아내와 뱃속 아기와 함께 이곳에 와서 10년 후의 자신들의 가정에 대한 기대를 담은 편지를 타임캡슐을 묻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어느새 부부의 허리춤만큼 훌쩍 큰 아이와 함께 든든한 한 가정의 모습이 되어 부부의 역사를 기억하러 이곳을 찾았다. 부부는 타임캡슐을 연 소감에 대해 “10년 전에는 뱃속의 우리 아기와 함께 왔었는데 지금은 아기도 커서 다 같이 타임캡슐을 열어보니 감회가 새롭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다양한 사연이 담긴 편지와 소장품들 중 재미있는 소장품이 있었다. 윤종필씨(CCS525 디렉터)는 10년 전 타임캡슐에 담배 한 개비를 넣었다. 그는 타임캡슐에서 담배를 꺼내며 “지금은 금연했는데 그때는 담배를 피웠나 보다 10년 후에 다시 열리는 타임캡슐에는 술을 넣겠다. 그렇게 한다면 술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웃음을 보였다.

김창기 작가에게 이번 첫 번째 <2007 홍예문 프로젝트>를 끝마친 소감과 지금의 심경에 대해 물었다.

“저는 내용물이 거의 변형 없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었는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많이 변형된 모습을 보니까 너무 경솔히 생각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네요 철저하게 보존될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Q. 10년 동안 이 프로젝트 기억해주신 사람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A. 10년이라는 세월이 내용이나 본인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변형이 된 것도 있겠지만 이번 이 시간을 통해 10년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는 것에서 많은 위안이 된다.

이번 <2007 홍예문프로젝트>는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추억하며 10년 전의 내가 10년 후의 나에게 ‘10년 후 미래의 당신 잘 살고 있나요?’라는 물음과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격려,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의 역사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타임캡슐은 다시 차이나타운 자유광장 중앙 벤치에 묻어졌다. 이곳에 있었던 모두의 앞으로 10년의 역사가 담길 타임캡슐을 2027년 4월 7일 약속했던 장소에서 다시 열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글/ 최승주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사진/인천문화재단, 최승주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라” 인천시립극단 <열하일기만보>


지난 4월 7일부터 4월 16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인천시립극단이 <열하일기만보>를 상연했다.
이번 <열하일기만보>는 강량원 예술감독이 부임한 후 시립극단이 처음으로 선보인 공연으로, 시립극단으로서 가지는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강량원 예술감독은 무작정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택하기보다 약간은 난해한 작품을 택해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시에 무작정 질문을 던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몇 가지 전략 또한 선보였다. 만 20세 이상의 인천시민들로 ‘공연서포터즈’를 구성해 공연 제작 과정과 상연 전반을 경험하고 시민들에게 소개하도록 하였으며, 고미숙 고전평론가를 초청해 이번 공연과 관련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상연기간 두 차례의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해 관객들이 작품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처럼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욕심과 노력은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립극단’의 시작을 알렸다.


닫힌 사회를 향한 유쾌한 비판말(馬)로 환생한 연암 박지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열하일기만보>는 18세기 중국의 열하를 배경으로 당대 조선사회 혹은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비춘 우화이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 말(言)을 하는 말(馬) 연암의 등장에 놀라나, 이내 마을 밖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해주는 연암의 매력에 푹 빠진다. 마을의 두 원로는 마을 밖의 것들을 위험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연암에게 말(言)을 하지 않고 말(馬)처럼 소리 내 울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마을 원로의 말에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연암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의 관습과 제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에이, 할아버지 얘기는 재미없어요.”
“맞아요. 만날 수수가 어떻고, 기장이 어떻고, 울타리가 어떻고.”

마을은 당대 조선사회를, 마을의 원로들은 성리학적 이념만을 따르며 청나라를 오랑캐로 규정하던 당시 사대부들을 상징한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기르는 작물인 수수는 마을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존재지만, 모래바람이 불면 수수 역시 잘 자라지 못해 마을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은 수수를 자랑거리로 삼으며 마을 바깥을 모두 배척하는 ‘선조어록’을 읊어댄다. 원로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불행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 말로 태어난 연암과 마을 원로 간의 갈등은 청나라의 실용적인 문물을 배우고 농업 뿐 아니라 상공업 발전에도 힘써야한다고 주장했던 연암 박지원과 이념을 핑계로 그런 연암을 무조건 배척하던 당대 사대부들에 대한 풍자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분란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실체 없는 이념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내용과 더불어 연극을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었던 것은 배우들의 몸동작이었다. 대사와 감정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양한 몸짓으로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한층 더 극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극에 담긴 깊은 주제의식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연극이라는 장르가 낯선 관객이라 할지라도 연극 관람의 즐거움을 깨닫기 충분했다.

사랑, 고통을 깨우치는 힘.만만은 마을의 창녀로, 과거 마을을 점령했던 오랑캐의 후손이다. 마을 사람들은 오랑캐로부터 겪은 수모와 치욕을 상징하는 하이힐을 만만에게 신기고 그녀를 윤간한다. 만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그 부당함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마을 처녀들의 순결을 지켜내고 있다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연암이 나타난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만을 윤간하던 거보는 만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만만 역시 자신을 향한 연암의 눈물이 사랑임을 깨닫고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부끄러움과 억울함과 고통을 느낀다.

늙은 여자 초매 역시 만만과 같이 마을 사람들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인물이다. 눈과 귀가 멀었던 초매는 연암이 마을에 등장한 이후 이상한 소리를 듣고,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큰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던 초매는 불모지와 같은 밭을 가는 남편 장복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만만의 발에서 하이힐을 벗겨낸다. 벗겨진 하이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만만은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흐느낀다.

또한 연암은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이 이미 불모지가 되었음을 상기시키며,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모래바람이 불면 굶주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닫고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현실의 고통을 타개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암, 그 역시도 알쏭달쏭한최규석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에도 연암과 비슷한 인물이 등장한다. 노동운동가 고신은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워 노조를 만들고 노동운동을 하도록 만든다. 약자들에 대한 고신의 애정은 그들로 하여금 억압과 착취의 현실을 깨닫도록 하지만 현실의 고통과 맞서 싸우는 것은 결국 그들 스스로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오히려 고통을 깨닫지 못했던 이전보다도 훨씬 괴롭다. 노동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한 노동자의 아내는 고신을 향해 이렇게 절규한다. “제가 소장님 미워하는 거 아시죠. 소장님 정말 미워요. 내가 밤새도록 설득해서 겨우 아이들 아빠로 만들어놔도 소장님만 만나고 오면 꼭 소풍 전날 아이 같은 눈으로 이길 수 있다면서, 전부 지킬 수 있다면서……. 가만 두면 모래성처럼 조용히 쓸려갈 사람들을 왜 괜히 뭉쳐놔서 부서지게 만들어요.”

연암은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의 상황을 인지하게 만들고,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종용하나, 연암의 말 역시 아리송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이념’에 불과하다. 무작정 마을을 떠나는 것은 마을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도 같다. 결국 현실의 고통을 느꼈던 사람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현실에 안주하기로 결심한다. 고통의 현실로부터 만만을 데리고 도망치려던 거보는 실천하려던 의지가 좌절되자 연암을 향해 분노를 느낀다. “고통과 치욕 속에 빠져 있는 여자애 하나도 건져내지 못하는 게 이념이라면 그따위 이념은 필요 없어! 이런 이념은 죽여 버려야 해!” 거보는 분노하고 절규하며 연암의 목을 조르기에 이른다.

거보가 현실을 타개하려던 의지가 좌절된 이유는, 그 역시 현실의 문제와 맞서 싸우지 않고 현실에서 무작정 벗어나려 했음에 있다. 만만은 하이힐을 신은 채로 거보와 함께 마을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만만의 발에서 하이힐을 벗겨낸 초매는 새로운 황제가 되어 만만을 데리고 마을을 벗어난다.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의 현실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은 고통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말도,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의지도 아니며, 오직 고통으로부터 맞서 싸우는 실천뿐이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가 여기서 드러난다.


<열하일기만보>를 관통하는 주제는 예술이 가지는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현학적인 말들만 쏟아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될 것인가,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를 깨우치게 하는 작품을 만들 것인가, 예술은 현실과 직접 맞서 싸우는 실천이 될 수 있는가. 이번 공연은 시민을 위한 시립극단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인천시립극단의 질문과 고민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 질문과 고민에 대한 해답을 앞으로의 공연에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이어질 인천시립극단의 공연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글 / 김진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사진 / 인천시립극단 페이스북




찬란한 봄날을 애도하며

인천시립교향악단 362회 정기 연주회
지난 4월 7일 저녁,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제362회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이한 시립교향악단은 지난 2011년부터 모든 연주회를 시리즈로 구상하고 있다. <찬란한 봄날을 애도하며> 라는 다소 모순적인 제목으로 열린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은 지휘자 정치용의 지휘 아래 라인홀트 글리에르(R. Gliere)의 「호른 협주곡」을 호른 연주자 김홍박과 협연한 후, 안톤 부르크너(A. Bruckner)의 「교향곡 제7번」을 연주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연주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고백부터 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음악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다. 클래식 공연을 단 한 번도 관람해 본 적이 없으며, 오케스트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우리의 노다메 쨩(우에노 주리, 일본드라마 노다메칸타빌레의 여주인공)과 신이치 센빠이(타마키 히로시, 남주인공)의 ‘연애 대서사’를 그린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고 주워들은 게 고작이다. 심지어 필자의 휴대폰 음악 플레이리스트에는 가수 아이유 씨의 앨범이 2년 째 바뀌지도 않고 그대로 들어있다. 이번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도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는지, 1층 R석이 부담스러워 2층 S석 표를 예매했다. 물론 연주회가 시작되자마자 후회했지만 말이다. 이는 이번 연주회에 대해 필자가 하는 이야기가 절대 전문적인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일반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쯤으로 귀엽게 읽어주길 바란다. 필자에 관한 부끄러운 얘기는 이쯤으로 하고, 다시 연주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연주회를 관람한 관객 중 한 분이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왜 봄날을 애도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분명 <찬란한 봄날을 애도하며>라는 제목에는 어딘가 모순적인 면이 있다. 새싹이 돋고 벚꽃이 만개하는 ‘봄날’에 ‘애도’라는 낱말이 짙은 미세먼지처럼 우중충 내려앉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소설가 ‘이상’ 은 그의 작품 <12월 12일>에서 “모든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모순된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만큼 모순이라는 것은 진리이다. 모순은 그것이 모순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이상, 『이상 단편선 날개』; 「12월 12일」, 문학과지성사, 2005, p.88) 굳이 그것을 ‘진리’라고 과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찬란한 봄날을 애도하며> 라는 글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정교하게 짜인 오케스트라의 악보를 독해하는데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리에르에서 부르크너로 이어지는 연주회의 프로그램이 이미 그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글리에르는 우크라이나 태생 20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작곡가로 그의 「호른 협주곡」은 호른 레퍼토리 중 가장 사랑 받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러시아의 민속적 요소를 포함해 호른과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은 특히 인상적이다. 마치 구소비에트 연방의 활기찬 민중행진 곁에서 덥수룩한 수염에 푸짐한 인상을 지닌 광대가 콧노래를 하는 듯하다. 호른이 굵직한 저음과 가느다란 고음을 오갈 때, 우리는 구슬픔과 익살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반면, 부르크너의 음악은 웅장하고 두텁다. 그 중후한 화음은 신비로운 세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묘사한다. 특히 부르크너의 「교향곡 제7번 2악장」은, 그가 평생 경모해마지 않던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한 순간에 쓰였다고 한다. 염세와 절망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바그너. 그런 그를 동경한 부르크너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비극적 파토스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르크너에 대해 좀 더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미술사가로 유명한 에른스트 곰브리치(E. Gombrich)는 1945년 영국 런던의 BBC 월드 서비스에서 청취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독일 라디오방송을 듣던 중 심상치 않은 조짐을 발견하고 이를 즉각 상부에 보고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 방송에서 곧 모종의 발표가 있겠다며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2악장을 내보내고 있다. 이 악장은 브루크너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죽음을 추모하며 쓴 것이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경모했던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히틀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윤종, 「[서양 음악사의 뒤안길] 미술학자, 음악을 듣고 히틀러의 죽음을 맞히다.」 중 인용, 자세히 보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의 몰락을 알렸던 부르크너의 「교향곡 제7번 2악장」.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글리에르와 부르크너의 음악을 듣는 건 어떤 의미인가? 찬란한 봄날을 애도한다는 이 모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서해에서는 새싹이 땅을 비집고 나와 고개를 빼꼼 들어내듯, 심연에 잠겨있던 허약한 종이배 하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웅장하지만 녹이 슬어있었다. 봄날에 꽃처럼 바다 한가운데에서 피어난 종이배를 보며, 우리는 당분간 더할 나위 없는 애도를 표해야할 것이다. 봄과 애도, 이 모순을 우리는 철학용어를 빌어 아포리아(모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막다른 골목’, ‘출구 없는 상황’을 뜻하는데, 이 어원은 종이배의 카타스트로프(파국)를 재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종이배는 카타스트로프(대단원)의 기호로서 ‘역전’을 예고하고 있다. 몰락에 대한 목도는 우리에게 또 다른 애도를 요구한다. 이 두 애도는 글리에르의 호른처럼 한편으론 구슬프게, 다른 한편으론 즐겁게 연주될 것이다.


글을 끝내면서 필자가 음악에 문외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겠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이 전하는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본 글의 내용은 이번 연주회를 연 시립교향악단의 목적과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필자에겐 이번 시립교양악단의 연주회가, 최근 “소리 반, 공기 반”의 미덕을 가르치며 글로벌한 양식으로 정전화되고 있는 K-pop보다 우리의 삶에 더 가까워보였다. 삶을 초과하는 예술이란 산업을 겨냥한 탐미주의로 귀결될 뿐이다. 차라리 봄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는 게 어떨까? ‘봄 위에서 노래함’이란 큰 주제로 시작된 시립교향악단의 봄 시즌 프로그램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두 차례 더 열릴 계획이다. <챔버 뮤직 페스타>는 4월 25일(화) 소공연장에서, <브람스 그리고 브람스>는 5월 26일(금) 대공연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필자도 다음엔 R석으로 표를 끊어보려 한다.

글/ 박치영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추억극장 미림 상설전시실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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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2017년 4월 14일(금)
사진/ 민경찬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한국근대문학관 낭독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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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 2017년 3월 29일(수) 오후7시
사진/ 민경찬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