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걷는 인천둘레길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걷는 인천둘레길
『인천의 둘레길과 종주길, 이야기를 담다』(인천광역시, 2019) 소개- ①

안홍민(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

인천의 둘레길을 아시나요? 등산이나 걷기를 좋아하시면 분들은 잘 아실 수도 있지만 아마 인천시민들 중에서도 “인천에 둘레길이 있었나?”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도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자주 걸어갔던 길이 인천둘레길인 줄 모르고 걷는 경우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인천둘레길은 인천의 산과 하천, 해안과 갯벌, 구도심 그리고 섬까지 인천의 곳곳을 잇는 길입니다. 계양산에서 시작하여 천마산, 만월산, 문학산, 청량산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인천의 S자 녹지축을 무분별한 도시개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지역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녹지축을 잇는 둘레길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인천의 해안과 구도심, 섬까지 길을 이어나가며 총 16개 코스의 인천둘레길이 완성되었습니다.

인천둘레길은 자연환경적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인천 곳곳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여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시민들에게는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의 역할을, 동식물에게는 생명을 지켜나가는 소중한 생태 공간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인천둘레길입니다.

그런데 둘레길에는 자연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인천이 오랜 시간 만들어온 수많은 역사의 모습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전설들, 또 많은 사람의 이야기들까지. 물론 둘레길은 그냥 걸어도 좋은 길입니다. 하지만 둘레길에 얽힌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들을 알고 걷는다면 그 길을 걷는 재미도 배가되고 더욱 가치 있는 둘레길 여행이 될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인천문화재단은 지난해 인천광역시와 함께 『인천의 둘레길과 종주길, 이야기를 담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인천둘레길에 얽힌 역사, 설화, 유적, 지명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1코스인 계양산부터 제16코스인 장봉도까지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됩니다.

계양산성이나 문학산성, 참성단 등 인천의 유구한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천마산의 아기장수 이야기 등 설화들, 인천 근대 개항의 역사가 담긴 개항장의 모습들, 대도시 인천의 사람들의 삶이 모습이 녹아 있는 달동네의 구불구불한 골목길 등 총 9장의 내용 속에서 인천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글의 구성은 둘레길을 코스의 순서대로 걸으며 그곳에서 만나는 여러 장소마다 얽힌 다양한 역사와 문화이야기들을 어렵지 않은 문체로 풀어가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독자 스스로가 둘레길을 걸으며 체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우리는 인천이라는 도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인천이라는 도시의 내면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은 둘레길과 함께 인천의 종주길도 소개합니다. 우리 국토의 중요한 줄기인 한남정맥(漢南正脈)의 인천구간에 종주길이 설정되었습니다. 종주길을 걸으며 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인천 곳곳의 모습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책과 함께 둘레길을 걸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과 함께 떠나는 둘레길 여행, 그동안 몰랐던 인천의 참모습을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 인천을 담은 이미지들 <2019 도시를 보는 10명의 작가전>

[출처] 인천도시역사관

내가 사는 인천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푸른 자연의 계양산과 긴 도로망이 뻗은 부평대로 그리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계양역의 풍경,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각자 살아온 경험과 생활하고 있는 곳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 300만 명이 모두 다를 것이고 다른 지역에서 바라본 인천의 이미지도 다양할 것이다.

인천 도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인천도시역사관에서 올해 3월부터 내년 1월까지 시각예술을 통해 작가들이 경험한 인천의 모습, 표현하고 싶은 인천의 모습, 기억하고 싶은 인천의 모습을 미술, 사진 등 각자의 방식을 통해 보여주는 ‘도시를 보는 10명의 작가 展’이란 의미 있는 전시를 진행했다.


12월에는 노기훈 작가의 <1호선>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1호선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시작’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 철도가 시작되는그 철길을 따라 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고 그 속에 많은 이야기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누군가는 1호선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도 있었을 것 같다. 전시를 기획한 작가는 1호선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기대가 되었다. 전시장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이미지는 철길, 차갑고 딱딱한 고철의 느낌이 아닌 햇살이 포근하게 비치는 푸른 나무와 철길의 모습이다.

그와 대비되게 화면 양쪽으로는 철길 주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철도의 철길만을 생각할 때 그 이면의 풍경을 기록해서 보여주려는 것일까? 나에게 1호선하면 떠오르는 것은 인천역에 나와 마주치는 차이나타운의 입구 패루와 부평역의 광장, 그리고 용산역의 환승풍경, 서울역의 다양한 사람들, 시청역의 광장이다.


 전시를 보러가기전 경인일보의 전시소개 기사가 떠올랐다. 작가는 서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경인선이 시작되는 인천역에 위치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2013년 입주작가로 활동하였다. 인천과 서울을 꾸준히 오갔던 작가는 인천역에서 노량진역까지 26개의 역을 두 발로 걸으며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아 2016년에 26점의 작품으로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출처] 인천도시역사관

1호선 선로의 좌측과 우측을 2차례 걸으며 보이는 실체를 본인의 감각으로 그 상징을 포섭하려 했다는 그의 글이 다시 한번 생각나며 이번 도시역사관의 기획전시 제목과 알맞은 전시라고 생각 들었다.

그렇다면 타인이 바라본 인천의 모습을 본 관람객들은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게 될까? 전시를 하는 공간의 이름에서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하고자 했다. ‘소암홀’


도시개발로 지금은 사라져버린 연수구 동춘동 750번지 일대의 소암마을의 이름을 간직한 그 공간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 도시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이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내가 사는 도시 인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사진 / 이정민




수다가 만드는 우리 동네 기획 <입에서 입으로>

<입에서 입으로> 포스터

필자는 일을 마치고 참여하다 보니, 5시 타임부터 참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청년들의 의견을 듣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인 줄 알았지만 다른 연령대들의 등장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상황을 쭉 지켜보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녀가 있는 청년들은 아이들을 두고 올 수 없어 이 자리에 함께 오거나, 2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집에서는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없어서 부모님이나 남편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함께하는 문화 프로그램

기획자의 말에 따르면, 서구에 사는 청년들은 활동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를 ‘청년’ 대상으로만 한정 짓기 어렵다. 
또한, 이번 기획의 목적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지역 주민 간의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나오는 동네의 이야기들을 내년도 기획에 반영한다. 기획의 의도대로 청년들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주로 청년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외 마음이 청년인 주민분들과 청년과 함께하는 분들도 참여 가능한 방향으로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획을 위해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호화로운 한 끼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요즘에 바쁘다 보니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져서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사 먹거나, 회의 같은 곳에서 주는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바쁜 생활을 하고 있고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번 기획에서는 지역의 가게와 협의를 통해 수프-빵-샐러드-스테이크-음료까지 이어져 나오는 코스요리를 참여자들에게 제공하였다.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기분으로 먹는 식사라 너무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참가자들에게 제공된 음식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 이후에는 기획자가 제시하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다 보니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동네 주민이 아니라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를 조금 걱정했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지역 주민이 바라보는 가정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가 끝나고 각자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퍼실레이터는 참가자들이 작성을 마친 포스트잇을 가져가서 전지에 붙여 함께 볼 수 있도록 벽면에 배치했다.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들을 보면서 다른 테이블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함께 보고 공유할 수 있었다, 함께 얘기를 나누지 않았어도 같은 의견이 나온 것을 발견했을 때 왠지 모를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기획자들이 늘 하는 고민인 ‘지역에서 주민들을 위해 어떤 기획을 하면 좋아할까’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내용을 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은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다 싶다. 그 외에 도 청년과 지역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대해 부수적인 고민이 생겼다. 이 고민은 청년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청년들과 살아가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도 함께 이야기하면서 극복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느껴졌다. ‘왜 청년들은 인천을 떠나고 싶은가?’라는 포괄적인 질문이 아닌 ‘왜 동네에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는가?’라는 명확한 질문을 통해 하나둘씩 개선해나가다 보면, 동네를 지키는 청년들도 생겨나고, 어쩌면 그렇게 남은 청년들이 인천에서 더 좋은 기획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가정동에 대한 참가자들의 생각을 적은 내용 

· 사진 /
김지연




소파 방정환 선생 탄생 120주년 기념 특별전 <방탄어린이, 새 시대를 열다>

소파, 몽중인, 깔깔박사 그를 지칭하는 많은 필명들. 30년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는 소파 방정환 선생을 기념하는 특별전에 다녀왔다.

우리에게는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는 방정환 선생을 깊게 들여다보면 어린이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동시에 아이들을 몹시 사랑했던 모습으로 드러난다. <방탄어린이, 새 시대를 열다> 특별전에서는 사람 방정환의 모습과 그의 업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잃어버린 한글을 쉽게 읽힐 수 있도록『어린이』잡지를 출간하고 빈칸풀이나 수수께끼 문제를 내 아이들을 위한 문학의 장을 열었던 방정환 선생의 기발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한글 운동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넓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때 그는 깔깔박사라는 필명을 썼으며, 탐정소설을 썼을 때는 북극성이었다가 이솝우화를 번역할 적에는 ㅈㅎ생이라는 다소 오묘한 필명을 적기도 했다. 다양한 필명처럼 그는 머릿속에 다채롭고 많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던 듯하다.

특별전에 들어가기 전 잊지 말고 챙겨야 할 것이 있다. 그림도 그리고 문제도 풀 수 있는 체험지는 관람하는 재미를 한층 높여주니 아이의 손에 꼭 체험지를 쥐여 주고 답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떠나보자. 완성된 체험지는 공모전도 따로 진행하고 있으니 마지막 장에 응모방법도 꼭 잊지 말고 체크할 것.

기억 속 어린이날은 늘 기다려지고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했다. 그날의 꿈을 먹고 자란 ‘방탄어린이’가 곧 나이고 우리 모두일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려는 그의 작은 바람이 큰 물결이 되어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아이들에게 행복의 날을 만들어준다. 소파(小派)라는 그의 필명처럼.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는 <방탄어린이, 새 시대를 열다>는 반드시 아이와 함께 방문해 보아야 할 뜻깊은 장소다.

 

글 · 사진 /
시민기자단 임중빈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의 김훈종, 이승훈, 이재익 PD와 함께한 ‘한국영화 100년, 인생영화를 말하다!’

[출처]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올해 가장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제72회 칸영화제에서 대상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한국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였다. 이 쾌거는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시점에서 그간 이뤄온 한국영화 100년 역사를 자양분 삼아 한국영화의 문을 새롭게 열었다고 할 수 있다.

12월 12일 인천문화재단은 송도 트라이보울 공연장에서 겨울특강 ‘한국영화 100년, 인생영화를 말하다!’를 개최했다. 인천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의 일환으로 진행한 이번 특강은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의 김훈종 PD가 진행을 맡았다. 그는 이승훈, 이재익 PD와 함께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각자의 인생영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SBS방송국 3명의 PD는 8년간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쌓은 유쾌하고 노련한 입담으로 자신들이 겪었던 영화현장에서의 다양한 곡절과 사연들을 전하였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시점에서 지금 우리 시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

‘펭수’와 ‘마블’과 ‘BTS’, 하나의 세계관으로써 당당히 주류로 서다
먼저 이승훈 PD는 ‘펭수’와 ‘마블’과 ‘BTS’ 주제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을 이야기하기 전 2018년 힙합경연프로그램 <쇼미더머니777>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가수 ‘마미손’에 대한 언급을 먼저 했다. 얼굴에 핫핑크 복면을 쓰고 참가자로 나온 그는 가린 얼굴에도 감출 수 없는 특유의 랩핑으로 이전 시즌에서 심사위원과 같은 프로듀서로서 참가한 또 다른 랩퍼 ‘매드크라운’을 떠올리게 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마미손과 매드크라운 둘만은 서로 절대 같은 인물이 아니라며 부인했고 이 둘은 각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국 음악시상식 <2018 MAMA>에서는 이 두 인물에게 서로 다른 대기실까지 주었는데 이승훈 PD는 이 결정에 담긴 의미에 강하게 주목하였다. 이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마미손과 매드크라운이 비록 같은 동일인일지라도 이들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별개로 인정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우스운 이야기 취급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인형 탈을 쓴 사람으로서가 아닌 남극에서 온 펭귄인 ‘펭수’ 자체로, ‘BTS’와 같은 아이돌 그룹이 정한 각종 컨셉 역시 그 자체의 세계관으로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영화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마블은 영화가 아닌 테마파크’라는 발언을 해 여러 가지 의미로 큰 화제가 되었다. 우리는 실제로 마블의 영화를 보면서 아이언맨 같은 삶은 살 수도 없고 꿈꿀 수도 없다. 현실에서는 많이 공감하기는 어렵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이한 지금 전 세계의 관객들과 더불어 한국의 수많은 관객들 역시 마블이 구축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소수의 마니아 영화가 아닌 완결된 세계관을 가진 엔터테이먼트식 영화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청춘영화와 우리 사회, 해답보단 위로를 건네다
이승훈 PD의 이야기 키워드는 ‘청춘’이었다. 많은 이들은 청춘의 일부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시대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과거 한국영화를 통해 본 청춘은 거의 사랑을 위해 죽고 사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던 애틋하고 순애보적인 사랑을 하던 청춘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갔다. 아마 예전 영화에서 느끼던 청춘의 사랑이 좀 더 아득하고 희망적이고 낭만적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영화에서 보이는 청춘의 사랑은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볼 수 있듯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 많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는 시대와 큰 연결고리를 갖게 되는데 그러기에 당대영화를 당대에 보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영화 ‘기생충’에 담긴 오늘날의 청춘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이 영화에서는 두 청춘 남매가 등장한다. 이 두 청춘은 크게 반항적이지도 무능하지도 않다. 다만 자신들이 가진 꿈과 작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끔찍한 지하 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청춘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큰 희망도 품지 않고 그렇다고 사회를 향한 강한 분노와 비난의 말도 쏟아내지 않는다. 절망 속에 순종적이고 무기력한 이 청춘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예전 청춘들의 뜨거운 반항적인 태도가 아쉬울 따름이다. 한국영화지만 전 세계인이 ‘기생충’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늘날 극심한 빈부격차가 전 세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청춘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청춘들의 모습이 이러할지도 모른다. 타개할 수 없는 현실 속에 결국 청춘들은 기성세대에 대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보다 뜨거운 청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는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양한 청춘을 공유하는 영화를 통해 명확한 해답은 어렵지만 어쩌면 조금의 위안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라는 환상을 통해 삶을 곱씹는다.
마지막으로 김훈종 PD가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한국영화는 100년간의 역사를 통해 그동안 매우 큰 문화적 역할을 해 왔다. 80년대 우민화 정책 중 하나로 성(性)에 지나치게 집착하던 영화제작에서 벗어나 90년대 이후 좀 더 다양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발전을 위해 많은 영화인들이 함께 노력해왔다. 개인적으로 김훈종 PD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는 ‘삶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원래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는 삶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우리는 이것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잔인하게 전달한다. 관객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삶에 대하여 끊임없는 성찰과 고찰을 하고 고민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라는 환상을 통해 부조리하고 아이러니로 가득한 삶을 곱씹는 기회를 제공한다.

앞으로의 한국영화 100년,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 100년의 시간 동안 한국영화는 양과 질에서 끊임없는 발전을 이룩하였고 지금도 그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100만 관객도 어려웠던 한국영화는 이제 1,000만 영화를 다수 양산하며 올해는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코미디영화도 1000만 영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아직 해결해야 하는 영화산업 구조의 문제와 머지않아 변화될 극장 패러다임 등 앞으로 한국영화가 부딪혀야 할 파도는 높고도 거칠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영화의 눈부신 발전과 행보를 보아서는 앞으로의 한국영화 100년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글/
김지인 시민기자단




2019 트라이보울 예술아카데미 <재즈로 읽는 모던 조선>

송도국제도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복합문화공간인 ‘트라이보울’에 다녀왔다. 평소엔 트라이보울이라는 독특한 건축물의 미적요소에 매료되어 “전시” 작품에만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트라이보울 ‘공연장’에서 출연진과 관람객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연. 그리고 잠시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 잊혔다고 생각했던 장르인 ‘재즈’를 작은 콘서트로 선보였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이번 2019 트라이보울 예술아카데미는 지난 12월 13일 <저항으로 읽는 근대가요>를 시작으로, 이번 12월 20일에 선보인 <재즈로 읽는 모던 조선>까지 2회에 걸쳐 공연이 진행되었다. 대중음악사학자로 유명한 ‘장유정’ 보컬(해설)과 함께 주화준(드럼), Cray koo (피아노), 오정택(콘트라베이스)까지 총 4명이 완벽한 하모니를 진행하였다. 진행을 맡은 장유정 해설은 꼭 이 세 명과 공연을 해야 한다고 농담으로 말한 대목에서, 이번 공연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재즈’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 재즈가 들어온 초창기 풍경을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공연은 시작됐다. 그런데 재즈의 사전적 의미만을 전달한다면 공연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관람객이 조곤조곤 따라부를 수 있는 곡 ‘리라꽃 피건만’. ‘항구의 블루스’ 등을 장유정 보컬에 의해 관람객에게 쉽게 전달되었다. ‘재즈’라는 장르는 잘 몰라도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구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면, 재즈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항상 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공연 중간에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관객들에서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음악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데, ‘재즈’만큼 격동의 세월을 거쳐온 장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1920년대에 서양에서 우리나라에 처음 전파되기 시작한 ‘재즈’라는 장르는 우리나라의 최초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전파되어 갔지만, 30년대부터 군국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자 서양에서 들어온 ‘재즈’는 일제의 야욕으로 더욱 쇠퇴하게 되었다.

재즈는 비록 서양에서 전파된 음악 장르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고서는 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는데, 처음에는 번안곡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재즈의 역사는 창작곡이 나오면서부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 갔다. 비록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의 굴레에서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익숙한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닐까?

역사이야기와 함께한 재즈공연은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갈 정도로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마지막 공연에는 “앵콜”요청은 물론, 추운 겨울 찾아온 관람객들을 위해 공연 측에서 작은 선물을 준비해주셨다. 따뜻하고 감미로운 재즈 선율에 금요일 밤이 더욱 깊어져 갔다.




해금의 음악적 가능성 연구프로젝트, 박수아 쇼케이스 <해금을 해금하다>

[출처]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

두 줄의 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색의 우리나라 악기, ‘깡깡이’라는 별명도 가진 이 악기는 바로 ‘해금’이다. 12월 3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대중에게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이 악기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자리, 해금 연주자 박수아의 쇼케이스 <해금을 해금하다>가 마련되었다. 전통적인 해금의 연주를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해금의 모습을 제시한 이번 공연은 해금 연주자 박수아의 연주에 전자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이원우, 피아노의 신기원, 타악기의 임찬희가 함께하며 더욱 풍성한 무대를 꾸며주었다. 

과감하고 자유로운 시도, 해금(奚琴)을 해금(解禁)하다
꾸준한 국악의 길을 걸어온 해금 연주자 박수아는 다수의 수상경력과 화려한 공연경력을 쌓으며 젊은 연주자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연주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녀는 단순히 해금의 활을 켜는 것에서 벗어나 해금을 분석하고, 고민하고, 다양한 연주법을 찾는 일련의 과정들을 음악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해금의 전통적인 연주법 이외에도 해금에서 발생하는 모든 다양한 소리를 찾고 이를 음악으로 구현하고 싶어 ‘해금으로 금지된 것을 해지한다.’라는 뜻의 해금(奚琴)을 해금(解禁)하다로 이번 공연의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과감하고 자유로운 시도에 대한 그녀의 강한 확신은 훌륭한 연주의 결과로 드러났다.뮤지션 박수아 제공

해금연주에 담은 인천의 정서, 해금과 전자음악의 절묘한 만남
박수아 연주자의 설명과 함께 진행된 5곡의 연주로 이루어진 70여 분은 해금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곡마다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상은 해금연주의 정취를 더욱 돋우며 관객들을 연주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첫 곡은 <신(新) 천년만세>로 조선 시대 천년만년 수명을 기원하던 선비들의 음악을 해금과 피아노로 재구성하여 연주한 곳이었다. 무게감 있는 피아노 연주 위에서 뛰노는 해금의 선율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연주자의 연고지인 ‘인천’을 노래한 <미추홀 풍류>로 2017년 초연된 ‘Soul in Michuholl’을 피아노와 해금 2중주로 새롭게 편곡한 곡이었다. 인천을 상징하는 바다의 잔잔한 영상과 함께 전해진 이 연주는 같은 인천인이라 그런지 유독 더 마음에 와닿았으며 특유의 매력적인 멜로디가 마음을 울리기도 하였다. 세 번째, 네 번째는 해금과 전자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로 꾸며졌다. 이미 전자음악 컨테스트 <2019 Fest-M>에서 1위를 차지하고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에 초청되어 선보이며 그 가치를 입증받은 ‘Micro Layers’는 해금의 평음, 요성 그리고 트레몰로의 스펙트럼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데이터의 흐름을 청각적으로 구현하였다고 한다. 다소 괴기스러울 수 있는 분위기의 이 곡은 굉장히 혁신적이고 놀라운 연주로 연주자가 의도한 대로 해금의 무한한 가능성을 선보일 수 있었다. 역시 전자음악과 함께 이어진 네 번째 무대 ‘Blink’는 타악기 사물북이 함께 더해지며 눈의 깜빡임을 극적인 연주로 표현하였다. 마지막 다섯 번째 무대는 인천의 민요 <나나니 타령>을 해금 독주곡으로 구성하여 해금, 피아노, 타악기의 앙상블을 통해 무대에서 구현되었다. 화려한 영상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연주는 본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써 손색이 없었다.

무대에서 입증된 해금의 무한한 가능성
이번 공연은 해금 연주자 박수아의 세 번째 독주회이자 자신의 음악을 많은 이들 앞에 선보이는 쇼케이스 자리였다. 전통음악에서부터 전자음악까지 해금의 다양한 연주 가능성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연고지 인천 지역의 특징을 음악으로 녹여낸 이번 공연은 해금의 다양한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며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완벽하게 매료시켰다. 또한 당차고 단단해 보이는 젊은 연주자는 해금의 무한한 가능성을 자신의 무대로 충분히 입증하였으며 그녀의 연주 행보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녀가 펼쳐나갈 무한한 해금 연주의 세계를 주목해보도록 하자.

 

글 /  시민기자단 김지인




남사당명인전 <해후>

지난 7일 인천계양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풍물놀이 한 판이 벌어진다고 해서 다녀왔다. 이번 공연 ‘남사당명인전-해후(邂逅)’는 인천지역의 전통예술과 남사당놀이를 전승·계승하기 위해 인천남사당놀이보존회에서 선보인 공연이다. 남사당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고 세계인류무형유산(유네스코)으로 지정된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기도 하다

공연 자체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농사를 짓지도 보지도 못한 우리는 마을의 안전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평생 한길을 걸어온 인간문화재 명인들의 공연은 즐겁고 여유가 넘쳤다. 이런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니 관객으로서는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무료 공연으로 홍보 활동을 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맛깔나는 공연 설명은 재미와 이해를 도왔는데, 실제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볼뿐만 아니라 직접 관객이 나와 제를 지내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도 이루어졌다. 그 속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니, 명인만이 끌어나갈 여유 넘치는 놀이마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당패는 처음에 여자로 이루어진 놀이였다고 한다. 그러다 남자로 이루어진 사당패가 출현했고 이것이 남사당패로 이어졌다고 한다. 놀이를 전수 받는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드는 이유에는 경제적인 이유를 빼놓을 수 없는데, 처음에는 호기롭게 배우러 왔다가 해가 거듭될수록 전수자가 줄어 현재는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과거의 명성과 인기를 다시 찾아서 남사당패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당패로서 전통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歌-무(舞)-악(樂)-희(戱)로 구성된 이번 공연은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알차게 짜인 모습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조선 시대 와 있는 듯 남사당패의 놀이가 재연되었고 그 소리가 귀와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인천남사당놀이보존회는 전통연희의 전파를 위해 해외에서 교육사업과 문화교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실제 공연을 접하면 생소한 외국 사람들에게 더 신나는 공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좋은 전통을 외면하고 있었다니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글·사진 /
시민기자단 임중빈




소래산과 인천 역사

인천광역시 남동구와 경기도 시흥시의 경계를 이루는 소래산은 보물 1324호로 지정된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으로 유명하다. 소정방이 와서 소래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평지에 우뚝 솟은 산이란 점에서 옛날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산이었다.

흔히 문학산을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주산(主山), 진산(鎭山)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도호부의 관아가 문학산 북쪽 가까이에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오해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도호부의 읍치에서 동쪽으로 24리 떨어져 있는 소래산이 진산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광역 단위를 달리해 있고, 소래산 마애보살입상도 시흥시에 속해 있어 인천과의 관련성을 느끼기 쉽지 않지만, 소래산 전체를 비롯해 시흥시 북부를 포함한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인천도호부의 관할 구역이었다.

그런데 지난 2004년 시흥시의 지표조사 과정에서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바로 아래 평지에 귀면(鬼面) 암막새 하나가 발견되었다. 막새는 기와로 지붕을 얹은 뒤 가장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처마 끝에 놓는 기와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둥근 모양의 수키와에 연결되면 수막새, 넓적한 암키와에 연결되면 암막새라 하는데, 소래산에서 발견된 것은 암막새다.

소래산에서 발견된 귀면(鬼面) 암막새

귀신 모양이라고 하여 귀면(鬼面)이라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리숙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치아를 다 드러낸 입이나 지나치게 작게 묘사된 코, 한쪽으로 쏠린 듯한 눈동자에서 약간은 바보스러운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이 완전한 형태는 아니고 크기도 가로가 11.8㎝, 세로가 5.3㎝, 두께가 2.2㎝에 불과하지만 다행히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었던 이 막새는 역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연구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소래산 마애보살입상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 같다. 거대한 벽에 새긴 보살상이 있으니, 그것과 연관된 사찰이나 관리용 건물이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기와와 막새를 얹었던 것은 아닐까?

귀면 암막새 탁본

소래산이 고려시대에도 인천의 관할 구역이었고 그런 큰 공력을 들여 불상을 새길만 한 주체로는 인천을 본향으로 하여 고려 왕실과 통혼관계를 꾸준히 맺으며 세력을 떨쳤던 인주이씨 가문을 우선 떠올려 볼 수 있다. 비록 현재의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소래산과 주변의 유적, 유물을 인천의 역사라는 틀 안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소래산이 중요한 것은 인천도호부의 진산이란 것이다. 부평도호부의 진산이 부 관아 뒤쪽에 있는 계양산이었듯 대부분 지역의 진산과 관아는 가까이 있다. 그런데도 인천도호부는 가까운 문학산을 두고 동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소래산을 진산으로 삼았다. 추정에 추정을 거듭하는 이야기지만 삼국시대 이래 인천의 읍치가 소래산 가까운 곳에 있다가 조선초기에 현재의 문학산 근처로 옮겨졌을 가능성은 없을까?

조선의 정조 임금은 재위 21년째인 1797년 8월 16일에 김포에서 출발해 수원 현륭원(사도세자 릉)으로 행차하는 도중에 부평도호부를 통과해 인천도호부 경내에 들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바람 깃발 휘날리며 해문을 돌아오니 / 風旂獵獵海門廻
소래산 좋은 경치에 눈이 번쩍 뜨이네 / 秀色蘇來眼忽開
높다란 군자봉을 서로 가리켜 보이어라 / 君子峰高入指點
혹 그 안에 숨은 인재가 있지 않을는지 / 儻非中有隱淪才

〈인천으로 가는 도중에 읊어서 부아에 걸도록 명하고 고을 수령 황운조로 하여금 쓰게 하다〉라는 제목처럼 이 시는 인천부사 황운조가 받아써서 도호부 관아에 걸어 두었을 것이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니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고, 임금이 직접 읊은 시이므로 관아에서도 격이 가장 높은 곳에 두었을 것이다.

이처럼 소래산은 인천의 역사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역사적으로 계양산과 문학산이 주목받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래산에 무관심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의 옛 역사를 온전히 살펴보려면 강화군과 옹진군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계양산, 문학산, 소래산을 같은 수준에서 조사하고 연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글 /
김락기(인천역사문화센터장)




화요낭독프로젝트 네번째<살롱 더 플레이>

일시 : 2019. 09. 03. ~ 11. 23(매주 화요일)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다목적실, 대연습실

주최·주관 :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민기자단 장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