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제작부터 연기까지 해냈다!
인천시립극단 배우열전 <재주 많은 삼형제>

<헤비메탈 걸스>와 벌이는 흥미진진한 공연 열전

‘열전(熱戰)’이란 말은 온갖 재주와 힘을 들여 맹렬히 싸우는 싸움이나 경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배우열전’이라 하면 재능과 끼로 똘똘 뭉친 배우들이 벌이는 연기 대결이라는 것일까?
그렇다. 인천시립극단 배우들이 불꽃 튀는 공연 대결을 준비했다. 제작부터 연기까지 공연의 모든 과정을 배우들 스스로 준비한 두 공연을 통해 관객몰이 열전을 벌인 것. 그 흥미진진한 열전의 한 팀인 <재주 많은 삼형제>를 만나봤다.

지난 7월 8일 송도 트라이볼에서 인천시립극단 기획공연 배우열전 <재주 많은 삼형제>가 공연됐다. <재주 많은 삼형제>는 이번 기획 배우열전에서 준비한 두 공연 중 하나로 극단의 배우들이 연기하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배우들의 열정은 물론이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엿볼 특별한 기회인 것이다.

관람료가 무료였던 이번 공연은 티켓오픈이 되자마자 조기매진을 기록하며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공연 15분 전 재즈밴드 ‘아나퀘스트(Anaquest)’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관객들의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됐다. 아나퀘스트의 유려한 재즈 선율에 맞춰 보컬 권단비 씨가 우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플라이 투 더 문(Fly to the moon)’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허참봉의 세 아들이 이웃마을 이 대감의 딸과 혼인하기 위해 서로의 재주를 겨루는 내용의 <재주 많은 삼형제>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극이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늘은 감동하고 복을 준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교훈이 강하게 전달됐다.

단조로운 연기는 자칫하면 관객들을 지루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염려를 <재주 많은 삼형제>는 공연 중간에 재즈밴드의 연주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덜어냈다. 또한 관객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며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도 공연의 단조로움을 완화했다.

반면 무대 위의 소품은 단조로웠다. 3개의 나무상자와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 무대 연출을 부족함 없이 채웠다. 특히 의자나 책상이 됐다가도 금세 배로도 변하는 나무상자의 활용연출은 소규모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였다.

배우열전의 또 다른 공연인 <헤비메탈 걸스>는 정리해고 대상인 네 명의 여자들이 회사 사장의 취미인 헤비메탈을 배우는 과정을 유쾌 발랄하게 풀어낸 내용으로 지난 7월 13일부터 3일간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재주 많은 삼형제>와 연이어 공연됐다.
답답하고 녹록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시원하고 통쾌한 헤비메탈 음악과 함께 노래 부르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던 <헤비메탈 걸스>는 <재주 많은 삼형제>와는 또 다른 매력과 재미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정해랑 프리랜서 기자
blog.naver.com/marinboy58
marinboy58@naver.com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김율희의 조합
‘탁월한 자유’란 바로 이런 것

대한통운 창고를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 들어서서,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을 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니” 그들의 음악은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자유로움이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그것은 아마, 아주 편해 보여서 잠옷으로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 같은 티셔츠와 체크 무늬 반바지를 입고 베이스를 연주하며, 목에 수건을 한 장 두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센터의 뮤지션들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봉긋한 형태의 네모나게 솟은 모자를 쓰고 수염 정돈이 덜 된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 색소폰을 연주하는 뮤지션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북을 두드리며, 키보드를 연주하며, 기타를 어깨에 메고 리듬을 타고, 페달과 씨름하며 드럼을 연주하는 뮤지션들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 모습 그 자체가 한편의 자유였다. 그리고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더욱 자유로웠다.

리듬을 타며 한껏 취해 연주하고 노래하던 음악을 ‘레게’라고 한다. 그들을 앞에 두고 그들과 한 장소를 공유하며 덩달아 자유롭지 않을 선택권이란 우린에겐 없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음악의 한가운데에서 이들과 함께하고 있자면, 우리는 아마 이미 환상에 젖을 것이고 그 어떤 현실적인 선택도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함께 즐기는 이로 하여금, 지금 음악을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현실의 시름이 당분간 정지하는 힘을 가졌다. 더군다나 이들의 음악에는 소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감성, 소울을 충만하게 하는 요소(소스)를 아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음악.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들의 이름에서 이미 그들의 정체성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

레게이든지 힙합이든지 음악의 장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그들의 음악 속에 있자면, 그것은 그저 신나는 춤사위를 부르는 흥겨운 리듬을 가진 음악으로 당시의 시공간을 점령하는 소리다. 그들의 음악 속에 있는 동안 아주 흥겨웠고 제아무리 박스권 안에서만 흔들어 대는 몸치라고 해도 리듬에 몸을 태우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흥겨워질 방법이 있었다니. 꽉 막힌 일정 속에서 지냈던 한주가 그림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왜 그리도 많은 것을 걱정하고 숱한 우려의 시간을 보냈던가? 실은 모든 시름에서 벗어나 이렇게 온몸으로 자유를 느끼고 흥겨울 수 있는 것을.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일 것이고,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뮤지션이다.

그렇게 자유를 느끼고 있던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노선택이 ‘판소리의 잔 다르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소리꾼 김율희가 합류했다. 중간중간 그녀의 멘트는 그녀의 평소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아, 이 사람과 있다면 그저 대화만이라도 즐겁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판소리도 이리 즐겁다는 것을 익히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주말 TV 프로그램 ‘전설의 명곡’에서 힙합을 하는 팝핀 현준과 판소리를 하는 박애리의 합동 공연을 보고 느꼈던 신선함에 비해서 깊은 밀도를 선사한 공연은 놀라움을 느끼게 하였다. 팝핀 현준과 박애리의 공연이 생각지 못했던 힙합과 판소리의 조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넓은 무대를 둘만의 공간으로 꽉 채움으로써 사람들을 몰입하게 했던 공연이었다면,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김율희의 콜라보는 신선한 조합에서 더 나아가 레게만으로는 미처 몰랐던 흥겨움과 기쁨을 느끼게 했다. 한국의 판소리와 레게가 이토록 잘 어울리며 더욱 깊은 흥겨움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들과 함께하기 전에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있었던가? 이들의 조합은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삶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렇게 기존의 것들이 융합되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고, 그것을 다시 온몸으로 받아내어 체화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러한 순간의 깨달음은 늘 깊은 일상의 환희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또한 동방의 변방에 위치한 우리 문화가 이렇게 흥겨운 방식으로 전해질 수 있다면 민족 문화의 발전 가능성에 손뼉치며 환영할 일일 것이다. ‘노선택과 소울 소스’, 그리고 김율희의 콜라보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 콜라보스테이지의 첫 번째 무대이다. 앞으로의 콜라보 무대들에서는 어떤 신선함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수필가




예술가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불온한 사건’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 사건과 공동체>


7월 7일 토요일, 인천 아트플랫폼 H동에서는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 사건과 공동체>가 열렸다. 내가 참여한 12시 타임의 포럼은 ‘4.16 세월호 : 불온한 사건을 마주한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운영하는 송지은 씨의 프로젝트 발표 및 참여자들과의 질의응답과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로컬 큐레이팅 포럼’이라는 말에서 내게 익숙한 단어는 ‘로컬’ 밖에 없었다. 그만큼 내게는 긴장될 만큼 어려워 보이는 행사였지만 ‘세월호’, ‘불온한 사건’, 그리고 ‘예술’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예전에 시인에 관해서 쓴 기사에서 거론한 바 있지만, 나는 ‘시인(=예술가)’이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예민한 감각을 세우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밥도 돈도 되지 않는 굉장히 비생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한, 이 행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아스팔트 사이에 핀 꽃이라거나, 거울에 서리는 김,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서 새싹이 나는 그런 일들. 혹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누군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자신의 불편함을 세상에 토로하는 누군가, 돌보아주지 않아 혼자서 죽어가는 누군가. 우리 주변에서는 이미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고하여 세상에 다시금 주목받게 하는 행위.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술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하고 대단한 힘은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송지은 씨가 이날 발표한 두 가지 프로젝트는 <현수막 프로젝트>와 <응옥의 패턴>이다. 한가지 프로젝트만 두고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굉장히 길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기사를 쓰기 위해 메모장에 끄적거린 난삽한 글들이 꽤나 길고 (내가 쓴 글이지만 나에게도) 어려웠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프로젝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왜 시작된 것인지,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만을 이야기하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송지은 씨의 생각과 이 모든 것들을 듣고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야기하기 전에 한 번 더 언급하자면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의 타이틀은 ‘사건과 공동체’이다.


<현수막 프로젝트>발표의 첫 시작은 이 프로젝트의 소재가 된 ‘4.16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는가’였다. <현수막 프로젝트>는 안산 거리를 노랗게 수놓았던 단원고등학교 피해자 학생의 유가족들이 건 현수막이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훼손되자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보수하여 다시 걸어놓는 프로젝트였다.

2014년은 혼돈의 해였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으며, 그 피해자 중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분노하고 슬퍼했으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2, 3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홍대입구역 1번 출구 앞에서는 기타를 치면서 노란 리본을 건네주는 손길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 몇 달 사이 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점점 세월호 사건이 자기 일인 사람들과 자기 일이 아닌 사람들로 나누어졌고 그들의 관계는 멀어졌다. 아직도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그 시간을 잊지 않겠지만, 현수막이 바람이나 손길에 의해 찢어져 나가듯 사람들 사이에서 아마도 조금씩(혹은 빠르게) 흐려졌으리라. 심지어 그저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마저 생겼다. 송지은 씨는 이 멀어진 그들의 사이를 어떻게 예술로 이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현수막을 수리하고 보수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을 설득하고 소통하며 함께 하는 과정은 줄줄이 설명하지 않아도 꽤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을 고치고 새롭게 하는 예술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사주풀이나 공방에서의 테라피 등으로 유가족들과 관계를 맺었다. 세월호 사건에 관여된 사람과 관여되지 않는 사람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 서로 엮여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과정이었다. ‘노란색’이라는 의미 있는 특정 컬러에 고집하지 않고 조금 더 일상의 예술로써 접근하도록 다른 컬러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시각적이거나 미학적으로 뛰어나기기 보다는, 실천하는 행위에 집중하며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상태나 감정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와 치유가 되는 예술인 것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해도 정말 이것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아니면 모니터 너머로만 들리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에 따라 세월호에 대한 각자의 거리감은 굉장히 크다. 이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바로 이 작업(예술)인 것이다. <현수막 프로젝트> 발표의 끝에서 송지은 씨는 ‘예술이 도구화된다고 하면, 그것이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본인과 프로젝트에 함께했던 예술가, 그리고 포럼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송지은 씨 본인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지만 예술가로서 이러한 갈등-도구화되는 예술은 예술일까-에 직면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수막의 형태 또한 기존의 틀(가령 노란색)에서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떠나 이 사건 자체가 공동체 안에 있는 모두에게 느껴질 수 있도록 조금은 변형된 것이 아닐까.


두 번째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응옥의 패턴>이다.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의 큰 피해자들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학생들이었지만, 분명 이들 외에도 또 다른 피해자는 있다. 왜 이주여성의 희생은 언급되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원확인 조차 되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찾아보면서 송지은 씨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고 했다. 죽음조차도 평등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를 향해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한국 사회에 사는 이주민들의 유령 같은 삶을 주목하고 타국에서 죽음을 맞은 희생자를 위로하는 프로젝트. 그것이 <응옥의 패턴>이었다. <현수막 프로젝트>가 유가족들과 함께 현수막을 수리하는 그 과정 자체를 예술로 보았다고 한다면, <응옥의 패턴>은 일종의 설치 예술이었다. 어떠한 공간(야외)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곳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거나 물건을 만지고 옮기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무용이나 영상 등의 다른 예술행위를 보여주었다.

이 공간에서는 작가들끼리의 규칙이 있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세월호 사건이나 희생자) 설명하지 않기. 사물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두기. 사물과 사람이 서로 생각을 얽히게 할 수 있도록 예술가는 관여하지 않기. 이러한 규칙은 사실 <현수막 프로젝트> 이후에 생겨난 것이었다. <현수막 프로젝트>가 어떤 의의를 두고 목적을 분명히 밝히며 나아갔을 때, 그 행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그것이 뚜렷한 목적성을 가졌기 때문에 친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린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니까 이걸 보는 당신들도 이렇게 느껴’라고 말하면 극단적이겠지만, 이러한 방법이 오히려 폭력적인 강요가 되거나 생각을 가두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또한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표현했지만, 모두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시선으로 작품을 진행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건 가까이에 들어가서 작품을 꺼내왔다면, 누군가는 조금 멀찍이서 사건을 바라보고 작품을 꺼내왔다. 이러한 작가들끼리의 온도 차이 또한 일반 사람들과 작품 사이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이 설치되고 표현되었던 두 군데의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에 배치된 물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었다.


<응옥의 패턴>은 두 군데의 장소에서 각각 다른 방법으로 설치되었다. 설치된 두 장소 모두(안산 단원구 원곡동 외국인 주민센터 앞 광장(2016), 안산 단원구 원곡동 만남의 광장(2017)) 특정 전시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공공 공간이었다. 먼저 8시 50분 세월호가 침몰한 당시의 의자가 있는 집이라는 작품이 7일간 설치되었는데, 매일 아침 8시 50분이면 설치된 의자에 옆에 있는 폴대의 그림자가 의자에 드리웠다. 아무 설명도 없이 자유롭게 개방된 공간이었고, 의자 주변에는 송지은 씨가 베트남으로 리서치를 갔을 당시 마주했던 여러 물건(해먹이나 향, 식물 등)을 매일 위치를 변경하며 배치해놓았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공간을 둘러보거나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그 후에 조금 더 다양한 매개로 진행하여 사람들이 작품 안으로 참여하는 두 번째 <응옥의 패턴>이 설치되었다. 건축가, 안무가, 시각예술 작가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로, 앞에 언급했던 작가마다 온도 차가 잘 나타나는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이동하는 섬’이라는 텐트가 여러개 설치되었는데, 이것들은 바람이나 사람의 손으로 쉽게 옮겨지는 것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개념적인 설명보다는 행위로써 표현하고 싶어서 안무가와 영화감독이 함께 한 이 작업은 마치 넋을 기리는 굿의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거나 공간에 놓여 있던 오브제들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기도 하며 참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에 닿았다.


공동체는 일시적이든 일시적이지 않든 참여자를 모아야 발현이 된다. 그 공동체성은 각각의 경험이 부딪히면서 발현되는 것인데, <응옥의 패턴에>서는 그것은 누군가가 강요하지 않아도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하거나 그 공간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계속해서 언급했던 예술작품들 사이에 있는 그 ‘온도 차이’가 일반인들도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송지은 씨는 말했다. 참여자와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참여로 인해 예술이 되는 것. 송지은 씨가 지향하는 예술은 다양한 개념이 전이되는 형태와 가깝다고 한다. 어떤 물건이라기보다는 움직임에 가까운.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영역에서 진행되었으며, 예술가들끼리의 규칙(설명하지 않고, 제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이 생긴 것 또한 이런 의의에서였다.
이어 <응옥의 패턴>에서 ‘패턴’이라는 키워드가 사용된 이유를 질문해보았다. 응옥(가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당시 입고 있던 흑백 줄무늬 티셔츠가 <응옥의 패턴>의 첫 시작점이었다. 패션으로써의 의미가 아닌, 줄무늬의 부정적인 기원(‘잡종 무늬’로 이방인, 창녀, 어릿광대, 범법자, 정신병자에게 줄무늬 패턴을 강요하던)과 역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는 이주민의 삶의 기호가 마치 줄과 무늬가 섞일 수 없는 패턴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응옥의 패턴>이라고 지었다.

꽤 어렵고 긴 발표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예민하고 불편한 문제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예술의 언어로 사회적인 사건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이 굉장히 좋았다.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 틈에 있는 희미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흐릿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서 다시 사회가 지그시 바라볼 수 있도록 내보내는 것. 예술이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아주 큰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관심을 가진 소재도 좋지만, 몇몇 소수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발견해내는 것. 그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많은 사람이 보고 듣고 또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그리고 예술가는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소통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우리는 ‘나’라는 개인으로 ‘우리’라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생과 이주여성의 죽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그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려는 송지은 씨의 예술이 나에게는 연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멋진 일이었다.

 

글/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만국시장 스케치

만국시장 ‘내가 그린(Green)마켓’
2018년 07월 07일
@인천 생활문화센터, 인천아트플랫폼

주최/주관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공간달이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




힐라리스 스트링 오케스트라 제 2회 정기 연주회

일시 : 2018.07.15.(일)요일, 오후 4시
장소 : 예술공간 트라이보울
주최/주관 : 힐라리스

사진. 민경찬 시민기자단




문화가 있는 날 2018 트라이보울 시리즈

일시 : 2018.06.27.(수)요일, 오후 8시
장소 : 예술공간 트라이보울
주최/주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인천문화재단, 트라이보울

사진. 민경찬 시민기자단




학교에 갤러리를 만들다…문화공간의 저변 확대

2018 인천미술은행 소장품 기획전시 <발칙한 그림, 그림의 기술들>
학교 내 갤러리서 순차적 전시
그림 같은 사진, 사진 같은 그림…관람객들에게 발칙한 일침

빈 곳 또는 여백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지 문화공간으로 변모하고 마는 요즘이다. 폐가나 폐공장에서 인디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지하철역의 지하보도 벽면에 그림이 걸리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종종 일상생활 중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리는 문화향유의 기회에 신선한 충격을 받곤 한다.
혁신적인 공간과 여백의 활용은 최근 학교에서도 두드러진다. 학교 안의 일부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며 학생들에게 더욱 자주 문화생활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인천문화재단은 2018 인천미술은행 소장품 기획전시 <발칙한 그림, 그림의 기술들>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를 시작으로 인천만수고등학교, 인천의료원, 미추홀외국어고등학교, 인천여자고등학교, 인천 신현고등학교를 순회하며 6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의료원 한 곳을 제외하고는 개최지가 모두 학교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공기관이지만 문화공간으로써의 학교는 우리에게 생소하기 마련이다. 현재 이번 전시가 진행 중인 인천만수고등학교로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만수고등학교 A동의 홈베이스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층계의 벽면을 따라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 선보였다. 텅 비었던 벽면에 그림이 걸리면서 지상과 지하를 이어주던 층계는 더 이상 물리적·기능적 공간만이 아니었다. ‘반디갤러리’라는 명확한 목적성이 담긴 이름 아래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공간의 새로움과 의외성에서 문화공간의 저변이 확대됐다는 평이다.
학교 안에 갤러리가 생기자 학생들은 학교생활 중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적 소양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인근 지역주민들도 더욱 쉽게 문화생활을 접할 기회를 얻으면서 문화향유의 기회를 보장받게 됐다.

이번 인천미술은행 소장품 기획전시 <발칙한 그림, 그림의 기술들>은 장난기 어린 듯한 기만적인 회화기법이 관람의 흥미로움을 만들어냈다. 사진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극사실주의적인 그림과 회화적 기법을 가미한 사진들이 혼재돼 있어 그림과 사진을 육안으로 구분하는 재미가 있던 것이다. 그림과 사진을 번갈아 보는 전시는 두 장르의 특성과 기법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거의 실재와 같이 재현된 그림들은 오히려 피사체가 갖고 있는 본연의 민낯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해줬다. 반면 노출 시간이나 인화 방법 등을 달리해 회화적 요소를 입힌 사진들은 오히려 시선을 압도하는 회화적 미가 짙었다. 육안으로 보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발칙한 일침을 가하는 듯했다.

 

정해랑 프리랜서 기자
blog.naver.com/marinboy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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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경X이채은 ‘INVISIBLE.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의’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인 전보경, 이채은 전이 인천아트플랫폼 B동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비 오는 휴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 전경은 한산했지만, 전시장안은 여느 전시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얻어 갈 수 있는가는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와 연결될 것이다.

전보경 이채은 <In-visible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의> 전시는 전시장을 들어서는 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이곳에서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라고.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보이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까? 무엇이 먼저인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유추하는 것이 먼저라고 답할 것이다.

전보경의 토템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위한 준비든지 아니면 어떤 일을 마무리한 다음 그 일에 대한 흔적이든지. 시작과 끝에 남겨진 채로 존재하는 사물들은 실제 그 본질적인 ‘일’,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시작과 끝에 남겨진 단편의 조각들을 근거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한다. 마술사의 준비물을 보면서 우리는 마술사가 앞으로 어떤 마술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상상한다. 보이는 준비물은 보이지 않는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된다.

그리고 도시에 흩어져 있는 갖가지 사물들을 수집한 작가는 현장의 사진과 함께 현장에 놓인 사물들을 가지고 와서 재배치하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이 사물들은 무엇인가요? 보여지는 사물들을 통해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보이시나요?

어쩌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은 마치 거대한 빙산이고 자신의 모든 몸뚱어리는 바닷 물 아래에 숨긴 채, 꼭대기의 일부분 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부분만을 바라보면서 실제 빙산의 크기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짐작할 수 있을까? 세상의 진실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을 수도 있음을, 보이는 것들의 일부를 가져와 우리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실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수도 있음을.

이채은 작가의 회화와 설치 작품들 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2층 천장에서부터 스커트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은, 바람에 흔들거리는 여자의 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텔레비전 두 개가 놓여 있다. 아래 받침대로 놓여있는 텔레비전은 작동하지 않으며, 위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익숙한 영상이 반복하여 재생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도 보이고, 눈에 익은 영상들이지만 왠지 낯설어 보이는 영상들이 지나간다. 익숙한 영상들을 익숙하지 않은 형태로 접하는 동안, 이 영상들 속에서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림들을 보게 된다. 실제로 존재했었지만, 보이지 않아,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았던 사실들 속에 실은 보이지 않는 진실이 숨어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채은의 회화작품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과 ‘트위스터’에서는 얼굴이 가려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림은 화려한 색채를 지니고 있지만, 그림 속의 사람들의 얼굴이 갈라지고 확인할 수 없다. 보여지는 얼굴이 없으니, 그림 속의 화자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대체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엇을 향하는가? 실제로는 보이는 것들을 작가는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게 처리함으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보이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매력이다.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청춘, 빛나는 무대로 나오다! <청춘마이크>

나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2월과 3월 사이에는 전국 곳곳에서 그해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 공고가 줄줄이 올라오는 시기다.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가가 굶어 죽을 일은 없다지만, 많은 예술가가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몰두하면서 그리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이나 공연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가격을 매겨서 한번 팔 때 마다 정해진 금액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예술가들에게 활동을 지원해주는 사업들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매달 마지막째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저렴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혜택을받는 사실을 흔히 알고 있는데, 이 또한 ‘문화가 있는날’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춘마이크>도 그런 사업에 해당한다. <청춘마이크>는 학력, 경력, 수상 실적과는 상관없이 실력과 열정을 갖춘 청년 문화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주고, 그에 맞는 지원을 제공해준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아마도 여러분이 꽤 좋은 공연을 길거리에서 봤다면 <청춘마이크>였을 가능성이 높다. 6월의 마지막째 주 수요일이었던 27일은 때마침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송도 트라이보울 야외 공연장은 탁 트여서 넓고 시원하다. 장마주간이었던 지난 주에 다행히도 수요일에만 비가 멎었다. 그날의 공연은 다양한 장르의 3팀으로 구성되었다. 수요일 오후 6시 트라이보울 앞에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색색의 티셔츠를 맞춰 입은 청년들이 야외공연장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트라이보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는 현대무용에 대중가요와 전래동화를 혼합하여 창작무용을 선보이는 ‘전래무용단’ 공연이었다. 친숙한 노래에 자신들만 고유한 색으로 각색한 전래동화를 연기와 춤으로 표현하였다. 익살맞은 표정이나,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현대무용 특유의 몸짓이 섞여 굉장히 새로운 시너지를 냈다. 각색한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 춤을 추듯 연기하는 장면은 짧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흰 천을 손에 쥐고 동작을 취하는 살풀이춤을 마지막으로 전래무용단의 화려했던 공연이 끝나고, 이번에는 귀여운 옷차림의 여성이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벤트시스터즈’는 복화술 공연을 하는 팀이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복화술 공연이 생소했기 때문에 굉장히 눈을 빛내면서 보았는데, 주변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리를 내서 던지는 예술이라는 복화술에 대한 짧은 설명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따릉이’라는 인형 친구가 ‘동글이’라는 인형 친구에게 고백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는 스토리로 진행되었다. 인형과 능청스럽게 대화하듯 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놓고 공연에 집중했다. 목소리 하나로만 진행되는 공연이었지만, 인형을 비롯해서 화이트보드나 가면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도구들과 재치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여성 두 분이 들어가자 이번엔 새까만 정장을 입은 남성 두 분이 이어서 등장했다. 마치 어떤 공연을 진행할지 예측하기가 점차 어려웠다. ‘전래무용단’과 ‘벤트시스터즈’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었지만 무슨 공연을 하는 팀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준비물은 많은데, 뭘까. 처음엔 요요였다. 그리고는 저글링이고. 곤봉도 돌리고. 아코디언 비슷한 악기도 연주하고. 웃기기도 하고. 근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정말 뭘까. 굉장히 재밌는데, 이걸 무슨 공연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와중에, 드디어 공연은 끝나고 팀을 소개했다. ‘서커스 코미디’를 하는 ‘팀 퍼니스트’의 공연이었다! 서커스 코미디 공연. 어쩜 이렇게도 본인들의 공연을 한마디로 잘 표현했는지. 

3팀 모두 공연을 잘하는 팀이었다. 또한, 특정 연령층에만 어필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 가족, 커플, 남녀노소 모두가 즐겁게 몰입하면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짧다는 점이 버스킹의 장점이다. 이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래무용단’은 공연 특성상 춤을 춰야 하므로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밖에 없지만, ‘벤트시스터즈’와 ‘팀 퍼니스트’는 계속해서 관객을 참여시키고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질 높은 공연을 발걸음 닿는 곳에서 시간만 내면 볼 수 있는데, 그게 마침 우리 집 앞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아닐까. 청년 예술가와 관객을 이어주고,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며,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 지원해준다. 예술가 또한 직업이다. 월급을 받지 않지만.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노력’에 정당한 대가를 주고 그들의 일에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지원사업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예술이니까!

 

글/ 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이영욱 사진전 스케치

2018.6.18.(월)~6.30.(토), 오전 11시~오후 6시
관람료: 무료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주최/주관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