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지트가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변하는 특별한 순간

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한번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이른바 카페족이다. 카페족이 이름처럼 그리 근사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오천원으로 제공받는 음료, 테이블, 화장실, 인터넷이 간절한 사람들일 뿐. 이곳 카페에는 그렇게 반나절 이상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 열 명 정도 된다.”

김금희의 단편 소설 <당신의 나라에서>는 카페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카페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카페족’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소방서 옆 건물에 위치한 시끄러운 원룸에서 빠져나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오랜 구직 생활로 소원해진 가족들의 눈초리를 피하는 은신처, 그야말로 아지트인 셈이다. 카페에서 매일 마주치면서도 서로를 곁눈질로만 몰래 지켜보던 사람들은, 카페가 정전이 된 사건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다.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책과 노트북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카페의 불이 꺼지자 옆 테이블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아지트였던 카페는 우리의 아지트로 변하고,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 틈새로 대화와 여유의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소설의 첫 구절에서도 보이듯,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드물고, 나만의 아지트는 내가 앉은 테이블로 한정될 뿐, 카페 전체가 우리의 아지트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소설에서처럼 정전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소설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나만의 아지트에 그러한 특별한 사건이 생긴다면 어떨까.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올해, 일상의 공간들에 공연이나 강연과 같은 작은 문화행사들을 만들어 나만의 아지트를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운영 중이다. 

올해 5월, 인천 곳곳에 위치한 카페, 서점, 갤러리, 목공소 등 20여 개의 공간이 ‘동네방네 아지트’ 지원 사업을 통해 일상과 생활 속에서 문화를 충전하는 아지트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공간에서는 생활문화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거나, 전문가를 섭외해 작은 규모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공연을 보며 술 한 잔을 마시던 재즈 바에서 사진동아리를 만들어 공연 사진을 찍기도 하고, 혼자 책을 읽던 동네 서점에서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공연을 보고, 책을 읽는 등의 소극적인 문화 활동을 혼자만 즐기던 사람들이, 직접 공연 사진을 찍고, 책의 저자와 함께 생각을 나누는 적극적인 문화 활동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화, 예술의 향유자이자 소비자에 머물렀던 일반 시민들이 많은 돈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문화, 예술을 생산하는 창작자가 되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8월에는 ‘동네방네 아지트 위크 – 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지트로 선정된 공간 20곳에 시인과 뮤지션들이 방문하여 시를 낭송하고 음악 공연을 펼쳤다. 아지트에서 벌어지는 소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일부의 사람들 뿐 아니라 공간을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또한 일상에서 오고가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문화공간들을 소개하는 ‘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려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문화 공간, 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몰라서 찾아가지 못했던 공간들을 산책하듯 둘러보는 것이다.

지난 8월 18일에는 10여 명의 산책단이 강화에 위치한 아지트들을 방문했다. 그 중에서도 ‘버드 카페’에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보호하고 그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어새와 강화 인근 갯벌의 사진을 전시하고 엽서를 판매하며, 저어새를 캐릭터로 만들어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었다. 버드카페를 운영하는 000씨는 “멸종위기에 처한 저어새는 강화가 최대 번식지이지만, 지역주민들은 농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저어새를 보호하지 않는다. 다양한 강연과 캐릭터 상품, 그리고 펠트 수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저어새의 소중함에 대해 알리고자 한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통해 진행하는 강연 등이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9월 한 달간은 인천 곳곳의 오래된 아지트와 새로 생긴 아지트들을 방문하고 전문가의 강연까지 들을 수 있는 산책 코스를 운영 중이다. 오래된 아지트 코스는 인천의 오래된 가게들을 방문하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정진오 기자가 안내자가 되어 그의 책 <오래된 가게>에 등장하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함께 둘러보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지난 9월 8일에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인 인일철공소에 방문하고 인근에 자리한 숭의평화시장 내 카페 라온에서 인일철공소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숭의평화시장에서 가게를 운영 중이라는 무명 씨는 ‘한 시간짜리 짧은 강연이 있다고 해서 가게가 한산한 틈을 타 카페를 방문했다. 자주 오고 가면서도 어떠한 물건을 만드는 가게인지, 얼마나 오래된 가게인지 몰랐는데,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책<오래된 가게>를 감명 깊게 읽고 인일철공소를 방문해보고 싶어 찾아왔다는 하복순 씨는 ‘인천 토박이로 지금도 인근에 살고 있는데 평화시장 내에 이러한 카페이자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은 단순히 공간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을 오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공간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공간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네의 작은 공간이 생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기획부터 홍보까지 모든 것을 돕는 ‘풀 옵션’ 지원 사업인 셈이다. 비록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이고, 일상에서 경험한 작은 예술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당장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큰 성과만을 강요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만들어주고, 작은 여유를 내어주는 것이 문화예술이 가진 엄청난 힘이자 문화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일상의 틈에서 만난 작은 웃음과 짧은 여유가 가져다 줄 더 큰 웃음과 행복을 기대해본다.

 

글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젊은 도시 인천, 소설로 뜨다

젊은 도시 인천, 소설로 뜨다
김금희 작가와의 대화
장소 : 한국근대문학관
촬영,편집,구성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유라




인천시티발레단 <장화신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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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 8월18일(금)~19일(토)
장소/ 인천중구문화회관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동네방네 아지트 위크-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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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 8월22일~25일
장소/ 인천 강화 국자와 주걱 외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2017 트라이보울 재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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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 8월25일~27일
장소/ 트라이보울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섬마을 밴드 음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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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명 : 섬마을 밴드 음악축제
일자 : 8월 26일
장소 : 대이작도 해양생태관 야외광장
사진 : 김시훈 / 사진작가




권력을 제압하는 무술

제5회 인천독립영화제 “오래 달리기”

제5회 인천독립영화제에서 만난 한 작품의 제목처럼,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물론 <세계화 시대의 진화>(2016)에서 ‘진화’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지난해, 한국을 공포에 도가니로 물들였던 <곡성>(2016)의 제작사는 ‘폭스 코리아’였으며, 조선총독부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다졌던 <밀정>(2016)의 제작사는 ‘유니버셜 코리아’였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는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어 웹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되었다. 자본이 제시하는 환상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거기에 담기는 민중의 집단적 열망 역시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우리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러한 이미지들의 뭉치를 보았다. <덩케르크>(2017), <군함도>(2017), <택시운전사>(2017), <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과 같은 ‘탈출서사’가 그것이다. 이는 ‘상품경제’ 안에서의 부족한 해방이지만, 분명 민중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배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탈출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무엇이 승인되고 있으며, 무엇이 거절당하고 있는가는 좀 더 살펴볼 문제다. 가령, <덩케르크>와 <혹성탈출>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는 매우 아이러니한 박스오피스 통계치를 그리고 있다. 이 두 영화는 가르는 경계는 무엇인가? 이는 매우 긴 단락들을 필요로 하지만, 표면적으로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하나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비정상적인 상영관 독점이며, 다른 하나는 스펙터클의 문제이다. 전자는 영화산업의 민낯을 까발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후자의 예후는 좋지 못하다. 민중의 에너지는 언제까지 ‘이념’에 묶여있어야만 할까? <군함도>가 국뽕과 친일 사이를 오간다는 이 모순적인 결합이 아마 우리가 처한 세태일 게다. 이걸 확정하는 건, 역시 <택시운전사>이다. 이 둘의 차이는 희망과 분노의 차이, 더 정확히는 팔리지 않는 상품과 팔리는 상품의 차이이다. 슬로모션기법에 의한 적나라한 고통의 전시는 ‘분노’라는 교환가치를 충족시키지만, 여기서 희망은 희망 없는 자들의 몫이 되지 못한다. <택시운전사>에서 광주는 이미 결말이 나버린 과거이다. <혹성탈출>을 본 사람들 중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몇몇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은 “지루하다”인데, 이 점은 스펙터클의 가장 큰 무기가 ‘전쟁’이기보다는 ‘죽음’(민족의 그 숭고한 죽음)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군함도>의 식민시기, <택시운전사>의 군부독재시기, 그리고 현재의 정치경제적 유사성은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탈출해야할 현재의 조건 역시도 대체로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있다.

서두가 길었던 것 같다. 이렇게 블록버스터급 영화, 소위 말해 ‘상업영화’들을 참조하고 글을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독립영화에서의 ‘독립’이 의미하는 바가 다소 모호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는 무엇으로부터 독립된/되려하는 영화인가? 독립영화를 상업영화에 대한 ‘카운터 시네마’로 위치시키면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손쉬운 해결책이다. 무엇보다 ‘자본 없는 영화’라는 전제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1998년 한국독립협회 창립식에서의 선언 역시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독립영화의 ‘독립’이란 흔히 말하듯 검열을 거부하고 자본을 적게 쓰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립은 ‘그 무엇을 위한’ 일일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 화려하고 기름진 화면보다는 치열하고 정직한 장면들로 새로운 영상언어를 만들기 위해, 우린 상투적 영화공식에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한 사람의 인권, 소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린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 1998. 9. 18.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식에서 독립영화인 일동

위 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독립이 “그 무엇을 위한” 일,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 사람의 인권, 소수의 자유”를 위한 일이라는 점이며, 그것을 완성해내기 위해서 독립영화가 “상투적 영화공식”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즉,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에 대해 정당하게 우리의 몫을 주장하고, 자본의 꿈에 배어있는 민중의 유토피아를 자신의 양분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승리자의 개선행렬에 동참하면서 파국을 이미 지나간 것으로 제시하는 상투적인 영화공식, 즉 스펙터클에 저항한다. 그럼으로써 독립영화는 억압받은 자들의 관점에서 오늘날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었음을 폭로한다(벤야민). <군함도>의 노동착취와 <택시운전사>의 백색테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 이제 제5회 인천독립영화제에서 만났던 독립영화들을 살펴보자.

 

파국의 알레고리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2016)는 이번 영화제에서 만난 작품들 중 아마도 가장 예쁘면서 동시에 가장 답답한 영화가 될 것 같다. 영화는 경북 영해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고등학생 정호(류성록)의 이야기를 다룬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서정적인 이미지들을 제시한다. 아련한 때깔을 머금은 논 풍경과 그곳을 미끄러져 달리는 자전거, 창문 사이로 노을이 드는 교실풍경과 그 속의 소년소녀, 해질녘 부둣가에 서있는 소년과 그의 등 너머로 보이는 광활한 수평선 같은 것 말이다. 이 이미지들은 일종의 클리셰이다. 일본의 청춘물과 아니메를 즐겨보는 사람들에게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는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친숙함 속에서 영화가 이끌어가는 서사 역시도 그것 이상을 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호는 은희(지우)를 짝사랑하지만, 그 소녀의 옆에는 이미 진규(이서원)이라는 멋진 소년이 있다. 이를테면, 청춘물의 흔한 삼각관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 역시도 바로 이 영화가 일본의 청춘물과 아니메를 참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윤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수첩에 적어놓았던 일본의 아니메 가사를 자주 꺼내보았다고 한다. 영화의 제목인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는 1995년 안노 히데아키에 의해 연출되었으며 일본 TV도쿄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오프닝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에 나오는 가사이다. <에반게리온>은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기말적 테마와 그 안에서 파국을 마주하는 자폐적인 성격의 소년을 그리고 있다. 자세히 파고들 수는 없지만, 우선 <에반게리온>의 열풍이 일본을 ‘폐허’ 상태로 전락시켰던 당시 버블경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과 이러한 현상이 단지 일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예컨대,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것은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이르러서이지만, 한국은 그 이전부터도 이미 은밀한 통로를 통해 일본의 대중문화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8년은 한국이 IMF외환위기를 맞닥뜨렸을 때이기도 하다. 최윤태 감독은 ‘어린 시절’ 보았던 <에반게리온>의 파국을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를 통해 현재로 소환한다.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가 답답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정호의 유일한 친구인 형국(조성하)의 가족이 서울로 ‘야반도주’를 하면서 일어나는 곤란한 상황을 묘사한다. 정호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그러나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 사건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민정(문수형)의 엄마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국어선생은 자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정호에게 관심이 없고, 어머니는 부재중이다. 정호는 홀로 파국을 맞닥뜨리는 중이다. 이 사건이 정호가 형국이 어디 있는지를 말하지 않아서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형국이 서울로 떠난다고 말했을 때, 정호는 왜 그래야하냐고 물었다. 정호가 받은 답은 “요즘 상황이 그렇잖아”라는 모호한 것이었다. 정호는 거대하고 이해할 수 없는 파국 속에 놓여있다.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는 파국을 바라보는 시점 숏이다.

한편, <기쁜 우리 젊은 밤>(2017)은 좀 더 직설적이다. 잔심부름센터의 라이더(김희), 연극 배우를 꿈꾸는 대리기사(김해나), 자동기계 안마기를 설명하는 영업사원(권오성)은 오늘날 한국을 살아가는 보통의 청춘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름’이 없다. <기쁜 우리 젊은 밤>은 하나의 ‘접촉사고’를 중심으로 이들을 묶는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말단 영업사원이 접대자리에서 술에 취한 거래처 상사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는다. 그 상사는 술에 취하면 가위바위보를 시키고 이긴 순서대로 과장, 차장, 사원을 결정한다. 대리기사가 호출되어 그들을 태우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골목길에서 라이더가 모는 오토바이와 ‘접촉사고’가 난다. 라이더, 대리기사, 영업사원이 합의를 보려하지만 서로의 책임을 물으면서 합의가 불발된다. 그때 차에서 상사가 내린다. “가위바위보 해!”라고 소리치고는 차를 타고 떠난다. 라이더, 대리기사, 영업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 뒤를 쫓는다. 앞서 달리는 권력자는 ‘술에 취해 있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서로의 책임을 묻기에 바쁘다. 후에 이어지는 암전. “끼이익!”소리와 함께 자동차 전복사고가 일어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단숨에 요약하는 파국의 알레고리.

 

파국의 기원
왜 안마기 영업사원이 ‘자동기계’가 되었는지 물어야할 것 같다. 자그마한 노력으로는 도저히 컨베이어벨트에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자동기계처럼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순환소수>(2017)는 ‘도박’에 문제 걸고 있지만, 실상 우리가 자동기계가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한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엄마 란희(이란희)는 가족을 떠나 망향 휴게소에서 설거지 일을 한다. 현정(윤서형)은 치킨집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고등학생 현웅(김사무엘)은 친구들과 스포츠 도박으로 한탕을 치려고 궁리중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란희의 노동, 현정의 취업, 현웅의 도박이 정확히 같은 계열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잿빛이다. 란희는 창가에 기대 담배를 태우고, 현정은 짜증이 나있는 상태다. 무리하게 배팅을 건 도박에서 진 현웅은 울기 일보 직전이다. 그들은 지쳐있다.

얼핏 보면 도박, 취업, 노동은 무관한 것, 심지어는 완전히 대칭점에 있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도박에서의 한탕 한탕이 매번 그 이전과 이후의 판과 무관한 것처럼, 기계를 조작하는 노동자의 노동 역시도 똑같은 동작을 반복할 뿐, 매번 그 이전과 이후의 노동과는 관련이 없다(벤야민). 쉽게 말해 도박과 노동 둘 모두 작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매순간의 구직활동은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런 내용도 갖지 못한다. 성공 후에도 기다리는 건 노동이다. 그래서 도박, 취업, 노동 모두 마치 순환소수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무한히 반복된다. 순환소수는 예를 들어, ‘0.57575757…’처럼 소수점 아래의 숫자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기쁜 우리 젊은 밤>에서 술에 취한 권력이 매번 과장, 차장, 사원의 직급을 손쉽게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재편할 수 있는 것처럼, 노동의 내용을 결정하는 건 생산관계를 재편하는 자들의 몫이지 순환하는 소수들의 몫이 아니다. 취업난 때문에 현정은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보기 원하고, 그것에 성공한다면 현정은 란희처럼 지방으로 떠날 것이다. 현웅은 영화의 마지막에 와서 현정이 했던 오토바이 배달 일을 물려받는다. 만약 ‘0’이 자본주의와의 조우라는 시작점을 찍는다면, 에이젠슈타인의 <파업>(1925)을 상기시키는 <군함도>의 노동착취는 그 안에서 순환하는 ‘57’ 중 하나일 것이다. ‘군함도’는 란희가 묶여있는 ‘망향 휴게소’와 무관치 않다.

 

파국에서 벗어나기
<밀정>에서 그리는 독립운동의 목표는 다이너마이트를 식민지 조선 내부로 가지고 들어와 조선총독부를 폭파시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소수’ 속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반복의 고리를 끊어 버려야할 것 같다. 5와 7 또는 7과 5 사이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기. 혹은 0을 폭파하기. <무방향버스>(2017)가 지시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무방향버스>는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으려는 가족의 고투를 그리는 추리극 같다. 적어도 주인공을 따라 엄마가 사라진 ‘이유’를 탐색하는 한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엄마의 외상장부를 찾아낸 주인공은 엄마가 외상값을 받아내려 떠났다고 생각하고 장부에 적힌 사람들을 찾아간다. 여기서 주인공이 얻는 건 욕지거리밖에 없다. 그보다는 엄마가 사라진 곳이 어디인지를 묻는 게 더 낫다. 빈 손으로 돌아온 후 주인공은 장부 속에서 이상한 숫자들을 발견한다. 무작위로 쓰여진 버스의 고유번호들. 그렇게 찾아간 버스회사에서 주인공은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엄마가 ‘무방향버스’를 타고 떠났다는 것. 류인서의 시 <봄, 무방향버스>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쓴다. “저만 아는 노선들을 외상 장부처럼 품고 돌보지 않는 언덕 넘고픈, 달달한 악몽의 향기 가득한 길 / 당신도 나도 아직 가보지 않은 방향이어서 하마터면 방황하는 근원이라 부를 뻔했다” 버스는 종점과 종점 사이를 반복 운행한다. <무방향버스>는 여기에 “없음의 방향”을 추가하자고 말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 회사를 찾아 ‘도나스’를 팔았던 엄마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오가던 버스가 사라진 곳,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노선도’에 그곳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혹, <세계화 시대의 진화>(2016)와 <야간근무>(2017)는 계속 같은 노선도만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이주노동자여성과 결혼이주여성의 억압받는 삶은 디아스포라영화의 단골 메뉴이다. 물론, 억압적인 정치경제적 질서가 계속되는 세상 속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영화의 힘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보는데 있는 것이라면, <세계화 시대의 진화>와 <야간근무>는 기존의 디아스포라영화에서 몇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과장이긴 하지만, 고통의 전시는 때때로 위안부의 기억을 꺼내오는 <군함도>의 황당한 플래시백이나 극사실적으로 죽음을 묘사하는 <택시운전사>의 슬로모션처럼 상품으로 전락하곤 한다. 상업영화가 환상으로 비약하면서 억압받은 자들을 이용해 먹는 동안, 몇몇의 다른 영화들은 <기쁜 우리 젊은 밤>의 대리기사처럼 “예술은 독립운동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옆에 탄 사람은 이미 잠들어 있다. 차라리 때에 따라서는 <여자답게 싸워라>(2017)처럼 ‘백초크’를 걸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래, 한판 붙어보자고!” <여자답게 싸워라>에서 윤영은 단순히 ‘남성’과만 싸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싸우는 대상은 갑질의 멜로디가 반복되는 전화기, 수동적인 여성상, 무엇보다 고시원의 어둡고 비좁은 공간 그 자체다. <여자답게 싸워라>의 고시원 복도를 통과하는 핸드핼드 쇼트에서 <악녀>(2017)의 도입부 시퀀스를 떠올리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비폭력담론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이 두 영화가 보여주는 해방적 제스처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해보자. <악녀>는 여성의 투쟁을 가시화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조선족’을 괴물로 부각시키는 황당무계한 스펙터클이다. 반면, <여자답게 싸워라>는 이러한 스펙터클에서 민중들이 꿈꾸는 열망만을 정수로 취한다. 그럼으로써 ‘여성’이 처한 제반 사회문화적 조건들을 탐색하고, 시종일관 전복의 기회를 노린다. 주짓수는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이라고 한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독립영화가 하고 있는 게 정확히 이러한 무술이지 않을까?

 

글/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일상의 공간이 무대가 되다.

제 4회 15분연극제 × 인천

“실례합니다. 여기는 배우들이 등장할 무대입니다. 조금만 옆으로 이동해주세요.”

‘15분연극제 × 인천’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카페, 거리, 공원 등의 일상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 것은 올해로 4회째 이어지는 ‘15분연극제 × 인천’만의 특색이다. 극장에서의 연극 관람이 낯선 인천 시민들을 위해 아티스트들이 직접 일상의 공간으로 나서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공연을 보러오라고 외치는 이른바 ‘호객행위’도 금물이다. 관객들에게 일상의 공간이 무대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여기가 무대라고요?”하며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배우가 등장하자 이내 작품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대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관객들이 앉으며, 관객을 무대에 앉히기도 하고, 난간에 늘어선 관객들 틈을 배우들이 비집고 다니는 등, ‘15분연극제 × 인천’의 대부분의 작품은 ‘제 4의 벽’을 허문 상태였다. 제 4의 벽은 무대를 하나의 방으로 설정하고, 방의 한 쪽 벽을 제거하여 관객이 볼 수 있도록 하며, 그 안의 배우들은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실재의 방에서처럼 연기한다는 사실주의 이론이다. 제 4의 벽을 허무는 보통의 시도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관객들을 이성적으로 만들기 위함인 것과는 정반대로 ‘15분연극제 × 인천’에서 제 4의 벽을 허무는 다양한 시도는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더 끌어들이는 것으로 기능한다.

특히 백석현 연출의 <터미널 여관>은 관객을 무대에 앉힘으로써 관객들이 인물에게 온전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쫓아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딸과 그런 딸의 집에 찾아온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엄마와 딸이 마주보고 대화를 한다는 설정이지만, 엄마와 딸의 앞에 각각 한 명의 관객을 앉혔다. 배우는 상대 배우에게 건네는 대사를 마주 앉은 관객의 눈을 바라보며 건넨다. 시선을 둘 곳을 몰라 방황하던 관객들은 배우와 눈을 맞추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한다. 극이 막바지로 치닫으면서 관객들은 극 중의 엄마 혹은 딸이 된 것처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배우를 껴안으며 토닥이기도 한다. 무대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나머지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배우와 눈을 맞추는 관객을 매개로 하여 극 안으로 빠져든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철제 난간에서 펼쳐진 공연 <프로포즈>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앤 채로 배우가 관객들 틈에 서기도 하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벌어진다. 연극 공연을 관람한다기보다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다른 이의 프로포즈 장면을 목격하는 느낌으로 다가간다. 샐리에게 프로포즈를 거절당한 댄이 그 자리에서 처음 보는 릴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뜬금없이 프로포즈를 받은 릴리가 결혼 승낙을 하는 내용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프로포즈를 목격하는 행인이 되어 극 속으로 들어간 관객들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이른다. 프로포즈를 거절당한 댄에게, 헌신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거절하는 샐리에게,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던 릴리에게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올해 15분연극제 × 인천에는 기존에 참여하던 연극 연출가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연출에 참여하여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자친구와 고양이>는 음악감독 옴브레의 첫 연극 연출 도전작으로, 고양이 알레르기를 가진 남자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여자의 로맨스를 특유의 ‘B급 감성’과 재치 있는 음악으로 풀어내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홀로 남겨진 여자와 집을 관리하는 A.I.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Maryanne>은 두 명의 연출가에 의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댄스컴퍼니 명의 최명현 연출은 <데이비드>라는 제목으로 원작을 각색했다. 대사를 줄이고, A.I.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무대 조명과 음악,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대사와 행동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읽는 것에 익숙했던 관객들이 현대무용의 매력을 맛볼 수 있던 기회였다. 극단 작은방의 신재훈 연출은 같은 작품의 제목을 <옥출이>로 바꾸고 주제곡을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로 설정하여 한국관객의 정서에 한 발 짝 더 다가갔다. 또한 희곡에서는 목소리로만 등장하던 A.I.를 실제 배우의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시켜 인간과 A.I.의 교감을 강조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혼자 남겨져 기계를 사랑하게 된 주인공을 연기한 박옥출 배우의 호연도 큰 호응을 얻었다.

제 4회 15분연극제 × 인천의 국제교류아티스트로 선정되어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루이슨은 모든 공연을 관람하며 참여한 아티스트,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는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뉴욕에만 좋은 공연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LA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의 상황이 LA의 상황과 비슷해보인다’고 말하면서, ‘개항의 역사가 남아있는 동네와, 바로 어제 지어진 것 같은 신도시가 공존하는 인천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런 인천의 일상공간에 예술가들이 게릴라처럼 등장했다 흩어지는 모습이 놀랍고 신선했다. 앞으로도 15분연극제 × 인천이 꾸준히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김진아(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15분연극제 × 인천 코디네이터)
사진/ 박수희(I-view 기자)




인천, 생명의 날갯짓으로 북적이다.

지난 18일 인천광역시평생학습관 갤러리 다솜에서 열린 <인천의 새 飛翔에서 飛上으로 >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인천야생조류연구회(IBA) 회원들이 먼 바다를 건너 인천을 찾는 새들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결과물을 전시한 철새 사진전이다. 

인천야생조류연구회(IBA)는 먼 바다를 건너 인천에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비영리단체이다. 이 밖에도 환경오염에 따른 새들의 변화에 경각심을 가지고 2008년 10월 송도 조류 집단 폐사 관련 사체 수거 활동을 시작으로 멸종 위기종 번식지 및 서식지 감시활동, 조류 이동기 서해안 섬 조사, 인천시 자연환경조사, 인천광역시 철새보전 종합 대책 수립 연구 자문 등을 맡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전시는 광학장비 없이 쉽게 보지 못했던 인천에 찾아오는 혹은 기존에 있던 새들을 관찰해 사진으로 기록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인천은 태평양을 건너 시베리아, 중국, 몽골 등에 이르는 새들의 이동 경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들의 주 환경이 되는 해안과 습지 등이 분포하고 있는 새들의 주요 도시이다. 하지만 가속화되는 환경의 악화로 해마다 수많은 숲과 습지가 사라지고 그곳에 살고 있던 생물들이 쫓겨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곁에 항상 있었지만 보호주지 못했던 새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생명의 신비를 함께 나눔으로써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글/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최승주
사진/인천야생조류연구회(IBA)




동네방네 아지트 위크 <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

촬영,편집,구성/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