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아이들, 서커스를 만나다

지난 28일(목), 오전 9시 인천여객터미널. 짙은 안개로 인해 모든 배가 출항대기 상태였고, 터미널은 배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두 시간 후 안개가 걷히고 겨우 배가 떴다. 어렵사리 덕적도에 도착해서 만난 프로그램 담당자와 강사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기약 없이 몇 시간씩 배를 기다리다 결국 결항되어 집으로 돌아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주 5일제가 시행되고 토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게 된 아이들이 문화예술 소양을 함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2012년부터 운영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빠르게 확장되어 전국에서 867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덕적도를 비롯한 옹진군의 섬들은 하루에 두 번밖에 배가 뜨지 않고 그마저도 안개로 인해 결항되는 일이 잦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가 진행되기 어려웠음은 물론, 방과후학교 프로그램도 전문 예술강사가 아닌 담임교사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문화교육팀에서 토요문화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정구섭 씨는 지역적 여건 탓에 문화예술교육의 테두리 밖에 놓인 섬 지역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4년 동안 담당하면서 토요문화학교를 인천 전역에서 벌어지는 난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강화도나 옹진군에서는 기획 공모에 단 한 팀도 지원을 하지 않았어요. 강사 분들이나 단체들이 30주라는 긴 시간 동안 매주 섬에 들어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니까요. 단체가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섬 지역의 아이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지난해 강화도에서 처음 캠프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올해는 옹진군의 덕적도, 연평도, 대청도까지 확장해서 섬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덕적도에는 초,중,고등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고, 학교들은 한 울타리 안에서 운동장을 비롯한 여러 시설들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나무 숲과 바다로 둘러싸인 학교 운동장에는 높은 장대 차이니스 폴이 서있었고, 아이들은 클럽(곤봉)을 던지고 받으며 뛰놀고 있었다.
“맨 길바닥을 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지만, 땅에서 1미터만 높이 올라와도 우리의 정신과 마음, 그리고 몸은 아주 달라지죠. 도전정신과 용기의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의 몸도 움직일 수 있어요. 서커스가 바로 그런 거예요. 일상생활에 아주 작은 변화만 주면 새로운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죠.” 7년째 공중퍼포먼스를 연구하고 공연하는 단체 <프로젝트 날다>(대표 김경록)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학교순회사업으로 체험프로그램 ‘수직, 날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본격적으로 서커스를 이용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서커스라고 하면 아직 사람들은 동춘 서커스나, 중국의 기예단을 떠올리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서커스라는 장르는 볼거리 위주의 공연 이외에 교육프로그램으로 활용되기에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유럽에서는 저소득층이나 사회 적응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서커스를 활용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학생들에게 신체적으로 우월한 부분을 발견하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서 사회에 진출하고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는 거죠.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신체에 활력을 주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바닥 바라보지 말고 친구 바라보세요, 배에 힘주고, 엉덩이 빼지 말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노란색 줄(슬랙라인)이 연결되어 있고, 선생님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외줄에 올랐다. 긴장한 모습으로 줄에 올랐던 아이들은 맞은편에서 출발한 친구와 악수를 나누기도 하고, 줄에 앉았다가 눕기도 하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자신들의 키보다 세 배는 더 긴 차이니스 폴(중국 장대)을 보며 무섭다고 안 하겠다고 몸을 빼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도움으로 장대에 오르자 금세 씩씩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양 팔을 벌려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쓰지 않던 감각들을 곤두세워 균형을 잡고 각기 다른 새로운 동작들을 만들어 냈다.
“친구를 믿으면 하늘을 날 수 있어요. 손을 꼭 붙잡고 친구에게 기대보세요.”
비가 오자 체육관 안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다양한 동작을 배웠다. 등을 마주대고 옆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한쪽 다리를 맞대고 한 명씩 하늘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서로를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동작들. 아이들은 서커스 동작을 통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선생님의 다리 위에 올라서서 두 팔을 펼치는 고난이도 동작도 해냈다. 밑에서 지지해주는 선생님을 믿고 양 손을 놓자 멋진 서커스 동작이 완성되었다.
“힘내라! 힘내라!”
체육관 안에서 서커스 올림픽이 열렸다. 앞구르기, 곤봉체조, 공 던지고 받기, 평행봉 건너기 등 지금껏 배웠던 동작들을 활용한 이어달리기였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누가 빨리 도착하나 시합을 하면서, 아이들은 승부욕보다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도착한다고 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도와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임.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를 기다리고 도와주며 게임을 이어나갔다.

“저는 여기서 엉덩이춤을 출 거예요.”
마지막 시간은 우리만의 서커스를 만들어보는 활동. 아이들은 사흘 동안 배운 동작들을 떠올려 공연을 만들었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선생님과 함께 동작을 구상했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동작들을 순서대로 이어붙였다. 여러 번의 연습 끝에 음악에 맞춰 선보인 서커스 공연. 관객은 없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서커스를 함께 즐기고 뿌듯해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사흘간의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입을 모아 재미있었다고 대답했다. 눈으로 보기만 했던 서커스 공연, 할 수 없을 것처럼만 보였던 서커스 동작들을 하나하나 직접 경험해보고 만들어보면서 아이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수업 중간 중간 10분씩 주어진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공을 던지고 받으며, 곤봉을 손에 올려놓고 걸으며 놀았다.
“공연을 하는 단체이고, 서커스를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아쉬운 점도 많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공연 단체와 교육 단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기도 해요. 예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겨 힘들기도 했구요. 이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서커스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거리에 놓인 파이프를 평행봉처럼 걸어보는 등의 활동을 기획했는데, 안전성을 이유로 학교 측에서 반대해 활동을 변경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더욱 나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김경록)”
새로운 시도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변화하려는 시도, 새로운 도전 없이는 발전도 있을 수 없다. 섬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확장시키려는 토요문화학교 담당자의 시도와 서커스라는 장르를 문화예술교육에 가져오려는 <날다>의 도전이 만나 이루어진 이번 프로그램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그들이 날아 꿈에 닿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글/시민기자 김진아, 사진/시민기자 민경찬























































































































경제 전문가인 김하운 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의미와 원인, 진행 과정 등을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지역사회에서 실천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외부효과’와 그에 따른 ‘외부불경제’와 ‘시장실패’의 순으로 이어지는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설명했다. 마을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도시환경 변화가 발생할 때 도시환경 변화로 인한 주인 없는 이익(공유자원)이 생겨나고, 그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며 물가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등의 ‘외부 불경제’가 나타나고 결국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 실패’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 둬야 할 개인 간의 문제로 취급할 일이 아니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명확한 근거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대부분의 도시환경 변화(외부효과)가 정부 때문에 일어나고 시장실패로 이어지는데, 이는 변화를 예측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라며 “시장실패는 시장이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개입할 논리적 근거가 되며, 젠트리피케이션은 국가가 나서서 치유해야 할 시장 실패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만수는 함세덕 중기 아동극, <심원의 삽화> <서글픈 재능> <감자와 족제비와 여교원> <닭과 아이들> 등에는 기성세대의 편견, 신세대의 고민 등이 원형질로 녹아 있다고 지적했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말한 ‘더이상 아닌 세계’와 ‘아직 아닌 세계’의 충돌이라는 현대성에 주목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포럼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쟁점은 함세덕 연구나 기념사업이 친일이라는 그의 행적 때문에 답보상태에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해가 바로 함세덕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그의 친일 행적 때문에 기념사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안타까움에 대해 윤진현은 “함세덕의 친일극은 사실이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물론 식민지라는 극단적인 정치적 상황을 살아야 했던 작가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이날 토론에서는 친일행적이 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연구나 기념사업을 중단하는 것 또한 우려된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되었다. 과오의 역사라 해서 지우거나 덮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사실을 발굴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함세덕이라는 한 극작가에 국한된 것도, 근대문학사에 국한된 것도 아닌, 식민지라는 경험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오늘의 현실을 위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관점이다.




























막이 오르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관객은 헛기침도 삼킨 채 최대한 정숙한 자세로 관람 매너를 준수하며 극을 ‘수용’한다. 무대 위에선 말하고 무대 아래에선 듣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연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모방된 허구가 더 현실같이 느껴지더라도,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는 연극예술은 무대와 관객 간의 소통에 한계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인물 간에 갈등이 펼쳐질 때, 등장인물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관찰자로서는 차마 보기 힘든 운명의 고난이 전개되려는 순간에 무대로 뛰쳐들어가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등장인물에 몰입했거나 그가 처한 상황이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즉 ‘나의 문제’ 로 와 닿는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