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키워드로 보는 2020 코리아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입니다. 꾀가 많고 영리하며 친근한(?) 동물인 쥐, 쥐의 해인 2020년 대한민국에는 어떤 트렌드가 펼쳐질까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그해의 띠 동물이 포함되는 영문으로 트렌드 키워드를 만들어 왔습니다. 센터가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20’은 ‘MIGHTY MICE’입니다.

Me and Myselves(멀티 페르소나), Immediate Satisfaction: the ‘Last Fit Economy’(라스트핏 이코노미), Goodness and Fairness(페어 플레이어), Here and Now: the ‘Streaming Life’(스트리밍 라이프), Technology of Hyper-personalization(초개인화 기술), You’re with Us, ‘Fansumer’(팬슈머), Make or Break, Specialize or Die(특화생존), Iridescent OPAL: the New 5060 Generation(오팔세대), Convenience as a Premium(편리미엄), Elevate Yourself(업글인간) 등 10가지죠.

2019년 대한민국 트렌드는 1.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2. 불안한 사회에서 나만의 휴식공간을 찾아 나서는 ‘케렌시아 현상’ 3. 대면 접촉이 필요 없는 ‘언택트 기술’ 4. 새로운 부가가치와 수요를 창출하는 ‘만물의 서비스화’ 5.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 세대 6. 자신의 취향과 정치 사회적 신념을 커밍아웃하는 ‘미닝아웃’ 7. 기능적 관계나 반려동물이 대체하는 ‘대안 관계’ 8. 가성비를 넘은 만족을 주는 ‘플라시보 소비’ 9. 같은 성능, 같은 가격이라면? ‘매력 자본’ 10.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는 노력’이었습니다.

2020년의 키워드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출처 : 아주경제

1. 멀티 페르소나
현대인들은 하나의 얼굴로는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가정, 직장, 학교에서, SNS 매체 등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SNS의 경우 그것이 카카오톡이냐, 유튜브냐, 트위터냐, 인스타그램이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소통하고, 심지어 하나의 SNS에 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바꾸기도 합니다.

‘멀티 페르소나’는 다층적으로 형성된 복수의 자아를 의미합니다. 중국의 변검 배우가 가면을 바꾸듯 현대의 소비자는 매 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합니다. 본래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오늘날에는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로 쓰입니다. 트렌드 전망서는 ‘멀티 페르소나’가 갖는 특징으로 1.양면적 소비의 증가 2.취향 정체성 중요시 3.나를 표현한 캐릭터와 굿즈 열풍 4.젠더 프리 트렌드 등을 꼽았습니다.

이 중 양면적 소비(야누스 소비라고도 함)는 어떤 이가 간단하게 한 끼를 때워야 할 때는 저렴한 햄버거를, 데이트할 때는 비싼 프리미엄 햄버거를 먹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른 소비패턴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패션 등에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젠더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 역시 ‘멀티 페르소나’ 시대의 한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영남일보

2. 라스트핏 이코노미
최종 경험, 즉 마지막 순간에도 만족을 최적화하려는 근거리 경제를 뜻합니다. 기존의 제품 중심의 동어반복적인 모방과 차별화 경쟁에서 나아가 고객과 접촉하는 순간에 집중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객의 마지막 접점까지 편리한 배송으로 쇼핑의 번거로움을 해소해주는 ‘배송’ 라스트핏, 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이동’ 라스트핏, 구매나 경험의 모든 여정의 대미를 만족스럽게 장식하는 ‘구매여정’ 라스트핏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3. 페어 플레이어
올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른 ‘공정’ 문제가 2020년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아무리 막내라도 자신의 작업을 합리적으로 인정 받아야합니다. 가사 노동은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고, 대학생들은 ‘무임승차’ 여지가 있는 팀 과제보다 개인 과제를, 주관식보다 객관식을 선호합니다.

분석가들은 해가 갈수록 공평하고 올바른 것에 대한 추구가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페어 플레이어’의 라이프스타일은 1.기능 중심의 수평적 관계 지향 2.성 역할에 대한 고민과 진일보한 의식 3.계약과 매뉴얼 중시 4.만인에게 평등한 평가 시스템 선호 5.기업의 사회적 책임(선한 영향력) 고려 등입니다.

G출처 : 교보문고

4. 스트리밍 라이프
‘스트리밍(streaming)’은 인터넷에서 음성이나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송되는 데이터가 물 흐르듯 처리된다고 해서 ‘스트리밍’이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다운로드하지 않고 스트리밍하는, 음악을 듣는 방식을 넘어 생활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바뀐 겁니다. 현대인은 소유보다 경험을,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을 중시합니다. 스트리밍하듯 가볍게 옮겨 다니며 경험·공간·상품·선택권을 초단가로 이용하는 방식을 소중히 여깁니다. 욕망이 큰 데 비해 충족 자원은 부족한 젊은이들은 경험에 집중하는 유목민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합니다.

5. 초개인화 기술
초개인화 기술은 개개인의 상황을 세분화해 적절한 순간에 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식, 5G 등 눈부시게 발전하는 첨단 기술을 발판삼아 고객은 “그때그때 나의 상황에 어울리게 맞춰 달라”고 요구합니다.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지원 단계에 이른 겁니다. 이제 시장은 1명이 아니라 0.1명 단위로 세분화됩니다.

6. 팬슈머
팬슈머는 팬(Fa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소비 주체가 직접 투자와 제조 과정에 참여해 상품과 브랜드, 스타를 키워내는 걸 말합니다. 빅 브라더가 대안을 제시하고 ‘고객과 함께’를 외치던 시대를 지나 고객에 의해 좌우되는 팬슈머의 시대가 온 겁니다. 팬슈머는 상품의 생애주기에 직접 참여하고, ‘내가 키웠다’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자신이 지지한 객체(상품, 사람 등)를 적극적으로 응원하지만 동시에 간섭과 견제도 하는 신종소비자입니다. 크라우드펀딩, 서포터 활동,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에 대한 호응과 비판 등, 팬슈머가 미치는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7. 특화생존
누구에게나 그럭저럭 괜찮은 것보다 소수에게 확실한 만족을 주는 선택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특화는 이제 차별화의 포인트를 넘어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핀셋처럼’ 고객 특성을 골라내고, ‘현미경처럼’ 고객 니즈를 찾아내며, ‘컴퍼스처럼’ 상권을 구분하고, ‘낚싯대처럼’ 자사의 역량에 집중합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진화 개념인 ‘특화생존(特化生存)’은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업 경영의 새로운 처방전입니다.

8. 오팔세대
오팔은 58년생 개띠의 숫자 오팔을 의미하기도 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신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 오팔(OPAL)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뽐내는 다채로운 색깔이 모든 보석의 색이 합쳐진 오팔의 색을 닮았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인 5060 신중년들이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고, 활발한 여가 생활을 즐기며,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구매하면서 관련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인터넷과 신기술을 활용하면서 사회의 주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 모바일 쇼핑 등에 익숙하고, 유튜브 등 SNS로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이들은 앞선 시니어 세대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1.퇴직 후 다양한 직업에 다시 도전하기 2.취미와 여행을 위한 투자 3.실버서퍼(실버+인터넷 서핑), 웹버족(웹+실버) 4.콘텐츠 시장에 영향력 등의 특징을 갖고 있죠. 2030 세대만큼이나 신기술에 능하고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오팔세대는〈보헤미안 랩소디〉, 〈내일은 미스트롯〉열풍을 이끌기도 하며 문화콘텐츠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9. 편리미엄
“편리한 것이 프리미엄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현대인의 노력과 시간을 아껴주는 것이 새로운 프리미엄이 편리미엄입니다. 이런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앱 경제가 발달하면서 편리미엄은 2020년대를 맞이하는 필연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기 어려운 1인 가구,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 등이 주된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가사 노동·줄 서기·청소·운동 등 일상의 사소한 영역에서 자신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제품과 서비스들을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경험을 중시하지만 늘 시간에 허덕이는 현대인과 수시로 노동을 제공하고 싶어하는 가교형 노동자들의 절충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업글인간
업글인간은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기계발형 인간입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삶 전체의 커리어를 관리함으로써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데 변화의 방점을 찍는 유형입니다. 업글인간은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 진학이나 대기업 입사와 같은 ‘성공’, 또는 스펙 경쟁으로 뚫은 관문이 사회적 지위를 잠시 보장할지는 몰라도 영원히 의미 있는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업글인간이 지향하는 ‘Better me’ 뒤에 숨겨진 말은 ‘than yesterday(어제보다)’라고 할 수 있다. 업글인간의 성장 동기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오는 불안이 아니라, 어제보다 못한 내 미래의 모습에 대한 불안이다.” 삶의 질적 변화를 원하는 업글인간의 등장으로 경험경제가 변화경제로 전환되고 있는 겁니다.

잡코리아는 알바몬과 함께 지난 12월 9~15일에 걸쳐 성인남녀 785명을 대상으로 ‘업글인간 트렌드 현황’에 대한 모바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중 64.5%가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며, 나 자신과 경쟁하는 업글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뉴시스

 

* 여기, 그리고 곳곳에 있는 ‘작은 히어로’들을 응원합니다. 한 해 동안 뉴스큐레이션을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소비자기획] ‘트렌드코리아 2020’ 키워드로 읽는 기업과 소비자의 공생
소비자경제, 2019. 11.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트렌드 연구자 김난도 교수, 2020년 소비 트렌드 대예측
주간현대, 2019.12.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2020년 트렌드 미리보기] ‘멀티 페르소나’에 주목하라
영남일보, 2019.11.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2020년, ‘세분화‧양면성‧성장’에 주목해 ‘현대인의 진짜 욕망’을 찾아라!
사례뉴스, 2019.1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글/ 
이재은(뉴스큐레이션)

 




도시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려면 – 부평 캠프마켓 반환 이후 향방에 대하여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평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미군기지 ‘캠프마켓’이 지난 12월 11일 반환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반환 논의가 있던 것이 1990년대 후반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날의 ‘즉시 반환’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2010년대 들어서 토양 오염 등의 문제에 대한 협의가 지연되면서 반환 예상 시점이 계속 미뤄졌던 것도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부평 군부대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조병창은 당시 일본 본토를 제외하면 조선과 만주국 내의 단 두 곳에만 존재했는데, 부평의 조병창이 그중 하나입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이 공간은 규모의 크고 작음이 달라졌을 뿐, 자연스레 주한미군과 그와 관련된 국군의 시설이 모인 곳이 되었습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군부대는 조금씩 침식되었으나 사라지지는 않고, 도시 한가운데에 마치 섬처럼 남았습니다. 수십 년 전 일부는 산곡동의 고층아파트로 변했습니다. 1997년에는 캠프마켓 건너편에 있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2002년까지 조성공사를 거쳐 부평공원이 만들어졌고, 같은 시기 캠프마켓이 규모를 축소하면서 일부 영역이 반환되어 부영공원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캠프마켓은 송도 센트럴파크보다도 넓은 13만 평 정도의 규모입니다. 인천에서 포화되고 오래된 도시의 숨을 틔게 할 넓은 공공 공간으로 변모 가능한 곳은, 섬과 같이 존재하는 이 캠프마켓밖에 없다는 인식이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기지 반환에 관련한 주장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2월 11일 인천시청에서 열린 캠프마켓 반환 기자회견
출처: 인천시 인터넷방송 홈페이지 (자세한내용 보러가기▶)

캠프마켓 반환 후 이 공간은 대규모 도심 공원이 되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산 이외에 도심 녹지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대규모 공원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많은 공원이 만들어진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간석오거리에서 인천 터미널에 이르는 중앙공원이 조성된 것이 이즈음입니다. 서울에서는 여의도 광장을 여의도 공원으로 바꿨고, 선유도 공원과 서울숲, 드림랜드가 문을 닫은 자리에 조성된 북서울 꿈의 숲이 연달아 만들어진 때이기도 합니다.

대도시 안에 있는 미군기지의 활용은 대체로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됩니다. 용산 등 다른 대도시 내의 군기지에 대한 논의도 대규모 녹지 조성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며, 부평공원과 부영공원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캠프마켓 이후에 들어설 공간도 훌륭한 도심 공원이 되어 인천 북쪽 시민들의 삶의 질에 큰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저 공원을 만드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공원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고, 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온통 나무와 물과 산책로만 있기엔 이곳은 너무 넓고, 인천 도심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빈 공간입니다. 이 공원이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할지, 어떤 공간을 품었을 때 시민들의 만족감이 더 높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렵사리 확보한 공간을 헛되지 않고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시민사회 곳곳에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캠프마켓의 건물 중 일부가 유일하게 일제시대 조병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박물관 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50년대 대중가요가 미군기지 주변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점을 근거로 들어 대중음악과 관련된 대중음악 자료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도 있습니다. 인천시 의료원을 확대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거나, 시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의견도 있습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인천의 부족한 문화예술 시설을 이유로 들며 시립미술관이 부평에도 하나 더 지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이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곳곳에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부대시설이 잘 갖춰진 사회인 야구장이 늘었으면 할 테고, 또 누군가는 유소년 축구클럽을 위한 운동장을 기대할 것입니다. 자전거 하이킹 코스나 애견 동반 놀이터를 바라는 이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인천시는 대략적으로 공원에 대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지난 2014년 주민 공람을 거쳐 2015년 1월 최초로 고시한 내용에서는 이곳을 ‘신촌공원’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녹지 공간을 위주로 일부 체육시설을 조성하고, 용도를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23개 동의 1층짜리 벽돌 건물의 ‘교양시설’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 5월 변경된 조서에서는 이 ‘교양시설’이 49개 동으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캠프마켓에 남아있는 건물들의 역사성을 고려해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이 안을 어떤 것들로 채워 나갈지는 앞으로 고민할 부분으로 남겨 놓은 듯합니다.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서 인천시와 부평구의 공직자 및 연구자들은 앞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용산이 그랬듯 설계 공모와 같은 과정을 거칠 수도 있습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며 ‘슬로 시티 프로세스’ 방식을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의 삶에 연결되는, 더 나은 공공 공간을 상상하고 만드는 몫은 이제 시민들의 손에 넘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서울시에서 개최된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2차 토론회 모습
출처: 다산콜센터 네이버 블로그 (자세한내용 보러가기▶)

저는 몇 차례 글을 통해서 이 땅의 미래를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습니다. 캠프마켓의 미래를 만드는 과정은 지역 정치와 거버넌스의 실험장이자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시민으로부터의 도시계획’을 그리 믿지 않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오래전부터 행정가와 전문가들이 지역에 필요한 공공 공간을 연구하고 조사합니다. 그렇지만 공공 공간을 마련하기 전 열리는 몇 번의 세미나나 토론회, 공청회는 대체로 잘 홍보되지 않고, 대부분 평일 낮에 열려서 참석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이전부터 지극히 관심이 높던 사람들 일부가 빅마우스의 역할을 하고, 대다수의 시민은 다 건설되고 나면 그냥저냥 큰 만족도 불만도 없이 공공 공간을 이용합니다.

공공이 떠맡아야 하는 역할이 무겁지만,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도록 공유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계획을 검토·수정하며, 이렇게 시민들과 정말로 함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지역 언론은 지속적으로 인천 시민사회 곳곳에서 어떤 공공 공간을 원하는지 발굴하는 등, 캠프마켓이 반짝 이슈로 머물지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북돋아 주었으면 합니다. 약간의 농담이 섞인 이야기입니다만, 어쩌면 정말로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주변의 산 및 이미 조성된 공원과 연결된 녹지나 체육시설, 박물관이 아니라, 서울 동부권역 혹은 경기 동부권역까지 가지 않아도 도심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일 수도 있습니다. “인천시는 공원을 만들려 합니다. 어떤 공원이 좋을까요?”보다는 “인천 시민은 이 자리에 어떤 공간을 원하시나요?”가 더 나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더 소모되는 질문이지만, 저는 여러 번 그 지난한 과정이 오늘날의 도시계획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십여 년 전 ‘마을 만들기’가 도입되던 때부터,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제도적 방법들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운영하는 행정가들의 조바심으로, 때로는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많은 제도들이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작은 성과들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으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캠프마켓은 주한미군의 손을 떠났지만, 아직 토지 정화의 문제가 남아있고, 당장 빵 공장이 문을 닫는 시점은 내년 여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직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캠프마켓이 정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시민이 잘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민이 스스로 쌓아 올려서 만든 공간’이어야 합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전갑생(2016). 한국전쟁기 인천의 미군기지와 전쟁포로수용소. 황해문화
심주영(2017). 용산미군기지 공원화 과정의 도시담론 분석. 한국도시설계학회지 도시설계, 18(5)
전대욱,허훈(2015). 미군 반환기지의 특성과 통일대비 활용방안. 한국정책연구, 15(1)
인천광역시보 제1445호. (2015. 1. 26.) 인천광역시청
인천광역시보 제1742호. (2019. 5. 7.) 인천광역시청




[큐레이션 콕콕] 요즘, 편의점

국내 최초 편의점은 1989년 5월 6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에 문을 연 세븐일레븐 1호점입니다. 그해 국내에는 7개의 편의점이 있었죠. 당시 점장을 맡았던 손윤선 씨는 “지금은 편의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는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자정이 넘으면 상품 가격에 할증이 붙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국에 편의점은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유지됐던 야간 통금이 풀린 건 1982년 1월. 그즈음 몇몇 편의점들이 문을 열었지만, 동네 구멍가게에 익숙했던 상점 문화 속에서 별다르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몇 해가 지나 프랜차이즈 형태의 세븐일레븐이 한국에 도입됐고 1990년에는 훼미리마트(현 CU)와 미니스톱, LG25(현 GS25) 등이 잇따라 편의점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1990년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도입 4년 만에 편의점은 1,000호점을 돌파했습니다. 2019년 현재 한국의 편의점은 4만4,300여 개로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보다 두 배 많습니다(인구당 편의점 수 기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택배와 금융, 세탁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는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1989년 5월 서울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처음 문을 연 세븐일레븐 1호점
(출처 : 매일신문)

1997년 공공요금 수납대행 서비스, 1999년 현금자동입출금기(ATM), 2000년 택배, 2009년 국세 수납, 2012년 알뜰폰 판매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은 생활 편의를 높이는 만능 공간이었습니다. 2008년 지하철과 공항 등에 편의점이 입점했고 2009년에는 이동형 편의점이 등장했습니다. 최근에는 쾌적한 식음료 이용 공간을 갖춘 카페형 편의점과 무인 편의점 등으로 더욱 역동적으로 변신해나가고 있죠.

1990년대 초 에는 ‘걸프컵(대형 종이컵에 담아 먹는 탄산음료)’처럼 서양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삼각김밥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부상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도시락 같은 간편식품으로 확대됐습니다. 2010년 이후부터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자체브랜드(PB) 상품이 주목받기 시작했고요. 현재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품 수는 5,000개가 넘습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오경석 팀장은 편의점의 증가와 성장을 “주 52시간 근무, 언텍트(비접촉),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혼술 트렌드 확산, 집에서 편안하게 술과 안주를 즐기는 실속 있는 소비 분위기”에서 찾았습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대로 간편식이나 외식으로 대체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편의점 고객은 더 불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네요.

출처 : 서울경제

서울 강남의 한 GS25는 의류용 가전제품인 스타일러를 설치했습니다. 스타일러를 집에 놓기 어려운 1~2인 가구를 겨냥한 거죠. 전동킥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GS25는 전동 킥보드 배터리 충전 스테이션 및 주차 스테이션, 하이패스 단말기 판매 및 금액 충전, 공공요금 수납, 온라인 쇼핑몰 결제 대행, 세탁 서비스 등을 운영 중입니다. 세븐일레븐은 무인물품 보관함 ‘세븐락커’를, 이마트24는 고객이 원하는 와인을 결제한 후 지정한 날짜에 가까운 매장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네요.

CU는 DGB대구은행과 손잡고 ‘내가 만든 보너스 적금’을 판매합니다. 세전 금리 6개월 최저 연 1.75%에서 2.35%, 1년 최저 연 2.1%에서 최고 2.7%의 상품으로 적금은 1인 1계좌, 자유적립식이며 월 납입금액은 1만 원 이상 20만 원 이하로 6개월과 1년 단위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무인화가 편의점의 미래입니다. 이마트24와 GS25 등은 현재 초기단계에서 무인 편의점을 운영하며 무인 편의점이 보편화되면 무인화를 지원하는 신사업 기회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편의점 관계자는 “대부분의 골프장이 그늘집 근무자의 인건비와 근무시간 등 근로조건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편의점 무인화가 안정되면 전국 그늘집 풍경이 바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GS25는 전동 킥보드 배터리 충전 및 주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이데일리

정부가 편의점이나 카페, 아이스크림 판매점 등에서 부스형 동전 노래연습장(코인 노래방) 운영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음주가 허용되지 않는 편의점이나 카페 등에서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인 노래방을 함께 영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의점 점주들의 민원을 새겨들은 것인데, 관련 업계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결론을 내릴 계획입니다. 최근 트렌드에 맞춘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의견과 술과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에 노래방이 들어서면 ‘편의점이 주점으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공존합니다.

“최근 가족과 노래방을 가려다 애가 있어 입구에서 거절된 경험이 몇 번 있다. 노후화된 곳도 많고 솔직히 애 데리고 가기엔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 한 곡씩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40대 김모 씨)

“노래 부르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일반 노래방은 혼자 가기엔 꺼려져 자주 갈 수 없었다. 업종 융합은 요즘 트렌드 아니냐,” (20대 이현정 씨)

“크기가 작은 곳은 힘들겠지만, 매장이 큰 곳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최근 타다와 택시 논란처럼 기존 노래방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편의점 운영자)

“아무리 방음 시스템을 한다고 해도 소음이 있을 텐데 주거지 매장에서 가능할지.” (30대 현모 씨)

“청소나 카운터부터 물건 챙기고, 어떤 매장은 치킨도 튀기던데 노래방 관리까지 한다고 하면 편의점 알바는 극한직업이 될 것 같다.” (20대 남성)

“안 그래도 노래방, 술집이 많은 나라에서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도 노래를 불러야 하나.” (10대 자녀를 둔 주부 김양은 씨)

“아이들이 담배와 술 냄새가 나는 노래방에 가는 것보다는 밝고 깨끗한 편의점 노래방에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또 다른 주부)

서울 홍대 소재 CU 편의점과 ‘수’ 노래방이 한 건물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색 매장을 갖춘 곳으로는 편의점업계 후발주자인 이마트24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존 편의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인테리어에 와인 400여 종을 구비한 이마트24를 주축으로 브런치카페, 북터널, 화원, 레고숍 등 다채로운 업종을 한데 모아놓은 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대구에 1,980㎡ 규모의 폐공장과 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한 ‘투가든(2garden)’을 오픈했네요.

수도권에는 ‘클래식이 흐르는 편의점’을 콘셉트로 부채꼴 형태의 매대를 구성하고, 매장 내 휴게공간에 클래식 청음 장비를 구비한 ‘예술의전당점’, 북카페 형태를 갖춘 ‘스타필드코엑스몰 3호점’, 3층 규모의 루프톱 매장으로 ‘풍경이 있는 편의점’이라고 불리는 ‘충무로2가점’, 편의점업계 최초 ‘바리스타가 있는 편의점’을 주제로 선보인 ‘해방촌점’, 한옥을 콘셉트로 꾸민 ‘삼청동점’ 등이 있습니다. 이들 매장의 평균 매출은 전점 대비 2배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 편이라고 하네요.

‘이마트24 투가든’의 정원 모습
(출처 : 주간동아)

‘CU 대덕대 카페테리아점’에는 다양한 먹을거리로 구성된 메뉴판이 있습니다. 즉석 피자와 도넛, 치킨, 과일슬러시 등 매장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판매합니다. 간편 식사와 즉석조리 식품도 맛볼 수 있는데 이들 상품의 매출은 전체의 35%를 차지합니다. 경남 창원시의 ‘약국병설형 편의점’은 편의점과 약국을 한데 묶어 매출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네요.

GS25는 기술력을 살린 무인점포를 운영 중입니다. 마곡 ‘스마트 GS25’에는 안면 인식을 이용한 출입문 개폐, 상품 이미지를 인식하는 스마트 스캐너, ‘팔림새’ 분석을 통한 자동 발주 시스템, 상품 품절을 알리는 적외선 카메라 시스템 등 최첨단 기술이 도입됐습니다. 전국에 150여 개 매장이 있는 세븐일레븐의 ‘도시락카페’는 매장에 따라 북카페, 스터디룸, 화장실, 안마기 같은 시설을 갖췄습니다. 세계 최초 핸드페이(손바닥 정맥인증 결제 서비스) 기반의 스마트 편의점 ‘시그니처’도 전국에 17호점까지 오픈한 상태라고 하네요.

출처 : 주간동아

초창기 편의점은 표준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점점 입점 지역의 특징을 기반으로 맞춤형으로 바뀌고 있네요.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편의점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허브다”며 “플랫폼을 깔아놓고 수백 가지 사업을 벌이는 아마존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전했습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토요워치] ‘1코노미’ 시대의 만물상…편의점 공화국
서울경제, 2019.12.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토요워치] 진화하는 편의점…‘라이프 플랫폼’이 미래
서울경제, 2019.12.0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영상] 국내 편의점, 일본보다 많을까? 적을까?
중앙일보,2019.12.0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편의점 노래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편의점이 주점?” vs “아이들 안전 보장”
파이낸셜뉴스, 2019.11.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동전노래방부터 적금 가입까지…편의점 “한계는 없다”
이데일리, 2019.11.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매장 차별화와 플랫폼 서비스로 ‘한국의 아마존’을 시험하는 편의점
주간동아, 2019.11.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7. ‘편세권’에 산다…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한 편의점
매일신문, 2019.11.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큐레이션 콕콕] 인천시티투어

인천시티투어버스는 인천시에서 운행하는 순환 관광버스입니다. 2016년 6월 기존의 테마형에서 순환형으로 바뀌었으며 총 3코스로 운행됩니다. 월미도와 연안부두, 송도신도시 등을 순환하는 하버라인, 부평과 구월동, 소래 등 인천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시티라인,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영종도를 돌아오는 바다라인이 있습니다.

하버라인 : 인천역(차이나타운)-하버파크호텔-연안여객터미널-인천종합어시장-G타워(커낼워크)-솔찬공원-송도테크노파크(현대프리미엄아울렛)-송도컨벤시아(NEATT)-센트럴파크(인천도시역사관)-인천상륙작전기념관(인천시립박물관)-신포국제시장-개항장(아트플랫폼,인천역)-월미공원-월미문화의거리-인천역(차이나타운)

시티라인 : 센트럴파크(인천도시역사관)-송도컨벤시아-트리플스트리트(글로벌캠퍼스)-소래포구역-모래내시장-부평역(부평지하상가)-인천시청광장(엔타스면세점)-인천문화예술회관(먹방골목)-문학경기장(도호부청사)-동춘역(스퀘어원)-이스트보트하우스(송도컨벤시아)-센트럴파크(컴팩스마트시티)

바다라인 : 센트럴파크(인천도시역사관)-송도컨벤시아-인천국제공항(제1청사)-파라다이스시티-무의도입구(용유역)-을왕리해수욕장-인천국제공항(제2여객터미널)-인하국제의료센터(합동청사역)-이스트보트하우스(송도컨벤시아)-센트럴파크(인천도시역사관)

출처:경인일보

하버라인의 포인트는 연인부두와 신포국제시장 그리고 개항장 일대입니다. 저녁에 송도 솔찬공원에 내려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시티라인은 소래포구와 모래내시장, 그리고 부평지하상가와 문화의 거리를 둘러볼 만합니다. 소래포구 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구경할 수 있고 포구 옆으로 이어진 소래습지생태공원을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총 350만 제곱미터의 국내 최대 습지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바다라인은 세 코스 중 가장 특별합니다. 인천도시역사관에서 이층 버스를 타고 송도신도시를 돌아 인천대교를 건너 영종도를 지나는데, 2층 맨 앞자리가 인기가 좋습니다. 바다라인의 포인트는 인천대교와 인천국제공항 자기부상열차, 그리고 을왕리해수욕장입니다. 오가는 상선과 어선들이 바다를 누비는 광경과 송도와 영종 시내를 멀리서 즐겨볼 수 있습니다.

‘인천투데이’ 기사에 따르면(2019.7.12일 자) 평일에는 한산하지만, 주말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많은 시민이 시티투어버스를 애용한다고 합니다. 인천을 찾는 중국·일본인 관광객도 버스를 타고 구도심 여행을 즐깁니다. 인천 시티투어버스 티켓은 인천관광안내소 등에서 살 수 있지만 버스에서도 직접 구매 가능합니다. 단일권(일반 5,000원)은 시티·하버라인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통합권(일반 10,000원)은 바다라인과 앞의 두 라인을 모두 탈 수 있습니다. 인천시민은 20% 할인됩니다.

출처:인천광역시공식블로그

지난 4월 16일 인천연구원은 ‘인천시티투어의 고객 만족도와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발표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 대다수가 시티투어버스를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고, 투어버스를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08명 중 10명(4.8%)에 불과했습니다. 인천시티투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시티투어 존재 여부와 이층 버스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응답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석종수 인천연구원 교통물류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인천시티투어 인지율이 높은 젊은 연령대를 고객으로 유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버스의 운행방법이나 노선을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10월 23일 인천시가 공개한 올해 인천시티투어 운영실적 자료에 따르면 이달 중순까지 투어버스 탑승객 수가 3만9164명으로 공개됐습니다. 운영 수입은 2억3122만 원으로 지난해 4만3821명이 탑승해 2억5854만 원을 거둬들인 실적과 비교해 별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개 노선 가운데 송도와 연안부두, 개항장을 연결하는 ‘하버라인’과 ‘시티라인’은 좌석 대부분이 비워진 채 운행됐습니다. 하루 14회 운행하는 하버라인은 1대당 탑승객이 3.2명에 그쳤습니다. 시티라인은 지난해 저조한 실적으로 말미암아 운행 횟수를 7회에서 4회로 줄였지만, 1대당 고작 1.6명이 탔다고 합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건 ‘바다라인’이었습니다. 송도와 인천대교, 인천국제공항을 순환하는 바다라인은 평균 9.5명의 승객으로 채워졌습니다.

출처:인천시티투어 홈페이지

인천시는 노선을 개편하고, 월미바다열차·인천애(愛)뜰과 연계한 테마 여행으로 시티투어를 활성화하기로 했습니다. 송도와 영종을 오가는 바다라인은 신국제여객터미널을 경유하는 ‘바다노선’으로 유지하고, 하버라인과 시티라인은 운행을 중지합니다. 대신 송도와 인천 내항, 개항장을 순환하는 ‘개항장노선’을 신설할 계획입니다.

그밖에 서울에서 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테마형 투어는 기존 3개 노선에서 5개로 확대합니다.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강화 역사·힐링 코스, 영종 노을·야경 코스와 더불어 트롤리버스로 시범 운행 중인 ‘시간여행 투어’가 추가됩니다.

강화역사투어는 10월 26일까지 매주 토·일요일에 1회씩 운행했습니다. 검암역에서 출발해 강화역사박물관과 평화전망대, 교동대룡시장, 고려궁지 등을 돌았습니다. 강화힐링투어는 매주 일요일 1회 운행했으나 지난 10월 말에 종료했습니다. ‘지붕없는 박물관’인 강화의 전등사, 마니산, 조양방직 등을 돌며 강화도만의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을·야경투어는 인천도시역사관 앞에서 출발해 인천대교를 지나 왕산마리나에서 낙조를 보고 되돌아오는 코스로, 오는 길에는 송도신도시의 빌딩 야경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월미바다열차와 연계해 인천항만공사의 에코누리호를 탑승하는 ‘월미바다 투어’, 인천시청 앞 광장인 인천애뜰을 경유하는 ‘인천애뜰 투어’가 눈길을 끕니다.

출처:인천광역시공식블로그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시티버스 노선을 시범 운영 중인데 표가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전했습니다.

광화문-인천 개항장-바다열차 체험-월미도 유람선(영종도로 이동)-파라다이스시티(영종도)-인천대교-송도 센트럴파크로 이어지는 코스 외에 광화문에서 출발해 개항장-바다열차-에코누리호 탑승 관광(항만공사 운영 홍보선)-송도 G타워 전망대-송도 수상택시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노선도 내년에 새롭게 선보입니다. 또 서울 강남·잠실역을 시작으로 소래습지 공원, 양떼 목장, 소래포구, 인천시청 광장, 부평 문화의 거리를 둘러볼 수 있는 신규노선도 편성 예정입니다.

시티투어는 여행자가 낯선 도시의 관광 명소와 쇼핑거리 등을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한 시내 순환관광 프로그램입니다.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면서 도시의 관광자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이점이 있죠.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인천시티투어, 브랜드 인지도 낮다
중부일보, 2019.4.1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인천핫플] 인천 시티투어 버스타고 떠나는 ‘소확행’
인천투데이, 2019.7.1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텅 빈 ‘시티투어’ 노선 바꿔 승객 유치
인천일보, 2019.10.2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사설] 발상의 전환 필요한 인천시티투어
인천일보, 2019.10.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서울까지 보폭 넓히는 ‘인천시티투어’
경인일보, 2019.10.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천천히, 조금씩 만들어가는 도시는 없는가
–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845년 엥겔스가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펴냈을 때, 전세계 산업화의 최정점에 있던 영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야말로 참혹한 상태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창문이 없어 채광도, 통풍도 안되는 집에서 제대로 된 가구도 갖추지 못하고 비좁게 뭉쳐서 잠만 자고 공장에서 열여섯 시간을 일했습니다. 집에서는 단 8시간 잠만 자니 3가정이 한 집을 3교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리는 좁은데다가 항상 분뇨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습니다. 도시가 생산에만 몰두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지 않을 때 도시는 어둡고, 더럽고, 서로를 경계하고 다투는 곳이 되었습니다.

1900년대 이후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옴스테드는 도시 안에 자연과 같은 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시 공원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자연과 같은 공간에서 도시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녹지가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기능적인 요소 또한 강조되었습니다. 사실 옴스테드와 같은 사람들이 의도한 진짜 효과가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열악한 도시 여건 속에서 발생하는 범죄, 다툼과 같은 도시 문제를 ‘보기 좋은 자연’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잘 가꾸어진 자연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교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효과와 더불어 공원을 휴식과 여가를 통한 재생산의 장소로 삼아 노동자들이 더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옴스테드는 이런 관점에서 맨하탄에 거대한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센트럴 파크가 그것입니다. 이후 르 코르뷔제가 빛나는 도시를 계획하면서 도시에 고층빌딩을 세우는 대신 빈 공간을 녹지로 구성하려는 것이나, 높은 가로수를 심은 산책로인 프롬나드와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같은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현재에도 공원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 공원은 여전히 도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자연이고, 일상적인 휴식처이자 놀이공간이고, 잘 자란 녹음은 산소를 뿜어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00여 년 전에는 이런 공간이 통치술의 하나로 도시민에게 주어졌다면, 오늘날에는 도시민들 스스로 도시공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획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공원을 요구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전국 지자체들은 올해 내내 이 공원을 만드는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1999년에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토지를 장기간 실제 공원으로 개발하지 못하는 경우, 소유주의 재산권을 위해서 도시공원 예정지 지정을 해제하여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통해서 ‘장기간’이라는 시간을 20년으로 정했습니다. 20년간 개발되지 못한 도시공원은 예정지 지정을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도시공원 일몰제’라 합니다. 그래서 내년 7월, 아직까지 실제로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해서 공원 조성이 되지 않은 예정지는 도시공원 예정지 지정에서 해제됩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이런 땅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전국에 이런 땅은 무려 396.3km2나 됩니다.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천의 40%에 가까운 면적의 공원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직 정식으로 조성된 공원이 아니다보니 대체로 이런 곳들은 주로 도시의 작은 산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도시들이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에 비해서 갖는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작은 산들입니다. 어느 도시든 중간중간에 작은 산들이 있고 도시를 감싸는 큰 산들이 있어서,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지 않아도 한국의 도시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상당수가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고, 또 이들 중 많은 부분이 내년에 공원 예정지에서 해제될 예정입니다. 물론 당장 공원 예정지에서 해제된다 하더라도,  당장산이 없어지고 개발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유지인 곳들은 주인이 원하는 쓰임새를 위해 시민들이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국공유지인 곳들은 소유 기관이 원하는 사업을 위해서 개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민들은 미래의 공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무척 심각합니다. 내년 7월 해제되는 도시공원 예정지의 20% 정도가 서울시에 있습니다. 면적이 무려 72.3km2인데, 이정도면 부평구와 계양구를 합친 면적과 엇비슷합니다. 옛 북구만큼의 공원이 서울에서 통째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규모가 실감이 나실 것 같습니다. 서울은 이 도시공원 예정지를 다시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해서 기존의 공원 역할을 지속하게 하려 합니다만, 시간이 정해진 기존의 규제와 비슷한 규제를 다시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의 목소리 또한 많습니다. 많은 지자체에서는 도시공원을 개발하기 위해서 5만㎡의 도시공원 예정지를 민간이 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하면 면적 중 30%는 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성이 적어 민간 참여가 없는 경우도 있고, 환경문제나 경관훼손 등의 이유로 추진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국공유지와 사유지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겠지만, 많은 지자체가 비용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내년 7월 일몰제가 적용되는 도시공원 예정지가 최근 부쩍 부각되는 것은 이 시기가 당장 내년도 예산을 마련하여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인천은 도시공원 일몰제에서 조금 자유로운 편입니다. 우선 내년에 일몰될 가능성이 있는 공원 면적이 약 7.5km2로,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그래도 동구 전체의 면적보다는 많습니다만, 서울의 1/10 수준에 불과합니다. 인천시는 이 중 80%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하고, 부족한 재정은 지방채 발행을 통해서 충당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공원 조성 계획 비율과 예산 투입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인천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인천시는 인천대공원, 소래습지와 같은 큰 공원들을 비롯하여 소규모 공원들과 어린이 공원 등의 장기미집행공원에 대해서 공원 조성을 완료하는 로드맵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림 1> 지난 2월 인천시가 발표한 장기미집행공원 대응 로드맵(위)과
장기미집행공원 공원조성 첫 사례인 서구 현무체육공원 준공식(아래).
주변의 많은 공원 예정지들이 사실은 일몰제를 앞두고 있었고, 최근에 들어서 공원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위)아주경제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아래)인천광역시 서구 네이버 블로그(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도시공원 조성에 2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지자체들이 올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동안 무수한 도시개발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토지 확보는 60-70년대처럼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보상의 절차를 통해야 했습니다.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토지를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이나, 신도시를 개발할 때 도시 안에 공원을 조성하는 일이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무수한 신도시에 잘 계획된 공원들을 조성하면서도, 도시민들이 이미 사용할 수도 있었던 도시공원 예정지 중에는 매입과 조성 절차 없이 그냥 놓아둔 땅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입니다. 20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도시는 장기간의 계획에 따라 천천히 개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에서 공원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면, 그래서 신도시 곳곳에 공원을 당연히 조성하고 있다면, 지난 20년간 점진적인 예산 투자를 통해 도시공원 예정지들이 일몰을 맞이하기 전에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서, 눈에 띄지 않아서 미루어졌던 공원개발 대신 대규모 도시개발은 도시를 살리는 치적사업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편이 4년마다 재평가 받는 지자체장들에게는 시간과 비용과 인력을 들여 도시공원 예정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이런 오래된 습관들 때문에 인천에서도 언제 사람들이 살게 될지 아직도 짐작키 어려운 영종하늘도시의 단독주택용지 옆 공원이나, 미단시티 한가운데의 광장이 지자체가 도시공원 예정지들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기 전에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여유 시간이 있었던 전국의 도시공원 예정지들은 당장 내년에 얼마나 사라질지 짐작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림 2> 독일 함부르크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하펜시티의 마스터플랜(좌)과
랜드마크인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우).
하펜시티는 도시가 빠르게 완성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처: (좌)Hafencity Hamburg(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우)조선비즈(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최근 함부르크의 낙후한 항구를 재생하는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면적의 불과 2%에 해당하는 지역을 무려 30년에 걸쳐 재생하는 도시재생사업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도시를 만드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도, 도시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에 다양성을 만들고, 더 섬세하게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지속적으로 계획에 반영하며 더 많은 시민들이 만족하고 사랑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략입니다. 1920년대 건축된 슈투트가르트의 중앙역을 재건축하고 철도를 지하화 하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는 1990년대 후반 계획되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문화재와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시 정부는 그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고 오랜 설명회와 공청회, 의견수렴을 반복하며 천천히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 계획했던 예산의 50% 만큼이 더 들어가게 되었고, 최소 2024년까지 완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는 이렇게 천천히 오래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만들어져야 합니다. 특히나 ‘아래로부터’, ‘주민 스스로의’ 도시계획을 점차 강조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에벤에저 하워드(2006). 내일의 전원도시. 한울아카데미
엥겔스(2014).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피터 홀(2009). 내일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다시 쓰다, 도시 3.0] ①함부르크는 더 이상 항구가 아니다. 조선비즈. 2019.11.18




[큐레이션 콕콕] 아트센터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아트센터 인천’이 오는 16일 개관 1주년을 맞습니다. 인천시가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능가하는 공연장을 세우겠다며 야심 차게 추진한 아트센터 인천은 지난 1년간 세계적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은 물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캐주얼 클래식까지 40여 회의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마에스트로가 지휘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외관은 ‘컬러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시간의 흐름을 견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국내외 예술계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뛰어난 음향 시스템을 갖춘 콘서트홀은 조개껍질을 형상화했습니다. 빈야드(Vineyard)와 슈박스(Shoebox) 스타일의 장점을 혼합해 객석 1,727개를 설계하고 측벽 반사음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콘서트홀 3층 구석 자리나 1층 로열석 어디에 앉든 편차 없이 고른 음향을 유지해 독주와 실내악은 물론 대편성 오케스트라까지 완벽한 사운드를 선사합니다.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은 ‘2019 인천광역시 건축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상층 다목적홀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 야외 광장과 연결되는 바닷가 데크 등 건축물이 갖는 미학적 요소 덕분에 아트센터 인천은 드라마의 로케이션 장소로도 활용됐습니다. 지난 5월부터 방영된 KBS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 외에도 인천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각종 환영 리셉션, 광고 및 영화 촬영지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아트센터 인천 외관
(출처 : 머니투데이)

아트센터 인천은 지난해 11월 인천시립교향악단(지휘 이병욱)과 이탈리아의 명문 악단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협연 조성진)의 연주를 선보이며 문을 열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국내 최초로 세계 유명 극장의 오프닝 화제작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천지창조(The Creation)’를 유치해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이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3월)을 초청하여 클래식 마니아층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하반기에도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작품들이 라인업 됐습니다.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율리아 피셔의 7월 공연을 시작으로 9월 벨체아 콰르텟와 10월 레자르 플로리상&윌리엄 크리스티의 ‘메시아’로 관객들에게 고품격 클래식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시민에게 친숙한 클래식 공연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마티네 콘서트(3월~11월, 총 5회), 최수열 지휘자&김성현 기자의 모차르트 모자이크(4월~12월, 총 5회), 키즈 클래식(5월/8월) 등 다채로운 공연을 마련한 것도 눈에 띕니다. 10월 15일에는 인천 시민의 날을 기념해 공연장 안팎에서 진행된 ‘원데이 페스티벌’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오는 11월과 12월에는 잉글리시 콘서트&조수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조성진, 안드라스 쉬프&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 오케스트라 등 동시대 최고 아티스트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2019년 아트센터 인천의 평균 객석점유율은 70%가 넘었습니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조성진, 잉글리시 콘서트&조수미 공연은 전석 매진되고 신년음악회, 콘서트 오페라 ‘라보엠’, 원데이 페스티벌, 인천시립교향악단과 함께하는 개관 1주년 기념 음악회, 나윤선 크리스마스 콘서트 등도 평균 80~90% 이상의 예매율을 기록했습니다.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출처 : 뉴데일리)

12월 13일과 14일 이틀간 펼쳐지는 ‘라 보엠’은 연극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음악 중심으로 공연되는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입니다. 아트센터 인천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콘서트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매년 12월이면 전 세계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라 보엠’은 ‘나비부인’, ‘토스카’와 함께 푸치니 3대 오페라로 꼽힙니다. 프랑스 뒷골목을 배경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작품은 ‘내 이름은 미미’, ‘그대의 찬 손’과 같은 잘 알려진 아리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2015년 제노바 카를로 펠리체 극장에서 “최고의 미미”로 인정받은 소프라노 홍주영과 빈 국립극장 주역 가수를 거쳐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테너 정호윤이 출연해 더욱 눈길을 끕니다. 이호준, 강은현, 전승현, 안대현, 이준석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성악가와 홍석원 지휘자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 심포니 콰이어 코리아, 위자드콰이어 어린이 합창단도 최고의 무대를 위해 준비 중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유럽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한 나윤선은 ‘나윤선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통해 2년 만에 팬들 앞에 섭니다. 이번 공연은 지난 4월에 발매한 정규 10집 앨범 ‘이머전(IMMERSION)’ 월드투어 콘서트 일환으로 유럽과 미주 투어에 이어 12월 27일에 아트센터 인천을 찾습니다. 월드투어 멤버로 호흡을 맞춘 토멕 미에르나우스키(Tomek Miernowski 기타, 피아노)와 레미 비뇰로(Rémi Vignolo 더블베이스, 드럼)가 함께해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천지창조’ 한 장면
(출처 : 인천일보)

아트센터 인천 공연기획 박지연 팀장, 이학규 아트센터인천 운영단장, 이원재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등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의 컨퍼런스하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에 연간 60회 이상의 기획공연을 유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획공연 예산을 올해 28억에서 37억으로 대폭 늘리고 지역 공연장의 한계에서 탈피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해외 우수작과 세계 최정상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놓겠다는 포부도 전했습니다.

2020년 3월에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트, 소프라노 로빈 요한센,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오보이스트 프랑스와 를뢰 등 유수의 해외 단체와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릅니다. 미취학 아동이나 여성 등 맞춤형 시리즈, 광복 7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등 역사성과 시대성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며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은 기념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국내외 연주자들의 독주, 듀오, 실내악의 소규모 편성 곡들도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구체적인 2020년 라인업은 운영위원회를 거쳐 11월 말 정식 공개할 계획입니다.

(출처 : 스포츠서울)

아트센터 인천은 콘서트홀에 이은 2단계 사업으로 오페라하우스(1,439석 규모)와 뮤지엄(연면적 1만5145.62㎡)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향후 복합쇼핑공간 아트포레 단지까지 조성해 글로벌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약할 예정입니다. 오페라하우스와 뮤지엄은 기반 공사를 마쳤지만, 아직 재원 확보 방안이 불투명합니다. 이원재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은 “착공하면 2년 이내 완공이 가능하다”며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걸맞게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학규 아트센터 인천 운영준비단장은 “대형 공연의 약 60%가 서울 관객”이라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공연을 올리다 보니 외부에서도 찾아오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에서 역외 소비가 만연했던 인천에 큰 변화가 생긴 셈입니다.

글 / 이재은 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아트센터 인천 “2020년 기획공연 60회, 예산 37억”
뉴데일리, 2019.11.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인천문화읽기] 개관 1주년 맞은 ‘아트센터 인천’
인천일보, 2019.1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아트센터 인천 1년 절반의 성공
국민일보, 2019.10.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출발 불안했던 아트센터인천 “내년 기획 공연 60회로 늘린다”
중앙일보, 2019.10.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2019년 연말 장식 위한 ‘아트센터 인천’ 마지막 공연 두편 소개
매일일보, 2019.10.1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큐레이션 콕콕] 2019 노벨문학상

지난해 노벨문학상 선정 종신위원의 남편이 성(性) 추문에 휩싸이고, 내부 부정회계 갈등이 불거지면서 수상자 공표를 한 해 미룬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와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77)가 그 주인공입니다.

2018년 맨부커상 수상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카르추크는 1962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 부재,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섬세한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작품은 『태고의 시간들』(1996)입니다. ‘태고’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20세기의 야만적 현실을 마주한 주민들의 삶을 84편의 짧은 장편(掌篇)으로 기록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전후 폴란드 국경선의 변동, 냉전체제와 사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신화와 어우러져 장엄한 우화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폴란드에서 40세 이전 젊은 문인들에게 주는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공통분모로 100여 편의 글을 씨실과 날실로 엮은 『방랑자들』(2007)은 2007년 폴란드 최고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에 이어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에 빛나는 작품입니다. 『죽은 자들의 뼈에 쟁기를 끌어라』(2009)도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체코와 폴란드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로, 에코 페미니즘 성향이 도드라집니다. 작가는 동식물을 인간과 동등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자연 파괴와 동물 사냥을 일삼는 인간의 잔인성에 준엄한 경고를 보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문화인류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고, 특히 칼 융의 사상과 불교 철학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설이야말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네요.

올가 토카르추크
출처:뉴시스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4학년 재학 중에 쓴 소설 『말벌들』로 등단했습니다. 1960년대 말 독일 문학의 주류였던 참여문학에 반대하고(그해 미국에서 개최된 ‘47그룹’ 회합에 참석해 당시 서독 문단을 이끌었던 47그룹의 참여문학에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언어내재적 방식에 주목해온 작가입니다.

한트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그가 24세에 집필한 희곡『관객모독』입니다. 1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서너 사람이 아무렇게나 입고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걸며 잡담을 늘어놓는 형식을 취합니다. 1960년대에 지배적이던 교훈적 연극에 반기를 든 것으로 연극 자체에 집중하면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했습니다.

골키퍼 출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0)에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독일어로 쓰인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1972년에 빔 벤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습니다. 오랜 우울증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소망없는 불행』(1972)도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한 여성이 억압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으며 한트케는 이 작품을 영화로도 제작했습니다.

근작인 『야고보서』(2014)는 역사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작품입니다.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대에 메시아를 자처하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통합하려 했던 유대인 ‘야쿱 프랑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추적합니다. 부제는 ‘일곱 국경과 다섯 언어, 그리고 세 개의 보편 종교와 수많은 작은 종교들을 넘나드는 위대한 여정’이네요.

페터 한트케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67년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1972년 페터 로제거 문학상, 1973년 실러 상 및 뷔히너 상, 1978년 조르주 사둘 상, 1979년 카프카 상, 1985년 잘츠부르크 문학상 및 프란츠 나블 상, 1987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및 브레멘 문학상, 1995년 실러 기념상, 2001년 블라우어 살롱 상, 2004년 시그리드 운세트 상, 2006년 하인리히 하이네 상 등 많은 상을 석권한 바 있습니다.

페터 한트케
출처:연합뉴스

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반발하는 무리도 있습니다. CNN과 로이터통신 등은 10월 11일(현지시간) 수상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친세르비아 성향 가정에서 태어난 한트케는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 밀로셰비치(1941~2006)를 옹호해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밀로셰비치는 1990년대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소패권주의를 내세워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발칸 곳곳에서 인종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알바니아계를 상대로 ‘인종 청소’를 벌이는 등 2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300만 명을 난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밀로셰비치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한트케는 밀로셰비치가 전범 재판을 기다리다가 구금 중 숨을 거두자 그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기도 했습니다. 대량학살을 주도한 범죄자를 옹호했다는 논란이 일자 한트케는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닌 비극적 인간이다. 나는 작가일 뿐 재판관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이로 인해 더 큰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학살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림원의 결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생존자들은 “부끄러운 일이다”며 한림원 측에 노벨문학상 선정 취소를 촉구했고 유고 내전 피해자 측인 코소보의 블로라 치타쿠 주미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훌륭한 작가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노벨위원회는 하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며 “증오를 토해내는 이들을 옹호하거나, 정상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코소보에서 출생한 젠트 카카즈 알바니아 외무장관도 “인종청소를 부인하는 인물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다니 끔찍하다”며 “2019년에 우리가 목격하는 이 일은 얼마나 비열하고 부끄러운 행태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코소보에서 학살된 알바니아인 장례식
출처:연합뉴스

무등일보에 ‘노벨문학상 논란 착잡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은 글머리를 “인류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가”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학 인사들의 심각한 친일 행적과 해방 후 남한 사회에서 이들이 사회적 권력을 독식해온 것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남 일 같지 않다”며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엔 이들의 친일 행각을 꺼낼 수도 없었다. 독재정권의 레파토리가 ‘정치는 정치고 문학은 문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1세기, 세계 최고의 독립적이고 존경받는 재단이 같은 단어와 뉘앙스를 들고나온 건 세기의 불행이다. (중략) ‘정치상이 아니’라는 노벨위원회의 설명은 인류에게 불행하다. 비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정치적이어서다. 인류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어떠하든, 기교만 빼어나면 된다는 메시지를 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매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상임비서는 “수상자는 문학적, 미적 기준으로 선정됐다”며 “정치적인 고려사항과 문학적 우수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한림원의 권한이 아니다”라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해명했습니다. 한림원 일원인 안데르스 올손도 “이는 정치적인 상이 아니고 문학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네요.

서점에 진열된 올가 토카르추크와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 수상 전 1주일에 한 권씩 팔리던 책이 수상 이후 나흘 동안 828권, 607권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각각 118배와 87배 증가했습니다. 구매하는 연령은 40대가 35.8%, 38.3%로 1위를 차지했고, 남녀성별은 4대 6 정도로 여성 독자의 비중이 조금 높았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동시에 발표된 2018‧2019 노벨문학상…인간의 실존 탐색한 토카르추크, 선정 1년만에 수상
백세시대, 2019.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전범 옹호자’ 노벨문학상 논란…“수치” vs “정치상 아냐”
연합뉴스, 2019.10.1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윤성은의 문화읽기> 노벨문학상 수상자 논란‥대표작에 관심
EBS뉴스, 2019.10.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문학상 어디까지 알고 있니? 노벨상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북DB, 2019.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노벨문학상 논란 착잡하다
무등일보, 2019.10.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올 노벨문학상, 폴란드 토카르축·오스트리아 소설가 한트케 수상
뉴시스, 2019.10.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자주 만나면 사랑에 빠질까_전시장과 공연장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근대적인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굳이 한 단어로 꼽으라 한다면 아마 ‘생산’이 아닐까 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계속해서 도시는 가장 선진적인 산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곳입니다. 자본주의가 자리잡은 이래, 도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정수로 여겨집니다.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잉여 생산이 대공황을 불러온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고정된 생산과 소비 시설을 만들어내는 ‘2차 순환’을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2차 순환’의 결과물에 ‘건조 환경’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도시는 건조 환경의 가장 주된 예입니다.

끊임없이 돈을 투자해서 돈이 되는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공간이 도시라면, 도시는 참으로 삭막하고 여유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도시 밖보다 도시의 삶에서 더 나은 여유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도시에서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시에서의 예술 또한 대단히 양면적입니다. 예술은 이미 앞서 말한 ‘가장 선진적인 산업’ 중 하나입니다. K-pop은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일신하는 역할을 하고, 게임산업은 문화산업 수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전에도 창조 도시와 관련된 논의를 소개해 드린 바 있는 것처럼,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도시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며,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오늘날 도시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도시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삶 속에서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도시 공간의 무수한 매스 미디어들을 통해, 거의 모든 도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자신의 취향을 가지게 됩니다. 도시민들이 도시 정부에 자신의 취향을 충족하는 더 많은 예술의 장을 제공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림 1> 문화산업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모바일 생태계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좌)와 애플TV+(우)(출처: IT동아(좌), Apple 홈페이지(우))

전문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예술의 우열을 가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분명 예술을 소비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로 읽힙니다. 여기에 예술도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이 더해지면 ‘수요자 중심’의 예술시장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공공이 예술의 장을 공급하는 문제로 이야기의 중심을 옮기면 이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시대의 모든 현상에서 이제는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와 SNS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술 관련 산업에서 이는 더욱 도드라집니다. 통신기업 중심이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제 디즈니 등 콘텐츠 기업이 직접 뛰어드는 대규모 시장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트위치 등 동영상 플랫폼은 점차 라이브 방송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들 플랫폼 차원이 다른 접근성으로 인해, 많은 문화 예술이 여기로 흡수됩니다. 오래된 드라마가, 회화와 조각들이,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DVD와 미술관, 공연장에서 벗어나 더 일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 접촉합니다. 대중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더 다양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은 전적으로 개별 사용자의 선택에 의존합니다.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가 있는 반면, 수백 배, 수천 배의 선택받지 못하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예술에 적자생존과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점차 예술은 다양성을 잃게 됩니다. 공공의 역할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예술의 체험이 교육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체험학습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의 예술을 직접 관람하고, 체험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인천은 오랜 시간 문화의 불모지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문화시설 자체가 부족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수한 노력으로 공공 도서관 시스템이 확립되고, 지방자치단체 중에 가장 활성화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문화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최신 시설의 콘서트홀인 아트센터 인천을 갖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문화시설은 영화관이 대다수이며, 민간의 기증으로 갖추어진 송암 미술관을 제외하면 300만 인구의 광역시에 걸맞지 않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이며, 민간이 운영하는 공연시설이나 미술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부족한 도시입니다. 아트센터 인천을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공연시설은 다목적 강당에 가까워 무대, 음향 등에서 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습니다. 아시안게임 개최 이후 대규모 공연이 가능한 체육관을 통해서 대중문화 공연이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촬영 등이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전문예술분야는 많은 부분에서 서울의 전시공연 시설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림 2> 울산이 시립 미술관 착공을 시작하면서, 인천은 아직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입니다.
인천 시립미술관이 자리할 뮤지엄파크 조감도(좌)와 2001년 신축 이전한 서울시립미술관(우).
(출처: 매일경제(좌), 서울시립미술관(우))

문화적 소양은 배워서 만들어지기보다는 어린 나이부터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쌓이게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전시 공연에 익숙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문화를 익숙하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또한 청소년기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은 이후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예술 체험을 유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청소년 시기의 공교육은 입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관심과 선택이 아닌 교육과정의 일부로 접하는 예술이 깊은 영향을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요가 적거나 수익성이 떨어져서 민간에서 많이 제공하지 못하는 전시시설과 공연시설, 특히 전문예술에 대한 맞춤 공연시설은 공공이 다양하게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대규모의 치적사업으로서의 전시공연시설이 아니라, 마치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처럼 일상에 밀접한 전시공연시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도 이런 시설은 건설비용과 운영비용이 많이 들고, 수요는 적고 처음에는 양질의 전시 공연을 채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민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 일상처럼 이런 공간들이 있을 때 시민들의 예술과 미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됩니다. 좋은 전시장과 공연장은 인천 외부의 훌륭한 예술가들을 인천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아이돌과 유튜버 이외에도 다른 예술을 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온라인으로 사기 시작하자 대형 서점들은 매장을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곳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책을 접하는 기회를 늘림으로써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결국 더 많이 접할수록 더 많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시대는 공공영역에서도 흑자를 내야 하는 시대이지만, 어떤 부분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할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김형숙. 2009. 미술과 지역사회의 파트너쉽-지역사회 미술교육의 성립 배경을 통해 본 실태 연구-,
미술교육논총, 23(1), 93-124.

남정미, 유소이. 2015. 공연예술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탐색적 연구:
공연예술교육경험을 중심으로. 소비자정책교육연구, 11(1), 77-96.

엄미선, 한상미. 2017. 청소년의 진로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한국자치행정학보, 31(4), 189-206.

한미란, 김유정. 2017. 미술관 및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유아교사의 인식 및 활용 실태 –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미래유아교육학회지, 24(3), 55-78.

문화공간. 1993-2016. 인천광역시기본통계. 인천광역시.




[큐레이션 콕콕] K문학

2019년은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한국은 지난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받았습니다. 한강 · 김언수 · 진은영 · 김금희 · 김숨 · 김행숙 · 신용목 등의 시인과 소설가를 비롯해 김지은 · 이수지 · 이명애 등의 그림책 작가 등 17명의 저자가 도서전에 참석했습니다. 1985년에 시작한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입니다. 1만1000㎡(3,300평) 규모의 전시장에 38개국, 800여 개 기관과 회사가 참가했고, 나흘 동안 8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약 52평 규모로 마련된 한국관에는 한국 도서 77종과 그림책 54종이 전시됐습니다. 한국관 설계를 맡은 함성호 건축가는 다른 전시공간과 달리 바닥을 1도 기울여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들’이라는 주제를 공간에 표현하였습니다. 도서전에서는 4일간 300개가 넘는 세미나가 열렸고 한국 문인들의 대담에 시민과 출판 관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은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나라로 꼽힙니다. 국민 연평균 독서율이 90%에 육박해 세계 1위이며, 공공 도서관 이용률 역시 세계 1위입니다.

스웨덴의 유명 문예지 ‘10TAL’은 최근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했습니다.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을 포함해 김행숙 · 신용목 · 안상학 · 박준 · 김이듬 시인의 시와 한강 · 김영하 · 배수아 · 김금희 · 조남주의 소설을 수록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10TAL’ 주최 북토크에 참석했던 김행숙 시인은 “강연 시간보다 질문 시간이 더 긴 만큼 스웨덴 독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지에서 한강 작가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세미나 신청자 수가 넘쳐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고, 세미나 후에는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이었습니다. 201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스웨덴어 번역본은 K-문학의 싹을 틔운 작품으로 오디오북, 전자책을 포함해 약 2만5천부가 팔렸습니다.『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외에 9월 중순에는 『흰』도 출간됐습니다.『흰』은 소설과 시, 에세이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닌 작품으로 작가는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아픔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언급한 한강의 세미나는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큰 이야기 같지만 내겐 그게 개인적인 책이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한 개인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이야기다.” 2014년에 펴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다뤘습니다.『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에 짓눌려 개인을 잃어가는 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습니다.

 

375석을 가득 채운 소설가 한강 세미나(좌),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소설가 한강(우)
출처 : 중앙일보

김언수 작가의 범죄스릴러 『설계자들』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설계자들』의 스웨덴어판 편집자 한스올로브 외베리는 “하드보일드한 북유럽 문학과 다르게 한국 스릴러는 서정성과 짜임새를 고루 갖춘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릴러 강국’이라 불릴 정도로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탓에 도서전 주최 측에서는 김 작가를 꼭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김언수는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국력이 세진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프랑스에 갔을 때 젊은이들이 BTS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내 책을 사 갔다. 책이란 한 나라의 문화를 파는 것인데, 문화 국력이 커지면서 세계인들이 한국문학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예비사절단으로 스웨덴에 방문한 적 있는데 그때의 북토크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작은 서점에서 진행한 행사였는데 작년에 했던 모든 문학 행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숨 쉬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의 집중도였다. 예테보리도서전을 운영해서 남은 돈으로 어마무시한 호텔을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20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북토크를 듣는, 책에 대한 관심이 어마무시한 나라다.”

소설가 김언수
출처 : 서울신문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소냐 호이슬러 한국어학과 교수는 “한국문학은 이미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기관에서도 자발적으로 한국 작가를 초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일본어가 가장 인기가 많고 그다음이 중국어였는데 요즘은 한국어가 중국어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K팝과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호이슬러 교수는 독일 출신으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구소련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신라 향가와 한시 등 한국 고전문학을, 북한에서 한국어와 역사, 문화를 배웠다”는 그는 한국문학이 “내면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아우른다”며 “한국 시는 한국문학의 주요한 자산으로 유럽에 비해 시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로도 유명한 스웨덴은 독서 진흥을 문화정책 1순위로 둡니다. 아만드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도서전 개막식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는 책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서관은 문학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두에게 열린 안식처”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한국문학번역원 통계를 보면 한국문학의 수출은 2015년 94건(번역원 통해 수출된 서적 기준)에서 2017년 130건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입니다. 지금까지 스웨덴에 번역된 한국 문학은 33종으로, 1977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에서 시작해 김소월 · 이문열 · 황석영 · 문정희 · 김영하 · 한강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한 해에 책 한 권도 번역되지 못한 것인데 윤부한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본부장은 그 이유를 “번역가가 없는 것”으로 꼽습니다.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의 입지가 좁고,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2014년에 한 학년에 25명이었던 스톡홀름대 한국어과 인원이 지금은 60명 정도 늘었다며 그는 “좋은 번역가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 역사적 특수성에 갇혀 있던 한국 작품이 점차 세계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동성과 깊은 철학을 갖춘 한국 문학이 북유럽에도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며 “한반도의 특수성에 갇히지 않고 삶과 세계를 감각해 내는 섬세함이 세계적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열렬한 관심, 한국어 학습에 대한 열기 등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주빈국 초청된 한국문학… K-문학, 북유럽을 물들이다
동아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한강 작품 다 읽었어요”… 스웨덴서 확인된 K문학 위상
국민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예테보리도서전 폐막…북유럽서 ‘K북’ 가능성 확인
연합뉴스, 2019.09.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소설가 한강에 큰 관심
중앙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소냐 호이슬러 “스웨덴 사람들, 한국의 아동문학 스스로 찾아 읽어요”
경향신문,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스릴러 강국’에 뜬 K스릴러… 김언수 “이야기 기근의 시대, ‘현찰적 관점’으로 장편 써야”
서울신문, 2019.09.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큐레이션 콕콕] 일본풍

지난 8월 30일, 인천 중구청 앞 인도에 있던 일본풍 조형물이 철거됐습니다. 일본 복고양이(마네키네코)와 인력거 동상이 그것입니다. 중구는 2014년 개항장 거리를 찾는 관광객이 사진 찍는 장소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이 조형물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개항장 일대를 지나치게 일본풍으로 치장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노역하는 조선 청년과 인력거를 관광 기념용으로 사용하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이 일대는 1883년 제물포항 개항 뒤 일본 조계지가 들어섰던 곳입니다. 중구는 지난 2007년 4억 3천여만 원을 들여 구청사와 주변 일대를 개항장 거리로 꾸몄습니다. 100년 넘은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구청 정문 앞 건물 14곳을 일본풍으로 리모델링해 일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항장은 서구열강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패권 쟁탈장이었습니다. 1905년 이후의 인천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교두보이자 수탈의 관문이기도 했고요. 당시 인천은 ‘조선 안의 작은 일본’, ‘해외의 소일본(小日本)’으로까지 불리기도 했습니다. 중구의 일본 조계지는 일본이 조선의 물자를 침탈했던 대표적인 장소였지만 중구가 관광사업에 급급할 뿐 역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인력거꾼과 고양이상 조형물
출처:조선일보

지난 8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즐거운 사진 찍기용 소품으로 강제노역 중인 조선 청년의 인력거 대신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영사관에서 퇴근해 나오는 왜의 관리를 기다려 태우고, 용동 권번으로 달려 나갈듯한 태세입니다. 이마에 헝겊을 질끈 동여 맨 젊은 인력거꾼이 걸친 왜색 윗옷에는 ‘인간의 힘(닌겐노치카라)’라는 히라가나가 적혀 있습니다. 버선발 대신에 왜의 전통 신발류인 ‘타비’를 신고 있습니다. (중략) 인력거는 하층 노동을 표징합니다. 이 하층 노동에 종사해야 한 자는 식민지 조선반도에 강점자로 쇄도해 온 일인들이 아닙니다. 조선청년입니다.”

인력거는 1894년(고종 31년) 일본인 하나야마(花山帳場)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총 열 대가 서울 시내 및 서울과 인천을 오갔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일본인이 인력거를 끌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하층 계급 청장년들이 인력거의 손잡이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죠.

“비영리시민단체 ‘NPO 주민참여’는 인천 중구청에 공식적으로 요청합니다.

왜의 제국주의적 가치가 몰입된 옛 왜 영사관 앞에 ‘강제로’ 설치한 인력거를 철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는 역사적 가치를 지켜내야 할 장소입니다. 일제가 겁박하여 열린 그 바닷길 끝에는 왜국의 섬이 맞닿아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2014년에 유엔시민권리위원회는 왜국군에 의한 ‘강제 성 노예’를 인정하고 (사과토록) 권고하였습니다. 충격적입니다.

인천 중구청은, 유엔시민권리위원회가 ‘강제 성 노예’를 인정하고 권고한 그 2014년 6월 14일에 ‘수탈과 도륙의 옛 감정을 되살려내는 왜 영사관’ 앞에 조선청년을 무릎 꿇게 하였습니다(인력거를 쥔 청년은 한쪽 무릎을 지면에 꿇고 있습니다). 이 인력거 동상을 보며 굴욕적인 감정을 갖는 건 이상한 지나친 ‘국뽕’일까요?”

2019년 9월 15일 20시 현재 363명이 동의했다
출처: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올해 중구는 백범 김구 역사거리 조성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백범을 통해 일제침탈의 역사를 인천 개항장에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감리서를 탈옥해 서울로 피신했던 백범의 발자취를 찾아 10여 명의 사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이와 함께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한 개항장 일대의 독립운동 콘텐츠도 중구의 관심거리입니다. 개항장을 단순한 관광자원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겁니다.

한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일제강점기나 냉전시대와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은 첨예한 논란거리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유산과 유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관점에 선 사람들은 문화재 지정 해제나 철거를 주장합니다. 반면 아픈 과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보존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은 전자를 “일제의 식민통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유산이나 유물까지 수탈의 잔재나 치욕스러운 과거로 치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거나 패배주의적 역사의식의 소산이다. 이런 논리라면 식민지 근대를 경과하면서 형성된 일체의 문화, 그 시대를 겪으며 형성된 주체인 우리의 정신까지 모두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후자의 보존론도 일면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강조하면서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나 배상을 하고 있지 않다.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도 깊다. 막연한 향수나 과거지향적 동경으로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하다가는 식민지배와 침탈의 역사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식민사관으로 기울기 십상”이라고 덧붙입니다.

개항을 기점으로 근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때부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개항장에서 보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존된 유산에서 되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조형물 철거 후의 모습
출처:인천in

중구는 조형물을 당분간 창고에 보관할 예정입니다. 김재익 부구청장은 “아직 어떻게 처리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설치했고(인력거와 고양이 각각 1900만원과 800만원), 그동안 관광객에게 인기를 끈 데다 반일 여론이 잦아들면 재설치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일부 상인은 철거에 반발하면서 “중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차이나타운이나 일본풍의 이곳 개항장 거리나 주목적은 관광객 유치 아니냐”며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왜 철거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앞서 인천 중구는 역사학자 4명에게 조형물의 철거와 유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각각 2:2로 동일한 의견을 주었다고 합니다.

출처:시사저널

글 / 이재은 (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경인칼럼]근대문화유산과 식민잔재의 딜레마
경인일보, 2019.9.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썰물밀물] 김 첨지의 인력거
인천일보, 2019.9.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중구청 앞 인력거 동상 대신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경기신문, 2019.8.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인천선 일본풍 조형물 철거… 경기도는 ‘전범 기업 스티커’ 통과
조선일보, 2019.8.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사설]일본 조형물 철거 계기로 개항장 역사 되돌아 봐야
경인일보, 2019.9.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단독]인력거꾼‧복고양이 조형물, ‘짬짜미 계약’ 의혹
시사저널, 2019.9.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