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광장을 상상하는 시간

인천공간-다시-읽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광화문광장-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16년 말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이라는 장소가 새로운 상징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벌어지는 집회는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주장이 얼마나 강렬하고, 많은 지지를 받는지 보여주는 척도는 ‘광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 다시 말하면 ‘광장을 얼마나 점거했는가’ 인 것 같습니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집회들을 통해서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정치적 통로’로, ‘민주주의의 최전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사건이 광화문 광장을 하나의 상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어떤 사건을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천에서 최근 열리는 시민들의 집회가 부평역과 구월동 로데오거리로 나뉘어지거나, 예상보다 너무 적은 참여로 집회가 취소되는 일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천에 ‘광화문 광장’과 같은 공간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센트럴파크-한국관광공사
광장은 유럽 도시 공간의 전통입니다. 유럽의 광장은 본래는 시장이었거나 교회의 앞마당이었지만, 중세를 지나며 도시가 형성되면서 왕, 영주, 주교, 도시의 자치 상인들과 같은 다양한 계층이 개입하며 다양한 형태의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광장들은 하나같이 궁전, 주거지, 교회, 상업 건물과 같은 밀집된 건물들 사이의 빈 공간이고,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개입하며 형성된 광장은 모두 다원적 성격을 띤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프랑코만쿠조는 그래서 광장의 역할을 장터, 지역 주민의 문화 공간, 예술의 장, 전통 의식의 배경, 군중 집회의 공간으로 다양하게 정의하면서, 광장의 주인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광장의 역사는 다릅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광장은 1971년 조성된 여의도 광장과 같은 국가 상징 광장이거나, 큰 관공서 앞에 차로에 둘러싸여 꽃배추 화단이나 기념탑 같은 것이 서 있는 들어가기 힘든 곳이거나, 기차역 앞에 버스나 택시 정류장이 차지하는 역전 광장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장은 항상 발이 닿고 일상적인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찾거나 넓게 텅 비어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인 공간입니다. 광화문 광장 역시 도로에 둘러싸인 ‘교통섬’이라는 비판과, 거대한 왕정 시대의 모뉴먼트가 갖는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천의 광장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인천의 광장의 절반 정도는 전철역 출구 앞의 교통광장입니다. 대부분 아주 작아서 사람들이 모이기에 적합치 않고, 좀 넓은 광장은 대체로 조경으로 메워져 있거나, 종종 버스 환승센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시공간의 중심이자, 도시 사람들의 삶의 중심인 공간으로서의 광장은 우리 도시 안에는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한국에서 도시공간의 중심에 공적 공간으로서 광장의 위치는 큰 공원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 도시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1인당 녹지 면적, 1인당 공원 면적 등의 수치들이 세계 유수의 도시와 비교되면서, 도심 공원의 필요성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는 1997년부터 여의도 광장이 여의도 공원으로 변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 서울숲, 북서울 꿈의 숲과 같은 도심 내 대형 녹지 공원, 청계천 복원과 같은 도심 내 수변공원 조성이 이루어졌습니다. 인천도 1988년부터 1998년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간석동, 관교동, 구월동을 가로지르는 중앙공원을 조성했고, 시민회관이 사라진 자리, 미군부대가 빠져나간 자리 등은 예외없이 공원으로 변신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던 다른 열악한 주거지와 달리 수도국산에는 넓은 근린공원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송도와 청라와 같은 최근 계획 도시의 한가운데에는 센트럴파크, 청라중앙호수공원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런 대규모 공원들에는 중간중간에 작은 광장이 포함되어, 우리 도시에서 광장은 공원의 일부로 함몰되었습니다. 일상이 계속 머물러야 할 광장이 ‘여가’라는 비일상을 누리는 공원 속으로 들어가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인의 삶의 중심인 유럽의 광장과 달리, 공원의 일부분이 된 광장은 우리의 도시공간에서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가도, 문화생활도, 상거래도 이루어지는 유럽의 광장 문화와 다르게 우리는 여가는 공원에서, 문화생활은 각 기능에 맞는 문화공간에서, 상거래는 백화점과 아울렛으로 분산됩니다. 도시의 모든 공간을 샅샅이 찾아내어 이런저런 기능을 빼곡하게 채워놓은 우리의 도시 공간에서 ‘비어 있으니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누구나 써도 되는’ 광장 같은 공간은 그 자리를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중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가를 위한 공원 속 광장이 아닌, 도로에 둘러싸여 다가갈 수 없는 광장이 아닌, 일상적 거리와 건물들 사이에 열려있는 광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광장은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기능도 없는 빈 공간이고 누구도 주인이 아니기에-따라서 모두가 주인이기에-, 온갖 기능으로 꽉 메워진 도시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복합적인 활동과, 평소에 들을 수 없는 도시의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광장이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그 광장이 도시의 한 가운데에, 우리의 일상이 늘 스쳐 지나가야 하는 곳에 존재할 때, 우리는 도시에 함께 살고 있지만 각자의 일상에 쫓겨 잊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듣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목소리를 누군가 들어주길 원하는 때가 온다면, 광장의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순간도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인천’이라는 도시에서도 광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는 도시의 여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가장 미분화된 시간을 살아가는 도시의 삶에서, 타인의 목소리가 뒤섞인 광장은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광장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 도시에 새로운 누군가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나의 삶도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도시에서 살기에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천에 살고 있는 300만 명의 목소리를 기능으로 가득찬 도시가 다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광장의 필요성은 더욱 도드라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행복한 주말을 보내는 송도 센트럴파크의 풍경을 바라보며, 광장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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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태, 2011, 도시권의 측면에서 바라본 광장의 정치, 공간과 사회 21(1)
‘인천 첫 주말 촛불집회 6000여명 참석…‘박근혜 즉각 퇴진’ 촉구’. 경향신문. 2016.12.11.
‘강추위도 녹인 인천 촛불 “가자 광화문으로”’. 뉴스1뉴스. 2016.11.24. 
‘인천서 박 대통령 하야 반대 집회 참가 인원 적어 무산’. 뉴스1뉴스. 2016.11.24.